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기자 칼럼] 자작나무 사랑(?)

기사입력 2016-06-01 17:37 기사수정 2016-06-22 12:18

▲선유도에서 사는 자작나무. (강신영 동년기자)
▲선유도에서 사는 자작나무. (강신영 동년기자)
수필 공부 차 문우들이 10여명 모였다. 유명 수필가의 글을 읽으면서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그날 공부할 수필에서 다들 남의 문체나 적절치 못하다는 어휘를 지적하며 제 문학적 예리함을 뽐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필자가 지적한 것은 작가의 문체나 어휘가 아니라 "뒷산의 리기다소나무는 아무 쓸모없는 나무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자작나무를 심는다"는 내용에 대한 반발이었다.

필자 의견은 작가가 리기다소나무를 쓸모없는 나무라며 너무 평가절하 했고 자작나무야 말로 다른 나무와 달리 흰 나무껍질 때문에 문인들이 그냥 막연히 좋아하는 수종이라는 것이었다.

리기다소나무는 우리나라 산이 민둥산일 때 정부가 산림녹화의 일환으로 아카시아와 함께 전국 산에 대대적으로 심은 나무이다. 우리나라 소나무는 대부분 곧게 자라지 못해 쓸모가 없는데 반해 리기다소나무는 곧게 자라는 특성이 있었다. 속성수라서 경제적이기도 하다. 소나무 종류이므로 휘톤치드 방출량도 많다. 그래서 목재의 용도로도 활용가치가 높다는 평가 하에 심은 것이다. 리기다소나무는 과연 곧게 잘 자라 현재 우리나라 산에 중요 수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작나무는 나무껍질을 태울 때 자작 소리가 난다하여 자작나무로 이름 지었다. 그렇다면 땔감으로나 쓰는 용도인데 요즘은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집도 별로 없다. 땔감 용도로만 봐도 차라리 리기다소나무가 나무도 단단하고 송진이 있어 자작나무보다 더 좋은 화목이다. 물론 가구 용도로 많이 쓰인다는 얘기는 있다.

동대문 근처에 일봐주는 회사가 있다. 새로 고층 사옥을 지으며 식수할 수종을 고르는데 설계 회사에서 자작나무를 추천하자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필자가 자작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느냐고 회사 사람들에게 묻자 아무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멋있을 것 같다고 했다. 도심의 고층 건물들 사이에 어떤 수종의 나무를 심든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필자도 나무 전문가도 아니면서 다른 수종을 추천할만한 위치는 아니었다. 결국 건물 사이 틈에 빈약하게 보이는 자작나무가 심어지긴 했다. 촘촘하게라도 심었으면 그나마 그렇게 빈약해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가 리기다소나무의 혹평에 대해 반발하고 자작나무를 폄하하지 몇 사람들이 해명을 하긴 했다. 리기다소나무는 소나무 재선충이 번져 죽어가는 수종이고 소나무 진액이 독해서 그 밑에는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작나무는 어떤 점이 좋으냐 물으니 잘 모르겠단다. 원래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로 ‘닥터 지바고’ 같은 시베리아 배경의 러시아 문학 작품에 자주 나오는 수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러시아 문학 작품들 속에 자주 나오니 친숙하다는 것이다.

자작나무를 굳이 폄하하기보다는 어떻게 생긴 나무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냥 막연히 자작나무를 문학작품 속에 등장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어느 작가든 글 속에 자작나무 얘기만 나오면 바로 책을 덮는다. 매너리즘에 빠진 작가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귀족 계급 중에 공작, 백작, 남작과 함께 자작이라는 계급도 있다. 한자로는 전혀 다르지만, 혹시 귀족계급에서 들은 귀족적인 이미지 때문에 막연한 호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원래 백의 민족이라 흰색을 좋아하긴 한다.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얼굴이 하얗지만, 그래도 더 하얗게 되려고 안달을 한다. 미백크림이 여전히 잘 팔리고 감기도 아닌데 얼굴 탄다며 마스크까지 쓰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황인종이다. 농촌에서 자외선을 그대로 받으며 일하는 농부들의 피부색은 영락없는 황인종이다. 황인종이라고 하면 콤플렉스라고 하기에는 지나치지만, 어쨌든 백색에 대한 동경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베리아의 대표적인 나무인 자작나무가 우리 산야에도 어울리는 나무인지는 모르겠다. 우리 산에는 별로 안 보인다. 나무는 심고 나면 몇십 년 후를 봐야 한다. 우리나라가 점점 아열대화되어 기후가 바뀌는 중인데 한대지방 나무가 몇 십년 후에도 버텨줄지는 또다른 문제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수종은 느티나무 또는 밤나무 같은 유실수이다. 느티나무는 빨리 크고 병충해 없이 잘 자란다. 지금 현존하는 수백 년 된 보호수는 대부분 느티나무이다. 나무의 기품이나 형세도 보기 좋다. 밤나무는 밤꽃도 좋지만, 해마다 풍성한 밤이 열리니 일석이조이다. 산에 나무를 심는 이유가 뿌리 덕분에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게 하고 풍성한 잎들은 산소를 내뿜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베어냈을 때 나무의 용도는 별도이다. 자작나무보다 느티나무나 밤나무는 토속적이라 문학적인 분위기로는 덜 어울릴지 모른다. 그러나 실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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