100세 장수시대가 우리 앞에 활짝 열렸다. 덕분에 ‘인생은 60세부터’라는 말이 일반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곳은 건너기 싫은 강이다. '고령자'가 싫어서 59세에서 나이 먹기를 멈추고 젊은 오빠인 양 10년을 살았다. 삶길 어언 70년! 살길 30년을 아름답게 살고 싶다.
학생 시절에 읽은 어느 유명 여류작가의 ‘29세 10년’이라는 글귀가 실감 나게
김유준 프리랜서 작가
중년의 일탈, 제2의 사춘기처럼 새로움을 맛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앞만 보고 산 세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잊은 채 가족들을 위해 전력을 다해왔다.
문득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대로 살아도 좋은 것인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화된 생활에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그 끝에서 일탈의 유혹이 슬그머니 고개
흡혈귀로 알려진 드라큘라는 실존 인물이다. 동유럽의 루마니아 중부 아르제슈주 쿠르데아르제슈 시에는 드라큘라 성으로 알려진 ‘브란(Bran) 성’이 있다. 루마니아 여행자들은 ‘브란성’을 빼놓지 않고 찾는다. 루마니아 당국에서도 이미 소설, 영화, 뮤지컬 등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드라큘라’를 이용해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드라큘라는 루마니아에서는 역사에
1960년대의 일이니 꽤 오래된 기억이다. 여유로운 어느 주말 오후, 뮌헨 거리를 한가로이 지나가는데, 한 미술관 출입구 주변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필자는 무심코 미술관 벽면을 크게 장식하고 있는 플래카드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1898~1967)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김정숙 홍보컨설턴트
대학에 입학하던 해 아버지는 내게 나침반을 선물하셨다. 가죽 케이스에 들어 있었다. 그때는 나침반 선물의 의미를 잘 몰랐다. 나이 오십에 들어서고 나니 하고 싶었던 말씀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떨림을 멈춘 나침반은 아무 쓸모가 없다. 타오르는 불꽃은 항상 더 높이 오르려고 혀를 날름거리며 떤다. 사람이라면 심장의 떨림이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 집에 얹혀살면서 어린이처럼 처신하는 현상이 미국에서도 새로운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캥거루족, 키덜트(Kidult), 어덜테슨트(Adultescent) 같은 신조어에도 익숙해졌다. 제 앞가림을 못하는 자녀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의 속앓이가 심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애지중지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이런 현상에 대한 학계의 연구와 언론 보도
사전적 의미의 내숭은 ‘겉으로는 순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하다’다.
김현정 화가, 그녀는 청춘의 속내를 내숭을 떨지 않고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냈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얇은 한복 속의 여인의 자태는 예쁘다기 보다는 무척 매혹적이다.
인사동에 가면 꼭 들리는 갤러리 몇 군데가 있다. 그날 갤러리 이즈에서 예정에 없던 전시를 만났다. 마치 전시
퇴직하고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지면 세상을 잘못 산 것처럼 자기비하에 빠져든다. 아내의 눈치도 보이고 아내도 친구들로부터 ‘요즘 너 남편 뭘 해?’ 하는 소리에 답변이 궁해진다. 아파트 경비도 나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이 시간에 이 사람이 왜?’ 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불러서 함께 놀러 다닐 만만한 친구도 없다. 노인정이나 경로당에 가기는 죽기보다 싫다.
수필 공부 차 문우들이 10여명 모였다. 유명 수필가의 글을 읽으면서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그날 공부할 수필에서 다들 남의 문체나 적절치 못하다는 어휘를 지적하며 제 문학적 예리함을 뽐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필자가 지적한 것은 작가의 문체나 어휘가 아니라 "뒷산의 리기다소나무는 아무 쓸모없는 나무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자작나무를 심는다"
IT도사? 필자에게 이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일견 필자는 IT도사일 수도 있다. 지금 컴퓨터로 먹고사니 나름 IT도사 아니겠는가?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인생을 사는 방식, 즉 라이프스타일은 과거의 특수한 경험이나 트라우마 같은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