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에 교보생명이 운영하는 광화문글판에 새로 게시된 시는 함민복 시인의 ‘마흔 번째 봄’입니다. ‘꽃 피기 전 봄 산처럼/꽃 핀 봄 산처럼/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이런 시입니다. 3월부터 5월 말까지 석 달 동안 봄과 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 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광화문글판은 언제나 시의 전문을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함민복의 시도 이게 다가 아닙니다. 전문은 이렇습니다. ‘꽃 피기 전 봄 산처럼/꽃 핀 봄 산처럼/꽃 지는 봄 산처럼/꽃 진 봄 산처럼/나도 누군가의 가슴/한번 울렁여 보았으면.’
광화문글판은 원문에서 두 행을 줄이고 ‘나도’와 ‘한번’도 뺀 것입니다. 봄철에 맞는 글을 올리다 보니 부득이 꽃이 지는 대목을 뺀 것이지만, 시의 전체 의미는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함민복의 시가 말하는 것은 꽃은 피기 전과 피었을 때는 물론, 질 때와 완전히 졌을 때 등 사계절 내내 사람을 울렁이게 한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이미 마흔의 나이입니다! 울렁이는 내용은 서로 다릅니다. 꽃이 피기 전에는 기다림과 설렘, 꽃이 피면 기쁨과 즐거움으로 울렁이지만 꽃이 지기 시작하면 애달픔과 안타까움, 꽃이 지고 나면 슬픔과 아쉬움을 느끼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니까 꽃은 피어 있든 이미 져버려 내 마음속에 있든 언제나 사람을 기쁘고 즐겁게 하고 설레게 하는 자연의 선물입니다. 봄이 오는 즈음에 나태주 시인은 ‘3월’이라는 시에서 ‘어차피 어차피/3월은 오는구나/오고야 마는구나//2월을 이기고/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돌아와 우리 앞에/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하략)라고 했습니다. 이성부 시인의 표현처럼 봄은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입니다.
봄은 꽃의 계절입니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꽃’이라는 글자는 그야말로 꽃 같습니다. 우리말에서 중요한 것은 산 달 별 물 해 글 술 말 길 밥 돈 책 눈 귀 손 낮 밤, 이렇게 다 한 글자로 돼 있는데 꽃은 그 모양까지도 꽃을 닮았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저마다 하나의 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광화문글판의 문구로 함민복의 시를 고른 교보생명 관계자는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성찰해 보고, 서로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관계를 만들어 보자는 뜻에서 선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시에 나오는 대로 사람을 분류하면 피기 전의 꽃인지, 핀 꽃인지, 아니면 지고 있는 꽃인지, 이미 져버린 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나는 누구에게 꽃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꽃 이야기를 하면서 김춘수를 빼놓을 수 없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김춘수의 꽃을 넘어서는 노래가 없을 만큼 이 시는 꽃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고 지배하고 흡수하고 거의 통일했습니다.
꽃이라면 김춘수입니다. 진달래꽃이라면 김소월, 국화라면 도연명과 서정주, 매화라면 이퇴계, 모란이라면 김영랑, 접시꽃이라면 도종환, 새라면 박남수, 해라면 박두진, 달이라면 이태백, 별이라면 윤동주, 청포도라면 이육사, 바위라면 유치환, 사슴이라면 노천명, 연탄재라면 안도현, 이렇게 빼어난 시인들은 저마다 하나의 사물과 자연을 시를 통해 오로지함으로써 우리의 감성과 인식을 풍부하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시인이 아니지만, 인간은 누구나 시인일 수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소논문 ‘작가와 몽상’(1908년)에 나오는 말처럼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시인이 숨어 있고 마지막 인간이 사라질 때 마지막 시인도 사라집니다. 칠레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하는 시를 썼습니다. 꽃이 피는 봄에는 이런 생각을 더 할 법합니다.
그러니 꽃이든 새든 별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나의 감성과 나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명한 시구를 암송하고 적절한 시·공간에 이를 활용하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체험과 언어로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팔순이 넘어서도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백세의 나이로 시집을 내는 것은 모두가 자신의 체험과 언어로 세상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나이로 죽은 시인을 깨워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함민복의 시에 나온 것처럼 어떤 일과 사물의 이면과 양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생과 사가 있듯이 꽃이 피면 지는 때가 있고, 해가 뜨면 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같은 비인 것 같아도 만물을 소생케 하는 봄철의 다스하고 부드러운 비가 있는가 하면 다 된 농작물을 망치는 차갑고 심술궂은 비도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를 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두 가지의 사이와 그 경계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몰연도가 불분명한 조선 중기의 문인 송한필(宋翰弼)의 ‘우음(偶吟)’이라는 시를 읽어 봅니다. 花開昨夜雨(화개작야우) 花落今朝風(화락금조풍) 可憐一春事(가련일춘사) 往來風雨中(왕래풍우중).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번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젯밤 내린 비에 꽃이 피더니/오늘 아침 바람에 떨어지네./가련하구나, 봄날의 일이여/비바람 속에 왔다가 가는구나.’
비와 바람 사이에서 꽃의 한 생명이 끝났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이를 표현한 앞의 두 행은 덧없는 인생을 비유한 명구로 꼽힙니다.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송한필은 아버지의 신사무옥(辛巳誣獄) 고변이 무고로 드러남에 따라 가족들이 모두 노비가 되었고 그의 행적도 묘연해진 인물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쓴 건지, 일종의 조짐으로 저도 모르게 이런 노래를 지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개화도 낙화도 알고 보면 모두 한순간의 일입니다. 김영랑이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말한 ‘찬란한 슬픔의 봄’인 것일까요.
이 꽃피는 계절에 조지훈의 낙화를 함께 읽습니다.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다가서다//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꽃 지는 그림자/뜰에 어리어//하이얀 미닫이가/우련 붉어라//묻혀서 사는 이의/고운 마음을//아는 이 있을까/저어하노니//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볼 것, 모든 사물과 일의 양면을 볼 것. 피어난 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다지게 됩니다. 낙화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개화를 볼 수 있어야만 꽃의 아름다움과 중요함이 더 커지고, 모든 것들이 나에게로 와서 새로 꽃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임철순(任喆淳)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 이사장.
※100세 시대. 그만큼 일하고 활동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나이도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런 시대에 발 맞춰 고령자의 위상과 역할이 재정립돼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고령자들이 품격 있게 자립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이다.
이미 고령화 사회는 지난 지 오래다. 15년 전인 2000년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7.2%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그 후 10년 만인 2010년에는 두 자릿 수인 11%로 늘어나면서 우리 국민 10명 중 1명꼴로 65세 이상 ‘법적 노인’이 됐다. 지금으로부터 4년 후인 2019년에는 7명 중 1명(14%)이 65세 이상이 된다.
이처럼 65세 이상 연령층이 총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가 코앞으로 성큼 다가오면서 고령사회를 총체적 차원에서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고령자 문제를 당사자가 아닌 고령자의 외부 시각으로 바라보기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고령자에 대한 이미지 개선과 삶의 질과 역할 향상을 위해 뜻을 모은 사람들이 있다. 의사부터 기자까지 전문직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다. 교육과 행사, 세미나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이다. 김일순(79) 회장, 이광영(78) 상임이사, 기세채(77) 감사, 변성식(62) 전문위원, 최진숙(67) 사무총장, 김예은(60) 상담실장 등 핵심 멤버 6명을 만나 골든에이지포럼에 대해 알아봤다.
Q. 골든에이지포럼을 설립한 취지는 무엇인가요?
A. 사실 골든에이지(Golden Age)라는 말은 시카고의 한 학회에서 발표한 ‘70~80대가 가장 행복한 연령대’라는 연구 결과에서 비롯됐습니다. 같은 시기, 미국의 한 심리학회에서도 똑같은 연구 결과가 나왔죠. 이러한 결과는 70~80대의 고령자들이 욕심과 걱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됐습니다. 모두 내려놓았다는 것이죠.
우리 골든에이지포럼의 설립은 여기에서 시작됐습니다. 이렇게 모두 내려놓고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죠. 아직까지 욕심과 걱정이 있는 분들이 아름답게 내려놓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내자는 취지에서 만들게 된 것입니다.
Q. 고령자 의식 변화를 위해 골든에이지포럼이 펼치는 행사는 무엇인가요?
우리 세대가 사회와 가정에서 생산적인 기여를 하기 위한 교육 행사를 중점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아랫세대들이 꺼내기 힘들어하고,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주제들을 우리가 먼저 털어놓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제는 아름다운 마무리(죽음)부터 치매, 사후세계의 이야기까지 고령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핵심은 ‘우리 세대가 주체적으로 살고, 아랫세대의 부담을 줄여줘야 존중받는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자립하자’는 것이죠.
Q. 아름다운 마무리와 치매에 대한 강의 내용이 궁금한데요.
처음에는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왜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여기에서 하느냐!”며 분을 참지 못하고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강의가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은 초창기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강의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치매는 당사자와 보호자 모두 힘든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 부담을 덜자고 교육합니다. 사실 치매 초기는 가정에서 생활할 수 있지만 중기 이상으로 증상이 발전하면 누군가가 옆에서 꼭 돌봐야만 합니다. 이런 경우에 돌보는 사람의 다수가 힘겹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집에서 돌보지 말고, 치매 요양원에 보내라고 강의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치매요양원에 부모님을 보내는 일이 불효라고 낙인 찍혀 있지만, 결코 그것은 불효가 아니라고 교육하면서 말입니다. 도덕적 규범에 얽매이지 말고 서로에게 좋은 길을 찾자는 것이죠.
이러한 교육을 감히 골든에이지포럼이 할 수 있는 이유는 구성원들 자체가 이미 그 나이가 됐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말과 금기시되는 행동들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공론화시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Q. 과거와 현재의 고령자 모습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과거에는 고령자의 위상과 위치는 절대적인 것이었죠. 경제적, 사회적 결정권과 더불어 가정에서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것이 고령자의 몫이었으니까요. 현재는 어떻습니까? 경제권은커녕 고령자의 위상이 중심에서 바깥으로 상당히 밀려나 있는 상태입니다. 예컨대 요즘 고령자들은 집에서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가정에서 눈치보다가 밖에 나가봐도 막상 할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골든에이지포럼에서는 고령자들의 위상과 위치를 재정립시키고자 합니다. 그 방법은 아랫세대를 강요하거나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교육받아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랫세대들에게 우리를 대우해 달라는 것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자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고령자들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0년 전까지만 해도 60세라는 나이는 환갑잔치를 열 만큼 대단한 나이로 여겨졌습니다. 현직에서 벗어나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지금 60세가 그렇다고 하면 콧방귀 뀌죠. 의학이 발달하고 수명이 그만큼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건강 기능도 함께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60세라는 나이는 그만큼 젊다는 뜻이고, 아직 사회에서 펄펄 날아다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의학이 이렇게 발달해서 아직 활동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은 아직 30년 전에 머물러 있어요. 고령자는 그저 병들고, 귀찮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 아랫세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 든 사람, 우리도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요?
Q. 교육 행사 외에 펼치는 사업이 있으신지요?
고령자의 생활에서 불편한 점을 완화해 주는 제품에 대한 제안을 기업에 하기도 합니다. 고령화될수록 신체적 변화는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고령자를 위한 구두를 구두 장인에게 제안해 상품화시키기도 했습니다. 미끄러지지 않고, 끈도 묶지 않으면서 가벼운 구두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고령자들을 위한 필수 영양소가 함유된 제품을 식품 회사에 제안하기도 했고, 실제 상품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 김일순 회장은?
1937년생인 김 회장은 연세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보건대학원 원장, 의료원 원장을 거치며 의료계를 빛냈다. 청진기를 놓은 이후에도 (사)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사)한국 금연운동협의회 명예회장, (재)연세대학교 재단 이사회 감사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이광영 상임이사는?
1938년생으로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국내 1호 과학기자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일보 과학부 차장, 특집부장, 특집과학부장, 부국장대우 생활과학부장을 거쳐 한국과학기자클럽 회장을 역임했다.
학생들은 3월에 한 학년씩 올라가거나 상급학교에 입학합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처럼 9월학기제를 도입하자는 논의와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봄의 들머리인 3월에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게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각급 학교의 졸업식이 열리고 교원을 비롯한 직장인들이 정년퇴직하는 2월을 보낸 다음에 맞는 달 아닙니까?
학년은 1년간의 학습과정 단위이며 수업하는 과목의 정도에 따라 1년을 단위로 구분한 학교교육의 단계입니다. 학년은 이렇게 단계의 개념인데, 학업을 쌓아온 햇수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학력(學歷)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노년에게 재산이란 인생에서 겪은 체험의 양”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살면서 배운 양, 공부한 양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학생들이 매년 한 학년 올라가듯 인생이라는 교실에서도 그렇게 차근차근 학년이 올라가 성취가 쌓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배움의 길은 끝이 없는데, 학교에서와 달리 인생이라는 교실엔 낙제나 유급은 있지만 추월과 월반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큰 어려움입니다. 수직 상승하는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돌고 돌면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을 이용하는 게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차장일 때 부장이 될 공부, 부사장일 때 사장이 될 공부, 교감일 때는 교장이 될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학교 공부든 직장 공부든 인생 공부든 공부는 한결같고 근면하게 해야 합니다.
공부는 배우는 일과 생각하는 일이 적절히 어우러져야 합니다. 논어에 나오는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입니다. 배우고 생각하며 생각하고 배우는 과정이 적절한 순환구조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상살이에서 망과 태는 늘 경계해야 할 위험요소입니다.
공부는 왜 하는 걸까?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것은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세상의 질서와 원리를 터득하기 위해서, 자연과 우주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 이를 통해 인격을 도야하고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일 테지요. 그래서 교과서로 배우고 선생님의 가르침을 좇아 각고면려(刻苦勉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공부에는 의지하고 기댈 만한 교과서가 없고 늘 잘못을 바로잡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선생님도 없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공부입니다.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문정희 시인의 작품 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모든 사물이 나를 가르치는 스승입니다.
글을 많이 읽고 모든 사물로부터 배우다 보면 지난 일에 대한 아쉬움과 뉘우침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삶이란 어쩌면 후회투성이인지도 모릅니다. 독일의 시인·작가 에리히 케스트너(1899~1974)는 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한 번/ 인생을 되풀이할 수 있다면/ 열여섯 살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 후의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입니다.
케스트너는 열여섯 살에 뭘 했던가? 그 시에 의하면 예쁜 꽃을 따서 책갈피에 끼워 말렸고, 학교로 가는 도중 빨강대문 파랑대문 앞에서 친구를 불렀고, 밤의 창가에 서서 별들을 헤아려봤고, 거짓말을 하는 상대에게 화를 내고 토라져서 닷새 동안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고, 밤늦은 공원에서 키스하고 싶어 할 때 얼굴을 돌리는 볼이 빨간 소녀와 산책을 했고, 문을 닫으려는 상점에 들어가 소녀와 나를 위해 2마르크 50페니히로 똑같은 가락지 두 개를 샀고, 곡마단 구경이 하고 싶어 엄마를 졸랐고, 처음 만져본 여자의 가슴이 너무 부드러워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게 오로지 케스트너만의 기억일까요? 정도 차는 있지만 우리 모두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에리히 케스트너는 이라는 시에서 ‘요람과 무덤 사이에는/고통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게 전문입니다. 1,2차 세계대전의 참담한 고통과 나치의 혹심한 탄압을 겪었으니 그렇게 말할 만합니다. 고통이 없었던 열여섯 살로 돌아가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연히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삶에는 월반과 추월이 없는 것처럼 음악의 도돌이표나 윷놀이 판의 ‘백(back)도’와 같은 과거 회귀 타임머신이 없습니다. 제자리에 머물거나 앞으로 나갈 수 있을 뿐입니다.
신문사의 편집국장과 주필까지 거친 분이 언젠가 술자리에서 “내가 지금 사회부장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 모르던 것, 안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밝게 보이고 사려와 분별도 나아져 그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석했던 다른 후배들은 ‘언제까지 혼자 다 해먹으려고?’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일 뿐이었습니다.
나이가 드는 것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선배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이지요. 후배들에게 교과서나 교복을 물려줄 때처럼 깨끗하고 깔끔하게 쓰고 넘겨주어야 좋습니다.
제대로 올바른 공부를 하고 그 공부를 충실하게 전수해 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맹자 이루(離婁) 하편에 ‘박학이상설지(博學而詳說之) 장이반설약야(將以反說約也)’라는 말이 나옵니다. 군자가 널리 배워서 상세하게 풀이하는 것은 (학식을 자랑하자는 게 아니라) 장차 되돌아가 요점을 알아듣게 설명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중국 속담에 “사독서 독사서 독서사(死讀書 讀死書 讀書死)”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단 세 글자로 만들어 낸 이 속담의 뜻은 “맹목적으로 공부하면서 쓸모없는 책을 읽으면 그런 공부 하나마나”라는 뜻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공부를 하랬더니 개잡이를 배웠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몇 학년 몇 반입니까? 63세는 6학년 3반, 75세는 7학년 5반이라고 부릅니다. 학교의 학년은 올라갈수록 졸업과 새로운 출발로 이어지지만 인생의 학년은 올라갈수록 생의 마감과 작별로 귀결되니 나이가 드는 것은 반갑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많아질 때 사람은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합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주겠습니까? 후배들이 본받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야 제대로 된 선배입니다. 어떻게, 유급 없이 한 학년 올라갈 준비가 끝났나요?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이사장,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월례 조찬 모임 백강포럼(회장 윤은기)에서 만난 조석준(趙錫俊) 전 기상청장은 포럼 진행뿐만 아니라 리스타트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백강포럼은 이른 아침에 하는 조찬 모임인데 200여 명씩 몰리며 문전성시를 이루는 등 학구열이 어느 모임 보다도 뜨거운 모습이다. 조 전 청장도 자기가 선택한 것을 자기만의 속도로 해나가는 ‘프리스타일’이라는 점에서 자신에게서 출발하는 공부를 한다. 그는 아침 조찬회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공부나 지식으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삶의 변화를 동반하는 상생의 지표를 찾고 있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기자 teinny@etoday.co.kr
최근 조 전 청장은 1년 동안 참석한 백강포럼 조찬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업의 그림을 그리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SNS 소셜미디어 시장에서 ‘메가시너지 아카데미’를 열어 보겠다는 야심찬 생각으로 기획하고 있다.
백강포럼은 일반 포럼이나 조찬회처럼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나 단순한 성공담을 전하는 차원의 강의 콘텐츠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몸담아 왔던 디지털과 방송 미디어 그리고 강연 콘텐츠를 융합하기에 충분했다.
조 전 청장이 기획하고 있는 ‘메가시너지 아카데미’는 개인이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체계화시켜 독창적인 콘텐츠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며, 아울러 융·복합과 협업적 방식으로 개인과 조직의 핵심역량과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속적 네트워킹을 지원한다는 방향성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메가시너지 프로강사 과정은 자신의 독창적인 콘텐츠(지식, 경험)을 다듬고 연마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또한 신개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전수하여 자신의 콘텐츠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킬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고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지향하고 있다.
프리스타일 공부로 얻은 ‘메가시너지 아카데미’
조 전 기상청장이 백강포럼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013년 발기인대회에서부터였다. 그때부터 백강포럼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조 전 청장은 2014년 말까지 10여 회의 조찬 모임을 진행했다. 어느 강의나 마찬가지겠지만 양질의 강사를 확보하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저희도 노력했죠. 사실 예전에는 이런 포럼이라고 하면 주로 지식 전달, 그때그때 유행하는 리더십으로 대개 콘텐츠가 이뤄졌어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50년이 넘는 성장의 배경에는 분야별로 많은 발전이 있었던 거죠. 그 내용을 살리는 게 백강포럼의 취지와도 부합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우리 사회 각 분야별로 존재하는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하여 보여주는 거죠. 물론 어두운 측면도 강연을 통해 알려 계층 간 소통을 원활히 하자는 겁니다. 상생과 협력으로 가자는 거죠.”
조 전 청장은 강의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함께 있어야 하며 그 둘이 함께 만나 콘텐츠 질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작년 말에 진행했던 손욱 행복나눔25 운동본부 이사장의 감사 나눔이 실제적인 혁신으로 이어져 성공했던 것도 그런 바탕이 있었다는 설명.
이제 강의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상생해야
“과거 지식인 사회에서 주류를 이뤘던 건 호흡이 긴 콘텐츠였는데, 이제는 짧고 핵심적인 정보를 다루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의 체질이 스피드와 핵심 축약을 선호해요. 사실 그런 기질이 한국의 압축적 발전의 원동력이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부분을 보다 구체화하여 정리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게 메가시너지 아카데미의 목적입니다.”
세상의 빠른 변화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개인이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더 단순명료화하여 브리핑하게 하는 것, 그리고 좋은 내용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과거에는 세상의 커뮤니케이션 주도가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변화가 빨라서 TV, SNS 등이 더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이제는 CEO가 ‘잘라내는(편집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CEO 밑의 사람들이 신문 스크랩 등을 해서 CEO에게 교육용으로 전달해줬는데 그건 이제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어떤 소식이 퍼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대미지(피해)도 오래 걸렸지만 요새는 두 시간만이면 전세계에 모두 퍼지고 데미지도 그만큼 빨리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이젠 어떤 조직이든 끊임없는 소통이 중요해진 세상입니다. 뭔가 잘못된 정보가 나왔을 때 ‘그건 아니다’라고 바로 말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는 거죠.”
손 안의 방송사,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 필요
강연들을 보면 대개 한 시간이나 두 시간 동안 이뤄지곤 했다. 그런데 요새는 나 처럼 15분짜리 강연이 나와서 호응을 얻고 있다.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렇게 강연이 짧아지는 추세가 점점 심플해지는 미디어의 발달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죠. 앞으로는 30, 40분 강의를 두 개쯤 배치하는 것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짧으면서도 임팩트 있는 구성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거죠.”
조 전 청장은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이 공유되어 사람들이 일정 수준 이상은 아는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신선한 강연 콘텐츠가 많지 않다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조 전 청장이 내용을 함축적으로 전달해주고자 하는 것도 강연만이 아닌 강연 후 토론을 통해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지게끔 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방송사에는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조찬회도 방송과 똑같이 그런 군더더기 없는 시나리오가 필요합니다. 일정한 수준의 편집 및 가공이 필요하다는 거죠.”
조 전 청장은 스마트폰이야말로 손 안의 방송사와 똑같다고 분석했다. 지금 시대는 촬영에서부터 송출까지 가능한 기기가 손 안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조 전 청장은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예로 들었다. 루게릭병 치료 홍보를 위해 시작된 아이스버킷 챌린지 캠페인은 일 년에 20억 원 정도이던 모금액을 한두 달만에 그 열 배인 100억 원 가까이 모으게끔 만들었다. 이는 전통적인 미디어가 못해내는 일을 SNS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1980년대 초였다면 KBS와 MBC만 있었어도 통치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SNS 채널이나 스마트폰이 있어 방송사를 갖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콘텐츠를 어떻게 정리하여 활용하느냐에서 판가름날 것입니다.”
그는 “은퇴를 앞두고 있는 신중년들은 스스로 전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쥐고 있는 한 줌을 지키려 애쓴다. 공부는 이런 통념을 깨고 자신을 바꾸는 과정”이라며 “강의 콘텐츠에 새로운 메커니즘을 구축해보겠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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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백강포럼
좋은 강의가 좋은 세상을 만든다
대한민국 백강포럼(회장 윤은기)은 좋은 강의를 통해 계층·세대·이념 간 갈등을 치유하고 우리나라가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보탬이 되고 있어 타 지식포럼의 귀감이 되고 있다.백강포럼은 사회
각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온 100명의 명사들이 강의를 통한 사회 공헌을 실천하기 위해 모였다.백강포럼(100인 강사 포럼)의 구성원은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을 비롯해 관료, 학자, 문화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100명의 강사는 좋은 강의가 사람을 변화시키고 이 사람들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기치 아래 강의를 통해 사회공헌을 하고자 한데 뭉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백강포럼은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회원 간 지식 공유하는 지적 커뮤니티를 지향하고 있다.
회원으로 박재갑 전 국립암센터 원장, 김신배 SK그룹 부회장,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 최광식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손욱 행복나눔125운동본부 이사장, 이희범 전 산자부 장관, 김은기 전 공군참모총장, 서규용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안종배 한세대 교수, 권대욱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대표, 김혜정 경희대혜정박물관 관장,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신각수 전 주일 대사, 김재우 한국치협회 회장, 성영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이영하 전 레바논 대사,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명동성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한미영 세계여성 발명기업인협회장 등 정치·산업·교육·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
백강포럼은 봉사 정신을 바탕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회원간 지식을 공유하는 지적 커뮤니티를 지향하고 있다. 재능기부 강의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특히 상업적 모임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는 모임으로 정치적 중립, 극단의 배제,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가치 창출, 융·복합적 소통 등이 백강포럼의 원칙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울 컨벤션 도심공항 3층에서 한달에 1회, 오전 7시부터 조찬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근대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푸시킨은 운문소설 에서 젊은 시절에 젊었던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늙은 시절에 늙은 사람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 젊은 나이에 젊은 것이며 늙은 나이에 늙은 것인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이와 삶의 단계에 대해서는 공자의 말이 유명합니다. 공자는 40이 불혹(不惑), 50이 지천명(知天命), 60이 이순(耳順), 70이 종심(從心)이라고 했습니다. 마흔이 되면 판단이 흐려지는 일이 없게 되고, 쉰이 되면 천명을 알며, 예순이 되면 생각하는 게 원만해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일흔이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사람들도 과연 그럴까요? 불혹이 아니라 다혹(多惑)이라고 해야 할 만큼 요즘의 마흔은 분별이 모자라고, 천명을 알기는커녕 천명의 존재 자체를 우습게 볼 만큼 요즘의 쉰은 여전히 역동적입니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옛사람들은 “마흔이 되면 매지근하고 쉰이 되면 쉬지근하다”는 말을 해왔습니다. 예순 일흔에 대해서는 그런 말도 없을 정도였고,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하듯이 일흔을 넘기는 것은 대단한 장수로 치부돼왔습니다.
지금은 생활환경이 나아지고 의료와 복지의 발달로 인해 평균수명이 늘어나 원래 나이에서 20%를 깎은 게 실제 나이라는 말도 합니다. 40세는 청춘의 노년, 50세는 노년의 청춘이라고 말하는 장수시대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50이 불혹, 60이 지천명이라고 해야 할 판입니다. 나이의 Norm(표준)과 틀이 없어지는 세상입니다.
칠순을 넘기면 신선이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고 말한 분도 있습니다. 서른은 가정과 사회에 모든 기반을 닦는다는 이립(而立)의 나이이지만 요즘 서른에 결혼하거나 취직해 삶의 기반을 닦는 젊은이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전통적인 나이의 규범에 따라 삶과 세상을 생각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루소는 에서 10세에는 과자, 20세엔 연인, 30세엔 쾌락, 40세엔 야심, 50세엔 탐욕을 좇는 게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60세 이후엔 뭘 추구하나요? 벤저민 프랭클린은 에서 20세에 중요한 것은 의지, 30세에 중요한 것은 기지, 40세에 중요한 것은 판단이라고 했는데, 50세 이후에는 뭐가 중요할까요?
영국 시인 에드워드 영(1683~1765)은 “나이 마흔에도 바보인 사람은 정말 바보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자는 “40, 50이 되도록 이름이 나지 않는 사람은 두려워할 게 없다”고 했습니다. “20세에 용모 수려하지 않고 30세에 건장하지 않고 40세에 부자가 안 되고 50세에 현명하지 않으면 평생 수려 건장 부자 현자가 될 수 없다”고 한 사람(영국 시인 조지 허버트 )도 있습니다. 83세까지 장수하면서 다방면으로 큰 업적을 남긴 괴테는 “무언가 큰일을 성취하려 한다면 나이를 먹어도 청년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자꾸 초조해집니다. 귀한 생을 받아 이 세상에 왔으니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거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떠나고 싶은데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꼭 오래 살아야만 이름을 남기는 건 아닐 것입니다.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는 겨우 24세로 죽었지만 그의 작품은 탄생 200년이 지난 지금도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역사상 유명한 천재들 중 요절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삶을 완성하고 갔습니다. 44세로 사망한 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20세에 취했고, 30세에 파멸했고, 40세에 죽었다.’고 노트에 썼습니다.
천재들은 예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릴케의 에 나오는 말처럼 ‘사람은 일생을 두고 가능하면 아주 오래오래 살아서 우선 꿀벌처럼 꿀과 의미를 모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최후에 가서는 아마 10행쯤 되는 좋은 시를 쓸 수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시는 감정이 아니라 사실은 경험인 것이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지고 진보하는 존재일까요? 판단력이 여물면 상상력은 시들어갑니다. 외적 아름다움과 내적 충실을 뜻하는 춘화추실(春華秋實)이라는 말이 있지만 봄의 꽃과 가을의 열매를 동시에 즐길 수는 없습니다. 영화 에서는 라라의 약혼자이자 러시아혁명 주체인 스트렐리니코프가 악덕 변호사 코마로프스키에게 “인간은 연령으로 진보하지 않는다”는 말을 합니다. 코라로프스키가 나이가 들면 관대해진다고 대답하자 스트렐리니코프는 다시 “자기 자신에게만 관대해지는 것”이라고 면박을 줍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자신에게만 관대해지고 꽉 막힌 외고집 벽창호가 된다면 그런 나이와 삶은 많고 길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대개 좋은 것, 유리한 것만 기억하려 합니다. 969세까지 살았다는 성경 속 인물 므두셀라의 이름에서 유래한 ‘므두셀라 증후군’은 지나간 일 중 좋았던 기억들만 남겨 청춘을 ‘좋았던 시절’로 치부해 버리는 성향을 뜻합니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자신의 가장 좋은 샷만 기억하거나 가장 좋았던 점수를 평소 실력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런 착각과 교만을 경계하면서 겸손과 배려의 나이를 쌓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92세로 타계한 핀란드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는 83세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최근에야 지상에서 내가 존재하는 시간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우리가 이사 왔을 때 정원의 나무는 아주 작았고,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이제 나무는 내 머리 위에서 나부끼면서 ‘당신은 곧 떠나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수백 년을 더 머물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기 때에는 앞으로 넘어지지만 철이 들면 뒤로 넘어진다고 합니다. 앞으로 넘어졌다가 똑바로 섰다가 뒤로 넘어지는 게 사람의 일생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이는 남이 알려줘야 자기 나이를 알지만 노년에 이른 사람은 힘겹도록 스스로 자기 나이를 압니다. 설날이 들어 있는 2월은 나이와 늙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되도록이면 똑바로 서서 의미 있는 삶을 완성해 가야 하겠습니다.
미국의 여성 시인 메이 스웬슨(May Swenson 1913~1989)의 ‘어떻게 늙을까’(How to be old)라는 시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젊기는 쉽지. 모두 젊어, 처음엔. 늙기는 쉽지 않아. 세월이 걸리지. 젊음은 주어지는 것, 늙음은 이루어지는 것, 늙기 위해선 세월에 섞을 마법을 만들어 내야 돼.’
그 마법을 찾아야 합니다.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이사장
광복 70년 분단 70년, 2015년은 기념비적인 해다. 감격과 환호 속에 태어난 해방둥이들이 칠순을 맞기까지 우리는 고난과 격동의 세월을 살아왔다. 한국의 70년은 외국의 170년, 아니 그 이상의 시기와 맞먹을지 모른다. 이 길고 험난했던 세월 동안 한국 사회와 문화는 어떻게 달라져 오늘에 이르렀으며 무엇이 시대의 화두였나. 앞으로 8월호까지 부문별로 나누어 7회 특집을 마련한다. 그 첫 순서는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분석하는 세대론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우리 사회의 선 자리와 갈 길에 대해 자연 생각해보게 된다. 광복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빼앗긴 주권의 회복이자 새로운 국민국가 건설의 출발점이었다.
'산업화→민주화→정보화의 이행'
하지만 우리를 기다린 것은 격동의 현대사였다. 미군정이 시작되고, 좌·우익의 갈등과 대립은 격화됐다. 냉전의 그늘이 짙어진 가운데 1948년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 선포됐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분단은 더욱 고착화됐다. 참으로 험난한 나라 세우기 과정이었다. 주권을 회복하고 독립국가를 성취했으되 통일은 미완의 과제로 남겨진 셈이었다.
나라 세우기에 부여된 두 과제는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세계시간 속에서 뒤처졌던 만큼 그것은 ‘추격산업화’와 ‘추격민주화’로 진행되었다. 추격산업화는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전략으로 나타났다. ‘선(先)성장 후(後)분배’ 논리야말로 추격산업화의 요체였다. 성장은 가파르게 이뤄지고 경제적 삶은 빠르게 향상됐다. 하지만 추격산업화의 정당성은 그 과정 안에서 고갈되기 시작했다. 1972년 10월유신은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정함으로써 군사권위주의의 등장을 가져왔다.
추격산업화의 기억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여전히 논란을 안고 있다. 대중의 다수는 향수를 갖고 있는 반면, 지식사회에서는 거부 경향이 두드러진다. 왜일까. 아마도 그것은 역사의 본질 가운데 하나인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중들이 현재의 곤궁(困窮)으로 인해 과거를 그리워해 왔다면, 지식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병행발전을 지지해온 것으로 보인다. 추격민주화는 추격산업화 안에서 배태됐다. 군부권위주의는 민주화를 일시적으로 지체시켰지만 역사는 이미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추격민주화를 주도한 주체는 사회운동이었다. 분출하는 사회운동들은 민주주의 제도를 요구하고 또 만들어냄으로써 서구민주주의를 단숨에 추격하고자 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통해 본격화된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는 대내적인 민주화와 대외적인 자주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추격민주화에도 그늘은 존재했다. 정치민주화는 이뤄졌지만 ‘거리의 민주주의’가 ‘제도의 민주주의’로 쉽게 전화되지 못했다. 경제민주화와 사회민주화 역시 미완의 과제였다. 지역주의가 강화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돼 온 것은 민주화 과정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민주화 과정이 잘못된 게 아니라 추격산업화의 조건에서 민주화를 성취하는 게 그만큼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추격민주화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게 정보사회였다. 정보기술이 단순한 도구적 차원을 넘어서 우리 삶과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정보사회는 경제·정치·문화에 큰 영향을 미쳐 왔다. 정보기술과 연관된 산업은 경제의 중추를 이뤘고, 새롭게 등장한 온라인 공론장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한 중심을 형성했다. 그리고 정보사회의 도래가 가져온 가상문화는 일상생활은 물론 문화 생산 및 소비양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세계화의 충격과 한 쌍을 이루는 정보사회의 도래는 양면적인 특성을 보여 왔다. 한편에서 정보사회는 개인적·사회적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왔다. 특히 스마트폰의 대중적 보급은 정주(定住)사회를 넘어서 유비쿼터스로 상징되는 유목사회의 도래를 현실화해 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정보사회는 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 정보 불평등, 인권 침해 등 새로운 사회문제들을 낳아 오기도 했다.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의 갈등
광복 70년의 이러한 ‘압축적 발전’에 대응하는 개념이 세대다. 세대가 갖는 사전적 의미는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대략 30년 정도의 기간을 말한다. 일반적인 용법으로는 같은 시대에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 전체를 의미한다.
후자의 의미를 특히 주목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앞서 말한 산업화시대, 민주화시대, 정보시대에 각기 대응하는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 ‘정보화세대’가 존재한다. 2015년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50대 중반 이상이 산업화세대라면, 3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는 민주화세대이며, 1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정보화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세 세대 가운데 뚜렷한 대비를 보인 것은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다. 산업화세대가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의 전환을 이끈 1960~70년대 산업화에 상당한 자부심을 보여왔다면, 민주화세대는 1980년대 중반 이후 학생운동·시민운동·노동운동을 통해 진행된 민주화에 드높은 자부심을 드러냈다.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의 추격산업화와 추격민주화가 비서구사회의 모범적인 사례였던 만큼 이러한 자부심들은 그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두 세대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했다.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나려 했던 산업화세대와 말의 자유 및 인권의 증진을 모색하려 했던 민주화세대 사이의 가치의 긴장 및 충돌은 우리 사회 변동의 또 다른 특징을 이뤄왔다. 우리 사회 세대갈등의 주축을 이뤄온 ‘6070세대 대 3040세대’ 간의 갈등은 ‘산업화세대 대 민주화세대’ 간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세대 간의 갈등이 가장 예각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은 정치다. 우리 정치의 가장 중요한 분수령을 이루는 대통령선거의 경우 언제부턴가 세대갈등은 지역갈등과 함께 선거의 향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 예를 들어, 2003년 노무현 정부의 등장은 민주화세대의 절대적인 지지에 힘입었으며, 2013년 박근혜 정부의 등장은 산업화세대의 지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흥미로운 세대는 5060세대와 3040세대의 사이에 놓인 50대다. 이들은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이들인데,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의 특징을 아울러 갖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현재 50대는 베이비붐 세대이자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적극 지지했던 이들이다. 이들 다수는 2002년 대선에서 진보적인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졌지만, 2012년 대선에서는 보수적인 박근혜 후보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50대는 ‘이중적 불안’ 속에 놓여 있다. 하나가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이 말한 직장으로부터의 ‘퇴출의 공포’라면, 다른 하나는 고령화에 따른 ‘노후생활의 공포’다. 이러한 불안의 일상화는 50대 다수로 하여금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이라는 정치적 구도보다는 어느 세력이 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는가의 정책적 구도를 중시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50대를 주목하는 까닭은 이 세대가 갖는 역할 때문이다. 그들의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생애를 돌아볼 때 50대는 6070세대와 3040세대 사이의 ‘낀 세대’이지만, 동시에 두 세대를 이을 수 있는 ‘가교 세대’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가교 세대로서의 특징은 이 세대로 하여금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 간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중재할 수 있는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정보화 ‘트라우마세대’에 주목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를 이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진행돼 왔다. 정보화세대라 명명할 수 있는 이 세대가 갖는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화의 충격과 정보사회의 도래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세대라는 점이다. 이들은 대체로 이념보다는 탈이념을 선호하고, 이성 못지않게 욕망을 중시하며, 무엇보다 정보혁명에 익숙한 세대다.
다른 하나는 1997년 외환위기로부터 직접적 영향을 받음으로써 물질적 가치와 탈물질적(post-materialist) 가치가 혼재하는 세대라는 점이다. 어느 나라이건 거시적으로 보면 물질적 가치에서 탈물질적 가치로의 변동이 이뤄져 왔고, 우리 사회의 경우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신세대’는 탈물질적 가치의 기수라 할만 했다.
하지만 자아실현을 중시하는 신세대의 탈물질적 가치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좌절됐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 양극화가 강화되고, 특히 청년실업이 본격화되면서 정보화세대는 경제적 상황으로부터 영향 받은 물질적 가치와 정보사회의 도래로부터 영향 받은 탈물질적 가치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정보화세대는, 이 시대를 규정짓는 ‘정보화’라는 말과는 달리, 개인적 생애에서 그렇게 행복한 세대는 아니다. 이들을 나는 ‘트라우마세대’라고 명명한 적이 있는데, 트라우마세대란 초·중·고교 시절에 외환위기를 맞아 부모의 실직 또는 부도를 직·간접으로 경험하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가중된 청년실업에 다시 대면해 있는 세대를 지칭한다. 이들을 트라우마세대라고 명명한 이유는 외환위기로 인한 개인적 경험의 기억이 이후 이들의 의식과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정보화세대인 트라우마세대에게는 민주화세대의 양대 축을 이뤄온 386세대, 신세대와 비교할 때 특히 두 가지 점이 주목된다. 첫째, 386세대의 상징이 민주화와 학생운동에, 신세대의 상징이 ‘네 멋대로 하라’의 자유주의적 문화에 있었다면, 트라우마세대의 상징은 세계화가 강제하는 무한경쟁과 청년실업에서 찾을 수 있다. 트라우마세대의 등장은 우리 사회가 민주화 시대를 넘어서 이제 정보시대와 세계화시대의 한가운데 놓여 있음을 증거한다.
둘째, 세대 내 양극화도 주목을 요하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세대라 하면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강조되지만, 정보화세대의 경우 세대 내 동질성과 이질성이 공존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물질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진 것이 동질성이라면, 세계화가 강제하는 무한경쟁은 이 세대를 승자 그룹과 패자 그룹으로 분화시키는 양극화를 낳아 오면서 세대 내 이질성을 강화시켜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세대 내 분화 및 양극화는 현실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유창한 영어, 경영 컨설턴트, 상층 문화 등이 승자 그룹의 아이콘들이라면, 어눌한 영어, 비정규직 노동자, B급 문화 등은 패자 그룹의 아이콘들이다. 앞선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와 달리 세대 내 동질성과 이질성이 뚜렷한 정보화세대는 탈이념적 성격이 두드러져 다른 세대와의 정치적 긴장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해와 공감의 세대공존을 향하여
어느 나라든 세대 간의 긴장과 갈등이 존재한다. 그 까닭은 세대에 따라 가치와 이익이 다르고, 또 일정한 연령 차이에 따른 사고와 정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세대긴장과 세대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어느 사회이건 매우 중요한 사회·문화적 과제다. 그렇다면 이런 세대갈등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계층갈등이나 지역갈등과 비교해서 세대갈등이 갖는 특징은 그 갈등의 양상이 예각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비록 서로 다른 세대라 하더라도 모두 가족의 구성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 이익의 충돌이 격렬한 형태로 나타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연령에 따른 가치의 차이가 가져오는 긴장과 충돌은 매우 분명한 형태로 존재하며, 이는 결국 세대간 소통을 가로막아 세대단절을 강화시켜왔다.
세대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특성을 주목해야 한다. 어느 세대건 자신에게 소중한 가치가 존재하는 법이다. 산업화가 가져온 물질적 풍요, 민주화가 제공한 인권의 신장, 정보사회가 요구하는 자유로운 세계시민 등은 모두 소중한 가치들이다. 이러한 가치들을 다원적 관점에서 승인하고 수용하는 것이 바로 세대갈등 해소와 세대공존의 출발점을 이룬다.
어떤 세대든 그늘이 존재한다, 특히 정보화세대는 앞선 세대들이 경험하지 못한 청년실업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을 경험하는 세대다. 서로 다른 세대가 경험한 시대와 그들이 놓인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면 세대간 소통은 활발해지고,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로서의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연세대 사회학과 및 동 대학원 졸,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박사, 미국 UCLA 방문연구원 역임.
현재 한국정치사회학회 부회장,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
주요 저서 : , 등
Bravo My Life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 B는 정체성과 장점을 말하는 Brand, M은 부의 원천이자 수단인 Money, L은 생활과 문화를 아우르는 Life입니다. 하지만 B는 삶의 균형을 꾀하는 Balance일 수 있고 M은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Manner일 수 있으며 L은 지켜야 할 원칙, 그리고 시(詩)를 뜻하는 Line일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이 칼럼은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는 글입니다.
2015년 을미년(乙未年), 양의 해입니다. 십간(十干) 중에서 갑과 을이 상징하는 색이 푸른색이고 미는 곧 양이니 갑오년 푸른 말의 해에 이어 을미년은 푸른 양의 해입니다. 갑오년은 청마의 해라고 불렀지만 청양은 왠지 좀 어색합니다.
두 갑자(120년) 전인 1895년의 우리나라는 망국의 비극으로 치달아 가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 을미년 4월 17일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더니 1주일 만에 동학혁명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이 처형됐고, 10월 8일에는 명성황후가 일제 순사와 낭인들에 의해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 경천동지할 비극을 겪을 일은 이제 없겠지만,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고 혼란과 격변의 상황인 것은 지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나라든 개인이든 슬기로운 목표 설정, 목표 달성을 위한 정밀한 설계, 그 설계를 현실화할 수 있는 추진력과 일관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런 점은 어느 해인들 다를 리 없습니다.
이제 새로운 1년과 장래의 삶을 위해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합니다. 푸른색은 성실·신앙·희망·믿음·신성함·책임 등을 상징하는 색이라니 신년 설계의 의미가 더욱 큽니다. 푸르다는 단어가 들어간 말은 청사(靑史), 청사진, 청산(靑山), 청신호, 청운의 꿈, 청춘 등 모두 뜻이 좋습니다. 서울교대의 정문 이름은 청출어람(靑出於藍)에서 따온 청람문입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청출어람에도 이렇게 靑(푸를 청)이 들어 있습니다.
羊(양 양)이라는 한자는 상서롭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글자가 들어간 말은 대부분 뜻이 좋습니다. 美(아름다울 미)는 양이 크다는 글자입니다. 祥(상서로울 상), 善(착할 선) 敾(글 잘 쓸 선) 膳(반찬 선) 繕(기울 선) 犧牲(희생), 이렇게 羊은 여러 단어에 들어 있습니다. 특히 羊과 我(나 아)로 이루어진 義(옳을 의)는 1)양(재화)이 나에게(모든 이에게) 고루 나눠져야 도리이며 사회정의라는 뜻 2)양을 남들에게 먼저 먹게 하고 나는 나중에 먹는 게 도리라는 뜻, 이 두 가지로 풀이됩니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양의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다거나 망양보뢰(亡羊補牢),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친다거나 다기망양(多岐亡羊), 길이 너무 많아 잃은 양을 찾기 어렵다는 말은 강조하려는 메시지가 각각 다르지만 재산과 양식으로서의 양의 중요성을 잘 알려줍니다. 을미년에 잊지 말아야 할 사자성어들입니다.
이제 설계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設(설)은 베풀다, 도모하다, 일을 벌이다, 세우다, 計(계)는 셈하다, 계산하다, 헤아리다 이런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計가 없는 設은 공허하며 設이 없는 計는 무의미합니다. 건축을 예로 들면 건축주로부터 여러 조건을 의뢰받아 설계가 시작됩니다. 건축설계 과정은 일반적으로 기획설계, 계획설계, 기본설계, 실시설계, 설계감리로 나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의 설계를 의뢰한 건축주가 나 자신이며 설계자도 나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건축주의 요구와 설계자의 능력은 내가 가장 잘 압니다. 내 삶의 건축설계 감리자도 당연히 나 자신입니다.
사람은 일이관지(一以貫之) 수구초심(首丘初心) 초심일관(初心一貫), 처음 먹은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감리하고 시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장자’에는 공자가 60세가 되기까지 60번이나 생각을 고쳤다고 씌어 있습니다. 정확하고 종합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걸맞은 설계를 하여 일관성 있게 추진하되 수시로 점검 수정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1월이라는 영어의 January는 야누스라는 로마 신의 이름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야누스는 앞도 보고 뒤도 보면서 성곽과 문을 지키는 두 얼굴의 신입니다. 하지만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이중인격자는 아니며 같은 얼굴로 과거와 미래, 또는 출입문의 안팎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1월은 그렇게 지난해를 돌아보고 앞날을 보며 설계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알면 알수록 그 지혜가 놀라운 인디언들은 1월을 어떻게 불렀을까? 그들은 정말 시인입니다. 여러 부족의 말 중에서 눈에 띄는 걸 꼽아 봅니다.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 눈이 천막 안으로 휘몰아치는 달,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뚝뚝 부러지는 달,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 바람 속 영혼들처럼 눈이 흩날리는 달, 해에게 눈 녹일 힘이 없는 달, 짐승들이 살 빠지는 달입니다. 그리고 1월은 ‘인사하는 달’입니다.
일본에서는 1월을 무츠키(睦月), 서로 왕래하며 화목하게 사는 달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1월 7일은 진지츠(人日), 이른바 사람의 날입니다. 일곱 가지 새싹을 넣은 죽에 따뜻한 맑은 장국 ‘스이모노(吸物)’를 먹으며 1년간의 무병건강을 기원하는 날입니다. 1월 1일이 로마교황청이 정한 세계 평화의 날인 것도 1월의 의미를 살리려는 취지일 것입니다(이와 별도로 유엔이 정한 세계 평화의 날은 9월 21일).
서양 사람들은 해가 바뀌면 ‘New Year's resolution’을 정리합니다. 새해 설계라는 뜻이지요. 결단, 굳은 다짐을 뜻하는 resolution은 해결하다, 결심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resolve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결심을 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지키겠다는 다짐까지 하는 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새해 결심이나 설계는 그다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결심을 하는 사람이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목표에 도달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一生之計在於幼(일생지계재어유) 一日之計在於晨(일일지계재어신) 一年之計在於春(일년지계재어춘)이라고 합니다.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 세우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세우며 1년의 계획은 봄에 세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공자가 말했다는 삼계(三計)인데,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게 없고,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 할 일이 없고, 봄에 밭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거둘) 게 없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1월은 나이로 보면 어릴 때이고 시간으로는 새벽이며 계절의 시작으로는 봄입니다. 羊과 我의 조합인 義에 담긴 양보와 배려의 메시지를 잊지 않으면서 의미 있고 현실적인 설계를 꼼꼼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복 많이 지으십시오.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한국1인가구연합이사장
해외 CEO들이 우리나라에 올 때마다 놀라는 장면들이 있다. 바로 아침 7시 부터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하는 게 일종의 문화가 된 한국 경영자들의 모습이다. 단순히 인맥을 쌓는 게 아닌, 800~900여 명의 경영자들이 모여서 열띤 배움을 추구하는 모습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과 같은 세계적 CEO들에게도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은 바 있다. 세계미래포럼(이사장 이영탁) 조찬회에서 만난 두 모자(母子)의 모습도 그런 강렬한 아우라가 있었다. 앞 좌석에 앉아 강연에 귀 기울이며 바쁘게 메모를 하는 그 모습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어떤 동기가 있는 것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상이 비범해 보이는, 보통 할머니 같지 않은 느낌. 1960년생인 아들과 함께 세계미래포럼 조찬회에 참석한 1938년 생 이득해 씨는 첫눈에도 보통이 아니라는 인상을 줬다. 그 인상처럼, 그녀는 범상치 않은 삶을 갖고 있었다.
“부산에서 태어나서 대학은 서울에서 나왔어요. 법을 공부했는데, 친구들은 전교 1, 2등 하던 내가 판사나 검사가 안 된 것에 대해 의구심이 많아요. 동생들 키우느라 그랬죠. 그런데 내 자식들은 내가 법 공부 계속했으면 시집도 안 가고 일하다가 정의를 위해 싸우는 투쟁가가 됐을 거라고, 하나님이 도운 거라고 해요.”
자신감, 몰입과 고지식함, 그리고 승부욕. 그녀도 인정하는 자신의 특징이었다.
“어떤 직업을 해도 내 적성에 맞아요. 수학학원, 레스토랑… 한솥도시락은 전국에 200개 체인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1, 2등을 했었죠.”
몰입·강직·승부욕으로 인생을 경영하다
그녀는 현재 광고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한다. 4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은 물수건을 단체에 공급하는 사업을 했었다. 말하자면 부부가 함께 경영자였던 셈이다.
“남편 집안이 잘 살았던 건 아니고, 저와 같이 맨땅에 일군 거예요. 애초에 결혼할 때 양쪽 집에서 굉장히 반대가 심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보내기 싫었고, 시댁에서는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아주 싫어했어요. 좀 내가 키도 작았고…. 이해돼요. 그런데 막상 결혼하니 내가 시어머니한테 잘못한 적 없고 시어머니도 나에게 대놓고 뭐라 하신 적 없어요. 하긴 야단을 쳐도 내가 뭐를 모르니까. 그냥 칠푼이같이 해맑았던 거죠.”
독실한 크리스찬으로서 그녀는 네팔에서 선교사업과 함께 교회를 짓고 있다. 힌두교 쪽에서 작업을 저지해서 힘들지만 내년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4년 전에는 네팔 아이 세 명을 한국에 데려와서 공부시켰어요. 중학교 아이를 고등학교에 보내고 세 명 다 대학도 보냈어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간 아이가 있는데, 걔는 자기 나라 가면대통령도 할 수 있겠죠. 그 아이들을 무섭게 키웠죠. 내 아이처럼. 그래서인지 엄마라고 불러요.”(웃음)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자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공부는 할수록 나를 발견하는 일이죠. 공부는 하고 싶은 게 아니고, 해야할 거예요.” 그녀는 앞으로 배우고 싶은 분야로 미래가 들어가는 미래 지향적인 학문이나 건강 관련 분야를 꼽았다. 나이가 80이 다 되어 가는데 공부를 하다보면 피곤하지 않을까?
“피곤해도 공부할 땐 몰라요. 졸면서도 재밌고. 뭐 존 적은 없는데, 내가 피곤해도 새벽부터 내내 공부하니까.”
공부는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삶의 동력원이었다. 평생교육, 경영자과정, 일본어, 네팔어, 영어 등등, 그녀의 지적 욕구는 끝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그런 기질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제 어머니가 동생들이 많아서, 동생을 업고 학교를 갔다고 해요. 가서는 당시에 문도 없던 교실의 밖에서 안을 쳐다보면서 공부하셨다고. 그리고 동네에 간이역이 있는데 거기에 앉아서 사람들이 시계를 보고 ‘몇 시 몇 분이네’ 하면 그걸 보고 시계 보는 법을 익히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가 일제 때여서 어머니가 일본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다보니까 너무 잘하게 돼서 일본 부대에서 통역을 맡았었어요. 거기에 저를 항상 데리고 다니셨죠. 그때 부대에 가면 먹을 게 많으니까 이것저것 주는데 저는 누가 주는 건 안 먹고 어머니가 손에 쥐어주는 것만 먹었대요. 지금도 좀 그런 성격이 있긴 합니다.
너무 가난하니까 어머니가 올 때 통에 짬밥을 한 동이 이고 오시는데, 그 속엔 먹던 군인들 침도 들어 있고 코도 있었지만 그냥 끓여서 먹었어요. 근데 내가 그걸 먹을 수 있겠어요? 그걸 봤는데…. 못 먹으니까 난 안 먹었고 그래서 키가 안 자란 거 같아요.”
그녀는 자신의 교육비를 한 달에 백만 원을 쓰고 있단다. 많이 들 땐 300만 원도 드는데, 연평균 1200만~1500만 원 가량이라고,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게 교육비,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문화비, 경조사비 순. 한 달 용돈은 10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배움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후회 없는 삶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돌이킬 때, 이런 삶을 살았다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되는 점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은 없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라 그러면 싫어요. 지금이 좋다기보다는 그렇게 살아올 자신이 없어요. 너무 힘들게 살아왔고, 그렇게 가난했고, 하지만 그래도 한 번도 부잣집 아이를 부러워했다거나 하진 않았어요. 내 공부하고 내가 하는 것들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는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 3남2녀 자식들에게 얘기한다고 한다.
“‘차선만 다해라, 최선을 다하면 사람이 간다’라고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말이 돼버리는 거 같아요. 그보다 저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을 믿거든요. 그걸 위한 차선입니다.”
당신이 이제 막 인생 후반전에 도착했다고 상상해보자. 나름 모든 준비는 끝마쳤다. 은퇴를 대비해 자산은 확보했고 자식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으며 즐길 수 있는 취미와 친구들도 갖춰졌다. 이제 삶을 즐기기만 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잠깐, 도리어 당신이 착실하게 준비했다고 결론 내린 것들로 인해 당신의 나머지삶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는지? 그럴 리 없다고? 전문가들은 그럴수 있다고 말한다.
생애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계획을 세운 다음에는 실현시킬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인프라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재무, 승계, 관계, 일, 보람, 건강이다. 인생 후반전을 좌우하는 6대 키워드를 차근차근 파헤쳐본다.
도움말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대표,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가나다순)
10억대 이상 자산가라면 “부동산 팔아 금융자산 만들어라”
대한민국 1% 부자도 인생 후반전 재무 리스크를 벗어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자산가들은 돈 버는 데 온 힘을 쏟으면서 쓰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60세가 됐을 때 번 돈이 모자란다면 거기에 맞춰 사는 것을 배워야 하고 부자라면 아름답게 쓰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남들 눈을 신경 쓰다 무리한 길에 발을 들여놓는 이들의 불행한 사연은 볼 때마다 안타깝다.
목돈이 있는 사람들은 은퇴 연령이 점점 빨라지고 있는 데다 저금리 시대에 투자처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 질문들에 대해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 대표는 부동산 자산을 서서히 줄이고 금융 자산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2014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 부자의 총자산 구성비를 살펴보면 △부동산 자산 54.1% △금융 자산 39.6% △기타 자산(예술품·회원권 등) 6.3% 등인 것으로 나타나 부동산 비중이 높았다. 이러한 자산의 부동산 쏠림현상은 고도 경제성장기와는 달리 ‘부동산 불패 신화’가 끝난 지금은 잠재적인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노후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소득의 기회가 줄어들 뿐더러 노후자금 및 의료비용 지출이 늘어나게 돼 결국 부동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매물화 되는 부동산은 부동산 가격시장에 악순환을 몰고 올 수 있다.
이상건 미래에셋 상무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금융자산 비중이 줄어드는 현실과는 반대로 노후
생활에 적합한 금융자산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적절한 가계자산 정책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식이 가업 승계할 자질이 되는지 냉정히 판단해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로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였으며 의 저자로 역사에 남게 된 성군이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황제이자 친아들이었던 콤모두스는 잔인한 폭정, 무능함으로 문제만 일으키다가 결국 암살당한다.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업적만을 남긴 아들은 이후 전개되기 시작한 로마의 멸망을 열어젖힌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내가 세운 집안의 미래를 자녀가 완전히 보장해주진 않는다는 건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입증된 얘기다. 이상건 상무는 노후에 도달하면 가업을 자식에게 승계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으로 매각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식에게 승계할 경우에는 가업에 대한 보람이나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 그러나 자식의 자질이 부족하면 전문경영인을 두거나 매각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수십 년을 일군 사업을 자식이 한순간에 망쳐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가업 승계의 경우 아들 가운데 물려줄 인재가 없다고 판단되면 딸을 매개로 데릴사위를 들여 가업을 물려주기도 한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면 장기적으로 매각 계획을 세워 정리 작업에 서서히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부부와 자녀 관계 모두 새롭게 바라보라
한국영화의 거장 박찬욱 감독이 “좋아 죽겠다”고 극찬한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는 바로 2002년에 나온 박진표 감독의 . 70대 노인들의 사랑을 직설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나이와 노골적인 묘사로 인해 화제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영화에 비난을 퍼부었던 이들은 ‘다 늙어서 노인들이 추잡하게 논다’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그러니까 그런 비난을 하던 이들도 나이가 들면서) 영화의 가치는 재평가 받았다. 이러한 재평가는 시대가 노후 행복을 보다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건강한 부부관계는 노후 행복의 지름길이다.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 자녀 양육 이후 부부만 남게 되는 시기도 길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친밀감과 화목함을 키워주는 부부간 성생활이 더욱 중요해지기도 한다. 은퇴 후 자식들을 출가시키고도 부부가 최소 30년 이상 함께 붙어 살아가야 하는 까닭이다.
특히 남자가 은퇴하면 집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 다툴 여지가 많아질 수 있다. 남자들은 그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아내와 외식도 하고 여행도 하며 오순도순 느긋한 노후를 보낼 거라 기대하지만 그것도 딱 한 달이다.
나이가 든 아내들은 이러저런 취미활동을 하느라 예전처럼 남편을 돌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는 친구를 찾고 남편은 아내랑 함께 하길 원한다. 이런 경우 아내는 남편이 재취업이나 창업으로 새로운 제2의 인생을 걸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내조해야 한다. 지금껏 가장으로서 경제를 책임지기 위해 평생을 바친 만큼 남편 인생 이모작을 위한 좋은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남자도 집에서 아내에게 기대려고 하기 보다 평생 현역으로 산다는 마음으로 온전한 자신을 위해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녀 관계도 만만치 않다. 요즘 같은 저성장시대에는 그만큼 청년층의 성공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식들이 성공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결핍의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부부가 소신을 갖고 자식 교육에 나서야 한다. 예컨대 경제적으로 무리해서 외국 MBA코스에 무작정 보낸다거나 억대에 이르는 결혼 자금을 무턱대고 지원해줘서는 안 된다. 자칫 젊은이들이 냉혹한 이 사회에서 물러터진 자세로 경쟁력을 잃어 도태될 수도 있다.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은 신중년들은 미혼자녀와 대화 시간이 짧고, 성인자녀와의 교류빈도도 낮을 뿐만 아니라 자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자녀와의 관계가 취약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퇴 후 일은 필수 과제
똑같은 노후자금을 갖고 있더라도 일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크다.
소일거리라도 하는 사람은 마음이 덜 불안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은 괜한 욕심을 내거나 겁을 내기 십상이다.
강창희 대표는 3번의 정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 번째가 고용의 정년, 두 번째가 일의 정년, 세 번째가 인생의 정년이다. 젊은 시절부터 일하던 자신의 주 업종에서 은퇴(고용의 정년)한 이들은 ‘일의 정년’에 적응해야 한다. 대략 60~70세로 은퇴했지만 재취업이나 창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펼쳐야 한다. 이에 덧붙여 강 대표는 100세 시대에는 공부-취업-공부-재취업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재취업 전의 공부란 단순히 학문과 기술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을 포함한 모든 활동이다. 강 대표는 “수입을 위한 일을 하든, 자기실현을 위한 일을 하든, 아니면 사회환원적인 일을 하든 준비가 필요하다. 재테크가 아니라 평생현역이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기출 소장은 단순히 생활 유지가 아닌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 즐거운 일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에서의 그러한 추구가 재무적인 면에서나 관계적인 면에서는 물론, 건강까지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소장은 “당장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정신건강부터가 튼튼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현명하게 수입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생현역이야말로 최고의 노후대비책이다.
박기출 소장은 은퇴자들이 여가생활을 하는 주된 목적은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재미와 즐거움,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찾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성기 시절 시장 독과점을 통해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실리콘밸리의 악마라고도 불렸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리더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자선사업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아프리카 같은 저개발국가에 쏟아붓는 애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기부액은 2007년 이후 28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또한 엄청난 고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와 그자신이 보고 감명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강의 영상 저작권을 사서 일반인에게 무료로 공개한 것은 그의 기부행위가 단순히 돈만 많이 내놓는 게 아니라 인류를 위한 봉사정신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일화들이다.
건강관리는 곧 돈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죽음의 춤’이라고 불리는 그림들이 유행했었다. 부자, 수도사, 농부, 귀족 등 각계각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을 그린 이 기이한 그림들은 실은 전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때를 은유하고 있다. 해석하자면 ‘죽음의 춤’은 흑사병-죽음은 부자와 서민, 왕과 하층민 등 계층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건강관리는 재무나 자산 관리와 연결된다.
건강관리를 하느라 생활비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아픈 데가 많아지지만 보험 등을 제대로 들지 않았다면 과도한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또한 건강관리를 잘못해 큰병이라도 걸리면 모든 ‘은퇴 준비’가 허탕으로 돌아간다.
건강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장기화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이상건 상무는 40대부터 건강을 위한 금연이나 절주를 비롯해 꾸준한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제적 어려움이야 수입에 맞춰 지출을줄 여가며 노후를 보내며 지낼 수 있다지만 건강을 잃는다면 평생을 질병과 싸워야 하는 고독한 현실이기에 예상보다 훨씬 힘든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3D 프린터와 사물인터넷이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3D 프린터를 활용해 장기를 구현해 낼 것이며, 생활 속 사물들을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를 공유하는 환경이 만들어져 혁신적인 헬스케어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6일 보건산업진흥원과 조선비즈는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2014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혁신적 아이디어와 창업, 투자가 여는 건강경제 시대’를 주제로 개인 유전체 분석과 외골격로봇, 인공감각장치, 빅데이터 등 생명공학과 정보통신의 융합 기술을 활용해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고령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특히 기조 연설자로 나선 영국의 미래학자 패트릭 딕슨 글로벌체인지 회장은 정보통신기술(ICT)이 선도하는 헬스케어 산업의 혁신과 나아갈 길에 대해 논했다.
딕슨 회장은 “요즘은 기대수명이 매월 평균 한주씩 늘어날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길어지고 있다”며 “향후 20~30년간 이런 기대수명의 증가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하며 헬스케어 분야의 격변을 예상했다.
일례로 줄기세포 연구의 발전으로 이미 사람에서 떼어낸 세포로 눈과 뇌조직과 심장조직, 척수까지 만들고, 대부분의 암도 완치를 눈앞에 두면서 사망률이 급격히 줄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상황에 발맞춰 3D프린터와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이 가져올 의료 혁신에 대해서 강조했다.
딕슨 회장은 “장난감 모형을 찍어내던 3D프린터가 사람 몸의 일부를 구성하는 조직을 찍어내고 궁극에는 완전한 장기를 생산하는 데 활용될 것이며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많은 기기가 연결돼 작동하면 노인들이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아픈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일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날 포럼에는 미국 의사기업인협회를 이끄는 알린 메이어스 콜로라도대 의대 교수가 참여해 의사의 아이디어를 환자에게 적용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 의사들을 하나로 묶는 네트워크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