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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재, 한 끗 차이로 오빠 되다
- 당연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 가령 운동을 하면 건강해진다든가, 잠을 푹 자면 피곤함을 덜 수 있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패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변화를 줘도 아재에서 오빠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데 실행하기 쉽지 않다. ‘패션 감각’ 하면 자부심 가득한 의 동년기자단 강신영(65) 단장. 그와 함께 남성복 전문매장을 찾았다. 아재와 오빠의 한 끗 차이는 이런 것이다. 모델 강신영 브라보 시니어기자(동년기자) 의상협찬 라르디니 #0 아재 룩 강신영 자연인의 모습 올해로 싱글 17년차 강신영 동년기자단 단장은 쇼핑을 꽤 좋아한다. 직접 옷을 사 입는데 젊었을 때보다는 캐주얼을 많이 입는다. 평범한 것보다는 개성 있는 옷을 찾아다닌다. “일단 젊은이가 입는 바지는 많이 불편해요. 사실 별 차이가 없어요. 내가 옷을 잘 입었다고 해서 여자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웃음). 사실 이 나이 되면 남 신경 쓰지 않아요. 다 내 만족이죠. 내가 불만인 것은 왜 남자 코트는 밝은 색이 많이 없냐는 겁니다. 예전에는 밝은 색이 오염되고 때 탈까봐 안 입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1 비즈니스 캐주얼 룩 니트와 재킷 셔츠 대신 밝은 색 니트를 입었다. 재킷을 입어 최소한의 격식을 유지했다. 바지는 허릿단 좌우에 두 개의 플리치(주름)를 주어 허벅지와 엉덩이 부분에 편안함을 강조했다. 편한 대신 옷맵시가 좋지 않은 것이 단점이라 강신영씨가 입은 바지의 경우 통을 살짝 줄이고 발목으로 갈수록 좁아지게 만들어 활동성을 더했다. 데님 슈즈가 포인트다. (재킷 137만원 / 바지 33만원 / 니트 33만원 / 구두 48만원 / 행거치프 13만원) #2 비즈니스 캐주얼 룩 셔츠와 재킷 재킷이나 베스트(조끼)를 보면 단추가 두 개 혹은 세 개가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기본은 맨 위의 단추는 채우지 않는 것. 그냥 장식으로 달아놨다고 생각하면 된다. 라펠(코트나 재킷 등의 접은 옷깃)의 굴림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가짜로 달아놓은 것도 있다. 베스트는 단추를 가운데만 채우면 된다. 다 채우면 V존이 너무 올라가서 답답해 보인다. 복부 가운데에서 V존을 만들어주면 훨씬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재킷을 포인트로 한 옷이고 나이에 맞는 멋스러움을 연출했다. 조끼와 재킷에 착용한 꽃무늬 부토니에가 인상적이다. (재킷 147만원 / 베스트 49만원 / 셔츠 29만원 / 바지 33만원 / 벨트 19만원) 아재와 오빠를 정의하다 오빠와 아저씨의 한 끗 차이는 자기의 몸을 잘 알고, 맞는 사이즈를 골라 입는 것이다. 몸해 비해 옷이 크지 않은지, 바지와 소매가 길지는 않은지 인식하고 입는다면 쉽게 아재로 불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비슷한 스타일은 많지만 간단한 원칙이 오빠와 아재를 판가름내는 잣대다. 좋은 옷감, 비싼 옷이 다가 아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옷맵시는 달라질 수 있다. 라르디니(LARDINI) 신세계 강남점 안현태 점장은 중년의 멋스러움은 기본에서 시작한다고 정의한다. “중년 남성의 패션 스타일은 두 부류입니다. 너무 과하게 입는 부류와 기본은 지키되 약간의 개성을 살리며 입는 부류죠. 본인이 옷을 잘 입는다고 생각하는 중년 남성들 중에 과한 경우가 꽤 많아요. 멋의 본질은 소재나 아이템을 착용할 때 포인트를 어디에다 둘 건지를 먼저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모두가 주연이 되면 안 됩니다.”
- 2017-03-0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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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에게 딸의 옷장을 허하라!
- 과거를 회상해보자.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유치원 딸아이가 엄마의 하이힐을 신고 있는 모습을 본 적 있지 않은가? 혹은 말도 안 되는 치장과 메이크업을 하고 빤히 서로를 바라봤던 일 없는가? 그래서 준비했다. 오래전 당신의 옷장과 화장대가 딸에게 점령당했다면 이번에는 반대다. 대신 딸이 아닌 에디터의 옷장 문을 열었다. 봄바람 살살 부는 3월, 한흥옥(66) 동년기자가 과감히 도전했다. 권지현 기자 모델 한흥옥 동년기자 스타일리스트 이미경 ◇ 변신 전 2월 초, 날씨가 풀리지 않은 탓에 한흥옥 동년기자는 니트 모자에 두꺼운 패딩 코트 그 안에 또 패딩 점퍼를 입고 나타났다. 말 그대로 그냥 나왔다. “10년간 보험 영업을 했어요. 상속·증여 관련한 보험을 다뤘어요. 오십이 넘어서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내 고객들은 CEO가 많았어요. 길을 가다가 ‘아! 그 사람을 만나러 가야지’ 하다가도 옷차림이 별로이면 가지 않았습니다. 몇백짜리 옷을 입은 것 아니지만 정장을 제대로 갖춰 입고 다녔습니다. 상대에 따라서 옷은 바꿔 입어야 해요. 특히 큰돈이 들어가는 상속·증여 보험이니 고객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정장을 입을 일이 이젠 없습니다.” ◇ 변신 후 “정말 재밌었어요. 옷을 바꿔 입으면서 내가 변신한다는 것. 사진이 나오면 깜짝 놀랄 것 같아요. 특별한 옷을 입게 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제가 언제 또 이런 옷을 입어보겠어요? 재밌을 거 같아요. 내 주변 사람들 반응이 너무 궁금해요.” “신발이 문제였어요.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꿈은 이뤄진다는 게 맞는 말 같아요. 제가 매일 킬힐 한 번 신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네요.” “제 삶의 모토가 ‘지금 이 시간에 행복하자’입니다. 잡지사에서 왜 나한테 전화를 했을까? 내가 ‘노(No)’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내가 ‘노’를 해야 하지? 하면 어때? 내가 해보고 싶고, 내가 궁금한 건데? 이게 시니어가 되니까 가능한 생각인 것 같아요. 오늘 너무 행복해요. 잃어버렸던 빛을 찾은 느낌입니다. 잘 노는 시니어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 2017-03-0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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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콘서트를 보며
- 2월의 막바지인 지난 주말 새봄을 기다리며 '따뜻한 콘서트'가 열렸다. 경제신문 '이투데이'가 2013년 이후 5년째 개최하고 있는 음악회라고 한다. 오전부터 하루 종일 눈보라가 흩날려 저녁 나들이가 좀 걱정스러웠지만 출연하는 어떤 가수 때문에 필자는 꼭 참석하기로 했다. 시간에 맞춰 KBS 콘서트홀에 가니 오랜만에 보는 동년 기자님들이 많이 계셨다. 글로만 대하던 동년 기자님들과의 반가운 인사가 이어졌는데 부부가 동행하신 기자님도 여러분이셔서 보기에 참 좋았다. 우리 동년 기자의 좌석은 2층으로 자리에 앉으니 벌써 무대는 화려한 조명으로 예쁘게 반짝여 신나는 공연을 기대하는 설렘으로 마음이 들떴다. 출연 가수를 보니 어린 걸그룹 '모모랜드'의 귀여운 아이들과 중견 여가수 '린' 그리고 독보적 존재를 자랑하는 '전인권' 씨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김장훈' 씨가 있다. 김장훈 씨가 출연한다고 해서 기분이 매우 좋았고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는데 김장훈 씨와는 몇 년 전 작은 에피소드가 있는 사이이다. 노래도 잘하지만, 기부도 많이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도 앞장서는 멋진 사람이라 필자는 그의 왕 팬이 되었다. 오늘 약간 실망스러운 건 좌석이 2층이라 가수와의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김장훈 씨는 공연 중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하는 유명한 가수이다. 앞자리였다면 언젠가처럼 좀 더 즐거운 관람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몇 년 전 강남 모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김장훈 콘서트가 있었다. 제법 큰 무대를 춤과 노래로 종횡무진 휘저으며 신나는 공연을 펼치던 중 갑자기 김장훈 씨가 어시스턴트가 필요한데 누가 도와주겠느냐고 물었다. 같이 간 친구 삼총사가 내게 손들라고 부추겼고 나는 용감하게 조용한 침묵을 깨고 “저요!”하고 소리를 치고 말았다. 누가 나오시겠느냐고 했지만 점잖은 관객들이 잠시 생각하는 동안 아줌마 기질을 발휘한 필자가 큰 소리로 답을 한 것이다. 좀 더 젊었을 때라면 부끄러워서 상상도 못 했겠지만 나이가 들으니 너무 용감해지는 것 같아서 우습기도 했다. 용감하게 소리친 덕분에 무대에 올라가 김장훈씨 옆에 서게 되었다. 가까이에서 본 김장훈 씨는 매스컴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잘생기고 훤칠했다. 잠시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고 필자가 도와야 하는 일을 말해 주었다. 무슨 큰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니고 김장훈 씨가 하모니카를 불 때 필자는 마이크를 그 앞에 잘 대어주는 일을 맡았다. 별일이 아니었으므로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졌고 무대도 매우 화기애애해졌다. 하모니카 연주가 끝난 후 감사하다며 불었던 하모니카를 선물로 주었는데 꽤 값이 나간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필자는 그 작고 앙증맞은 하모니카를 가보로 간직하겠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고 신나는 공연을 즐겼다. 그렇게 김장훈 씨는 공연 도중 관객과의 소통을 꼭 하는 사람이었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래층의 어떤 여성관객이 전의 나처럼 큰소리로 답을 해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만약 필자의 좌석이 가까웠다면 필자가 소리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난다. 어린 아이돌의 무대도 깜찍했고 ‘린’의 노래도 좋았지만, 김장훈 씨와 전인권 씨의 영혼을 울리는 듯한 노래에 감동적이었다. 신나는 콘서트의 여운으로 돌아오는 길의 차가운 바람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이투데이에서 매년 주최한다니 다음에도 초대되어 꼭 콘서트를 보러 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 2017-03-0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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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10기 발대식
- 2월이 끝나는 무렵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발대식이 있었다. 정책기자는 나라가 국민을 위해 열심히 고민하여 만든 여러 가지 정책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다. 작년 지인으로부터 정보를 얻어 글 한 편과 이력서를 보내고 정책 기자로 선정되었을 때 기뻤던 마음이 생생한데 어느새 1년이 지나고 올해 연임하게 되었다. 9기 발대식에서 많은 젊은 기자를 보았을 때 내가 같이해도 될지 어떨지 고민이 되었으나 나라의 정책에 대한 관심과 널리 공유하는 일은 나이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 해당한다고 자신을 북돋우며 용기를 가졌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동년기자'라든가 시니어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자유기고가로서 큰 포부를 가지고 기사를 작성해 보려 했으나 어려운 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기사의 소재가 나오면 많은 젊은 기자들이 취재신청을 하는데 그 속에 시니어인 필자가 경쟁하듯 끼는 것도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아 신청하지는 않았다. 작년 후반기부터 팸투어 공지가 나기 시작했다. 필자는 열심히 신청하여 10번도 넘는 팸투어를 경험해 보았다. 여성 안심 귀가 길을 돌아본 관악경찰서 견학, 한강 물 수자원 보호 공사에서 배를 타고 강을 점검해 보았던 일, 전자발찌 착용자 감시 센터, 남부교도소, 장기기증센터와 죽음을 미리 체험해 보는 행사에도 참여했고 홍천 친환경 에너지타운과 한국 소비자원 견학, 공영 홈쇼핑, 그리고 여성인력 새로 일하기 센터 견학까지 많은 팸투어에 참여했으며 가장 즐거웠던 건 1박 2일로 다녀온 강릉 평창에서 열린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에 참여한 일이다. 좋은 기자들과 친분을 쌓는 기회도 되어서 작년 한 해 9기 정책 기자로 보람 있는 한 해를 보냈다고 자부한다. 이날 10기 발대식 역시 작년과 마찬가지로 국립 민속박물관에서 열렸다. 일찌감치 출발해 넉넉한 시간에 도착했는데 벌써 많은 신임기자와 연임 기자들이 모여 있다. 올해는 70%의 연임 기자와 30%의 신임기자 150여명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되어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애국 순열에 대한 묵념이 이어지니 경건한 마음이 되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이런 자리에 참석했다는 점이 자랑스럽게 생각되었다. 유동훈 문체부 차관의 주재로 신임기자의 임명장 수여식과 축사가 이어졌는데 정책기자단을 격려하는 인사 중에서 60대 시니어가 여섯 분이 있다며 격려의 말씀을 하셔서 필자가 그 여섯 명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뿌듯하고 사명감도 높아지는 듯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은 국민의 시각에서 대한민국의 정책들을 이해하고 국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작년과 다르게 신설된 두 가지가 있는데 자율 팀 기획 취재와 동계올림픽 평창 전담팀이 구성된다고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회가 된다면 필자도 동참해 보고 싶다는 의욕과 열정이 필자를 들뜨게 하기도 했다.2부에는 작년과 같이 재미있는 레크레이션 축제가 벌어졌다.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웃고 즐기다 보니 처음 보는 기자들과도 마음을 터놓게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좀 아쉬웠던 건 60대 이상 시니어가 6명뿐이라는 점이다. 글 잘 쓰는 능력 있고 훌륭한 시니어가 많이 있으니 내년엔 더 많은 시니어가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정책은 국민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잘 모르던 정책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는 대한민국 정책기자단의 임무를 올 한 해에도 열심히 해보자고 다짐했다.
- 2017-02-2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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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따뜻한 콘서트>덕분에 부자지간 돈독해져
- 동년기자로 활동한 지도 어느덧 만 1년이 돼가고 있다. 일상의 삶 속에서 나태(懶怠)에 빠져 글쓰기를 망각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내가 정말 글다운 글을 썼을까?” 하고 뒤돌아보며 반성을 하게 된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지난 1년 동안 한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기자생활 1년 동안 덤으로 얻은 행운도 많았다. 대학로에서 두 번씩이나 연극을 관람했고 올 초에는 압구정동에서 이라는 뮤지컬도 관람했다. 젊어서는 살기 바빠 문화생활을 못했고 나이 들어서는 관심이 떨어져 고작해야 1년에 영화 한 편 보기도 쉽지 않았는데, 지난 1년 동안 동년기자로 활동하면서 문화생활까지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사한 마음이다. 지난 2월 22일에도 큰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여의도 KBS홀 본관에서 공연된 이투데이 신춘음악회 에 초대된 것이다. 필자는 며칠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그런데 당일 아침부터 날씨가 잔뜩 흐리더니 오후가 되자 오락가락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필자가 사는 인천공항 근처에는 진눈깨비와 비가 섞여 내리면서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퇴근시간에 맞춰 막내아들에게 회사로 나오라고 했다. 공연장까지 가는 방법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몇 번이나 확인해보았지만 쉽게 가는 노선이 잘 찾아지지 않았다. 결론은 회사 통근버스로 김포공항까지 이동한 다음 공항전철역에서 9호선 급행열차로 갈아타고 가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려 저녁 먹을 시간이 없었다. 가다 보니 허기는 또 얼마나 몰려오든지…. 서둘러 현장에 도착해 일단 표를 받아놓고 시간을 보니 공연시작 20분 전이었다. 빠듯하긴 했지만 저녁을 굶고 관람할 수는 없어 근처 김밥 집으로 달려갔다. 모처럼 아들과 둘이 마주 앉아 김밥과 라면을 시켜 먹으면서 오랜만에 서로의 관심사를 물으며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식사가 끝나고 부리나케 공연장으로 돌아오니 공연은 이미 시작되었고 겨우 안내를 받아 착석하고 관람을 했다. 오프닝 무대로 타악그룹 RUN의 ‘두드림’은 힘차고 역동적으로 리듬을 타고 있어 오랜만에 필자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들었다. 겨울 끝자락에서 만난 ‘마음이 따뜻해지는 콘서트’는 오는 봄을 맞이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필자의 마음을 녹여줬다. 아들은 가수 린의 인기 드라마 OST곡을 제일 좋아했다. 자신의 세대와 공감이 되고 감성이 맞아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깜찍한 걸그룹 ‘모모랜드’의 공연은 싱그러워 젊은 층의 관람자들은 물론이고 시니어들도 한마음으로 공감하고 어우러진 멋진 공연이었다. 중견가수 김장훈의 넘치는 끼와 재치는 마력이 있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면서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문화는 대중과 함께 호흡을 해야 그 힘이 발휘된다는 생각을 새삼 해보았다. 마지막으로 메인무대를 장식한 가수는 등장하기 전부터 한껏 기대를 갖게 한 대형 록 가수 전인권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울림통, ‘전인권 밴드’의 현란한 연주, 관중을 사로잡는 매력과 포스가 한껏 발휘된 무대였다. 공연의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 시간에 갈 길이 먼 필자와 아들은 아쉬움을 남긴 채 자리를 떠야 했다. 아들은 공연장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는 내내 공연의 잔상(殘像)에서 벗어나지지 않는지 따뜻하고 멋진 공연이었다고 끊임없이 조잘댔다. 황급히 돌아오면서 9호선 국회의사당역을 찾느라 이리저리 헤맨 필자와 아들은 영락없는 촌뜨기 신세였다. 겨우 지하철을 타고 두어 정거장쯤 갔을 때 무심코 안내방송으로 다음 정차할 역이 노량진이라는 멘트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타고 만 것이다. 일찍 집에 도착하려고 공연 엔딩도 보지 않은 채 조금 일찍 빠져나왔는데 반대로 가는 지하철을 타다니! 필자와 아들은 마주보면서 멋쩍은 웃음을 나누고 노량진역에서 내려 부리나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갈아탔다. 우여곡절 끝에 공항전철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택시 잡기가 힘들었다. 승강장을 보니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30여 미터나 늘어서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걸어가다가 택시가 보이면 타자. 그게 더 빠르겠다.”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걷기 시작했는데 그날 밤, 집에 도착할 때까지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한 시간여를 눈길을 걸었다. 칼로 에이는 듯한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미고 귀를 손으로 감싸면서 걸었지만 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걸어가는 길이 싫지 않았다. 오랜만에 부자가 함께 걷는, 눈 내린 밤길은 따뜻한 콘서트만큼이나 훈훈했다.
- 2017-02-2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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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으로 살까? PART5] 다른 듯 같은 부부 “아직 끌어안고 자요”
- 인간과 인간이 만나 기품 있는 가정을 꾸리는 것은 어떤 예술보다 아름답고 귀한 일이다. 부부가 나누는 대화나 작은 감정표현에서도 우리는 기품을 느낀다. 괴테도 “결혼생활은 모든 문화의 시작이며 정상(頂上)이다. 그것은 난폭한 자를 온화하게 하고, 교양이 높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온정을 증명하는 최상의 기회다”라고 말했다. 이혼은 절대로 용납 못해 졸혼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이혼했지만 다시 만나 사는 부부도 있다. 부부란 참 신기한 관계인 것이다. 여기 부부의 삶을 기품 있게 잘 이어온, 나이가 들어도 아직 끌어안고 잔다는 이강추(82) 성정수(77) 부부가 있다. 이강추씨는 극구 고사해서 아내 성정수씨만 만났다. 사진 변용도 동년기자 50년이 다 되도록 금실 좋은 부부로 잘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처음부터 좋은 금실은 아니었고요. 초기에는 힘겨루기도 했지요. 그랬더니 나만 힘든 거예요. 남편은 끄떡도 않는데…. “문제가 뭐지?” 하며 공부를 했고 대화 방법을 알아갔어요. 차츰 서로의 강점과 취약점을 알게 되었죠. 그것도 구체적으로요. 그 점을 늘 염두에 두고 갈등이 있어도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도록 애썼지요. 주로 내가 먼저요. 그러면 남편도 어느새 스르르 풀렸고. 두 분 성격은 어떻게 다른가요? 남편은 흔히 말하는 모범생으로, 세상의 소금 같은 형이죠. 성실 근면하고 규범과 원칙을 중시해요. 그만큼 책임감은 높지만 새콤달콤 시원한 맛은 없어요. 무덤덤한 편입니다. 반면 나는 열정적이고 상황 적응력과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뛰어나요.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을 보면 그냥 못 지나가요.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일들이 많아 늘 분주하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을 텐데 싸우지 않나요? 서로의 시간을 존중합니다. 각각 자기 할 일, 즉 컴퓨터, 독서, 글쓰기에 몰두하면서 두세 시간씩 보내기도 합니다. 마주하는 시간에는 교회활동이나 사회문제 등 각자가 보고 들은 것을 서로에게 얘기해주며 소감과 의견을 나눠요. 얘깃거리가 많아 싸울 시간이 별로 없어요. 자식농사 잘된 것, 누구의 공입니까? 우리 부부의 공동 합작입니다. 서로의 좋은 점을 닮았으면 했고, 서로가 완충지대 역할을 했어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모습은 남편의 영향이지만, 진로에 어려움이 있을 때 아들이 원하는 길을 과감하게 허용, 해결이 되도록 도운 것은 나의 자녀교육 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요. 아들 둘이 남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요. 남편은 날 닮았다 하면서 늘 부러워하는 편이죠. 큰아들은 글로, 둘째는 음악으로 표현하는 재주가 있답니다. 50년씩이나 끌어안고 살 수 있는 진짜 힘은 무엇일까요? 남편이 소록도 병원 근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천주교 신자로서 교회활동뿐 아니라 남편의 직장 일에도 관심을 갖고 비서로 수렴청정(?)까지 했어요. 문제가 생기면 늘 같이 의논하고 해답을 찾았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만나면 대화를 하다 보니 얘깃거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어요. 가정일은 손실과 실패가 있어도 탓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우리는 ME부부(Marriage Encounter, 부부일치운동) 회원으로서 ‘결정은 부부가 함께’를 실천해왔어요. 매일 밤 부부의 기도를 합니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못 살 때나 잘 살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게 하라.” 성당에서 혼인할 때 한 서약 내용을 읊조리죠. 천주교의 신앙생활이 부부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래도 남편이 미울 때가 있죠?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때죠. 대개 가치지향적 문제에 견해가 엇갈릴 때예요. 그러나 그런 상황은 잠깐이고, 서로 팽팽히 맞서다가 우리와 직접 관계가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아요. 남편이 미울 때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나도 약점, 잘못한 것 있는데 ‘저 사람만 탓할 수 있나’ 양심에 호소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미운 감정이 눈 녹듯 녹습니다(웃음). 배우자에 대한 측은지심은 언제 생기나요? 장례미사에서 떠나는 이를 보거나 내가 건강이 좋지 않을 때죠. 먼저 세상을 뜰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혼자 남아 있을 남편이 걱정되고, 그 외로움이 헤아려져 측은한 마음이 들어요. 이혼을 생각한 적 있나요? 신혼 때였어요. 남편은 평소에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지만 자신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아예 입을 닫아버려요. 내 말이 공격적이면 더 심해져요. 불통이 되는 거죠. 결혼 초에는 이렇게 말이 안 통해서 평생 어떻게 사나? 순간 이혼이란 말이 떠올랐어요. 고심 끝에 인간관계 공부를 시작했어요. 부부관계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이더군요. 상담 공부를 하면서 직장, 교도소 등 인성교육 집단지도를 하러 다니게 되었어요. 부부관계의 유지는 사랑뿐 아니라 신뢰와 존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나의 부족한 점을 잘 견뎌주고 헤아려주는 남편을 보면 겸손해지더군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편에게 고마운 점은? 성당에 가는 발걸음이 한결같아요. 매일 새벽미사에 다니고 성당에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달려갑니다. 남편은 노(No)~ 하는 법이 없어요. 우리 부부는 서로 의논이 잘되는 편이에요. “그렇지, 옳지” 하면서 추임새로 긍정적인 응대를 해주고 내 요청을 웬만하면 다 들어줍니다. 시장에 장보러 같이 가고 병원, 약국도 같이 가요. 영화도 자주 보고요.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인데 내가 좋아한다고 함께 봐주다가 이제는 남편이 더 좋아하는 취미가 되었어요. 남편은 나이가 팔순이 넘도록 매일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합니다. 또 어떤 일이 있어도 국이 있는 아침밥을 먹어야 하는 남편의 밥상 차리기가 쉽지는 않아요, 남편은 특히 보건복지부 국장 시절에 발생한 사건 때문에 고통을 겪을 때 큰 힘이 되어주었다며 고마워했어요. 그렇게 고마워하니 저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 2017-01-1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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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년기자의 한 컷 이슈] 임산부 배려석의 진풍경
-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의 분홍 카페트 디자인이 눈에 띈다. 주변 다른 좌석이 모두 비워있다. 임산부 배려석 두 자리에 앉아 있는 두 청년. 배려심 상실의 현장이다.
- 2017-01-1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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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고록 작업을 완수하다
- 지난 4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자서전을 써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자서전은 필자의 자서전부터 타인의 자서전까지 몇 번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다. 그간의 자서전은 당사자를 서너 번 만나 이야기를 듣고 몇 가지 자료와 사진을 받아 책을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자서전 당사자는 이미 고인이 되어 회고록이 되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유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만들어내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자서전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오산한 것이다. 첫날 유족과의 미팅이 있었다. 미망인과 젊은 두 딸이 참석했다. 주로 이야기를 해 줄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유족들의 기대가 컸다. 아무래도 여자들을 상대하기에는 필자 혼자로는 역부족이고 여자 작가도 동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같은 여자끼리는 터놓고 얘기가 풀리게 되어 있다. 중간에 같이 식사를 하자니 필자 혼자일 때는 불편해했다. 미망인의 입장이나 사연 등 여성들의 민감한 감성도 여자작가라야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동년기자단의 최은주 작가에게 부탁했다. 다행히 수락 받아 함께 참여했다. 최종 목표는 12월15일 1주기 추도식 때 책을 출간하여 고인의 영전에 헌정하는 것으로 했다. 유족 측은 품격 있는 회고록을 만들어야 하므로 진행하다가 안 되면 굳이 추도식에 날짜를 맞추지 말고 연기해서라도 책을 제대로 만들자는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점점 더 12월15일로 목표일자가 굳어졌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대치동에 있는 고인의 회사에 모여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했다. 매주 한 번도 빠짐없이 대치동 언덕길을 올라 회사에 갔다. 처음에는 전철역에서 내려 버스 타고 서너 정거장을 가야 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전철역부터 걸어 다녔다. 위치가 모호해서 삼성역, 선릉역, 대치역에서 각각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여름을 지나 겨울까지 무려 8개월의 대장정이었다. 늘 바쁘게 활동하던 시니어들이 고정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일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한창 바빠질 때쯤 제의받은 동유럽관광 기회도 포기했다. 4월부터 10월까지 20차례의 미팅에 더 해 마지막 달에는 아예 매일 출근 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쓰던 컴퓨터도 노후 되어 기능이 떨어져 업그레이드된 컴푸터가 필요했던 차에 고인이 쓰던 컴퓨터를 사용하기도 했다. 회고록 마무리를 위해서는 일주일에 한번으로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고인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의 몇 배의 활동을 한 거인이다. 명문 전주고등학교 출신으로 유가공분야의 회사를 창업하고 강소기업으로 키운 사람이다. 사회적으로도 재경 전주고총동문회장, 초등학교테니스연맹회장, 화서학회 이사장 등 굵직한 명함만도 여러 개였다. 그러므로 활동 반경에 맞춰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다. 고인의 모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전주까지 내려가야 했고, 화서학회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용문산까지도 갔다 왔다. 대부분의 자서전은 자료 부족으로 애를 먹는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자료가 넘쳐 고민이었다. 일대기를 쓰는 데는 좋은 참고가 되었으나 고인에 대한 추모 글만 80여 편이 들어 와 그대로 다 살릴 경우 500페이지가 넘을 지경이었다. 날이 갈수록 고정적으로 시간을 뺀다는 스트레스와 유족 및 지인들의 기대가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최은주 동년기자가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해줬다. 처음에는 고인에 대해 어렴풋했으나 윤곽이 잡히자 최은주 동년기자의 필력이 물이 올랐다. 몇 시간 씩 만나 이야기한 것을 녹취해서 집에 가서 다시 들으며 원고를 만드는 엄청난 작업량이었다. 둘의 원고를 하나로 합치는 과정도 어려웠으나 팀워크가 좋아 충돌 없이 잘 해냈다. 초반에 고민하던 고인에 대한 호칭도 일인칭으로 할까 관찰자 입장으로 할까하다가 회장으로 통일했다. 날짜에 쫓겨 마지막 손질은 출판사에 맡겼다. 일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인도 주변에 많이 베풀고 존경 받는 훌륭한 분이었지만, 유족 및 지인들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보람이었다. 그들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최선을 다 했다. 드디어 1주기 추도식에 맞춰 회고록이 나왔다. 모두들 책이 잘 만들어졌다며 만족했다. 300여명의 조문객이 모인 추도식에서 고인의 영정 앞에 책을 헌정하는 순간의 느낌이 숙연하게 온몸을 감쌌다. 제목은 ‘산더미 위에 돌 하나를 더 얹어라’로 했다. 고인이 사업을 이어 받은 딸에게 해준 말이다. 젊은 나이에 회사 운영을 맡았는데 두 자녀를 키우기도 바쁘지만 공부를 더 해 박사학위 과정까지 받게 한 것이다. 한창 뛸 때는 하나 쯤 더해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은 현재 전국 유명서점에서도 판매 중이다. 유족들을 비롯한 고인 주변 사람들과 인연, 그리고 최은주 동년기자와의 성공적인 팀워크가 보람이다. 앞으로는 그 어떤 사람의 회고록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은 덤이다.
- 2016-12-2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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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년기자 활동이 준 마음의 양식
- 필자는 직장생활을 30년 이상 하면서 꾸준히 전문서적 위주로 읽어왔다. 한 달에 평균 3권 정도 읽었으나 최근에 더 많은 책을 읽고 있다. 출퇴근 시간의 지루함도 없애고 좋은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책을 즐겨 읽는다. 또 종교는 없지만 책을 통해 마음의 양식을 찾곤 한다. 주말에도 별일 없으면 도서관을 방문해 책을 읽는다. 도서관은 다양한 책을 공짜로 볼 수 있어서 자주 찾는다. 필자가 보고 느낌을 받는 책은 그때그때 다르다. 한 번은 정말 좋은 책을 골라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있었는데 어딘가 낮이 익어 확인해보니 과거에 빌려 읽었던 책이었다. 결국 빌렸던 책을 다시 빌린 것이다. 그때는 궁금해서 빌려 읽었고 책이 잘 읽히지 않아 요점만 본 책이었다. 하지만 다시 빌렸을 땐 정말 좋은 책을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기분과 컨디션, 그때의 상황에 따라 나에게 맞는 책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끌어당김의 법칙을 알려주는 책이었는데, 우리가 생각하기만 하면 그렇게 된다는 내용으로 부의 법칙을 설명했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 책의 내용은 이제 필자의 생활습관이 되었고, 부정적인 대화가 점점 힘들어졌다.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동료에게도 이라는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소개해줬더니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필자가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을 감동 있게 읽은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마인드 컨트롤 책을 좋아하기에 같이 공유할 때는 내가 멘토가 된 것처럼 잠시 즐겁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 같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한다. 주변이 잘돼야 나도 잘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존재 가치도 향상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성장하길 원하고 발전하길 원한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사회다. 성공을 꿈꾼다면 더 노력하고 연구와 책을 통해 배우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특히 조직에서는 모두가 경쟁자다. 상황에 따라 상사나 부하 동료와도 경쟁을 해야 한다. 또 타 부서와도 경쟁해야 하고, 경쟁사와도 경쟁해야 한다. 동종 업계의 경쟁은 치열하다. 그러므로 한쪽만 파고들지 말고 다양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머릿속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글을 쓰다 보면 표현력도 향상되고, 논리적인 언어구사력도 향상된다. 시니어 동년기자로 활동하면서 글과 더 많이 친해졌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보다가도 수정사항을 발견하게 되고 간략하게 문장을 정리하는 힘이 생겼다. 예전에는 글을 장황하게 쓰는 바람에 문장이 뒤죽박죽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지금은 문장을 자주 끊어서 쓰고 쉽고 명확하게 쓸 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은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공부하고 배우고 체험하면서 필자에게 부족했던 부분을 발견하고 개선하게 된 덕분이다. 요즘은 하나만 잘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동년기자단 활동을 정말 잘한 것 같다.
- 2016-11-2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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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감] 천재화가 이중섭을 만나고 오다
- 천재화가 이중섭의 삶을 조명한 연극 지난 9월 10일부터 25일까지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됐다. 이번 공연은 이중섭 탄생 100주년과 연희단거리패 30주년 기념, 올봄 세상을 떠난 의 극작가 김의경을 추모하는 무대였다. 김갑수(1991년), 지현준(2014년)에 이어 연희단거리패의 새로운 간판 남자배우로 자리 잡은 윤정섭이 이중섭 역을 맡았다. 윤정섭은 말 그대로 ‘무대 위에 이중섭을 올려놓았다’는 평을 들으며 매 공연을 흥분과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의 동년기자단은 공연 첫날 공연을 관람하고 관극 소감을 나눴다. 비전문가 시니어의 입장에서 공연에 관해 순수하게 나눈 대화 내용임을 밝힌다. 편집자 주 동년기자단 김종억, 백외섭, 최원국, 전용욱, 장영희 이중섭의 생애와 화가로서의 활동에 드리운 한국 현대사의 비극, 가난, 이데올로기 문제가 교직된다. 고향 원산에서 조선의 황소를 민족 혼으로 여기며 소나 한국의 자연을 그리던 중섭은 스승의 권유로 동경 유학을 떠난다. 그는 일본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연인 마사코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찾아와 결혼식을 올린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형이 공산당에 끌려가 처형당하자 어머니와 헤어져 가족들을 데리고 월남한다. 궁핍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예술정신을 고집하는 중섭 때문에 가족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게 되고, 마사코는 애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중섭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르며 그림에 몰두하지만 가난에 시달리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다가 죽음을 맞는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장영희 연극 시작할 때 화가 이중섭이 언제 태어났고, 어떤 일이 있을 겪고 살아왔다는 것을 극 초반에 보여주는 장면이 멋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중섭 일대기를 표현하게 위해 사용된 소품과 음악 등이 감동이었습니다. 이윤택 연출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연극 곳곳에서 느꼈어요. 아주 작은 것들도 이렇게 세심하게 볼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김종억 맨 처음에 연극 제목인 과 연극 내용이 서로 맞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연출이 관객과의 대화에서 말했을 때 이중섭 화가의 그림을 보고 제목을 정했다고 해서 고민해 봤는데 저는 그 제목의 의미를 마지막 장면에서 찾았습니다. ‘길을 떠나는 것’은 이중섭의 죽은 영혼이 먼저 간 첫째 아들의 손을 잡고 먼 길을 떠난다. 그래서 길 떠나는 가족이구나라고 이해했습니다. 전용욱 저는 이 연극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중섭의 가족이 다 나타났다가 일제강점기 유학생활로 한국을 떠나는가 싶더니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태어나 살아왔던 원산을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이 모두 떠나가잖아요? 이중섭 삶 자체를 가족이 흩어지고 모이는 상황을 하이라이트로 묶은 것 같습니다. 가족이 헤어지는 과정에 포커스를 맞추고 아이를 만나서 이승을 떠나 가족들한테 떠나는 과정 아닐까요? 김종억 그렇게만 설명을 하신다면 일반 평범한 사람이 다 그렇게 사는 것이지요. 특별히 이중섭이라는 화가의 삶에 집중을 하고 조명을 했다는 것은 그렇게 현실적으로 길을 떠나는 것에만 조명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 작가의 일대기를 통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고뇌를 하고 또 그 속에서 화가로서 살아온 이중섭을 표현했다고 봅니다. 그냥 길만 떠나는 건만 생각했다면 일반이랑 똑같은 거잖아요. 장영희 저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맞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중섭이 원산에서 어머니를 떠나오고, 부인인 남덕이 일본으로 가버리면서 상당한 외로움을 느끼죠. 그러면서 자기의 성기에 소금도 바르고 안타까운 장면들이 나왔잖아요. 마지막에 하늘로 가는 장면에서는 아들과 함께 가요. 어머니, 남덕이, 아들들과의 이별로 인해 굉장한 상처를 받았구나. 그 의미에서 길 떠나는 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리고 연극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데 정말 가슴이 설렜어요. 이중섭이라는 영혼을 만나는 시간을 기다리는 거였잖아요. 그래서 아주 기분이 묘했습니다. 두 시간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도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연극을 기다렸습니다. 전용욱 이중섭 보다 더 많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도 있어요. 그 사람이 시대의 아픔을 간직해왔기 때문에 인지도도 높고 그 사람을 택했기 때문에 극화해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거라고 봅니다. 사실 나이 들어보니까 젊은 시절을 살아봐서 그런 건지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장영희 첫째는 이중섭이 화가로 살면서 돈이 없었죠. 일본에 갔더니 장모는 자기 딸만 지키겠다고 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잖아요. 이중섭 평전을 읽은 뒤 연극으로 봐서 그런지 실제 이중섭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해하면서 볼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에서 이윤택 연출가가 큰 아들을 목각인형으로 만들어서 표현한 마지막 장면이 최고의 명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연극이라는 특유의 매체를 통해서 우리한테 들려주고자 했던 것을 확실히 보여준 것 같아요. 김종억 누구나 결국에는 가야하는 곳이잖아요. 이중섭이 자기 부인을 사랑해서 일본으로 가고 싶어 했지만 결국은 “나는 여기 고향, 흙이 땅이 있어야 자기 작품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막상 못가는 모습을 보여줬잖아요. 고향, 땅, 어머니 이런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정서를 예술가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나도 수필을 쓰는데 결국은 글의 밑바탕에는 어린 시절 고향이 깔릴 수밖에 없더라고요. 어린 시절 시골집이 지금의 인천 공항이 있는 곳이에요. 지금 내 마음 속에서만 자리하고 있어요. 언젠가 제가 미술을 배우면 상상 속에 있는 내 어릴 적에 집을 좀 그려보고 싶어요. 전용욱 유년기 땅, 우리 동네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소중하고 오래가는지 알 수 있는 거죠. 이중섭의 땅도 그렇게 밖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최원국 저는 연극이 예술가로서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를 조명하는지 알았는데 예술가라면 어떻게 하면 예술가로서 성공했다 이런 것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인간 이중섭만을 다뤘더라고요.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을 거 같다고 느꼈습니다. 일본에서 딴 화가의 그림을 모방했다고 했을 때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았을텐데 생각했습니다. 백외섭 연출가 설명 중에 미술은 연극에서 표현을 할 수 없으니까 7분 동안 그린 것이고 무대를 하나의 그림처럼 표현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솔직히 연극을 많이 접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사실 적응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이중섭에 대해서는 알고 있고 좀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연극에 익숙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을 위해 눈이 번쩍 뜨이는 무대가 좀 더 있었으면 했습니다. 연극을 좀 더 많이 보면 이해할까요? 장영희 저는 이 작품에서 핵심만 얘기했다고 생각해요. 연극에서 잘 표현했고 전달했어요. 그 사람의 고뇌, 사상, 왜 제목을 길 떠나는 가족이라고 지었어야 했는지 많이 공감했습니다. 이중섭의 생애에 대한 정보를 조금 알고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종억 인간적인 고뇌가 결국 어떻게 녹아서 좋은 그림을 그리게 됐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천상병 시인도 말입니다. 그 분 또한 남겨진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삶을 조명해보면 술을 한시도 입에서 떼지 않으시고 사시다 생을 마감했잖아요. 하지만 예술가로서 족적 남길만한 시를 남겼잖아요. 그런 삶의 과정 속에서 글을 남길 수 있다. 예술가의 현재성이 말할 수 있죠. 맥락에서 보면 이중섭도 정말 평탄한 집안에서 잘 만나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가세가 기울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등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좋은 작품으로 승화됐다고 유추 해석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용욱 순탄한 삶을 살아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예술가가 드물잖아요. 이중섭도 기복이 크고 힘든 삶을 살았던 거죠. 그랬기 때문에 시대에 남는 강렬한 작품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2016-10-11 1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