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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오! 캐롤>
- 뮤지컬 을 보러 갈 기회가 생겼다. 제목만으로도 신나는 춤과 음악이 어우러져 경쾌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젊은 날 좋아했던 노래와 향수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아 큰 기대가 되었다. ‘오 캐롤’ 하면 크리스마스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유명한 팝가수 닐 세다카가 만든 이 곡의 이름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에서 따와 지었다고 한다. 가수였던 ‘캐롤 킹’에게 이 노래를 만들어 사랑을 고백했다는데 그녀 역시 ‘오! 닐’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재치 있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 이면의 이야기는 몰랐어도 닐 세다카가 만든 ‘오 캐롤’과 ‘유 민 에브리 씽 투 미’나 누구라도 들으면 어깨를 들썩이지 않을 수 없는 ‘원 웨이 티켓’ 등 신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어 마음이 설레었다. 은 작년 말부터 공연을 시작해 롱런하고 있는 작품이다. 극장을 옮겨 디큐브시티 극장에서 하는 이번 공연은 5월 7일 마지막 무대에 올려졌다. 필자는 이 마지막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이렇게 오래 공연을 계속한 건 그만큼 관객의 호응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출연진도 매우 화려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톱 뮤지컬 배우가 모두 등장하는 것 같다. 필자가 보러 간 날은 유명한 뮤지컬 배우 남경주씨와 김선경씨가 캐스팅되었다. 무대도 화려했지만 오랜 기간 공연한 작품이어선지 배우들의 액션이 매우 자연스럽고 유연했다. 1960년대 미국 마이애미 파라다이스 리조트에서 만난 네 커플의 유쾌한 러브 스토리가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결혼식 당일 신랑이 나타나지 않에 충격을 받은 ‘마지’와 그런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가수지망생 ‘로이스’가 파라다이스 리조트를 찾아온다. 파라다이스 리조트는 한때 화려한 스타였던 ‘에스더’가 운영하는 위락시설로 오랜 시간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는 쇼 MC '허비‘가 가슴앓이하며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 그곳엔 스타가 되기를 꿈꾸며 노래하는 바람둥이 ‘델’과 그의 팬이자 후원자인 ‘스텔라’도 있고 급사 일을 하는 어수룩하지만 멋진 곡을 만드는 작곡가 ‘게이브’도 있다. 남편과 자식을 잃은 아픔을 지닌 ‘에스더’는 오랜 시간 묵묵히 그녀를 지켜온 ‘허비’의 사랑 고백을 받아들여 파라다이스 리조트를 떠나 제2의 인생을 살기로 한다. 리조트는 가수 ‘델’과 그의 후원자인 ‘스텔라’가 맡아 경영하게 되고 파혼을 맞았던 ‘마지’는 용서를 빌며 찾아온 ‘레오나르도’와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한다. 친구를 위로하려고 왔던 ‘루이스’는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가 ‘게이브’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고백을 받아들여 연인 사이가 된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네 커플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좌충우돌 즐거운 뮤지컬이다. 한정된 무대에 여러 장치를 바꿔가며 공간 활용을 다양하고 멋지게 한 연출이 돋보였고 이제까지 보았던 뮤지컬의 음악 팀이 무대 아래에 배치되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무대 위쪽에 차려진 점이 독특했는데 리조트의 클럽 장면이 자주 나와 연주자들이 무대 위쪽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아주 신나고 멋진 음악은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8인조 밴드의 라이브 연주와 1960년대의 의상과 분장, 무대를 통해 시대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세련되게 보여준 을 보면서 마치 배우와 한 무대에 있는 듯 손뼉을 치고 몸을 흔들며 흥겨운 분위기에 흠뻑 빠졌다. 젊은 날 매우 즐겨 불렀던 ‘원 웨이 티켓’을 들으며 향수에도 젖어봤다. 뮤지컬이 끝났는데도 흥얼거리고 있는 필자를 보며 웃음도 났고 기분도 좋았다. 우리 관객을 위해 화려하고 흥겨운 무대를 보여준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 2017-05-1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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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 위에 오뚜기
- 그때도 지금처럼 아직 쌀쌀한 바람이 제법 부는 날이었습니다. 필자는 엄마 손을 잡고 학교 운동장으로 갔습니다. 엄마 손은 따뜻했고 필자를 바라보는 눈빛은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습니다. 영등포구에 자리 잡고 있는 우신초등학교. 당시엔 우신국민학교라 했죠. 그때 이미 5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니 지금은 100년이 훌쩍 넘은 서울에서 몇 안 되는 학교이기도 합니다. 학교는 필자의 작은 눈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넓었지만 학생 수도 엄청나게 많아 그 큰 운동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신입생만 한 반에 70명 정도씩 20개 반 정도나 됐으니 대략 1400명은 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신입생 아이들은 모두 엄마나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왔으니 그야말로 학교운동장은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었고요. 선생님이 아무리 조용히 하라고 외쳐도 운동장은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등에 새 가방을 메고 있었습니다. 가방 안에는 스케치북과 색연필 또는 색색의 크레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가벼운 비닐가방이었지만 체구가 작은 아이들에겐 그나마도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가방은 크고 덜렁거렸습니다. 학생들의 오른쪽 가슴엔 명찰이 그리고 왼쪽 가슴엔 손수건이 달려 있었습니다. 손수건은 멋진 장식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코를 닦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의 아이들은 잘 먹지 못하고 영양이 부족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코를 흘렸습니다. 닦아도 닦아도 푸른색을 띤 콧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영양도 영양이지만 잘 입지 못하고 밖에서만 뛰어놀아 늘 감기에 걸려 있었고 그래서 콧물을 그리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한 여 선생님을 따라 우리는 노래와 춤을 배웠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모습이었지만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춤동작과 노래를 모두 잘 따라했습니다. 이때 배운 노래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군요. 지금도 초등학교 신입생들이 이 노래를 배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책상 위에 오뚜기 우습구나야 검은 눈을 쏙 내어 뒤뚱거리며 배만 불쑥 내민 꼴 우습구나야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노래가 끝나도 우린 교실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교실이 턱없이 부족했으니까요. 우린 먼지가 풀풀 날리는 운동장 한쪽 구석에 사열 종대로 길게 늘어서서 담임선생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내일은 몇 시까지 이제는 엄마 손 잡지 말고 혼자서 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입학한 후 한 2주일 정도를 계속 아침 10시까지 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매일 춤과 노래를 배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춤과 노래를 배우는 일정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턱없이 부족했던 교실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전반, 오후반도 부족해서 오후 늦은 시간에도 반을 편성했거든요. 그리고 어떤 학급은 80명이 훨씬 넘는 학생들이 우글거리기도 했습니다. 책상을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우리 세대를 일컬어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합니다. 아마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은퇴를 걱정하는 것도 이처럼 엄청난 수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입학식이 끝나고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떤 부잣집 아이들은 중국집으로 가서 자장면을 먹기도 했는데 필자는 가난해서 그냥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죠. 집에 돌아와서 엄마는 자장면을 못 사줘 서운했는지 필자 눈치를 보더니 밖에서 꽁치 한 마리를 사다가 구어 점심을 차려주셨습니다. 나는 꽁치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고기나 생선이 귀한 시절이었으니 꽁치 한 마리 구우면 가시까지 씹어 먹을 기세로 달려들었습니다. 필자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지만 마치 필자가 막내인 양 어리광과 떼를 써서라도 먹고 싶은 것은 먹어야 하는 아주 이기적인 꼬마였습니다. 형들이나 동생이 보면 얼마나 미웠을까요. 지금도 생각나면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필자는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가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면서도 가방을 메고 있었습니다. 왜 가방을 벗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아마 가방을 메고 있는 것이 멋있고 자랑스러워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 살 많은 형들이 필자를 보더니 놀렸습니다. 1학년 꼴뚜기 말라빠진 꼴뚜기… 흔히 1학년 신입생들에게 놀리는 노래이지요. 괜스레 화가 났습니다. 얼마 전까지 함께 이름을 부르고 뛰어놀던 사이였는데 이제 그들은 2학년 선배가 되고 필자는 1학년 꼴뚜기가 되었으니 은근히 부아가 났던 것이지요. 놀리지 말라며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어울려 놀았으니까요. 봄이 올 때마다 아름다운 기억이 떠오릅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지만 어김없이 다시 돌아오는 봄 햇살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입학식 날,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서 불렀던 노래가 지금도 아련히 들려오는 듯합니다. 책상 위에 오뚜기 우습구나야…
- 2017-05-1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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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미녀와 야수>를 보고
- 이번 야수도 역시 미녀를 좋아했다. 모처럼 집에서 가까운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큰딸로부터 가끔 받는 선물이다. 때로 머리가 복잡할 때 스트레스 해소로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다. 물론 후기가 찜찜할 때도 있지만 그런대로 시간은 흘러 골치가 덜 아프다. 더구나 역시 여유로운 시간과 함께 신바람 나는 것은 아주 큰 사이즈의 달달한 팝콘 한 통이 엉킨 기분을 싱숭생숭 마냥 즐겁게 만들어준다. 영화관 안에는 여기저기 남녀의 연인들, 어린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의 모습도 군데군데 많이 보인다. 휴일의 정겹고 따뜻한 한가로움이다. 입장하는 손에는 모두가 커다란 팝콘 통들을 애지중지 끼고 있다. 동화 속 애니메이션, 판타지 영화이기에 어린이들도 어른도 온 가족이 환상 속 나들이를 한 모 양이다. 그동안 각종 장르의 미녀와 야수가 있었다. 이번에는 디즈니사에서 만든 작품이라 왠지 기대가 되었다. 미국에 살 때도 가끔 한 번씩 가고 싶은 곳이 환상의 디즈니랜드였다.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이른 아침부터 일찌감치 입장해 거의 끝날 시간이 되어서야 퇴장을 하곤 했다. 하루 종일 실컷 동화 같은 신비의 세상에서 신나게 즐기고 오면 그동안의 쌓인 피로가 한방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화려한 비주얼 캐릭터로 장식된 시작과 함께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는 역시나 웅장했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배경도 어디론가 상상 속 나라로 관객들을 충분히 이끌어가 주었다. 멋지고 찬란하게 춤을 추며 화려하게 전개되는 뮤지컬 영화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시대적 배경이나 문화적 차이도 모두 뒤로 한 채, 관객은 환상 속 나래를 꿈꾸며 그저 자연스레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어마어마하게 멋진 궁궐, 춤과 노래, 화려한 캐릭터들의 동선 속에서 부를 상징하며 펼쳐지는 파티는 언제라도 보는 이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하게 만들어준다. 늠름하게 생긴 백마 탄 왕자와 호화찬란한 드레스의 신데렐라를 꿈꾸는 많은 여인들의 신비로운 몸동작, 화려한 무대 위에 춤을 추는 장면들은 보기만 해도 흐뭇한 설렘이다. 쿵 짝짝 쿵 짝짝, 왈츠의 리듬이 웅장하고 높다란 성을 음악 속으로 뒤덮는다. 황홀하던 순간, 역시나 마녀의 저주 속에 왕자와 성안에 모든 시종들은 마법에 걸려들고 만다. 졸지에 흉측한 야수로 변해 버린 멋진 왕자는 엄청난 실의에 빠지게 되고, 다행히도 한 송이 장미꽃의 이파리가 다 떨어지기 전에 왕자가 진실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면 그 마법을 풀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가 있었다. 어느 작은 마을, 아주 똑똑하고 현명하고 어여쁜 벨이라는 청순하고 어린 소녀(엠마 왓슨)가 등장을 한다. 소녀는 아빠와 함께 단둘이 살며 극진한 효녀로 생활을 한다. 그녀는 최고의 미녀이며 늘 넓은 세상을 꿈꾸는 용기와 지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마을에서는 대장부 기질을 자청하는 욕심에 가득 찬 건장한 청년이 그 소녀를 자기 아내로 만들려고 온갖 권모술수를 자행한다. 어느 날 소녀의 아버지가 야수의 정원에서 딸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장미꽃을 꺾다가 도둑으로 몰려 성에 갇히게 된다. 모험심으로 가득한 소녀는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한 지극함으로 그 성으로 들어가 야수를 만나게 되고, 결국 성 안에 캐릭터들의 노력으로 인해 흉측한 야수와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끝내, 시간이 흘러 장미꽃의 마지막 이파리가 떨어지게 되고, 흉측했던 왕자와 성안의 사람들은 엄청난 저주의 마법에서 서서히 풀려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소녀를 차지하기 위한 이기와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마을의 사나운 사내는 야수의 왕자와 싸우다 높다란 성위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져 사라지고 만다. 너무나 뻔한 스토리로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역시 탁월한 연출력과 제작은 보는 이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꿈같은 무대와 주옥같은 명곡으로 수놓은 두어 시간들이 긴장과 행복 속에 둥둥 떠다니다 어디론가 떠내려온 듯 영화는 아쉬운 막을 내렸다. 기분 좋은 행복감이 온몸을 휘감고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은 여운을 남기며 스며내렸다. 더구나 이상한 것은 처음에는 무서워서 감히 바라볼 수 없었던 야수의 흉측한 얼굴이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랑에 넘치는 커다란 야수의 눈망울에는 애틋하고 묘한 감정도 곁들여졌다. 역시나 진정한 사랑의 황홀함과 함께 오랜만에 멋지고 웅장한 스케일의 뮤지컬 영화 한 편은 필자를 만끽하게 만들어 주었다. 살다 보면 복잡한 미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빛을 향해 발버둥 칠 때가 있다. 때로는 단순하고 심플한 것이 어둠이 드리워진 삶의 해결사이며 악성 스트레스를 순간이라도 단숨에 날려주기도 한다. 그저 주변이 잠시라도 아름답게 느껴지기만 한다면, 그 자체가 탈출구로 주위에 모든 것들은 긍정의 마음으로 돌변해 문제는 마냥 쉽게 술술 풀리기도 할 것이다. 오늘 하루도 주어진 멋지고 행복한 시간들이 있어 또 감사할 따름이다.
- 2017-04-2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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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니버설 발레단의 환상적인 공연
- 발레공연 ‘돈키호테’를 관람했다. 발레는 매우 오랜만에 보는 거라 그 화려한 아름다움을 미리 상상하며 즐거웠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1984년 창단된 한국 최초의 민간 직업 발레단으로 1회 신데렐라 공연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 17개국에 선보이며 최고의 발레단으로 성장했다. 현재는 문훈숙 단장과 70여 명의 무용수, 40여 명의 스태프가 세계 정상을 향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모두 알고 있듯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가 쓴 희극소설로 스페인의 엉뚱한 기사와 그의 시종인 ‘산초판자’ 그리고 ‘로시난테’ 라는 말이 방랑하며 벌이는 무용담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 발레 공연에선 돈키호테가 주인공이 아니고 가난한 이발사 ‘바질’과 아름다운 선술집 딸 ‘키트리’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공연 시작 전 무대에 문훈숙 단장이 올라왔다. 발레를 볼 때 알아두면 좀 더 즐거운 관람이 될 거라는 인사와 함께 해설과 동작 시범을 보여주었다. 부드러운 손짓 하나하나 설명 한마디까지 열심히 귀 기울였는데 실제 공연을 보는 동안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공연 ‘돈키호테’에서는 토슈즈를 신은 무용수 외에 스페인 구두를 신은 무용수가 대거 등장한다고 한다. 캐릭터 댄스로 그 나라의 민속춤 동작이 있어 그렇다는데 무대에는 정통 발레슈즈와 까만색의 구두를 신은 무용수가 섞여 있었다. 정통 발레복인 튜튜를 입고 토슈즈를 신은 깜찍한 모습도 보기 좋았지만, 정열적인 스페인 의상을 입은 무희의 춤은 매우 화려해서 즐거웠다. 일상사에 부채를 이용한다는 설명으로 거친 동작과 부드러운 손동작으로 시범을 보여주었다. 발레에도 대사가 있는데 말이 아닌 손동작과 몸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1869년 러시아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해 대성공을 시작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는 스페인의 정열이 살아 숨 쉬는 유쾌한 희극 발레가 시작되었다. 지중해의 낭만과 정열이 녹아있는 무대와 의상, 유머 넘치는 발레 마임과 빠른 스토리 전개, 스페인풍의 경쾌한 음악, 강한 캐릭터들의 좌충우돌 해프닝까지 우리의 눈을 한시도 떼지 못하게 잡았다. 제1막은 용감한 기사의 무용담을 너무 많이 읽은 ‘돈키호테’가 자기 자신이 기사라 믿고 환상의 여인 ‘둘시네아’를 찾아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구해내겠다며 시종 ‘산초판자’와 함께 길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스페인 거리에 화려한 차림의 사람들이 탬버린으로 경쾌한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이때 빨강 의상으로 도도하면서도 발랄한 선술집 딸 ‘키트리’가 등장한다. 가난한 이발사 애인이 있지만, 아버지는 점찍어 놓은 사윗감인 멍청하지만 돈 많은 귀족 ‘가마슈’가 있어 이들을 반대한다. 제2막, 3막으로 나뉜 무대는 우여곡절 끝에 돈키호테의 도움으로 무사히 결혼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2막에서 ‘돈키호테’가 꿈을 꾸는 장면에 나오는 숲의 요정은 이 공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페인풍의 발레와는 달리 정통 클래식 발레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어 절제된 고전 발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발레 ‘돈키호테’는 화려한 기교와 테크닉의 클래식 작품으로 주인공뿐 아니라 군무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남성 무용수가 발레리나를 한 손으로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는 리프트 동작과 연속 점프, 발레리나의 32회나 돈다는 ‘푸에테’ (한쪽 발을 축으로 발끝으로 서서 다른 쪽 발을 올려 크게 흔들며 회전하는 동작) 등이 필자의 마음을 환상의 나라로 이끌어 주었다. 웅장하고 흥겨운 음악에 맞춰 공연된 발레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현실에 돌아오기가 싫을 정도로 한동안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중고교시절 특별활동으로 발레반에 들어 잠시 발레 연습을 한 적 있다. 그때 계속했다면 필자도 젊은 시절 이런 무대에 섰을까? 가능하지 않은 엉뚱한 상상을 하며 즐거웠다.
- 2017-04-1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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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단카이 세대의 취미
- 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정년퇴직 이후의 삶, 제2의 인생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즐길 수 있을까?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며 그 실마리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의욕과 체력이 따라주는 젊은 시절부터 ‘취미의 씨’를 뿌려두는 게 중요하다. 취미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그 비결을 물으면 “젊었을 때 했던 취미생활을 다시 시작했다”고 대답하는 분들이 꽤 된다. 그러나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는 걸 방해하는 건 의욕도 체력도 아니고 ‘오래 계속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일지도 모르겠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기회이자 타이밍’이니 남은 삶에 지금까지 맛본 적 없는 ‘재미’와 ‘보람’을 선물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자기 삶의 ‘애호가’일 것이다. 일본 시니어들의 취미 일본에서는 고령자가 계속할 수 있는 취미로 주식, 등산, 워킹, 낚시, 독서, 자수, 골프, 볼링, 시쓰기, 체스, 데생, 원예, 역사, 장기, 분재, 서예, 유화, 과자만들기, 수묵화, 시계수집, 게이트볼, 꽃꽂이 등을 꼽는다. 크게 몸을 움직이는 취미, 머리를 쓰는 취미, 손동작이 필요한 취미 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이러한 취미는 운동 부족을 해소해주고, 치매 예방에도 좋다. 또한 같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넓혀주고 쓸쓸한 노후의 고독도 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60대 남녀의 인기 취미 순위 350개 이상의 취미를 소개하는 일본의 ‘취미찾기닷컴’이 조사한 인기 순위를 잠깐 살펴보자. 먼저 60대 남성은 혼자 하는 여행, 사이클링, 오토바이, 재택근무, 사진, 전자공작(PIC), 절과 신사 순례, 주식, 워킹 순으로 조사됐다. 60대 여성의 경우는 혼자 하는 여행, 재택근무, 온천 순례, 절과 신사 순례, 워킹, 자수, 양궁, 등산, 심리학 순으로 인기가 있었다. 참고로 50대 남성의 취미로 사격, 50대 여성의 취미로 소설쓰기, 기타, 퍼즐 맞추기 등이 눈에 띄었다. 내 꿈을 찾아라~ 인생은 60부터 일본의 주쿄(中京) TV는 매주 일요일 아침 5시 45분부터 을 방송하고 있다. ‘아라칸’은 Around Kanreki의 줄임말로 칸레키는 우리말로 환갑을 의미한다. 이 프로그램은 환갑 전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꿈에 도전해 제2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힌트를 제안하고 있다. 이 방송에서 소개된 이색 취미 몇 가지를 소개해보겠다. 2015년 12월 6일 방송에서는 빙상 위의 컬링(curling)이 아닌 날씨와 관계없이 체육관에서 즐길 수 있는 ‘커롤링(curolling)’이 소개됐다. 20여 년 전 나고야에서 시작된 이래 경기 인구 40만 명을 자랑하는 인기 스포츠로 체력보다는 두뇌게임이라는 점에서 ‘마루 위의 체스’라고도 불린다. 2016년 1월 10일에는 미술 취미로 ‘어탁(魚拓)’이 소개됐다. 낚시를 좋아하지 않아도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어탁’은 기존의 수묵(水墨) 중심이 아니라 색채와 구도 등을 바꿔가며 다양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꼭 물고기가 아니어도 되며 모든 사물의 본을 떠서 작품으로 만드는 ‘탁화(拓畵)’라는 장르가 새롭게 소개됐다. 그다음 주인 1월 17일에는 카우보이 복장으로 차려입고 컨트리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컨트리 댄스가, 3월 13일에는 1960~1970년대에 붐이 일어나 일렉트릭 기타에 빠졌던 세대들이 밴드를 결성해 제2의 청춘을 만끽하는 모습이, 4월 17일에는 실제 동물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리얼 양털 퀼트 아트가, 8월 7일에는 다양한 무늬가 특징인 넥타이를 재활용해 가방과 인형 등을 만드는 리폼이 소개됐다. 이 밖에 9월 4일에는 경이로운 종이접기의 세계, 9월 11일에는 걸리버 여행기를 방불케 하는 미니어처의 세계, 10월 9일에는 종이를 오려내 그림을 만드는 ‘키리에(切り絵)’, 10월 23일에는 실제로 사람을 태우고 증기를 뿜으며 달리는 철도 모형 등이 소개됐다. 2017년에 들어와서는 우쿨렐레와 돌하우스(미니어처 장난감 집), 천사의 소리 핸드벨 음악, 볼펜 그림의 세계 등이 전파를 탔다. 이색(異色) 취미보다는 다양한 취미 인구가 많아지고 평균수명이 계속 늘어나면서 취미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 이색적이라는 이유로 주목을 끌던 취미들은 최근 덕후(마니아, 광)들이 등장하며 주류와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고 있다. 그만큼 취미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셈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 역시 새로운 취미에 도전해 개척하는 자세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자들에게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기보다는 치매 예방 차원에서 손가락과 뇌를 자주 사용할 수 있는 주산, 바둑, 장기, 손글씨, 그림, 색칠하기, 민요, 노래방, 꽃꽂이 등을 권한다. 간단한 요리를 만들게 하거나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시키는 것도 좋다. 몸 푸는 기분으로 이런 취미는 어떨까? 사단법인 일본 화살불기 레크레이션협회는 폐활량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취미로 화살불기를 권한다. 실제로 전국의 화살불기 교실에는 60~70대 회원들이 많은데 90세가 넘은 고령자도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수집이 취미인 사람들은 모으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수집한 물건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취미활동을 확대해보는 것도 좋겠다. 예를 들어 도자기 수집을 하는 사람이 도예 교실을 다니며 직접 만들어보거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해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어떨까? 또 인물과 동물, 자연 풍경 등 사진 찍기를 즐기는 사람은 독거노인의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등 자신의 취미와 능력을 사회에 환원하는 재능기부 나눔을 실천해보는 것도 좋다. 이처럼 좀 더 관심을 갖고 주변을 살펴보면, 의외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취미들이 많다. 먼저 발품을 팔아 정보를 찾아보고 자신에게 ‘안성맞춤’인 취미를 선택해보자. 슬슬 발동을 걸어보자 지난 2014년 5월에 구성된 댄스 그룹 ‘TGK48’은 일본 기후 현 다지미 시의 고령자들이 만든 그룹이다. 그룹명은 일본의 인기 여성 아이돌 그룹 AKB48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다지미, 겐키(건강), 고레샤(고령자)’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었다.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시고’를 기치로 내걸고 2016년 8월 60대 42명, 70대 21명, 80대 1명 등 총 64명(남성은 5명)으로 구성된 ‘TGK48’은 힙합도 소화하는 본격 댄스 그룹으로 공공시설을 빌려 일주일에 한 번씩 두 시간가량 연습을 하며 구슬땀을 흘린다. 최근 춤을 잘 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크고 작은 행사와 스포츠 대회에 출연,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고 있다. 강사 레슨비 등 연간 100만엔가량의 운영비는 다지미 시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고령자의 의료비와 개호비 등의 삭감과 관련해 길게 내다본 다지미 시의 획기적인 투자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2016년 3월 16일자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TGK48’ 멤버 35명의 체력을 측정한 결과 전 항목에 걸쳐 동세대의 일반인들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깜빡이는 빛을 보고 도약하는 데 걸리는 ‘전신 반응속도’는 무려 0.3초대로 20대 수준으로 나타났다. 5초간 빠르게 스텝을 밟는 ‘서서 스텝핑’의 평균 횟수도 60대 멤버가 40.1회, 70대 멤버가 37.7회를 기록해 젊은이 못지않은 결과를 보여줬다. 이들의 체력을 측정한 기후대학교 교육학부의 가스가 히카루 교수는 “힙합은 빠른 템포의 음악에 몸의 움직임을 맞추는 춤으로 신경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2017-04-1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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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댄스 첫날
- 일 년 쉬고 다시 장애인댄스 강습에 참여했다. 한창 뛸 때도 힘들었지만, 과연 일 년이나 쉬고도 다시 댄스 강습을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다. 우선 다른 스케줄로 일상이 채워져 그 스케줄을 뒤로 하고 장애인댄스에 시간을 내야 하니 어려웠다. 봄꽃이 한창이라 밖에서는 나오라고 유혹하는데 눈 질끈 감고 지하 연습실로 가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고민은 과연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도 걱정이었다. 걷기 운동은 꾸준히 했지만, 댄스 근육과 걷기 근육은 쓰임새가 다르다. 오히려 걷기 운동 때 빙판에서 삐끗했던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지도 걱정이었다. 단순히 가르치기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서울시 대표로 경기대회에 같이 출전해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니 연습량도 살인적이다. 보통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연습을 하는데 짧게는 하루 2시간, 보통 서너 시간, 길 때는 하루 종일 10시간 정도 한다. 점심 먹고 저녁도 먹어야 하는데 한번은 저녁 식사 후 그만 끝났는지 모르고 반주를 곁들였다가 다시 몇 시간 더 춤을 추는데 곤욕을 치렀다. 장애인과도 같이 붙잡고 춤 연습을 하지만, 장애인과 파트너 역할을 할 비장애인들과도 같이 연습을 한다. 대부분 고등학교, 대학교 재학 중인 아마추어 여자 선수들이다. 몸이 가벼워 춤추기는 좋지만, 요즘 학생들은 키가 보통 170cm에 육박하므로 같이 붙잡고 춤을 추기에는 아무래도 버겁다. 이 날은 왈츠, 비에니즈 왈츠 안무를 새로 짜서 연습했다. 경륜이 있으니 안무는 금방 체득했지만, 이제 두 종목만 끝낸 셈이다. 탱고가 템포가 빨라 새로 익히기가 만만치 않고, 퀵스텝도 난관이다. 폭스트로트부터 했으면 좋겠는데 폭스트로트는 여성이 가장 어려운 종목이라 혼자 잘 해봤자 소용없고 왈츠부터 차차 익히기를 기다려야 한다. 키가 큰 남자 시각장애인을 붙잡고 가르쳤다. 왈츠는 높낮이가 있는 춤인데다 다리를 11자로 가지런히 해야 한다. 그러나 팔(八)자 걸음으로 굳어진 장애인을 데리고 춤을 추려니 무릎이 수없이 와서 부딪혔다. 스텝이 틀려서 그렇고 회전량이 모자라다 보니 각도가 안 맞아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것이 파트너와 춤을 출 때 발이 서로 교차되지 않고 같이 전진하다가 엄지발톱이 뒤집히는 사고이다. 재작년에 일반인과 연습하다가 발톱끼리 부딪혀서 발톱이 새카맣게 변하는 바람에 지난 일 년 간 엄청 고생했었다. 당장 6월 초 전국대회부터 출전해야 하는데 여성파트너가 정해지지 않았다. 대상으로는 여러 명이라는데 이런 저런 사유로 결석을 하니 파트너를 정할 수도 없었다. 먼저 몸을 만들고 어떤 파트너가 되더라도 리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날도 옷을 따로 한 벌 준비해 갔다. 연습이 끝나면 온 몸이 땀으로 젖기 때문에 갈아입어야 한다. 연습장에 샤워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뒤풀이 할 동안은 그냥 입어서 말려야 한다. 9월에 전국체전이 있어서 올해는 그때까지 5개월만 열심히 하면 된다. 단체전도 준비해야 하는데 올 여름은 춤 연습으로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 2017-04-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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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를 직업으로 살리기 위한 10계명
- 조수경 ㈜글로벌아너스 대표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돈도 번다.’ 이보다 더 행복한 직업이 또 있을까? 앙코르 커리어에서는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취미를 통한 창직이야말로 자기에게 제일 잘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필자가 운영했던 연세대, 이화여대, 항공대 중장년 아카데미에서도 취미를 통한 창직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중 항공대 ‘드론 활용 창업 과정’에서는 드론(drone)을 취미로 좋아하는 시니어분들이 대거 참여했다. 교육 이후 드론과 연계해 창직을 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로 일을 가져서 그런지 누구보다도 열정이 넘치는 삶을 살고 계신다. 하지만 무턱대고 취미를 직업으로 삼았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취미가 수익까지 가져다주는 성공적인 직업으로 연결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취미와 재능은 별개임을 인식하라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타고난 재능을 혼동한다. 내가 춤을 좋아한다고 해서 댄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타고난 재능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어야 돈까지 벌 수 있는 직업을 만들 수 있다. 2.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라 좋아하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 취미를 통한 창직의 핵심이다. 좋아하기만 하고 잘할 수 없다면 수익을 창출하기가 어렵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면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객관적인 기준을 갖고 제대로 파악하라. 3. 열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식과 전문성을 갖춰라 취미를 열정적으로 하는 것과 그것을 성공적인 직업으로 바꾸는 데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노래를 취미 삼아 열정적으로 한다고 해서 다 가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4. 작게 점진적으로 시작하라 창직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나가는 것이기에 리스크가 존재한다. 그래서 우선 수익이 있는 다른 일을 하면서 작게 점진적으로 접근하기를 권한다. 필자가 아는 ‘아더’라는 정신과의사 선생님은 탱고를 너무 좋아해 의사로서 일을 하면서 댄스치유학회도 만들고 탱고 강사도 하면서 점진적으로 접근해 현재는 탱고업계에서 자리를 잡았다. 5. 경력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라 시니어의 최고 자산은 수십 년간의 경험과 경력이다. 취미를 통한 창직에서도 최대한 자신의 경험과 경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례로 항공대 ‘드론 활용 창업 과정’의 교육생이었던 드론활용연구회 유진철 대표는 대안학교 교장으로서의 경력을 활용해 자유학기제와 연계해 드론 교육 사업을 하고 있다. 교육시장을 잘 알기에 다른 분들보다 빠른 성공이 엿보인다. 6. 고객을 이해하라 비즈니스에 대한 기본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고객을 이해하는 것이다. 취미로 사진을 하던 은퇴자들이 설립한 장애인 전문 사진관 ‘바라봄 사진관’은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크라우드펀딩이 성공하는 등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 장애인인 고객을 잘 이해하고 배려한 것이 성공의 핵심 키다. 7. 시장 공략은 창의적으로 하라 취미를 통해 창직을 하더라도 남들과 똑같이 시장에 접근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으로 틈새시장을 찾아 공략해야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필자가 진행한 중장년 아카데미 교육생이었던 ‘미벨의 감성 여행 스토리텔러’ 박미종 대표는 은행 지점장까지 지낸 분인데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스토리가 있는 ‘스페인 여행 이야기’를 만들어 사업을 시작,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살고 있다. 8. 반 박자만 앞서가라 취미를 통한 창직을 제대로 하려면 시대의 흐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좋아하는 마음에 너무 앞서가면 시장이 형성되기 이전이라 때로는 고객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가 드론 활용 창업 과정을 할 때도 한국은 드론시장이 형성되는 초기였기에 이 부분을 강조했다. 창직을 하려면 5년 정도만 앞서가라. 그렇게 반 박자 앞서갈 때 성공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9. 커뮤니티를 최대한 활용하라 취미를 통한 창직은 커뮤니티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다가 직업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동호회는 취미 교류의 장인 동시에 정보 교류의 장이다. 활발히 교류하다 보면 정보도 얻고 그 커뮤니티 사람들이 고객이 되기도 한다. 종종 창직의 기반도 마련된다. 10. 인내하며 실패를 즐겨라 취미를 통한 창직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어떤 분은 재즈를 너무 좋아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십 년간 투잡으로 공연을 뛰다가 은퇴 후 전업 재즈 가수가 되었다. 이렇게 취미를 통한 창직은 때로는 수십 년이 걸릴 정도로 시간이 많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즐기면서 할 수 있기에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어느덧 창직의 길로 들어서 있을 것이다. 취미를 통한 창직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보자. Bravo Your Life!
- 2017-04-1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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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의 거장 닐 세다카의 음악에 빠지다" 뮤지컬 <오! 캐롤> 한진섭 연출가
- 뜨거운 호평 속에 지난 2월 막을 내린 뮤지컬 이 더욱 화려한 무대와 출연진으로 다시 돌아왔다. 국내 첫 라이선스 공연부터 앙코르 무대까지 수장을 맡은 한진섭 연출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초연 무대 연출 계기는? 작년 초 처음 SMG의 박영석 대표가 음악을 들려줬다. 바로 가슴이 뛰었다. 어린 시절 듣고 좋아했던 닐 세다카의 음악들로 만든 뮤지컬이 있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됐다. 꿈 많던 젊은 시절의 뜨거운 에너지가 삽시간에 되살아나 몸과 마음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작업을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감흥을 나와 비슷한 시절을 보낸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아주 강렬하게! 또 젊은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어쩌면 단순하고 더딘, 답답한 템포의 시기였지만 느린 만큼 낭만적이고 진솔했던 그때를 이해하고 즐겨보기를, 그래서 세대 간 소통해 보길 권하고 싶었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 이 작품은 ‘거창한’ 작품이다. 거의 창작한 작품이란 얘기다. 라이선스로서 이 작품을 처음 대했지만 거의 90% 창작했다 할 수 있다. 국내연출을 경험했던지라 주크박스 뮤지컬을 다시 만들 기회가 생긴 것이 무척 소중했다. 곡은 외국에서 왔지만 '우리의 이야기'로 '우리의 정서'를 담고 싶었다. 제작진, 크리에이티브 팀 모두가 뜻이 같았다. 한마음이 되었고 를 대적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노력했다. 우린 진정 이 작품이 세대를 아우르는, 모두 소통하는 가족극이 되길 희망했다. 뜨거운 호평 속에서 앙코르 공연을 올리게 된 소감, 앙코르 공연에서 보완한 부분 큰 사랑과 호응을 얻어 감사할 따름이다. 앙코르 땐 한층 업그레이드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 기회가 금방 찾아왔고, 부담감보다는 설렘으로 작업했다. 첫째, 드라마의 개연성과 풍요로움을 위해 몇몇 캐스트의 대사와 곡을 추가했다. 둘째, 디자인 면에선 쇼 장면 조명을 더 화려하게 연출했다. 음악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음향 디자인을 새단장했다. 안무와 쇼 의상도 더 화려하게 보충했다. 초연에선 ‘게이브’ 역에 대한 소개가 2막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다소 갑작스럽기도 하고 부족한 면이 있어서 1막에 자기소개 개념의 경쾌한 곡을 앙상블의 춤과 함께 추가했다. 또, ‘마지’와 결혼하기로 했다가 일방적으로 파혼을 결심한 ‘레오나드’의 속마음을 ‘허비’와의 대화를 통해 설명하는 장면도 넣었다. 더불어 극적인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1막 끝에 마지와 레오나드의 분명한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과, 2막 후반부의 ‘오! 캐롤’ 넘버 때의 반전 장면을 조명과 음악을 통해 보충했다. 남경주, 서범석, 전수경 최정원, 김선경 등 중견 배우들과의 호흡은? 20~30여 년을 함께 호흡해왔다. 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 전반에 대한 이해가 높아 연습 중 오가는 깊이 있는 대화 덕분에 작품이 풍성해졌다. 내가 자칫 놓치는 주관적 대목도 그들의 예리한 지적으로 객관적일 수 있었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튼튼한 골격은 이미 세워졌다. 한마디로 화려한 시너지의 잔치였다. 중장년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 또는 음악이 있다면? 귀에 익은 노래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One Way Ticket To The Blues’가 그랬고, 에스더를 향한 허비의 사랑고백 노래였던 ‘You Mean Everything To Me’가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작품 제목으로 사용 된 ‘Oh! Carol’을 신나게 따라 부르며 모두들 좋아했다. 한편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King Of Clowns’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마 극에 몰두한 상태에서 페이소스를 느끼게 되어 감동적이었으리라 판단한다. 어떤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지 초연이 시작 될 무렵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태가 혼란스럽다. 그다지 경쾌한 뉴스가 없다. 화려함이 아닌 담백한 음식을 차려놓고 따뜻한 방에서 가족끼리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길 바라는, ‘일상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노력한 중장년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그들이 행복하고 즐거우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의 가족과 그들이 속한 사회가 평안하면 좋겠다. 우린 ‘모두가 행복해지는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기에. △한진섭 연출가 뮤지컬 , , , , , 외 다수 연출. 제6회·11회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 등 수상. △ 뮤지컬 디큐브아트센터, 일정 5월 7일까지
- 2017-04-0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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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한 달 걷기
- 4월의 ‘한 달 여행’ 시리즈는 ‘길 위에 오두막 별장 만들기’다. 한 달간 스페인의 ‘순례자 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그 시작점은 피레네 산맥을 등에 기대고 사는 프랑스 산간 마을, 생장피에드포르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설 준비를 한다.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전 세계의 ‘시니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프랑스 페이 바스크의 아름다운 소읍, 생장피에드포르 프랑스의 남서부, 스페인과 이웃한 작은 도시가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다. 이 산간 마을의 이름은 페이 바스크(Pays Basque)다. 분명 프랑스령이지만 국가에 완벽하게 귀속되지 않은 채, 자기만의 전통 색깔을 강하게 지켜나가는 바스크인의 영토다. 이들은 피레네 산맥 지역에 사는 소수 인으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다. 1000년도 넘은 천년고도 ‘생장’에는 바스크 지방의 특색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암 벽돌로 지은 바스크식의 아름다운 가옥들. 건물마다 이름을 새겨놓은 것도 바스크의 전통이다. 마을은 그림 같다. 성당의 종탑에서는 미사의 종소리가 울리고 맑은 니베 강이 마을을 가로지른다. 이 마을엔 사철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야고보의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은 피레네 산맥을 넘을 준비를 하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산티아고’까지 총 800㎞를 걷는 대장정을 시작하는 순례자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필자가 머물던 숙소지기는 “완주하고 나면 다시 태어날 것이다”라는 말로 격려한다. 고산에 피어난 야생화에 고단함을 푸는 시간 ‘생장’을 벗어나 ‘운토’ 마을에 이르면 넓은 호밀밭이 펼쳐진다. 야트막한 푸른 언덕에 그림 같은 집들이 군데군데 들어선 모습은 가히 아름답다. 이 지역은 고도여서 사람 살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었지만 자연 조건이 좋아 일찍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 초기에는 유목민이었다가 서서히 정착생활을 해나갔다. 아름다운 고원의 풍경에 빠져 걷다 보면 첫 번째 사설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전용숙소)인 ‘오리손(Orison, 770m)’을 만난다. 올드 팝이 들리는 깔끔한 바다를 마주하고 맛있는 커피 한 잔의 휴식을 가진 뒤에는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 가는 ‘각오’를 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민가 한 채 없는 허허벌판과 가파른 산길만 있다. 걷는 길이 힘겹지만 가끔 벗이 되는 것들이 있다. 군데군데 피어난 야생화 군락지다. 4월에는 주목나무 잎을 가졌지만 골담초처럼 노란 꽃을 피워내는, 가시 박힌 나무가 온 산하에 펼쳐진다. 벤타르테아 언덕(Collado de Bentartea, 1344m)의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서면 깜짝 놀란다. 한국의 깊은 산에서만 보던 얼레지와 흡사한 야생화가 피어 있기 때문이다. 피레네 산맥에 피어난 아름다운 보랏빛 꽃은 여린 꽃잎을 파르르 떨고 있다. 봄의 잔설과 약수터에 서린 ‘롤랑’의 전설 이 고갯길부터는 우측 능선이 확 트여 수채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운무 자욱한 평원과 저 멀리 있는 고산의 산정엔 봄철까지 눈이 남아 하얗다. 넓은 초지 사이로 몇 채의 목장 건물이 들어앉아 있고 고원의 바람 따라 구름도 함께 춤을 춘다. 행여 산정을 못 넘는 순례자를 위해 바위 틈새에는 대피소가 마련돼 있다.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 들고 휴식을 취하는 곳. 체하지 말라는 듯 ‘롤랑(Roland)의 샘’이 반긴다. 롤랑 백작이 이 산맥을 넘을 때 마셨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약수터 이름이다. 이 약수터를 기점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 나뉜다. 롤랑은 11세기(혹은 12세기 초)에 씌인 중세 유럽 최대의 서사시인 ‘롤랑의 노래’에 등장하는 비극적 영웅이다. 롤랑은 프랑스 샤를마뉴(742~814) 대제의 군대를 이끌고 론세스바예스 요새로 가다가 미리 매복하고 있던 바스크족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후 샤를마뉴 대제가 바스크족을 전멸했다는 게 이 서사시의 주요 스토리다. 이 작품이 전설인지 실화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롤랑이 패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아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바스크족의 요새,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약수터를 지나면 피레네 순례길에서 가장 높은 레푀데르 언덕(Collado de Lepoeder, 1430m)에 이른다. 여기서부터는 급경사의 내리막길. 고갯길을 조금 내려오면 두 갈래로 길이 갈라지고 팻말이 나온다. 한쪽은 3km이고 다른 길은 3.6km. 어느 쪽을 선택하든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이 길은 일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할 정도로 힘겹다. 딱 봐도 롤랑 장군이 단련된 바스크족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고개를 내려서면 산맥의 협곡 깊숙한 곳에, 외따로 자리한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이 있다. 여전히 요새와 같은 곳. 안내소와 두 동의 알베르게, 식당 두 곳, 서점 등 여러 동의 건물이 있다. 어쨌든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일단 발을 뗀 이상 포기할 수도, 되돌아갈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오직 두 다리로 걷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변화무쌍한 이곳의 봄 풍치는 평생 기억에 남는다. Travel Data 교통편 파리로 입국하는 게 가장 좋다.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바욘 역까지 테제베를 이용하고, 바욘 역에서 생장피에드포르까지 가는 두 량짜리 기차로 갈아타면 된다. 걷는 코스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운토(Hunto, 5km)-오리손(Orison, 3km)-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17km). 총 25km. 현지 정보 ‘생장’에 도착해 ‘산티아고 협회’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순례자 증명서를 준다. 협회에서는 그날 묵을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도 정해준다. 피레네 산맥은 고지대라 거의 산행에 가까우므로 트레킹화보다는 등산화가 좋다. 해빙기 때는 눈이 남아 있고 길도 질퍽거리는 데다 기후 변화도 잦다. 또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는 빵, 음료 등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일요일에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는 것을 기억해두자. 영 자신이 없다면 스페인 론세스바예스까지 이동한 뒤 순례를 시작하면 된다. 배낭은 절대적으로 가벼워야 하고 힘들 경우 배낭을 미리 보내면 된다. 순례자의 길 산티아고의 길(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은 생장~산티아고까지 총 800km다. 완주하는 데 한 달 정도 예상하면 된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카미노(camino)’ 한마디면 다 통한다. 카미노는 스페인어로 ‘길(road)’이라는 뜻이다. 카미노 여행의 매력적인 장점은 기간 대비 비용이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다. 내 발로 걸으니 교통비도 들지 않고,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 사용료도 매우 싸다. 이곳에서 취사, 세탁 등을 다 해결할 수 있다. 여행 적기 ‘산티아고 성인의 날’은 7월 25일. 이때는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몰려온다. 봄과 가을이 가장 좋다. 겨울은 절대 ‘비추’다. 많은 한국인이 준비 없이 떠나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스페인 친구가 전해주었다. 시니어 여행 포인트 이 여행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빨리 완주하고 싶어 하는 한국인의 속성이다. 욕망이 앞서면 결코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없다. 힘들면 코스는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가장 좋은 10일 코스를 선택하고 스페인 일반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페인은 한 달 이상 여행할 가치가 있는 나라다.
- 2017-03-3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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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집 짓기는 일종의 자기 수행의 도량’
- 어느 날 우연히 우리 아파트 북 카페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한눈에 크게 공감하는 이유는 내 손으로 직접 집을 짓는 일이었다. 에서 비록 일주일이라는 단어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조용한 시골에서 흙집을 짓고 노년을 맞이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기 때문이었다. 필자도 지난 시절, 시계만 들여다보며 정신없이 살아왔다. 앞만 보며 쉴 새 없이 달려왔기에 이제쯤은 쉬엄쉬엄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야말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아 번뇌로 가득하고, 고고한 척하며 창백한 지식인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풍요 속 빈곤 생활이었다. 저자는 오스트리아에서 어렵사리 철학박사 학위를 따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안정되게 살아가던 중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자기모순, 자기 분열이라는 삶의 위기를 느끼게 되었다고도 한다. 결국 자신에 대한 박사학위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자신의 호칭을 바꾸며 홀로 다시 서기에 도전을 한다. 종이 한 장만으로 입증하는 박사 타이틀은 진정한 의미의 박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저자는 교수라는 직분으로 사는 내내, 이론과 실천, 이상과 현실이 분리되는 허탈한 삶만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행복을 꿈꾸며 사는 진정한 의미의 살아있는 행복한 삶은 시골로 내려가 자아를 실현하며 이론을 실천에 옮기는 길이었다. 그는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행복한 삶이란? 삶의 세 가지 영역,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영혼이 기뻐하는 평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진실로 기쁨이 넘치는 삶이란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로 사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고, 영혼이 그에 따라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이다. 행복을 꿈꾸는 지은이의 내면 소리가 필자에게도 감동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살다 보면 자기 분열의 고통으로 괴로울 때가 많이 찾아온다. 정신이 꿈틀대며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흙집을 지을 때면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단호하고 자신 있게 강조한다. 오로지 흙집을 지을 때만이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영혼이 기뻐하며 춤을 춘다고 흥미롭게 서술해간다. 더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조적 성취감으로, 손수 집을 짓고 나면 그 대견스러움으로 자신에 대한 신뢰감도 용솟음을 친다고 했다. 또한, 흙집을 한 채 짓는 것은 자연의 훌륭한 의사를 주치의로 모시는 것과 같으니, 그 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 몸에 병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어찌 신비로운 일이 아닐까 싶다. 마침내 그는 흙집을 짓는 것이 마치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먹물의 세계를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방주와도 같다고 대단한 극찬을 했다. 결국 ‘흙집 짓기는 일종의 자기 수행의 도량’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명언들이다. 저자는 육체노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영혼이 작동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과감하게 접었다. 머리로만 살아왔던 기형적인 삶에서 기초를 튼튼히 다시 세우고 삶의 방향을 완전히 전환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살아온 길을 정리하고 하루아침에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요동치는 갈등이 사라지고 평화가 깃들 수만 있다면 그리 못할 것도 없다. 진정한 행복을 꿈꾸며 그 관점에 따른 행동이라는 실천이 있을 때, 드디어 영혼이 함께하는 충만한 기쁨을 맛볼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대단한 용기와 집념이 참으로 부럽기도 했다. 이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며 살아간다. 사람에 따라 꿈도 달라지겠지만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 되어 조화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철학적 사고를 넘어 꼭 실천에 옮겨야만 하는 필수과목 행동학 같다는 묘한 생각도 들었다. 저자의 명쾌한 삶에 깊은 공감을 하며, 그것은 필자의 내면에서도 꿈틀대고 있는 분명 살아있는 삶이었다. 언젠가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꿈꾸며 두꺼운 책 한 권을 단숨에 읽어 내렸다. 어느 흙집 짓는 철학자 교수가 쏟아내는 명언들은 오랫동안 진한 여운을 남겨왔다. 그것들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필자의 일상적 생활 속에 깊이 새겨져와, 바쁜 삶 속에 잊고 살았던 꿈들을 모락모락 피어나게 만들었다. 남편과 함께 또닥또닥 흙벽을 발라대고, 훨훨 타오르는 장작불을 지필 수 있는 벽난로를 떠올리며 그날이 오기를 꿈꾸어 본다.
- 2017-03-20 1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