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접살림을 따로 차려 살던 맞벌이 아들 내외가 아기가 태어나자 혼자 사는 시어머니 집으로 들어왔다. 당연히 손자 보는 일은 시어머니 몫이 되었다. 손주가 자라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눈판 사이에 손자가 의자에 부딪쳐 작은 멍울이 생겼다. 시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며느리가 퇴근하자 손자가 의자에 부딪쳤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 순간
주말 퇴근길 혼자 터벅터벅 걸어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텁텁한 공기만 꽉 차 있는 실내, 순간 엄습해오는 불안감. 거실은 물론 방마다 불이란 불은 죄다 켜본다. 또 양쪽 화장실에, 베란다까지 구석구석 다 훑은 뒤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오늘은 창문을 모두 닫아걸자. 왜? 나 홀로 집이기 때문이다.
“썰렁하니 음
큰형님은 타고난 바람둥이였다. 키도 그리 크지 않으니 잘생겼다고 하기에는 미흡하지만, 얼굴은 그런대로 말끔한 편이었다. 그런 용모로 여자를 유혹하는 재주는 좋았다. 당시 큰형님이 자랑해대던 무용담이 있다. 어느 다방 마담에게 눈독을 들이면 매일 일정한 시간에 그 다방에 가서 가장 비싼 메뉴의 차를 주문하고는 말없이 마시고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주일만
6개월 전에 결심한대로 이번 5월 말에 오랜 세월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 그동안 임기 연장에 대한 여러 유혹이 있었다. 일을 멈추는데 대해 불안 해 하는 아내의 저항도 만만찮았다. 무엇보다도 35년이 넘도록 새벽에 출근하고 밤에 퇴근하던 패턴을 어떻게 바꿀까 고민을 많이 했다. 떠나기로 결심하고 6개월 동안 이 문제를 고심했다. 결론은 60 이후의 삶을
첫돌이 막 지난 손녀를 보러 아들 집에 갔다. 갈 때마다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아들 부부는 할아버지가 손녀를 안아주지도 않는다며 섭섭해하기도 했다. 손자가 아니라서 손녀가 별로 반갑지 않냐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손자이든 손녀이든 차별은 없다. 그러나 이제까지 매번 가자마자 할아버지 자격으로 손녀를 안으려 하면 우는 바람에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했다.
손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백인 경찰의 흑인 폭행으로 시작된 흑백 갈등이 엉뚱하게도 코리아타운으로 불똥이 튀었다. LA폭동이었다. 미국 매스컴들의 편파보도는 살림 잘하고 있던 한 한국 아줌마를 ‘욱’하게 만들었다.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그녀는 그 길로 정치판으로 뛰어든다. 이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은 미셸 박 스틸(62). 미주 한인 커뮤니티에서 가
신문에 보도된 내용이다. 모 기업의 사장님이 직원들의 야근을 막기 위해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늦게까지 일할 필요가 없다. 근무시간에만 열심히 일해라’ 라고 아무리 애기해도 야근하는 관행이 고쳐지지 않아 부득이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매주 수요일 오후 6시만 되면 회사의 모든 인트라넷을 막아 PC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직원들도
‘정해진 둥지도 없어 아무 데나 누우면 하늘이 곧 지붕이다. 코끝에 스치는 바람, 흔들리는 풀잎 소리, 흐르는 도나우 강물이 그저 세월이리라. 우린 자전거 집시 연인이다.’ 최광철(崔光撤·62) 전 원주시 부시장이 유럽 자전거 횡단 중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그의 여정에는 빠질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장
놀 줄 모르는 시니어들은 특별히 즐기는 취미가 없다. 기껏해야 골프 아니면 등산이다. 이것도 그나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딱히 즐길 놀이가 없다. 이러니 놀 줄도 모른다고 신세대에게 무시당하는 것이다.
친구가 들려준 얘기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니 거실에서 아이들과 아내의 노랫소
서울이라는 ‘황야’를 누벼 먹이를 물어 나르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새벽 침상에서 와다닥 일어나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실려 가는 출근길부터가 고역이다. 직장에선 너구리 같은 상사와 노새처럼 영악한 후배들 사이에 끼어 종일토록 끙끙댄다. 퇴근길에 주점을 들러 소주병 두어 개를 쓰러뜨리며 피로를 씻어보지만, 쓰린 속을 움켜쥐고 깨어난 이튿날 새벽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