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면? 아마도 누구나 현재의 삶과 다른 쪽으로 ‘나’를 데려갈 것이다. 금쪽같은 여생을 진정 자신이 원했던 방식으로 누리고자 할 것이다. 절박하면 길을 바꾸게 마련이다. 중년 이후의 귀촌은 머잖아 닥쳐올 노년, 그 쓸쓸한 종착에 대한 대책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절박한 기색을 머금는다. 노후의 안정과 평안을 성
삶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면? 아마도 누구나 현재의 삶과 다른 쪽으로 ‘나’를 데려갈 것이다. 금쪽같은 여생을 진정 자신이 원했던 방식으로 누리고자 할 것이다. 절박하면 길을 바꾸게 마련이다. 중년 이후의 귀촌은 머잖아 닥쳐올 노년, 그 쓸쓸한 종착에 대한 대책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절박한 기색을 머금는다. 노후의 안정과 평안을 성
아내와는 연애결혼을 했다. 서로 결혼을 약속하고 장차 장인장모가 될 어른들에게 인사 가기로 했다. 서울근교라 하지만 당시만 해도 시외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이나 가야하는 거리였다. 시골동네라 결혼 안한 남녀가 같이 다니는 것이 금기시 되었던 시절이다. 혼자 찾아가야 했다. 아내를 통해 어디서 무슨 버스를 타고 어디쯤 내려 어떤 집으로 찾아오라는 약
1636년 인조 14년 청의 수십만 병사가 조선으로 쳐들어왔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고 했지만 정세가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자 세자만 보내고 남한산성으로 길을 바꿔 청군에 포위당한 채 47일간을 버텨야했다. 사가들은 이를 병자호란이라 불렀다.
김훈 원작,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은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김상헌(김윤식
1~2년 전부터 오락가락하시던 어머님의 정신세계는 아흔여덟이 되던 해에는 하루 중에 많은 시간을 현실과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시곤 했다. 어쩌다 마주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환한 미소로 반기시다가도 깜박깜박 기억을 잊으실 때마다 가슴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던 것은 아마도 여섯 자녀 모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노환까지 겹쳐 힘들어하시는
‘初志一貫’은 필자가 초급장교(포대장) 시절에 부대훈(部隊訓)으로 삼아 액자에 넣어 병사들의 내무반에 걸어두었던 글귀였다.
왜 ‘초지일관’이었을까? 지휘자가 아닌 지휘관으로서 첫 발을 딛는 순간에 공인(公人)으로서의 필자의 자세를 가다듬고자 좌우명으로 삼아 늘 잊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부대를 지휘하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첫마음, 그 첫마음처럼 훈련과 교육에
제목만 말해도 그 시대의 풍경이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당신은 어디 있나요’ 등등 발표될 때마다 가요 차트를 점령하며 시대의 유행가로 자리매김한 그 노래들. 특유의 여린 목소리로 그 시절의 애절한 감성을 노래했던 양수경(52)이 무려 27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긴 세월을 넘어 그대로
지난 9월 17일은 금융권에 종사한 적이 있는 시니어들이 그동안 갈고 닦았던 실력을 견주었던 특별한 날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신용회복위원회가 주관하는 신용상담사 자격 취득 시험일이었다. 신용상담사는 그동안 국가공인이 아닌 민간 자격증이었는데 올해 정식으로 공인 자격증이 되었다. 이미 자격을 취득했던 사람들도 완화 시험을 통해 네 과목 중 두 과목을 다시 합
5070세대 대부분은 보릿고개가 있을 정도로 먹고살기 힘들던 지난날이 있었다. 청년들에게 나의 어린 시절 경험을 들려주면 마치 임진왜란 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현재의 청년들이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으면서 개개인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당시 어른들이 굶주리며 일할
여기에 잘 웃는 부부가 있다. 남편의 인상은 얼핏 과묵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빙그레 슬며시 웃는 얼굴이다. 아내의 얼굴은 통째로 웃음 그릇이다. 웃음도 보시(布施)라지? 부부가 앉는 자리마다 환하다.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귀농을 통해 얼굴에 정착한 경관이라는 게 아닌가.
엎치락뒤치락, 파란과 요행이 교차하는 게 인생이라는 미스터리 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