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교육 책임을 맡아오면서 후회스러운 일이 있다. 20대를 맞이하는 젊은이들에게 학교 성적이나 공부에 열중하는 것보다는, 너희들이 50세쯤 되었을 때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모습의 사회인이 되기를 바라느냐는 문제의식과 삶의 목표를 설정하도록 권고하고 이끌어주는 것이 더 소중한 과제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문제를 갖고 인생의 목표가 확실했던 학생들은 대
이번 주는 별 약속이 없어 집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약속이 많을 때는 일 주일 내내 외출할 때도 있어 그럴 때는 몸이 피곤하니 불만이었는데 이렇게 너무나 여유시간이 많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편하기도 하다.
소파에 앉았다가 팔걸이를 베개 삼아 길게 눕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보고 싶은 드라마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한가로워도 되는
사진은 죽음의 흔적과 같다고 한다. 사진을 찍던 그 순간은 돌아오지 않고, 다시 그대로 찍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과거를 사진으로 찍는 이가 있다. 전도유망한 과학자에서 어엿한 사진작가로 전향한 김경수(金炅秀·53)씨다. 한때 현미경을 통해 신약(新藥)을 연구하던 그는 이제 뷰파인더를 통해 자신을 탐구하고 있다. 지난 세월의 파편들을 고스란히
한낮, 때로 집에서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집 근처로 잠깐 나가 점심 한 끼 맛나게 먹고 들어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결국 오전 내내 집안일을 마치고 아침에 가족들이 남긴 음식들을 냉장고에서 무심히 식탁에 꺼낸다. 집에서 대충 때우는 점심이 급기야는 맥빠진다. 그렇다고 배달음식은 내키지 않는다. 아줌마도
드디어 인생의 버킷리스트 하나이던 헌혈 50회를 하고 적십자사 총재로부터 금장을 받는 일을 이루었다. 한마디로 기쁘다. 무엇보다 필자를 건강하게 낳아주시고 별 탈 없이 길러주신 부모님이 제일 고맙고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다. 필자는 선천적(?)으로 적혈구인 헤모글로빈이 적게 생성되어 헌혈 50회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피를 만드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지하철보다 버스를 탄 이유는 버스가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혼자 생각에 푹 잠겨 가기엔 버스에 앉아 창밖을 조용히 바라보며 가는 게 좋은 걸 필자는 잘 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가는 길에 혼자 많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몇 번씩 갈아타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번거로움이 날 더 심란하게 하는 것 같아서 30분쯤 더
침대 옆의 작은 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손쉽게 꺼내 읽을 수 있도록 작은 책장을 두었는데 꺼내 읽은 후 아무렇게나 놓아 많지 않은 책들이 서로 뒤섞이고 무질서해서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필자가 좋아한 작가 최인호 님의 마지막 작품집 ‘인연’부터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도 있고 전철 안에서 우연히 만난
그해 봄부터 매주 목요일 아침 10시, 목동 파리공원에서 우리들은 작은 모임을 가졌다. 연령도 20대에서 60대요, 직업도 틀리지만 쇠귀 신영복(牛耳 申榮福, 1941~2016) 선생의 책과 신문 칼럼 이야기를 듣고,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기탄없는 자유토론의 시간이 즐거웠다. 이야기가 길어지거나 토론이 격해지면 인근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며
글ㆍ사진 함철훈 사진가
요즘 나는 나의 뿌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급속히 변하는 주위 환경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다. 최근에 사랑하는 가족의 어른을 잃었고, 같이 일하던 동료 교수의 급작스런 부고도 있었다. 그런 중에도 새로 태어난 손녀와의 해후도 있었다. 또한 국가의 근원인 헌법에 대해 생각하도록 나라가 요동쳤다. 사람이
“여기가 수원인가? 어디니?”
“엄마, 이천이야.”
휠체어에 앉아 바람과 소통하고 계시던 엄마의 쓸쓸한 뒷모습을 소리 없이 눈물을 삼키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집으로 모셔가라는 서울 S병원의 통보를 받고, 막내는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어머니를 이천 D병원으로 모셔갔다. 밖에서 마지막 식사로 평소 좋아하시던 우리밀국수를 드셨다. 엄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