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1인 가구는 520만 가구를 넘어 전체 가구의 27.8%를 기록했다. 4가구 중 1가구가 1인 가구인 셈이다. 이와 같은 1인 가구의 증가로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나 홀로 삶’과 관련한 다양한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 혼자 술을 마시는 ‘혼술족’이 그 대표적 사례다.
점심시간이 되자 대학원생 한정빈(27)씨는 연구실에서 나와 음식점으로 향했다. 여느 학생들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혼자 밥을 먹으러 간다는 점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정빈씨는 이런 시선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처음엔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게 어색했죠. 외톨이처럼 보이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남들 시선을 많이 의식했어요. 지금은 신경도 안 쓰지만요. 오히려 혼자 밥을 먹는 게 여럿이서 먹는 것보다 편해졌죠. ‘너 신경 쓰고 나 신경 쓸 바에야 그냥 혼자 먹자’ 하면서 혼밥을 시작하게 됐어요. 혼밥 해본 적 있으세요?(웃음)”
음식점에 가면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혼자 온 사람까지. ‘혼밥족’을 좀 눈여겨보면 유형이 같지는 않다. 허겁지겁 음식만 먹고 나가는 사람은 혼밥 초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혼밥 고수는 음식점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부터 다르다.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와 입장부터 퇴장까지 여유가 넘친다.
그렇다면 당신의 ‘혼밥’ 레벨은? 마침 인터넷상에서 떠돌고 있는 ‘혼밥 레벨’ 분류표가 인기다. ‘혼밥’을 어디까지 경험해봤는지 체크해볼 수 있는 일종의 자가 ‘혼밥진단표’인 셈이다. 1단계 편의점에서 밥 먹기, 2단계 학생식당에서 밥 먹기, 8단계 고깃집, 횟집에서 먹기 등 단계가 올라갈수록 난이도가 올라가며 혼밥의 경지를 보여준다.
혼밥족이 증가하면서 이들을 겨냥한 ‘혼밥집’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서울 홍대에 위치한 일본식 라면집 ‘이찌멘’은 그야말로 혼밥 입문자에게 안성맞춤이다. 우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종업원을 찾아보기 힘들다. 문 앞에 놓인 무인 자판기를 이용해 식권을 사고 원하는 자리에 앉아 벨을 누르면 종업원이 식권을 확인한 뒤 메뉴를 가져다준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찌멘’ 홍대점 매니저는 “칸막이 테이블을 사용하다 보니 이곳에선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거의 없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혼밥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혼밥집 메뉴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2인분 이상만 가능한’ 대표 메뉴, 고기. 그러나 이제는 고깃집도 혼밥족을 위해 1인 화로를 제공하고 있다. 드디어 혼자서도 1인분만 시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직장인 이모씨(31)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혼자 점심을 해결한다. 그는 자신을 자발적 혼밥족이라고 설명한다.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혼자 먹나보다’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저는 누구와 식사 약속을 잡으려 애쓰지 않아요. 혼자 점심을 먹으면 그 시간만큼은 업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못 봤던 영상을 보거나 노래를 듣거나… 저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밥을 먹을 수 있죠. 외롭지 않냐고요? 아뇨. 저는 제 행복을 위해서 혼자 밥을 먹습니다(웃음).”
술도 예외는 아니다.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처럼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 ‘혼술족’도 있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진심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내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아픔을 나누는 것보다는 혼자 삭히는 것이, 이렇게 혼자 마시는 한 잔의 술이 더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난 이렇게 ‘혼술’을 한다.” 혼밥족보다 보기 힘들다는 혼술족을 만나기 위해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혼술집을 찾아갔다. 3명 이상의 손님은 들어올 수 없다는 이곳은 이름부터 아주 그럴듯하다. ‘인생은 솔로다’. 혼술집에 이렇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 또 있을까. 평일 저녁 7시, 조금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역시 혼술족은 달랐다. 가게 안에는 이미 3명의 손님이 카운터를 중심으로 ‘ㄷ’자로 놓인 테이블에 앉아 술을 비우고 있었다.
직장인 임모씨(29)는 퇴근 후 이곳을 홀로 찾았다. 예전 같았으면 동료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겠지만 혼술의 매력을 알고 난 뒤론 혼술집을 찾는다.
“친구들이랑 마시면 아무래도 과음하는 날도 많고 지출도 많이 돼서 요즘엔 혼술을 즐기고 있어요. 집 앞이라 편하게 와서 한두 잔 정도만 마시고 가는 거죠. 안주도 1인용으로 판매하고 있어서 혼자 먹기 딱 좋아요. 여유롭게 노래도 들으면서 한잔하는 혼술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어요.”
물론 혼술, 혼밥 문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음식평론가 황교익은 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혼밥은 마음의 병이고 사회적 자폐”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 몇몇 시니어는 “술을 마시는 건 이해하지만 왜 보는 눈이 많은 밖에서 혼자 마시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궁상맞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20·30세대는 이런 시선들에 그닥 신경 쓰지 않는다. 누가 어떻게 보든 당당히 혼자서도 삶을 즐길 수 있는 ‘나 홀로’ 라이프를 선택하고 있다. 혼밥, 혼술은 꼭 20·30세대만 즐길 수 있는 문화는 아니다. 심신이 피곤해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 깊어가는 가을을 오로지 홀로 느껴보고 싶은 어느 날 하루쯤은 시니어 세대도 혼밥, 혼술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