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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간]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 하슬라아트월드
- 짙푸른 동해 바다. 저 멀고 깊은 곳으로 눈길이 따라가면 하늘이 시작된다. 바람과 파도소리도 경계가 흐려져 귓가에는 하나의 소리로 들릴 뿐이다. 구름 아래 뻗은 손가락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주황색 빛이 몸을 감싸 내린다. 그곳에 서 있는 기분? 이게 바로 축복 아닐까. 산과 바다, 하늘이 이어진 예술가의 놀이터 멀리 바다에서 시야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면 청록색 소나무 숲길과 다양한 형상을 한 조각상이 자유로이 서 있다. 한적한 해안도로 옆, 예술가의 숨길과 손길이 쉼 없이 스쳐지나가는 하슬라아트월드(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발길이 머무는 순간 관람객이 아닌 설치된 미술작품의 한 소재로서 존중받는 곳이다. ‘하슬라’는 고구려·신라시대에 사용됐던 강릉의 옛 지명으로 ‘해와 밝음’이라는 의미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여기에 ‘아트월드’를 붙여 ‘강릉에 세워진 예술가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강릉 출신 미술가 박신정·최옥영 부부의 예술가적 기질이 이 공간을 채웠다. 박신정 대표는 하슬라아트월드 홈페이지를 통해 “외국에 작품 전시를 다니면서 예술품뿐만 아니라 전시 장소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감동을 받아왔다”며 “모든 것이 조화롭게 화합하는 곳을 꿈꿨다”고 공간 건립 배경을 설명했다. 2003년 조각공원을 시작으로 2009년 뮤지엄 호텔(24개 객실), 2010년 현대미술관, 2011년 피노키오 박물관과 마리오네트 미술관을 순차 개관했다. 하슬라아트월드는 연간 약 15만 명이 찾는 강릉의 관광 명소다. 최근 SBS 드라마 와 영화 촬영 장소로 이용됐고, MBC 드라마 의 주요 무대가 됐다. 하슬라아트월드의 크고 작은 모든 공간이 예술가들의 작업 현장이자 방문객의 관람 장소다. 이곳은 뭐든 다중적인 감각과 의미가 부여돼 있다. 호텔일 수도, 전시실일 수도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 이곳의 특징. 보는 사람에 따라 자유로이 생각하고 상상을 즐기는 곳이다. 작가들은 이곳에 상주하면서 작품 활동도 한다. 취재를 갔던 4월 초에는 마침 최옥영 대표가 전시에 필요한 작품을 손보고 있었다. 작업복 차림의 최 대표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온몸에 먼지가 잔뜩’이라고 멋쩍게 웃었다. 최 대표는 “자연 자체로도 아름다운 곳과 인연이 된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면서 “예술가라 타협도 잘 못하고 부족하지만 생긴 대로 오랫동안 이곳을 지킬 것”이라고 말하고는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고래 뱃속을 걷는 피노키오처럼 하슬라아트월드는 정해진 방식은 아니지만 현대미술관, 피노키오 박물관, 마리오네트 미술관 순으로 관람한다. 현대미술관은 호텔 건물 로비에서부터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지상에서 지하로, 다시 지상으로 오르내리며 작품 감상을 하는 구조다. 동해의 파란빛과 자연광, 목조 마루, 겉치레 없는 시멘트벽을 배경으로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건물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마치 어딘가 ‘툭’ 하고 놓아둔 느낌에 시선이 간다. 감각적이고 기발함이 돋보이는 회화와 조각 작품 200여 점도 전시되고 있다. 손자·손녀의 감성자극 미술 공간이 현대미술관 다음에 이어지는 피노키오 박물관이다. 특히 박물관으로 향하는 통로가 매우 인상적이다. 피노키오가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형상화한 공간으로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다. 큰 원형 통로 내부를 플라스틱 비닐로 촘촘하게 감싸놓았고, 형형색색 움직이는 조명을 설치했다. 마치 고래 뱃속을 여행하는 피노키오가 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사각거리는 비닐 소리와 사람의 말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조명이 마블링되듯 섞여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거듭나는 곳이다. 피노키오 박물관에는 피노키오 관련 작품 500여 점이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작품과 전시 성격을 바꾸고 있다고. 이곳에는 꽃으로 만들어진 피노키오와 유럽에서 들여온 각양각색의 피노키오를 만날 수 있다. 디즈니 만화영화 피노키오 관람은 덤이다. 마리오네트 미술관에서는 센서로 움직이는 하슬라아트월드의 특허품 ‘마리봇’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이 가까이 오면 팔과 다리를 흔들어 몸을 움직인다. 체코,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가지고 온 특별한 마리오네트가 관람객을 맞는다. 편견 없이 예술작품을 감상할 것 실내 관람을 마치면 조각공원 산책을 한다. 호텔 안 매표소 쪽으로 다시 돌아가 실내 계단을 이용해 조각공원 입구로 간다. 반드시 편한 신발을 준비하라. 빨리 다녀도 최소 30분이고 나지막한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솔향 가득한 소나무 정원을 지나 무심히 서 있는 조각들을 보며 걷다 잠시 뒤를 돌아보시라. 자연이 내려준 예술작품(?)을 벅찬 마음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동해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바다카페와 전망대, 아이들의 체험학습장과 소똥박물관 등이 있다. 자연 속 나 자신이 작품의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소중한 공간이 하슬라아트월드 안에 있다. 하슬라아트월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작품의 제목, 작가 이름 그리고 거울이다. 심지어 거울은 화장실에도 없다. 시멘트벽도 골조 외에 별다른 장치가 없다. 이 모든 것에는 편견 없이 작품을 바라보고 집중해달라는 대표의 철학이 담겨 있다. 단, 예약제로 진행되는 도슨트 시간에는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에 관한 설명이 듣고 싶다면 도슨트 설명을 들어보시라.
- 2017-05-0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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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엣말 쏟아내는 '재미' 가족들과 나누다 “할아버지 할머니 보라카이 또 가요”
- 최근의 여행 트렌드는 친구나 연인과의 여행보다는 가족과 함께 떠나는 테마 여행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여행의 보편화와 맞물리는 현상으로 보인다. 여행이 일상이 된 현재, 보다 일상적인 이벤트로서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시인 류시호씨는 며느리, 사위, 손주 등 온 가족과 자주 여행을 떠난다. 이번 5월에 떠나는 여행지 그곳의 시간이 느리게 흘렀으면 좋겠다. 류시호 시인ㆍ수필가 얼마 전, 가족 9명을 데리고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났다. 큰아들 부부와 작은아들 부부가 직장을 다니며 고생하기에 손주들과 시원한 바다에서 여유롭게 쉬도록 우리 부부가 경비를 마련했다. 여행은 어디를 가든 즐겁다. 준비할 때부터 기분이 좋다. 우리 가족은 그동안 강원도 양양의 바닷가에서, 강원도 영월에서, 그리고 충북 수안보에서 숙박을 하면서 여러 번 가족여행을 했기에 서로가 여행 분위기를 잘 느낀다. 이번 가족여행은 해외로는 처음 가는 것이라 어린 손주 3명이 걱정스러웠다. 이동 중 간식을 먹이는 문제도 그랬고 장거리 비행 중 아프지나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염려가 됐다. 어린아이들 때문에 인천공항까지 가는 길에도, 비행기에 탑승할 때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게이트 번호가 100번이 넘는 곳이라 탑승구로 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 열차를 타고 가서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탑승시간에 임박해서 겨우 게이트에 도착했다. 그동안 여러 번 해외여행을 했지만, 공항 내에서 지하철로 이동한 것은 처음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이륙할 때 큰 손주는 좋아서 웃고 작은 손주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장거리 비행기를 타다 보니 둘째 손주가 기내 공기가 안 좋아서인지 좁은 곳이 갑갑해서인지, 며느리 가슴에 음식물을 토하기도 했다. 막내 손주는 인천공항 비행기가 이륙할 때, 그리고 보라카이 섬과 가까운 칼리보 공항으로 비행기가 착륙할 때 울어댔다. 기압 차이로 귀에 통증이 왔던 것이다. 막내 손주가 어디가 불편한 건지 표현을 잘 못해 며느리가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 외 시간은 비행기 안에서도 잘 놀아 다행이었다. 작년과 재작년에 필자가 방문한 베트남과 미얀마는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한국인들을 우대해줬는데 이곳은 세관 심사가 너무 까다로웠다. 보라카이 휴양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 하루에 이곳을 찾는 여행객이 2만 명이나 된다 하니 작은 섬의 인기가 대단하다. 이 섬의 치안은 안전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10년 전 필리핀을 여행할 때도 총기사고가 있었다. 최근에는 불법으로 유통되는 총기가 100만 정이나 된다는 뉴스도 있었다. 심지어 총기 규제가 허술하니 ‘필리핀에서는 택시를 타지 말라’는 경고도 있다. 칼리보 공항에 내리니 밤이었다. 그곳에는 한국인 가이드가 아닌 필리핀 가이드가 서 있었다. 필리핀 가이드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한국인을 바꿔줬다. 그분이 하는 말이 오늘 한국 여행객들이 많이 와서 안내하느라 자신이 두 시간 거리인 보라카이에 있으니 현지 가이드와 같이 오라고 한다. 공항에서 낯선 필리핀 사람이 우리 가족들 이름이 쓰인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 약간 실망도 했는데 어두운 밤에 그 외국인을 따라 목적지인 보라카이로 가려니 걱정도 됐다. 그러나 가는 동안 필리핀 가이드와 대화를 한 뒤 불안감은 조금 가셨다. 얼마 후 보라카이 섬으로 들어가는 부두에 도착했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배를 타니 한국 여행객들이 많았다. 그제야 비로소 안심이 됐다. 섬에 도착하니 보라카이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자전거 택시 베디카부와 오토바이를 개조해 좌석을 몇 개 만든 3륜 오토바이 트라이시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을 타고 우리 가족은 호텔로 이동을 했다. 10여 년 전, 마닐라를 방문했을 때는 미군이 사용하던 군용 지프를 개조한 작은 버스 지프니가 대중교통 역할을 했다. 우리 가족이 예약한 호텔은 이 지역에서 꽤 유명한 호텔로 시설이 아주 좋았다. 다음 날 호텔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국인 모델이 촬영을 하고 있어 관계자에게 문의하니 인기 있는 호텔이라 한국에 선전하려고 찍는다고 했다. 그만큼 괜찮은 호텔이라는 의미라서 기분이 좋았다. 보라카이는 세계 3대 화이트비치라는 소문에 세계 여러 나라의 자유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보아하니 한국인들도 많이 온 것 같았다. 숙소인 ‘파라다이스 가든’에는 넓은 부지에 야자수를 비롯한 다양한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조용한 휴식과 레저 스포츠를 즐기기에도 적합해 보이는 이곳은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상쾌한 물줄기를 내뿜는 인공폭포가 마련된 옥외 수영장이 인기였다. 전체적으로 안락한 분위기에 우수한 시설로 불편이 없었고 도보로 5분 거리에 화이트비치가 있어 참 편리했다. 호텔에서 주는 아침은 열대식물이 있는 정원에서 가족 9명이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먹었다. 아름다운 섬 보라카이의 멋진 정원에서 식사를 하니, 대기업에서 스트레스받으며 일하는 큰아들 부부, 부부 공무원으로서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며 일하는 작은아들 부부가 기분이 좋은지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손주들도 신이 나는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파트에 사는 손주들에게 늘 했던 “조심하라”는 말을 안 해서 필자도 즐거웠다. 옥외 풀장에서는 가족 모두가 물놀이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우리 부부가 손주들과 놀아주니 아들과 며느리들이 오랜만에 해방된 기분이라며 이구동성이다. 점심은 보라카이 다운타운 디몰(D-mall)에서 먹기로 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많아서인지 멕시코식, 일식, 그리스식, 스페인식, 이탈리아식, 스위스식, 한식 등 여러 나라 음식이 많았다. 우리 가족은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필리핀 음식점에서 닭고기와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을 주문했다. 공장에서 만들었는지 종이에 싼 밥도 나왔다. 손주들과 며느리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이 좋았다. 후식은 자리를 옮겨 필리핀 특산물인 망고로 만든 망고쉐이크를 주문했다. 가족들 모두가 좋아했다. 길을 걷다가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젤라토를 사 먹기도 했다. 그런데 큰손주가 망고쉐이크가 맛있다고 또 사달라고 하니, 둘째 손주도 덩달아 자기도 사달라고 해서 할머니가 지갑을 분주히 열고 닫아야 했다. 가족들 모두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사는 맛이 났다. 다음 날, 바다에서 물놀이도 하고 밀가루 같은 모래로 손주들과 두꺼비집도 지으며 놀았다. 큰손주는 신이 나서 아예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이어서 필리핀 전통 선박으로 엔진 없이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돛으로만 이동하는 세일링 보트를 탔다. 그물망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보라카이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즐겼고, 가족 모두가 흥겨워하니 쪽빛 바다, 흰 파도, 그리고 멋진 모래사장이 있는 이곳으로 여행을 잘 온 것 같다. 저녁에는 가족 모두가 방에 모여 맥주와 위스키,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손주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만끽했다. 특히 손주들이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즐거워하니 아들과 며느리들도 만족스러운지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동안 국내 여행을 자주 함께하며 가족 간 사랑을 나눴던 게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부모와 형제는 수족 같고 처자식은 의복과 같다고 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사랑을 받아야 삶의 활력이 생긴다. 사랑은 살아가는 이유가 될 만큼 아름다운 감정이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어깨 위에 올려놓은 자식과 손주를 절대로 짐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녀들은 가족이 함께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잊고 살지만 공부와 취업, 그리고 결혼 때문에 떨어져 살거나 부모 중 한 분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제야 부모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각자 자기 둥지에서 살다가 인간관계, 심리적인 문제 등이 생겼을 때, 가족을 찾는다. 가족이 가장 편하고 세상 어느 누구보다 든든한 지지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머니는 늘 따뜻한 마음으로 자녀들을 안아주고, 아버지는 투명한 빛으로 자녀들의 길을 밝혀주기에 부모가 오래 곁에 있다면 최고의 복이다. 이 세상에서 가정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집이 대궐같이 으리으리하고 돈이 많아도 가족 간에 사랑이 없으면 행복한 가정이라 할 수 없다. 가정의 행복을 맛본 사람은 인생의 햇볕을 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빛으로 아름다운 삶의 꽃을 피울 수 있다. 보라카이로 떠난 가족여행은 행복했고, 무사히 귀국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덕분에 가족들의 아름다운 미소는 오랫동안 우리 가정의 풍경이 되고 에너지가 됐다. 주말에 큰손주가 오면 “할아버지 할머니 보라카이 또 가요. 그리고 망고쉐이크 사주세요” 한다. 그 말에 필자와 아내는 싱긋이 웃는다. 그리고 또 다른 여행 계획을 짜본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큰 행복이다. 재충전의 기회도 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동안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다면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떠나보자.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는 시간 속에 어쩌면 꽃보다 더 아름답고 향기로운 웃음꽃이 만발할 것이다. >>류시호 시인ㆍ수필가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임한 후 시인과 수필가로 등단해 현재 중부매일신문의 오피니언 ‘아침뜨락’에 2008년부터 고정필진으로 있다. 이외 대구일보와 현대문학신문의 필진으로 있으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16년 문학 창작금 수혜(受惠)를 받았다. 서울특별시장의 ‘서울사랑 이야기 공모전’ 수상 외 6건을 수상했고, 저서로 과 등 4권이 있다.
- 2017-04-2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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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신비주의로 살래. 그게 속 편해”
- 허비되기 쉬운 건 청춘만은 아니다. 황혼의 나날도 허비되기 쉽다. 손에 쥔 게 많고 사교를 다채롭게 누리더라도, 남몰래 허망하고 외로운 게 도시생활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에 들어온 지식, 가슴에 채워진 지혜의 수효가 많아지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은하계를 덧없이 떠도는 한 점 먼지이지 않던가.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 어둠속을 부유하는 먼지의 신세를 면하기 위해, 저마다 나름의 별이 되기 위해, 타성에 젖은 삶을 바꾸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경북 김천시 구성면 우두령(해발 650m) 기슭에 사는 정현선(58)씨 내외. 이 부부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안락하게, 그러나 따분하게 살았던 것 같다. 모두가 성난 말처럼 냅다 달리며 지지고 볶는 도회의 풍속을 견디어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일종의 허기나 갈증 같은 게 따개비처럼 들러붙었던 모양이다. 그게 귀촌이라는 거사를 도모하게 했다. 정씨의 남편 김보홍(63)씨는 축구선수 출신으로 체육 분야 직종에 종사했다고 한다. 정현선씨 역시 농협 직원으로 일하며 서울이라는 정글을 섭렵했다. 부부가 밖의 일로 분주했던 나머지 안에서는 정작 얼굴을 마주할 짬이 드물었다지. 부부란 전우와 같아서, 또는 난적과 같아서 단합에도 능하지만 분쟁 역시 빈발하기 마련이다. 이 부부는 전우애나 전투정신을 고취할 여가 자체가 없었단다. 애정 표현도, 부부 싸움도 한가한 시간이 주어지고서야 가능한 게 아니겠는가. 그들에겐 오래 묵은 숙원이었다. 귀촌 말이다. 도시가 오직 탁류일 리 있을까마는, 시골이라고 다만 청류일 리 있을까마는, 마음은 자꾸만 촌으로 향했더란다. 해서, 근 10여 년간 전국 도처의 산간을 순례하며 정처를 물색했다. 부부 둘 다 태어나 성장기 한때에 놀았던 물이 시골이었기에 향수라는 것, 그 못 말릴 본능이 가슴으로 들솟기도 했다. 정현선씨의 얘기는 이렇다. “틈이 나면 주먹밥을 싸들고 전국 산천을 돌아다녔어요. 강원도 화천에서 지리산 자락 구례까지, 일삼아 여행삼아 많이도 누볐어요. 그러나 마음에 딱 드는 곳을 찾기 어렵더라고요. 좋다 싶은 땅은 값이 비싸고, 저렴한 땅은 길이 없거나 하는 식으로 여건이 열악했어요. 그러던 중에 우연히 급매물을 소개받았는데, 가격이나 위치나 괜찮다는 판단이 섰어요. 지금 저희가 사는 이 집과 그렇게 인연이 됐죠.” 시골생활에 넌더리를 내고 역(逆)귀촌을 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살던 집을 헐값으로라도 서둘러 처분하고 시골을 탈출한다. 매력적인 급매물은 순식간에 임자를 만나게 마련이다. 정씨 부부가 사들인 급매물은 임야 포함 2만여 평 부지 위에 지어진 2층집. 산 중턱에 자리한 집이라서 조망이 기차게 후련하다. 우두령 일대는 고험한 산악지구다. 기세 등등, 하늘을 찌르며 솟구친 백두대간 고봉들이 저마다 똘똘하고 출중하다. 산이 거구라 골도 웅숭깊다. 골짜기 푸른 물살은 은어 떼처럼 반짝이며 솰솰 굽이쳐 흐른다. 촌 가운에서도 후미진 산촌을 애호하는 사람이라면 무릎을 탁 치며 쾌재를 부를 경관이다. 원주민과의 융화에 실패하다 우두령 자락으로는 절기 따라 봄비가 내리고, 가을 단풍이 물감을 흘려 내리고, 겨울엔 수북이 눈이 내려 설경이 흐른다. 산꾼들도 우두령 산간을 오르거나 내리기를 무시로 한다.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이다. 애초에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었으나, 정씨 내외는 귀촌 직후 민박집 쥔장으로 변했다. 대간을 타는 사람들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대간을 타는 분들이, 이곳에 잠잘 집이 없어 불편하다, 산꾼들을 상대로 민박집을 하는 게 어떠냐, 그런 권유들을 해왔어요. 그래 2층 방에 등산객들만을 상대로 민박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그들에게 서울 얘기, 세상 얘기, 산 얘기를 듣는 게 참 즐거웠어요. 적막한 산중에서 뜻밖에도 사교를 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 거예요. 그런데 말이죠, 술이며 음식이며 이것저것 퍼주는 바람에 소득은 신통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작심하고 식초 생산에 나섰어요.” “산촌에서 나오는 온갖 재료로 식초를 만드는 거예요? 그건 초심자도 가능한 업종인가요?” “산골에서 마냥 놀기만 하면 무슨 재미겠어요? 흔히 자연을 즐기고자 귀촌을 하지만 시골에서 지내다 보면 욕심이 생겨 귀농의 형태로 양상이 변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희가 그런 케이스죠. 사실, 서울에서 귀촌 교육을 받으며 식초 공부도 미리 해두었어요.” “이른바 천연식초라는 걸 생산하는 농가가 많아요. 이 집만의 특별한 식초 제조법이라도 있나요?” “저희는 일반 설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진정한 전통 발효식초를 만들어요. 제가 산골에 와 살며 이젠 정말이지 착하게 살자는 생각을 신념처럼 갖게 되었어요. 소득을 위해서만 식초에 도전한 건 아니에요. ‘착한 음식’으로서의 식초 만들기로 신념을 실천하고 싶은 거예요.” 착하게 살자! 산골 자연이 들려준 뉴스였던 모양이다. 자연은 소리 없이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라고. 그런 자연의 질문을 받은 뒤엔 마침내 내가 나에게 되묻는다. ‘너여! 너는 누구인가?’ 월든 숲에 살았던 소로우처럼 자연에 관한 무한한 영감과 감수성을 지니긴 어렵지만, 산촌 자연 속에 사노라면 자못 성찰적인 눈매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비로소 내 삶의 굴곡과 상처가 아프게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회심(回心)이 돋아 자연을 닮은 삶의 생태를 꿈꾸기도 한다. 귀촌의 재미는 이 대목에서도 짭짤하게 우러난다. 귀촌한 이들이 흔히 토로하듯이, 정현선씨 역시 내면을 스스로 살피는 삶을 사노라 말하고 있다. 도시에서보다 한결 느긋해지고 수굿해졌단다. 화통하게 잘 웃고, 잘 표현하고, 뭐든 앞장서 차돌처럼 당차게 행동하는 개성의 소유자로 보이는 이 여자는 산촌의 나날들이 흐뭇하다. 식초 분야의 실력자로 소문이 나 곳곳의 귀촌·귀농센터에 강사로 출장을 가기도 한다. 요즘은 가양주를 만들어 상품화를 모색하고 있다. 귀촌 성공 사례로 알려져 견학을 오는 사람들도 많다. 들입다 몰입한 덕에 얻은 근사한 성과들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귀촌 5년 세월 중 4년간은 심히 괴로웠다지? 왜지? 정씨 내외는 마을 원주민들과 오붓하게 어울려 사는 일에 유난한 고초를 겪었던 것이다. 귀촌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타향살이다. 이 타향살이에 차질이 생기면 이젠 귀양살이 입문이다. “저희는 말이죠, 귀촌 교육을 통해 마을 원주민들과의 융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걸 충분히 인식하고 내려왔어요. 융화에 실패하면 지속할 수 없다, 무조건 베풀어야 한다, 그런 걸 염두에 두었죠. 그러나 막상 부딪혀보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고통스러웠어요. 귀촌이라는 게 자칫하면 무덤이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어떤 식의 불화가 벌어졌죠?” “시골에선 남자들의 술자리가 잦습니다. 서로 거들어야 할 농사일도 많아요. 저의 남편은 이런 자리 저런 자리 가리지 않고 열심히 동참했어요. 집안일은 뒤로 밀어두고 이웃의 농사일을 거둔다거나, 봉사할 일은 기꺼이 봉사했어요. 하루 종일 남의 농사를 돕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린 밤들이 참 많았어요. 그렇게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돌아오는 건 갈등, 소외, 뒷담화, 그런 것들이더라고요. 이 집을 도와주면 저 집에서 불만을 품고, 저 집을 도우면 이 집에서 좋지 않은 소리를 하고… 도저히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재미나 보람은커녕 하루하루가 고역스러웠어요.” “사람 사는 곳 어디서나 마찰이나 갈등은 양념처럼 섞여드는 거 아녜요? 산간벽지 특유의 배타성 같은 걸 염두에 두진 않았나요?” “저희 부부가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어 행동하는 일에 인색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이 시골에 정착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안간힘을 다했어요. 그럼에도 벽을 허물기 어려웠어요. 맞아요, 벽촌의 풍습이라는 거, 도시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곳만의 풍토라는 게 엄연하구나, 그걸 넘어서기 정말 어렵네? 차라리 서울로 돌아가는 게 답이겠네? 막판엔 그런 판단이 서더라고요.” ‘신비주의 처세’로 바꾼 뒤 비로소 찾은 평화 이른바 역귀촌을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원주민과의 갈등이다. 주민들의 심리와 정서를 내 것처럼 헤아려 보듬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귀촌을 해서 단숨에 인기를 끌 묘한 비결이라는 게 있겠는가. 더 통 크게 마음을 여는 수밖에 없다. 똑똑한 티를 내기보다는 얼간이인 양 어설프고 만만하게 처신하는 것도 썩 괜찮은 쇼일 수 있다. 민첩하게 생각을 굴릴 줄 아는 인물에 속할 정씨가 이를 모를 리 없을 테지만, 정작 그녀는 고민과 고독 속에서 끙끙거렸던 것 같다. “주민과의 관계가 불편해지자 부부싸움도 늘어나더라고요. 어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였죠. 급기야 마을 사람 하나가 저희 집 진입로를 철망으로 막아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했어요. 진입로 땅을 사들이는 것으로 해결했지만 정말 뿔이 나더라고요. 이게 뭔가? 이러려고 시골에 왔나? 회의가 마구 몰려들었고, 마침내 남편 입에서 서울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러나 제가 반대했죠. 실패하고 돌아가다니, 그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잖아요? 그날 이후 생각을 완전히 바꿔먹는 것으로 살 길을 찾아냈어요.” “뭐죠, 그게?” “신비주의! 이제 나 신비주의로 산다! 그런 거요. 하하하.” “마음을 여느라 공연히 힘만 빼기보다는 차라리 빗장을 거는 쪽으로? 은둔처럼?” “해탈이죠. 비닐이고 뭐고 마구잡이로 노천에서 소각하는 모습을 참지 못해 그러지 말라 권유할 경우, ‘뭐야? 너나 잘해!’ 하는 투로 반응하는 사람들과는 싹 등 돌리고 사는 게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했어요. 그건 적중한 처세였어요. 비로소 속 편하게 살 수 있게 됐으니까요.” 정씨는 고등어처럼 싱싱한 언사로, 말끔한 표정으로 ‘신비주의 처세’ 이후의 만족과 안심을 토로한다. 기다리고 참고 끌어안으면 상처가 아물 수 있다. 고통이라는 씨앗을 발아시켜 멀리 가는 향을 뿜는 꽃을 피울 수도 있다. 산골 벽촌이라는 쓸쓸한 공동체를, 텃세를, 폐쇄적 문화를 하나의 상처로 가늠해 나의 행보를 인내 속에서 조절하고 조화하는 처신은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것일 수 있다. 군인이 돼 별을 달고 싶은 꿈을 먹고 자랐다는 정씨는 전혀 다른 방책으로 곤경을 벗어났다. 굴종에 가까운 나약한 타협 대신, 나의 길 내가 간다는 식의 투지로 고뇌를 해결했다는 게 아닌가. 그러고서야 산골짝에서 무슨 재미를 볼 수 있을꼬 싶지만, 내가 가는 길이 바로 지름길이라는 것도 여지없는 진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 2017-04-2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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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온 상승으로 위협받는 북방계 희귀식물, 갯봄맞이
- 어느덧 5월입니다. 꽃피는 춘삼월이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숲은 어느새 짙은 초록으로 변해갑니다. 통상 3월부터 5월까지를 봄으로 분류하지만, 지구온난화 등의 여파로 인해 몇 년 전부터 종종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돌며 폭염주의보까지 발령되는 등 봄이란 말이 무색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을 나 몰라라 하겠다는 배짱인지, 5월 중순의 시기에 ‘봄맞이’란 이름이 들어가는 야생화가 여전히 피고 있다는 말에 의아해하며 만나러 갔습니다. “그래, 귀하다는 꽃, 나도 좀 자세히 보자.” “뭐야? 이것 보자고 이 무더위에 서너 시간 달려왔단 말이야?” 꽃 보러 가는 길, 가끔 “바람이나 쐬러 가자. 아주 귀한 꽃 보여주겠다”며 친구들을 설득해 동행합니다. 짙푸른 바다도 보고, 시원한 바람이나 맞자며 즐겁게 떠났습니다. 다만 멀리 동해까지 가는 동안 내심 실제 보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텐데, 공연히 귀한 시간 빼앗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역시나 첫 반응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정말 귀한 꽃이야. 원래는 북한 땅에 가야만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최근 남한에서도 동해안 서너 곳에서 자생하는 게 확인됐어. 워낙 희귀종이어서 국가에서 보호 대상 식물로 지정, 관리하고 있어.” 갯봄맞이의 희귀성, 중요성 등을 애써 강조하지만, 반응은 여전히 심드렁합니다. “그런데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고 했듯, 5월 중순이면 봄이라기보다 여름이라고 할 수 있잖아. 실제 폭염주의보까지 발령되는 날씨인데, 식물명에 ‘봄맞이’가 들어 있으니 어째 어색하지 않니? 그게 바로 이 꽃의 유별성(類別性), 즉 주로 북한 지역에 자생하는 북방계 식물의 특성을 보여주는 거야. 옛날 봄이 늦은 함경도 바닷가에서 5~6월에 피는 이 꽃을 보고 갯봄맞이란 이름을 붙인 거라고….” 나름대로 설명을 이어가자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열심히 보고 사진 많이 찍어라” 하며 응원합니다. 먼 길 오느라, 찾느라 바빴던 마음을 진정하고 찬찬히 꽃을 들여다봅니다. 바다와 분리되어 있다지만 비바람이 강하게 불면 바닷물과 모래가 수시로 넘어올 성싶은 해안 호수, 이른바 석호(潟湖) 가장자리 모래밭에 핀 갯봄맞이. 키가 작은 건 5cm 안팎이고, 제법 큰 것은 20cm를 넘을 정도이지만 무리 지은 모습은 영락없이 ‘잡초’처럼 보입니다. 통통한 줄기에 잎이 좌우로 다닥다닥 달리고, 줄기와 잎 사이 겨드랑이마다 아주 옅은 붉은색이 도는 흰 꽃이 역시 다닥다닥 돋아나 있습니다. 꽃 색이 아예 흰 것도 있다고 합니다. 새끼손톱만 한 꽃은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고 그 가운데 수술 다섯 개와 암술 한 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잎과 꽃 모두 자루 없이 줄기에 바싹 달라붙어 있어 개개의 꽃을 예쁘게 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생지는 극히 소수이지만, 자생지에서 만나본 갯봄맞이의 개체는 수백, 수천을 넘을 만큼 풍성해 멋진 군락 사진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멸종위기 야생식물 1, 2급으로 지정된 77종 가운데 광릉요강꽃과 털복주머니란 등 대부분이 자생지와 개체 수가 극히 적은 데다 빼어난 관상 가치에 따른 남획 등 인위적인 위협 요인이 더해지면서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면, 갯봄맞이와 같은 일부 북방계 식물은 지구온난화 등 자연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남한 땅에서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어, 종 다양성 유지 차원에서 각별한 보전 대책이 필요해보입니다. Where is it? 갯봄맞이는 황해도와 함경도 등 주로 북한 지역에서 자생하는 북방계 자생식물로 알려져왔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 강원도 고성과 경북 포항, 울산 등 동해안 일대 서너 곳에서 자라는 것이 확인되자 환경부가 2012년 7월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했다. 남한에서 가장 북쪽인 고성에서는 해수와 담수가 섞여 있어 염담호(鹽淡湖)라고도 불리는 송지호의 가장자리 일부 모래밭에서 자생한다(사진). 밑으로 내려와서는 포항의 구룡포 인근 해안, 그리고 최남단인 울산 북구 해안에서 각각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 2017-04-1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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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막아낸 녹색연합 공동대표 박그림
- 산이 그리웠던 사나이는 꽉 막힌 도시생활을 접고, 설악산이 바라다보이는 탁 트인 곳으로 떠났다. 자연과 벗삼으러 갔지만 행복도 잠시였다. 돈 되는 일에 목마른 인간의 욕심이 푸르른 숨통을 조여 왔다. 올무에 걸린 듯 이곳저곳 상처 난 설악산을 위해 사나이는 발길 닿는 대로 찾아가 세상에 알렸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의 소원대로 설악산에는 바라던 평화가 찾아들었다.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박그림 선생님!” 환경단체 녹색연합 공동대표 박그림(朴그림·69)씨가 내 앞을 지나갔다. 귀신에 홀린 듯 정류장 의자에서 일어나며 이름을 불렀다. 밤늦은 종로 한복판. 반갑게 인사를 이어나갔지만 신기했다. 박그림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중 그가 도깨비처럼 내 앞을 걸어온 것이다. 인연이었다. 국정농단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이던 12월 말, 한국 역사에 길이 남을 대단한 사건 하나가 있었다. 1995년부터 강원도 양양군에서 추진해오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지금까지 환경과 관련한 정부나 지자체 사업은 시민단체나 주민이 발 벗고 반대해도 무사통과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결국 계란으로 바위를 깬 것. 박그림 대표가 몸소 뛰어다닌 노력으로 이제 더 이상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생겨나지 않게 됐다. 마른 체구, 바람에 낡아버린 모자를 쓰고 점퍼를 입은 그는 세상 짐을 다 지고 있는 성자의 모습이었다. 도시 남자, 산속에서 환경지킴이 되다 박그림 대표는 오랜 시간 설악산 지킴이로, 산양들의 아빠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깍쟁이란다. “서울에서 사업을 했어요. 의료 부자재 관련 사업도 하고 종목을 바꿔가면서 개인사업을 했죠. 그런데 잘될 수 없었어요. 늘 마음이 산에 가 있었거든요.” 1992년 가족들과 함께 결단을 내리고 설악산이 보이는 곳으로 옮겨갔다. 아내 또한 서울 삶에 큰 미련이 없었다. 산이건 어디건 괜찮다고 생각했다. “무일푼으로 갔어요. 다들 서울로 가는데 시골로 오느냐고 주변에서 그러더군요.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하고, 뭘 먹고 살 것인지 말들이 많았습니다. 아내와 저는 마음의 정리가 됐기 때문에 내려갔죠. 그냥 가서 부딪치면서 살았어요.” 그렇게 박그림 대표의 진짜 인생이 시작됐다. 산을 좋아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환경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환경의 눈으로 항상 산을 바라봤던 것은 아니지만 산에 다니면서 ‘저거는 괜찮은가?’ 하는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전부터 배달녹색연합(지금의 녹색연합) 회원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제가 가자마자 속초 청초호유원지 건립에 필요한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청초호 40%를 매립해 유원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죠. 이를 막기 위해 ‘청초호를 되살리는 시민의 모임’에 합류해 힘을 모았습니다. 그 이듬해에 공사가 진행됐고 고민이 많아졌어요. 그때 지역 단체보다는 전국 규모 단체의 지부를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저는 온전히 설악산 문제에 매달리겠다는 마음으로 설악녹색연합을 창립했어요. 1993년 3월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케이블카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사업 초기에는 오색약수터에서 대청봉까지 케이블카를 놓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부결됐고, 이후 노선을 달리해 추진했지만 그 일대가 남설악의 산양 최대 서식지였기에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 최종적으로 대청봉이 아닌 끝청봉(대청봉에서 1.4km 떨어진 지점)을 상부종점으로 정하고 하부종점까지 3.5km 노선을 정했지만 결국 사업 무산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승인했던 사업을 상위법인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10명 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사업을 부결했습니다. 1년 넘게 설악산 자연실태조사를 거쳤기에 재심을 해도 통과는 어렵다고 봐요. 현재 설악산 대청봉을 오가는 사람은 연간 40만~50만 명 정도입니다. 설악산은 벌써 다 망가진 상태죠. 만약 케이블카가 설치돼 탑승객까지 더한다면 100만 이상이 될 것이고 결국 설악산 전체는 무너지게 됩니다.” 설악산 산양 아빠 거리로 나서다 박그림 대표는 앞서 말했지만 ‘산양 아빠’로 불려왔다. 설악산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는 산양에 대해 관찰하고 조사해 알리는 일을 나서서 해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양 아빠라는 별명이 붙게 됐다. “산양은 천연기념물 217호이면서 멸종위기종 1급입니다. 마음놓고 살 수 있게 놓아두지 않으면 멸종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아주 절박한 상황이죠. 계속 어떤 상황인지를 알려야 했어요. 이게 바로 산양이구나,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갖고 사랑해야겠다. 이렇게 함으로써 산양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산양을 향한 사랑은 케이블카 사업을 반대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초부터 반사판으로 된 커다랗고 동그란 피켓을 들고 다니면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현장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늘 들고 다녔어요. 케이블카 사업이 부결되기 전에는 어디든 약속이 있으면 만남 시간 한 시간 전에 와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어느 장소건. 이것을 그저 운동으로 생각했으면 못했을 거예요. 내 삶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죠.” 박그림 대표는 피켓을 들고 있는 동안 당당하고 올곧았다. 제재하면 제재하는 대로 밀리면 밀리는 대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설악산의 상황을 발길 닿는 곳 어디에서든 알렸다. 싸운 적도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인데 싸우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박그림 대표는 젊은 활동가들에게 자신의 삶을 통해 꿈꿔온 세상을 만들어나가라 말한다고. 일로 보는 순간 결과를 따지게 되기 때문이다. 된다, 안 된다 결과에 집중하면 포기하기 쉽지만 삶으로 나아가면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박그림 대표의 설명이다. 이제 자연보호법을 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는 안 된다는 조항을 넣을 생각이다. “국립공원 내에 인공 시설물도 사실 너무 많아요. 데크나 계단 등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시설을 하잖아요. 국립공원은 최소한의 시설만을 설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난간과 계단을 하나의 시설물로 만들어놓았어요. 일본 쿠시로 습지의 경우 옆으로 떨어지면 이탄지대라 쑥 들어가요. 난간이 없어요. 산도 정말 이 지역이 위험해서 안 되겠다 싶으면 기본적인 사다리만 딱 걸쳐놓고. 안전은 산을 오르는 각자의 책임입니다. 관리 당국이 어떻게 안전을 확보해주냐는 거죠. 위험이 없고 불편함이 없으면 무엇 때문에 산으로 가는 겁니까? 그럼 그건 자연이 아닙니다.” 시니어, 산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져야 한다 갑작스런 궁금증이 생겼다. 시니어 세대 또한 산을 즐기고 싶을 텐데 케이블카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도 대청봉에 올라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박그림 대표는 욕심이라고 말했다. “20대는 올라갈 수 있지만 70대는 못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문제가 있죠. 시니어들을 위해 케이블카를 놓아야 한다면 그게 왜 설악산뿐이겠습니까? 그리고 왜 케이블카뿐이겠습니까? 그 나이가 되면 산을 바라만 보고도 설렐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꼭 산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옛 조상들은 산을 바라만 보고도 진경을 느끼고 시심이 일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왜 정상을 갈구하는지. 그것이 의문이라고 했다. “진경산수화 같은 것도 정말 멀리서 바라보고 그린 그림이잖아요. 바라봤지만 깊이 있게 들여다봤죠. 우리는 지금 빨리, 아주 높이 올라가지만 겉핥기식으로 산을 오르고 내려옵니다. 탄성을 지르고 내려오지만 남는 것이 없죠. 어떤 시설이 없을 때는 힘들여 산을 오르게 됩니다. 오랜 인내를 통해 올라간 정상에서는 더 많은 것들을 바라볼 수 있죠. 나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연과 일체를 이룰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에 훨씬 다르게 산을 느끼게 됩니다.” 손자·손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박그림 대표가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세대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는 설악산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 캠프도 진행한다. 산을 돌아다니면서 산양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바람 소리를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다. “바람의 느낌을 지식을 통해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아이의 손을 잡고 바람 부는 언덕에 서면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는 ‘이게 바람이구나’하고 느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립공원 22개가 차지하는 넓이는 전국토의 5%밖에 안 된다고. 그것마저도 아이들에게 온전하게 되돌려줄 수 없다면 이다음에 어디에서 지친 영혼을 달랠 수 있을까를 박그림 대표는 걱정한다고 말했다. “제게는 다섯 살짜리 손자와 돌 지난 손녀가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라났을 때 바라볼 설악산이 어떠해야 되는가를 난 늘 꿈꾸거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 2017-03-2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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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염화시중의 미소로 꽃샘추위 내치는, 앉은부채!
- 춘삼월(春三月)이라고는 하나, 산골짝의 계절은 아직 봄이라기보다는 겨울에 가깝습니다. 나뭇가지는 여전히 깡말랐고 산기슭과 계곡엔 갈색의 낙엽이 무성하게 쌓여 있습니다. 낙엽 밑엔 미끌미끌한 얼음이 숨어 있어 함부로 내딛다가는 엉덩방아를 찧기 십상입니다. 저 멀리 남쪽에선 2월 하순부터 보춘화가 피었느니 변산바람꽃이 터졌느니 화신(花信)을 전해오지만, 높은 산 깊은 계곡에선 3월 초순 잘해야 너도바람꽃 한두 송이가 가냘픈 꽃송이를 치켜들 뿐입니다. 그렇듯 메마른 3월의 산중에서도 눈 밝은 동호인은 파릇파릇 돋아나는 묘한 야생화를 찾아냅니다. “이게 정말 꽃이 맞아요?” “무슨 꽃이 이렇게 생겼을까!” “꽃잎은 어디에 있나요?” 처음 보는 이는 익히 알던 꽃과는 전혀 다른 형태에 신기해합니다. 그러곤 이런저런 질문 끝에 ‘앉은부채’란 이름을 그럴싸하다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앉은부처’로 잘못 알아들었음을 알고선 다시 갸우뚱합니다. 한가운데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게 일견 불두(佛頭)를 닮아 ‘앉은부처’라고 불린다고 이해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뭔 사연인지 설명해달라고 채근합니다. 앉은부채는 우선 촛불 모양의 독특한 꽃으로 눈길을 끕니다. 꽃잎인 듯싶은 자갈색의 타원형 이파리는 불염포라 불리는 꽃 덮개입니다. 그 안의 도깨비방망이가 육수(肉穗)꽃차례라고 불리는 꽃 덩어리인데, 거북의 등처럼 갈라진 조각조각이 4장의 꽃잎과 4개의 수술, 1개의 암술을 갖춘 각각의 꽃송이입니다. 부처의 광배(光背)를 닮은 꽃 덮개와, 역시 부처의 머리를 닮은 육수꽃차례로 인해 ‘명상에 잠긴 부처’라는 별칭으로 또는 ‘앉은부처’로 잘못 불리기도 하지만, 원래는 꽃이 진 뒤에 무성하게 나는 잎이 부채처럼 넓다고 해서 앉은부채란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앉은부채가 가장 우리를 놀라게 하는 건 강인한 생명력에 있습니다. 이른 봄, 눈 속에서 꽃 덮개를 뾰족뾰족 세운 앉은부채는 마치 백상아리가 등지느러미를 곧추세우고 망망대해를 유영하듯 대견스럽습니다. 꽁꽁 언 땅속에 1m 넘게 뿌리를 내리고, 그 깊은 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얼음 구들을 녹이고 독특한 형태의 꽃을 피우는 앉은부채의 놀라운 생명력은 경이 그 자체입니다. 강원도에선 겨울에서 봄 사이 부채처럼 넓게 이파리를 펼치다 보니 겨울잠에서 갓 깨어난 곰이나 산짐승들이 가장 먼저 먹는 풀, 즉 ‘곰풀’로 불렸다고도 합니다. 또 지방에 따라 삿부채, 우엉취, 취숭(臭崧) 등 여러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유독성 식물로 잎은 풍성하지만 먹을 수 없다고 하여 ‘호랑이 배추’라는 별칭도 얻었습니다. 꽃 덮개가 노란 앉은부채의 경우 정명은 아니지만 ‘노랑앉은부채’로 불리는데, 어쩌다 귀하게 만난 노랑앉은부채를 보고 있노라면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로 겨울을, 꽃샘추위를 저만치 물리치는 듯한 진한 따스함이 전해져옵니다. 학명 중 속명 심플로카르퍼스(Symplocarpus)는 결합한다(symploce)와 열매(carpos)라는 그리스어 합성어로 씨방이 열매에 붙어 있다는 뜻, 종소명 레니폴리우스(renifolius)는 콩팥 모양의 잎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스컹크 캐비지(Skunk Cabbage)라고 합니다. Where is it? 전국에 분포하는데, 수도권 인근에선 천마산이 개체 수도 풍성하고 ‘노랑앉은부채’도 만날 수 있는 자생지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의 한 작은 산 입구에는 앉은부채 자생지라는 안내 표석(사진)이 세워져 있다.
- 2017-02-2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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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스키장
- 한 때 겨울의 꽃이라는 스키에 열광한 적이 있다. 가까운 곳은 양지스키장부터 천마산, 베어스타운으로 갔고 좀 멀리로는 강원도의 아주 예뻐서 인상적이었던 알프스스키장과 용평스키장을 다녔다. 백설의 슬로프를 멋진 11자 포즈로 스키 폴 대를 짚어가며 질주해 내려오는 그런 그림이 그려지지만 그건 잘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나는 A자형으로 간신히 타는 수준으로 시작했다. 나는 참 용감한 편이었나보다. 특별한 강습도 받지 않고 처음부터 무식하게 리프트를 타고 중급자 코스로 올라갔다. 남편과 아들의 도움으로 벌벌 떨면서도 슬로프를 다 내려왔을 때의 그 기분이 생생하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들 중간 슬로프쯤에 있는 간이 쉼터에서 커피와 스낵을 즐길 때도 나는 열심히 이, 삼십 분 씩 줄을 서서 리프트를 기다렸다가 올라가서는 5 분 만에 미끄러져 내려와 또 줄을 서길 반복하며 정말 열심히 탔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멋지게 활강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활기찬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참 좋았고 나도 저렇게 탈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었었다. 스키장 가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몸이 스키에 적응 돼가는 느낌이 들었다. A자로 스키를 벌리고 타는 것에서 약간 다리를 붙일 수 있었으며 언제인가는 모굴 이라고 하는 울퉁불퉁한 눈길도 리듬 있게 즐길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또 재미있는 건 처음부터 스키를 식구대로 준비하고 스키복도 갖추었다는 점이다. 미국에 사는 시누이 가족이 방학이라 한국에 왔다. 큰집 작은집이랑 시누이 가족 모두 용평으로 스키 여행을 가기로 했다. 다들 모였을 때 시누이가 어쩌면 하나같이 스키복을 차려입었냐면서 박장대소를 했다. 외국에서는 청바지 차림으로 타는 게 보통이라면서. 세련된 시누이 눈으로 볼 때 울긋불긋 차려입은 우리가 좀 우습게 보인 듯했다. 이제 좀 리듬 있게 탈 수 있겠다고 즐거워하던 어느 날 사고를 당했다. 스키를 타다가 넘어졌는데 내 무릎 위로 어떤 아가씨가 엉덩이로 누르며 덧 넘어진 것이다. 순간 나는 찌익 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냥 느낌인데 그런 소리가 난 것처럼 생각된 것 같다. 미안해요, 하고 그 아가씨는 내려가 버렸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구조 요원이 와서 인대가 늘어 난 것 같다며 나를 들것에 눕게 하고 모포로 얼굴까지 덮어주며 스키를 타고 나를 끌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누워서 거꾸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모포를 살짝 내리고 옆의 풍경을 보았는데 너무 재밌고 신났다. 참 철없었던 시절이다. 그 후 두 달 동안 깁스를 해야 했지만, 스키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겨울철만 되면 스키를 즐겼는데 아이가 성인이 되니 자기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스키장 가는 일이 줄어들었다. 지금도 집 구석에 스키가 장식품처럼 세워져 있다. 안탄지 오래 되었지만, 추억을 생각하니 버릴 수가 없어서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다시 스키를 타라면 못 탈 것 같다. 이 나이에 넘어져서 어디 한군데 부러지기라도 하면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라 슬프다. 겨울이면 하얀 눈밭에서 멋지게 스키나 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냥 나도 한 때 다 해 보았다고 만족을 하며 외면하련다.
- 2016-12-2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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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스트 올림픽이 열린 강릉과 평창을 가다
- 몇 년 전 뉴스 화면에서 2018년의 동계올림픽개최지로 “평창!”이라고 서툰 한국발음으로 불리며 선정되었던 기쁜 순간이 기억난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나라 위원들이 얼싸안고 기뻐했고 뉴스로 보던 우리 국민도 환호했었다. 많은 경쟁 도시를 제치고 우리나라가 2018년 동계올림픽을 치르게 된다니 스포츠계뿐 아니라 관광으로도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어서 기뻤다. 정책기자단에서 올해 마지막 팸투어로 ISU 쇼트트랙 월드컵대회 경기와 시설을 돌아본다는 공지가 났을 때 재빨리 신청해 기회를 얻었다. KB ISU 쇼트트랙 월드컵 대회 경기관람과 올림픽 홍보체험관 방문, 안목 해변의 산책 등 일정표의 내용이 매우 알차게 짜여있어 1박 2일로 떠나는 취재를 겸한 겨울 여행이 매우 기대되었고 같이 가는 기자님들 명단을 보니 몇 번의 팸투어를 같이 한 분도 있어 반가운 마음에 설레었다. 12월 16일~18일까지 진행되는 행사의 명칭은 테스트 올림픽으로 우리 정책기자단에서는 토요일, 일요일(17일과 18일) 경기를 관전하기로 했다. 테스트 올림픽은 올림픽과 패럴림픽 대회에 앞서 운영준비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경기 운영 노하우를 쌓기 위해 해당 종목이 치러질 바로 그 경기장에서 열리는 것으로 테스트 이벤트라고 불리지만 월드컵과 세계선수권 대회 등 중요한 국제경기를 실제로 진행하게 되므로 올림픽과 비슷한 강도의 경기 운영을 통해 매우 현실적으로 대회 준비상태를 점검해 볼 기회라고 한다. 서울역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해 강릉으로 향하는 버스 안은 즐거운 취재 여행 기대감으로 훈훈했다. 3시간을 달려 강릉에 도착해 점심을 먹은 후 강릉 아이스 아레나 올림픽 파크에 갔는데 국무총리의 축사도 있었고 우리가 응원하는 것처럼 강원도 사람뿐 아니라 전국에서, 외국인까지 관심을 두고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가 즐겁게 다가왔다. 오늘은 쇼트트랙 종목이 치러지고 있어 많은 관중이 모였다. 이번 쇼트트랙 경기는 남녀 각각 개인전 500m, 1.000m, 1.500m와 단체전 5.000m 계주가 펼쳐졌는데 실제로 경기를 관람하니 TV로 볼 때보다 더 스릴 있고 짜릿한 승부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유명 선수인 최민정, 심석희, 이정수, 서이라와 이제는 빅토르 안이 된 안현수 선수까지 모두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며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열심히 응원했다. 경기를 보며 좀 아쉬웠던 점은 개최지인 우리나라 선수에게 특별히 함성과 응원이 쏟아진 것이다. 당연한 일이긴 하겠지만 필자는 경기를 관람하는 동안 각 나라에서 출전한 선수에게 골고루 마음으로 응원을 보냈다. 그래도 1.500m 경기에서 이정수와 심석희 선수가 금메달을 따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신기한 건 우리나라 선수가 중반이나 뒤쪽에 처져 있다가 마지막 결승선 통과 직전 추월하여 일등을 하는 너무나 아슬아슬하고 신나는 장면이다. 얼마나 훈련을 많이 했을지 상상이 된다. 쇼트트랙은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효자종목이다. 오늘 많은 우리나라 선수가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더욱 노력하여 2018년 본선 때는 모두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 경기를 본 후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인 동해 보양 온천 컨벤션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 별관 시설이 깔끔했다. 2인 1실로 방 배정이 있었는데 기자님의 수가 홀수여서 필자는 혼자 독방을 쓰는 행운을 얻었다. 온천텔이라서 따끈한 물에 온천욕도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일요일엔 호텔 조식 후 평창올림픽 홍보체험관에 갔다. 올림픽은 빙상종목은 강릉 아레나에서, 스키종목은 평창 알렌시아에서 개최된다. 아담한 홍보관엔 2018년 2월 9일 올림픽 개최까지 418일 남았다는 시계가 돌아가고 있었고 4D 영상으로 직접 스키를 타는 것 같은 체험도 해 보았다. 2018년 동계올림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동계올림픽 유치과정과 진행 상황, 대회 구성, 앞으로의 계획 등을 설명해 놓았고 마스코트인 수호랑 반다비가 귀여웠다. 수호랑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호동물 백호가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 참가자, 관중을 보호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랑은 호랑이와 강원도 정선 아리랑을 상징한다고 한다. 반다비는 반달가슴곰으로 의지와 용기를 상징하고 대회를 기념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홍보관을 나와 안목 해변 카페거리에서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푸른 겨울 바다와 너무나도 깨끗한 하늘과 구름이 어찌나 예쁜지 강원도의 힘을 보여주는 듯했다. 여러 기자들과 사진도 찍으며 우정을 나눌 수 있어 더욱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 2016-12-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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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읽기] 12월의 추천 전시ㆍ도서ㆍ영화ㆍ공연
- ◇ 전시 1) 위대한 낙서(The Great Graffiti) 전 일정 12월 9일~2월 26일 장소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그라피티(Graffiti) 전시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앞다투어 그라피티 전시를 여는 등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으며 마니아층이 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팝 아트 이후 동시대를 기록하는 대표적인 예술로 자리 잡고 있는 그라피티의 역사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담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라피티 아티스트 7인의 수준 높은 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아티스트 중 일부는 한국을 방문해 라이브 페인팅을 선보일 계획이다. 2) 올라퍼 엘리아슨: 세상의 모든 가능성 전(Olafur Eliasson: The parliament of possibilities) 일정 2월 26일까지 장소 삼성미술관 리움 자연, 철학, 과학, 건축, 사회,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예술의 새로운 형태를 표현한 아이슬란드계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개인전이다. 미술관이라는 인공적인 공간에서 만나는 물, 바람, 이끼, 돌 등의 자연 요소와 기계로 만든 유사 자연 현상, 거울 착시 효과 등으로 오감을 자극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세상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나의 작품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고, 세상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 도서 1)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 (오도엽 저 · 한빛비즈) 시인이자 르포 작가인 저자가 고집스럽게 자신의 일터를 지키며 살아가는 9명의 아버지를 만나 ‘당신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대답 대신 자신들의 삶을 풀어놓는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노동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올려놓기까지의 절절한 사연이 들어 있다. 2) 희로애락 레시피 (무관스님, 혜일스님 공저 · 웜홀) 강원도 횡성의 금수사에서 함께 사는 무관스님과 혜일스님이 만든 레시피북이다. 그들은 “감정도 요리의 재료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두 스님이 직접 고안한 다양한 자연 요리 비법이 기쁨·고마움·분노·짜증·미움·슬픔·즐거움·설렘 등 각각의 감정이 가지는 색깔에 따라 담겨 있다. ◇ 영화 1) 위대한 두 예술가의 40년 우정 개봉 12월 예정 장르 드라마 감독 다니엘르 톰슨 출연 기욤 카네, 기욤 갈리엔, 데보라 프랑소와 등 근대 회화의 아버지 화가 폴 세잔과 의 소설가 에밀 졸라의 특별한 우정을 그렸다. 유년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하며 지낸 두 사람은 서로를 동경하면서도 때론 냉혹한 평가를 서슴지 않으며 성장해나간다. 포스터에는 폴 세잔의 대표작인 ‘생트빅투아르의 산’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폴 세잔과 에밀 졸라가 서로 마주 보며 걷는 모습이 담겨 있다. , 을 연출한 다니엘르 톰슨이 16년간 제작을 염원하며 준비한 신작으로 기대를 모은다. 2) 오감이 즐거운 아름다운 로맨스 개봉 12월 7일 장르 뮤직 로맨스 감독 다미엔 차젤레 출연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 J.K. 시몬스 등 배우 지망생과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과 열정 그리고 사랑을 그린 뮤직 로맨스 영화다. 주연 배우들이 노래에서부터 피아노, 연주, 탭댄스까지 대역 없이 소화하며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로 주목받은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신작으로 제73회 베니스영화제 개막작 선정·여우주연상 수상, 제41회 토론토영화제 관객상 수상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예매 오픈 1분 만에 매진을 기록하는 등 국내에서도 열기가 뜨겁다. ◇ 공연 1) 3색 공연으로 즐기는 따뜻한 12월 일정 12월 24일 , 12월 25일 , 12월 31일 장소 꿈의숲아트센터 콘서트홀 웅산밴드의 재즈콘서트 , 유터피 목관5중주단의 , 서울 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팝페라 가수 최의성, 소프라노 윤정인이 들려주는 등 각기 다른 색의 세 가지 공연을 선보인다. 2) 키니와 함께 떠나는 달나라 모험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압구정 윤당아트홀 연출 박찬 출연 윤효상, 유수호, 조용민, 권세봉, 박상아 등 크리스마스이브, 혼자 놀다 낮잠에 빠진 주인공 ‘감자’가 꿈속 고무줄 요정들과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어 하는 물고기 ‘키니’를 만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관객들은 입장할 때 받은 고무밴드로 배우들과 함께 별, 산호초를 만들어 주인공의 모험을 도와줄 수 있다. 3) 가장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로 일정 2월 5일까지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연출 한진섭 출연 남경주, 서영주, 서범석, 전수경, 김선경 등 전 세계를 사로잡은 팝의 거장 닐 세다카의 주크박스 뮤지컬 의 한국 초연 무대다. 1960년대 미국 마이애미 리조트를 배경으로 여섯 명의 주인공을 둘러싼 사랑 이야기를 중·장년 세대에게 친숙한 닐 세다카의 팝송 21곡에 담았다. 4) 반복되는 폭력, 반복되는 아픔 일정·장소 12월 6~15일 나루아트센터 소공연장, 12월 21~31일 대학로 게릴라극장 연출 이해성 출연 강애심, 이영숙, 김동완, 최유송, 유성진 등 일본군 위안부 사건과 한 여배우를 죽음까지 몰고 간 성 상납 사건 등 두 가지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지난 9년간 수요시위에 참석한 이해성 연출가의 절실함과 진정성이 녹아 있다. 제7회 대한민국연극대상 희곡상, 작품상, 여자연기상 등 3관왕에 이름을 올렸다.
- 2016-11-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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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의 야생화] 척박한 바위 겉에 오뚝 서 꽃피우는, 좀바위솔
- 어느덧 세모(歲暮)의 달 12월입니다. 2016년 한 해도 이제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져가니 아쉽기는 하지만 해가 기운다고 속상해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스러짐이 마냥 슬픈 것은 아닙니다. 석양이 만드는 저녁노을은 그 얼마나 황홀합니까. 얼마 전 흘려보낸 만추의 가을은 얼마나 화려했습니까. 만산홍엽의 단풍 사이로 난 오솔길이 갈수록 그윽하고 다정다감하게 다가오듯, 나이를 먹을수록 그만큼 삶도 농익고 완숙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치는 한겨울이면, 그리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랫소리가 들릴 즈음이면 유난히 소개하고픈 야생화가 있습니다. 경기·강원·충북·경북 등 여기저기서 가을에 피는 좀바위솔입니다. 바위솔·정선바위솔·연화바위솔·포천바위솔·둥근바위솔·가지바위솔·울릉연화바위솔·난쟁이바위솔 등 국내에 자생하는 8~9종의 바위솔 중 하나로, 바위솔에 비해 전초도 꽃차례도 작아서 ‘좀’이란 접두어가 붙었습니다. 그런 좀바위솔이 유독 세모에 생각나는 까닭은 천지가 울긋불긋 물든 깊은 산중 커다란 바위 겉에 오뚝 꽃대를 세우고 있는 모습에서, 황혼 무렵 세상이 제아무리 요동을 쳐도 아랑곳없이 의연히 자신의 길을 가는 작은 거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생 2막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요. 게다가 만추의 계절 좀바위솔이 자생지인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에 무더기로 활짝 피어 있는 광경은 그 자체가 멋진 가을 풍경화가 되기도 합니다. 좀바위솔은 끝이 뾰족한 비늘 모양의 녹색 잎 수십 개가 빙 둘러 난 정중앙에 9~10월쯤 길어야 어른 손가락만 한 이삭꽃차례를 곧추세웁니다. 여러해살이풀이어서 뿌리가 다치지 않으면 해마다 연분홍색의 꽃을, 벼나 보리 등의 곡식 이삭처럼 다닥다닥 피웁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각종 바위솔 식물들이 암 치료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암암리에 뿌리째 남벌되는 수난을 겪고 있는 게 우려스러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실제 깎아지른 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옥색의 강물, 불이라도 붙을 듯 붉게 물든 단풍 등 3박자와 어우러져 최고의 좀바위솔 자생지로 꼽히던 한탄강 변의 좀바위솔 자생지가 몇 해 전 괴멸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자연은 스스로 대단한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듯 작년부터 하나둘씩 좀바위솔이 다시 피어나고 있어, 또다시 못된 손만 타지 않으면 수년 내 집채만 한 바위를 가득 덮었던 장관이 되살아나기를 기대하게 합니다. Where is it? 경기·강원·충북·경북의 몇몇 좀바위솔 촬영지가 야생화 동호인에게 알려지면서 자생지가 그 주변 지역으로 국한된 듯 이야기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폭이 넓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에서 말했듯 강원도 철원 한탄강 변 자생지(사진)는 지금은 많이 훼손된 상태다. 철원의 상해계곡에서도 수는 많지 않지만 만날 수 있다. 경기도 연천의 지장산과 고대산, 가평의 화야산 등에는 제법 많은 개체가 자생한다.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미산계곡, 충북 단양의 송림사와 경북 봉화의 청량사 등의 주변 바위에서도 좀바위솔이 앙증맞게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 2016-11-21 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