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장미대선에서 한 번의 패배를 경험했던 진보 성향의 후보가 오뚝이처럼 일어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선된 후에는 인천국제공항을 깜짝 방문해 후보 시절에 약속했던 비정규직 철폐 공약의 일환으로 공기업의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라는 서슬 퍼런 지시를 내렸다. 그동안 소 닭 보듯 무관심했던 기관장들은 허리를 깍듯이 굽혀 읍소하며 전원 정규직화하겠다는 답변까지 내놓았다.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멋지다. 그동안 노골적으로 차별받아온 비정규직 직원들의 가슴을 뻥 뚫어준 그 약속은 가뭄 속 단비 같은 희망으로 다가왔다.
필자도 비정규직으로 근무한다. 정규 직원으로 4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한 후, 반백이 성성한 나이에 대기업 협력회사에 우연히 취직을 하게 되었다. 인천공항 물류단지 내에 있는 회사다. 사실 60대 초반의 나이에 정년퇴직을 쉰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보나 개인적으로 보나 아까운 일이다. 뚝배기 장맛처럼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질 좋은 노동력을 사장시켜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백세시대에 말이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그런 걸 어찌하랴. 최저임금에 주말은 물론 공휴일조차 보장되지 않는 협력회사의 사정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마저도 하기 싫으면 말라는 식의 분위기가 시니어들을 더 주눅 들게 만든다. 그렇다. 싫으면 사직서를 던지면 될 일이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기 빠듯했던 젊은 시절, 자녀들의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도록 고생만 해왔던 시니어들은 은퇴 준비도 제대로 못한 채 이렇듯 비정규직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이렇듯 차별받는 세상에서 신세가 처량하기만 하다.
지난겨울 출퇴근길에서 만난 건설 현장의 잡부들은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한 비정규직 시니어들이었다. 그들은 이른 새벽부터 작업 현장에 도착해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떨어가며 작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폐드럼통에 폐목재로 장작불을 피워놓은 것이 이들이 몸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렇게 부지런을 떨고 성실하게 일해도 작업 현장에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급여는 최저임금. 휴일도 제대로 없는 열악한 환경이 이들의 살아가는 현실이며 현주소다.
진보 대통령의 등장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얼마나 개선될지는 아직 두고 볼 일이지만 노동자들은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다. 인천공항공사에 직속해 있는 비정규직 직원들이야 기관장이 대통령과 약속을 했으니 정규직 전환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협력회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아직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한 약속들이 아직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최저임금의 적정한 상승이다. 그것만이라도 해결되어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은 필자도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