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 가면 제일 먼저 찾고 싶은 친구

기사입력 2017-12-18 07:46 기사수정 2017-12-18 07:46

[동년기자 페이지] 벗에 대하여…

경상도 시골 출신인 필자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인천에서 미혼이었던 형님이 고등학교는 대도시인 인천에서 다니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이후 형님 집에서 지내게 됐는데 몇 달 후 형님이 서울로 발령이 나버리는 바람에 필자만 홀로 덩그러니 인천에 남게 되었다. 시골 부모님이 보내주는 돈이 보잘것없어서 늘 배가 고팠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고1 학생이 겪는 타향살이는 늘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었다. 더구나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재미있다고 깔깔대며 웃어대는 반 아이들 등쌀에 필자는 학교를 다니기가 싫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위축되어갔다. 이런 필자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자기네 집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는데 친구 집이 서울 시흥동이었다. 친구 집 부근에는 대한전선이 있었고, 신흥 주택 지역으로 난개발이 한창이었고, 시흥이라는 팻말을 달고 다니는 버스 종점도 희미하게 떠올랐다. 친구 집에 가 보니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친구는 신혼살림을 차린 형님 내외분과 같이 살고 있었다.

요즘 같으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만 형님이 동생으로부터 필자 이야기를 듣고 부모 없이 쓸쓸해하는 동생을 위해 필자를 데려오라 한 모양이었다. 친구 형님 내외분도 필자를 살갑게 잘 대해줬다. 이른 새벽 형수님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시흥역으로 뛰어가 기차를 타고 영등포역에서 다시 인천행 기차를 바꿔 탔다. 늘 허둥지둥하던 날들이었다. 친구는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더구나 부모님도 안 계시고 가정 형편도 넉넉지 않다 보니 어느 날 학교를 그만두고 장사를 해보겠다고 했다. 연탄과 쌀을 파는 가게를 염두에 둔 듯했다. 당시 시흥동은 주택 개발로 사람들이 몰려오는 지역이었고 연탄과 쌀은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이었다.

친구가 학교를 그만둔 마당에 친구 집에 계속 있을 수 없었다. 팔을 붙드는 친구의 팔을 억지로 떼어내며 집을 나왔다. 그 뒤 찾아갔더니 인근에서 연탄가게를 차려 열심히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찾아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다가 군에서 제대를 한 뒤 가 보니 동네가 완전히 변했고 친구도 이사를 가고 없었다. 찾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친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이름과 출신 중학교, 나이뿐라서 막연했다. 그렇게 세월이 또 흘러갔다.

마음 한구석에 늘 그리움이 있어서였는지, 어느 날 친구 소식을 듣게 됐다. 벌써 30여 년 전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당시 필자는 경남 통영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친구를 수소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부탁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필자에게 들려온 소식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친구가 이미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전화가 발달했다면 연락이 끊기지 않았을 테고 사망 원인도 알았을 것이다. 결혼은 했는지, 결혼했다면 자식들은 어디서 사는지, 궁금함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가족이라도 만나보고 싶었지만 주위에서 말렸다. 가족을 만나 그다음엔 어떡할 거냐고 했다. 겨우 잊고 지내는데 필자를 보면 다시 슬픔에 빠질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친구와의 인연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저승에 가면 연탄장사는 어땠는지 왜 죽었는지 물어보고 싶고 학창 시절 추억도 나누고 싶다. 저승에도 술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잔 술을 기울이며 기분 좋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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