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주재하신 식사 모임
감독; 조지 틸만 주니어
주연; 바네사 윌리엄스, 이르마 피 홀
제작연도; 1997년
상영시간; 115분
흑인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영화로 가 빠질 수 없다. 할머니가 구심점이 된 삼대에 걸친 대가족 이야기. 여성의 희생과 헌신이 가정의 평안을 유지시킨다는 할머니의 교훈은 진부할지 모르지만 할머니의 딸들은
이 경숙
가난에서 조금 벗어나자 해외여행에 눈 뜨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출장으로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여자는 쉽지 않았다.
대학 동창들은 모일 때마다 조금씩 정기적으로 저금하기 시작했다. 물론 돈을 모으는 것도 시간이 걸렸지만, 남편들에게 미리 허락을 받기 위한 작업(?)도 필요했다.
그 시절 비행기가 익숙하지 않던 때라 일화가 많았다.
어느 목
그 여인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댓잎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를 들으면 불현듯 생각나는 여인이 있다. 고운 얼굴은 아니었어도 목소리는 청아했다. 필자가 자원입대한 공군 복무를 마치고 2학년에 복학했을 때 그녀는 3학년이었다. 나이는 필자가 네 살 위였다. 경상도 시골 태생이었던 필자는 서울 생활이 서툴기만 했다. 세련된 구석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허비되기 쉬운 건 청춘만은 아니다. 황혼의 나날도 허비되기 쉽다. 손에 쥔 게 많고 사교를 다채롭게 누리더라도, 남몰래 허망하고 외로운 게 도시생활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에 들어온 지식, 가슴에 채워진 지혜의 수효가 많아지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은하계를 덧없이 떠도는 한 점 먼지이지 않던가.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
조수경 ㈜글로벌아너스 대표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돈도 번다.’ 이보다 더 행복한 직업이 또 있을까? 앙코르 커리어에서는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취미를 통한 창직이야말로 자기에게 제일 잘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필자가 운영했던 연세대, 이화여대, 항공대 중장년 아카데미에서도 취미를
이맘때쯤이었다. 1962년 완도 앞바다의 햇살은 따뜻했다. 바닷가엔 조개껍데기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뱃머리에 선 소년은 이 정도 기온이면 다시는 추위에 떨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 안심했다. 당시만 해도 전라남도 완도에서 서울로 가려면 배를 두 번 타야 했고,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14세 소년은 멀고 긴 상경길이 걱정되지 않았다. 고향에는 다시
산이 그리웠던 사나이는 꽉 막힌 도시생활을 접고, 설악산이 바라다보이는 탁 트인 곳으로 떠났다. 자연과 벗삼으러 갔지만 행복도 잠시였다. 돈 되는 일에 목마른 인간의 욕심이 푸르른 숨통을 조여 왔다. 올무에 걸린 듯 이곳저곳 상처 난 설악산을 위해 사나이는 발길 닿는 대로 찾아가 세상에 알렸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의 소원대로 설악산에는 바라던 평화가 찾
마음자리 넓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남편은 여전히 불교 쪽, 아내는 기독교 쪽으로 기웃거린지 이제 몇 개월 남짓 되었다. 어떤 이 들은 한 집안에 종교가 난립한다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히려 공평하고 종교의 자유가 동등하게 있으니 차라리 평화가 깃들었다.
몇 달 전부터 필자는 전혀 상상치 못하던 일을 책임지게 되어 그
마치 부드럽게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그 강은 사람들이 쉬이 찾지 않는 산속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길을 내어 고고히 흘러가는 강이다. 한 시간 동안 윤석화와 인터뷰를 끝내고 든 느낌이다. 42년간 활동한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배우로서, 그리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늦깎이 엄마로서 그녀는 흐트러짐 없는 태도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과 그런 엄격함이 빚은 솔직
고향에 둥지를 틀고 주말부부로 생활한 지도 어느덧 6개월로 접어든다. 아직도 마음은 반반이다. 사실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만 달랑 보낸 시간은 불과 14년이지만 나머지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으니 어찌보면 내고향은 서울이라고 해도 잘못된 것은 없으련만 아직도 고향은 영종도라는 고정관념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마도 영원히 고향은 영종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