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파스칼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미약한 존재지만 생각을 할 수 있으므로 그 어떤 존재보다 위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은 갈대처럼 가냘픈 존재이기는 하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우주를 포옹할 수도 있는 위대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양극을 공유하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이성적이
지난해에는 나라가 온통 뒤숭숭하고 시끄럽더니 급기야 ‘장미대선’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달라는 온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국민이 정치권을 걱정하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의 삶마저도 피폐해져버렸다.
그리고 장미대선에서 한 번의 패배를 경험했던 진보 성향의 후보가 오뚝이처럼 일어나
흑백 갈등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는 많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영화들을 보는 일은 불편하다. 마치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는 것처럼 백인들의 원죄의식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잔혹하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서서히 바뀌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오바마를 배출한 자부심 때문은 아닐까?
하긴 시간이 많
아름다운 동반자
감독; 제임스 아이보리
주연; 조안 우드워드, 폴 뉴먼
제작연도; 1990년
상영시간; 126분
명망 있는 변호사 월터 브리지(폴 뉴먼)는 한여름에도 조끼와 넥타이를 갖춘 정장 차림을 고집하고, 행진곡풍 음악만 들으며, 극장에 가면 잠을 자고, 태풍이 시속 75마일로 불어와 모두 지하실로 대피하는 상황에서도 꿈쩍하지 않고 풀코스 정
재활용센터 한 귀퉁이에 태극기 하나가 다른 폐품들과 함께 수거 돼 있다. 태극 문양이 선명하고 낡지 않았다. 대체로 태극기는 나라의 상징이어서 아무렇게나 버리지 않는다. 왜 이렇게 버려졌을까? 쓸모가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나라를 버리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한때 소수의 국민은 나라를 등지거나 이민을 선택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국가에 대한 신망이
일상의 공허함을 채우거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인문·철학을 가까이하는 이가 늘고 있다. 누군가는 인문학자의 명강의에 위로를 받기도 하고, 철학자의 한마디를 교훈 삼기도 한다. 그러나 최진석(崔珍晳·58)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인문·철학은 따뜻한 것이 아닌 냉정한 것, 힐링이 아닌 잔혹한 것”이라 말한다. 그는 자기 위로가 아닌 전면적인 자기 파괴를 통한
돈 아미엘 감독 작품으로, 주연에 아론 에크하트(죠시 역), 힐러리 스웽크(레베카 소령 역)가 나온다. 필자는 과학은 잘 모르지만, 이 영화는 과학을 쉽게 이해시키고 그 재미에 푹 빠지게 만든다.
이 영화는 과학의 발달은 인간에게 도움도 주지만,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 현상까지 바꿀 수 있다는 상상을 하게 한다. 냉전 시대에 소련이 인공지진을 일으켜
도시 숲을 헤치고 빠른 속도로 버스가 달린다. 희미하게 햇살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짙은 갈색 나무 끝이 파란 하늘 배경으로 흔들흔들, 구름의 속도로 움직인다. 작은 버스정류장에 내려 차갑고 신선한 공기와 마주하며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곧 다다른 곳은 김수영 문학관. 문체의 자유를 넘어 진정한 자유세계를 위해 끊임없이 저항하고 아파했던 순수시인 김수영
지난 해 한국인의 사랑을 가장 받은 해외여행지로 일본의 오사카와 도쿄가 손꼽혔다. 긴 휴가를 내지 않아도, 짧은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한 것 같다. 그런데 필자는 반듯하고 복잡한, 서울과 별 다른 것 없는 대도시 도쿄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도쿄에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모리사키의 하루하루’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