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함께하려고 남편과 혼인서약을 했고 언제까지나 함께하는 줄 알고 살았던 적이 있다. 신혼 무렵엔 남편이 출장만 가도 허전했고 하루만 지나도 보고 싶었다. 요즘처럼 봄꽃이 눈부실 때는 같이 봐야 하는데, 집안 모임에 같이 가야 하는데 하며 남편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창밖으로 아스라이 한 점 비행기가 날아갈 때면 그가 보고 싶어져 가슴이 저릿해지기도 했으니 내게도 분명 풋풋한 시절은 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든 한가할 틈 없도록 희로애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예기치 않은 변화무쌍한 일상들이 이어지고, 인간은 도전하듯 주어진 시간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런 날들 속에서 아이를 키워내고 일상에 치이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안달도 난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인 줄도 잘 알기에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살아간다.
필자는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면 혼자 해결해야 하는 소소한 일상들이 힘들고 불편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남편의 출장이 은근히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필자 옆에 있어야 세상이 돌아갔는데 이제는 달라진 것이다. 출장 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예뻐 보인다는 말에도 공감이 갔다.
그래도 출장을 떠나는 남편이 내게 주는 것이 자유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주부에게 진정한 자유란, 정신적 홀가분함과 함께 가사노동을 포함한 모든 일에서 풀려날 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이 떠난 후에도 자녀교육이 남아 있고 노동도 여전히 이어진다. 그럼에도 한결 가벼워진 기분은 어쩔 수 없다.
남편의 자리는 큰 만큼 부담스럽기도 했고 인내심도 필요했다. 인내심이 필요 없는 인간관계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물며 평생 한집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인내심보다 더한 마음을 내야 하리라.
남편의 부재가 확인되는 순간 쾌재를 지르며 샐러드 한 접시로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 친구를 만나 고궁도 거닐고 무뎌진 감성으로 밤늦도록 음악을 들으며 가슴 떨리는 시간도 가져본다.
그러나 필자가 꼭 해보고 싶은 것은 한없이 늘어져 있어보는 것이다.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온전히 혼자 있어보는 것. 다용도의 삶을 살아온 내 자신에게 심심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요즘도 난 심심함을 꿈꾼다. 이런 심리를 남편에게도 반영해본다. 출장을 떠나는 그의 마음에도 자유라는 생각이 스며 있을 것이다. 또는 필자와 아이들이 며칠 집을 비울 경우 남편도 혼자 있는 시간을 반길 것이다. 텅 빈 집에서 혼자 멍하니 창밖의 풍경을 쳐다보며 “아, 좋은 시간…” 할 것이다. TV 리모컨을 들고 야구 채널과 골프 채널을 돌려가며 보다가 출출해지면 달그락거리며 혼자 라면도 끓여 먹을 것이다.
부부란 몇 번쯤 서로 이런 시간을 꿈꾸다가 결국에는 상대를 그리워하는 존재가 아닐까. 손짓이나 눈빛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읽히는 사이. 함께 쌓아온 시간의 힘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익숙한 관계의 행복을 깨닫는 기회도 된다.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필요해져.”
어린 왕자가 말했듯이, 한 사람의 부재가 전하는 건 그 사람이 내게 큰 의미였음을 알게 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