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듯이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다. 방향과 방법은 다를지라도 모두가 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것 같다. 때로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왔노라고 위안도 해본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몸이 맘대로 안 들어 먹는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알 수없는 통증으로 견딜 수가 없다. 이것이 갱년기 인가?
옛날 엄마가 하던 소리, “너희들도 나이 먹어 봐라
새 학기를 맞아 환갑 띠 동갑 쌍둥이 손주와 외손자의 입학식이 열렸다. 60년 전 초등학교 입학식이 오늘과 비교되었다.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친구 잘 사귀면서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랐다.
오전에 쌍둥이 손녀와 손자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열렸다. 바로 집과 가까운 학교이지만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잔뜩 호기심에 차있다. 예나 지금이나 새로움에 대한 관심은 같
중학교때, 작문시간엔 일주일에 꼭 책 한 권씩 읽고 원고지에 독후감을 써서 내는 숙제가 있었다. 숙제를 내면, 선생님이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어 가면서 평을 써 주었는데, 선생님이 평이 무척이나 궁금해서 숙제를 돌려 받는 날이 기다려지곤 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작문선생님을 만나게 된 덕분에, 문학작품을 많이 읽게 되었는데, 그때 감명 깊게 읽은 작품 중의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이민 가방을 챙겼다. 큰딸이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필자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었나 보다. 아이는 엄마가 하루라도 빨리 동생과 아빠 곁인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고, 카이스트가 어떻게 들어간 학교인데 필자의 허락도 없이 일을 저질렀다. 드디어 왔다 갔다 이산가족 생활 3년 만에 한국의 모든 생활들을 말끔히 정리했다. 물
동생을 업고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외가에 가는 어머니를 필자는 작은 보따리를 들고 따르고 있다. 그때 필자는 7세 정도 였을까 아직 국민학교를 안 가는 나이였다. 외가에 가면 남의 집 문간방에 외할머니가 혼자 사시고 계셨는데 외할머니는 단아고 조용했다.
외가가 단칸방에서 살아야 할 정도로 어려웠던 이유는 필자의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이다. 외할
부동산의 가치 판단과 관련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그 답을 알아보자. 첫 번째 질문이다. 경사가 있는 땅이 있다. 경사진 땅의 높은 곳을 ‘가’라고 하고 경사진 땅의 낮은 곳을 ‘나’라고 하자. 당신은 어디가 좋은 땅이라고 생각을 하나? 두 번째 질문이다. 커피숍이 있다. 그 가게 앞에 도로가 있다. 그 도로의 폭이 넓은 곳이 좋을까? 좁은 곳이 좋을까?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모두 한 번 쯤 꿈꾸는 것 중 하나가 전원생활이다. 아침이면 지저귀는 새 소리에 눈 뜨고, 지나는 바람이 건네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계절이 그린 그림에 취하고 ….
그래서 필자도 경치가 좋은 양평에 깨 밭을 사서 깨가 쏟아지게 농가주택을 지었다. 집을 설계하며 어디에 무엇을 둘까, 신바람
글 신광철 시인, 작가
나를 지배하려 하지 말고 나에게 자유를 주어라. 내 안에는 많은 길과 많은 말과 많은 단어들이 있다.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목표에 익숙해져 있다. 목표가 없는 삶은 산 게 산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방향을 잃어버린 것을 방황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인생의 방향은 무엇이어야 할까. 무엇이 되기 위해서, 많은 것을
우리나라 해방은 독립투사의 활약에 힘입은 바 크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온 가족과 전 재산을 바쳐 독립투쟁을 하였다. 그러나 큰 공적에 비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고, 명예나 지위를 탐하지 않았다.
온가족과 모든 재산을 바쳐 독립투쟁
6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교동 소재 ‘우당기념관’을 찾아 그의 공적을 살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1867년 이조
제주의 자연은 아름답다. 문 열면 멀리 눈 덮인 한라산이 보이고 집앞 텃밭에는 노란 유채꽃이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조금만 나가도 바닷물에 발 담글 수 있고 좋아하는 낚시도 원 없이 할 수 있는 섬, 제주.
그런데 남자는 제주살이를 끝까지 찬성하고 여자는 반대하고 있다. 남자는 자기가 평생 꿈꾸던 일이라 하고 여자는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