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한 노신사가 신문에 난 부음을 보고 빈소가 마련된 우리 집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 대한민국 초대 공보처장을 지낸 이철원 박사였다. 그는 아버지 생전에 신세를 많이 지었다며 이를 잊지 못하여 찾아왔다고 말하였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어릴 때 우리 형제들에게 들려주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손우현 한
‘포니 개발 프로젝트’ 때도 최전방에서 활약했던 이충구(李忠九·70) 서울대학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지능형 자동차플랫폼센터장(前 현대·기아자동차 통합연구 개발본부 사장)은 자동차업계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현대자동차 총 35종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포니 생산 40돌이 되는 12월을 맞아 이 센터장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대자동차 ‘포니(Pony)’가 1975년 12월 첫선을 보인 지 올해로 꼭 40년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국산 고유 모델 포니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소형차 중심으로 바꾸고 마이카 시대를 열었으며, 단순한 자동차를 넘어 한국 공업화의 상징이 됐다. 많은 국민들에게 ‘생애 첫 차’로 추억되는 포니를 더듬어 본다.
글 유충현
모든 병은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 원인은 심각한 사고나 사소한 해프닝일 수도 있고, 최근의 일이거나 또는 꽤 오래전 벌어진 사건이 단초가 되기도 한다. 부산에서 만난 옥기찬(玉基燦·55)씨와 그를 치료한 부산대학교치과병원의 허중보(許仲普·40) 교수의 이야기는 조금 특별했다. 이제 중년의 삶을 시작하는 환자를 위해 다른 치료법을 선택한 의사의 이야기는
온 산이 울긋불긋 물드는 가을입니다. 여름내 그늘을 만들어줬던 우거진 숲이 붉은색으로, 노란색으로 물드니 별천지가 따로 없습니다. 꽃보다 예쁜 형형색색의 단풍을 보겠다며 길 나서는 행렬에 전국의 도로가 몸살을 앓는 시월입니다. 이런 가을날 온 산에 가득한 단풍일랑 제쳐 놓고, 단풍놀이 차량으로 인한 지독한 교통체증도 아랑곳하지 않고 찾아 나서야 직성이 풀
그날 무너진 것은 국가시스템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였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멀쩡하던 한강 다리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국민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발생했던 10월을 맞아 21년 전 그날이 우리에게 남긴 의미를 되새겨 본다. 글 유충현 기자 lamuziq@etoday.co.kr
1994년 10월 21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오후 2시. 약속시간을 부득이하게 미뤄야겠다고 알려왔다. 겨우 10분 늦는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색을 표하는 이만의 전 장관은 근처 회의에 참석했다가 점심도 못 먹고 걸어오느라 늦은 것이었다. 그는 공공연하게 ‘BMW(Bus&Bicycle, Metro, Walk) 예찬론자’라고 말한다. 장관 재임 시절에도 전용차량 ‘에쿠스’
전 세계 분쟁지역에서 보내온 탄피로 만든 종이 있습니다.
60여 개국의 탄피 37.5톤을 모아 만든 높이 5m, 폭 3m 규모의 매우 큰 종입니다.
하지만 평화, 생명, 기원의 의미를 담은 이 종은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전체 1만 관에서 1관(3.75㎏)을 떼어내 9999관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통일의 날 떼어진 나머지 1관을 추가해 세계 평
2011년 4월 미국의 시사 주간지 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10가지 방법’ 중 하나로 ‘공유경제(Sharing economy)’를 선정했다. 무엇인가 사고 싶은데 자주 사용하지 않을 때 누가 빌려주면 좋겠지만 비싼 물건은 친한 사이라도 잘 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물건을 빌려주는 대여 산업들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대여를 넘어 함께 나눠 쓰는 ‘공유경제
명함은 역사다. 현재의 명함을 갖기까지, 많은 명함이 내 호주머니를 떠나갔다. 여기 누구보다 깊이 있는 명함을 가진 사람이 있다. 어렸을 때 절도로 소년원도 갔다왔다. 지금 하는 일은 노무사.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 사람 인생, 롤러코스터다. 소년원에서 나와 ‘여전’한 인생을 살 수 있었지만, 그것을 ‘역전’으로 바꾼 사나이. 노무사라는 명함을 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