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대구에서 60대 운전자 A씨가 몰던 차량이 옆 차선을 주행하는 차의 측면을 들이받은 후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들에 연쇄적으로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동승자는 A씨가 평소 저혈당 증세가 있었으며, 이날 사고도 저혈당 쇼크로 인해 발생했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고혈당은 물론 저혈당 상태가 오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선 저혈당은 대개 당뇨병 환자에게서 나타난다. ① 혈당이 70mg/dL 아래로 떨어진 상태로 ② 저혈당에 의한 증상(식은땀, 불안, 공복감 등 자율신경항진 또는 의식 혼미, 기력 악화, 어지러움 등 신경당결핍 증상)이 있고 ③ 포도당을 공급한 뒤 증상이 해소되는 경우에 모두 해당한다.
자율신경 증상이 나타나고 자가 치료가 가능한 경증, 자율신경 증상과 신경당결핍 증상이 나타나고 자가 치료가 가능한 중등도, 혈당이 50mg/dL 이하이며 의식을 잃을 수 있고 회복을 위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중증으로 구분한다. 그렇다면 저혈당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며, 주의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김진택 노원을지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를 통해 알아봤다.
어지러움이나 불안을 느낀다고 무조건 저혈당이라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지럼증, 불안감, 가슴 두근거림은 공황장애, 심장 질환, 뇌졸중, 내분비 질환 등과도 연관된 증상입니다. 따라서 해당 증상이 나타날 때 단독으로 판단하지 말고 혈당을 체크해보세요. 70mg/dL 이상이거나 평소 당뇨병 치료를 받고 있지 않다면 다른 질환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저혈당을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식사 시간이 불규칙하거나, 간식을 섭취하지 않고, 운동하기 전 끼니를 놓치는 등 여러 상황 탓에 혈당이 떨어질 수 있어요. 두근거림이나 어지러움, 피로 등 저혈당 초기 증상을 알아채지 못해 적절한 시기에 대응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당뇨약이나 인슐린을 복용한다면 정확한 용량을 제시간에 맞게 복용해야 해요.
저혈당 쇼크가 오면 당질을 섭취하는 게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과도한 양의 단순당질을 섭취해 일시적으로 혈당을 급격히 올리면 이후 혈당이 다시 급격히 떨어질 수 있어요. 보통은 꿀이나 설탕 한 숟가락, 주스 또는 청량음료 175ml, 요구르트 1.5개, 사탕 3~4개 등의 단순당질을 권합니다. 초콜릿은 흡수율이 다소 떨어져요. 평소 저혈당 쇼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탄수화물(당질) 섭취가 중요합니다. 쌀·보리·현미·팥·감자·고구마·빵 등 복합당질과 설탕·초콜릿·과일주스·꿀·시럽 등 단순당질을 적절히 섭취해 혈당 변동을 최소화하고 포만감을 유지해야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제로 음료나 대체당 식품이 저혈당에 도움이 되나요?
제로 슈거 제품은 포도당을 함유하고 있지 않아 혈당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혈당 증세가 자주 나타나면 부작용이 생기나요?
저혈당이 반복되면 몸이 저혈당 증상을 경고하는 초기 신호를 덜 보내게 됩니다. 저혈당 인지 장애로 발전할 수 있어요. 저혈당 인지 장애가 발생할 경우 혈당 목표를 200 이상으로 높게 2주 정도 유지하면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전에 전문가와 상의해 치료 약물을 변경하는 게 좋겠죠. 이미 인슐린을 하루 다회 주사하고 있다면 연속혈당 모니터링 기구 등을 사용해 혈당을 자주 체크해야 합니다. 고령 당뇨병 환자는 가급적 저혈당 발생 위험이 낮은 약제를 선택하고, 개별화된 혈당 목표에 도달한 경우에는 약제 개수나 용량을 줄이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당뇨병을 앓지 않는 사람에게도 저혈당이 나타나나요?
불규칙한 식사나 탄수화물이 부족한 식사를 했을 때, 당분이 많은 음식을 섭취했을 때, 공복 상태에서 과음을 했을 때, 췌장 종양이나 간질환이 있을 때, 일부 항생제(퀴놀론 등)나 항말라리아제·베타 차단제·실리실레이트 등 비당뇨 약물을 복용했을 때,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기운이 없거나 힘이 들 때 우리는 종종 ‘당 떨어졌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의학적인 저혈당 증상이라기보다 공복 상태나 스트레스 상황을 이겨낼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의미일 겁니다. 앞서 말했듯 저혈당은 허기 외에도 떨림, 발한, 두근거림, 어지러움, 혼동, 피로, 불안, 두통 등 다른 증상을 동반합니다. 배고픔은 식사를 하면 빠르게 해소되지만, 저혈당은 규칙적인 식사를 했음에도 발생하죠.
최근 연속혈당측정기가 대중화되고 있는데요, 일반인이 이용해도 괜찮을까요?
연속혈당측정기를 통해 자신의 혈당 변화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유용할 수 있지만, 이를 통한 데이터 해석과 관리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혈당 변동에 대한 과도한 해석을 피하고,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중요해요. 즉 연속혈당측정기를 통한 혈당 관리는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고 잠재적인 건강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국내 중장년 정책은 최근 급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 속에 늘 새로운 정책 모델을 제안하고 발전시켜온 이가 있다. 바로 남경아 경기도 베이비부머기회과장이다. 과거 서울시 중장년 정책의 태동기부터 성장을 도모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관련 사업이 안정궤도에 접어들었을 즈음, 그는 시들시들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고, 홀연히 퇴사를 결정했다. 그렇게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자, 이내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시 어떤 힘이 차올랐을 때, 경기도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처음 시작된 중장년 활동은 2006년 희망제작소의 해피시니어 사업이다. 당시 남경아 과장은 4060세대의 다양한 사회공헌 일자리 모델을 발굴·육성하는 일을 담당했다. 2015년 이후로는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단장,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관장,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장 등을 지내며 서울시 중장년 정책의 역사를 함께해왔다. 오랜 세월 수많은 중장년의 삶을 연구하고 컨설팅해왔기에, 그가 퇴직했을 때 남다른 계획이 있으리라 여긴 이가 많았다. 그러나 실제는 정반대였다. 아무 계획 없이, 무계획이 계획인 양, 그저 몸과 마음 가는 대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빈둥거리는 일상을 보내던 중 뉴스 헤드라인에 그의 시선이 머물렀다.
“2022년 민선 8기 지방자치단체장 임기 시작을 앞두고 인수위원회별로 공약 검토 결과가 쏟아지던 시점이었어요. 그때 ‘김동연 경기도지사 청년 정책 1호는 청년 갭이어’라는 뉴스가 눈에 띄더라고요. 청년을 중심으로 먼저 갭이어를 시행하고 향후 다른 연령층으로 확대해간다는 내용이었죠. 더불어 행정을 개편해서 베이비부머기회과를 신설했는데, 이 부서를 복지나 평생교육 관련 부서가 아닌 사회적경제국으로 편제한 점도 남다르더군요. 20년 가까이 중장년 정책의 진화 과정을 본 사람으로서 흥미롭다고 느꼈어요. 그렇게 경기도의 실험이 잘 이뤄지길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차에, 올해 저도 그 여정을 함께하게 된 거죠.”
더 오래 일하기 위한 ‘잠시 멈춤’의 시간
정책의 키워드인 ‘갭이어’(Gap Year)는 입학 전이나 졸업 후 또는 사회 진출에 앞서 여행이나 자원봉사, 인턴십 등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충전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서구 대학에서 널리 쓰인 용어로, 아직 우리 사회에서 갭이어에 대한 담론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단편적인 프로그램에 머무르는 형편이다. 그러나 최근 해외 동향을 보면 ‘그레이 갭이어’, ‘골든 갭이어’ 등 인생 전환기 또는 이행기를 지칭하는 개념으로도 폭넓게 사용하고 있다. 경기도 또한 청년 갭이어에 머무르지 않고 중장년의 특성을 살린 프로세스와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다. 그 중심에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남 과장은 전환기 중장년에게 갭이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한다.
“갭이어는 개인마다 기간과 형태가 다른데요. 얼마가 됐든 갭이어 기간을 꼭 보내시면 좋겠어요. 한국 직장인은 평균 50대 초반에 퇴직하는데, 해외에 비해 그 시기가 빠른 편이에요. 여생을 고려하면 최소 20~30년은 더 일해야 하는 상황이죠. 급급한 마음에 생각을 정리하고 탐색할 시간 없이 곧장 구직활동에 뛰어들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다고 해도 오래 못 가는 경우가 허다해요. 어쨌든 현실적으로 일을 계속하기 위해선 흔히 말하는 ‘N잡러’가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죠. 빨리 취업하는 것보다는 오래 일할 방법에 대해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퇴직 후엔 잠시 탐색기를 갖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면서 다양한 일자리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중장년 세대에게 필요한 갭이어 기간은 약 10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욕구, 흥미, 환경 등에 따라 형태는 다양할 수 있지만 어쨌거나 핵심은 ‘탐색’이라 할 수 있다. 남 과장은 갭이어가 어렵다면 ‘갭타임’(Gap Time)이라도 보내길 권했다. 가령 최근 유행한 ‘5도2촌’(5일은 도시, 2일은 농촌에서 살기)이나, 일과 휴가를 병행하는 ‘워케이션’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실제 해외에서의 중장년 갭이어는 공간의 이동, 즉 다른 곳에서 살아보는 형태가 많은 편이다. 남 과장 역시 공간의 변화를 줄 때 가장 효과가 크다고 덧붙였다.
“퇴직 이후를 설계하는 데 에너지와 영감을 얻으려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합니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교육을 받거나, 프로그램에 참가해보는 것도 방법이지만, 일상 공간을 바꿈으로써 가장 강력한 자극을 받을 수 있다고 봐요. 공간을 이동하면 낯선 장소와 사람을 마주하게 되고, 특별히 뭘 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이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오죠. 한달살기도 좋지만 퇴직 전이라면 매월 1박 2일이라도 갭타임을 위한 여행을 떠나보세요. 어디로 떠나야 할지 결정하려면, 내가 뭘 좋아하고 누구와 함께하면 좋을지 등을 고민해야 하잖아요. 거기서부터 자기 탐색이 시작되는 거죠.”
당하는 교육 아닌 주체적 교육으로
남 과장은 중장년 전환기의 가장 효율적 수단으로 ‘교육’을 꼽았다. 실제 퇴직 후 늘어난 여유 시간을 알차게 채우려는 마음에 이런저런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중장년이 상당수다. 이미 지자체마다 중장년 대상 교육 프로그램은 차고 넘치지만, 그 효용성을 따져보면 다소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또한 자신이 강의했던 교육 현장에서 “끊임없이 배우는데도 늘 공허하다”, “강의를 많이 들었는데 채워지는 느낌이 없다”는 참여자들의 고충을 듣곤 한다.
“현재 공공기관 등에서 이뤄지는 중장년 교육은 대부분 지식·정보 전달 중심인 특강 형태가 많아요. 그러면 막상 수업을 들을 때는 좋다고 여기는데,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십상이죠. 진정한 교육이 되려면 일종의 훈련이 뒤따라야 해요. 가령 아이들에게 ‘빨간 신호에 건너면 안 된다’는 교육을 했다면, 이것을 실전에서 연습하고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요. 결국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니 공허할 수밖에 없죠. 과거 서울시50플러스인생학교 정광필 학장이 언급한 ‘교육당하지 말자’, ‘배움은 매뉴얼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르는데요. 그렇게 당하는 교육이 아닌 스스로 주체가 되는 교육이라야 전환기에도 더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남 과장은 주체적인 교육 프로그램 사례 중 영국 U3A(순환적 학습 협동조합)를 일컬었다. U3A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비하는 누군가가 따로 있기보다는, 모두 함께 참여해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순환적 학습의 장 형태로 운영된다. 일방적 강의가 아닌, 즉 선생과 학생이 따로 없는 자발적 학습 공동체인 셈이다. 이처럼 그는 학습 욕구를 가진 이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커뮤니티를 이루고 활력을 얻는 과정을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무언가를 몰입해서 즐겁게 배우면 그것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하거나 감정을 교류하고 싶어지죠.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 커뮤니티를 만들고, 오랜 기간 활동하다 보면 언젠가는 새로운 일과 활동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소소한 커뮤니티로 시작했지만 노년기를 함께할 동료를 만나기도 하고, 언젠가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단체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어요. 정책적으로 교육 못지않게 커뮤니티 발굴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시작된 담론, 중장년의 삶으로 증명할 때
30대부터 시작한 중장년 관련 활동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 흘러 이제 그 또한 중장년 당사자가 됐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정책이 확산됐다는 점은 고무적으로 여기고 있다. 최근 정책적 사안을 둘러싸고 중장년 세대에 대한 명칭, 연령의 기준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는 상황이다. 이 부분 또한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흐름으로 봐야 한다는 게 남 과장의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중장년이 취약계층이 아님에도 이렇게 공공정책으로 재원을 쓸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중장년은 거대한 통계적 집단으로만 존재했죠. 한국 사회에서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최대 규모 인구 집단인데, 10여 년 전만 해도 그 어디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관심 밖 대상이었어요. 이제는 정치인들의 선거 공약에도 빠지지 않고, 한국 사회의 새로운 정책 어젠다로 자리매김했을 정도로 주목받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이 세대를 규정하는 나이나 부르는 이름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이 많은데, 과도기적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건강한 담론이라고 봐요. 비로소 중장년기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거죠.”
남 과장은 현재 중장년 정책의 전국화 속도를 볼 때 대중성은 확인된 반면, 중장년 세대를 위한 활동의 정당성은 부족한 실정이라고 해석했다. 더불어 자신을 비롯한 동년배들에게 “이제는 우리 세대 스스로가 증명해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좀 거창한 표현일 수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통계에 기대지 않고도 중장년 세대의 잠재력을 증명해야 할 때가 온 거죠. 한국 사회가 공공자원을 투입해 중장년 정책을 만들고 그들의 삶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결국 우리의 삶으로 말해야 합니다. 더불어 중장년 정책은 중장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임을 강조하고 싶어요. 분절적 정책이 아닌, 전후 시기인 청년기와 노년기도 동시에 고려해야죠. 그렇게 서로 연계하고 조화를 이뤄 경계를 넘는 대담한 기획이 펼쳐졌으면 합니다.”
그는 전 세계적인 고령화 이슈에 핵심 키를 쥐고 있는 건 바로 현재의 중장년 세대이며, 그들이 곧 우리 사회의 미래와 같다고 내다봤다. 더욱이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좀 더 긍정적인 노년의 롤모델을 제시해야만 희망찬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책과는 별개로 우리 중장년 세대가 청년들에게 보여줘야 할 모습은 긍정적 나이 듦과 세대 문화예요. 안타깝게도 우리 세대는 유례없는 고령화를 헤쳐가는 데 본보기로 삼을 만한 롤모델이 별로 없어요. 그렇다고 그 고충을 또다시 자녀 세대에 대물림하지는 말아야죠. 그런 차원에서 가장 강력한 세대 공감은 일상에서 새롭고 긍정적인 노년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음 세대에 무언가를 전수할 수 있는 세대,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세대임을 몸소 보여주면 좋겠어요.”
‘고소득 취업 보장, 2주 만에 취득 가능, 국가가 인정한 전문 자격, 응시료 전액 무료.’ 몇몇 민간자격증 홍보물에 쓰이는 문장이다. 사실 이 정도라면 거의 허위·과대 광고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다른 건 몰라도 ‘취업 보장’이라는 멘트는 일단 걸러야 한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이는 구직을 꿈꾸는 중장년에겐 달콤한 미끼로 작용하고 있다.
도움말 권미경 커리어컨설팅 대표, 김슬기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일자리지원팀장
한국직업능력연구원(KRIVET) 자격센터가 발행한 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2023년 12월 말 기준 민간자격 수는 5만 1614개다. 최근 10년의 추이를 보면 해마다 5000~6000개 이상의 신규 자격이 등록, 1000~2000개 정도의 자격이 폐지되고 있다. 폐지된 민간자격을 기준으로 볼 때, 과반수인 64%가 5년을 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2년 미만 32%, 2~4년 32%). 10년 이상 등록을 유지한 곳은 2%에 불과했다. 한편 2023년 민간자격 표시·광고 모니터링 적발 건 현황을 살펴보면, 약 80%가 미등록의심(인터넷 홈페이지 및 인쇄 매체 포함) 건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20%가량은 거짓·과장 건이었는데, 이 중 70% 이상이 인정 또는 승인 자격으로 오인케 하는 사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통계만 보더라도 민간자격 취득을 준비하려 할 때는 실제 등록된 자격인지부터 알아보는 것이 기본이다. ‘등록 민간자격’이란 국가 외 개인·단체·법인이 국가가 금지하는 사항(국민의 생명·건강·안전 등)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의무적으로 등록하여 운영하는 자격을 말한다. 이렇게 등록된 민간자격 중 국가에서 우수하다고 인정(공인)한 자격은 별도로 ‘공인 민간자격’이라 칭한다. 공인받은 자격을 취득한 경우에는 이에 상응하는 국가자격 취득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등록 유무 및 자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찾아보려면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서 운영하는 ‘민간자격정보서비스’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된다. 여기에서 등록 및 공인 민간자격을 비롯해 폐지 자격 등에 대한 정보를 검색·확인할 수 있다. 간혹 이미 폐지됐음에도 등록된 자격인 양 홍보하는 곳들이 있으니 잘 살펴보도록 하자.
민간자격은 취업 보장하지 않아
그렇다면 등록된 민간자격은 모두 믿을 만한 것일까? 사실 이 부분은 신뢰보다 그 효용성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민간자격을 취득하려는 경우 대체로 구직활동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민간자격증은 취업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는 국가공인자격도 마찬가지다. 직군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정 직업을 갖기 위한 필요조건일 수 있으나 취업까지 연결되는 충분조건은 아니란 얘기다.
권미경 커리어컨설팅 대표는 “자격증 발급 업체에서 ‘취업 보장’, ‘월수입 얼마 보장’ 등을 내세우며 유인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홍보 문구가 쓰였다면 이미 레드오션이라고 봐도 된다. 많은 비용을 들여 수강하고 자격증까지 발급받았는데, 정작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취업연계형이라고 하는 자격도 발급기관 등을 충분히 검증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간자격이 지닌 최대 장점은 단시간 내, 어렵지 않게 취득 가능하다는 것 아닐까. 이 또한 분야마다 상이하겠지만, 한두 달 내외로 취득 가능한 자격증이 상당수다. 짧게는 하루이틀 만에도 취득할 수 있고, 별다른 요건 없이 강의를 듣는 것으로 자격을 부여해주기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보면 민간자격만 수십 개 땄다는 이도 있고, 일주일에 5개 자격증을 모았다는 이도 있다. 그런데 취업 시장에서는 민간자격의 양이 그리 쓸모 있게 발휘되는 편이 아니다. 누구나 쉽고 빠르게 취득하는 자격증일수록, 이에 대한 전문성 및 신뢰도는 약하게 평가되기 마련이다.
김슬기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일자리지원팀장은 “마치 쇼핑하듯 자격증을 모으는 분들이 있다. 직업 탐색 차원에서 자격증에 도전하는 건 괜찮지만, 무분별하게 맹목적으로 취득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특정 자격증에 관심이 생겼다면, 먼저 내가 하려는 직업이나 직군에 쓸모가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워크넷 홈페이지에 가면 ‘한국직업사전’이 있는데, 여기서 직업을 검색해보면 필요한 자격이 나온다. 또는 취업 포털사이트 등에서 원하는 직군의 모집 요강 내 우대 자격 등을 살펴봐도 좋다. 이러한 정보를 참고해 불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민간자격의 홍수, 발급기관 따라 천차만별
그렇다고 민간자격증이 쓸모없다 여길 필요는 없다. 협회나 학회 발급 민간자격 중 아직 국가공인자격증에 진입하지는 않았지만 유관기관이나 기업에서는 해당 자격증을 높이 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권미경 대표는 “국가자격보다 민간자격에 대한 인식이 낮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민간 자격을 아예 터부시할 수는 없다. 민간자격 중에서도 발급기관인 학회나 협회 등에서 꾸준히 잘 관리하는 경우, 관련 업계에서는 해당 자격증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신뢰해준다. 자격증 발급 과정에서 사전 교육이나 자격증 취득 후 필수 교육을 진행하는 곳일수록 관리가 잘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민간자격정보서비스 홈페이지에서 민간자격을 검색해보면 동명의 자격증이 여럿인 경우가 흔하다. 이때는 자격관리(발급) 기관을 중심으로 검토해보면 좋다. 먼저 등록된 시점(등록번호)을 보면 해당 자격증의 역사가 얼마나 됐는지, 유지 기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기관 홈페이지가 있는 곳이라면 링크를 타고 들어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좋다. 관련 홈페이지가 없는 곳이라면 관련 정보를 얻기 힘들기 때문에 신뢰성 및 전문성 검증도 쉽지 않아 걸러지게 마련이다. 더불어 응시자 및 취득자 수를 기재해둔 기관이라면, 자격증에 대한 관리가 비교적 잘 이뤄진다고 유추할 수 있다.
김슬기 팀장은 “온라인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취업 상담기관 등을 찾아 자격증이나 발급기관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것이 좋다. 중장년의 경우 동년배끼리 자격증 취득을 권유하거나 입소문을 내기도 하는데, 자칫 잘못된 정보가 와전되기도 한다. 혹여 절친한 지인의 이야기라도 한 번 더 점검하는 과정을 거치길 바란다. 또 시기마다 유행하는 자격증이 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취득을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당부했다.
언제부터인가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을 줄여 단순한 생활 방식을 택하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함으로써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건데, 막상 집 안을 둘러보면 뭐 하나 쉽게 버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가장 좋은 것 딱 두 개만 남기고 다 버리세요!”라는 정리수납 전문가의 말에 물건 정리를 하겠노라 다짐한 김말녀(65세, 가명) 씨. 우선 오래돼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버리고 가장 좋은 걸 꺼내려고 수납장을 열었다가 ‘어머!’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온갖 종류의 프라이팬이 14개나 나왔다. 사은품으로 받아서, 누가 줘서, 홈쇼핑에서 세일해서 등 온갖 이유로 들여온 것들이 어느새 이렇게 쌓여 있었던 것.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또 뭘 샀느냐’는 남편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신발장에 넣어두고 잊어버린 프라이팬 하나가 더 있었다. 우스갯소리 아닌가 싶겠지만 실화다. 게다가 이건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니라고? 지금 당장 부엌으로 가 찬장을 열어보자. ‘○○은행’ 로고가 크게 자리 잡은 컵과 ‘○○카페’ 로고가 적힌 텀블러가 몇 개나 나오는지 말이다.
“모든 물건에는 이유가 있다!”
김민주 한국청소직업전문학원 이사, 이지영 새삶 대표에게 ‘왜 우리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느냐’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내가 사는 집에 있는 물건이지만 남을 생각한 이유가 붙어 있다는 뜻이다. 대개는 이런 이유다. ‘아들이 사준 비싼 가방’, ‘돌아가신 아버지가 선물한 만년필’, ‘결혼 기념으로 산 와인 잔’, ‘딸 결혼하면 줄 그릇’ 같은.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서, 자녀에게 주려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추억하려고 등 ‘나’가 아닌 다른 이를 기준으로 가치를 두는 물건들이다. 그렇다고 쓰임이 있는 건 아니기에 어딘가에 놓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아 조언한다. 나이 들수록 사람, 시간, 물건, 공간 등 정리할 게 많아진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시도해볼 수 있는 건 물건이다. 물건이 비워지면 공간도 정리된다. 공간은 나의 생활 습관이 남긴 흔적들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공간을 비우면 삶도 정리된다. 기준은 ‘나’다.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공간의 쓰임을 생각하게 된다. 그 공간에서 나의 생활이 어떤지도 돌아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사람, 시간 등 내 인생도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미니멀 라이프의 장점이다.
비움에 앞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새 물건을 들이지 말라는 의미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가를 알아가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비우는 과정을 통해 소유에 관한 자신만의 기준을 다시 세우게 된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여전히 미니멀 라이프가 어려운 이들을 위한 실천 방법을 알아봤다.
1. 습관 점검하기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동선을 살펴보자. 하루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는 방도 있을 테고, 한 번도 열어보지 않는 서랍장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비싼 옷을 사도 손이 자주 가지 않으면 옷장 한켠에 자리만 차지하는 것처럼 자주 사용하는 컵, 자주 앉는 소파 자리, 자주 입는 옷 등을 보며 꼭 필요한 것의 기준을 세운다. 그러려면 집 안에 뭐가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내가 자주 쓰는 것들이 무엇인지, 저 물건은 저 자리에 얼마나 놓여 있었는지 관찰해보자.
생활 습관을 바꿈으로써 자연스럽게 정리를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식탁 위를 보자. 각티슈, 건강보조제, 볼펜, 안경, 식물 등 무언가가 반드시 놓여 있을 것이다. 모두 다 치워보자. 항상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식탁을 보다 보면 물 마신 컵을 그곳에 놓지도, 먹다 남은 피자를 그대로 두지도 않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김민주 이사는 “짐 속에 파묻혀 생활하면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게 아니라 빼앗기게 된다”면서 “나이 들면 아플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집의 쾌적함을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 주어진 공간에 만족하기
신발장을 열어보면 신발이 위아래로 서로 엉켜 있는 집이 많다. 그러고도 넘쳐서 현관에 줄지어 있다. 버림의 첫 시작은 나에게 주어진 공간을 인정하는 것이다. 신발장이 열 칸이라면 신발도 열 켤레만 있어야 한다. 비좁은 공간을 어떻게든 활용해 수납의 묘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공간을 얼마나 쾌적하게 누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버려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버리는 게 너무 어렵다면 다음 두 가지를 우선 실행해보자. 이지영 대표는 딱 세 가지를 먼저 버려보라고 조언했다. 오래된 수건, 일회용품 용기, 화장품 샘플이다. 수납장 어딘가에 지금 쓰는 수건 개수만큼의 새 수건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재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쟁여둔 일회용품 용기도 과감하게 버리자. 찬장 속 주방 용기로 충분하다. 발뒤꿈치에라도 바르려고 놔두었던 유통기한 지난 샘플 역시 버리자. 소중한 나를 위해 좋은 것을 바르겠다는 마음으로. 김민주 이사는 하루에 딱 한 가지씩 30일 동안 매일 버려볼 것을 권유했다. 30년 넘게 모아둔 물건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는 없다. 휴대폰에 ‘버림의 행복’이라는 사진첩을 따로 만들어 버린 물건은 사진으로 찍어놓는다. 시간이 지나 사진첩을 보면 ‘우리 집에 이런 물건이 있었나?’ 싶을 것이다. 꼭 지켜야 할 점은 하루에 딱 한 개만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30일은 볼펜류, 티셔츠류, 그릇류 등 하루에 한 종류를 모아 버린다. 이렇게 100일을 반복하면 어느새 집이 쾌적해졌음을 느낄 것이다.
3. 현재의 ‘나’ 생각하기
물건의 필요를 고민할 때는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나의 과거가 담긴 물건, 내 미래를 위해 비축해둔 물건을 너무 많이 쌓아둔다. 물건의 용도는 ‘쓰임’이라는 걸 잊지 말자.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은 오늘이다. 제일 좋은 것은 지금 써야 한다. 주의할 점은 다른 구성원의 기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민주 이사는 ‘내 기준을 절대 강요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가족의 물건은 해당 물건의 주인이 버릴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서로 다른 취미가 있다면 공간을 나누어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지영 대표는 “한 사람의 취향이 모든 공간을 지배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피규어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면 자리를 정해 그 공간에만 둘 수 있도록 한다. 자녀가 독립해 두 부부만 지낸다면 각 방을 자신의 공간으로 쓰는 것도 방법이다. 방의 쓰임을 꼭 침실, 옷방, 서재라는 식으로 나누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건 비싼 물건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집이라는 공간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것들로 채우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도움말 김민주 한국청소직업전문학원 이사, ‘신박한 정리’ 이지영 새삶 대표
“물건을 정리하니 일상의 소중함이 보여요”
‘모델하우스 같다!’
김미희(61세) 씨의 집에 들어서며 받은 첫인상이다. 현관에 줄지어 있는 게 익숙한 신발도, 주방 아일랜드에 나와 있는 물건도, 거실 바닥에 늘어놓은 물건도 없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사례자를 찾아온 것이지만, 이렇게 심플할 줄이야. 본래 취향이 심플한 사람을 찾아온 건 아닐까,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40년을 쉬지 않고 사업을 했어요.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도 정말 많았죠. 그때는 남을 많이 의식했던 것 같아요. 그릇도 진열해두었고, 술이 가득한 진열장도 있었죠. 또 집에 찾아온 사람을 빈손으로 보낼 수 없어 들려 보낼 선물들도 한가득 쌓아뒀어요.”
그 역시 물건으로 가득한 집에 살았더란 이야기다. 김미희 씨는 10년 전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했다. 당시 이사할 때만 해도 물건을 버리려니 마음속 갈등이 컸다고 한다. ‘비싼 물건이라서, 정이 들어서, 갖고 싶었으니까’ 등 갖은 이유가 맴돌았다고. 그러다 2년 전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결심하고 물건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상의 소중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단다.
“어느 순간 물건들이 장소만 차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쓰지도 않는 물건인데 먼지가 쌓이니까 청소할 것도 많고요. 꼭 필요한 물건만 남기고 다 버렸어요. 집이 작아졌으니 거기에 맞게 가구도 정리하고요. 처음에는 버리는 게 너무 아까웠는데, 집이 정리되니까 홀가분하더라고요. 이후에는 마음도 가벼워지고 인생이 심플해졌어요.”
무엇보다 자신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 김 씨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돈 버는 기계처럼 희생만 하는 삶이었던 것 같다고 표현했다. 지금은 스스로 토닥여주면서 ‘그동안 열심히 잘 살았다’고 칭찬할 수 있게 됐다. 지나가는 꽃도 눈에 들어오고,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어르신을 돕는 오지랖(?)도 생겼다. 물건을 정리한 자리에 여유가 들어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소를 잘 못한다고 느낀 김 씨는 지난해 청소 학원을 다녔다. 청소를 배우고 나선 정리수납과 방역·소독까지 배워 자격증을 취득했다. 40년간 쉬지 않고 달렸으니 쉴 법도 한데, 이번에는 블루클린이라는 청소·방역 회사를 차리며 새로운 도전을 선언했다.
김미희 씨의 미니멀 라이프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게 많이 비웠는데도 아직 버리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옷이다.
“만 원짜리 티셔츠에 구멍이 나도 버리지 못하고 잠옷으로 입게 되고 그렇더라고요. 어떤 계기가 생기면 정리를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한번 비워보니 더 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인생 정리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일상의 소중함을 알아가면서요. 이제 철드나 봅니다.(웃음)”
옷장 깊숙한 곳에 있는 셔츠, 철 지난 바지도 얼마든지 멋지게 입을 수 있다. 10년, 20년 뒤를 꿈꾸게 하는 ‘취향 저격’ 멋쟁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좋다. 취향 앞에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면, 노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김동현 사진작가의 사진과 감상 일부를 옮겨 싣는다. 열두 번째 주제는 ‘니트’다.
1 ‘김우일 작가님’. 어느 날 길을 걷다 꽃 모양 자수가 인상적인 재킷을 입은 분이 눈이 띄었다. 사진 요청에 그분은 “너 진짜 운이 좋아. 나도 사진 찍는 사람이야”라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알고 보니 1세대 광고사진 작가인 김우일 작가님이었다. 여전히 노출과 핀에 대해 고찰한다는 작가님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1시간의 대화는 선물 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2 ‘스트라이프 아버님’. 머리부터 발끝까지 디테일이 살아 있는 스타일링이다. 무엇보다 스트라이프 니트와 양말 색깔을 맞추셨는데, 패션 센스가 엿보인다.
3 ‘주황 카디건 어머님’.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원색으로 멋을 낸 어머님의 패션은 봄나들이 갈 때 안성맞춤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동묘 칼라 카디건 아버님’. 카디건을 재킷처럼 매치해 전체적으로 댄디한 스타일을 연출했다.
5 ‘다홍색 조끼 아버님’. 가까이서 보니 조끼 안의 니트에는 영국의 빅벤 시계탑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왠지 영국 감성의 패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 ‘맨투맨 아버님’. 한눈에 봐도 이 구역의 패셔니스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맨투맨 니트와 함께 레드로 포인트를 준 패션이 멋스럽다.
7 ‘동묘 흰색 카디건 아버님’. 패션 트렌드인 올 화이트(All-White) 룩을 소화하셨다. 카디건 문양이 심심할 수 있는 패션에 포인트가 됐다.
매년 4월 마지막 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예방접종 주간이다. 노인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면역력이 취약한 계층으로 꼽힌다. 김윤정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건강관리에 있어 예방접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적절한 예방접종만으로도 코로나19, 폐렴, 대상포진, 인플루엔자, 파상풍 등 감염병으로 인한 노인 사망률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위험한 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에 대한 경계심은 크게 떨어졌지만, 코로나19의 위협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실제 올해 발생한 바이러스성 입원환자 중 코로나19 환자 비율은 34.7%로 가장 많았다. 독감(15.8%)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의 코로나19 치명률은 0.15%로 65세 미만의 약 40배의 달한다. 올해 1월 첫째 주부터 8주간 수집된 급성호흡기감염증 감시 결과에서도 코로나19 입원환자 중 65세 이상이 약 67%로 나타났고, 낮은 중증화율과 치명률을 보인 오미크론 유행 당시에도 사망자의 90% 이상을 60세 이상이 차지했다.
최근 질병관리청은 현재 유행하는 변이(JN.1)에 대한 백신의 효과성, 면역저하자 등 고위험군의 짧은 면역 지속 기간 등을 고려해 2024년 상반기 코로나19 접종계획을 수립 발표했다. 이에 따라 4월 15일부터 마지막 코로나19 백신 접종일로부터 3개월이 지난 65세 이상 고령층과 면역저하자 중 5세 이상이면서 23-24절기 업데이트된 백신 접종자, 지난 동절기 미접종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추가접종이 진행되고 있다.
접종 백신은 현재 국내와 전 세계에서 유행 중인 변이에 맞춘 XBB.1.5 화이자·모더나 백신이다. XBB.1.5 백신을 접종한 65세 이상 고령층은 미접종자 대비 감염·입원·중증 예방 효과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백신 접종자의 감염 위험은 미접종자의 3분의 1 수준인 32.5%였고, 입원 예방 효과 73.5%, 중증 예방 효과 78.1%로 높게 나타났다.
김윤정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다만 백신 접종 후 수개월이 지나면 항체면역이 감소할 수 있고, 기존 면역을 회피하는 변이 바이러스가 지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만큼 고위험군에서 연간 충분한 면역수준을 유지하는 데 추가접종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자는 주의, 폐렴구균
폐렴구균(Streptococcus pneumoniae)은 폐렴을 비롯해 정맥동염, 중이염, 수막염 등 침습적 감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균이다. 건강한 성인에서는 대부분 증상을 일으키지 않지만 면역력이 약한 고령층이나 영유아에서 침습적 감염을 일으키며 치명적일 수 있다. 폐렴구균은 대개 무증상 보균자의 비인두에 집락화돼 있다가 호흡기 비말을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된다.
폐렴구균 예방접종은 보건소나 지정 의료기관에서 무료접종하는 23가 다당질 백신과 일반병원에서 접종하는 13가 단백접합 백신으로 나뉜다. 23가 다당질 백신은 다양한 혈청형의 감염 예방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접종 후 1년이 지나면 항체 역가가 감소하기 시작해 5년 후에는 재접종이 필요하다는 게 단점이다. 13가 단백접합 백신은 23가 다당질 백신의 한계를 보완한 백신으로 1회 접종만으로도 효과적인 폐렴구균 감염 예방을 기대할 수 있다. 김윤정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재 기존 13가 단백접합 백신에 혈청형이 추가된 15가 단백접합 백신이 국내에 도입됐고, 미국에서 허가된 20가 단백접합 백신이 국내 도입될 예정으로, 앞으로 보다 넓은 혈청형의 폐렴구균성 질환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이들고 지치면 나타나는 대상포진
대상포진은 ‘띠 모양의 발진’이라는 뜻이다. 과거 수두에 걸렸거나 수두 예방접종 한 사람에서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ZV, Varicella Zoster Virus)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감각 신경절로 이동해 잠복 상태로 존재하다가 면역력이 약해지면 다시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면서 발생한다. 붉은 반점, 수포, 농포 등 다양한 피부병변과 신경통을 일으킨다. 성인의 90% 이상이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 대개 나이가 들거나 몸이 지치고 피로한 경우, 면역억제제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 재활성화된다. 보통 45세 이후 급격히 증가해 70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대상포진 예방접종은 만 50세 이상에서 접종이 권장된다. 대상포진을 앓은 적 없는 65세 이상 노인 3만8000여 명을 대상으로 예방접종 후 3.1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대상포진 발생률이 51% 감소했다. 50~59세 70%, 60~69세 64%, 70~79세는 42%, 80세 이상 18% 감소 효과를 보였다. 또 백신 접종 시 대상포진을 앓아도 증상이 약했고, 대상포진 후 신경통 같은 후유증 발생도 최대 74% 줄었다.
겨울철에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인플루엔자(Influenza)는 급성 인플루엔자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분비되는 호흡기 비말(droplet)을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된다. 따라서 인플루엔자 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할 때 감염 가능성이 높다. 흔한 증상은 갑작스러운 발열(38℃ 이상), 두통, 전신쇠약감, 마른기침, 인후통, 코막힘, 근육통 등이다.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은 지정 의료기관이나 보건소에서 쉽게 할 수 있다. 인플루엔자 예방백신 무료접종 대상은 만 65세 이상 노인, 생후 6개월~12세 어린이, 임신부 등이다. 인플루엔자 유행이 주로 12월에 시작되고, 접종 2주 후부터 예방 효과가 나타나 약 3~12개월(평균 6개월) 유지되는 점을 감안하면 늦어도 11월까지 가까운 동네 의료기관에서 예방접종을 완료하는 것이 좋다. 김윤정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겨울철 주로 유행하는 인플루엔자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인플루엔자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다”며 “65세 이상 고령자에서는 낮은 백신 효능을 극복하기 위해 2023년 개정된 대한감염학회 가이드라인에서는 고면역원성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고 했다.
연일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아침저녁으로 걷기와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처럼 가벼운 신체활동은 건강과 몸의 활기를 북돋아 주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무리한 보행이나 운동으로 몸에 무리가 생겨 병원을 찾는 이들도 따라서 증가하고 있다.
이때 조심해야 할 질환 중 하나가 족부(발)에 발생하는 ‘족저근막염’이다. 족저근막은 종골(발뒤꿈치뼈)부터 발바닥 근육을 감싸고 발바닥 아치(arch)를 유지해 주는 단단한 섬유막으로, 몸을 지탱하고 충격을 완화하는 기능을 한다.
족저근막염은 오래 걷기 등으로 족저근막에 무리가 가면서 염증과 통증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운동선수들에게서 많이 발병하지만, 최근에는 하이힐이나 굽이 낮은 신발, 딱딱한 구두를 자주 신는 일반인에서도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중장년 사이에 유행 중인 맨발 걷기도 문제다. 푹신한 깔창으로 발을 보호하는 신발 없이 딱딱한 흙 바닥을 밟는 것은 발에 무리를 줘 족저근막염을 유발할 수 있다. 맨발 걷기를 즐기고 싶다면 지자체에서 발 건강을 고려해 조성한 지역을 찾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걸을 때 충격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김민욱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족저근막염의 증상은 서서히 발생하는데 아침에 일어난 직후 처음 몇 발자국 디딜 때 발뒤꿈치 부위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다 점차 걸음을 걷다 보면 통증이 줄어드는 증상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초기엔 약물치료·스트레칭으로 호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족저근막염(발바닥근막성 섬유종증) 환자는 2022년 27만1850명으로 2012년 13만8583명 대비 10년간 약 2배 증가했다. 평균 발병 연령은 45세 내외, 여성이 남성에 비해 2배가량 잘 발생한다.
진단은 초음파 검사로 가능하다. 근막이 파열되면 그 부위가 부어올라 두께가 두꺼워진다. 치료는 환자의 90% 이상이 보존적 치료로 회복된다. 수술적 치료는 거의 필요 없다.
족저근막염은 보통 족저근막이 밤사이 수축돼 있다가 아침에 급격히 이완되면서 통증이 발생하는데, 보조기를 사용해 밤사이 족저근막을 이완된 상태로 유지 시켜주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보조기를 착용한 지 1주일 정도 지나면 증상이 줄어든다. 2~3개월은 꾸준히 착용해야 완치할 수 있다. 또 치료 시 족저근막과 아킬레스건을 효과적으로 늘려주는 스트레칭을 함께 하면 도움이 된다.
부종이 동반된 급성기에는 약물치료인 소염진통제를 사용한다. 이때 증상에 호전이 없다면 통증 부위에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를 할 수 있다. 다만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는 족저근막의 파열을 더 악화시키거나 발바닥 뒤꿈치에서 충격을 흡수하는 지방 패드를 녹이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김민욱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족저근막염 초기 단계에는 약물치료와 스트레칭만으로도 호전될 수 있지만, 보통 즉각적인 호전이 아닌 6개월 이상의 보존적 치료를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만큼 환자의 참을성과 꾸준함이 중요하다”며 “특히 족저근막염은 증상이 오래될수록 치료 성공률이 낮아진다. 증상이 의심될 때는 가능한 빨리 재활의학과나 정형외과 진료를 받고 조기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생활습관 교정이나 주사 치료에도 호전되지 않는 만성 환자는 체외충격파 치료(ESWT)를 통해 염증조직을 회복시켜 치료할 수 있다. 체외충격파 치료는 기기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세포막에 물리적 변화를 유발, 새로운 혈관을 생성해 석회화를 재흡수시키고 혈액 공급을 증가시켜 손상된 조직의 재생을 촉진하는 원리다. 이를 통해 염증을 감소시키고 주변 조직과 뼈 회복을 활성화해 통증 감소와 기능 개선을 가져온다. 또 충격파를 염증이 있는 족저근막에 가해 통증을 느끼는 신경세포를 자극, 통증에 대한 신경의 민감도를 떨어뜨리고 통증을 완화한다. 특히 새로운 혈관을 생성시켜 이미 손상된 족저근막의 치료를 도와 많은 시간이나 수술 없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김민욱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체외충격파는 기존의 물리치료, 약물, 주사 등의 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한 족저근막염 외 근골격계 환자들에게도 추천되는 비수술적이고 안전한 치료방법이다”며 “특히 회전근개 병변, 석회성 건염, 테니스엘보나 골프엘보, 만성 허리통증, 아킬레스건염, 퇴행성관절염, 연골연화증 등 근골격계 질환이 만성적으로 지속하거나 골절 부위의 불유합, 림프 부종, 뇌졸중 환자의 경직, 욕창이 있는 환자에서도 적용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무리한 운동 피하고 적정 체중 유지
족저근막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족저근막에 과도한 긴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서 있거나 걷는 것을 가능한 줄이고, 비만이거나 최근 급속한 체중 증가가 있다면 체중을 줄여야 한다. 따뜻한 족욕은 혈액순환을 도와 족저근막염 예방과 통증 완화에 도움을 준다. 적절한 신발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꽉 끼는 신발은 피한다. 뒷굽이 너무 낮거나 바닥이 딱딱한 신발도 좋지 않다. 여성의 경우 하이힐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김민욱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구두를 오래 신으면 보통 발뒤축의 바깥쪽이 먼저 닳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닳은 구두를 오랫동안 신게 되면 발바닥에서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면서 족저근막염이 발생하고 악화할 수 있다”며 “이때는 구두 뒷굽을 새로 교체해주는 것만으로도 통증을 호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문단의 어머니라 불리는 박완서 작가가 구리시 아치울에서 투병 끝에 타계한 뒤 13번째 봄날이 찾아왔다. 구리시에서는 올해도 그를 추모하는 낭독 공연을 열었다. 박완서 작가를 기리고 그의 문학을 잊지 않기 위해, 구리아트홀이 생기기 전 시청 한편에서부터 시작한 공연이 어느덧 12회 차를 맞았다.
구리아트홀 코스모스 대극장 앞은 공연 30분 전부터 중장년 관객들로 북적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포스터 앞에서 다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관객들은 대극장 1층은 물론이고 2층까지 객석을 가득 채웠다. 공연은 영상, 노래, 연주, 연기, 낭독까지 다채롭게 구성됐다. 관객들은 웃기도 울기도 하고, 박수를 보내기도 하며 공연을 즐겼다. 한 관객은 무대가 끝나자 “낭독 공연은 처음 보는데 색다르네”라고 평하기도 했다.
설교하지 않는, 그러나 여운 주는 동화
자전거를 갖고 달리면서 맛본 공포와 함께 까닭 모를 쾌감을 회상한다. 마치 참았던 오줌을 내갈길 때처럼 무거운 억압이 갑자기 풀리면서 전신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그 상쾌한 해방감. 한번 맛보면 도저히 잊힐 것 같지 않은 그 짙은 쾌감. 아 나는 도둑질을 하면서 죄책감보다 쾌감을 더 짙게 느꼈던 것이다.
-‘자전거 도둑’ 中
한국 문단의 어머니라 불리는 박완서 작가의 동화 ‘자전거 도둑’의 주인공 수남의 독백이다. 토실하니 붉은 볼과 깨끗한 눈을 가진, 청계천 세운상가 뒷길 전기용품 도매상의 열여섯 살 꼬마 점원 수남이. 꼬마의 고백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자전거 도둑’은 1979년 동화집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에 들어 있던 작품이다. 이 중 아이들이 읽을 만한 것을 모아 1999년 다시 펴낼 때 책의 표제가 됐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작품이기에 한 번쯤 읽어봤을 내용이다.
박완서 작가는 소설, 수필 등 여러 분야의 글을 썼지만, 동화에 특히 애정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이야기꾼 할머니로 남고 싶었기 때문에 동화를 집필할 때는 특히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어느 한 작품을 꼽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화란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쓰기 마련인데, 그는 동화를 통해 설교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지만, 어른들도 읽었으면 했다. 박완서 작가의 맏딸인 호원숙 작가는 ‘자전거 도둑’을 오히려 어른을 위한 동화 같다고 했다.
이날 낭독 공연 사회를 맡은 최지애 소설가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16세에 이미 깨달은 수남이가 2024년 우리 곁에 있다면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텐데, 분명 좋은 어른으로 반듯한 삶을 살았으리라 믿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책 ‘박완서의 말’을 인용해 “박완서 작가님은 문학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고민하고 갈등했지만, 고정관념이나 잘못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설교하려 하지 않았다. 교훈을 주려 하지 않는 동화는 참 드물다. 작품을 읽고 오래도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박완서 문학의 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완서 작가의 문장 따라 걷는 길
1년에 한 번 열리는 낭독 공연 외에도 언제든 박완서 작가를 추모할 방법이 있다. ‘박완서 자료실’에서 그의 문장을 음미해보는 것이다. 자료실은 구리시 인창도서관 2층에 있다. 구리시 아치울에서 생을 마감한 박완서 작가의 발자취를 담은 공간이다.
자료실 입구에는 박 작가의 작품을 필사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돼 있다. ‘박완서 필사’ 코너를 지나 자료실로 가는 길 벽면에는 작가의 삶과 작품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마치 그의 삶을 따라가듯 걸으며 자료실로 들어서면 그의 등단작 ‘나목’부터 소설, 수필, 동화, 문학상 수상 작품 등 분야별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자료실 운영 시간 10:00~16:00)
올해는 ‘리멤버, 박완서’라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매주 토·일요일 하루에 네 번(가족 대상 : 10시·14시, 일반 대상 : 11시·15시) 구리시 문화관광해설사가 박완서 작가의 주요 작품과 일생을 연결 지어 해설한다. 주제는 △소녀, 박완서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여자, 박완서 : 나목 △엄마, 박완서 :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노인, 박완서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등 네 가지다. 해설 프로그램은 박완서 자료실에서 진행되며, 구리시 문화예술과(031-550-2565)로 전화 예약을 하거나 구리시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호원숙 작가
딱 알맞은 사랑 주신 어머니를 그리며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 작가는 책 ‘박완서의 말’을 엮으면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리워지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책을 펼치면 살아 계실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와 생생한 목소리로 들릴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작품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매년 열리는 박완서 작가 추모 낭독 공연에 참석하며 호 작가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이번 13주기 추모 낭독 공연에도 참석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간 작품과 인터뷰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많이 보여주셨는데요. 13주기 추모 낭독 공연을 맞이하는 작가님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공연을 올리지 못했던 한 번을 제외하고 1주기부터 매년 공연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구리시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번 공연은 작품 ‘자전거 도둑’이 동화라는 점에서 조금 특별합니다. 어머니가 첫 손주를 보았을 때 쓴 작품이죠. 그야말로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자전거 도둑’에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어른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머니를 보며 좋은 어른의 역할을 깨닫게 된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머니는 어른으로서 상대에게 알맞은 사랑을 주신 분이에요.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었죠.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이 사랑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북돋아주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거든요. 넘치도록 사랑을 붓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필요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아셨죠.
2023년 ‘어른의 부재’가 트렌드 키워드로 꼽혔어요. 그래서인지 박완서 작가님이 더 그립습니다. 그만큼 좋은 어른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요즘 쇼츠라는 게 유행이라면서요? 저도 어떤 짧은 메시지를 보면 ‘어머 진짜 옳은 소리다’ 싶은데 순간적으로 날아가 버리더라고요. 휴대폰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누구든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필요한 걸 배우면 좋겠어요. 가장 가까운 곳에 배울 게 많아요. 사실 70세가 다 된 제 나이에도 선택해야 할 때 무엇이 옳고 그른가 망설이거나 쉽게 판단이 안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배웁니다. 용기 내어 사랑을 주고, 받은 사랑에 책임지며 살면 좋겠습니다. 일상 속에서 그런 것들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는 문학 작품 속에서도 어른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짧은 영상과 달리 작품 속 인물을 보며 생각하고 배울 수도 있으니까요. 어른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누군가에게 작품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요즘 고전을 봐요. 전에 읽었던 건데도 다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이런 게 있었구나!’ 싶어요. 그 시절 작가와 책을 통해 공감하고 교감하며 대화하는 거죠. 어머니 작품 중에서는 ‘미망’을 추천하고 싶어요. 구한말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로, 할아버지는 옛날 사람이지만 미래 주역이 될 손녀에게 꿈을 심어주는 모습이 나오는데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그냥 꿈을 심어주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사랑이 있어야 해요. 딱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사랑이요.
중장년 사이 유행이 번지는 속도는 MZ 세대 못지않다. 최근 트렌드 중 하나는 단연 ‘맨발걷기’다. 전국 유명 관광지마다 맨발 산책로 조성 열풍이 불고 있다. 올해 맨발걷기 길이 생기는 공원은 서울에만 네 곳(효창공원, 응봉공원, 성촌공원, 이촌어린이공원)이나 된다.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과 신진대사에 좋다. 각종 성인병 극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니다. 걱정 섞인 시선도 존재한다. 김창연 대전자생한방병원 병원장은 족저근막에 부상을 입기 쉬우니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맨발 걷기에 앞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요?
우선 경로에 돌부리 같은 요철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걷는 중에는 틈틈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귀가 후에는 온수 족욕으로 발을 풀어주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됩니다. 과체중인 경우에는 보행 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체중 감량도 필요합니다. 단 족저근막염 의심 증상이 있거나 이미 질환을 겪은 경우라면 맨발 걷기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족저근막염은 무엇인가요?
족저근막이란 발바닥 근육을 감싸고 있는 얇고 긴 막으로, 발바닥의 탄력과 아치 모양을 유지하고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족저근막이 지속적인 외부 충격으로 손상을 입으면 염증과 통증이 발생하는데 이를 족저근막염이라 합니다.
족저근막염이 중장년층에 흔한가요?
실제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40대 이상 족저근막염 환자가 24만 9265명으로 전체의 약 74%에 달했습니다. 50대가 25%로 가장 많았고, 60대(20%), 40대(18%)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족저근막염 증상은 어떤 게 있나요?
주요 증상은 아침에 일어나 첫발을 디딜 때 나타나는 극심한 통증입니다. 오래 걷거나 서 있을수록 통증은 커지는 양상을 보입니다. 족저근막염이 생기면 발바닥과 발뒤꿈치에 간헐적으로 통증이 나타나는데, 이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방치하면 통증 부위가 넓어지고 발이 뻣뻣해지면서 보행조차 힘들어집니다. 비슷한 증상이 있으면 조기에 전문의를 찾아 발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좋습니다.
발 관리법 ① 발바닥 스트레칭
의자에 앉아 아픈 발을 반대쪽 무릎 위에 얹는다. 한 손으로 발가락 전체를 감싸 쥐고 다른 손으로 엄지나 검지를 이용해 발의 움푹 들어간 부분을 가볍게 지압한다. 15초간 자세를 유지한다. 이 과정을 3회씩 총 3세트 반복한다.
발 관리법 ② 아킬레스건 스트레칭
벽을 바라보고 30cm가량 떨어져 선 뒤 손을 어깨너비로 벌려 벽을 짚는다. 통증이 있는 발을 뒤로 빼고 반대쪽 발은 앞으로 내민다. 발바닥 전체를 바닥에 붙인 채 체중을 앞으로 실어 벽을 민다. 최대한 종아리 뒤가 당기는 느낌이 나도록 10~15초간 자세를 유지한다. 전체 동작을 3회 반복한다.
노년에 접어들면 사회의 어른으로 기능하려는 책임감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나이만 먹었다고 다 존경받는 어른이 될 순 없기에, 부담은 커지고 마음은 위축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른’의 책임을 노년에 한정하지 않는다. 청년·장년·노년 등 우리 사회 성인들이 세대 구분 없이 모두 하나의 어른으로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서로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노년의 책임은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살며 사회의 짐이 되지 않는 것. 그는 이러한 노인의 모습이 고령사회 존경받는 어른의 롤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 예견한다.
본지는 우리 시대 어른의 표상을 논하고, 세대 간 존경심을 엿보기 위해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2030·5060세대(500명)의 약 80%, 즉 대다수가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반응했다. 이는 10년 전 본지가 진행한 동명의 조사 결과보다 10%p 이상 높아진 수치로, 세대 간 갈등은 더욱 고조된 셈이다. 평소 노년의 삶을 연구하고, 세대 간 교류를 고민해온 정순둘 교수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을 덧붙였다.
“세대 간 갈등의 심각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어떤 ‘경각심’을 드러낸 결과로 보여요. 갈등이라는 게 표면적으로 구체적인 뭔가가 나타나서 문제되기도 하지만, 어떤 징후를 갖고도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가령 노인을 향한 혐오 표현이 계속 생겨나는데, 이제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자제하고 주의해야 하지 않느냐는 경각심인 거죠. 그런 측면에서도 해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각심 높이는 갈등, 세대와 시대 이해해야
앞서 언급한 ‘노인 혐오’처럼 나이 든 어른을 공경하고 존경하던 문화는 사라져가고 있다. 게다가 ‘노시니어존’(노인 출입금지 구역)까지 생겨나며 자꾸만 세대를 구분 짓고 배척하는 분위기다. 이에 정 교수는 먼저 세대 갈등을 다루고 이해하려면 ‘생애주기’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그 세대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고려하는 과정이다. 한때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라는 노래가 유행했다. 그러나 자신의 젊은 시절 경험만을 잣대로 삼았다간 자칫 시대착오적인 견해를 드러낼 수 있다.
“5060세대도 20~30대를 살아왔지만, 현재 2030세대가 사는 세상은 당시와 사회적 기반과 환경이 아예 달라요. 1970년대 20대와 2020년대 20대를 비교할 순 없죠. 기성세대의 청년기와 다르게 요즘 청년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자신의 부모 세대만큼 풍족한 일자리 기회나 좋은 집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들은 오늘날 5060세대보다 더 불행한 노후를 보낼지도 모르죠. 그런 데서 오는 좌절감, 무력감을 기성세대가 이해했으면 해요. 역으로 현재의 5060세대는 고성장 시대 주역으로 살며 많은 것을 이뤘고 경제력도 있지만, 그들의 부모처럼 봉양을 받긴 어려운 처지잖아요. 게다가 유례없는 긴 노후를 준비해야 하죠. 그런 점에서는 2030세대 또한 기성세대가 느끼는 고충을 헤아려주면 좋겠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이 쏟아지고, 나날이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요즘. 기성세대는 이러한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체득하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고 2030세대에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년 세대 또한 사회 변화와 생애주기 간 속도가 어긋나는 괴리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청년들의 라이프사이클은 느려지는 상황입니다. 과거 20~30대라면 직업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겠지만, 요즘은 그 시점이 점점 뒤로 가고 있잖아요. 그런데 중장년들은 자신의 생애주기에 맞춰 ‘왜 아직도 취직을 못 했냐’, ‘나이가 몇인데 여태 결혼을 안 하냐’며 2030세대를 재촉하고 나무라곤 하죠. 즉 현재보다 빠른 라이프사이클을 살아왔지만 변화에 대한 적응은 느린 기성세대와, 변화에 대한 적응은 빠르지만 과거보다 느린 라이프사이클을 사는 젊은 세대 모두 나름의 고충이 있는 거예요. 서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데서 오는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가 결국 세대 간 차이와 갈등을 일으키는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5060세대, 고령사회 새로운 롤모델이 되다
현재의 5060세대가 겪는 고충은 또 있다. 그들이 본보기로 삼고 따라갈 롤모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윗세대보다 노후가 훨씬 늘어난 데다, 그로 인해 일자리, 여가, 관계 등 다방면에서 삶의 양식과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030세대가 5060세대에게 조언을 구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듯, 그들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앞서 말한 본지 조사에서 ‘어른의 부재가 가져올 악영향’을 묻자, 적지 않은 이들이 ‘다음 세대 어른의 부재’(25.8%, 복수 응답)를 꼽았다. 정 교수 또한 같은 맥락에서 우려를 내비쳤다.
“존경받는 어른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롤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이 아닐까 해요. 그러한 존재가 없다면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다거나,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그림을 그리기 어려워질 거예요. 그런 상황이 가장 염려스럽습니다. 현재 5060세대는 고령사회에서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해나가야 한다고 봐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고 하면 어쩐지 부담과 책임감이 밀려온다. 그런 이들에게 정 교수는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냄으로써 어른의 책임을 다할 수 있고, 그것으로도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노년, 즉 스스로 액티브 에이징(Ative Aging)을 실천하시길 권합니다. 건강한 존재로 사회에 짐이 되지 않는 것, 그게 노년의 역할이자 책임일 수 있죠. 긴 여생을 아무런 역할 없이 살아간다는 건 당사자도 힘들지만, 사회의 짐이 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 역할을 갖기 위해선 무엇보다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경제력이 생기는 장점도 있지만 사회활동을 해야 여러 세대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소외나 고립도 예방한다고 봐요. 기왕이면 노년에는 그 일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공헌 활동이면 더 좋고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사회적으로도 평생 일자리와 고령 인력 활용이 이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현재 고령사회연령통합연구소장으로도 활동 중인 정 교수는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연령통합’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으리라 내다봤다.
“연령통합은 곧 연령으로 인한 장벽을 없애는 거예요. 가령 65세가 되면 은퇴해야 한다, 고령자는 고용이 어렵다, 다 ‘나이’가 기준이잖아요. 이런 부분을 개선하려면 결국 연령을 기준으로 삼던 제도들의 개혁이 필요해요. 이렇게 연령통합은 연령의 유연성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연령의 다양성 측면도 있어요. 지금은 세대가 너무 끼리끼리 뭉치잖아요. 카페나 식당을 가도 ‘여긴 젊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 분위기면 들어서길 민망해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세대가 분리되기보다는 함께 섞여 지냈으면 하는 거죠. 제도적으로나마 세대 교류 공간을 확충해갈 수 있다고 봐요. 요즘은 아파트 몇 세대 기준으로 경로당을 짓잖아요. 그런 공간을 노인만이 아닌 아이들도 놀러 가고 청년들도 차 한잔하러 가는 동네 사랑방 같은 장소로 만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보면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생각해요.”
나이가 주는 ‘노인’ 타이틀, 괘념치 말아야
정 교수는 지난해부터 제33대 한국노년학회 회장과 국민통합위원회 ‘노년의 역할이 살아 있는 사회’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작년 10월 발족한 특별위원회는 ‘노인의 역할과 세대 간 존중이 살아 있는 사회’를 목표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나가는 중이다. 여기에서도 그가 그동안 연구해온 연령통합의 개념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렇듯 여러 역할을 통해 정 교수가 우리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궁극적으로는 65세라는 나이의 틀, 그로 인해 노인이 된다는 두려움이 사라졌으면 해요. 나이가 들고 ‘어른’으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마찬가지예요. 어른은 통상 청년, 장년, 중년, 노년 모두를 아우르는 거잖아요. 나이를 기준으로 누구는 젊은이, 누구는 늙은이 나누지 말고, 그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바라봤으면 해요. 개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그렇게 바뀌어야겠죠. 그렇게 나이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연령통합 사회’라고 봅니다.”
정 교수 또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연령통합 사회를 희망하고 있다. 끝으로 오랜 세월 노년의 삶을 연구해온 그가 자신의 노후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지 물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 나이 제한이 있으니, 65세가 되면 저도 은퇴하겠죠. 제2의 인생에서 선택은 두 가지예요.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하는 것, 또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이쪽 일을 계속한다면 경험과 지식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겠지만, 그러다 꼰대가 될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렇게 되면 노후의 좋은 모델은 아닌 듯해요.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려고요. 한편으론 저 같은 노후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교육제도도 열려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평생교육이 있지만, 이 또한 세대를 분리한 교육이잖아요. 가령 어떤 분은 50세 넘어도 반도체학과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런 접근이 필요해요. 물론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죠. 나이를 떠나 더 자유롭게 대학에서 제2의 전공도 공부하면서 제2의 인생을 꾸려보면 좋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