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지에서 생긴 일] “삶과 죽음의 갈림길”

기사입력 2016-05-30 13:37 기사수정 2016-07-12 12:42

▲생사를 함께 한 친지들.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양복희 동년기자)
▲생사를 함께 한 친지들.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양복희 동년기자)
23년 전 필자 가족은 가까운 친지들과 사이판, 괌으로 3박 4일 휴가를 갔다. 모처럼의 해외여행이라 세 가족은 모두 웃고 떠들며 매 순간을 만끽했다. 그렇게 꿈 같은 3박 4일이 끝나고 마지막 날 비행기를 타기 위해 시간에 맞춰 괌 국제공항으로 나갔다.

그런데 즐겁던 여행은 그때부터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연발한 것이다. 두 집 아빠들은 직장 때문에 반드시 한국으로 가야 했다. 다행히 다른 비행기 편이 있어 두 아빠와 한 가족은 먼저 떠났다. 그러나 필자 가족 모두와 다른 한 가족 일부는 덩그러니 남게 됐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필자 일행은 괌에서 하루를 더 자게 됐다.

다행히 항공사가 호텔 방을 제공했다. 그래서 필자 일행은 별 불만 없이 호텔로 들어가 각자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필자도 샤워기를 틀어 공항에서 대기로 생긴 피로를 풀었다. 그런데 한참 샤워하고 있던 그때였다. 갑자기 샤워기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몸도 기우뚱거렸다. ‘쾅’하는 기분 나쁜 소리도 들렸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 밖으로 나가려는데 몸이 휘청거려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다.

남편이 소리 질렀다. “다들 엎드려! 바닥에! 책상 밑으로 들어가! 지진이다. 지진!” 머리털 나고 처음 겪는 지진이었다. 알몸으로 후다닥 바닥에 엎드렸다. 엎드리자마자 TV가 ‘탕’하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벽에 붙은 액자도 납량영화의 한 장면처럼 혼자서 ‘부르릉’ 소리를 냈다. 엎드렸는데도 몸은 계속 이리저리 굴렀다.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며 눈을 감은 채 작은 아이만 찾아댔다. 지진으로 정전이 됐는지 호텔 방은 전기가 다 나가 완전히 암흑천지로 변해 버렸다. 그렇게 공포의 시간이 1~2분가량 지났을까? 남편은 다시 소리쳤다. “다들 밖으로 나가!”

헐레벌떡 일어나 공포심에 계속 떨리는 손으로 옷을 대강 걸치고 작은아이 손을 꽉 붙잡고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작동이 멈췄다. 다시 비상구 계단을 찾은 뒤 계단을 통해 단숨에 1층 로비로 내달렸다. 9층에서 1층까지 1분이나 걸렸을까? 말 그대로 초특급 스피드였다. 삶을 향한 투쟁으로 상기된 얼굴과 헐떡거리는 숨소리였지만 모두가 살아서 다시 상봉했다.

이미 로비는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알몸인 채 아랫도리만 손으로 가리고 있는 구레나룻이 수북한 중동계 사람, 젖을 물리다 내려왔는지 앞가슴을 풀어헤친 채 아기를 안고 있는 백인 아낙네 등 그야말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아우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진이 지나간 후 곧 커다란 해일이 닥칠 거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일념에 남편은 전화로 택시를 찾았다. 다행히 한 택시기사가 연결돼 공항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공항 가는 길은 난장판이었다. 배가 뒤집혀 육지로 올라와 있었고 땅이 갈라져 차량이 처박혀 있었다. 필자 가족은 이런 아비규환 속을 뚫고 공항에 도착했지만 헛수고였다. 이미 공항도 닫혀 있었다.

필자 가족은 할 수 없이 공항 문 앞 처마가 있는 쪽에 구해 온 비닐을 깔고 앉았다. 공항이 다시 정상화되면 언제라도 떠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들이 죄다 살아남기 위해 자기 나라말로 지껄여대는 바람에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여기선 못 있겠다 싶어 남편을 호텔 찾으러 보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았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낡디낡은 숙소였으나 가장 안전하다는 내륙에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이곳에서도 한숨도 못 잤다. 지진 공포 때문에.

다음 날 괌 당국은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공지했다. “하루 더 묵어야 한다”는 것. 당국은 대신 고급 일본호텔로 필자 가족을 안내했다. 그곳은 모든 물품이 지진을 대비해 붙박이로 튼튼하게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하고 안전한 호텔이라도 몸이 둥둥 떠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느낌은 떨칠 수가 없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사고가 가져다준 트라우마였다.

그렇게 삶과 죽음의 갈림길 속에서 이틀 밤을 새운 뒤 다음 날 드디어 고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필자 가족은 기내에서도 속이 울렁거렸다. 죽음의 문턱이 그렇게 후유증을 남겨 줬으나 공항에서 마중 나온 다른 가족들과 만나선 오열이 아닌, 한 줄기 눈물만 흘렸다. 기다린 그들의 아픔도 알기 때문이다. 5박 6일 유난히 길었던 ‘죽음 체험 여행’. 다시는 외국여행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머리 숙여 신에게 깊이 감사했다.

▲뱃놀이를 즐기고 있는 지인과 가족들. (양복희 동년기자)
▲뱃놀이를 즐기고 있는 지인과 가족들. (양복희 동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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