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 치고 가재 잡다'는 속담이 있다. 한 가지 일하다 보면 곁들여 또 다른 좋은 일이 겹쳐진다는 의미다. 늦깎이로 시작한 사진 취미가 바로 그런 예가 되었다. 60세에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그 사진취미가 바탕이 되어서 KBS 1TV ‘아침마당’ 출연을 비롯한 방송활동, 강사, 기자, 저자로 인생이 막을 의미 있고 재미있게 보내고 있어서다. 그뿐만 아니라 용돈도 벌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가를 어떻게 쓸모가 있게 보내느냐를 고민한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상황은 많아지게 마련이다. 퇴직하면 매일이 일요일인 셈이다. 직장을 다닐 땐 대부분 시간을 바깥에서 보내게 되고 동료나 선후배, 관련 기관이나 거래처의 고객과 어울리며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보낸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난 후에는 그런 인간관계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그리고 일상이 따분해진다.
수명은 날로 늘어난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늘어난다. 머지않아 120세에 이른다고 예측한다. 은퇴 후 보내야 할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진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의 발표로는 60세에 은퇴하여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였을 때도 하루 여가가 11시간으로 따져보면 잔여 시간이 8만 시간에 달한다. 그 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취미생활이다.
그래서 취미활동의 하나로 사진을 택했었다. 나이 60세, 그러니까 2010년 7월부터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일반인들과 같이 자동모드로 예전에 사진을 찍기는 하였으나 사진에 대한 지식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기는 처음이었다. 필자가 사는 고양시 일산동구청에서 무료로 진행한 사진교실에 참가한 것이다. 6개월 과정이고 한 달에 1시간 반씩 세 번의 학습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사진에 대한 기초지식을 익혔다.
물론 카메라는 큰아들 녀석이 인터넷 쇼핑몰을 할 때 사용하던 작은 콤팩트 카메라를 얻어 사용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듯이 취미활동에 끝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인정하는 공인 사진작가가 되기 위하여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3개월 후부터 도전하였다. 사진작가 명함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 하나가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인정하는 전국사진공모전 수상을 통하여 당해 협회의 정회원이 되는 길이다.
필자는 그 길을 택하고 공모전에 출품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첫 번째로 응모한 제1회 너브내감성사진전국공모전에서 작품 '형상I'이 동상에 입상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동상의 경우 사진작가로 등록하기 위한 점수가 3점에 불과하다. 입선의 경우는 2점이다. 지금은 규정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점수의 합계를 50점을 넘겨야 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꾸준히 응모하였다. 입선이 잘 안 되어 포기할까도 수없이 망설인 적도 많다. 그러나 한번 시작한 일을 중도에 포기할 수 없었다. 나태해지는 마음을 재차 다스리며 또 도전하고, 도전하기를 반복하였다. 수도 없이 낙선되었다. 필자의 서재에는 당시에 낙선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지금 다시 그 사진을 살펴보면 역시 낙선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우물 안 개구리였다.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목적을 이루긴 하였어도 그 과정에는 수많은 고뇌를 반복하였다.
늘 카메라를 손에 놓지 않고 사진에 대한 공부도 계속하고 있다. 사진 관련 서적도 꽤 쌓였다. 찍은 사진도 500기가 용량의 외장 하드가 6개를 넘어서고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한 명소로의 촬영여행은 잘 가지 못하여도 이른 아침부터 거의 매일 사진을 찍고 있다.
그리고 사진을 통한 재능기부와 봉사도 곁들인다. 사진강의와 촬영지도를 하며 사진과 관련하여 조선일보사 시니어조선의 사진 명예 기자로도 활동을 한다.
물론 작품을 사진대전을 비롯한 공모전에 출품하여 공개적인 평가를 받기를 좋아한다. 2013년에는 사진의 국전인 대한민국사진대전에 '무한질주'라는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하였고, 같은 해 10월에 부산일보사가 주최한 제21회 부일전국사진대전에 '닭장'을 출품하여 우수상을 받은 것도 그런 과정이다.
이러한 사진에 대한 도전과 취미활동은 의 생활에 더없는 보람과 즐거움을 준다. 특별한 재주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가지고 있는 카메라 장비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 한 동안 필자는 똑딱이라고 칭하는 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했다. 그 다음에 며느리가 사용하지 않는 캐논 400D 구형 카메라를 주기에 사용하다가 50만원을 주고 산 중고 500D를 지금도 사용 중이다. 물론 렌즈도 번들형에 가까운 저가형이다.
필자 카메라 장비를 보고 사진을 좀 한다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런 장비로 어떻게 그런 작품을 만드느냐고 되묻는 눈치다.
좋은 카메라는 촬영자를 편하게 한다. 카메라 장비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필자의 경우는 다른 사람이 겪는 노력의 몇 배를 하여야 한다. 쉽게 말하여 몸으로 때워간다.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사는 생활이 노후를 편하게 한다. 뱁새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 필자 방식대로, 내 형편대로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진은 누구나 한번 도전해 보아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주변에 사진을 무료로 배울 기회와 공간이 많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비도 무척 편해졌다. 스마트폰이 그 중에 하나이지 싶다. 침팬지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이 신문의 기사로 뜬 적이 있듯이 사진 촬영이 손쉬워졌고 소셜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어서 사진을 찍지 않으면 아니 되된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사진 촬영 경험을 많이 했다.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음이다. 다만 사진이론적 측면에서 몇 가지만 가미하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 여러 사람과 또는 자연과 어울리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진 취미는 노후에 한번 도전해 볼만한 취미다.
필자는 남양주시 퇴계원에 살고 있다. 구리시와 서울시가 만나는 꼭지점으로 앞에는 용암천이 뒤에는 불암산 수락산등이 병풍처럼 펄쳐져 있다. 오랜 세월을 미국에서 살다 보니 복잡한 도심이 싫어 안주한 곳이다. 올해 초 이사를 와서 이곳 저곳 주변을 돌다 보니 가까운 곳에 별내라는 신도시가 있었다. 고국으로 돌아와 보니 엄청나게 변해져 있는 모습으로 낯선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꼼짝없이 집에만 있던 필자는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멋진 건물로 잘 지어진 주민 센터를 발견했다.
건물벽에 붙어있는 커다란 현수막에는 작은 글씨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차를 세우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수강생모집이었다.
그 길로 센터로 들어가 이것 저것 질문을 하고 시설물들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그 옛날과 달라진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주민들의 건강과 지적 향상을 위한 재능기부 교육들이 다양한 혜택으로 저렴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 되어있었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필자에게 각양각색의 수업들이 총천연색으로 유혹을 했다. 우선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과목씩을 선택해보았다.
그 동안 해보지 못한 것들. 관심이 있던 것들로 우선순위를 두며 시간을 채워 나갔다. 다시 시작한 고국의 멈춘 시간들이 필자를 자극시켰다. 오랜 시간 동안의 육체노동과 시니어에 입문으로 안주했던 마음들에 햇살이 비추며 살랑살랑 설레 이기를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양로보건센터라는 곳이 있어 65세 이상의 시니어들은 아침 9시부터 센터의 계획에 맞춰 하루가 시작된다. 필자는 아직 적령기도 아니었지만 일하기에 바빠 근처도 갈수가 없었다. 그곳은 하루의 일정이 누군가에 의해 짜여져서 물레방아처럼 돌아간다.
자기가 하고 싶은, 관심 있는 분야에서 남은 정열을 다하는 모습은 충분히 멋지고 아름답기만 하다. 저렴한 수강료에 자신이 부지런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시니어들의 하루는 일주일은 그리고 시간들은 바쁘기만 할 것이다. 국민들에게 부여된 얼마나 고급화된 고국의 복지 정책의 모습들에 감탄을 했다. 결코 선진국의 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제 전세계 어디에나 정신 건강 육체건강은 결코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 없는 인생의 기회가 온다고 한다. 그때마다 알고도 모르고도 순식간에 지나쳐 갈 때가 있다. 이제 남은 시간 속에서 남아있는 기회를 기다리기 보다는 주어진 삶 속에서 열정과 함께 직접 찾아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기회가 우리를 기다리며 주변에 널려져 있다.
필자도 여러 기회를 찾아 지루하던 고국생활의 하루가 벅차기만 하다.
시니어들에게 가장 익숙한 운동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걷기’다. ‘프리맨 도보여행’ 클럽은 걷기의 즐거움을 깨닫고, 걷기를 통해 건강을 가꾸고 있는 시니어들의 모임이다. 프리맨 도보여행 클럽의 대장을 맡고 있는 기윤덕(奇允德·58) 대장의 목소리를 통해 걷기의 매력과 즐거움을 확인해 본다.
시니어를 위한 종합 포털 유어스테이지에 자리한 ‘프리맨 도보여행’ 클럽은 회원 708명에 방문자수 11만 명에 달하는 인기 클럽이다. 2010년 12월 첫 모임을 시작한 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매주 모임을 가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프리맨 도보여행 회원들은 그 이름 그대로 ‘걷기’를 좋아하고 찬양하며 그 즐거움과 가치를 전파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여 있다.
철저하게 자발적인 시니어 모임 추구
“처음에는 산을 다니다가 프리맨 도보여행에 가입하게 됐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건 사람들이더라구요. 그리고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강도 좋아졌어요. 연세 드신 분이 많다 보니 항상 배려가 있습니다. 걷는 것만이 다가 아니잖아요. 시니어들은 항상 외롭거든요. 나란히 걸으며 소소한 이야기 나누고 서로를 배려하면 모든 게 좋아지는 것 같아요.”
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기윤덕(奇允德·58) 대장의 말에서 ‘시니어를 위한 도보여행 클럽’으로서의 프리맨 도보여행을 정의하는 ‘사람’과 ‘건강’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발견된다. 사실 프리맨 도보여행 클럽에는 관절염, 디스크 등의 문제를 치료하거나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가입하는 사람들도 제법 된다고 한다.
기 대장은 “유어스테이지가 클럽 활성화를 시작하면서 시니어들의 체력에 적합한 활동으로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고, 시니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걷기 클럽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프리맨 도보여행’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프리맨 도보여행은 철저하게 자발적인 시니어 모임을 지향한다. 그러한 정체성은 심지어 회칙에도 기재되어 있을 정도다. 클럽의 그러한 성격은 도보 자체가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족 같은 관계가 된 회원들
프리맨 도보여행 클럽은 자발적인 모임으로서는 이례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정기 모임과 번개 모임이 활발한 편이다. 매주 일요일 서울·경기 지역의 걷기 코스를 순회하고, 주중에도 야간 산행 등 번개 모임을 수시로 가진다고 한다. 특별한 날이나 여행을 갈 때는 20~30명이, 평소에는 15명 내외의 회원이 모여 걷기 여행을 떠난다.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쯤 모여 서너 시간 걷고, 뒤풀이로 맛집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일정이다. 2010년에 시작됐으니 올해로 벌써 6년째. 개중에는 수년째 보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족 같은 관계가 된 사이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니 갈등이 없을 수는 없죠. 너무 가족 같고 격의 없이 대하다 보니 실수가 일어날 때도 간혹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대화를 하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전과 같이 편하고 터놓는 관계가 됩니다.”
자주 보는 동호회의 저력이랄까. 기 대장이 클럽을 운영하며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사랑과 배려심 그리고 자유’라고 말한 것처럼 프리맨 도보여행은 자율적인 조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게 이채로웠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은 더 나아가 사회를 위하는 마음이 되고, 그런 마음이 모여서 기부와 봉사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회비를 모아 연말이 되면 기부를 하거나 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클럽 활동의 중요한 일부다.
배려가 있는 즐거운 걷기를 위하여
걷기를 통한 건강 일화들에는 간혹 전설적인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맨발로 전국을 도보로 걸어서 암을 치료한 사람의 얘기라든지. 물론 그렇게 암을 치료하게 된 경우가 일반적인 경우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그 정도 수준은 아니더라도 프리맨 도보클럽 또한 몇몇 가지 건강 사례들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클럽의 한 회원은 척추협착증 때문에 10분도 못 걸었다고 한다. 2년간 클럽 활동을 한 그는 지금은 3시간은 너끈히 넘기면서 걸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한 회원은 당뇨병과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차츰 증세가 호전되어 모임에 나온 지 1년 만에 선두에 서서 걷게 되었다. 한 운영위원은 암 수술 후 열심히 참여하며 건강을 찾아가고 있다. 또 우울증이 있거나 혈압이 높았던 회원들이 이제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아졌다며 클럽에 대해 고마워하기도 한다.
의학적으로 정교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이와 같은 현상들은 모임이 가지고 있는 편안함에서 비롯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기 대장은 클럽을 설명하면서 행복과 평화를 강조했다.
“저희 클럽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든 강압이 없이 자율적으로 진행합니다. 그리고 5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이다보니 항상 배려가 있어요. 시니어들은 외로울 수밖에 없고, 사람은 살다 보면 상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저희 클럽에서는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 나누고 정겹게 교감하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게 강점이죠. 저희가 굉장히 재미있어요. 일요일에 도보를 한다는 걸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지만 막상 나와 보시면 모두 즐거워하십니다. 회원들 간의 마음의 교류가 있기 때문이에요.”
한 달에 두 번은 쉬운 코스, 두 번은 어려운 코스 등 난이도를 조절해 가면서 길잡이가 사전 답사를 통해 꼼꼼히 회원들을 위해 준비한다. 일련의 이런 과정들이 최적화되면서 프리맨 도보여행 회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사고와 평화를 가질 수 있도록 운용지침들이 다듬어져 있었다.
치유하는 걷기, 어렵지 않다
기 대장은 평소에는 부담 없는 코스를 택해 서울과 근교의 둘레길을 주로 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북한산 둘레길, 서울 성곽길, 서울 둘레길 등 아름다운 곳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계절마다 경치가 다르다 보니 갔던 곳도 계절이 바뀌면 다시 찾기도 합니다. 특히 봄과 가을에는 꽃을 테마로 길을 잡기도 하죠.”
매년 한 번 정도는 멀리 지방으로 여행을 가는 정기 모임도 있고, 뜻 맞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연초에는 2박 3일 코스로 동해안 영덕, 부산 등을 찾아 도보 여행으로 새해를 열기도 한다. 테마 여행으로 서해안에 있는 여러 섬을 걷기도 하고 특별하게는 제주도에 가서 올레길을 걷고 온 적도 있다. 작년에는 지리산, 진주, 진도를 다녀 왔다. 올해도 제주도로 떠날 예정이다.
기 대장은 평지를 갈 때는 워킹화로도 충분하지만 중간에 산이 있을 때면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클럽에서는 주로 여름에 산을 가는 편이라고 한다. 시니어에게는 비타민D가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모일 때마다 참가비로 2000원씩 걷고, 뒤풀이 저녁 식사는 n분의 1로 각자 지출합니다. 이렇게 해서 모은 회비는 연말에 회원들 선물과 불우 이웃 돕기에 쓰지요. 추석이나 설 등 특별한 날이면 봉사 기관에 직접 찾아가 노숙인 및 홀몸 어르신들께 봉사 활동도 했습니다.”
단순히 걷기만 하는 것보다 클럽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봉사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의미이기도 하거니와 자체적인 이슈로서도, 그리고 클럽의 자부심으로서도 남을 수 있는 일이다.
“좋은 자연을 만나서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걸으면 힘든 일도 자연스럽게 치유가 이뤄집니다.”
기 대장의 말에는 프리맨 도보여행 클럽이 추구하는 자연스러움의 가치가 담겨 있었다. 그 힘들다는 치유, 이렇게 쉽고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창한 게 아니라 단지 마음 먹고 시작하면 되는 일, 아직 늦지 않았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2014년 3월 애플의 최고재무책임자(CFO) 피터 오펜하이머가 무려 430억원 규모의 주식을 포기하고 그 해 9월에 은퇴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다들 놀라워했지만 정작 피터가 내놓은 이유는 단순명쾌했다. 1996년에 애플에 입사해 2004년부터 만 10년째 CFO로 근무하고 있는데 이제 ‘자유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이는 51세로 아직 한창이지만 회사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고 돈은 벌 만큼 벌었으니 ‘앞으로는 회사와 일이 아닌 자신과 가족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쯤 피터는 원하던 비행기 조종사 면허를 따고 자가용 비행기 하나 사서 가족과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구글의 CFO 패트릭 피셰트(52세) 역시 아내와 여행을 다니기 위해서라면서 2015년 3월 회사를 미련 없이 떠났다. 짐 로저스와 피터 린치 등 유명한 펀드매니저 중에도 억만장자가 된 다음 유유자적하며 지내겠다고 40~50대에 은퇴한 피터 팬(?)들이 수두룩하다.
‘종오소호(從吾所好)’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으리라’ 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리라’고 풀이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게 쉽지 않은 일이다. 젊어서는 엄청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거나 또는 벌었거나 아니면 웬만큼 도(?)가 텄거나 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도 저도 아닌 사람이 좋아하는 것만 하면 ‘또라이’ 또는 ‘고문관’이라는 말을 듣기가 십상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주된 직장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마음먹기에 달린 일로 바뀌어 간다. 엄청나게 재산이 많지 않아도 도가 트지 않아도 ‘또라이’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가능한 일로 다가온다는 말이다. 물론 이때 돈이 좀 더 많을수록 좋아하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분수에 맞게 하려고 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널려 있다는 점에서 돈의 많고 적음이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2014년 6월 EBS의 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신권식씨(당시 86세). 경기도 평택에 사는 평범한 농부인 그는 몇 년 전에는 50년 이상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 온 일기가 언론에 보도되고 책으로 발간되기도 한 분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특이한 점은 환갑이 되던 해에 농사를 접고 땅도 거의 다 팔아치웠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평생 일만 하다가 77세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을 실행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배운 서예가 늘어 이제 가르칠 정도가 되었고 동네 향교에서 하는 행사에는 제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나도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땅을 파는 것을 반대했던 부인이 남편이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마음을 내려놓은 것도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여든이 넘은 두 분 다 건강하다. 조용한 시골에서, 그것도 평생 농사지은 곳에서 하고 싶은 대로 사는데 부러울 게 뭐 있으며 스트레스가 어디 있겠는가?
‘종오소호(從吾所好)’야 말로 좋아하는 일, 즐거움을 좇아 사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즐겁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연간 근로시간이 2124시간에 달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가장 모자라는 것은 나만의 시간,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OECD회원국들의 평균 근로시간 1770시간과 비교하면 354시간, 가장 적게 일하는 독일(1371시간)과 비교하면 무려 1.6배나 더 많은 시간을 돈을 버는 데에 쏟아 붓고 있다. 야근과 주말 근무 등으로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은 아직도 먼 미래의 일인 것이다.
그러다 막상 은퇴하면 말 그대로 막막하기만 하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은 있지만 해 본 적이 없어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뭐 제대로 놀아본 적이 있어야 놀 것 아닌가? 그런데 은퇴 후 하루에 10시간씩 30년의 시간을 뭔가 의미있는 일이나 활동을 해야 하니까 총 11만시간이다. 등산이나 골프, 배드민턴, 탁구 등 다양한 스포츠와 화투와 카드, 마작 등의 심심풀이를 배우자와 친구들과 함께 즐기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도 하다보면 식상해지면서 시간이 남아돈다는 게 은퇴한 선배들의 푸념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TV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한단다. 그래서 그런지 은퇴 후 11만 시간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3만시간 이상을 TV 시청으로 때운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사실 TV 시청이 시간 때우기에는 매우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를 내려놓는 시간에 TV를 본다면 그 또한 나름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TV를 보면서 얻은 정보를 활용해서 나다닌다면 더 좋지 않을까? 나다니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더 좋은 시간 때우기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쿡방’을 보고 요리를 하거나 ‘먹방’을 보고 ‘먹행’(먹거리 여행)을 하는 것이다. 특히 ‘먹행’의 경우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필자에게 꿈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는 막걸리 양조장이 500곳이 넘는다고 한다. 그곳을 섭렵하는 것이다. 우연이지만 전국의 골프장 수와 비슷하다. 어떤 분은 전국의 골프장을 다 가보는 게 꿈이라고 하는데 그런 분이라면 더더욱 골프장 근처의 양조장도 한번 들러보면 어떨까? 1박 2일로 숙소도 잡아놓고 느긋하게 그 동네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 한잔 걸치면서 저녁을 해보라. 골프를 치기로 했으니 동반자가 2~3명은 될 것이고 그 동반자들이 다 마음에도 맞고 사는 형편도 비슷할 터이니 분위기 또한 더없이 좋으리라.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도 한두 잔 마시다보면 그 맛과 운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쿡방’이나 ‘먹방’이 유난히 인기를 끌었던 시기는 경기가 나쁠 때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요즘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이럴 때일수록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TV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돈을 쓰면 그게 경제를 돕는 일이기도 하다. 틈틈이 봉사와 기부활동도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돈을 버는 재미도 쏠쏠하다지만 돈을 쓰는 데에도 재미를 붙이면 그만큼 쏠쏠한 것도 없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니는 재미, 즉 재미를 좇아다니는 재미만한 재미가 없을 것이다. 사는 게 재미있으면 시간도 잘 가기 마련이다.
은퇴 후 11만 시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좇으리라는 ‘종오소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자성어 하나 더. 무엇이나 다 때가 있는 법, 내가 할 수 있을 때 그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 물실호기(勿失好機)!
허병두 숭문고 국어 교사
예순도 안 된 나이에 자신의 삶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몹시 부담스러운 일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한 분들이 가득 계신 이러한 공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교사로서 보낸 지난 30여 년을 돌이켜 보는 것은 지금의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가늠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의미를 둘 만하리라. 더구나 최근과 같이 교사라는 직업을 단지 안정성의 측면에서만 평가하는 세태에서는 교직의 진정한 의미를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의의도 있으리라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그러고 보면 아주 희한하게도 교육자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나름대로 최선의 길을 찾다 보니 어느새 교사가 되었고 교사로서 30여 년을 자연스럽게 살아왔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유명인이 되었더라 식과는 달리, 어느 순간 문득 돌아보니 교육자가 되어 있더라가 정확한 말이라 하겠다.
원래의 내 꿈은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었다. 조국을 지키다가 하늘에서 장렬히 산화하겠다는 꿈은 유치한 꼬맹이 시절부터 품어온 오랜 소망이었다. 38선 이남의 경기도 개성이 친가와 외가의 고향이었던 터라 그 꿈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땅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쁜 시력 때문에 비록 그 꿈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그 대신에 국가를 수호하는 항공공학자가 되고 싶었다. 수학을 그리 잘하지 못했지만 항공공학 관련 대학 교재들도 어렵게 구해 공부하며 고교 시절을 보냈다. 고3 늦가을에 놀랍게도 대통령이 부하에 의해 죽었다. 국가가 위기에 빠진 것 같아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1980년 ‘서울의 봄’은 너무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눈 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혼란 그 자체였다. 국가를 지켜야 하는 군인들이 국민을 향해 으르렁대며 총칼을 들이댔고 멀리 남쪽에서는 이미 많은 양민들이 희생당했다는 말까지 들려 왔다. 그때까지 품고 있던 의식과 사고가 모두 붕괴되는 시기였다. 국가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애써 공부해서 항공공학자가 되어 봐야 불의를 도울 뿐이었다. 결코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과감히 포기하고 이 땅을 빨리 뜨고 싶었다. 유학을 빙자해서 도피하고 싶었고, 외국에 눌러 앉아서 결코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종로학원에서 재수를 하며 서강대학교가 가장 유학가기 좋다는 친구 아버님(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시는 바람에 집안 형편은 갑자기 어려워졌다. 유학 가기란 점점 더 불가능해지는 것 같아 너무나 화가 났다. 그렇다고 저항할 수도 없었다. 완강한 폭력 앞에서 돌멩이 몇 개쯤 던져 봐야 무기력하고 초라하기만 했다. 견딜 수 없었다. 현실을 슬그머니 외면하고 싶으나 그럴 수 없었고, 세상에 용감하게 직면하려 해도 그 또한 도대체 쉽지 않았다. 가장 희망에 차 있어야 할 대학 시절은 끝나지 않을 악몽의 시대에 불과했다.
우연히 시작한 야학교사, 국문학 품에서 행복 느껴
우연히 서강대 교내에 있던 이냐시오 야학에서 교사를 찾는다는 공고를 보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기력하고 어설픈 청춘에게 안성맞춤의 일이었다. 구로공단에서 일하다가 와서 꾸벅거리는 어린 소년과 소녀들, 못 배운 설움을 뒤늦게 풀겠다고 나선 개인택시 할아버지 등, 살아 숨쉬는 생생한 삶의 현실을 접할 수 있었다.
최루탄이 자욱한 밤에 눈물 콧물을 흘리며 얇은 널빤지 가건물에서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하였다. 야학 수업을 끝내고 신촌으로 가는 길목의 허름한 떡볶이 집에서 늦은 저녁을 함께 먹던 추억들은 아직도 즐겁다. “산다는 것은 싼다는 것이다!” 같은 조악한 낙서가 가득한 야외 화장실의 모습도 너무나 또렷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마다 빙그레 웃게 된다.
엉망진창 같았던 대학 시절에 국문학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시간이 남아 여유 과목으로 선택했던 국문학개론이었지만 강의를 들을수록 새로운 진경을 보여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닥치는 대로 많이 읽었고 이과 학생이면서도 국어 과목에 관한 한 전교는 물론 전국에서 손꼽히던 성적을 받았기에 나름대로 품었던 오만함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창피함보다 즐거움이 훨씬 컸다. 세상에 새로 태어나는 기분까지 들었다.
불의의 시대에 절망하는 청춘에게 문학은 영원한 저항, 아름다운 힘으로서 다가왔다. 참여 문학과 순수 문학이라는 이분법을 거부하면서 문학의 바람직한 길을 끝까지 추구해 보고 싶었다. 현대시에 대한 관심은 특별히 더 컸다. 어느새 직접 시를 쓰기 시작했고 대학 신문의 현상공모에 당선이 되었다. 동인 활동을 하며 시화전도 열었다.
우리 문학의 웅숭깊은 품은 상처투성이의 젊은 영혼을 부드럽고도 따뜻하고 넉넉하게 품어주었다. 너무나 감사한 축복이었다. 외국 유학을 가겠다던 마음은 어느새 수그러들었다. 나중에 비교문학을 공부하면 된다는 수준까지 잦아졌다. 대학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부조교를 하며 교양영어조교, 심지어 배구부 학업 조교까지 하면서도 4년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정말 힘들었던 대학 시절이었다.
어느새 교사가 되고 모교로 왔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한 학기를 지낸 뒤에 군복무를 마쳤다. 여전히 집안 형편은 어려웠다. 아무래도 직장을 다니며 대학원 공부를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같이 교직이 인기 있던 때가 아니라 교사 지원서를 내고 이내 교사가 되었다. 학교에는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많이 있었고 꼼꼼하게 학생들을 챙기면서 정신없이 생활을 보냈다. 대학원 공부도 병행하고 마침 결혼까지 하였기에 너무나 힘들어 집에만 오면 푹 고꾸라져서 식은땀을 흘리며 자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사립학교도 공채 시험을 보던 때라 수험 준비 또한 열심히 해야 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우습게도 그 다음 해에 이 시험은 없어졌다.
3년 차가 되자, 학교에서 담임을 맡겼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학생들의 이름을 즉시 외웠다. 하지만 첫날 일방적으로 부여된 지시는 학부모 10명에게서 학교 발전 기금을 걷으라는 부당한 명령이었다.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더없이 마음이 편했다. 신혼 2년 차였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 진짜 이 나라를 뜰 때가 된 거야” 되뇌었을 뿐이다. 어딘들 살지 못하랴. 조금이지만 모아 놓았던 봉급도 있었다.
사표를 내고 인계 준비를 하는데 모교인 숭문고에서 연락이 왔다. 고3 때 담임 선생님이셨다. 모교에서 교편을 잡으라는 것이었다. 사표를 낸 것은 어찌 아셨냐고 묻자, 당신은 몰랐으며 그저 오라는 말씀만 되풀이 하셨다. 운명 같았다. 모교에 가서 다시 한 번 교사의 길을 걸어 보자, 그때 유학을 가도 되지 뭐,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기는 이미 사라진 때였다.
막상 모교에 부임하자 모든 것이 힘들었다. 친정에서 시집살이 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들 앞에 끌려 온 것 같았고 동문 선배교사들은 무서운 손윗 동서나 억센 시누이 같았다. 교무실 밖을 겉돌다가 창고처럼 방치된 학교도서관 서고를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학교도서관을 운영하니까 정말 정신이 없었다. 먼지를 닦고 책을 털며 시작한 도서관 일은 이후 18년 동안 계속되었다. 한 푼의 수당이나 보수가 없는 자원봉사 형식이었다. 직접 도서반을 만들고 도서반원으로 학생들을 초대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훌륭한 동반자다. 학교도서관에 푹 빠져들며 학교를 떠나겠다는 생각, 이 땅을 등지겠다는 생각은 어느새 잊게 되었다. 학교도서관은 환상적인 공간이었고 학생들과 나는 성장하였다. 시인으로 정식 등단했지만 시는 몇 편 쓰지 않았고, 대신에 당장 학생들에게 필요한 ,, 같은 책들을 썼다. 지금까지 쓴 , , , , 등등의 저서들은 모두 학교도서관과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들이다.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을 하라고요?
어느날 전화가 걸려 왔다.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한 문민정부 시절이라 교육개혁위원회의 위상은 대단했다. 교육개혁위원회가 정책을 입안하면 교육부는 그대로 수행해야 했다. 고민한 끝에 수락하였다.
나는 전체 위원들 가운데 두 번째 막내였고, 교원은 그나마 달랑 4명에 불과했다. 한국교육을 움직여온, 또한 이후에 움직이는 중요한 분들을 이때 많이 만났다. 무수히 많은 회의에 참석하면서 교육에 대해 좀더 장기적이고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각 시·도 교육청을 평가하는 활동까지 맡으면서 교육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도 있었다. 나는 학교도서관의 멀티미디어화 정책을 입안했고 이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학교도서관에 3천억 원의 예산이 투자되는 근거가 되었다. 이제 학교도서관이 없는 학교들은 대한민국에 거의 없다.
2년간의 교육개혁위원 활동을 마쳤지만 그 후에도 여러가지 역할을 많이도 맡았다. 교육부 쪽으로는 교육정보화위원, 독서교육발전자문위원, 과외교습대책위원 등, 문화부 쪽으로는 독서진흥위원, 공유저작물활성화포럼위원 등, 서울시교육청으로는 독서교육활성화 위원 등등...헤아리기 쉽지 않다. 현재도 교육부 학교도서관진흥위원을 맡고 있으며 마포구청의 마포중앙도서관 건립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교육개혁위원 임기가 끝났지만 이후에도 교사로서 살아가면서 만나는 제자, 그리고 쉽게 변하지 못하는 학교 현장과 맞닥뜨리며 어떻게 해서든지 올곧고 가치 있는 변화를 시도하고자 노력해 왔다. 교육에서 미래란 곧 학생들에게 다가올 현재였기에 이러한 노력은 너무도 당연했다.
학교도서관을 교실 규모 8개 크기에 인터넷 PC 30여 대가 있는 학교도서관 멀티미디어 센터로 키우고 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정식 사서를 초빙하였다. 모교로 돌아와 꼬박 18년이 넘어 거둔 성과였다. 이어서 2010년도부터는 국가와 지자체, 시민단체와 동네 청년 등 학교밖의 다양한 전문가들을 학교로 초빙하여 학생들에게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봉사활동학습을 고안했다.
일명 ‘따봉(따뜻한 봉사활동)’이라 부른다. 이를 ‘숭문 따봉’에만 그치지 않고 어느 학교든지 ‘따봉’을 붙여서 쓸 수 있도록 모델화하고 관련 자료 일체 또한 아무 대가 없이 제공하고 있다. 유니세프 같은 세계적 구호기관도 처음부터 꾸준히 참여해 오고 있는데 이렇듯 모든 자료를 공유하겠다는 약속과 실천 덕분이다. 2015년 현재에는 31개 따봉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고, 이 가운데 11개는 학생 스스로 리더가 되어 활동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경문고와 풍문여고가 따봉 모델을 받아들여 각각 ‘경문 따봉’과 ‘풍문 따봉’을 펼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서울과 지방의 몇몇 학교가 받아들이려 꼼꼼하게 준비하고 있다.
교직은 안정된 직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안정은 과거와 미래를 제대로 이어달라고 보장하는 사회적 뒷받침이다. 그래서 교육은 전통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이고, 미래를 현재로 만들어야 하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중요한 가치들은 모두 존중해야 하기에 언제나 든든하게 과거를 이어야 하고, 쉽게 파악하기 힘든 잠재적 인재들을 빠짐없이 챙겨야 하기에 언제나 미래를 새롭게 헤아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전력투구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교사이어야 한다.
‘책따세’ 눈부신 성장 가장 보람
교사로서 지난날을 돌아볼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바로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이하, 책따세로 줄임)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교육개혁위원 임기가 끝난 1998년에 만든 ‘책따세’는 2007년에 청소년을 위한 비영리 독서문화 시민단체로서 확대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독서의 자율성과 다양성, 공익성을 가장 기본으로 추구하는 대표적인 청소년 독서문화 단체로 훌쩍 성장했다.
2013년에는 영국문화원에서 개최한 국제 세미나에서 대한민국의 청소년 독서교육을 ‘책따세’ 중심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책따세’ 활동은 다양하다. 청소년 대상 추천도서목록 작업과 발표, 책쓰기 교육과 저작권 기부운동, 독서교육 교사연수, 독서방송, 월례 기부강좌, 청소년봉사학교, 독서교육서 출판, 독서문화 관련행사 개최 등등. 나는 ‘책따세’ 대표로서 꾸준히 ‘책따세’의 최전선을 지켜 왔다. 이제는 ‘책따세’ 이사장으로서 법인 업무를 맡으면서도 특히 책쓰기 교육과 저작권 기부운동을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시작한 세계적 교육문화 운동으로 자리 잡게 하고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감사하게도 ‘책따세’는 2015년에 청소년을 위한 바람직한 활동을 했다고 인정받아 제11회 청소년성장대상(여성가족부)을 수상하였다. 상금 1천만 원은 오로지 청소년을 위한 독서문화 구축을 위하여 사용할 예정이다.
‘책따세’의 전통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퍼준다!”에 맞춰져 있다. 이사장인 나를 포함해서 이사진과 운영진 누구도 일절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않는다. 오직 실무 간사만이 유급 활동을 한다. ‘책따세’는 지금까지 자신의 시간을 쏟으며 청소년 푸른도서관 건립을 위하여 기금을 출연하면서 활동해 왔다는 점에서 언제나 스스로 자부한다.
요즘 새롭게 추진하는 중요 프로젝트도 소개하겠다. 책으로 떠나는 세계 여행 공모전이다. 이는 책을 읽으며 가상의 여행기를 쓰는 활동이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과 해냄출판사와 신촌 홍익문고 서점 등이 함께 힘을 모으며 진행하는 행사다.
이 공모전에는 푸짐한 상품들이 걸려 있는데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읽기 쓰기 문화를 시도라 할 만하다.
특히, 이 공모전에 참여하는 글들의 대부분을 모아서 공유저작물 형태의 전자책으로 묶고 선정된 참가자들은 전자책의 저자 대우를 받게 한다.
이는 이야기를 들은 수용자가 다시 누군가에게 전달하면서 창조자가 되는 구비문학의 본질과 맞닿으면서 디지털 차원에서 문학의 본질을 새롭게 새기고 지평을 넓히는 활동이다. 교사들은 푸른 영혼들과 함께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도 이러한 활동은 특별히 의미 깊다. 그저 책을 읽고 의미를 파악하려고 전전긍긍대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단지 책을 사는 소비자에서 벗어나 자신이 읽고 쓰는 모든 것들이 남을 위해 더하고 나누는 의미 있는 활동임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이 순간, 교육이 이루어진다. 바로 이 순간, 누구든지 교사가 된다.
진정한 교사란 나눠주며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렇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지만, 선생은 제자로 말한다. 제자들이 자랑스러운 일을 하면 교사로서 내 삶이 한없이 보람 가득하고, 반대로 부끄러운 일을 한다면 무한히 부끄러워진다. 물론 제자의 재물이 많고 적음이나 지위가 높고 낮다는 점이 교사의 자랑과 부끄러움을 판단하는 기준은 결코 아니다. 그저 자신이 배운 것을 아낌 없이 누군가에 나눠주는 제자라면 충분히 자랑스럽다.
최근에는 우리들의 제자들이 ‘책따세’ 모임에 속속 가세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신촌 전철역 근처의 공익 카페 ‘더나더나’에 모인다. 더함과 나눔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을 만든 이 카페에 가면 남을 돕는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가 깨닫게 하고, 다시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자 머리를 맞대는 청춘들이 있다.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제자가 며칠 전 오랜만에 연락해 왔다. 제자가 곧 나다. 그렇다. 나는 어린 시절의 오랜 꿈을 비로소 이루었다. 항공공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치는 제자도 기억난다.
그렇다. 나는 조국을 수호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진정한 과학자다. 피아노는 물론 모든 악기를 잘 다루는 제자도 있다. 그렇다. 이제 나는 언제나 즐거운 악기 연주자다.
제자들은 나의 분신인 듯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아간다. 그리고 어느새 벌써 수많은 분신이 되어 이 세상 곳곳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교사다. 앞으로 교단을 떠나도 나와 내 제자들은 이미 교사다.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서 남에게 나눠주는 사람, 우리가 바로 교사다. 그래야 이 세상을 비로소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
△ 허병두 숭문고 국어 교사(책따세 이사장)
서강대 국문학과와 같은 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7년 처음 교단에 섰고, 1989년 모교인 숭문고로 돌아왔다. ‘학생과 함께하는 읽기 쓰기 문화’를 지향하며 지금까지 학교도서관 살리기 운동과 NIE(신문활용교육) 전개, 책쓰기교육과 저작권기부운동 창안 등으로 교육과 현실, 삶을 아울러 왔다. 1998년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를 만들고 비영리 청소년 독서문화 시민단체로 확장하여 현재까지 이사장을 맡고 있다.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났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게 돈이다.
은행권에서는 금융자산 10억원, 평균 재산 50억원 정도가 있으면 VVIP 자산가로 본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18만2000명이 여기에 속한다. 대체로 서울 강남, 서초, 송파, 양천과 경기 분당, 동탄, 일산에 가장 많은 부자가 사는 것으로 집계됐다.
자산가들은 자신의 수입과 지출을 정확히 파악하고 불필요한 지출은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문 잡지를 통해 세계 경제 흐름을 파악하고, 의식주 행락에 대한 관심도 놓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자산가는 손주한테 우아하게 지갑을 여는 것보다 경제교육에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손주에게 무조건 좋은 선물, 지갑을 크게 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며 “올바른 경제관념은 손주아이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는 힘을 길러주므로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돈을 벌어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산가들은 분명 일반인들과 다른 공통적 습관이 있었다. 청국장 한 그릇을 먹기 위해 먼 곳을 가는가 하면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둘이서 나눠 마시는 등 아낄 때는 최대한 아끼고 써야 할 곳에는 과감히 용단을 내린다.
인생의 오후를 여유롭게 유유자적 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 돈을 사회적으로 의미있게 사용하는 태도가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신동일 KB국민은행 도곡 PB센터 부센터장과 4명의 자산가에게 질문, 용돈관리의 결정적 오류에 관한 실체적 담론을 짚어봤다.
신동일 KB국민은행 도곡PB센터 부센터장은 20년 넘게 KB국민은행에서 퇴직연금과 프라이빗뱅킹(PB)을 담당하면서 KB국민은행 최초 국은인상 2회 수상, 카드 2만500장 신규 유치, 보험 700억원 이상 판매라는 누구도 따라잡기 힘든 화려한 이력을 쌓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대한민국 1퍼센트 부자들의 삶에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 자리하면서 돈을 다루는 그들의 마음과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그 경험은 베스트셀러 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로 만들어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부자를 가장 잘 아는 그가 말하는 ‘부자의 법칙’을 들어보자.
신동일 KB국민은행 도곡 PB센터 부센터장은 인터넷에 ‘신동일 꿈발전소’라는 자신의 사이트를 개설하여 스스로를 꿈발전소 소장으로 부르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경제독립을 이뤄야 하는 법이다. 그가 운영하는 꿈발전소는 맨손으로 자수성가한 존경받는 1퍼센트 부자와 행복한 부자들을 명예이사로 위촉하여, 그들에게 직접 배우며 부자의 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50만원을 쓰느냐 50만원을 채워 넣느냐의 차이
“한 회장님이 해주신 얘기가 기억납니다. 그분은 과거에 바이어와 약속을 잡았는데 차가 밀려서 약속 시간 단 5분이 늦어지는 바람에 1년 매출의 절반을 버려야 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약속 시간 5분 전이나 10분 전으로 설정하지 않고, 반드시 15분 전으로 해서 여유 있게 사람을 만나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고 하죠.”
부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것으로, 그는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습관은 돈을 대하는 마음에서부터 다르게 접근함으로써 갖게 된다.
“한 공무원이 휴가를 내고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월 소득이 적지 않았고 정년이 7년 정도 남아 있었는데 내 집 장만을 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금융자산은 2000만원에 불과했죠. 그동안 푼돈을 소홀히 다룬 게 원인이었던 겁니다. 백 원 단위의 거스름돈을 한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부자들은 돈을 1원 단위로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푼돈 관리를 잘 못하는 걸 보면, 그런 작은 부분에서부터 부자와 보통 사람은 차이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푼돈 관리뿐만이 아니다. 돈을 만드는 사람과 못 만드는 사람은 큰 돈을 보는 관점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예를 들어 정기예금을 만들기 위한 950만원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거기서 50만원은 쓰고 900만원을 예금으로 운용하기 마련이란다. 그러나 부자들은 어디서든 50만원을 가져와서 1000만원짜리 정기예금을 만든다고 한다. 간단한 차이처럼 보여도 습관으로 몸에 배지 않으면 실행하기 힘든 일이다.
성공 습관을 장착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
신 부센터장은 그래서 ‘마이 라이프 북’을 만들었다. 자신의 꿈과 목표를 적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체계적인 도움을 주게끔 도와주는 다이어리다. 다이어리에는 로드맵을 3년, 5년 단위로 작성하는 것과 수입 및 지출 파악, 다양한 종잣돈 마련 계획 설정 등 돈을 모으고 활용하는 데 있어 세부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물론 1퍼센트 부자들을 만나온 신 부센터장의 노하우가 그 안에 녹아들어있다. 그가 다이어리에 적용한 부자들의 성공 노하우는 크게 다섯 단계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수입-지출?1원’ 이상이 되는 것이다. 다양한 지출이 넘쳐나는 현대에 매월 마이너스가 아닌 생활을 하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그는 수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거나 2가지 중 한 가지라도 잘 해야 이룰 수 있다고 단언하며, 현실적으로 당장 소득을 늘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지출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두 번째 단계는 종잣돈 마련이다. 1원이라도 남으면 그 돈을 쓰지 않는 한 반드시 종잣돈이 된다. 그리고 1원도 버리지 않고 살피는 습관이야말로 성공적인 미래를 위한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세 번째 단계는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아바타’ 창출이다. 여기서 ‘아바타’란 나를 대신해서 수입을 올려 줄 모든 수입원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월세가 나오는 수익형 부동산, 증권 투자를 통한 금융소득을 아바타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단계는 ‘아바타’ 수입이 현재 수입을 초과하는 단계인데, 신 부센터장은 이를 진정한 경제독립이라고 부른다. 확실한 ‘아바타’가 생겨서 그것만으로도 생활을 영위하는 게 가능할 때, 그때야말로 현직에서 은퇴해도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성공 습관을 장착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습관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좋은 습관을 갖기 위한 첫걸음은 뚜렷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죠. 특히 뚜렷한 목표를 세우는 일은 스마트폰보다는 종이에 적는 걸 추천합니다. 스마트폰에도 일정 관리 및 메모 기능이 있긴 하지만 경제독립의 꿈을 이룬 부자들은 여전히 종이에 적기를 좋아해요. 손을 움직일 때 가장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부자는 돈을 대하는 방법이 다르다
신 부센터장의 말을 들을수록 부자들은 일반인과는 다른 관점에서 돈에 접근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른 관점이란 돈에 대한 마음가짐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부자들이 작은 습관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런 작은 습관마저도 무너지면 그보다 더 큰 것들도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낭비가 없으며 최대한 효율적으로 돈을 불릴 수 있는 방법들을 자연스레 모색하게 된다.
“샐러리맨은 수입이 월급 통장 하나지만 부자들은 계속해서 다른 수입원을 모색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슈퍼리치들은 투자를 할 때면 3-3-4의 균형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슈퍼리치들의 자산을 보면 부동산이 70퍼센트에 육박합니다. 부동산은 사실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죠. 그래서 나머지 30퍼센트를 주로 운용하는데, 그 30퍼센트 중 절세 상품에 30퍼센트, 정기예금 같은 상품에 30퍼센트, 그리고 투자 자산에 40퍼센트를 배분합니다. 안전 자산과 투자 자산을 6 대 4로 놓는 거죠.”
‘돈에는 흐름이 있는데 그 길을 막지 말라.’ 신 부센터장이 좋아하는 말이다. 단순히 정기예금으로 쓰일 수 있는 돈도 조금만 발품을 팔면 채권이라든지 펀드 등 그보다 더 효율적으로 돈을 불릴 수 있는 길로 갈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관련 정보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계속 확인하며 기회를 보는 습관을 지녀야 할 것이다.
부자들에게는 ‘통큰’ 확신이 있다
“과거에 한 1000억 원대 슈퍼리치인 회장님은 선풍기를 하나 틀어놓고 생활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건 습관이라기보다는 신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아낄 때는 아껴도 쓸 때는 또 통 크게 쓰기도 해요. 사업 기회가 오면 과감한 투자를 선택하고 아무도 모르게 기부하는 것 또한 슈퍼리치들의 특징이죠.”
크게 투자해야 할 때가 오면 크게 투자하는 것, 기부해야 할 곳에 기부하는 것은 자신이 투자할 대상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확신은 오랜 시간 동안의 공부와 경험을 통해 모종의 기술처럼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신 부센터장은 초고액 슈퍼리치로 갈수록 투자와 관련해 두텁고 핵심적인 전문가 집단을 네트워크로 두고 있다고 말한다. 보험 하나를 봐도 전문가 2~3명의 의견이 일치했을 때에야 가입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뭔가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고 계획을 수립하는 것 자체가 50퍼센트는 이룬 것입니다.”
이미 완성된 것만 보면 저걸 어떻게 이뤘지 싶어 먹먹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힘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보다 나은 2016년을 위한 다짐, 아직 늦지 않았다.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영화 을 보고 나오면서 문득 ‘이 영화의 감독은 분명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주인공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 분)는 혼자 살면서도 자신의 집과 주변을 매우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특히 회전식 넥타이 걸이와 잘 다려진 셔츠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는 걸 보는 순간 ‘아~ 이건 여자의 시각이 만들어낸 장면’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낸시 마이어스라는 꽤 나이(1949년생)가 있는 여자 감독이었다. 벤은 ‘바람직한 은퇴남’, 그것도 여자의 시각에서 본 바람직한 은퇴남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여자건 남자건 스스로를 잘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 어떻게 가꾸고 다듬을 것인가? 마음은 물론 외모에도 적잖이 신경을 써야 한다. 자칫 내 나이에 무슨 멋인가 할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Clean up’과 ‘Dress up’, 즉 깨끗하게 잘 차려입고 멋을 내야 하는 것이다. 옷이 날개라고 하지 않는가? 특히 손자·손녀들의 경우 언제나 뛰어가서 안기고 싶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원할 것이다. 냄새가 나거나 지저분하면 뜨악해하면서 뒤로 물러서는 게 인지상정이다. 우중충한 집에서 우중충한 분위기로 지내고 있으면 자식들도 손주들도 선뜻 오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물론 논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깨끗하게 잘 차려입으라는 말은 아니다. 일하는 모습과 옷차림은 그 자체로도 보기 좋은 어른의 표본이니까. 수년 전 인터넷과 SNS상에 존경받는 노후를 위한 필수요건이라며 ‘7 Up’이 올라왔다. ‘Clean up, Dress up, Shut up, Show up, Cheer up, Pay up, Give up’이었다. 여기에다 필자는 ‘Open up, Listen up, Health up’의 ‘3 Up’을 덧붙여 ‘10 Up’을 만들어 은퇴강의 때마다 잘 써먹고 있다. 7가지도 많은 것 같은데 10가지면 너무 긴 것 아닌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식들은 물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으려면 이 정도의 수고는 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순서를 잘 따라가면 외우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필자가 내놓는 ‘10 Up’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Open up, Listen up, Shut up, Give up, Cheer up, Clean up, Dress up, Show up, Pay up, Health up.’ 모두 쉬운 영어인 데다 우리말로 풀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마음의 문을 열고 남의 이야기는 듣고 내 입은 닫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웃는 얼굴로 깨끗하게 차려입고 다니자. 때로는 돈도 낼 줄 알고 건강도 챙기자.’
수첩 한곳이나 휴대폰에다 ‘10 Up’을 적어놓고 가끔씩 새겨보자. 아침에 일어날 때, 누구와 만날 때는 물론 뭔가 시무룩하고 만사가 귀찮을 때도 한 번씩 들여다보자. 마치 자신에게 주문(呪文)을 거는 것처럼 연습을 하는 것이다. 거울을 보면서 ‘Cheer up! Show up!’만 해도 오른손이 번쩍 올라가면서 자신을 스스로 격려해 밖으로 나가게 만들 수 있다. 그러려면 깨끗이 차려입어야 하고(Clean up, Dress up) 지갑도 챙겨야 할 것(Pay up)이고 한 바퀴 돌고 오면 마음과 건강(Health up)도 저절로 좋아질 것이다.
오랜만에 손자·손녀들이 온다고 하면 ‘10 Up’ 중 무엇이 필요할까? 깨끗하게 차려입는 것은 기본이다. 지난번 만났을 때 손주들에게 잔소리만 늘어놓은 것은 아닐까? 그래, 이번에는 마음의 문과 귀를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입은 닫기로 하자(Open up, Listen up, Shut up). 동시에 웃는 얼굴(Cheer up)로 아이들을 대하면서 주머니의 문도 열어 맛있는 것도 사주고 슬쩍 용돈도 주면(Open up & Pay up) 더없이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Open up’은 두 가지 뜻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마음의 문과 귀를 넘어 돈주머니를 열라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과 주머니의 문을 여는 어른을 싫어할 자식과 손주, 친구는 없을 것이다. 열어젖히면 닫고 있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상대방이 먼저 문을 열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문을 열면 행복이 더 크게 다가온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좀 손해 보는 듯 사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일일이 따지기보다는 웬만한 것은 이해하고 포기하고 넘어가야 한다. 부부 사이에도 부모·자식 사이에도 따지기 시작하면 피곤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Open up과 Give up은 서로 통하는 사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Give up’ 역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포기할 건 포기하는 Give up일 수도 있고 이웃에게 베풀고 살라는 뜻의 Give up일 수도 있다. 우연이겠지만 Give의 발음 ‘기브’는 한자어 ‘기부(寄附)’와 엇비슷하다. Give up을 ‘기부(寄附) 업’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나보다 못한 가족이나 이웃에게 베푸는 재미에 맛들이면 여느 재미에 못지않다고 한다. 돈이 아니더라도 체력과 재능 등으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기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Health up’은 10 Up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이다. 내가 건강해야 기부도 할 수 있고 마음의 문을 열 수도 있고 일과 취미생활도 즐길 수 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이 나이 들수록 더 절실해진다고 한다. 하는 일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가면 지루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 내 건강을 내가 지키기 위해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문을 열고 박차고 나가자. 세상은 밖으로 나오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영화 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벤은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의 부사장까지 지낸 성공한 월급쟁이로 퇴직한 후 나름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자녀들도 잘 자라서 독립했고 가끔 손자들을 보러 다니면서 요가와 화초재배를 취미로 즐기는 평범한 은퇴남이다. 하지만 3년 전 아내와 사별해서인지 잠들 때마다 뭔가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들자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면서 나선 것이 시니어 인턴이었다. 그렇다고 누구나 벤처럼 너그럽고 여유로운 데다 지혜와 위트도 겸비하고 잘생긴 것은 아니다. 더욱이 누구나 벤처럼 새로운 도전에 멋지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전 그 자체가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Give up이라고 해서 이런 도전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나라 관객이 400만 명에 달한 것도 벤의 그 멋진 도전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10 Up도 많다지만 마지막으로 하나 더 Up을 더한다면 그것은 ‘Challenge Up’이다. 끊임없이 죽을 때까지 도전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일 테니까.
“한때는 꿈이 있었지/가슴에 묻어 왔던 꿈이/사랑은 영원하다고/철없이 믿어 왔던 날들/하지만 그 꿈은 잠시/한순간 사라져 버렸네” ( 삽입곡 ‘I dreamed a dream’)
아내 윤이남(尹二男·70)씨가 첫 소절을 부르자 남편 권영국(權寧國·75)씨가 부드러운 화음을 넣는다. 그들이 부른 노래처럼 부부에게도 한때는 꿈이 있었다. 가수를 꿈꾸었던 소년과 간호사를 꿈꾸었던 소녀, 잠시 사라진 듯했던 그들의 꿈은 ‘뮤지컬 배우’라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가수를 꿈꾸었던 권씨와는 다르게 음악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윤씨. 그녀가 음악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은 남편 덕분이었다. 신혼 시절, 어느 날 가야금을 사들고 온 남편은 “당신 가야금 연주하면 정말 아름답겠다. 어머니 환갑 때 연주하면 좋겠다”고 엉뚱한 제안을 했다. 가야금은커녕 악기는 배워볼 생각도 없던 아내는 그 말을 웃어넘겼고, 가야금은 집 한편에 장식품처럼 놓여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윤씨는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년간 연습한 끝에 시어머니의 환갑잔치 날 ‘아리랑’과 ‘도라지’를 연주해냈다.
남편이 그랬듯 아내는 “당신, 내 가야금 연주에 판소리를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함께 음악의 즐거움을 공유하기 시작해 색소폰, 플루트, 하모니카 등 악기뿐만 아니라 스포츠댄스, 합창, 사물놀이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해오던 그들은 2007년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당시 예순을 넘긴 부부였지만 ‘아무리 고되어도 인생의 두 번째 문은 열린다’는 의지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2008년, 노년의 사랑을 그린 뮤지컬 의 오디션에 부부가 동시에 합격하게 된다. 20명 남짓 뽑는 오디션에 14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한 덕에 그들은 꿈의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됐다.
그들의 꿈을 펼친 뮤지컬 (2008)의 공연이 열렸던 세종문화회관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소다. 1967년 12월, 당시 시민회관이었던 그곳에서 결혼식을 했고, 결혼 40주년이 되던 해에 그곳에서 뮤지컬 배우로 서게 된 것이다. 꿈을 이룬 이후에도 그들의 일상은 분주하다. 연기활동 외에도 함께 구연동화 자격증을 따서 봉사활동도 다니고, 노인 상담, 인문학 강의, 악기 연주 재능기부도 하는 등 다정히 손을 잡고 행복한 제2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늘 대화가 끊이지 않는 부부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지난 추억들을 되새기고 노래를 부르느라 새벽을 훌쩍 넘길 때가 많다고 한다. 잦은 대화는 행복했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한 그들만의 노력이다. 그런 추억을 모아 2014년에는 이라는 부부 자서전도 만들었다. 이후 각자의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는 그들은 늘 그렇듯 함께 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과 꿈을 담아가고 있다.
Q & A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
(남편) 학창시절부터 노래의 즐거움을 알았고, 무대를 동경해왔죠. 음악은 취미로만 여겼을 뿐, 직업이 되기는 어려웠어요. 직장생활하고 연년생인 삼남매를 정신없이 키우느라 ‘꿈’은 정말 꿈도 못 꾸고 살았죠.
꿈에 다시 도전하게 된 계기?
(남편) 50세가 되던 해, 무엇이든 아내와 같이하자고 마음먹었죠. 그러던 어느 날 ‘충무아트홀 연극 교실’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죠. 아직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더라고요. 그 길로 아내와 연극 교실에 등록했고, 그때부터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한 기초를 다지고, 꿈의 무대에 도전하게 됐어요.
어릴 적 꿈 vs 중년의 꿈?
(아내) 어릴 땐 나이팅게일처럼 간호사가 꿈이었어요. 늘 ‘멘소래담’ 같은 연고를 들고 다니며 다친 아이들에게 발라주곤 했죠. 결혼을 하고 꿈이라는 것은 딱히 없이 지냈는데, 남편과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잠재된 재능을 발견했어요. 그러면서 꿈과 목표가 생겼죠. 중년 이후의 꿈은 남편이 찾아준 것과 마찬가지예요.
꿈을 이루기까지 어려웠던 점?
(아내) 뮤지컬 배우는 노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노래, 연기, 춤, 그리고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까지 신경 써야 하니까요. 대사 암기가 난관 중 하나였어요. ‘연습만이 최선이다’라는 생각으로 언제 어디서든 남편과 대사를 맞추고 안무를 익혔죠.
당신의 꿈은 무슨 색?
(남편) 어떤 꿈이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죠. 젊어서 꾸던 진취적인 꿈, 중년에 꾸던 삶의 돌파구 같던 꿈 등. 지금 떠올려보면, 행복했던 꿈도 있고 서글픈 꿈도 있고 그래요. 지금은 무엇보다 건강한 삶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빛을 띤 색이라 하고 싶어요.
(아내) 저는 아직도 무지갯빛 꿈을 꿔요. 모든 일이 재밌고, 신나고, 행복하고, 그만큼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색깔의 삶을 살고 있죠.
꿈을 이루고 난 뒤 좋은 점?
(남편) 커튼콜. 그 순간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무대 위에서 관객의 환호와 박수를 받는 그 광경은 잊지 못해요.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꿈을 이뤘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뮤지컬 배우 부부도 많이 없지만, 우리처럼 노년에 뮤지컬 배우가 된 부부는 거의 없잖아요.
(아내)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노년의 삶이 준 선물이죠. 그동안 아이들 키우고 어르신 모시느라 제 삶이 없었잖아요.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니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제 삶을 사는 시간도 많아졌죠.
나의 작은 관심과 노력으로 아픈 아이들의소원이 이뤄질 수 있다면 멋지지 않을까.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기부를 하면 그것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바로 ‘기부의 마법’이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이처럼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찾아 그에 맞는 재능기부자를 연결하는 곳이다. 재단의 도움을 받아 소원을 이룬 아이들의 따뜻한 사연을 모아 봤다.
도움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www.wish.or.kr
◇돌고래를 좋아하는 혜서의 소원은…
“저는 커서 돌고래 사육사가 될 거예요.” 유달리 동물을 좋아하는 여덟살 강혜서양은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껏 힘을 준 목소리로 대답한다. 또래보다 어휘력이 풍부하고 자기표현이 확실한 아이다.
혜서의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 것은 유치원 입학 후부터였다. 병원에서는 뇌종양의 일종인 ‘수모세포종’이라고 했다. 100만 명 중에 5명 정도에게 생기는 병인데 원인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작년에만 서른 한 번의 방사선 치료를 했고 올해부터는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동물을 직접 보러 가보고 싶지만 밖에 나갈 수 없었다.
TV에서 동물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혜서는 눈을 떼지 못했다. 혜서는 특히 돌고래를 좋아했다. 돌고래를 보면 기분이 밝아졌다. 조련사의 말을 알아듣고 재주를 부리는 모습이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다. ‘돌고래를 돌보는 사람은 매일 돌고래와 같이 있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혜서에게는 돌고래 사육사가 되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다.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이뤄 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혜서의 소원이 전해졌다. 소원을 이뤄 주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비영리단체와 기부 참여자들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인터넷기업 ‘11번가’가 후원을 약속했고 약 1만1000명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주도에 위치한 한 아쿠아리움에서 혜서를 돕겠다고 나섰다. 소속 사육사가 재능기부에 나섰다.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실내는 웅성거렸다. 다소 낯가림을 하는 혜서는 굳어 있었다. 하지만 돌고래 ‘세나’를 만나자 이내 긴장감이 사라졌다. “돌고래도 충치가 생기나요?”, “돌고래도 감기가 걸려요?” 아프지 않길 바라는 혜서의 아이다운 질문이었다.
혜서는 직접 돌고래를 지휘했다. 많은 이들의 바람이 돌고래 세나에게도 전해진 것일까. 세나를 매일 돌보던 사육사는 평소보다 더 활발한 세나의 모습이 놀랍다고 했다. 그토록 좋아했던 돌고래를 만난 혜서가 까르르 웃었다. 혜서의 웃음소리가 공연장 곳곳을 채웠다. 많은 이들의 따뜻한 ‘관심’이 모여 동물을 좋아하던 한 아이의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퍼레이드
지난 9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진행된 퍼레이드는 아주 특별했다. “예쁜 공주가 돼서 멋진 왕자님과 퍼레이드를 하고 싶다”던 여섯살 김연우양의 소원이 이뤄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연우가 세살이었던 2012년, 연우의 아랫배에 뭔가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병원에서 ‘난소종양’ 진단을 받았다. 활발하지만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6번의 항암치료를 거치며 참 많이도 울었다. 만화 속에 나오는 공주처럼 항상 예쁘고, 항상 행복하게 웃고 싶었다.
삼성전자 부품사업부(DS)가 후원하는 대학 봉사팀 ‘위시 엔젤(Wish Angel)’이 소원을 이뤄 주기 위해 연우를 만났다. 연우는 금발에 분홍 드레스를 입고 왕자님과 퍼레이드를 하고 싶어 했다.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나눠 주는 착한 공주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삼성전자 임직원과 에버랜드가 연우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나섰다. 연우의 소원이 이뤄지는 날의 기억을 사진으로 남겨 주기 위해 황영철 사진작가가 재능기부에 나서기로 했다.
“공주님, 이제 백성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왕자님과 함께 퍼레이드에 오르실 시간입니다.” 원하던 대로 공주가 된 연우가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달리던 차가 잠시 멈추자 연우는 차에서 내려 가방 속에 담아 온 과자와 사탕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연우가 자라는 동안 큰 용기와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모아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낸 어머니 박윤서(가명)씨가 딸의 손을 꼭 잡았다. 박씨는 “이 정도까지 우리 아이의 소원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공주가 되고 싶다던 소원을 이뤘으니 이제 앞으로 연우가 커서 무엇을 하든지 다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드론으로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요
김규현(15)군은 또래의 평범한 아이들처럼 활발한 소년이었다. 2013년 1월, 스키캠프에서 다리가 부러져 병원을 다닐 때까지도 뼈가 붙기만 하면 다시 두 발로 뛸 거라고 생각했다.
치료 3개월째가 되던 때였다. 갑자기 고열이 생기고 염증수치가 높아졌다. 황급히 찾아간 큰 병원에서 뼈에 악성 종양(골육종)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뒤로 세 번의 큰 수술과 여섯 번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전처럼 걷거나 뛸 수 없었지만 규현이는 장애진단을 원치 않았다.
규현이는 차분한 성격에 말수가 적은 성격이지만 ‘레고’ 이야기가 나오면 눈망울을 빛냈다. 자유롭게 날고 싶은 규현이의 방에는 레고로 만든 비행기가 많았다. 규현이는 ‘드론(무인비행기)을 갖고 싶다고 했다. “다리를 다쳐서 산에도 못 올라가고 움직이는 게 불편하니까 저 대신 드론을 높이 띄워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보고 싶어요.”
9월 어느 날, 한 식당에서 규현이를 위한 깜짝 이벤트가 열렸다.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간 규현이의 눈에 무언가 보였다.
“저거 새야?” 맑은 하늘에 떠 있는 낯선 물체는 규현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준비한 드론이었다. 규현이의 사연을 들은 한 드론교육 전문가가 재능기부로 조종법을 알려 주기 위해 경기도에서 청주까지 달려왔다. 드론 조종기를 손에 쥔 규현이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소원이요? 이제 이뤘는데요.” 규현이는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드론을 조종하는 동안 자신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기부자가 먼저 알아야 할 사실 10가지
기부 문화는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다. 빌 게이츠는 사회로부터 얻은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기부운동에 참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기부자들은 의미있는 일, 관계하는 일, 확실한 목적에 쓰여지는 일에 기부를 원한다. 기부자들의 동기부터 따져보자.
1. 기부의 종류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기부에는 먼저 기부자가 특별한 용도를 지정하지 않는 ‘순수 기부’가 있습니다. 반면 기부자가 특정한 사업을 후원할 목적으로 지정해서 기부하는 ‘조건부 기부’도 있고요. 또 개발사업 등을 진행할 때 시행자들이 국가나 지자체에 제공하는 ‘채납형 기부’,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 예술작품을 제공하는 ‘기증형 기부’도 있습니다.
2. 우리나라 기부 현황이 궁금해요
아름다운재단 ‘기빙코리아’의 기부금 집계를 보면 2011년 한국인의 연평균 기부금액은 21만9000원으로 직전 조사년도인 2009년의 18만2000원에 비해 20% 이상 늘었습니다. 기업의 경우 상장기업(1700개사)의 한 해 평균 기부금은 8억3700만원, 비상장기업(1만5651개사)의 평균 기부금은 4500만원 수준입니다.
3. 개인들은 어떤 동기에서 기부를 하나요
아름다운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기부 동기로 ‘동정심’이 62.1%로 가장 높게 나타나 ‘불쌍하다’는 감정이 여전히 기부 동기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감’의 비중이 2009년 54.8%에서 59.4%로 상승하여 기부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4. 우리나라에서 기부액이 많은 기업은 어디인가요
기업의 기부금(2012년 재무제표 기준) 지출 1위는 삼성전자입니다. 삼성전자는 2353억49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 2위는 현대중공업(1329억2700만원), 3위는 삼성중공업(1115억2430만원) 등입니다. 이밖에 케이티, SK텔레콤, 포스코, 현대자동차, 삼성디스플레이, CJ제일제당, 한국전력공사 순으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5. 정부에도 기부할 수 있나요
우리 법률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모금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개인과 기업에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어 이들 기관이 모금활동을 한다면 암묵적인 강요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기부금에 대한 세제혜택은 어느 정도입니까
먼저 기부하고자 하는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기부금대상 민간단체와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된 곳에 개인이 기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3000만원 이하인 경우 소득금액의 30% 이내에서 15%의 세액공제, 3000만원이 넘는 기부금에 대해서는 30%의 세액공제를 합니다. 법정기부금 단체의 경우 기부자의 소득금액 100% 한도에서 15%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7. 기부금 영수증만 있으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나요
영수증을 발급한 기관이 ‘지정기부단체’나 ‘기부금대상민간단체’로 등록돼 있어야 합니다. 이 같은 단체를 세제적격단체라고 부릅니다. 당국에 기부금품 모집등록을 한 단체라고 해도 세제적격단체 선정을 받으려면 별개의 자격과 등록이 필요합니다. 모집단체가 세제적격단체가 아니라면 기부금과 후원금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이 없습니다.
8. 현물기부의 경우 기부금액을 어떻게 산정하나요
기부금 단체에서도 현물의 기부금품 가액의 기준을 얼마로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현물의 기부금은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는 정당한 매매가격’으로 계산합니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 당시의 진도군과 안산시, 태안기름유출사고 등에서의 태안군처럼 법률상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은 그 곳에서의 자원봉사도 기부금으로 산정될 수 있습니다.
9. 기부금을 받은 단체가 돈을 손에 쥐고 있지는 않나요
기부금은 2년 내에 반드시 사용하도록 법률에 명시돼 있습니다. 만약 정해진 기한 내에 기부금을 사용하지 않으면 모금단체는 기부금을 기부자에게 반환해야 합니다. 등록관청에서도 기부금품을 어떻게 모금하는지, 어디에 사용하는지를 검사할 수 있습니다.
10. 기부금을 받은 단체의 활동을 상세하게 확인하고 싶어요
원칙적으로 기부금을 받은 모든 단체는 기부자에게 기부한 내용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보고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기부자를 일일이 접촉할 수 없어 대부분 ‘연차보고서’를 공개·제공합니다. 또한 모금기관은 모금액의 사용결과 ‘나눔포털’과 단체의 홈페이지 등을 통해 기부금 모집결과 및 사용결과를 게시 공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자료제공 서울시 기부 길라잡이
우리말 가운데 ‘이웃사촌’은 잘 보존된 전통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전해줄 살아 있는 미풍양속, 즉 미덕(美德)이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이상, 사회 속에서 그 가치를 발휘하며, 특히 더불어 살아야 하는데 이는 기쁨과 슬픔도 함께한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이웃을 돕는 행위는 크게 모금과 기부, 그리고 봉사로 나눌 수 있겠는데 최근에는 재능 기부의 형태로 크고 작은봉사 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금전적인 제공의 모금과 다르게 기부의 범위가 단순한 물품의 제공을 넘어서 점차 확산되고 있다.
모금은 재해로 인한 생명과 재산 피해를 입은 지역과 재해민에게 전달되는 의연금과 현지에서 지원 활동을 벌이는 단체들에 제공되는 활동지원금으로 분류되는데, 후자는 대개 ‘기금’이라고도 한다.
2011년, 그해 6월 일본 적십자사는 일본 코카콜라 주식회사와 손을 잡고 모금 기능이 딸린 자동판매기를 실현시켰다. 일본 적십자사는 그동안 자동판매기의 판매액 일부가 적십자사로 기부되는 ‘지원형자동판매기’를 설치하여 운영해 왔는데, 거기에 판매기 본체에 10엔과 100엔 전용의 모금 스위치가 설치되어 ‘이용자가 직접 모금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자동판매기를 추가한 것이다.
이런 시도는 2011년 9월에 활동을 시작한 특정 비영리활동법인 기부형자동판매기보급협회(kjf.or.jp)를 중심으로 현재 일반재단법인 일본 국제기아 대책기구, 특정비영리 활동법인 아시아 식림 우호협회와 국경 없는 의사단, 일본 국제자원봉사센터, 인정 NPO 법인 굿네이버스재팬과 난민지원협회 등 수많은 단체가 이용 중이다.
또한 아이치(愛知) 현 등 일본 전국의 지역자치단체에서 광역별로 지역 공동기금 조성에 기부형 자동판매기를 이용하고 있다.
온라인 기부 사이트
기부 행위에 따르는 번거로움과 기부의 투명성을 해결하기 위한 온라인 기부 사이트 기브원(www.giveone.net)이 운영 중이다. 기부 라이프의 실현을 위해 만들어진 이 사이트는 NPO프로젝트 단위로 기부할 수 있는데, 각 프로젝트의 내용 검색은 물론 각종 리포트를 통한 비교 검토도 가능하다.
사용자는 자신의 관심에 일치하는 기부를 골라 은행이나 우체국에 가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신용카드 기부를 할 수 있는 일본 최초의 온라인 모금 사이트이다. 또한 단체 지정을 하지 않더라도 같은 테마로 활동 중인 여러 단체에 기부를 균등하게 배분하는 테마 기부도 가능하다.
기부를 마친 사용자는 활동 리포트를 통해 자신이 기부한 프로젝트의 ‘자금’을 수시로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현재 환경, 마치즈쿠리(거리 만들기), 긴급재해, 문화 예술 스포츠, 국제협력, 고용 취로 지원, 인권평화, 어린이 청소년, 여성, 장애우 등 10개 분야에 235개 프로젝트가 운영 중이다.
불용품이 소중한 지원품으로
국제사회지원 추진회가 운영하는 월드 기프트(world--gift.com) 사이트를 살펴보면 일본 전국의 사용하지 않는 물품과 기증품을 받아 개발도상국에서 활동 중인 여러 NGO와 기금에 기부하고 모금을 지원하는 활동으로 쓰이고 있다.
지원물자는 헌옷, 인형, 잡화, 식기, 장난감 등 다양하며, 재사용 및 재활용으로 발생하는 이익금도 국경 없는 의사단, 세계자연보호기금, 유엔 식량지원기관인 WFP 등에 기부금의 형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유치원과 보육원에는 문방구 등을 기부하고 있다.
한 이용자는 “인형과 의복, 그리고 문방구를 포장했는데, 모두 오래되고 그중에는 더럽혀진 물건도 있어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괜찮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활동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다시 기회가 있다면 또 이용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철도회사의 자연사랑 실천
일본의 철도회사 오다큐( 小田急) 전철은 올해 5월 후지산이 보이는 도쿄 근교의 온천지역으로 유명한 하코네초( 箱根町) 마을사무소를 찾아 하코네초 자원보전기금 142만3896엔을 기부했다. 이는 오다큐 전철이 하코네초의 천연수를 사용해 2009년 4월 선보인 미네랄워터 ‘하코네의 숲에서’와 2012년 12월부터 발매된 ‘하코네 숲 녹차’가 판매될 때 한 병당 1엔을 기금으로 모은 돈이다. 2009년 4월부터 기부 총액은 1890만 엔에 달한다. 1년에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기부가 이뤄진다. 이들 두 음료수는 오다큐 전철이 달리는 노선의 각 역 매점과 자동판매기, 지역 슈퍼마켓과 편의점, 오다큐 그룹의 각 점포와 하코네초 사무소 등 관련 시설과 식당 내 자동판매기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는 지역자치단체와 철도회사의 상호 시너지 효과를 높인 좋은 예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지역의 특산물과 관광명소를 살려 그 혜택과 이익금을 지역에 환원하는 예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지역 홍보 마스코트를 이용한 각종 상품에서도 볼 수 있다.
21세기형 고향 사랑의 실천
일본은 2008년부터 ‘후루사토(고향) 납세’ 제도를 실시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후루사토 납세는 본인이 태어난 고향이 아니더라도 특정 지방자치단체에 개인적으로 내는 기부금을 뜻하는데, 구체적으로는 개인이 2000엔 이상의 기부금을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할 경우 본인이 현재 거주하는 지역에서의 세금이 환급 공제된다.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된 현재 구조로는 지방자치단체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루사토 납세’는 거주지에 내던 세금의 일부를 본인이 원하는 임의의 지방자치단체로 분산해 대도시 중심의 세금 집중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효과를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후루사토 납세를 통해 기부하는 이용자들에게는 기부하는 지역의 특산품을 제공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다양한 수산물과 농산물, 상품 등의 선물에서 지역온천의 숙박권, 그리고 인기 관광명소와 다양한 시설 이용권을 보내준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한 지방자치단체를 응원하면서 기부금의 사용 용도를 정확히 알고 납부할 수 있는 장점에 선물과 소득세 혹은 주민세의 공제 혜택까지 받을 수 있어 해마다 이용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도입 첫해인 2008년 기부자는 총 3만 명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2014년에는 총 15만 명이 참가했다.
사이타마(埼玉) 현에 거주하는 요시다 씨(32세)의 경우 맞벌이 부부로 세살짜리 딸이 있는데, 연간 세대 수입은 650만엔으로 ‘후루사토 납세’ 공제 한도는 약 12만4000엔에 실제로는 군마 현과 나가사키 현의 두 군데에 총 10만 엔을 기부하고 있다. 세금 환급으로 결국 자기부담 2000엔에 불고기와 스키야키 세트 1.1kg×5세트, 고시히카리 쌀 10kg×3세트, 양식 참치 400g×2세트 등을 선물로 받았다.
한편 ‘후루사토 납세’는 장기적으로는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에 태어난 사람을 비롯해 해외 귀국 자녀, 그리고 일본 거주의 외국인들에게도 제2의 고향을 자신이 직접 만들어 간다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로서는 그 지역의 특산물을 일본 전국에 홍보하는 한편 각종 숙박권과 시설권으로 관광객 유치의 효과도 노릴 수 있어 2, 3차적인 경제적 연쇄효과가 기대된다.
일본 전국의 ‘후루사토 납세’ 특산품과 혜택, 그리고 기부금의 사용 용도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관련 사이트 운영도 점차 늘어나고 있어 새로운 비즈니스의 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일본 경시청 보고서는 2011년 당시 1만5878명 사망, 6126명 부상, 2713명 실종을 확인했다. 또한, 25만4204동이 반파되었을 뿐만 아니라 건물 12만9225동이 붕괴되었고 69만1766동은 부분적으로 손상을 입었음을 확인하였다.
기부금은 ‘마을자원보전기금’에 적립돼 자연환경 보전활동 등에 쓰인다.
매년 일본 전국의 대표 지역 홍보 마스코트를 대상으로 인기투표가 실시되고 있다. 2015년 그랑프리 투표 사이트 는 다음과 같다. www.yurugp.jp/vote/ 예를 들어 5만 엔까지 공제가 가능한 사람의 경우 ‘후루사토 납세’로 5만 엔을 지방자치단체에 보낼 경우 2000엔을 제외한 4만8000엔의 세금이 되돌아오며, 거기에 1만 엔당 3000~5000엔 상당의 그 지역 선물까지 받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결국 ‘1만 엔을 기부하면 답례로 쌀 10㎏을 받을 수 있다’는 지방자치단체 5군데에 ‘후루사토 납세’를 하면 자기 부담 2000엔에 50㎏(10㎏×5)의 쌀을 손에 넣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