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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라면 꼭' 위급 상황 피하는 생활 속 서비스
- 나이가 들면 언제 어느 때 위급 상황이 찾아올지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깜박이 증상이 심해져 초행길에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심혈관 질환으로 급하게 병원을 찾을 확률도 있다. 운전 중 신체 또는 인지 능력이 갑작스레 저하되어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가능하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평소 건강관리를 성실히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혼자 사는 시니어라면 예상치 못한 순간을 미연에 방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을 갖춰 놓는 것도 도움이 된다. 위급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시니어가 알아두면 좋은 생활 서비스를 소개한다. ◇ 지문 등 사전등록제 ‘지문 등 사전등록제’는 치매 노인을 비롯한 만 18세 미만의 아동과 지적 및 자폐성 정신 장애인 등 실종에 취약한 이들의 지문과 신상 정보를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미리 등록하는 제도다. 실종 사고를 방지하고 사고 발생 시 신속하게 발견하기 위해 경찰청에서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지문뿐 아니라 키‧몸무게‧흉터‧점‧문신 등 신체적 특징과 주로 다니는 장소, 사진 등을 함께 등록할 수 있어 제공하는 정보가 많을수록 실종자를 쉽게 찾아내고, 보호와 인계까지 가능하다. 신청 방법은 안전드림 홈페이지(safe182.go.kr)에서 미리 인적사항 정보를 입력하고 이후 가까운 지구대나 경찰서를 방문해 지문을 등록하는 방법이 있다. 지문 인식 기능이 있는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나 애플 앱 스토어에서 ‘안전Dream’ 앱을 다운받아 경찰서 방문 없이도 신원을 등록할 수 있다. ◇ 119 안심콜 서비스 소방청 119안전신고센터에서 운영하는 ‘119 안심콜 서비스’는 고령자 및 독거노인, 장애인 등에게 위급상황 발생 시 구급 대원이 해당 환자의 질병과 체질을 미리 알고 출동해 맞춤형 응급 처치를 가능케 하는 제도다. 급성 심혈관 질환이나 뇌졸중 등 골든타임이 중요한 질환이 발병했을 때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신청 방법은 119안전신고센터 홈페이지(www.119.go.kr)에 접속해 안내에 따라 개인정보, 병력, 복용 약물, 보호자 연락처 등을 입력하면 된다. 연락처는 휴대전화와 일반 유선전화 모두 가능하며, 본인뿐 아니라 보호자, 자녀, 사회복지사 등 대리인도 가입할 수 있다. 등록 후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등록자의 전화기로 119에 신고하면 된다. 이때 등록자의 보호자에게도 응급상황 발생 사실과 이송병원 정보가 문자 메시지로 자동 전송되기 때문에 등록자의 사고사실을 보다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반납 원스톱 서비스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반납 원스톱 서비스는 고령운전자의 운전면허 자진반납을 유도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독려하는 정책으로, 65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 발생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안전한 교통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도입됐다. 운전면허증을 지참하고 가까운 읍‧면‧동 주민 센터를 찾아가 반납하면 1인당 10만 원이 충전된 선불 교통카드를 받을 수 있다. 주민 센터에 접수된 운전면허 취소신청 정보가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의 행정체계와 연동되기 때문에 반납 즉시 교통카드 수령이 가능하다. 운전면허증을 분실한 경우에는 가까운 경찰서 민원실이나 정부24 홈페이지(minwon.go.kr)에서 발급하는 ‘운전경력증명서’와 신분증(주민등록증, 여권)으로 대체할 수 있다. 신청 대상은 서울시의 경우 면허 반납일 기준 서울시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만 70세 이상 노인이지만, 지자체에 따라 적용 연령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 2021-01-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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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나’와 독대하고 싶어 지은 집
- 조선 주자학의 적통을 이은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1491~1553)이 살았던 집이다. 몹쓸 세상 버리고 은둔했던 곳이다. 독락당(獨樂堂)이라, ‘홀로 즐기는 집’이다. 고고한 고독을 벗 삼아 은거했나? 도학자의 본분은 ‘열공’에 있으니 세상을 등지고서야 학문에 표 나게 정진했나? 둘 다 누렸을 걸 어림짐작할 만하다. 분명하기론 회재의 낙심이 실린 집이라는 거다. 풍진세상에서 일단 달아나 숨기 위해 지은 집임이 완연하다. 회재는 중신 김안로의 중용을 반대하다 벼슬에서 쫓겨났다. 당대 최고 지식인으로 탕탕 잘나가다 졸지에 추락했다. 야심만만한 마흔한 살 때였음을 생각해보라. 코피를 서 말쯤 쏟고도 남을 울분이 왜 없었으랴. 정쟁의 아귀다툼과 인간의 꿍꿍이에 대한 환멸이 컸을 테다. 에라, 마음의 문고리를 안으로 걸어 잠그고 돌아앉으리. 회재가 찾은 자구책은 은둔이었다. 아니 은둔을 상회하는 자폐였다. 독락당 일원의 모습에서 그가 지닌 둔세(遁世)의 욕구가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끈 떨어져 앙앙불락이 많은 이에게 낙향은 버겁다. 회재가 그랬다. 그는 본가가 있는 경주 양동마을 대신 안강면 자옥산 아래 소실의 집으로 내려갔다. 여기엔 아버지가 지은 작은 정자도 있었다. 회재가 서둘러 먼저 한 일은 건축이었다. 이왕에 있었던 집들을 대대적으로 고치고 늘렸다. 정자가 딸린 별서(別墅) 독락당을 새로 지었다. 그저 있던 방 하나 대충 차고 앉아 청승이나 떨 협량이 아니었던 셈이다. 의아한 건 집의 높이가 하나같이 낮다는 사실이다. 후대에 세운 솟을대문만 껑충해 얄궂다. 담장 밖에서 보면 지붕만 슬쩍 보인다. 담이 높아서가 아니다. 기단을 낮춰 지은 걸 보면 일부러 내려앉혀 만든 집이라는 걸 짐작할 만하다. 심지어 터부터 깎아 낮춘 게 아닐까. 복잡한 담장의 구성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다. 상당한 건축적 식견과 미적 센스가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을 이중삼중 구조다. 그러니 당혹스럽다. 어디가 어디인지 한눈에 감 잡기 어려운 게 아닌가. 안채와 마름들이 기거하는 공수간, 그리고 독락당으로 들어가는 길이 접하는 담장길 삼각지는 절묘해 찬탄을 터뜨리게 하지만 미로에 들어선 것처럼 어지럽기도 하다. 집과 담을 왜 이렇게 만들었나. 은둔이란 속세에 자취를 남기지 않는 일이다. 눈길을 걸어도 발자국이 남지 않아야 진짜 끝내주는 은자다. 회재는 한사코 세상과 멀어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낮은 집으로 꾹꾹 눌러 주저앉힌 자신의 겸손한 정신을 표방하고, 겹겹의 흙담으로 세상의 눈들을 차단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오라는 이, 온다는 이, 이도 저도 다 싫었을 테다. 오로지 면벽처럼 자신과 오롯이 독대하고 싶어 경계를 짓고 싶었을 테다. 그가 내심을 실어 지었을 독락당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장 외진 안통 가장자리에, 가장 조촐한 구색으로 지어놓지 않았는가. 그렇게 독락당을 음전하게 짓고서도 마음은 갈피없이 흔들렸나보다. 시로 쓰기를, 술잔을 기울여 근심을 끄고 웃었다고 했다. 공명에 쫓기는 관직에 무슨 이로움이 있겠느냐 한탄도 했다. 또 쓰기를, 솔과 대를 무수히 심었다고, 새와 물고기가 내 얼굴을 익혀 알아보더라고 했다. 낡은 추억의 악보만 남았을 뿐, 회재는 더 이상 벼슬이나 현세를 기려 노래할 염이 없었다. 세상은 본시 아름답고, 돌아다니는 사람 모두가 성인이라는 게 고명한 유자(儒者)들의 뉴스였으나 이도 속이 편할 때라야 접수가 가능하다. 결국 회재의 허탈한 마음은 흘러 자연으로 귀환했음인가. 자계천 냇가에 지은 독락당 계정(溪亭)에 앉아 산수와 교제하기를 습으로 삼았다. 일부러 공들여 마당에 정원을 꾸미진 않았다. 독락당 주변의 경물들에 사산오대(四山五臺)라 이름 붙이고 통째 정원으로 삼았다. 부글부글 끓는 가슴을 산 아니고 물 아니면 무엇으로 헹구랴. 한 쌍의 부부로 일컬어지는 하늘과 땅, 비밀스러운 언어가 스멀거리는 숲이 아니면 어디에 대고 도력을 실험하랴. 자연미의 궁극에 도달하고자 시어를 벼렸지만, 거기에 허세에 다름 아닌 달관의 낌새나 유희가 일체 없는 건 자아 부양의 용도로 시를 썼기 때문이리라. 회재는 독락동 은거 5년이 지나 다시 벼슬을 해 승승장구했다. 58세엔 다시 정쟁에 치여 유배를 당했으며, 배소에서 병으로 타계했다. 벼슬이 곧 우환이었다. 닭벼슬은 곱기라도 하지. 손가락질이야 시대의 파행에다 해야겠지만. 답사 Tip 독락당은 꼼꼼히 살펴볼 게 많은 고택이다. 집과 정자에 걸린 퇴계, 이산해, 추사. 한석봉 등의 현판 글씨도 감상할 만하다. 회재의 학행과 덕행을 기리는 옥산서원과, 회재가 자주 찾았던 정혜사 십삼층석탑도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 2020-12-2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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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가정의 달에 읽는 훈훈한 신간
- #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공저 · 다산책방)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했지만, 어려운 시절을 충실히 살아낸 우리 시대 ‘할머니’의 존재성을 부각한다. 2019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자 윤성희 외 5명의 작가가 쓴 여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 가족의 세계 (조영은 저 · 메이트북스)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알고 마주하는 건 자기 사랑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통해 가족이 준 상처의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스스로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과정에 이르게 된다. # 엄마는 괜찮아 (김도윤 저 · 아르테) 형의 우울증과 조현병, 아버지의 실패로 우울증을 얻은 어머니가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그날’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어머니의 삶을 더듬으며 애도하는 동시에 자신의 우울감도 극복해간다. # 디어 가브리엘 (할프단 프레이호브 저 · 문학동네) 첫 책으로 노르웨이 브라게 문학상 후보에 오른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할프단 프레이호브의 가족 에세이. 자폐증 아들에게 쓴 10통의 편지와 더불어 아들과 섬마을에서 보냈던 나날을 그린다. # 염증에 걸린 마음 (에드워드 불모어 저 · 심심) 인간의 뇌 지도를 그리는 데 공헌한 세계적인 신경면역학자인 저자는 “염증이 우울증의 원인”이라 단언한다. 염증이 뇌에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을 밝히며 우울증 치료의 혁명적 변화를 예고한다. # 좋은 말씀 (법정 저 · 시공사) 법정 스님의 열반 10주기를 맞아, 1994년부터 2008년까지 법회와 대중 강연을 통해 나눈 31편의 미출간 법문을 엮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했던 스님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 우리 각자의 미술관 (최혜진 저 · 휴머니스트) 지식 없이도 그림과 깊이 만나도록 안내하는 그림 감상 실용서. 미술 애호가인 최혜진 작가가 수년간 실천해온 ‘그림에게 묻고 답하기’를 통해 작품과 순수하게 교감하며 즐기는 법을 일러준다.
- 2020-05-0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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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인경 ‘온누리 사랑 챔버 오케스트라’ 단장이 사는 법
- ‘온누리 사랑 챔버 오케스트라’는 장애인 챔버 오케스트라로서 국내에서 독보적인 자리에 서 있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손인경(51) 단장은 한국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랐으며 예일대 음악 박사를 취득한 전문가로서, 1999년에 온누리 사랑 챔버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올해로 18년째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면서 그녀는 스스로도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고 말한다. 언젠가는 북한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그녀를 만나 사랑 챔버에서 사랑을 지휘하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작게 애기 활~ 둘둘셋, 셋둘셋, 크게 쫙쫙 시원하게, 미혜씨 한 번 더 멈추고 혼자서~ 멀리 둘, 파~ 둘, 올리고 내리는 활 부드럽게, 선생님 손만 봐요, 낮음 미~~ 참아야 해요, 너무 잘해서 한 번 더, 참 잘했어요~” 매주 화요일 ‘사랑 챔버’ 연습실에서 손인경 단장의 암호 같은 손놀림으로 화음이 미묘하게 달라졌고 쩌렁쩌렁 악기들이 울렸다. 손 단장의 암호에 가까운 신호와 몸짓은 단원들만을 위한 특별한 지휘처럼 보였다. 그녀는 눈빛과 표정, 손 모양으로 단원들 개개인에게 사인을 주며 가르친다. 아이들을 혼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쓰다듬어주고 이끌어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느 보통 아이들과 똑같이 말이다. 통제가 어려운 지적 장애 단원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시키지 않아도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저절로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악보도 모르고 악기를 어찌 다루는지도 모르던 단원들이 이제 연주로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치유하는 작은 선교사들이 됐어요. 아이들과 코드를 맞추고 적응해가면서 하나님 안에서 성장했어요. 제가 아이들한테 배워요.” 학부모님, 악기 선생님, 자원봉사 선생님, 단원들. 100여 명이 넘는 인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불쑥 의자에 서 있는가 하면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돌아다니거나 빽 소리를 지르고 울고 웃고 떠드는 60명의 단원들 곁에는 사랑이 넘치는 학부모와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손 단장은 코스모폴리탄으로서 한국인의 삶을 보여준다. 그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부터는 홍콩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피아노를 전공하셔서 저도 피아노를 가까이 하게 됐죠. 그런데 어느 날 기타를 치는 사람이 멋있어서 고무줄로 기타 비슷한 걸 만들어 놀았어요. 그리고 어머니에게 기타를 사달라고 졸랐죠. 그랬더니 어머니가 기타는 커서 안 된다면서 대신 바이올린을 사주셨어요. 그때부터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고 콩쿠르에 나가 입선하고 신문기사에도 나고 칭찬도 받았죠(웃음).” 그저 칭찬만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자리매김한 그녀는 한국인 최초로 예일대 음대 음악 박사까지 취득한다. 그리고 1990년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지내던 어느 날사촌오빠를 따라갔다가 온누리교회와 만나게 됐다. 거룩한 부담감으로 시작된 오케스트라 “1999년 4월 1일에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씨의 독주회를 가서 볼 일이 있었어요. 독주회였는데, 그날 앙코르를 받고 풀 오케스트라 세팅으로 남학생들이 나와서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마이웨이’ 등을 연주하더군요. 알고 보니 보육시설인 부산 소년의 집 학생들이었어요. 보육시설에서 지내는 그 아이들이 미사시간에 떠드니까 악기를 쥐어주면서 연주가 시작된 것이라고 들었어요. 그 많은 애들을 대체 누가 가르쳤을까, 충격을 받았죠.” ‘나는 뭘 하고 있지, 나누지도 못하는구나’라는 반성을 하게 됐고 그와 같은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생각은 부담감으로까지 발전했다. “목사님이 ‘뭔가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 그것은 거룩한 부담감’이라고 하셨죠. 이것이 그 거룩한 부담감인가 싶었어요. 저는 자연스럽게 장애인 오케스트라를 떠올렸어요.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만은 소마마비 장애가 있어도 국제적으로 성공한 연주자가 됐잖아요. 한국의 장애아들 중에도 재능은 있는데 선생도 없고 악기도 없고 지원도 없어서 발견되지 못하고 있는, 숨어 있는 이작 펄만이 있을 것 같았어요.” 온누리교회 집사인 손 단장은 온누리교회에 연락해 자신이 챔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장애아들을 데리고 음악을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모집이 시작됐다.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일, 좌충우돌이 없을 리 없었다. “교회에서 장애아들을 모으는데, 하용주 목사님이 정서장애아, 학습장애아, 지체장애아 모두 지원하라고 했어요. 저는 신체장애만 생각했지 지적장애까지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리고 지금처럼 풀타임으로 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죠.” 울면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첫 일 년 장애인 오케스트라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는데 타악기와 관악기를 다루는 곳들은 이미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런데 극도의 섬세함이 필요한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의 현악기를 다루는 곳은 없는 상태였다. 참고할 사례가 없으니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은 다섯 명으로 시작했죠. 첫 일 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아이들이 모이기만 한 정도였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거든요. 제가 경험이 전혀 없었고, 자폐 증세도 잘 모르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장애 등급이나 유형 같은 개념도 전혀 몰랐고. 부모님들의 요구도 부담됐어요. 눈도 못 마주치는 첫 일 년은 차에서 울고 그랬어요. 오늘은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고.” 그러나 선한 의지로 시작한 일, 망하라는 법은 없었나보다. 막상 아이들을 만나면 어떻게든 된 것이다. “연주회 섭외를 받고 그걸 위해 연습을 하게 되니 목표가 생기면서 어느 정도 정비가 됐어요. 첫 연주회는 완전 눈물바다였죠. 첫 연주회 후 새로운 섭외를 받고, 사례비도 받게 됐어요. 지금은 사례비가 엄청 많아졌어요.” 현재 ‘온누리 사랑 챔버 오케스트라’는 봉사하는 선생님 40명, 단원은 현재 60여 명에 이르는 큰 규모로 성장했다. 물론 성장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방송에 나가고 언론을 타면서 막무가내로 내 아이도 가르쳐 달라고 오는 부모도 있었지만, 연주보다는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한다며 안 나오는 학생도 있었고, 악기 연주가 성향에 안 맞는다며 그만둔 아이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차차 정리된 거죠.” 부끄럽지만 사랑 챔버와 함께 성장하다 생전 처음 만나는 특별한 아이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들로는 가르칠 수가 없었다. 온누리 사랑 챔버 오케스트라의 성장은 손 단장 개인의 성장이기도 했다. “제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 중에 아이들에게 전수할 게 하나도 없었어요(웃음). 아이들이 이탈리아어를 알 리가 없으니 연주할 때 힘을 빼라는 말도 못하고 ‘원숭이 팔’, ‘애기 팔’ 이렇게 유치원 아이 가르치듯이 해야 했죠.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 손 모양을 개발해서 가르쳐줬어요. 그래도 멜로디를 알고 박자 감각이 있으면 배우기 시작해서 첼로를 연주할 때까지 십 년 걸린 경우도 있었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도 기다렸던 거죠.” 가능성이 보이면 시간이 오래 걸려도 기다려준다는 것이야말로 온누리 사랑 챔버 오케스트라의 강점이었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어린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제일 나이 많은 아이는 1977년생이다. “창단 멤버 5명 중 한 명은 첼로, 한 명은 클라리넷을 대학교에서 전공하게 됐어요. 그런데 저한테 보람은 그런 큰 사건들이 아니고 뭔가 안 통했던 거 같은데 통하는 그런 순간들이에요. 벽이 있었는데 교감이 되는 그 순간. 그리고 우리는 숙제를 카톡으로 해요. 물론 어머니가 도와줘야 하죠. 악기를 연주한 영상을 카톡으로 보내면 아이들이 그걸 보면서 자신의 연주를 점검하고 연습을 하죠. 스마트폰 기술이 저희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에요(웃음). 그런데 그렇게 해서 다음 연습에 모이면 소리가 달라진 걸 느낄 때가 있어요. 제가 투자한 만큼 아이들이 따라온 거죠. 그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음악만 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하면서 삶을 배우게 됐다. “아이들이 변화된 것을 보는 것도 기쁘지만 어머니가 기뻐하시는 것을 보면서 제 기쁨으로 돌아오더군요. 단원 중 자폐아가 70~80%예요. 심한 애들은 정말 이유 없이 깨물고 소리 지르고 해요. 어머니가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아이들이 있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눈도 안 마주치고 앉아 있다가 뛰쳐나가고.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피아노 전주만 나와도 악기를 잡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요. 본인들이 보람을 느끼는 거죠. 서로 챙겨주는 모습도 발견되고. 그건 이 아이들이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성이죠.” “우리의 목적은 공동체” 요즘 손 단장은 과거와는 조금 다르게 오케스트라를 운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잘하는 애들이 있으면 못하는 애들도 있기 때문에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회를 덜 줬어요. 아무래도 아래쪽으로 더 치우친 방향성이었죠. 지금은 아이들의 실력을 나눠서 잘하는 아이는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그보다 못한 애들은 못한 애들을 위한 클래스가 있고요. 현악을 하는 아이들은 소규모 실내악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따로 가르치고 있어요.” 일반인도 다루기 어려운 악기인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장애인이 다룰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뮤직 테라피라고도 하죠. 여기에 오는 아이들의 95%는 음악을 너무 좋아해요. 어떤 때는 엄마는 귀찮아하는데 아이가 ‘사랑 챔버 사랑 챔버’ 노래를 불러서 끌려오는 경우도 있고(웃음). 여기 오면 너무 즐거워하는 학생도 있고.” 온누리 사랑 챔버 오케스트라의 목표는 공동체다. 더 뭉쳐야 한다는 게 손 단장의 생각이다. “그동안 큰 공연도 해왔지만 일단은 큰 연주가 있으면 저희가 뭉쳐지거든요. 아이들도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부분이고. 연주하는 모습을 녹화해서 올리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때로는 부모님도 배워오는데 그것도 큰 자극이 되거든요.” 손 단장은 사랑 챔버 단원들을 위한 바람도 덧붙였다. “언젠가는 이 아이들의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 또한 언제 떠날지 모르니까 함께 살 공동체 공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내 뜻대로 된 적이 없었지만 저에게 할 일을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대로 잘 쓰일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어요.” 카네기홀보다는 북한에서 공연하고파 손 단장은 과거를 돌아보며, 주어진 삶대로 사는 것이 자신의 삶이었다고 평가했다. “홍콩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게 되고, 좋은 학교를 나오고, 한국에 돌아와 결혼을 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제가 계획한 건 하나도 없었어요. 저는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았을 뿐이죠. 개인적인 목표요? 개인적으론 없어요(웃음). 지금 하는 일이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그러나 주어진 삶을 산다는 것이 무조건 수동적으로 사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명이 주어졌을 때는 ‘왜 시키셨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저를 시켜주셔서 감사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는 거죠. 제가 한 가지 맡겨진 일이 있으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긴 해요(웃음).” 그 말대로, 손 단장은 사명감만으로 시작한 오케스트라를 지금의 준프로급 오케스트라로 성장시켰다. 그녀가 말하는 끝장을 보는 마음가짐 덕분이었을 것이다. 손 단장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구나, 하나님이 다른 사람 돌보는 일을 시키려고 나를 이렇게 만드신 거구나’라고 깨닫는 데 10년이 걸렸단다. 두 아이 엄마로서 대학 강의에 봉사활동까지 하느라 바쁜데 최근에는 음반도 내놨다. 손 단장이 바이올린, 배일환 교수는 첼로, 이민정 교수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녀는 예일대 음대 재학 중인 1992년 이후부터 탄탄하게 연주 실력을 쌓아 실내악계에서 기량과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 챔버 같은 오케스트라가 있으면 카네기홀을 대여하고 언론을 타려고 노력하는데, 저희는 시작부터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고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따랐을 뿐이에요. 길이 열리는 대로 자연스럽게 이뤄진 거죠. 얼마 전에는 북한 장애인 오케스트라와 함께할 기회도 있었는데 핵실험 때문에 무산됐죠. 사실 저희 목표는 카네기홀보다는 북한이에요.”
- 2017-10-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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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홀로 생활의 고수들, 혼밥·혼술족
-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1인 가구는 520만 가구를 넘어 전체 가구의 27.8%를 기록했다. 4가구 중 1가구가 1인 가구인 셈이다. 이와 같은 1인 가구의 증가로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나 홀로 삶’과 관련한 다양한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 혼자 술을 마시는 ‘혼술족’이 그 대표적 사례다. 점심시간이 되자 대학원생 한정빈(27)씨는 연구실에서 나와 음식점으로 향했다. 여느 학생들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혼자 밥을 먹으러 간다는 점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정빈씨는 이런 시선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처음엔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게 어색했죠. 외톨이처럼 보이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남들 시선을 많이 의식했어요. 지금은 신경도 안 쓰지만요. 오히려 혼자 밥을 먹는 게 여럿이서 먹는 것보다 편해졌죠. ‘너 신경 쓰고 나 신경 쓸 바에야 그냥 혼자 먹자’ 하면서 혼밥을 시작하게 됐어요. 혼밥 해본 적 있으세요?(웃음)” 음식점에 가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혼자 온 사람까지. ‘혼밥족’을 좀 눈여겨보면 유형이 같지는 않다. 허겁지겁 음식만 먹고 나가는 사람은 혼밥 초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혼밥 고수는 음식점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부터 다르다.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와 입장부터 퇴장까지 여유가 넘친다. 그렇다면 당신의 ‘혼밥’ 레벨은? 마침 인터넷상에서 떠돌고 있는 ‘혼밥 레벨’ 분류표가 인기다. ‘혼밥’을 어디까지 경험해봤는지 체크해볼 수 있는 일종의 자가 ‘혼밥진단표’인 셈이다. 1단계 편의점에서 밥 먹기, 2단계 학생식당에서 밥 먹기, 8단계 고깃집, 횟집에서 먹기 등 단계가 올라갈수록 난이도가 올라가며 혼밥의 경지를 보여준다. 혼밥족이 증가하면서 이들을 겨냥한 ‘혼밥집’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서울 홍대에 위치한 일본식 라면집 ‘이찌멘’은 그야말로 혼밥 입문자에게 안성맞춤이다. 우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종업원을 찾아보기 힘들다. 문 앞에 놓인 무인 자판기를 이용해 식권을 사고 원하는 자리에 앉아 벨을 누르면 종업원이 식권을 확인한 뒤 메뉴를 가져다준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찌멘’ 홍대점 매니저는 “칸막이 테이블을 사용하다 보니 이곳에선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거의 없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혼밥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혼밥집 메뉴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2인분 이상만 가능한’ 대표 메뉴, 고기. 그러나 이제는 고깃집도 혼밥족을 위해 1인 화로를 제공하고 있다. 드디어 혼자서도 1인분만 시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직장인 이모씨(31)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혼자 점심을 해결한다. 그는 자신을 자발적 혼밥족이라고 설명한다.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혼자 먹나보다’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저는 누구와 식사 약속을 잡으려 애쓰지 않아요. 혼자 점심을 먹으면 그 시간만큼은 업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못 봤던 영상을 보거나 노래를 듣거나… 저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밥을 먹을 수 있죠. 외롭지 않냐고요? 아뇨. 저는 제 행복을 위해서 혼자 밥을 먹습니다(웃음).” 술도 예외는 아니다.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처럼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 ‘혼술족’도 있다. tvN 드라마 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진심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내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아픔을 나누는 것보다는 혼자 삭히는 것이, 이렇게 혼자 마시는 한 잔의 술이 더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난 이렇게 ‘혼술’을 한다.” 혼밥족보다 보기 힘들다는 혼술족을 만나기 위해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혼술집을 찾아갔다. 3명 이상의 손님은 들어올 수 없다는 이곳은 이름부터 아주 그럴듯하다. ‘인생은 솔로다’. 혼술집에 이렇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 또 있을까. 평일 저녁 7시, 조금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역시 혼술족은 달랐다. 가게 안에는 이미 3명의 손님이 카운터를 중심으로 ‘ㄷ’자로 놓인 테이블에 앉아 술을 비우고 있었다. 직장인 임모씨(29)는 퇴근 후 이곳을 홀로 찾았다. 예전 같았으면 동료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겠지만 혼술의 매력을 알고 난 뒤론 혼술집을 찾는다. “친구들이랑 마시면 아무래도 과음하는 날도 많고 지출도 많이 돼서 요즘엔 혼술을 즐기고 있어요. 집 앞이라 편하게 와서 한두 잔 정도만 마시고 가는 거죠. 안주도 1인용으로 판매하고 있어서 혼자 먹기 딱 좋아요. 여유롭게 노래도 들으면서 한잔하는 혼술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어요.” 물론 혼술, 혼밥 문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음식평론가 황교익은 라디오 프로그램 에서 “혼밥은 마음의 병이고 사회적 자폐”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 몇몇 시니어는 “술을 마시는 건 이해하지만 왜 보는 눈이 많은 밖에서 혼자 마시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궁상맞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20·30세대는 이런 시선들에 그닥 신경 쓰지 않는다. 누가 어떻게 보든 당당히 혼자서도 삶을 즐길 수 있는 ‘나 홀로’ 라이프를 선택하고 있다. 혼밥, 혼술은 꼭 20·30세대만 즐길 수 있는 문화는 아니다. 심신이 피곤해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 깊어가는 가을을 오로지 홀로 느껴보고 싶은 어느 날 하루쯤은 시니어 세대도 혼밥, 혼술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 2017-09-2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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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도 더운데, 뭘 하지?” 오늘 ‘북캉스’ 떠나볼까요?!
- 지독하게 더웠던 2016년 여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올해도 그 끔찍한 시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무더위를 피해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더위의 고통에서 벗어나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은 의외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것도 책과 함께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들이, 알고 보면 근처 한 시간 거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북캉스’로 하루 보낼 곳을 기웃거려볼까. *북캉스: 책을 뜻하는 영어 단어 ‘북’에 ‘바캉스’를 결합시켜 만든 신조어 책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TV, 영화 등 화려한 영상 문화와 게임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조류에 밀려 문화의 중심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책이었다. 우리들에게 지금 책은 영상과 말의 과잉으로 넘쳐나는 일상을 힐링하는 촉매로서 그 역할을 되찾고 있다.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의 도서관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 속에서 일상을 힐링하는 책의 공공기능적 역할을 간파한 기업들은 너도나도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문화 공간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이제 젊은 시절처럼 산으로 바다로 가지 않아도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났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대신 도서관이나 동주민센터, 백화점 북카페, 서점 등에서 책을 읽으며 더위를 식히는 이른바 ‘북캉스’ 문화가 시니어들에게도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곳곳에 위치한 책 향기 그윽한 서점과 강연과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복합공간의 도서관은 무더위를 식히는 도심 속 정자마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 순화동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한길사 ‘순화동천’ 책 좀 읽었다는 시니어들에게 인문학 중심 도서들을 주로 펴낸 한길사라는 출판사가 만들어내는 무게감은 각별하다. 그 한길사가 오랜 준비 끝에 지난 4월 말에 인문예술공간 ‘순화동천’의 문을 열었다. 한길사가 창업 초기 자리했던 서울 중구 순화동에 만들어진 순화동천은 3만여 권의 책이 즐비한 550평 규모의 공간이며 책 박물관, 갤러리, 강의실, 회의실, 서점으로 구성됐다. 한길사는 오래전부터 독자가 중심이 된 ‘책 놀이터’를 마련하고자 했으며 순화동의 ‘순화’와 노장사상에 나오는 이상향인 ‘동천’을 더해 ‘순화동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문·예술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평화를 순례하는 유토피아’가 되겠다는 의미다. 책 박물관은 근·현대출판문화사에 빛나는 아름다운 고서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또한 작은 음악회를 열 수 있어 음악과 미술을 함께 즐길 수 있다. 강의실과 회의실로 사용할 수 있는 4개의 공간은 각각 ‘퍼스트아트’, ‘한나 아렌트 방’, ‘윌리엄 모리스 방’, ‘플라톤 방’으로 불린다. 전시회나 출판기념회, 8~15명이 참석하는 소규모 회의, 50~70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강연을 진행할 수 있으며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는다. 아트갤러리와 한길책방은 60m에 이르는 긴 복도로 이뤄져 있다. 복도의 한쪽 벽은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이 걸린 아트갤러리로, 다른 쪽 벽은 한길사가 지난 40년 동안 펴낸 고품격 인문·예술도서가 들어찬 한길책방이다. 복도 중간에는 ‘카페뮤지엄’이 있어 커피와 함께 잠시 쉬며 책과 미술 작품을 즐길 수 있다. ◇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는 시원한 자유, 신세계 ‘별마당 도서관’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코엑스 안에 초대형 도서관이 있다? 사실이다. 신세계가 지난 5월 말에 문을 연 ‘별마당 도서관’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도서관’이다. 회원카드도 따로 없다. 오래 머물러도 된다. 음료를 가지고 와도 괜찮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책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자유다. 별마당 도서관은 총면적 2800㎡에 2개 층으로 구성돼 있다. 도서관 내부에는 13m 높이의 대형 서가 3개를 중심으로 소파형·계단형 등 총 200석의 의자와 책상을 배치했다. 또 은은한 간접조명을 설치해 개인 서재 분위기를 냈고, 곳곳에 콘센트와 USB 단자를 구비해 노트북과 휴대전화 충전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는 5만여 권의 장서와 600여 권의 잡지가 준비되어 있는데, 잡지 코너만 보면 국내 최대 규모다. 고객들의 도서 기증도 받고 있기에 집에 보관해둔 책을 기증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별마당 도서관은 대출은 불가능하며 열람만 가능하다. 또한 도난방지 장치가 없다. 도서관과 쇼핑몰 사이에 출입구가 따로 없이 사방으로 열려 있는 구조이지만, 도난경보기 등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믿는 구조다. 별마당 도서관은 문화와 휴식을 갖춘 열린 도서관을 찾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어 도서관이 지역 상권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시설이라고 판단해 만들어졌다. 별마당 도서관의 모델은 인구 5만 명의 소도시인 일본 다케오 시의 ‘다케오 시립 도서관’이다. 다케오 시립 도서관은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열린 도서관 콘셉트로 2013년에 리뉴얼한 이후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 키덜트 겨냥한 예스24 ‘홍대던전’ 인터넷 서점들의 오프라인 서점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그동안 인터넷 서점들이 오프라인 거점을 주로 중고서점 중심으로 만든 것과는 달리, 예스24는 콘셉트 서점을 기획해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 서브컬처(하위문화) 복합문화공간인 ‘홍대던전’을 열었다. 홍대던전은 청소년에서 키덜트까지를 주 고객으로 하는 라이트노벨(가벼운 느낌의 장르소설)·애니메이션·게임 등 ‘서브컬처’ 맞춤문화공간을 지향한다. 5월에 문을 연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과 아래위층으로 연결돼 있다. ‘홍대던전’에는 누구나 무료로 라이트노벨을 읽을 수 있는 열람공간, 피규어와 퍼즐 등 캐릭터 상품과 코스프레 전문용품을 모아둔 판매공간, 애니메이션과 게임 속 메뉴를 모티브로 한 음식을 판매하는 매점 등이 마련되어 있다. ◇ 지적 세계로의 여행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현대카드는 ‘혁신’을 기업 이미지로 삼으면서 아날로그와의 적극적인 결합을 꾸준히 지향했다. 서울 도심의 네 곳에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세워진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는 아날로그의 대표적 콘텐츠인 책에 주목한 현대카드의 또 다른 실험이다. 공연과 문화공간 등을 통해 컬처 브랜딩의 선두주자로 각인된 현대카드에서 책을 통해 지적 브랜딩의 출발점을 잡은 것이다. 가회동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디자인 서적들이, 이태원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음악 관련 서적들이 있다.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책과 함께 1950년대 이후에 나온 1만여 장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LP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LP를 통한 음악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 계속 업데이트하는 중이다. 신사동 ‘쿠킹 라이브러리’는 음식 관련 서적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되어 있다. 재료 카드를 사면 현장에서 요리도 가능하다고 한다. 청담동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독서를 여행과 동일하다고 여기고 1만5000여 권에 달하는 여행 관련 서적들뿐만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는 여행을 ‘일상의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모든 형태의 지적 활동’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 사회취약 계층과 함께하는 ‘네이버 라이브러리’ 분당구 정자동의 네이버 사옥 로비에 자리한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도서관, 서점, 북카페를 결합시켜 책이 있는 공간의 장점들을 모두 경험하도록 하는 데 목적을 뒀다. 디자인과 IT에 특화된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디자인 장서 1만7000여 권, IT 장서 7000여 권, 전 세계의 전문 백과사전 1300여 권, 국내외 잡지 250여 종이 준비되어 있다. IT 기업이 운영하는 도서관이라는 특색을 살리면서 개인이 구매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비싼 디자인과 IT 분야의 책들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공간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책을 고르기 쉽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반적인 도서관들과는 달리 ‘절대 정숙’ 문화가 아닌 대화하고 토론하는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네이버의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 사회취약 계층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사서는 시니어들이 맡고 있으며 안에 위치한 카페는 발달장애인의 일터를 만드는 회사 베어베터와 함께 운영되며 지적장애나 자폐를 가진 청년들이 커피를 만든다. ◇ 도심 속 한옥 도서관 ‘청운문학도서관’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청운문학도서관은 종로구에서 16번째로 만들어진 도서관이자 최초로 한옥으로 만들어진 공공 도서관이다. 지붕은 전통 방식의 수제 기와를 사용했고 담 위에 얹은 기와는 돈의문 뉴타운 지역에서 철거된 한옥의 기와 3000여 장을 가져와 사용했다. 그야말로 전통 한옥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건물이다. 청운문학도서관 1층은 한옥이며 지하는 반지하식 양옥 건물이다. 1층에서는 시, 문학 창작교실, 문화예술교육, 인문학 콘서트 등이 열린다. 지하층은 시, 소설, 수필 위주의 문학 도서를 만날 수 있는 자료실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이 있다. 또한 온돌식 독서공간도 마련되어 한옥 도서관이라는 콘셉트를 충실하게 살리고 있다. 물론 여름에는 에어컨을 통해시원하게 유지된다고 하니 냉방은 합리적인 현대기술을 이용했겠다. 도서관 같은 서점 인터파크 ‘북파크’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2, 3층 총 2000㎡ 공간에 자리 잡은 ‘북파크’는 북카페나 도서관처럼 이용할 수 있는 서점이다. 50여 개의 테이블과 200여 개의 의자, 앉아서 책 읽기가 가능한 계단 등이 마련돼 있다. 독서공간의 분위기도 다락방 스타일, 테라스 스타일, 응접실 스타일 등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또 계단 밑이나 서가 뒤 숨은 공간에서 아늑한 분위기를 즐기며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어린이책 코너 부근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뒹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일곱 곳이나 있다. ‘보신 책은 북박스에 넣어주시면 직원이 정리한다’는 안내문구까지 있으니, 책의 구매 여부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서점이다. 북파크는 인터파크의 과학재단인 카오스재단이 2016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카오스재단의 설립 목적인 ‘과학의 대중화와 과학지식의 공유’ 취지에 맞춰 총 10만여 권의 보유 서적 중 절반 정도가 과학 관련 책이다. 서점 안에는 35석 규모의 다윈룸과 8석 규모의 뉴턴룸 등 모임 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북파크는 이태원이나 경리단길 유명 맛집과 가깝고 공연장이 같은 건물에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 여름방학이 되면 손주 손을 잡고 다녀와도 좋겠다. 이밖에도 CJ CGV와 쉐라톤워커힐 호텔도 도서관을 만들었다. 금융계에서도 KEB 하나은행 본점인 을지로 사옥에도 도서관이 들어설 예정이고 대신증권도 명동 사옥에 도서관을 열었다. 기업들이 앞다퉈 사회공헌 차원에서 도서관을 개장하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과거에는 한 노인의 죽음을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에 비유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식의 총량이 매일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막대하게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인생 경륜을 어설프게 드러내는 것은 자칫 뭘 모르면서 꼰대 노릇하는 걸로 비치기 십상인 세상이 됐다. 나이 듦에 따라 정신과 지식의 세계도 변모하기에 품위 있게 늙는 일은 중요하다. 문화지성인으로서의 비움과 채움이 필요한 시니어에게 도서관은 여전히 매력적인 공간이자 여행지다. 다시 찾아온 무더운 여름, 어디를 갈까 고민 말고 가까운 도서관에 놀러 가보자.
- 2017-07-0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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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너와 나 & 우리
- “함께! 너와나 & 우리”라는 슬로건을 통하여 성인 발달장애인 교육을 2016년 3월 3일(목요일)부터 현제까지 광진구 화양동 주민센터(주소:서울시 광진구 능동로17길 39, 전화 : 02-450-1515 동장 김용식)에서 매주(수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3~6시 실시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아동(18세미만) 청소년교육은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성인(고교 졸업) 후부터는 교육이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요청을 받고 희망벨이라는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경찰이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지적장애인 노동착취 사건’과 관련해 농장주 부부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중앙일보 8월1)는 보도를 접한다. 지적장애인을 노예취급하며 노동력 착취와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기사를 볼 때 분개한다. 발달장애인은 발달장애인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면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 등을 말한다. 지적장애인은 정신 발육이 항구적으로 지체되어 지적 능력의 발달이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하여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과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한 사람이다. 그리고 자폐성장애인은 소아기 자폐증, 비전형적 자폐증에 따른 언어·신체표현·자기조절·사회적응 기능 및 능력의 장애로 인하여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 밖에 통상적인 발달이 나타나지 아니하거나 크게 지연되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이다. (발달장애인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2014년 11월 19(법률 제12844호)‘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발달장애인법)[시행 2015.11.21.]에서 “발달장애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여 그들의 생애주기에 따른 특성 및 복지 욕구에 적합한 지원과 권리옹호 등이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발달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촉진하고, 권리를 보호하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목적)라고 그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3월부터 시작된 교육은 발달장애가 있는 만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개별 발달 장애특성에 따라 기초문예, 사회활동증진, 건강관리지원, 신체활동, 여가지원, 직업준비 등의 교육프로그램을 비롯해 미술표현, 무용, 음악, 취미활동을 대상자의 요구와 가족들의 필요에 따라 맞춤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이 일상생활과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며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10여명의 발달장애인을 교육하는 희망벨 성인 발달장애인 교육센터는 부모와 장애인 당자사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며 개별적인 욕구와 보호를 함께 나누어 가기를 기대해본다. 관 주도가 아닌 민간이 계획하고 관(주민센터나 지자체)이 협력하는 모델을 통하여 발달장애인 뿐만 아니라 다른 복지영역도 민관이 서로 협력하는 모델이 확대되기를 소망해본다.
- 2016-08-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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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조동성 안중근 의사 기념관장의 멈추지 않는 미래 탐색기
- 조동성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로 무려 35년 반을 재직한 대한민국 경영학계의 대표 학자다. 디자인 경영 개념을 제시하여 경영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던 그는 2011년 남산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교수로서의 성공적인 생활에 이어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있는 조동성(趙東成·67) 관장의 목소리를 통해 ‘인생 본고사에’ 도전하는 의미를 짚어봤다. 조동성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은 인터뷰 내내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아마도 입가에 가시지 않는 웃음기가 그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몇 년 전 서울대학교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젊음이 새삼 느껴졌다. 그는 안중근 의사를 ‘로맨티스트’라고 표현했다. 원칙에 살고 원칙에 죽었던 이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안중근 의사에 대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며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아직 안중근 의사에 대해 모르는 점 많아 “대략 1년에 10만 명 정도 기념관을 찾고 있어요. 저는 경영학을 한 사람이다 보니 마케팅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좌상이 아니라 보부상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안중근 의사 기념관 홍보대사란 직함을 만들었습니다. 500여 명을 홍보대사로 양성 및 위임하여 전국의 각 초중고에 가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카데미를 만들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안중근아카데미는 지난 5년 동안 1년에 두 기수씩 진행됐다. 50대, 60대로 학교 교사, 대학 교수로 은퇴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국민의 혈세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돈을 벌 수 있으면 자체 수입을 만들어서 정부 지원을 되도록 안 받는 쪽으로 가자는 생각이 있어요. 혈세는 받을 만큼만 받자는 거죠. 마침 여기가 위치가 좋아요. 서울역이나 남대문에서 5분 거리입니다. 직장인들도 많이 다니구요. 그래서 찻집을 하나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돈도 벌고 사람도 오게끔 하려는 생각이에요.” 조 관장은 그에 더해 ‘의류 사업’(?) 진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캐릭터가 미키마우스입니다. 그 다음이 체 게바라라고 해요. 체 게바라는 티셔츠로 그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죠. 안중근 의사도 그렇게 해보고자 합니다. 돈을 버는 것과 함께 사회적 역할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찔레이자 장미다 조 관장은 2014년 2월 서울대학교에서의 35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마치게 됐다.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다. “어머니에게 서울대에서 일을 시작한다고 알려드린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날 저에게 ‘무릎 꿇고 앉아라. 나하고 약속을 하자’라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저에게 ‘정년 퇴임할 때까지 서울대를 떠날 생각을 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가 1978년이었죠.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살게 됐어요. 사실 학교를 떠날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의 말씀이 저를 붙잡았죠.”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모이는 곳에서 보낸,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렇게 한 우물을 팠을 때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한 우물을 파야 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성이 확실하게 있다고 생각이 들면 성공할 때까지 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조 관장의 저서 중에는 라는 공저가 있다. 그렇다면 그는 장미의 삶이었을까 아니면 찔레의 삶이었을까? “장미는 축적하는 삶입니다. 반면 찔레는 처음부터 가진 걸 즐기는 삶이죠. 큰 조직의 일원으로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삶은 장미입니다. 군대나 대기업이 대표적인 장미의 삶이죠. 장미는 자기 삶이 없고 50, 60대가 되면 힘들어집니다. 그에 비하면 교수는 찔레의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찔레도 한 길만 계속 파다 보면 장미처럼 돼요. 그러니까 제 삶은 장미와 찔레로 굳이 구분 짓는다기보다는 일정한 궤적으로서의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서울대라는 조직은 조직 구성원이 갖고 있는 능력을 확장해줄 수 있는 곳이라는 특성이 있음을 잊지 않았다. 같은 말이라도 서울대 교수가 말한다고 하면 좀 더 믿음이 갈 수밖에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는 그 현실에 혜택을 받으면 받았지 자신이 희생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교수 생활의 마지막 봉사 조 관장은 서울대 교수 생활의 마지막 해에 경영학 교수로서 사회에 어떤 봉사를 할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서울대가 아닌 대학교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확실한 봉사라고 판단했다. “제가 지도한 학생들이 전국 70여 개 대학에 교수로 있어요. 그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두 시간 정도 특강 시간을 주면 내가 가서 특강을 진행하겠다, 향토음식을 사주면 맛있게 먹고 돌아오겠다라고(웃음).” 그렇게 15개 대학이 정해졌고 한 주에 한 번씩 특강을 나갔다. 2013년 9월부터 12월까지 2학기 내내 가졌던 강의 봉사 속에서 그는 많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강의를 똑같이 하려다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아서 그중에서 괜찮은 걸 골라 강의하자고 했어요. 질문들 중에 가장 많이 나온 게 두 개였어요. 첫 번째는 ‘좋아하는 걸 할까요, 잘하는 걸 할까요’였습니다.” 그는 그 문제에 대해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많이 나온 질문에 대해 답하다 보니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더란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온 질문은 ‘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꿈에 대한 질문은 즉답을 하는 순간 질문의 함정에 걸리는 거예요. 묻는 이가 스스로 선택하여 말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그가 본 꿈을 대하는 학생들의 유형은 다음 네 가지였다. 1.확실하게 꿈이 있고 그 꿈이 절대 안 변하는 사람 2.확실하게 꿈이 있는데 확실하게 바뀌는 꿈 3.꿈을 가지고 있느냐고 하면 적당히 내 꿈을 말하지만. 자신이 없고 확신이 없는 것. 4.아예 깨끗하게 꿈이 없는 것. 내 꿈이 아니라 가문의 영광, 부모의 꿈 등등. “1, 2는 그 사람의 꿈이 확실한 겁니다. 반면 3, 4는 꿈이 없거나 모르는 거죠. 되레 3, 4의 유형은 크게 부담이 없어요. 이들은 잘하는 걸 계속하면 됩니다. 그러나 1, 2는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좋아하는 걸 하라고 해야겠죠.” 자신의 첫 번째 스승, 아버지 조 관장은 자신의 삶이 평탄하기만 했던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가 안 나오거나 친구 관계가 틀어지거나 하는 소소하지만 심각한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는 품성이 그러한 갈등이 큰 상처가 되는 걸 막았다. 그의 그런 기질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면이 있었다. “선친께서는 교수를 하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국회의원에도 출마하셨죠. 그러나 당선은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가 제가 막 대학생이 됐을 때였죠. 낙선한 그날 아버지께 깎은 사과를 드리기 위해 방에 들어갔는데 아버지께서는 거기서 책을 쌓아놓고 글을 쓰고 계시더군요. 뭐하시냐고 여쭤봤어요. 책들은 러시아로 된 책들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나라가 남북 분단이 되어 있고 통일이 가장 큰 과제인데 소련의 도움 없이 통일될 것 같지가 않다. 옛날에 러시아에 대해 배운 걸 정리해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패배한 선거날에 말이죠. 그런 분이셨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게 아버지의 철학이었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버지 덕분이었다는 그는 그런 습관 덕분에 서울대 교수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제 비로소 인생 본고사를 시작한 셈 조 관장은 교수직 퇴임 이후의 가장 큰 변화로 중압감에서 벗어난 걸 들었다. 서울대학교라는 이름의 무게에서 그도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게 되더군요. 교수 사회에서도 최고여야 하고 표정, 행동, 매너 등등을 고민하게 돼요. 제 한마디가 서울대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면 더 그렇죠. 그런데 학교에서 월급 받을 때와 달리 지금은 명예교수니까. 명예교수는 한 푼도 안 받거든요(웃음).” 그는 인생 후반전이라는 말은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저는 제가 후반전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제가 고3일 때, 모의고사를 열 번 보고 본고사를 봤어요. 그래서 40대, 50대일 때는 모의고사를 7번 본 거 같았죠. 두세 번 더 보면 이제 진짜 인생의 본고사를 보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8번째, 9번째 모의고사를 봤고. 지금에 와선 모의고사는 다 봤고 이제야 본고사를 볼 시간이라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은퇴 후 인생이란 표현이 저에게는 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스승이 많으면 행복한 삶이라고 하던가. 그는 자신에게 인생의 가르침을 준 사람들을 하나하나 꼽았다. “첫 번째, 두 번째가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세 번째 분이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이에요. 그분께서는 ‘올림픽 기록은 지키라고 있는 게 아니라 깨라고 있는 거다. 역사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깨기 위해서 하는 거다. 하루하루를 과거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깨고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 살아라’라고 말씀하셨죠. 그 말씀이 지금도 생각나요. 그리고 서강대 경제학과를 맡고 계셨던 김덕중 교수님입니다. 그분께서 1975년께 제가 하버드대학을 마치고 막 귀국했을 때 말씀하셨죠. ‘하버드를 나왔으니 기고만장할 때다. 사회에서도 인정해줄 거다. 그거 딱 5년 간다. 하버드라는 이름이 깨질 때를 위해 지금 준비하고 능력을 쌓아라’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누구라도 세상에 도움이 될 능력을 갖고 있다 조 관장이 접한 경험, 그리고 그가 만난 스승들은 그에게 미래를 놓지 않는 힘을 갖게 만들었다. 그는 그러한 힘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접근하지 못했던 분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는 최근 ‘사람의 능력을 발견하는 작업’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자폐증인 사람들의 능력을 발굴하는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군대 시절, 고문관인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친구였죠. 그런데 그 친구가 어느 날 풀피리를 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소리에 모든 사람이 감동을 받았고, 저 또한 마찬가지였죠. 이 세상에 불필요한 사람은 없다는 걸 느끼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군대 시절의 기억은 그에게 사람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끔 만들었다. 그의 이 새로운 작업은 무엇보다도 그의 가족 중 한사람이 자폐증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요즘은 자폐증 부모들이 어떻게 자녀들의 능력을 찾아냈는가를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생각해보면 풀피리를 불었던 그 친구를 접한 경험에서 갖게 된 자세 같기도 해요. 누구에게라도 능력은 있다, 그러니 그걸 찾아내게 돕자는 겁니다.” 끊임없이 미래를 갈구하는 이가 이제 타인의 미래를 찾아주기 위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 한다. 실로 아름다운 나비효과 아닌가. 이제 인생 본고사를 치르려 한다는 조 관장의 말이 실제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 2016-04-1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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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과 고령자 면역의 중요성
- 대상포진이라는 병은 ‘통증의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통증이 가장 무섭다. 피부에 생기는 물집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딱지가 생기면서 가라앉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통증은 한두 달 이상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통각에서 통증을 느끼게 하는 신경세포를 지속적으로 망가뜨리면서 견디기 힘들 정도의 아픔을 지속적으로 주기 때문이다. 초기에 적절하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수년까지도 이 통증이 지속되면서 우울증이나 수면장애 등의 2차적인 문제를 남기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바이러스가 어디에 문제를 만드느냐에 따라 각막염, 녹내장으로 실명을 일으키거나 뇌졸중, 심근경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구안와사라고 알려진 안면신경마비도 연평균 4.2% 정도의 증가율을 보이는데, 그 원인으로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의한 안면신경 손상을 지목하는 것이다. 그런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대상포진 환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2010년에 45만여 명이던 환자가 2012년에는 57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고, 다시 2년 후인 2014년에는 64만 명 수준까지 대폭 늘어났다. 4년 전인 2010년에 비하면 무려 42%나 증가한 것이다. 대상포진 환자 증가 추세 우리나라의 대상포진 환자는 왜 이렇게 급작스런 증가율을 보이는 것일까? 원래 대상포진이라는 병은 어릴 적 수두를 앓았던 사람에게서 발병하는 질환이다. 이 수두 바이러스가 수두가 완치된 이후에도 신경다발 속에 잠복해 있다가 신체의 면역력이 약해지면 증식하게 된다. 그 후에 신경을 타고 피부로 내려와서 염증과 발진, 물집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소아기에 수두를 앓았던 사람만 이 병에 걸린다면, 유독 요즘에 그 발병률이 늘어나는 이유는 더더욱 설명하기 어렵게 된다. 성인을 대상으로 본다면, 대상포진 환자들이 유아였을 적의 특정한 몇 년 동안 수두가 크게 유행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5년부터 국가 예방접종사업에 포함되어 의무적으로 수두 백신을 맞은 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되면 대상포진은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 실체적인 진실에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2013년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대상포진 환자의 약 60%는 연령층으로 볼 때 50대 이상이었다. 면역력이 자연스럽게 떨어지기 마련인 65세 고령층을 놓고 비교해보면, 40세 이하의 청·장년층보다 무려 8~10배 발병위험이 높다. 또, 폭염으로 인해 체력 소모가 심해지는 7~9월에 노년층의 대상포진 발병률이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대상포진은 면역력만 충분히 유지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병인데, 면역력이 약해지기 마련인 노년층에게는 쉽게 찾아올 수 있는 불청객이라는 것이다. 이 대상포진으로 인한 끔찍한 고통은 노령인구에게 심각한 부담을 주기 마련이다. 70대 영국인 호스피스의 사연은 그 심각성을 더 크게 보여준다. 호스피스 간호사로서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의 안락사를 돕고, 그들의 여명을 보살폈던 70대 노인이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은 후, 나이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그 끔찍한 고통이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 삶에 대한 미련을 접고 말았다. 그래서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더라도 영국에선 안락사가 불법이어서, 자의에 의한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로 건너간 것이다. 결국 가족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생을 마칠 준비를 끝낸 후에 한 병원에서 약물투여로 숨을 거두었다. 대상포진은 백신예방이 최선 이 대상포진의 고위험군 환자층은 노년층만이 아니다. 갱년기에 접어든 여성이나 당뇨병,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자도 면역력이 약해지므로 고위험군에 속한다. 물론 노년층일수록 그 확률은 높아진다. 대상포진이 일단 발병한 후에는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 시점이다. 확산되기 이전에 신속한 치료를 해야 효과가 좋다. 물집이 생기기 전까지는 감기 몸살에 걸린 것처럼 근육통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대상포진이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병을 키우기 마련이다. 결국 대상포진은 백신으로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대상포진 백신은 공급의 한계로 인해 50대 이상의 고령층만 접종이 가능하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백신 중에서 가격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15만~18만 원 정도 하는 가격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소수만 백신을 맞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백신의 효과는 얼마나 될까?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60대 이상의 인구 30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를 보면 발생 위험이 55%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성별이나 인종, 만성질환 여부에 관계없이 고른 효과를 보였다. 또, 만약 발병하더라도 증상이 심하지 않고 잘 견딜 정도로 지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상포진의 원인질환인 수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거의 모든 유아들이 수두 예방접종을 맞지만 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백신의 예방효과가 100%라기보다는 가볍게 앓고 지나갈 정도로 막아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즉, 수두의 감염과 그로 인한 성인들의 대상포진 발생 자체를 완벽히 억제할 수는 없지만, 백신접종만 효과적으로 잘되면 삶을 고통스럽게 할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신접종의 중요성 노년층에게 또 필요한 접종으로는 인플루엔자 백신을 들 수 있다. 주로 겨울철에 유행하기 마련인 인플루엔자는 독감이라는 병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또한 면역력이 떨어지는 65세 이상의 노인과 만성질환자, 그리고 장기이식 등으로 인해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고 있는 사람에게 발병될 경우 합병증으로 진행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의 합병증이라면 가장 무서운 것이 역시 폐렴이다. 폐렴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자체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지만, 2차적으로 다른 세균이나 곰팡이균에 감염되어 세균성 폐렴으로 나타나기도 있다. 현재의 인플루엔자 백신은 보통 3~4가지의 예상 인플루엔자에 대한 백신을 섞어서 접종한다. 효력은 겨울철과 봄철을 지날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현재 밝혀진 인플루엔자의 종류도 이론적으로 144가지나 되며, 유전자 돌연변이 등으로 그 이상의 종류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완벽한 대책은 되지 못하나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는 있다. 그 외에도 폐렴구균 백신 또한 같은 이유로 노년층에게 필요하다. 이렇게 백신접종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이른바 ‘집단면역’을 형성할 수 있다. 모든 구성원은 아니더라도 그 집단 대부분의 구성원이 해당 질환에 면역을 형성하고 있다면 전염의 고리가 끊어지기 때문에 유행병이 발생하기 어렵게 된다. 만약 이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면 유행병을 넘어 풍토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새롭게 이주해오는 주민이나 신생아는 계속 생기기 때문에 그 사회의 집단면역은 가변적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것이다. 실제로 1997년 이후 영국에서는 웨이크필드 박사가 홍역백신으로 인해 자폐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접종거부 바람이 확산되는 바람에 3차례의 홍역 대유행이 영국을 휩쓸었고, 현재도 영국은 홍역 유행국으로 남아 있다. 매년 전 세계에서 백신접종 거부로 사망하는 사람이 150만 명 수준이다. 건강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철저한 백신접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혁재(崔爀在) 약사 경희의료원 약제본부 예제팀장 경희대 약학대학 객원교수, 한국병원약사회 법제이사, 서울시 약사회 병원약사이사 대한약물역학위해관리학회 총무이사
- 2016-01-20 1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