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취미는 무엇일까?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에 의하면 등산이다. 2015년 9월 25일 발표한 조사 결과인데 국민 100명 중 14명이 등산을 꼽았다. 그다음은 영화 및 음악감상(6%), 운동헬스(5%), 게임(5%)순이었다.
등산은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취미라고 한다.
나도 한때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에 오르던 시절이 있었기에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결과다. 지금 살고 있는 파주로 이사 오기 전까지 서울 관악산 자락 아래 살면서 ‘동네 뒷산’을 오르는 일로 주말 아침을 열곤 했다. 아파트 뒷길로 해서 관악산으로 곧장 이어지는 왕복 3시간 코스의 산을 걷다 보면 지나간 일주일 동안의 스트레스, 관계의 고단함 등으로 꼬여 있던 마음의 매듭이 사르르 풀리면서 홀가분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혼자 하는 산행이 몰입과 명상에 가깝다면, 함께하는 산행은 관계의 충만함을 준다. 가파른 봉우리를 나란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동지애 비슷한 느낌이 생기면서 서로의 삶 속에 한 발 더 다가선 느낌이 든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모임이 봄가을 산에서 개최되는 것은 다 까닭이 있다. 한국인의 취미 1위로 꼽히는 등산은 이처럼 몰입과 관계성 모두를 충족시킨다.
몰입의 황홀함
교육학·심리학의 세계적인 권위자 칙센트미하이 박사는 그의 저서 <몰입의 즐거움>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는 순간 삶이 변화된다고 말했다. 어딘가에 빠져든다는 것, 몰입은 황홀한 경험이다. 몰입은 현재의 나와 단절이자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삶이 고단하고 그 무게로 인해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고통스런 현재와 잠시라도 단절할 수 있다면 고통은 견딜 만하다. 정신분석가이자 거리의 치유자로 불리는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을 위해 치유공간 ‘이웃’을 마련했는데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의 그 고통스런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은 따뜻한 치유의 밥상과 뜨개질이라고 말했다. 뜨개질을 하는 동안만큼은 고통을 잊을 수 있어서 엄마들은 무서운 집중력과 속도로 뜨개질에 몰입했고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나는 요즘 달리기에 빠져 있다. 일주일에 평균 3회를 달린다. 퇴근 후 밤늦게 한 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어제 걸었던 길이 오늘은 다르게 느껴지는 등 매번 새롭다. 새로움은 신선한 자극이자 즐거움의 원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달리는 순간만큼은 내 몸의 변화에 몰입하게 되면서 어제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달리기 전엔 지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가도 막상 달리다 보면 몸이 살아남을 느낀다. 몰입이 주는 경이로움이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오십에 들어서는 나는 갱년기라는 인생의 피할 수 없는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오후만 되면 몸이 땅속으로 꺼질 듯한 피로감이 몰려오고 무력감으로 도통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3년 전 경기 북부 신도시로 이사해 출퇴근 시간이 길어진 탓에 집에 도착하면 떡실신이 되어 침대에 쓰러지기 일쑤다. 저녁이 있는 삶은 요원하고, 버티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었다. 우울감과 심리적인 변덕도 불쑥불쑥 찾아왔다.
이런 변화들을 보면서 스스로 갱년기라 진단내리고 시작한 것이 걷기와 달리기였다. 몰입과 명상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기, 현실의 얽힌 매듭을 내려놓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는 딱이었다. 달리다 보면 변하고 있는 나, 기존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쁨도 찾아온다.
그래서일까. 출구가 아직은 한참 남았지만 갱년기, 더 나아가 노년기도 삶의 일부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든다.
시니어에게 취미는 행복의 필수 조건
젊은 사람들에게 취미는 일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여가생활에 가깝다. 반면 생활전선에서 은퇴한 후 상대적으로 시간이 넉넉한 대다수 중장년층 또는 시니어들에게 취미는 생활을 활기 있게 구성하는 핵심 축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취미가 일의 보완재라면 시니어들에게는 필수 항목에 가깝다.
취미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삶이 지루할 틈이 없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다양한 취미로 생활을 즐겁게 꾸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시니어에게 넉넉한 시간은 견뎌야 하는 지루한 날들이 아니라 축복이다.
몇 달 전 일이다. 경의선 퇴근길에 라이딩 복장을 한 어르신 몇 분이 내 옆자리에 앉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주에 사는 자전거 동호회 회원인데, 지난봄 개통된 동해환상자전거길을 3박 4일 라이딩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함께 달리고, 먹방도 시도하는 즐거움 속에 삶이 매번 새로워진다며 즐거워했다.
실제로 행복한 시니어가 친구 관계를 즐긴다는 사실이 여러 지표에서 나타나고 있다. 돈이 있고 친구가 없는 것보다 돈이 없어도 친구가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상식이다. 특히 여성일수록 취미, 교양, 스포츠, 친구가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한다. 친구 또는 이웃과 함께할 때 더불어 행복의 기쁨을 알고 추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의 기쁨은 홀로 느끼는 행복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
사람은 늙어서 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놀지 못해서 늙는다는 말도 있다. 나이 듦을 핑계 삼아 삶을 무료하게 보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고 잘 놀아야 멋지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잘 노는 것은 취미생활을 잘 꾸린다는 것과 동의어다.
행복은 더불어 잘 놀 때 찾아오는 것
노년의 행복에 있어 소득과 건강의 역할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 두 가지를 제쳐둔다면 행복한 노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 활용이라고 한다. 수많은 행복연구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바다. 특히 가족,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행복감은 고조된다고 한다.
한국 노인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사회로부터의 고립’이다. 고립은 정서적 소외감으로 이어지면서 삶의 질, 행복을 저하시킨다. 고립되지 않도록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 즉 사회적 관계는 삶의 질 회복을 위한 버팀목이다. 물론 가족의 역할이 일차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가족에만 의지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노년으로 갈수록 사회적 교류, 관계성 회복이 절실하다.
취미활동은 사회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활성화시키는 시간 활용 방법이다. 다양한 문화·레저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관계를 가질 때 행복감은 높아진다. 50플러스재단, 인생이모작센터 등을 중심으로 최근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노후 프로그램은 대체로 취미활동을 즐겁게, 이왕이면 경제적으로도 유익하게 꾸리도록 하는 데 있다.
많은 노인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TV 시청은 오히려 행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드라마에 푹 빠져 재미를 느끼는 것은 그 순간일 뿐 지속적인 즐거움이 없다. 무엇보다 함께 도모하고 나누는 ‘관계’에서 비롯된 기쁨이 없다. 행복은 더불어 함께할 때 온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이웃이든. 인생의 황혼이 깊어갈수록 절실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