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李文宰·57) 시인 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2014년 을 펴내며 이런 말을 썼다. ‘시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대신 시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지 않고 시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라고 묻곤 했다. 시를 나 혹은 너라고 바꿔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그러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가수 이애란(예명·53)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작년 말, 전국을 ‘전해라’
열풍에 빠트린 죄(?)를 물어 방송사와 광고계가 그에게 잇단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떴다’하는 순간 방송사 특집 프로그램, 휴먼다큐멘터리, 심지어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까지 접수했다. 25년 무명생활을 한방에 날려버린 ‘백세인생’ 이애란의 20
“대학생일 때는 공부에 매진할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죠. 고등학교 때는 시골에 있었으니 좀 여유 있게 놀 수 있었죠. 노래를 좋아했어요. 주위에서 목성이 좋다고 하고 발음도 명확하다며 성악을 하라고 하더군요.”
한영섭(韓永燮·61) 인간개발연구원 원장은 성악이라는 자신의 오랜 꿈을 더듬어보기 위해 10대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갔다. 그만큼 오래된 꿈을, 그는
100세 시대, 치매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불청객과도 같다. 이 달갑지 않은 손님을 맞았을 때는 누구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에 빠지게 된다. 20여 년간 수많은 환자를 진료해온 킴스패밀리의원·한의원 김철수(金哲秀·62) 원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장모의 치매는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김 원장은 “나
허병두 숭문고 국어 교사
예순도 안 된 나이에 자신의 삶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몹시 부담스러운 일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한 분들이 가득 계신 이러한 공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교사로서 보낸 지난 30여 년을 돌이켜 보는 것은 지금의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가늠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의미를 둘 만하리라. 더구나 최근과 같이 교사라는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났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게 돈이다.
은행권에서는 금융자산 10억원, 평균 재산 50억원 정도가 있으면 VVIP 자산가로 본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18만2000명이 여기에 속한다. 대체로 서울 강남, 서초, 송파, 양천과 경기 분당, 동탄, 일산에 가장 많은 부자가 사는 것으로 집계됐다.
자산가들
일본 통신원 이태문 gounsege@gmail.com
시는 울림이어야 하고, 잠언 혹은 금언은 공감을 얻어야만 시대를 뛰어넘어 빛나는 법이다. 수많은 위인과 명인들이 저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을 담은 명언을 남겼지만, 시바타 도요(柴田トヨ) 할머니의 이 한마디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다’는 참으로 깊은 울림이며 시대와 국경을 초월
손에는 사람의 인생이 드러난다. 크기와 모양 그리고 거기에 박힌 굳은살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영광스러운 순간을 손에 쥐고,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웠던 순간. 손을 통해 그 역사의 순간을 알 수도 있다.
옷을 만드는 이정구(李貞九) 명장의 매장에 눈에 띄는 사진이 하나 있다. 1970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최근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한 동영상이 있습니다. 독일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에데카(Edeka)의 광고입니다. 이 광고에서 매년 혼자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던 아버지는 자신의 거짓 부고를 자식들에게 보냅니다. 충격과 슬픔 속에 모여든 자식들 앞에 펼쳐진 것은 장례식이 아니라 성탄절 만찬 테이블이었습니다. 놀라는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너희 모두를
자식과 같이 산다고 생각하니 갈등이 생길 것 같다. 하지만 배우자와 둘만 살자니 뭔가 적적한 느낌이 올 때도 있다. 손주 녀석들이 보고 싶어 전화기를 들지만, 막상 보려고 하면 귀찮아 수화기를 내려놓기도 한다. 자식과 ‘함께 사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와도 맞물려 있다. 여유로운 황혼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 거기에 자녀 내외와의 갈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