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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이런 사람” MBTI가 뭐길래
- 세상은 모든 게 빠르게 흘러간다. 자고 일어나면 유행이 바뀌어 있고, 며칠 전 신나게 쓰던 신조어는 한물간 취급을 받는다. 좁히려 해도 좁혀지지 않는 급격한 변화의 틈,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변화하는 세상을 한눈에 파악하고 싶은 시니어를 위해 최신 문화를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000이고요, 저의 MBTI는 ENFP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의 흔한 자기소개 방법이다. MBTI 검사를 직접 해보거나 알고 있는 시니어도 많지만, 이 네 글자의 알파벳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도 안 잡히는 시니어들 역시 적지 않다. ‘ENFP’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의 말을 해석하면 “저는 외향적이고 직관적이며 감정이 풍부하고 즉흥적인, 한마디로 ‘재기발랄한 활동가’ 유형의 사람입니다”라는 뜻이다. MZ ‘과몰입’ 이끈 성격 유형 검사 MBTI는 심리학자 칼 융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개발된 성격 유형 검사다. 여러 문항을 통해 개인이 외향(E)과 내향(I), 감각(S)과 직관(N), 사고(T)와 감정(F), 그리고 판단(J)과 인식(P) 등 4가지 지표 중 어떤 특성에 가까운지 파악해 분류하고, 이 지표의 조합을 통해 총 16가지 유형으로 성격을 구분한다. 한국에 도입된 것은 1988~1990년이지만, 최근 2~3년간 온라인에서 비공식적인 검사법이 확산되면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MBTI 검사 결과로 나온 성격 유형을 통해 본인을 소개하거나 타인의 MBTI를 바탕으로 상대를 이해하는가 하면, 일상적인 대화 소재나 온라인 콘텐츠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방송만 봐도 MBTI는 다양한 화제를 이끈다. 2020년 6월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통해 대중적 사랑을 받은 ‘싹쓰리’(유재석, 이효리, 비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그룹) 멤버들의 MBTI 궁합이 방송을 타며, 높은 시청률과 함께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후로도 다양한 방송에서 출연자의 MBTI를 활용한 콘텐츠가 다수 만들어졌고, 지난 12월에는 채널S의 MBTI 탐구 예능 ‘후 엠 아이’가 첫 방송을 탔다. MZ세대는 SNS나 유튜브를 통해 MBTI 관련 밈(인터넷을 중심으로 모방을 거듭하는 유행)을 확산시키며 하나의 놀이 문화로 만들었다. MBTI 성격 유형별 연애법·공부법·인간관계 대처법 등의 차이를 다룬 콘텐츠가 끝없이 생산되고, 댓글에는 유형별 사람들이 모여 자신과 타인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은 유형별 오픈채팅방까지 만들어 소통할 정도로 MBTI의 특성과 밈을 찾아보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지표 MZ세대가 이렇게 MBTI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수연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정의하는데, 지난 수년간 전자매체 이용 증가로 사람들의 대면 접촉이 감소하면서 MZ세대가 자신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이 줄어들었다”라며 “MBTI는 이들이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매개체가 된 데다, 쉽고 재미있는 요소가 많아 유행하게 된 것 같다”라고 현상의 원인을 설명했다.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한 MZ세대의 특성 역시 MBTI 열풍에 한몫했다. 평소 MBTI에 관심 많은 직장인 하현정(27) 씨는 “내 MBTI 유형인 ISFP의 특성에 대한 콘텐츠들을 찾아보면서 내 성격이나 행동의 근거를 알아가고, 이를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 재밌다”라고 말했다. 비대면 시대에 MBTI는 ‘타인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역할도 해낸다. 서 교수는 “면대면 만남과 상호작용이 줄어들면서 소통에 더 많은 장벽과 장애물이 생겼다”라며 “MBTI와 같은 도구를 활용해 상대를 이해해보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판단 잣대로 쓰여서는 안 돼 MBTI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다 보니 취업 시장에서 구직자의 MBTI를 묻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한 식품 기업은 공채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MBTI 유형을 기반으로 자신의 장단점을 소개하시오’라는 문항을 추가했고, 한 광고대행사는 최근 채용공고에 “MBTI가 ‘E’로 시작하는 분을 우대한다”고 적었다. 에너지 넘치고 적극적인 사람을 찾는다는 취지였다. 이는 전문가들이 MBTI 열풍에 대해 크게 우려했던 현상이다. 서 교수는 “입체적인 인간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범주화한 MBTI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결과이고, 과학적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라며 “MBTI 유형을 가지고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를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로 쓰면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MBTI를 맹신하기보다는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도구로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 2022-01-1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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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S 2022, 고령자 맞춤 기술 대거 공개
- 세계 최대 IT(가전제품·정보기기) 전시회인 ‘CES 2022’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됐다. 전 세계 159개 국가의 220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전년에는 코로나19 유행으로 홈코노미(홈+이코노미, 재택경제활동)에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는 로봇 등 위드코로나 속 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돌파구 마련에 집중했다. 이 중 고령자의 전반적인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들이 속속 소개돼 눈길을 끈다. 현대차그룹은 전시 기간 소형 모빌리티 플랫폼인 ‘모베드(MobED)’를 공개했다. 모베드는 직육면체 모양의 차체에 기능성 바퀴 네 개가 달려 기울어진 도로나 요철에서도 수평을 유지할 수 있다. 고속 주행 등 필요에 따라 전륜과 후륜 간격을 65㎝까지 넓혀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며, 저속 주행이 필요한 복잡한 환경에서는 간격을 45㎝까지 줄여 좁은 길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모베드의 크기를 사람이 탑승 가능한 수준까지 확장하면 노인과 장애인의 이동성을 개선할 수 있으며 유모차·레저용차량(RV) 등 1인용 모빌리티로도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CES 2022에는 헬스케어 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미 플로리다의 케어프레딕트는 노인 맞춤형 건강 추적 서비스를 선보였다. 손목시계가 노인들의 식사와 요리, 수면, 목욕 등 일상생활 패턴을 모니터링하고 평소와 다른 행동이 감지되면 가족들에게 알림 메시지를 보낸다. 예컨대 노인이 평소보다 침대에 오래 누워있는 것을 감지하면 가족들에게 이를 알려 사고를 예방하는 식이다. 한국 스타트업 룩시드랩스는 사람의 뇌파와 동공 움직임 등 생체 신호를 활용해 경도인지장애 위험에 노출된 노인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인지 건강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VR(가상현실) 인지 기능 평가·훈련 시스템을 개발했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기기에서 나오는 VR 게임을 즐기는 동안 기기가 사용자의 뇌파와 눈 움직임 등을 분석해 작업 기억력, 주의력, 공간지각력 등을 평가한다. 한국 기업 아이메디신은 무선 건식 뇌파 측정기 ‘아이싱크웨이브’를 공개했다. 머리에 모자처럼 써서 사용하는 이 기기는 4분 만에 뇌파를 측정하고 10분 만에 검진 결과를 알려준다. 뇌파를 측정하면 전두엽·측두엽·후두엽 등 뇌 부위의 활성화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나의 뇌가 동일한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인지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 기업은 뇌파 측정 결과를 요약해 클라우드에 띄워 보여 주면서 뇌의 각 부위를 빨간색 또는 파란색으로 표시한다. 빨간색은 같은 나이대보다 뇌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뜻하고, 파란색은 뇌가 제 기능을 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메디신은 최근 서울 서초구치매안심센터와 아이싱크웨이브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회사 관계자는 “향후 ADHD 검진 또는 치매 예측 등으로까지 서비스를 뻗어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바디프렌드는 안마의자 ‘다빈치’를 발표했다. 이는 생체 전기저항을 통해 체성분을 측정하는 BIA 기술을 적용해 사용자의 근육량, 체지방률, BMI(체질량지수), 체수분 등 7가지를 분석한다. 측정한 체성분 정보는 안마의자 태블릿에 저장되며, 체성분 정보에 맞는 안마 프로그램 추천 기능도 탑재했다. 특히 팔 안마부에는 LED 손 지압 기능을 적용했다. 더불어 손과 팔목의 관절 부위에 특정 파장대의 LED를 조사하는 LED 테라피를 제공하며, LED 가이드 플레이트 상단에는 발열부를 추가해 손바닥에 열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스타트업 룩시드랩은 사람의 뇌파와 동공 움직임 등 생체 신호를 활용해 경도인지장애 위험에 노출된 노인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인지 건강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VR(가상현실) 인지 기능 평가·훈련 시스템을 개발했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게임을 즐기는 동안 기기가 사용자의 뇌파와 눈 움직임 등을 분석해 작업 기억력, 주의력, 공간지각력 등을 평가한다. 한편, 웨어러블(착용형) 헬스케어 기기들도 등장했다. 착용하면 수면 상태와 심박수, 체온, 혈중산소농도 등을 실시간 추적하는 반지, 사람이 올라서면 체성분과 자세 등을 체크해주는 욕실 매트, 잠을 자는 자세를 분석하고 자동으로 높이를 조절해 코골이를 예방하는 베개도 출시돼 많은 주목을 받았다.
- 2022-01-0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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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의 자격, ‘꼰대’와 ‘깐부’의 차이
- 요즘 서로의 존엄성을 해치거나 인간의 품격을 훼손하는 크고 작은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 속에서 더욱이 ‘어른다움’이 무엇인지 돌이켜보게 됩니다. 아버지가 부재(不在)한 세상, 존경할 어른이 실종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정말 안녕하십니까? ‘꼰대’와 ‘깐부’ 오래전 특정 세대에서만 통했던 은어이자 속어 두 가지가 우리 삶에 어느 날 불쑥 끼어들었습니다. 그 첫 주자가 ‘꼰대’라면 최근 들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유행어가 바로 ‘깐부’입니다. ‘꼰대’라는 말은 아버지나 학교 선생님처럼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어린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습니다. 요즘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설교를 늘어놓는 일명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속어로 쓰입니다. 꼰대가 주는 어감과 부정적 의미 탓에 너나 할 것 없이 기성세대라면 꼰대로 불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도 내가 과연 꼰대일까, 밖에 나가면 나를 꼰대로 보지는 않을까 자문하고 젊은이들 눈치를 보기까지 하니까요. 이를 반영하듯 2020년 MBC에서 ‘꼰대인턴’이라는 드라마를 선보였습니다. “나 때는 그러지 않았어”,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타령 덕에 드라마 주제가(OST) ‘꼰대라떼’가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제발 그만 그만 그만해 오늘도 시작되는 꼰대라떼 (중략) 뻔뻔하게 뻔하게 반복되는 하루가 지나간다 왕년에 내가 말하신다면 오늘도 시작이구나 니까짓 게 뭘 알아 궁금하시면 라떼를 한잔 드세요 라떼라떼라떼라떼 라떼는 말이야 라떼라떼라떼라떼 라떼는 말이야 아침부터 시작되는 꼰대라떼 적나라한 노랫말처럼 온갖 진부하고 부정적인 수식어가 어울리는 늙은 사람, 나이만 많이 먹은 선생질만 일삼는 사람이 ‘꼰대’라면, 그 반대편에 ‘깐부’가 있습니다. 꼰대 소리 듣기 싫다면 진정한 내 편, 내 맘을 알아주는 ‘찐친’, 깐부가 되고 싶다면 함께하실까요. 어른이 없고 아버지가 부재하다고 세상 탓을 하기 전에 찬찬히 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전 세계 언론에서 극찬과 호평 일색인 ‘오징어 게임’이란 드라마 시리즈에 등장한 ‘오일남’(오영수 분)이란 배역이었습니다. 9개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좋은 평가와 감동을 안긴 편이 바로 ‘깐부’라고 합니다. 극 중 ‘오일남’이 ‘깐부’가 뭔지 알려줍니다. 지는 즉시 게임에서 탈락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목숨을 내줄 구슬치기에서 짝꿍이 된 두 사람-오일남과 성기훈(이정재 분). “우리 깐부부터 맺어야지. 구슬이랑 딱지랑 같이 쓰는 친구.” 어린 시절 놀이 자산의 전부였던 형형색색 구슬과 크기도 두께도 모양도 달랐던 딱지를 함께 쓰고 관리하던 제일 친한 친구를 일컫는 남자아이들의 은어가 ‘깐부’입니다. “기억 안 나? 우리 손가락 걸고 깐부 맺은 거. 깐부끼리는 네 거, 내 거가 없는 거야.” 그가 맡은 역할보다는 대사가 주는 울림이 국경을 넘어 세계적 신드롬이 되었습니다. 삶과 죽음, 승리와 패배라는 갈림길에서 결정적 순간 ‘내 편’이 되어주는 어릴 적 놀이 속 ‘깐부’라는 말이 이렇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게임의 설계자이자 호스트인 ‘오일남’이라는 극 중 인물보다 오히려 저는 그를 연기한 ‘오영수’라는 배우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들려주고 보여준 그의 이야기가 우리가 바라 마지않던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요. 어릴 때부터 하던 평행봉으로 체력을 유지하며 200편 넘는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 오영수. 60년 가까이 평행봉이야말로 일생의 동반자가 되었다는 그는 이사할 동네에 평행봉이 있는지가 우선순위라고 말합니다. “가장 인간적인 사람에게도 사악함이 있고, 단지 그 차이가 얼마냐일 뿐이지. 드라마 속 인물과 저는 비슷합니다.” 수백 편 극 속에서 수백 가지 인물을 연기해온 그에게 인간처럼 복잡다양하고 다중다층적인 역할이 있을까 싶습니다. 선함과 악함, 추함과 아름다움을 버무린 인간 군상을 무대에 올리다 보니 인간을 이해하는 폭과 깊이가 남다른 데서 나온 말로 여겨집니다. 언제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에 “가족끼리 같이 앉아 식사하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이야기하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자기 이야기해가면서 그렇게 사는 가정이 가장 행복한 게 아닐까 해요, 얼마 안 되는 식구지만 같이”라고 답하는 그에게서 한 끼 밥을 같이 나누는 일상의 소중함을 엿보게 됩니다. 때문에 그가 가진 염려라면 그저 가족과 문제 없이 잘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말에서도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오로지 1등만 기억하는 우리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2등은 패자가 아니라 3등한테 이긴 승자가 아니냐고 되물으며 우리는 모두가 승자라고 얘기하는 오영수. 진정한 승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애쓰면서 내공을 가지고 어떤 경지에 이르려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과 세상에 위로를 건넵니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 이에게 제 인생 드라마 순위를 바꾼 JTBC의 ‘인간실격’. 여기서 주인공 아버지 이창숙(박인환 분)이란 인물이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는 또 하나의 어른입니다. 알츠하이머 초기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하나뿐인 딸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 폐지를 주우며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살아내는 아버지. 세상에 대한 미움도 원망도 남기지 않고 딱 선물 같은 때론 기적 같은 사람. 아버지 없는 세상에선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한, 그렇지만 어리지 않은 마흔이 다 된 딸 부정(전도연 분)은 죽기로 결심하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호소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아버지보다 더 가난하게 살 것 같아요. 길에서 고생하며 키워준 아버지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하려 했는데,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 나는 아무것도 못 됐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 됐어요. 결국 아무것도 못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외로워요, 아버지!”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좌절과 상처, 배신을 겪으며 울부짖던 주인공 부정은 자살 카페에서도, 아버지가 살던 오피스텔 옥상에서도 결국 죽지 못합니다. 자기를 알아주는, 마음을 읽어주는, 조심스레 다가오는 한 사람에게 닫히고 다친 마음을 꺼내 보이고 온기를 채우면서 아버지한테 다시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를 안고, 아버지 마음을 품으면서 비로소 살기로 결심합니다. 살아내기로 마음먹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 나는 이제야 아버지가 제게 세상에 태어나 무엇이 되는지보다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이미 눈으로 몸으로 삶으로 얘기해왔었다는 걸 아주 조금씩 천천히 깨달아가고 있어요.” 아버지 마음속에 법도, 문학도, 철학도 다 들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습니다. 누가 가르쳐준 적도, 배운 적도 없는 아버지한테 차곡차곡 쌓여 있던 삶의 지혜와 내공은 시집이 됩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시집입니다. 수많은 생각 가운데 아끼며 꺼내는 아버지 말이, 고르고 고른 몇 개 말이 시가 되어 나온다는 걸 깨달은 딸은 편안히 작별인사를 나누고 아버지를 보내드립니다. 왜 마음 미장공인가? 어른의 자격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이자 아니 사실 처음부터 떠오른 인물은 다름 아닌 제 아버지입니다. 박성옥 선생이 제 아버지입니다. 젊었을 땐 경북 왜관 등지를 누비며 숱한 병자를 치료해주셨지요. 면허가 없는 탓에 어머니 김초자 여사를 만나 저를 낳은 뒤론 의업을 접고 미장일을 배우셨습니다. 어머니는 의사 가운에 반해서 결혼하셨는데 새하얀 가운 대신 흙떡이 되곤 하는 작업복만 연신 빨아대셨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어린 저는 아버지 일하시는 데 따라다니거나 종종 새참을 갖다드렸습니다. 거친 사면 벽을 아버지 흙손으로 매끄럽게 만드는 마술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울 아버지 정말 멋지다!” 봄에서 가을까지 공사가 한창이던 때라 분주하시던 아버지는 겨울이면 온돌방 틈새로 이산화탄소 샐까 봐 연탄보일러 수리하며 또 생계를 꾸려가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과학자요 만능 ‘맥가이버’셨지요. 그런 아버지 마음 따라가려 저도 배운 재주 모아서 마음치유, 분노조절, 감정관리 강의하면서 낯선 분들 마음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미장일을 부끄러워하셨지만 저는 그때도 지금도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보고 있어도 그립고 애달픈 못난 딸내미입니다. 아버지한테 배운 붓글씨로 글씨깨나 쓰는 재주를 가진 저는 용돈봉투 드릴 때 짧은 손 편지를 쓰곤 했는데 아버지 역시 제 아이들, 당신 손주에게 용돈봉투마다 손 편지를 써주십니다. “위대한 사람보다 참된 사람이 되어라. 잘 커줘서 기쁘다. 할아버지가.” “우리 ○○이도 안아보니 품 밖에 나는 구나. 부모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이제는 그 두 아들이 성인이 되어 취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나는 젊을 때 체면 따지다가 좋은 기회도 놓치고 잘 살지 못했던 것 같다. 너희 애들은 그런 것 따지지 말고 밥 벌어먹고 일했으면 좋겠다.” 취업 앞둔 아니 취업이 절벽인 손주들한테는 차마 말 못 하시고 저희 부부한테 넋두리처럼 해주신 울 아버지 말씀이 귓전에 자꾸 울립니다. 아, 울 아버지! 최근에는 ‘젊은 꼰대’, ‘역꼰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꼰대는 이제 더 이상 나이를 기준으로 불리는 호칭이 아니라 삶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마음가짐에서 대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다운 어른, 닮고 싶은 사람, 함께 얘기하고 싶은 사람, 나아가서는 늘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 그런 어른이 우리 서로에게 되어주면 어떨까요. 그런 사람 없다고 투덜대고 원망만 할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인사하고, 웃어주고, 귀 기울여주는 새 맘, 새 삶, 새해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크든 작든 혜택을 무척 많이 받아왔습니다. 하늘, 햇볕, 바람, 비 같은 천지가 베푼 은혜뿐 아니라 부모님과 선생님, 세상 사람들한테 신세를 지고 사는 게 우리 인생인데, 이제는 돌려주고 좋은 것은 남겨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배우 오영수가 방송에서 했던 얘기처럼 말입니다. “산속에 꽃이 피어 있으면, 젊었을 적엔 그 꽃을 꺾어왔다면 이 나이쯤 되면 그냥 그대로 놓고 오죠. 그리고 다시 가서 보죠. 뭐 그게 인생이죠. 그냥 있는 그 자체로 놔두는 것. 그게 쉽지가 않죠.”
- 2022-01-0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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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병원홍보협회 신임 회장에 강남세브란스 김휘윤 팀장
- 한국병원홍보협회가 지난 12월 28일, ‘2021년 제6차 세미나 및 정기총회’를 열고 내년도 협회를 이끌 회장·부회장·감사 등 새로운 집행부의 출범을 알렸다. 행사는 COVID-19 대유행 상황에 따라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시행됐다. 2022년 한 해 동안 협회를 이끌 제23대 회장에는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 홍보팀 김휘윤 팀장이 선임됐다. 또한, 서울아산병원 홍보팀 신대성 팀장이 부회장에, 강동경희대학교병원 국제교류팀 박미순 팀장과 서울대학교병원 홍보팀 최정식 팀장이 감사에 각각 선임됐다. 2021년 마지막 세미나에서는 ▲2022년도 트렌드 전망, 라이프트렌드에서 찾는 새로운 기회(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김용섭 소장) ▲헬스케어 메타버스의 현황과 미래 (중앙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김상윤 교수) ▲병원CEO PI를 고려한 홍보실전 TIP (가천대 길병원 홍보실 안명규 파트장) ▲홍보전문가의 말에 병원의 격과 결이 달라진다 (굿커뮤니케이션 박혜은 대표) 등의 강의가 이어졌다. 정기총회에서는 2021년도 올해의 홍보인 상과 더불어 사보 및 콘텐츠 대상, 그리고 공로상 시상식이 있었다. 올해의 홍보인 상은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홍보팀 이미종 팀장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인제대학교 백병원이 발행하는 '인제대학교 백병원보'가 올해의 사보 대상을,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홍보팀의 영상물이 올해의 콘텐츠 대상을 각각 받았다. 한 해 동안 협회발전에 크게 공헌한 회원에게 주어지는 공로상 주인공으로 명지병원 대외협력실 안광용 실장과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 홍보팀 고혜선 과장이 선정됐다. 이날 차기 회장으로 선임된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김휘윤 홍보팀장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쉽게 물러나지 않은 상황 협회를 대표하게 되어 더욱 커다란 책임을 느낀다. 협회가 병원 홍보인들의 업무 역량을 확충해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움을 추구해가는 ‘발전의 장’, 같은 영역에서 비슷한 업무를 진행하는 회원끼리 서로 즐겁게 교류하며 필요한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공감의 장’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 2021-12-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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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대 67개국 여행자' 신명숙 "늦은 나이란 없다"
- 서울에서 레코드숍을 운영하는 그녀는 작은 체구지만 단단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푸른 자연 속을 뛰놀면서 자란 그녀는 어릴 때부터 간직한 꿈이 있다. 바로 ‘지구별 여행자’가 되는 것. 그녀는 오늘도 레코드숍에서 세계 각국의 음악들을 들으며 음악의 본고장을 여행하는 꿈을 꾼다. 이는 어떤 영화의 스토리가 아닌, 도서 ‘여행을 수놓다’의 저자 신명숙 작가(68)의 이야기다. 신 작가는 ‘늦었다 싶을 때가 이르다’는 생각으로 60대의 나이에도 여행과 모험을 즐기고 있다. ‘오늘이 나의 가장 젊은 날’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신명숙 작가에게 받은 에너지를 시니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신명숙 작가는 2007년 50대에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해 67개국을 다녀왔지만, 아직도 갈 곳이 많이 남았고 힘닿는 데까지 여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군가는 편하게 크루즈, 패키지 여행을 즐겨야 할 나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왜?’라고 반문한다. 신 작가가 문학계에 이름을 올린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녀는 2016년 미래에셋 수필부문 공모에 당선됐고, 2018년 계간지 ‘주변인과 문학’ 수필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2018년 나온 여행 에세이 ‘지구본 위를 거닐다’, 2020년 나온 시집 ‘웅이와 라넌큘러스’가 있다. ‘여행을 수놓다’는 지난 8월 출간됐다. 담백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레코드숍, 그리고 여행 섬세한 글을 쓴 그녀가 여행 작가 이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했다. 실제 만난 신명숙 작가는 예상보다 더 호탕하고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역시 평범한 삶은 아니었다. 신 작가는 무려 23년간이나 레코드숍을 운영했고, 그러면서 늘 여행 준비를 해왔다고 밝혔다. “생각해보면 분명한 것은 레코드숍을 하면서 늘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었고, 새로운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의 본고장에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꾼 것 같아요. 힘들기도 했죠.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많이 쌓이고, 서울에서 분당을 왔다 갔다 하느라 매일 밤 12시에 집에 들어오곤 했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고 호황도 겪었지만, MP3가 나오고는 사양 산업이 되어 결국 가게를 정리했지요.” 2004년 레코드숍 문을 닫았다. 매일 바쁘게 일하던 사람이었기에 쉼표는 어색했다. 일상이 무료했고, 우울증 비슷한 것도 겪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가 되는 법. 신 작가는 기분 전환을 위해 성남문학원에 다녔고, 여행자의 삶도 시작됐다. 오랫동안 품었던 꿈에 가까워졌다. 첫 여행은 딸과 함께한 중국 패키지 여행이었다. 이후 몇 차례 패키지 여행을 경험한 뒤 신 작가는 여행의 참맛을 맛보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이에 2007년 패키지가 아닌 배낭여행을 결심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혼자 타국을 여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배낭여행 동아리에 가입했고, 사람들과 함께 인도 여행을 떠났다. 책 소개에도 적혀 있듯이, 이 인도 여행은 신명숙 작가가 여행자의 삶을 사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두 명씩 현지 가정에서 숙박 체험을 했어요. 저는 한 총각과 아잔타 석굴 뒤편에 있는 집에 가게 됐어요. 거기가 정말로 더러워요. 화장실 하나 없는 곳이더라고요. 제가 간 집은 애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곳 사람들 주식이 짜파티라고 부침개처럼 생긴 것에 달밧이라는 것을 앙금처럼 부어서 먹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그거를 한 일곱 식구가 7~8장을 놓고 먹는 거예요. 그 사람들한테 모자란 양인데, 거기서 또 한 장을 제게 주는 거예요. 사람이 이렇게도 사는구나, 충격을 많이 받았죠. 그리고 18세 아기 엄마가 있었는데, 내가 아이섀도 바르는 걸 그 큰 눈으로 쳐다보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쓰던 것을 줬더니 좋아하더라고요. 그때 저를 보던 눈빛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사람들이 인도에 갔다 오면 인생관이 바뀐다고 하던데 저도 그랬어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애들이 반찬을 남기면 ‘너네들은 인도 한 번씩 갔다 와야 해’라고 말했어요.” 이후 2008년부터는 남편과 함께 여행했다. 여행 동반자가 된 부부는 서로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여전히 금슬 좋은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은 과거 펜팔로 만난 사이라고. 신명숙 작가는 예전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그 기본에 연애편지와 일기가 있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한다. 일기는 지금도 매일 쓴다고. “제가 남편한테 같이 여행 다니자고 꼬셨죠.(웃음) 여행하면서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오는데 남편과 공감이 안 되는 거예요. 얼마나 서글퍼요. 그래서 제가 나이 들어 공감하면서 얘기할 수 있게 같이 여행 가자고 했죠. 2008년에 중국 장자제에 갔는데, 남편이 반한 거예요. 2009년에는 북인도에 갔고, 그렇게 주기적으로 1년에 두 번은 여행을 갔어요. 지금은 제가 우리를 ‘2인조 시니어 여행단’이라고 불러요. 저는 바람잡이, 남편은 행동대장이에요. 처음에는 제가 다 리드했거든요. 지금은 역전되어 남편이 어디 가자고 예약도 다 하기 때문에 전 신경도 안 써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웃음)” 발칸, 중동, 시베리아 여행을 수놓다 ‘여행을 수놓다’는 2017~2018년의 여행기다. 신명숙 작가는 책에 나온 순서와 반대로 발칸, 중동, 시베리아 순으로 여행을 했다. 책에 실린 여행지는 러시아, 발칸 지역의 루마니아,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코소보,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중동 지역의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그리고 그리스, 포르투갈이다. 책을 읽으면 신명숙 작가와 함께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가본 적 없는 곳이지만 설명을 읽다 보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이는 신 작가가 태블릿 PC에 여행의 순간순간을 기록했기에 가능했다. 그 메모들이 쌓여서 여행기가 됐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책으로까지 나왔다. 신명숙 작가는 ‘여행을 수놓다’가 천편일률적인 여행책과는 다르기를 바랐다.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느낀 것까지 쓰자면 아마 책 몇 권은 되겠지만, 그런 책들은 시중에 이미 많죠. 저는 그것들을 전부 배제하고 진솔하게 긴장된 부분을 이겨낸 후 제 자신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를 부각하려고 했고, 의도한 부분을 함께 여행하는 분위기로 공유했으면 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고 문학을 가까이하다 보니 말장난을 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 아닌 산문식으로 썼고, 차별화하려고 했어요.” 신명숙 작가는 여행지 중에 “발칸 지역의 알바니아, 마케도니아가 좋았다”고 회고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계획을 바꿔서 다른 곳을 가게 될 때가 있는데, 두 국가가 그랬다. 사전지식 없이 갔지만 좋았고 인상에 남는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특히 여행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책을 보면 신 작가도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도움도 받았다. 그 수많은 인연 중에서 신 작가는 알바니아에서 ‘저주받은 산’으로 통하는 세스산을 같이 트레킹한 사람이 제일 생각난다고 말했다. “스물네 살의 프랑스 아가씨인데, 처음에는 배낭 큰 거 메고 당당했거든요. 그런데 한산한 산장에 내리니까 기가 확 죽는 거예요. 혼자 무서우니 계속 우리한테 따라붙는 거죠. 그래서 트레킹을 같이 했는데, 그녀의 가방이 너무 크고 무거우니까 계속 가다 쉬고 가다 쉬고를 반복했죠. 겨울 산행은 빨리 올라가고 빨리 내려와야 위험하지 않아요. 그런데 놓고 갈 수도 없고, 정말 책에 표현한 대로 내버리고 싶더라고요. 그 아가씨 부모님이 의사예요. 우리나라 정서를 생각하면 돈이 많겠다 싶은데, 두 분이 공공기관 의사라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녀는 자립심을 키우고자 혼자 6개월 동안 여행을 하는 건데, 1달러에도 벌벌 떨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책에서 ‘깍쟁이’라고 표현했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배운 게 많아요.” 반대로 시베리아 여행은 예상보다 잔잔했다고 기억되는 듯하다. 시베리아 여행 후기는 횡단 열차 탑승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바이칼호를 보기 위해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72시간을 내리 기차 안에 있어야 한다. 때문에 책 내용 또한 기차 안과 밖의 풍경,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신명숙 작가는 기차처럼 달리고 싶었나 보다. 역시 에너지가 넘치는 신 작가다. 코로나19, 다시 열린 여행길 “1년에 두 번은 여행을 나가야 견딜 수 있었다”는 신명숙 작가.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막혀 답답했을 터. 그래도 남편과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캠핑을 즐기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단다. 또한 언젠가 다시 여행을 떠난다는 마음으로, 건강 유지를 위해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매일 등산을 포함한 운동을 1시간 이상 한 지도 30년이 됐다고 한다. 외국에서도 등산을 많이 해본 신 작가는 안나푸르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여행을 다녀온 67개국 중에서 가장 좋았던 나라를 묻자 어떻게 한 나라만 꼽을 수 있겠냐고 고심하더니 칠레라고 답한다. “칠레를 바람의 땅이라고 하는데, 호수가 정말 많다. 그런데 호수 빛이 다 다르고, 라마들이 능선에서 돌아다니는데 정말 아름답다.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 해외여행길이 다시 열리고 있기에, 그녀는 다음 목적지로 중앙아시아를 생각하고 있다. “내년에는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상반기에 안 되면 또 6개월을 기다려야겠죠. 중앙아시아, 그러니까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아제르바이잔 등을 가보고 싶어요. 아직 안 가보기도 했고요. 비행기로 5시간 내로 갈 수 있는 곳은 다 남겨뒀어요. 일부러 먼 곳만 갔죠. 중남미 쪽은 비행기만 20시간 넘게 걸려요. 하루라도 어릴 때 멀리 다녀온 거죠. 아, 유럽도 나중에 가도 될 것 같아서 일부러 남겨뒀어요. 노후에도 심심하면 여행을 가야 하잖아요. 지금까지 늘 해왔던 것처럼 건강 관리하고 여행을 가야죠.” 신명숙 작가는 여행 외에 글쟁이, 그리고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목표도 있다. 그것은 신 작가에게 ‘제2의 인생’ 희열을 느끼게 해준 손주들과 관련 있다. 손주들, 그러니까 두 딸의 자녀들은 각각 열 살, 일곱 살, 다섯 살이다. 신명숙 작가는 손주들이 태어날 때부터 기억에 남는 순간을 모두 기록해뒀다. 나중에 손주들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책을 만들어서 선물해줄 계획이다. 과거 바쁘게 사느라 엄마로서는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할머니로서는 다르고 싶은 마음이다. “저는 손주들을 정말 사랑하고, 그애들을 잘 데리고 다녀요. 이번 여름에도 제가 자진해서 수영장, 해수욕장에 데리고 다녔어요. 요즘 애들은 정서적으로 시골 이런 것에 너무 고갈되어 있어요. 우리 애들도 호텔이나 가려고 하니까, 그거를 제가 대신 해주는 거죠. 내가 시골에서 자라서 심성도 악하지 않고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손주들에 대해 쓰고 있는 것도 나중에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할머니의 흔적을 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 애들이 안 하니까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그리고 두 딸에게 속죄하는 마음도 있어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내 빈자리를 매정하게 다그치는 것이 바르게 세우는 것이라 믿었고, 엄마의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엄마가 곁에 없어 어릴 적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비가 온다’고 전화하면 ‘조금 더 기다렸다가 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뛰어서 가라’고 했던 말이 그렇게나 서운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요. 그래도 그런 흔들리는 날들이 쌓여 지금에 이르렀음을 두 딸에게 고백하는 마음도 전하고 싶어요.” 신명숙 작가 인생의 좌우명은 ‘리드하는 삶을 살자’다. 누군가한테 끌려가거나,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내 삶은 내가 키를 잡고 살자는 생각이다. 평생 활기차게 진취적으로 살아온 신 작가는 늦은 나이에 꿈 또한 실현하고 있다. 그녀는 인생에서 늦은 것은 없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자고 말한다. 그래서 오늘도 배낭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많은 시니어분들이 배낭여행을 못 떠나는 이유는 안정적인 현시점에서 탈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거예요. 굳이 배낭 메고 힘들게 가야 여행이냐, 패키지로 얼마든지 편하게 갈 수 있는데…. 그거에 갇혀서 못 나가는 거예요. 내 주위 사람들만 봐도 나를 부러워하면서도 오히려 패키지만 열심히 찾아다니더라고요. 제가 만든 말이 있어요. ‘삼잘’이라고.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고라는 뜻이에요. 너무 ‘삼잘’에 연연하지 말고, 여행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많은 시니어분들이 내 책을 보고 도전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2021-12-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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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와 중고판매 한 번에” 日서 대행서비스 등장
- 최근 일본에서는 고령층 사이에서도 중고거래 플랫폼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내에서 잘 알려진 ‘중고나라’나 ‘당근마켓’처럼 일본에서는 ‘메루카리’가 일본 최대의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손꼽힌다. 일본에서는 이런 중고거래를 플리마켓의 준말에서 딴 후리마라 부른다. 중장년 사이에서 메루카리의 인기는 매우 높다. 올 3월 메루카리 측이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60대 이상 사용자 수가 전년보다 1.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물품구입은 1.4배, 물품판매는 1.6배가 늘었을 정도다. 물론 고령자들의 이용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스마트폰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하고, 사진의 촬영이나 설명의 기재 등 중장년이 넘어야 할 허들은 당연히 존재한다. 때문에 메루카리의 경우 일본 노인의 날인 지난 9월 20일 일본의 ‘경로의 날’에 맞춰 고령자들이 중고거래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물품 세트를 무료로 배포하고, 고령자 대상의 온라인 교육도 진행했다. 늘어나는 고령 사용자들이 넘어야 할 벽을 조금이라도 낮추겠다는 노력이다. 이를 감안해 최근에는 집의 대청소와 중고물품 처분을 한꺼번에 돕는 대행서비스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이 상품은 스마트폰의 조작이 서툰 고령자 사이에서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의 모노 테크놀로지社는 지난 16일 자사의 중고거래 판매 대행서비스 ‘마카세루’와 가사대행 서비스 기업 베어즈社의 청소 서비스를 결합한 새로운 상품의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 업체는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외출이 줄고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집 청소나 개인 물건 정리에 대한 욕구가 높아져 이 상품을 개발하게 됐다”고 밝히고, “연말 대청소를 원하는 소비자가 많아 청소와 물품판매 대행을 결합한 상품을 한시적으로 발매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가격은 참여 인원과 정리 시간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돈으로 약 20~30만 원 선이다. 최근 일본 고령층 사이에서는 생전정리 문화인 ‘종활’과 맞물려 본인의 물품을 일찍 정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있어, 이러한 정리 대행서비스에 대한 인기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 2021-12-2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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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 설 필요 없다, 온라인 명품 플랫폼 호황
- 세상은 모든 게 빠르게 흘러간다. 자고 일어나면 유행이 바뀌어 있고, 며칠 전 신나게 쓰던 신조어는 한물간 취급을 받는다. 좁히려 해도 좁혀지지 않는 급격한 변화의 틈,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을 한눈에 파악하고 싶은 시니어를 위해 알다가도 모를 최신 문화를 파헤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소개한다. 온라인 명품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과거 오프라인에서 주로 거래됐던 명품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까지 확장돼 온라인 명품 거래 플랫폼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1년 출범한 머스트잇을 비롯해 발란, 캐치패션, 트렌비가 대표적이다. 거래액은 지난해 기준 각각 2500억 원, 1080억 원, 560억 원, 512억 원을 기록했다. 전체 명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작지만, 주 이용층인 MZ세대 외 다른 세대 유입도 예상돼 성장 가능성이 크다. 이에 각 사는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주지훈, 김혜수, 조인성, 김희애 등 유명 배우들을 CF 모델로 내세우며 경쟁하고 있다. 명품 거래의 장벽을 허물다 온라인 명품 플랫폼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플랫폼이 명품 거래의 장벽을 허물기 때문이다. 플랫폼을 이용하면 번거롭게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오프라인에서 명품 거래를 하려면 오픈런(개장 전 매장 앞에서 줄을 서다 문이 열리면 안으로 뛰어가는 것)을 거쳐야 한다. 길게 늘어진 줄에서 기다리다 매장에 입장해도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명품은 재고가 적고, 인기 많은 상품은 금방 팔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랫폼을 이용하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힘들게 매장에 들어가 구경조차 못 하고 허탕 치는 일은 없다. 온라인 명품 플랫폼을 이용하면 PC, 모바일 화면에서 여러 상품을 구경하고 손쉽게 비교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물리적 장벽뿐 아니라 심리적 장벽도 허물어진다. 명품은 비싸다. 구경은 자유지만 구매할 여력이 부족하다면 고가의 물건들이 즐비한 매장에 들어섰을 때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플랫폼에서라면 부담 없이 오프라인보다 더 많은 종류의 상품을 아이쇼핑할 수 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오프라인에서 실제 물건을 보는 기쁨이 있지만 전시돼 있는 물건만 봐야 한다”며 “온라인 플랫폼은 명품들을 화면에 펼쳐놓고 비교하면서 구경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명품 거래 호황의 중심은 MZ세대다. 온라인에 익숙한 MZ세대는 플랫폼에서 여러 상품의 가격을 비교해 합리적으로 소비한다. 구매에 그치는 게 아니다. 이들은 좋은 물건을 사서 거기에 웃돈을 얹어 파는, 이른바 ‘리셀’을 통해 수익을 내기도 한다. 명품을 단순 소비 대상으로만 여기는 게 아니라 투자 대상으로도 삼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가품 논란 온라인 명품 플랫폼의 이점은 MZ세대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중장년층도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면 합리적인 명품 거래를 할 수 있다. 다만 온라인 명품 거래를 하기 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적절한 플랫폼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최근 명품 거래 플랫폼에 가품 문제 등 소비자 피해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며 “플랫폼을 이용하기 전 각 플랫폼이 어떤 방식으로 명품을 수입하는지, 어떤 플랫폼에 소비자 신고가 많이 접수되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유통경로다. 최근 업계 후발주자인 캐치패션이 플랫폼들의 명품 유통경로에 문제를 제기했다. 캐치패션은 동종 업계 3사인 발란, 트렌비, 머스트잇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캐치패션은 3사가 해외 주요 명품 판매 채널과 정식 계약을 맺지 않았음에도 상품 정보를 사용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해외 공식 유통 플랫폼이 제작한 이미지와 상품 정보를 무단으로 사용해 명품 업체들과 정식 계약을 맺은 것처럼 표시했다는 것이다. 반면 3사는 계약을 맺은 것이 맞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유통경로가 확실하지 않으면 가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플랫폼별로 해외 명품 매장, 해외 온라인 플랫폼, 병행 수입 등을 활용해 물건을 들여오다 보니 유통 과정에서 가품이 섞일 우려가 있다. 이 교수는 “명품을 유통하는 방법이 혼재돼 있는 상황”이라며 “현실적으로 소비자 개인이 가품을 가려내기 어려우므로, 소비자들이 가품 걱정을 하지 않도록 자체 검수 과정을 강화하는 플랫폼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 2021-12-1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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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과 인의가 완성시킨 위스키 대부, 김일주 회장
- “Within the budget?” 짧은 한 문장이 갑자기 날아들었다. 영화 속 표현같이 비수 같았다. 깊숙이 새겨진 상처는 그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지만 제대로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주변의 키득거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표현으로는 “자리까지 돌아오는 길이 멀어 보이고 건물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평범했다면 나중에 술자리용 에피소드 정도로 여기며 초심자의 실수로 넘겼겠지만, 그의 자존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날의 기억은 그가 다국적 기업의 임원이 되고 기업 대표로 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 ‘한국 위스키 대부’라 불리는 사나이, 김일주(62) 드링크인터내셔널 회장의 이야기다. “외국인 부사장과 처음 독대하는 자리였어요. 해외파 직원의 도움까지 받은 품의서를 들고 결재를 받으러 갔는데 덜덜 떨었죠. 그 짧은 한마디를 못 알아들은 것이 얼마나 창피한지…. 자리에 돌아와서는 좀 진정하고 나서 회사 못 다니겠다고 뛰쳐나왔어요. 집같이 편안했던 영업부서로 보내달라고 떼를 썼죠. 하지만 상사들의 집요한 설득 끝에 마케팅 부서에 눌러앉았는데, 결과적으로 제게 큰 도움이 됐죠.” 김일주 회장이 두산씨그램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백화양조에 입사해 베리나인골드 영업을 맡았던 그는, 1986년 패스포트의 큰 인기를 등에 업고 백화양조를 인수한 두산씨그램에서 영업직 업무를 계속했다. 최우수 영업사원의 고난 당시 두산씨그램에서는 명칭마저 생소했던 ‘마케팅’ 부서를 만들고 유학파 사원으로 채워 넣었는데, 시작은 좋지 않았다. 현장과 동떨어진 아이디어가 먹힐 리 없었고, 한국 정서와도 맞지 않았다. 회사 입장에선 ‘최우수 영업사원 김일주’를 마케팅 부서에 배치하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고, 그때부터 그의 고난은 시작됐다. “매일 쏘다니던 사람이 앉아만 있으려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일부러 화장실도 들락거리고, 휴게실에 들러 줄담배를 피워댔죠. 그러다 적응되면서부터는 제대로 된 마케터가 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막 시작됐던 한국생산성본부 마케팅관리사 과정을 듣기도 했고, 우리 사회가 아직 마케팅에 대한 저변이 넓지 않아, 관련 서적 저자나 대학교수를 찾아다니면서 궁금한 것을 물어야 했어요. 당시 주요 기업 중 마케팅 부서가 있던 회사가 한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를 괴롭혔던 영어 역시 정복 대상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영어 학습 테이프는 있는 대로 사 모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민병철 생활영어’나 ‘잉글리시900’ 같은 것들을 닳도록 들었다. 집에 와서는 주한미군 방송인 AFKN만 틀어놓고 살았다. 아내의 불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먼저 영어가 들리는 것이 숙제였다. 그는 “그렇게 꼬박 6년 정도 했더니 조금씩 들리더라”고 말했다. 혁신을 즐기는 그의 성향은 영업사원 시절부터 드러난다. 주류업계에서 그가 남긴 영업과 관련한 일화는 후배들에게 신화이자 교과서가 됐다. 본사 직원이 대리점이 아닌 업소를 직접 방문하고 제품을 소개하는 일도 그가 만든 문화다. 업주들 입장에선 ‘메이커’ 직원이 직접 술을 나르는 모습이 생경할 수밖에 없었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는 큰 회사 직원이라는 신분 자체가 계급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대표적인 일화는 도매상의 가능성만 보고 부도를 막아준 것이다. 보증에 필요한 금액은 3000만 원. 이 정도 금액이면 당시 강남 아파트 전세를 얻고도 중형차 한 대를 살 수 있었다. 월셋방을 살던 영업사원에게는 엄청나게 큰 금액이었다. “친분 때문은 아니었어요. 탄탄한 영업망을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회만 부여받으면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죠. 큰 고객으로 성장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부도 직전에 몰렸던 그 사람은 6개월 만에 그 돈을 다 갚았어요. 그리고 그 지역에서 아직도 명성을 갖고 활동하는 도매상으로 자리 잡았어요. 지금도 안부를 물으며 만나는 사이로 지내고 있죠.” 혁신이 만들어준 수식어, ‘대부’ 그에게 ‘위스키 대부’라는 수식어를 안겨준 술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양주 ‘발렌타인’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여러 분야에서 자유화가 이뤄졌는데 수입 양주의 유통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만 해도 존재감이 없었던 발렌타인은 김일주 회장이 브랜드 매니저를 맡으면서 날개를 달았다. 아시아에서는 생소했던 브랜드 발렌타인은 한국 내에서 급성장해, 한때 전 세계 판매량의 대부분을 한국이 차지했을 정도였다. 17년산은 75%, 21년산은 85%, 30년산은 90%가 한국에서 팔렸다. 21년산의 경우 지나치게 부담 주지 않는 접대용 선물의 표준처럼 여겨졌다. 17년산 500ml는 한국만을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00년 2월 15일 진로발렌타인스라는 조인트벤처 기업이 탄생했고, 이 회사는 대표적 국산 양주 임페리얼까지 더하며 위스키 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됐다. 이 회사에서 김일주 회장은 외국인 사장과 부사장을 보좌하는 마케팅 임원을 맡았다. 김 회장의 손을 통해 명성을 얻은 또 다른 술로는 글렌피딕과 발베니가 있다. 2013년 외국계 회사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싱글 몰트 위스키 ‘글렌피딕’을 국내 1위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발베니가 업계에서 인기를 얻은 과정 역시 혁신에 대한 그의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당시 업소의 바텐더들이 위스키나 싱글 몰트에 대한 설익은 지식을 설파하는 것을 보고 그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발베니의 전설적인 몰트 마스터 데이비드 스튜어트와 함께 ‘발베니 마스터 클래스’를 만들었다. 처음엔 6명으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나중에 50명 넘는 바텐더들이 참여할 정도로 업계를 주목시켰다. 발베니의 지명도와 인기는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갔다. “사람 얻어야 세상 얻어” 김일주 회장이 진로발렌타인스 마케팅 임원으로 자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 회의에서 고성이 오갔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놓고 벌어진 대립이었다. 영어 욕설까지 난무했다. 당시 부사장이었던 데이비드 루카스와 견해차가 있어 거친 공방을 벌였다. 주제는 술의 입구에 장착해 혼입을 막는 장치 ‘키퍼’의 도입에 관한 것. 김 회장은 당시 가짜 양주가 판치던 주류업계의 악습을 깨고 임페리얼을 국내 1위로 올려놓기 위해 이 키퍼의 도입을 주장했고, 루카스 부사장은 비용을 이유로 반대했다. 일정 수량 이상의 판매량이 보장되어야 모험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였으니까 강하게 밀어붙였어요. 사장님은 결국 제 손을 들어주었죠. 하지만 진짜 문제는 얼마 안 가 벌어졌어요. 사장님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데이비드 루카스가 사장이 되었죠. 견원지간처럼 싸움을 벌였던 사이라 ‘회사를 나가야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제게 그러더라고요. ‘어떻게 변하면 나와 일을 하겠느냐’고 말이죠. 몇 가지 조언을 했더니 벌떡 일어나서는 ‘알았으니 네 말대로 당장 고객을 만나러 가자’고 하더군요. 그날로 저와 함께 전국을 돌아다녔고, 주류업계에서 푸른 눈의 영업사원은 유명세를 갖게 됐어요. 제가 루카스 사장을 존경하게 된 계기죠.” 루카스 사장과의 인연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김 회장이 설립한 드링크인터내셔널의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한번 맺은 인연은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바탕에 있고, 현 루카스 고문의 국제적인 감각은 신제품 개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또 다른 사례로 윤다훈 부회장이 있다. ‘세친구’의 주인공, 그 탤런트 윤다훈이 맞다. 현재는 드링크인터내셔널의 상근 부회장으로 다양한 마케팅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별도 소속사가 있지만,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회사로 출근한다. 김 회장과 그의 인연은 벌써 30년이 넘었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났죠. 당시는 무명 배우여서 얼굴이 알려지지 않을 때였습니다. 단역이라도 맡게 되면 술자리에서 대사를 하며 연습한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 열정을 보고 언젠가는 대성할 거라 생각했죠. 윤 부회장에게 감탄한 것은 스타가 되고 나서였습니다. 술자리에서 술값 계산을 못 하게 하니 종업원 한명 한명에게 봉투에 용돈을 주고 가더라고요. 그런 겸손한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다른 연예인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줬어요. 그 인성에 반해서 지금은 제가 놓지 않는 형제 같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소중히 하기 위해 ‘손해 보듯 살자’는 구절을 가훈처럼 여긴다. 스스로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대하면 화낼 일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 갑자기 청첩장을 전해도 시간 손해, 돈 손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응하는 식이다. 물질적 손해보다는 사람을 아끼는 데 노력한다는 그의 철학은 그가 거쳐온 인생의 주요 기점마다 빛을 발했다. “사람에 대해 노력하면 주변인들의 중심에 서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소한 손해가 선한 영향력으로 되돌아오는 거죠.”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회사의 상품 판매가 급감했을 때도 이러한 태도는 리더십이 됐다. 회사 내부에서 인원 감축이나 임금 삭감 등의 대책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는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충성심과 팀워크를 다지는 계기로 만들었다. 김 회장의 이런 태도는 단계적 일상회복을 통해 회사의 판로가 열리자마자 직원을 열성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자극제가 됐다. 그는 인생을 통해 얻은 경험들을 최근 한 편의 글로 정리했다. 손주에게 보내는 편지가 그것이다. “며느리가 손주 돌잔치 때 편지를 써서 읽어주시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뭐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지만,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인생의 중요한 부분들을 정리하고 나니까 제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정작 행사에서 낭독할 때는 눈물이 나서 혼났죠.(웃음)” 손주에게 전하는 건강의 중요성, 손해가 주는 기쁨, 노력의 필요성, 가족에 대한 사랑, 사내가 가져야 할 의리 등을 담은 글은 병풍으로 만들어져 집 안을 장식하고 있다. 손주에 대한 사랑을 담은 ‘가보’가 된 셈이다. 손주가 어른이 되었을 때 다시 읽을 수 있도록 하고픈 김 회장의 사랑이 담겨 있다. 포스트 코로나의 승부수 ‘골든블랑’ 그는 현재 또 다른 혁신을 준비 중이다. 바로 정통 샴페인 ‘골든블랑’이 그것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업계는 빠르게 변화했다. 혼술과 홈술이 늘면서 위스키 판매량은 줄고 와인이 대세가 됐다. MZ세대의 입맛은 가볍고 부담 적은 술을 원했다. 드링크인터내셔널도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남들처럼 적당한 제품을 수입해 적당히 판매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정통 샴페인이다. “스파클링 와인 중에서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생산된 것만 샴페인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행정구역처럼 아주 명확히 관리하죠. 그 외 지역에서 생산된 것은 크레망이라 부르는데, 크레망을 만들 수 있는 지역도 정해져 있습니다. 단순히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한국의 브랜드로 제조하고 싶었죠. 그래서 프랑스 볼레로 샴페인 하우스와 계약을 맺고, 프랑스 샴페인협회의 공식 라이선스를 얻어 골든블랑을 탄생시켰습니다.” 럭셔리 샴페인 골든블랑은 가장 크고 아름답게 빛나는 별을 의미한다. 번쩍이는 황금색 병은 김 회장만의 컬러 마케팅 감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브랜드 뮤즈로 선택했는데,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김 회장은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되면 페가수스는 붉은색 적토마가 됩니다. 이때 함께 ‘자! 달리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라며 웃었다. 골든블랑은 그가 시장에 내놓았던 많은 제품 중 그에게 가장 특별하다. 코로나19라는 업계의 ‘전쟁통’에 낳아 기른 자식인 셈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힘든 업계 상황보다 더 힘들 국민에게 골든블랑이 위로가 되기를 기대했다. “샴페인은 잘 알려진 것처럼 기쁠 때 마시는 술입니다. 지금 너무나 많은 분들이 코로나로 고통받고 있어요. 하루빨리 대유행이 종식돼 함께 잔을 들고 축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골든블랑으로 말이죠.”
- 2021-12-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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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 신예들의 무대 만들고파"
- 박혜영(61)은 에콜 노르말 음악원 피아노과 교수로 후배들을 양성하며 파리에서 활동했던 피아니스트다. 2019년 30년간의 파리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해 자양동에 터전을 잡았다. 공연장 ‘자양스테이션’을 운영하며, 클래식 음악 신예들과 남녀노소를 불문한 관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음악회를 열고 있다. 피아니스트 박혜영을 만나 클래식 음악의 가치와 매력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원래 그녀의 주 무대는 파리였다.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 피아노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며, 연주자협회인 파리뮤직포럼을 통해 조각, 무용 등 다방면의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그렇다면 어쩌다 자양동으로 터전을 옮기게 된 것일까? “연로하신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 가까이에서 내 연주를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파리 생활을 급하게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집과 음악 공간을 함께마련할 수 있는 장소를 고민하다 우연히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또한 파리뮤직포럼처럼 다방면의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공연을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각자의 이정표에 따라 많은 이들이 지나가는 곳인 스테이션(Station)처럼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이들에게 작은 콘서트의 큰 감동을 안겨드리고 싶었다. 낯설고 한적한 골목 어귀에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장면은 오래전부터 품었던 꿈이었다. 그 꿈과 어머니의 바람 덕분에 이곳이 탄생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란 ‘한파’가 공연계에 매섭게 불어닥쳤다. 예술의전당을 비롯한 대규모 공연장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소규모 공연장도 마찬가지일 터. “2019년에 문을 연 자양스테이션은 원래 살롱 음악회를 지향하는 공연장이었다. 공연을 엄숙하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미리 와서 음료도 마시고 다과를 즐기면서 공연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음악회였다. 공연이 끝난 후 연주자들과 와인 한잔 곁들이면서 얘기도 하고 파티도 즐기는, 그야말로 살롱을 지향하는 음악회를 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 벗고 대화를 나누거나 취식이 불가능해져서 너무나도 아쉽다.” 마담 드뷔시의 열린 귀 인생의 절반을 파리에서 지낸 그녀는 평범한 음악학도였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나와 벨기에 브뤼셀 왕립 음악원을 졸업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학생들을 가르쳤다. “당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연습을 병행했다. 덕분에 경제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무대에서 연주할 때 너무 부끄럽더라. 일정한 실력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일하다 보니 연습량이 모자랐다. 결국 연주에 만족하지 못했다.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실력을 쌓기 위해 파리로 향했다.” 그녀가 실력을 쌓기 위해 택한 곳은 파리의 에콜 노르말 음악원이었다. 이 학교는 연주자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한다. 실제로 학위를 수여받은 이들이 전문 연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온다. 그녀는 이곳에서 음악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다시금 배웠다. “음악가에게 필요한 재능은 열린 귀다. 에콜 노르말에서 그걸 배웠다. 스승님들은 자신의 울림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강조하셨다. 울림을 들을 줄 알아야 울림을 전할 수 있다. 이는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과정이라고 하셨다. 또 다른 스승은 작곡가 드뷔시였다. 여러 감정이 다채롭게 녹아 있는 그의 곡을 배우면서 울림을 듣고 표현하는 능력이 더 확장됐고, 음악을 더 사랑하게 됐다. 드뷔시 곡에 대한 나의 노력과 열정을 알아본 이들은 ‘마담 드뷔시’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장면을 선물하는 일 에콜 노르말에서 음악에 대한 마음가짐을 배웠고, 2009년에 세운 파리뮤직포럼을 통해서는 공연 기획자로의 도전을 시작했다. “마흔을 기점으로 많은 게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완벽한 연주를 통해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스트레스가 컸지만 성취욕도 컸다. 하지만 연주가 즐겁지 못했고 갈수록 중압감이 커졌다. 연습할 때의 외로움과 무대 위에 홀로 선 고독감, 그리고 무대에 쏟아지는 수백 개의 시선에서 비롯된 고통이 축적됐다. 그때부터 판에 박힌 연주를 ‘잘’하는 것보다, 한 명이라도 울릴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을 기획하고 싶었다. 공연 기획자로서의 첫 시작이 바로 파리뮤직포럼이었다. 이 포럼은 국적, 나이, 성별을 초월한 예술가들의 모임이었다. 당시 그림, 연극, 연주를 한 무대에 올리는 새로운 장르의 공연을 선보였다. 그 경험이 자양스테이션의 밑거름이 됐다.” 실제로 자양스테이션은 클래식 공연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인다. 영유아와 엄마가 함께 즐기는 ‘베베 콘서트’, 신인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살롱 음악회 ‘아티스트 라운지’ 등을 운영한다. 그녀는 무대에 오르기도 하지만, 이 모든 공연을 총괄하는 기획자다. “공연 기획자 겸 연주자로서 이곳에 온 모든 이에게 잊을 수 없는 장면을 선물하고 싶다. 가령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할 때는 바다에 일렁이는 달빛의 장면을 관객들에게 선율로 보여주고 싶다. 또한 무대에 선 신예들에게 관객들을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살아 있는 연주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얼마 전 오픈 리허설 때 근처 주민 네 분이 오셨는데, 공연을 보고 울다 가셨다. 곡에 담은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 것 같아서 나 역시 울컥하더라. 그 순간은 내게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맛있는 한 끼를 드리는 마음 그녀는 1인 3역을 소화 중이다.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주는 피아니스트, 관객의 발길을 이끄는 공연을 만드는 기획자, 살림을 책임지는 대표. 특히 대표로서의 고민이 존재했다. “무대 없는 신예의 서러움을 알기에, 연주자에게 대관료나 홍보비 등을 일절 받지 않는다. 실력과 열정 있는 후배들이 무대에 많이 설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 멤버십 등 다각도의 고민을 하고 있다. 또한 공연의 콘텐츠에 대한 고민도 있다. 관객의 발길을 끄는 대중성도 좋지만, 수준 높은 곡을 들려주고 싶은 맘도 크다. 그 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끝으로 클래식의 가치를 말하며 앞으로의 꿈을 밝혔다. “클래식은 세기를 넘어서도 존재하는 희로애락의 콘텐츠다. 사랑의 기쁨, 슬픔의 고통 등과 같은 감정을 오롯이 소리로써 전달한다. 반짝하고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세월 속에서도 고스란히 남아서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그 가치를 관객에게 아름답게 전달하는 것이 연주자의 의무라면, 그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는 게 관객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다. 클래식은 낯설어서 어려울 뿐이다. 노크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즐길 수 있다. 찾아오는 관객들에게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는 마음으로 클래식을 들려주고 싶다.” 그녀는 연주자로서 가장 기쁜 순간은 “진심이 통하는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곡을 연주하며 떠올리는 장면과 감정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해져, 같은 공간에서 같은 울림을 느낄 때 가장 감동적이라고 했다. 그것이 감동적인 이유는 내면 깊숙이 숨겨뒀던 진심의 장면을 서로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연장 인근 단골 식당의 사장님은 이 공연장의 VIP 관객이다. 그분은 “우리는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진심으로 서로의 가치를 이해했기에 가능한 말이다. 무릇 가치를 이해하는 일은 진심을 바탕으로 한다. 진심이 어려운 이유는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렵지만 노크해보고 싶은 일. 그게 클래식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자양동 골목에서 선율로 진심을 들려주고 있을 그녀를 응원하며 마친다.
- 2021-12-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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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크 착용해 눈 건조?" 안구건조증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안구건조증은 눈물 분비의 부족과 눈물 증발 등의 전통적 병인과 안구 표면의 염증, 눈물층 불균형 등의 요인으로 인해 생기는 복합적 질환이다. 인공누액 이외에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었던 과거와 달리, 2007년 안구 표면의 염증을 억제하고 눈물 분비를 증가시키는 치료제가 승인되면서 현재는 어느 안과를 방문하더라도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안구건조증이 노안의 병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두 증상 사이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설명한다. 안구건조증 혹은 건성안으로 불리우는 눈마름 증상은 시력 저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편감이 크고 유병률이 높아, 나이가 들어 수정체 탄성력이 줄어 조절력이 떨어진 노안 상태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 수는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길어지면서 안구건조증과 마스크 착용을 결부시키는 연구가 등장했다. 미국 건강 매체 ‘헬스닷컴’은 지난해 9월 유타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발표한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연구진은 여러 지역의 안과에서 정기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들 가운데 안구 건조증상이 현저히 증가하는 추세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마스크 윗부분으로 새는 날숨이 눈으로 직행해 눈물이 빠르게 증발하거나, 마스크가 눈꺼풀의 움직임을 방해해 정상적인 눈 깜박임을 막아 안구를 건조하게 만든다는 가설을 내세웠다. 실제로도 그럴까. 황형빈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안과 교수는 “마스크 착용과 안구건조증을 연결 짓기에는 인과관계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안구건조증의 원인으로 곧잘 언급되는 콘텍트렌즈 역시 원인과 결과로 결부하기엔 타당치 않다는 것. 중년 이후, 특히 여성에게 흔하게 발병하는 이유는 호르몬 불균형 때문이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불균형으로 보호 효과가 저하된다. 극히 일부의 경우 쇼그렌 증후군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으로 심한 안구건조증이 발병한다. 이에 황 교수는 “갱년기나 폐경 이후 심한 안구건조증이 나타난 경우 안과나 류마티스 내과를 내원해 진료를 받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건조해지는 겨울철, 건조한 안구를 관리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담배와 술을 멀리하고, 일상생활하며 일정 습도를 유지하거나 수면시간을 지키는 등 올바른 생활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면역체계가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 대표적 영양소 비타민D와 오메가3 지방산을 적절하게 섭취하는 것이 좋다. 황 교수는 “두 영양소는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자가면역질환 발생을 억제함으로서 안구건조증 예방 효과를 내기 때문에 중년 여성에게 특히 좋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별한 금기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의사와 상담 후 적절한 용량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 2021-11-30 1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