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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투자 인사이트] 기대되는 '백신의 명가'
- 녹십자가 지난해 4분기 실적을 저점으로 수익성이 회복될 전망이다. 백신부문 매출 증가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DB금융투자에 따르면 녹십자의 올 1분기 백신 수출은 입찰공급 물량 증가 따라 지난해 27억 원에서 크게 증가한 15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녹십자의 현재 주가가 지난해 매출액의 60%에도 못 미치던 2010년 수준인 점도 투자 심리를 자극한다. 구자용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전통적인 백신 전문기업인 녹십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시작했고 파이프라인 이벤트도 보유했다”고 설명했다. ◇녹십자 투자 포인트는? 녹십자에 대한 투자 포인트는 △올 1분기 수두 백신 입찰 물량 공급에 따른 실적 회복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소비자 인식 변화로 독감 백신, 대상포진 백신 등 백신부문 매출 성장 기대 △2분기 헌터라제(헌터증후군) 중국 허가 완료 △4분기 면역글로블린(IVIG) 10% 제제의 미국 허가 신청 등 다수의 실적 상향 요인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NH투자증권은 녹십자의 올해 연간 매출액이 전년 대비 9.8% 증가한 1조5043억 원, 영업이익이 65.9% 늘어난 668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매출액, 영업이익을 기존 추정치 대비 각각 1.0%, 6.9% 상향 조정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내·외 백신 수요 증가가 예상돼 백신부문의 실적 추정치를 올려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이후 2010년 글로벌 백신 빅4(GSK, 머크, 화이자, 사노피)의 합산 매출액이 30% 증가한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NH투자증권은 올해 녹십자의 연간 독감 백신 매출액 추정치를 국내는 기존 620억 원에서 687억 원으로, 해외는 기존 436억 원에서 484억 원으로 각각 수정했다. 대상포진 백신 국내 매출액 추정치도 30억 원 상향 조정했다. 구완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외에도 헌터라제 중국 허가 대기 순번은 06번(총 11건 중)으로. 일주일에 약 5건 처리 속도를 보이고 있어 올 2분기 허가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NH투자증권은 녹십자를 제약업종 최선호주로 제시하고 목표주가를 기존 14만 원에서 15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녹십자의 지난해 12월 주가수익비율(PER)은 28배 수준으로 역사적 밴드 하단에 위치해 있다”며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외부불확실성으로 조정 받을 때마다 저점매수를 권장한다”고 말했다. 하나금융투자는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19만 원을 내놨다. 또 DB금융투자는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17만 원을 유지했다. 한국투자증권은 목표주가를 15만 원으로 설정했다. 지난 26일 녹십자 주가는 종가 기준 11만3000원이다. 녹십자는 올해 실적 개선이 유력하고 연구개발(R&D) 모멘텀도 풍부해 주가 상승 매력이 존재하는 만큼 매수하기에 부담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 증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2020-03-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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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의 산 카즈베기와 하늘 아래 첫 마을 우슈굴리
- “방향을 꺾으니 갑자기 오른쪽으로 큰 틈새가 열리며 밝은 태양 아래 반짝이는 카즈베기의 만년설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산과 만년설은 어느새 우리 앞으로 와 조용히 우뚝 서 있었다. 그것은 다른 세계의 생물이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산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처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Knut Hamsun)이 자신의 소설에서 카즈베기 산과의 첫 만남을 표현한 문장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품은 산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압도적인 풍광의 카즈베기 산에 깃들어 있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에 3000년을 이곳의 바위에 묶여 고통 속에 지내야 했던 프로메테우스. 그의 어깨를 뒤에서 가만히 안아준 이는 코러스였다. 코러스처럼 진실의 따스한 울림통이 되고 싶은 염원을 안고 산 중간 게르게티 언덕의 ‘성 삼위일체(사메바) 성당’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랐다. 해발 1700m에는 작은 마을 ‘스테판츠민다’(Ste pantsminda)가 있다. 카즈베기 산을 비롯해 주변 트레킹 코스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곳이다. 여기서 출발해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까지 걸어가면 2시간 정도 걸린다. 반대편 능선에는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도로가 잘 닦여 있다. 하지만 편한 길보다는 아름다운 카즈베기의 숨결을 하나하나 느껴보고 싶었다. 가파른 능선으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에 맞춰 마치 윈드서핑을 타듯 하양, 노랑, 분홍색 야생화들이 춤을 추었다. 성당까지 펼쳐진 녹색 초원의 싱그러움은 꿈에 그리던 풍경이었다. 평범한 사람도 사진작가로 만들어주는 자연이었다. 어디를 찍어도 인생 최고 장면을 건질 수 있었다. 14세기에 지어진 사메바 성당은 해발 2170m 높이에서 카즈베기 산을 배경으로 웅장한 샤니(Shani) 산과 마주보며 소박하게 앉아 있었다. 그 자태가 너무 경건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다. 이곳의 풍경이 왜 조지아를 소개하는 사진에 많이 등장하는지 수긍이 갔다. 수많은 여행객이 그 사진을 보고 조지아를 찾는다고 한다. 신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곳 마음 한편으로 ‘왜 이렇게 높고 외딴곳에 성당을 지었을까?’ 하는 궁금함도 있었다. 하지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밤 숙소 테라스에서 올려다본 암청색 하늘과 흰머리를 이고 있는 카즈베기 산의 검은 실루엣, 그리고 성당의 숭고한 불빛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풍경에 답이 있었다. 성당의 불빛은 등대였다. 누구에게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진실의 희망이었다. 만년설이 덮여 있는 카즈베기 산 높이는 5047m. 조지아에서는 세 번째, 코카서스산맥에서는 일곱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조지아 사람들은 ‘얼음산’이라는 뜻을 지닌 ‘카즈베기’를 ‘하얀 신부’라고 부른다. 이 지역은 10월이면 눈이 오기 시작하고 1년의 절반 정도가 겨울이다. 마을에서 전망이 가장 좋다는 ‘룸스 호텔’ 테라스에서 일출을 맞이할 때도 여름이었지만 재킷을 걸쳐야 할 정도로 쌀쌀했다. 카즈베기 산의 일출은 벌겋게 물든 바위와 구름으로 시작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원했기에 아늑한 신의 세상을 버리고 참혹한 형극의 땅을 선택한 프로메테우스의 용기를 보는 것 같았다. 붉은 빛 용기는 제우스의 파란 하늘에 과감했다. 카즈베기 산은 대자연의 풍광 속에 신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조지아를 좋아하는 이유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야생화 천국 므츠헤타 혹은 트빌리시에서 출발해 스테판츠민다로 갈 때 이용하는 도로는 ‘조지아 군사도로’인데 ‘즈바리 패스’(Jvari Pass)라고 부른다. 계속해서 가면 러시아 블라디캅카스까지 이어진다. 주변국과의 물자 교류가 이 도로를 이용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트럭이 많이 다닌다. 때 묻지 않은 초원과 야생화 천국에 감동하면서 북캅카스 산맥으로 들어가는 이 도로에서 조지아 최고의 자연 경관을 만났다. 조지아의 알프스 ‘스바네티’ 조지아에도 알프스의 스위스 같은 곳이 있다. 바로 ‘스바네티’(Svaneti)다. 이곳의 중심은 코카서스 산 중에서 가장 등반하기 힘든 ‘우슈바’(Ushba·4170m) 산이다. 스바네티의 베이스캠프인 ‘메스티아’(Mestia)까지는 승용차로 갈 수 있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슈굴리’(Ushguli) 마을로 가려면 반드시 사륜구동차가 필요하다. 메스티아에서 우슈굴리까지 데려다주는 영업용 차량을 이용해도 된다. 세계 장수마을로 소개된 메스티아는 해발 1500m에 위치한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동화 같은 산속 마을이다. 특히 탑 형태의 ‘코시키’(Koshiki)라는 가옥이 장관을 연출한다. ‘코시키’는 9~13세기에 만들어진 방어용 탑으로 1층엔 가축들이 살고, 2층은 주거용, 3층은 폭설과 침략자를 감시하고 방어하는 기능을 한다. 밖에서는 입구가 안 보이며, 사다리가 있어야 올라갈 수 있다. 메스티아에서 대부분 비포장인 길을 40여 km 더 깊숙이 들어가면 신이 허락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 코카서스 산맥 서쪽 끝에 위치한 우슈굴리에 갈 수 있다. 해발 2100m에 옹기종기 있는 모여 있는 4개의 마을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늘 아래 첫 마을이다. 마을에서 보이는 ‘슈카라’(Shkhara) 산의 높이는 5068m. 조지아에서는 가장 높고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높다. 설산 계곡을 바라보며 초록빛 초원을 걷는 이곳에서의 트레킹은 조지아 여행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마을 북쪽 끝에서 찰리디 빙하까지 왕복 20km를 걷는 코스와 슈카라 빙하 기슭까지 8km를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있다. 설산과 고풍스러운 가옥들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풍광에 넋을 빼앗긴 채 마을 뒷동산 풀밭에 한참 앉아 있었다. 길옆 한편에는 호텔을 짓는 공사장이 보였다. 앞으로 여행객들이 더 많아져도, 지금의 평화와 아름다움이 변함없기를 기원했다. 스테판츠민다 마을 트레킹 코스 조지아 여행의 장점 중 하나는 청정 자연에 흠뻑 빠져 트레킹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카즈베기국립공원은 야생화 천국. 낙엽수와 침엽수 숲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주타(Juta) 밸리 코스 카즈베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지역으로 샤니 산 줄기의 초원을 따라 연녹색 길을 걸을 수 있다. 스테판츠민다 광장에서 차로 데려다주고 다시 데리고 오는 차량 영업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호수까지 두세 시간 걷다가 돌아오는 길이 가장 인기다. 트루소(Truso) 밸리 코스 카즈베기 산을 오른편에 두고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다. 승용차는 ‘트루소 골짜기’(Truso Gorge)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사륜구동차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길이 험해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즈바리 패스 따라 가볼 만한 곳 아나누리(Ananuri) 요새(교회) 에메랄드빛 호숫가에 위치해 산, 호수와 조화를 이루는 방어 성채. 구다우리(Gudauri) 스키장 해발 2100m에 위치해 있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코카서스 산맥의 멋진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구다우리 전망대(우정 전망대) 조지아와 러시아 조약 2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모자이크 타일의 기념비. 절반은 조지아, 나머지 절반은 러시아의 역사와 상징을 파노라마로 그려놓았다. 코비(Kobi) 리프트 트루소(Truso) 트레킹의 시작점이 되는 코비 마을 입구에 곤돌라 타는 곳이 있다. 카즈베기 산의 웅장함을 배경으로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누릴 수 있다.
- 2020-03-2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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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던하고 심플하게, 홈 오피스 잇 아이템!
- 따뜻한 봄을 맞아 책장의 묵은 먼지도 털고 책상도 정리하면서 마음을 다져보자. 편안한 느낌을 주는 우드나 베이지 톤, 또는 블랙 포인트 아이템으로 모던하면서도 심플하게 홈 오피스를 꾸며보면 어떨까? 사진 각 사 제공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스웨덴 프리미엄 가구 브랜드 스트링(String)의 비스포크(bespoke,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한 맞춤 생산 시스템) 스타일 제품이다. 개인 취향에 따라 직접 구성품을 선택해 원하는 형태로 조립, 설치할 수 있어 원하는 공간에 효과적인 가구 배치가 가능하다. 국내 공식수입 판매원 100HOME, 제품 구성별 가격대 상이. 1. 용도에 따라 의자에 앉아, 또는 일어서서 사용 가능한 트랜스퍼(transfer) 책상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상판 아래에 넉넉한 수납공간이 내장된 깔끔한 디자인이 장점이다. 오코 스탠딩 책상, 글로리가구 47만 원. 2. 내구성 높고 얼룩이 덜 생기는 무늬목 소재로, 곡선형 테이블 상판이 손목과 팔을 안정적으로 받쳐준다. 다리 높이를 62~76cm로 조정 가능하고, 테이블 아래 전선정리망이 있어 유용하다. 이도센 책상, 이케아 29만9000원. 1. 책상 위나 여분의 벽 공간에 활용하면 좋은 큐브형 수납장이다. 다양한 색상의 제품을 균일하게 붙이거나, 비대칭적으로 설치하는 등 나만의 개성을 살려 디자인할 수 있다. 에케트 벽수납 콤비네이션, 이케아 15만 원. 2. 유색 유리로 된 바깥쪽 조명 갓과 대비되도록, 갓 안쪽을 불투명하게 디자인해 은은한 불빛을 내도록 디자인했다. 차분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홈 오피스를 연출하고 싶을 때 놓아두기 좋다. 에베달 플로어스탠드, 이케아 32만9000원(조명 별도). 3. 은은한 색감의 가죽 재질이 돋보인다. 압력 감지 잠금 바퀴가 달려 일어나면 고정되고, 앉으면 해제돼 안전하다. 시트 깊이, 등받이 높이 조절이 가능하다. 알레피엘 사무용 의자, 이케아 24만9000원. 1. 적외선 터치 디머로 밝기 제어가 가능한 LED 조명으로, 독서나 컴퓨터 작업 등에 적합하다. 알루미늄 튜브를 활용한 꺾은 선형 디자인이 유니크하다. 아르테미데 로텍 테이블 조명, 100HOME 판매가 61만 원. 2. 오피스 내 개인 공간을 나눌 때 유용한 제품으로, 바닥에 세워 단독으로 사용한다. 소음을 흡수하는 재질의 스크린을 메모판으로 활용해 쾌적한 작업공간을 꾸밀 수 있다. 베칸트 책상스크린, 이케아 12만 원.
- 2020-03-2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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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 만나는 소설 ‘토지’의 하동 땅
-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사이에도 봄은 변함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유리병 안에 갇힌 거처럼 봄의 향기를 못 맡고 있지만 자연이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어김없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내게 봄은 꽃이 피는 과정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봄꽃의 꽃망울이 터질 때 두근거리는 울림을 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설렘은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싱그러운 자극으로 나에게 에너지가 된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되면 나는 여기저기 많이 기웃거린다. 올해는 직접 봄을 찾아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아쉬운 대로 지난 시간 교감했던 봄을 기억과 되새김질을 통해 복원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곳 중 유독 한 곳에 여러 차례 발길이 갔던 흔적이 눈에 띠었다. 경상남도 하동이다. 내 추억 속의 하동은 봄을 찾다 돌아오니 마당 건너편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봄이 보였던 곳이다. 그때부터 거의 해마다 봄이 올 즈음이면 그곳에 갔었다. 부담 없이 살짝 눈이 부시게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 깊고 높은 어둠의 고요 속에 수줍은 듯 빛나는 별천지, 바람에 실려와 코끝을 살살 간지럽히는 자연의 향기들이 봄을 말했다. 그렇게 따스하게 토닥여주는 자연이 좋았다. 더군다나 하동에는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는 평사리가 있다. 그곳은 나에게 사유와 성찰을 위한 최고의 보약이 되는 공간이다. 평사리 땅에 서면 인간의 삶과 인간의 삶이 엮이는 소리가 들리면서 내 마음을 챙길 수 있었다. 이미 드라마로도 여러 번 방송되어 잘 알려졌다시피 ‘토지’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까지 우리 민족 고난의 역사를 최씨 일가 중심으로 이야기한 박경리의 장편대하소설이다. 무려 25년 동안의 집필 과정을 거쳐 전체 20권으로 완간됐다. 소설이 특히 나에게 줬던 커다란 울림은 인간의 본질적인 삶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였다. 소설에는 700여 명에 이르는 다양한 모습의 인간에 관한 보편적 모습이 그려져 있다. 책을 읽을 때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상처, 아픔에 대해 상상해 보는 시간을 넉넉하게 가졌다. 그 시간을 통해서 내 삶의 온도와 빛깔과 향기도 바뀌었다. 내가 아닌 관점에서 현상과 감정을 보는 훈련이 되었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부터 봄철의 평사리에 가면 자연스럽게 자기성찰을 통해 내면의 에너지를 선물 받았다. 소설 ‘토지’는 봄비처럼 촉촉하게 가슴을 적시며 내 안의 빛과 소금이 되어준 작품이다. 평사리에는 2001년 드라마 세트장으로 사용한 최참판댁과 초가집들이 조성되어 있다. 지난 봄 그곳에 갔을 때 최 참판 댁 앞마당에 서서 멀리 보이는 섬진강을 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다. 한 굽이 굽이져 흐르는 섬진강을 보니 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봉순이의 일생이 떠올랐다. 장터를 가기 위해 강둑을 걸어가는 이용의 모습을, 해방 소식을 듣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강둑을 걸어오는 장연학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사랑채를 끼고 돌아 집 뒤편으로 가면 한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조병수의 아픔이 담겨 있는 대나무 숲이 있다. 그곳에서 그의 인생에 대해 느끼고, 이해하는 사유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토지’는 사람들의 인생 모습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역경을 극복한 사실로만 국한 시키지 않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극한의 고통과 고독을 이겨내는 아름다운 삶의 가치에 대해서까지 확장시켜 말하고 있다. 그 양의 방대함만큼이나 인간과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형태의 인생이야기가 담겨 있는 심연이다. 양에 눈길을 주지 말고, 용기 내어 읽어보길 권한다. 이제 봄이 살살 수를 놓고 있다. 이 봄기운으로 유리벽을 허물어 내고, 내 인생의 소중한 보물인 인연들과 함께 봄날의 설렘을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 2020-03-2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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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만해선 남편이 싫어하는 건 안 하는 편입니다”
-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울산 큰애기’, ‘대머리 총각’ 등의 노래들로 국민가수의 삶을 살았던 김상희. 그녀는 1961년 고려대학교 법학과 학생 신분으로 가수 데뷔를 해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 여성이 법학과 엘리트라는 점도 특별했지만, 그런 사람이 소위 ‘딴따라’ 가수를 한다는 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과감한 선택은 성공이라는 보답으로 돌아왔다. 다양한 히트곡을 발표하며 1960~197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살았던 그녀에게는 50여 년을 함께한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지난 시대의 역사가 있다. 삶의 지혜 가득한 그녀의 얘기를 들어봤다. 김상희와의 인터뷰를 시작했을 때 특유의 보이시한 저음이 매력적으로 들려왔다. 밝고 힘 있는 목소리 톤에서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녀는 1943년생, 올해 행운의 숫자 7을 두 개나 갖는 나이가 됐다.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자마자 그토록 젊음을 유지해주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 우리 남편이죠. 남편은 우리 집 원동력이고 아주 좋은 친구예요.” 김상희의 남편은 유훈근 씨. KBS PD 출신인 그는 1968년 그녀와 결혼해 어언 52년간을 함께해왔다. 이혼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졸혼이 유행처럼 얘기되고 있는 요즘, 이 부부의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은 단단해 보였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했을 터다. 행복의 근원은 남편의 배려심 “대학 4년 동안 그야말로 남자 대학 같은 곳에서 공부했어요. 당시엔 여학생들이 별로 없었거든요. 또 밖에 나와서 만나는 방송계, 언론계 사람들도 다 남자들이었고요. 말하자면 남자들 세계에서 생활한 셈인데, 남편이 혹시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한 번도 그런 내색은 안 하고 편하게 대해줬죠. 친정 부모님은 내가 가수생활 하는 걸 정말로 싫어하셨어요. 시댁에서도 그랬죠. 그러나 양가 어르신들께 용감하게 입장을 말씀드리고 결혼을 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남편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남편은 등대이자 나무 그늘이었다고 표현했다. 전혀 불평도 안 하고 감싸주고 보살펴주니 그녀로선 당연히 남편을 인생의 동반자처럼 항상 이해해주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부부는 서로에게 마음을 다 주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한 것 같아요. 특히 상대의 자존심은 꼭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픈 부분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하고요. 예를 들어 남편은 잔소리, 특히 한 말 또 하는 걸 아주 싫어해요. 부부생활은 철저한 일상인데, 상대의 잘못은 잘 보이고 내 허물은 잘 안 보이기 마련이죠. 그래서 잔소리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를 ‘눈만 보고도 웃을 수 있는 사이’라고 말한다. 밤에 자다가 문득 눈이 떠질 때가 있는데, 그때 옆에 있는 남편을 보면 너무 든든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그저 고맙기만 하다고. “요즘 남편이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옛날에 돈 버는 일을 좀 더 많이 하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내가 ‘돈 벌었잖아, 우리 살렸잖아. 그런데 왜 자꾸 그래’ 하고 말해주곤 해요.” 정치와 연을 끊은 사연 남편의 후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부부의 돈독한 관계와 달리, 부부를 둘러싼 외부 환경은 거칠기 그지없었다. “시댁은 정치하는 집안이었어요. 시아버지가 5선 국회의원이고, 시숙부도 4선 국회의원이었죠. 종갓집 맏며느리로 할일도 많았고 마음고생도 엄청 했어요. 주변에는 늘 우리 집안을 사찰하는 사람이 있었고요. 무슨 움직임이 없나 이런 거 말이죠.” 어느 날 PD였던 남편에게 김대중 당시 신민당 총재가 함께 일하자고 찾아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그 요청이 무려 세 번이나 반복되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에게도 정치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친정어머니는 결혼을 허락할 때 남편한데 정치를 안 하겠다는 언약을 받았어요. 그래서 남편이 고민할 때 나도 생각이 많았죠. 그러나 ‘나도 친정에서 그렇게 반대하는 결혼을 했는데 저 사람은 오죽할까’ 싶었어요. 그래서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죠.” 남편은 결국 김대중 당시 신민당 총재 공보비서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무렵은 서슬 퍼런 1980년대 독재정권 시절이었다. 야당 의원 공보비서가 된 남편과 그런 남편을 둔 가수를 정권에서 곱게 볼 리 없었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해외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야 했고 그 시간 동안 김상희는 방송 출연과 공연 금지를 당해야 했다. 그때 그녀는 시간이 좀 여유가 있어서 햄버거 장사도 해본 적 있다. “그런데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내가 계산을 잘 못하는 데다 원가와 이익 구분도 못 하겠더라고요. 장사를 하면 안 될 사람이었어요. 나중에 귀국한 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는 마음 아파했죠. 그렇게 먹고살 게 없었느냐고. 사실 그렇게 부족한 처지는 아니었지만, 나는 시댁에 가서 돈 얘기를 일절 안 했거든요.” 그러나 남편의 정치 도전은 끝이 좋지 못했다. 마침내 사면을 받고 귀국한 그는 전주시 갑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다. 남편에게 전주 갑은 아버지의 지역구였기에 의미가 컸고, 모두들 그가 당연히 국회의원 후보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당에서 공천 명단을 발표했을 때 남편은 떨어지고 변호사 출신 인사가 후보가 됐다. 남편은 분노했다. 그래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그 결과는 낙선이었다. 이 일로 환멸을 느낀 남편은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10월 26일, 뒤통수가 얼얼했던 날 어쩌면 그런 ‘팔자’였을까. 김상희에게도 정치계와 관련된 비화들이 있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10·26 사건과 그녀가 인연이 있다는 건 뜻밖이었다. 그녀는 유신정권 시절, 대통령 앞에서도 당당히 할 말을 했던 에피소드들을 들려줬다. “어느 날 밤 청와대에서 공연을 하라고 부른 적이 있어요. 나이트클럽과 계약이 되어 있었던 터라 못한다고 했죠. 그랬더니 문화공보부 장관이 몇 시 스테이지냐고 묻더라고요. 9시, 11시라고 했더니 그럼 그 전에 보내주면 되지 않느냐고 해서 갔죠. 그런데 노래를 끝내고 나왔을 때 아무도 없는 거예요. 청와대 입구까지 혼자 어떻게 걸어 나와요. 그래서 냅다 소리를 질렀죠. 장관 이름을 부르면서.” 청와대 한복판에서 소리를 지르다니 대단한 ‘깡’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부르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그 소리를 듣고 나타난 사람은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그녀를 장난삼아 ‘깡패’라고 부르곤 했다는데, 그녀의 대찬 기질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어이, 깡패. 왜 그러는 거야’ 하고 묻더군요. 그래서 ‘공연 때문에 나이트클럽에 가야 하는데 내보내준다고 해놓곤 연락이 없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박 대통령이 비서들에게 ‘여기 봐!’ 하더니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할 거 아냐’ 하고 혼을 내더라고요. 그래서 쏜살같이 공연하러 갈 수 있었죠.”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서로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관계였기에 박 대통령의 사망 소식은 그녀에게 큰 충격을 줬다. “10월 26일 저녁에 청와대 연회 공연이 있었어요. 공연을 끝내고 저는 돌아왔고요. 그런데 그 후 안가에서 사건이 났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머리가 띵하더군요. 바로 전에 만났는데….” 다양한 장르 섭렵한 멀티 플레이어 전직 대통령들과의 에피소드는 그쯤에서 끝이 났고, 이제 그녀의 음악세계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요즘 김상희는 대중가요보다는 클래식이나 품격 있는 공연에 더 어울리는 느낌이다. 양재무 음악감독이 이끄는 남성합창단 이마에스트리와 함께하는 공연도 그렇다. 이마에스트리로선 창단 이후 최초로 대중가요 가수와 협연하는 공연이기도 하다. 그런데 60년 가수생활 동안 그녀는 가요만 부른 게 아니었다. “이탈리아 가곡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해서 부른 게 있고 동요도 불렀어요. 일본에선 재즈 앨범도 만들고 뮤지컬 넘버를 발췌한 앨범도 냈어요. 내가 생각해도 정체성이 뭔지 모르겠어.(웃음) 뮤지컬도 하고 영화도 찍고 할 거 다 했거든요. 이번에는 클래식과 함께하는데 이질감이 없어요.”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즐기는 사람’, 뭐든지 잘 흡수하는 ‘한지 같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스스로 분석하기에 문제가 좀 있다고 했다. 게으르다는 것이다. “처음엔 잘해요.(웃음) 그런데 내 몫만 하는 타입이죠. 요즘은 젊었을 때보다 노래의 깊이가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졌으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강직함 김상희는 지금도 밥공기에 밥풀 한 알 남기는 일 없이 먹는다.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배운 ‘밥상머리 교육’ 때문이다. 사실 그녀의 친정은 상인 집안이었다. “친정아버지가 무역을 했어요. 굉장한 재력가셨죠. 외화도 수입하고 극장도 운영하셨는데, 돈을 흥청망청 쓰는 걸 아주 싫어하셨어요. 어쩌다 떨어진 밥풀을 보면 우리더러 다 먹으라고 할 정도였어요. 아버지 명을 어기기 힘들었죠. 그때부터 남김없이 밥을 끝까지 먹어치우는 버릇이 생겼어요.” 친정어머니도 강직한 사람이었다. 자식들이 실수를 하면 누구 하나의 책임이 아닌 연대 책임을 지도록 가르쳤다. 그래서 나중에는 형제들끼리 실수가 없도록 서로 단속하고 관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김상희에게서 느껴지는 꼿꼿함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녀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도 부모님 속을 썩인 것이란다. 달이 뜨면 어머니에게 미안하다고 말해 김상희의 본명은 최순강이다. 가수가 되기 위해 집안을 속여야 했기에 가명을 썼다. “나는 좋아하는 걸 하게 되면 밀어붙이는 타입이에요. 그런데 엄마에겐 대못을 박았구나, 깨달은 적이 있어요.” 김상희의 둘째 아들도 그녀가 졸업한 고려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그런 아들을 사랑스러운 자식이자 자랑스러운 후배로 여겼다. 법대에 들어간 만큼 사법고시는 언젠가는 도달해야 할 목표였다. 아들은 여유만만하게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시험을 치르고 발표가 났는데 낙방이었다. 얼굴이 새까매진 아들은 “전 고시할 팔자가 아닌 거 같습니다. 오늘 부로 접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그 말을 듣고 하늘이 노랬죠. 친정어머니도 내가 가수한다며 법 공부 안 했을 때 남산을 세 번을 돌면서 울었다고 했어요. ‘아, 우리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알게 됐죠. 아들에게는 ‘괜찮아. 네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행복을 찾아’라고 말하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 요즘도 둥그렇게 보름달이 뜨면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요.” 나이 들어도 소통이 되면 외롭지 않아 사단법인 한국연예인한마음회 이사장이자 가요계의 원로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그녀에게 사람들과 잘 지내는 비결을 물어봤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소통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와도 소통이 되면 외롭지 않아요. 어떻게든 귀를 열어 듣고, 얘기할 때는 나잇값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사실 나잇값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서로가 열린 마음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요즘은 일단 듣고, 의견을 물으면 맨 마지막에 해요. 너무 나서지 않고요. 특히 ‘내 나이가 얼만데’, ‘나 때는 말이야’ 이런 말은 절대 안 하려고 합니다.” 그녀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로 양가에서 결사반대했는데 결혼한 것을 꼽았다. 그리고 그렇게 결혼했어도 가족이 화목하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녀가 지키는 삶의 법칙은 절대 남에게 험한 얘기를 안 하는 것이란다. 화가 나도,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은 평생 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해서 얻은 좋은 기운이 그녀의 삶을 굳게 지켜준 것인지도 모른다. “가수로, 엄마로, 아내로, 나로서 잘 살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내가 죽었을 때 슬퍼할 사람들이 있다면 잘 산 거겠죠? 난 웃으면서 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정말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도 하고요.”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쉽게 꺾이지 않는 코스모스 같은 그녀의 노래가 깊은 내면 속으로 울려 퍼졌다.
- 2020-03-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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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로 본 불안의 심리학
- 공포 영화가 무서운 이유 중의 하나는 괴롭히는 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해치는 적이 눈앞에 있는데 그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증권가의 오래된 말에는 ‘소문에 사고 사실에 판다’는 게 있다. 인간의 불안 심리를 잘 표현한 말로 들린다. 실제와 상관없이 사실이 아닌, 혹은 사실 이전에 세상에 떠도는 안개와 같은 불안이라는 심리는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기도 한다. 위정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불안 심리는 안정을 해치는 매우 위험한 사태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불안한 심리와 사실을 잘 관리하지 못해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 일은 역사 속에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것이 임진왜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온 정사와 부사의 보고가 달라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정사 황윤길은 전쟁이 난다는 견해였고 부사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벌일 위인이 못 된다고 했다. 김성일이 그런 잘못된 보고를 하게 된 이유로, 당파 간 대립 관계도 작용했지만, 백성들이 불안해 할 것이란 명분도 있었다. 불안을 다스린답시고 사실을 외면한 판단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은 사례다. 그만큼 불안과 공포는 안정을 해치는 위험한 것이고 국가의 흥망성쇠까지 가르는 것이니 정서를 잘 관리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사실을 은폐하면서까지 공포를 억누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중국의 흔한 사례처럼 언론을 통제하면서까지 진실을 감추고 위험은 끝났다고 강변하는 경우다. 정치적으로 혼란을 없앴으니 일시적으로는 잘하는 통치로 포장할 수 있겠으나 막대한 희생은 언젠가 치러야 한다. 실체가 없는 불안은 얼마 안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근거 있는 대부분의 불안은, 지진을 앞두고 부산한 동물들의 움직임처럼 그것이 일어나고야 말리라는 것을 감지하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그런 느낌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려 하거나 선의로 포장된 안이함은 참극을 불러온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그러한 정책 실패를 낱낱이 기록한 현장 보고서다. 결국, 많은 재난은 인재라는 결론에 귀결된다. 불안은 사실의 여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소통이 막힐 때 감염된다. 수백 년간의 페스트 공포가 과학으로 극복되었듯이 과학적 진실의 햇빛만이 ‘코로나 불안’의 안개를 물리칠 것이다.
- 2020-03-1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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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인생은 아내와 함께”
- 1982년,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 리그가 출범했다. 그 후 38년, 야구와 함께 살며 모든 행적이 한국 야구의 역사 그 자체가 된 선수가 있다. 바로 유승안 전 경찰 야구단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포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얼마 전 경찰 야구단 해체와 함께 감독직을 마지막으로 야구 최전선에서의 50년 인생을 마무리 짓게 된 그는 이제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1956년생, 베이비붐 세대로서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배트와 공으로 돌파한 그가 새롭게 도전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듣기 위해 그가 계룡산 자락에 마련한 휴양공간 유쓰카페로 찾아갔다. 프로야구 리그 출범 전 한일은행 야구단에서 포수로서의 생활까지 포함하면 197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승안 전 경찰 야구단 감독의 가장 최근 직업은 사업가다. 계룡산 자락 입암저수지 앞에 자리한 유쓰카페의 사장이 된 것이다. “작년 연말에 오픈했어요. 이 땅을 매입한 지는 오래됐죠.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지낼 때였어요. 경기에서 이기면 머리가 맑았지만 지면 아주 피곤했어요. 옆에서 술 마시자는 사람도 많았고…. 그래서 술도 끊고 어디 힐링할 데 없나 찾아다니다가 이곳을 알게 됐죠.” 오래전부터 마음에 들어 지인들과 자주 와서 놀다 보니 땅 주인이 살살 꼬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사게 됐다. 그러나 매입한 후 임대만 하고 땅을 놀렸다. “이곳은 제 희로애락이 다 깃든 곳이에요. 시합에서 지면 찾아와 무상무념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그러다 땅을 팔 건지 재건축을 할 건지 고민하다 저도 이제 은퇴할 시기가 됐고 직업을 또 가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 무리해서 짓게 된 거죠.(웃음)” 이제 아내에게 의지할 나이 유쓰카페는 그 이름처럼 1~2층은 카페, 3~4층은 펜션으로 운영된다. 펜션은 룸이 4개밖에 없는 소규모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공간이 아닌, 가족들이 와서 힐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쓴 유쓰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 자리에 아내 장은진 씨도 함께했다. 우리가 아는 선수이자 감독인 유승안은 카리스마 넘치는 강직한 원칙주의자다. 그렇다면 아내에게는 어떤 사람일까? “아이들에겐 너무 좋은 아빠예요. 집에서는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내본 적 없고 스트레스를 표시한 적도 없어요. 아이들에게는 늘 져주는 아빠죠. 그런데 제 입장에선(웃음), 한 15년 정도는 가부장적인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오랫동안 지도자 생활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기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일은 남편이 아닌 기사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죠. 그러나 60세에 가까워지면서 순화가 되더라고요. 요즘은 저와 상의도 많이 하고 말투도 엄청 부드러워졌어요.” 그렇다면 그가 변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앞에서 타박 아닌 타박을 당한 그가 슬쩍 끼어들며 한마디했다. “우선 2~3년 전부터 여성호르몬이 증가했고(웃음) 이제 살길을 찾는 거죠. 앞으로 제가 의지해야 할 사람은 자식이 아니라 마누라니까, 안 까불려고.(웃음)” 프러포즈도 제대로 안 한 남편과 미국에 같이 간 이유 두 사람의 주거니 받거니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내와의 만남을 “홈런을 쳤다”라고 표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두 아들을 안겨준 첫 아내를 백혈병으로 떠나보내고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만난 귀한 인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혼한 후 18년을 함께 살았다. 이제 와 다소 늦은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아내에게 남편이 이상형이었는지 짓궂게 물어봤다. “하나도 아녔죠.(웃음) 저는 구단 직원이어서 친분은 없지만 어쩌다 가끔 보는, 알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몹시 남자다웠어요. 그래서 결혼할 때 프러포즈도 없었어요. 비슷하게 한 말이, ‘네가 있어야 내가 미국으로 연수를 갈 수 있고, 네가 없으면 일본을 가야 하는데 난 미국에 가고 싶다’였어요.(웃음) 미사여구로 꾸민 말도 아니고 그저 담백했죠. 그런데 그때는 남편도 믿음직스러웠지만 두 아이들도 좋았어요. 애들과 코드가 잘 맞았거든요. 사실 지금도 남편보다는 애들과 친해요.(웃음) 그래서 결혼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죠.” 두 사람은 결혼 후 두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아내는 거의 두 아들하고만 지냈다. 남편은 연수를 해야 해서 늘 바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랬기 때문에 아이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남편이 일과를 끝내고 들어오면 밤 열두 시였어요. 그러니 저희는 저희끼리 살아남아야 했죠. 애들은 저를 의지했고 저도 애들만 바라보며 지냈어요.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였지만 타인의 시선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서 오히려 다행이었어요.” 야구 집안의 두 아들과 막내딸 그가 한화 이글스 감독이 되어 귀국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원래 살던 서울을 떠나 대전에서 지내야 했기에 가족끼리 똘똘 뭉쳤다. 여러모로 이러한 환경이 그들 가족을 의기투합할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된 셈이다. 그렇게 새롭게 연을 맺은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그토록 원하던 딸이 한 명 태어났다. 너무 감격스러워 이름을 은혜라고 지었을 정도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딸은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런 딸에 대해 얘기하는 엄마의 모습에는 믿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걸 하면 좋겠는데 아직 못 찾았어요. 이상과 현실이 워낙 뚜렷한 아이라.(웃음) 어렸을 때도 스스로 잘 자랐으니, 진로도 알아서 곧 찾아낼 거라고 믿어요.” “저희 딸이 천재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웃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할 도리는 다할 테니까.” 두 아들은 이미 자신의 길을 찾았다. 다름 아닌 야구다. 일찌감치 야구선수로 활동해온 첫째 아들 유민상은 KT 위즈, 둘째 아들 유원상은 기아 타이거스 소속 선수로 뛰고 있다. 유승안 집안은 야구 패밀리로 유명하다. 자식농사 끝내 홀가분 지금까지 젊은이들과 함께 부딪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젊게 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사실 유승안은 다섯 살짜리 손주를 둔 할아버지다. 두 아들이 벌써 결혼해 손주까지 안겨줬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자식농사 끝난 거죠. 홀가분해요.” 아내는 남편과 살면서 의견이 심하게 부딪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소리 내어 싸워본 적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라고. 아이들과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조화가 잘되는 화목한 가족이라는 게 아내의 설명이다. “우리 가족을 겉으로만 보고 ‘힘들었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우린 정말 잘 맞아요. 애들도 잘 커서 나름의 자부심도 있고요.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안 그랬으면 일 년 정도 살다 말았겠죠.(웃음)” 그런 아내를 유승안은 고마움 가득한 시선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악조건인 상황에서 여태까지 잘해왔고… 그래서 너무 고맙죠. 앞으로는 이쪽에 예속돼 살아볼까 생각 중이에요.” “내가 동의를 해야지!(웃음)” 평생 야구만 한 유승안의 새로운 도전들 유승안은 타고난 스포츠인이다. 스포츠는 일단 도전정신이 있어야 한다. 특히 야구를 ‘토털 인생’이라고 칭하는 그는 미션이 주어지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타입이다. “노력 안 하고 무리 안 하면 좋은 걸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의 제2인생에 야구가 여전히 놓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매니지먼트, 에이전트 회사에서 고문으로 일하는 걸 검토 중이에요. 스포츠 아카데미, 재활 프로그램 등을 아우르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생긴 지 30년이 넘었는데 아직 육성, 재활 쪽으로는 체계가 안 잡혀 있어요. 현재는 영리 목적으로 야구인이 아닌 사람들이 맡고 있는데 이제 우리 1세대가 해볼 만하다 싶어요. 미국이나 일본은 그런 시스템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거든요.”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분야는 교육 리그(시즌이 끝난 뒤 훈련이나 신인선수 발굴을 목적으로 펼치는 단기(短期) 리그)다. 경찰 야구단 2대 감독을 10년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육성 전문가로 거듭난 그는 교육 리그 창설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작년에는 우리나라 야구가 대만, 중국에 다 졌어요. 올림픽 예선도 멕시코를 이겨 겨우 올라갔죠. 동양권에서 꼴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원인은 육성에 있다고 봐요. 미국, 일본, 대만에는 교육 리그가 있어요. 한국만 없어요. 그래서 제주도에 교육 리그를 만들어볼까 해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거죠. 그러려면 앞으로 나서는 사람과 기업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진행이 되니까요.” 둘이서만 함께 살고 싶은 마음 유승안이 일단 저질러놓고 결과를 보는 스타일이라면 아내는 한 번 더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남편이 막 나가려 하면 그녀가 제어를 한다. 부부가 그처럼 잘 어울리는 이유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남편은 꿈이 커요. 반면 저는 작지만 계획을 세우면 완벽히 하는 쪽이고. 제 꿈은 뭔가 큰 게 아니라… 우리 둘만 지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잖아요. 그래서 둘이 살면서 뭔가를 해보고 싶어요. 제주도에 가는 것도 좋고, 펜션 사업도 좋아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목적에서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소소하게 남편과 함께하고 싶은 거예요.” 인터뷰 내내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즐거운 농담 속에서 피어나는 시간 속에서 이들 가족이 행복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느껴졌다. 눈이 온 창 밖 겨울 호수에 비치는 빛이 새롭게 시작된 미래를 향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될 부부의 앞날을 축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 2020-03-1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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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에 취하고, 사랑에 빠지고, 폴리포니에 감동받는 조지아 여행
- “웰컴 투 시그나기(Sighnaghi)!”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 안내를 받으며 간 곳은 객실이 아닌 테라스였다. 파란 하늘 아래 짙은 녹음 속 밝은 산호 빛 마을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그림엽서 같았다. 포도밭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의자에 앉으니 주인아저씨가 수박과 와인을 가지고 왔다.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면서 와인을 한 잔 따른 후 건배 제의를 했다. 트빌리시 동쪽의 카헤티(Kakheti) 주에 있는 ‘시그나기’. 인구가 3000명 정도 되는 이 작은 마을에서 본 첫 광경이다. 조지안의 크베브리 와인 사랑 조지아인들의 와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와인을 마시느라 신이 부르는 자리에도 늦었다는 우화를 말하면서 신도 포기한 와인 사랑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래서 러시아는 조지아를 지배할 때 조지아 정교회에 대한 탄압뿐 아니라 포도나무를 자르는 정책을 펼쳤다. 이렇게 조지아인들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인 와인은 ‘성스러운 액체’로 불릴 정도로 그들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수도원에서도 와인을 만들었고, 아직도 몇몇 곳에서는 와인을 판매한다. 그레미(Gremi) 수도원에서 담근 레드 와인을 마셔보니 선입견 때문인지 일반 와인보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향이 마음의 무늬를 더 나긋나긋하게 해주었다. 조지아 와인은 56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포도 품종에서 생산된다. 3km마다 기후가 달라서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 지역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어떤 와인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면 ‘치난달리’(Tsinandali), ‘사페라비’(Saperavi), ‘킨즈마라울리’(Kindzmarauli) 라벨이 붙은 와인을 선택했다. 가격에 비해 맛은 일품이었다. 조지아 와인의 주 생산지는 카헤티(Kakheti) 주. 조지아 와인을 상징하는 지역이다. 코카서스 산맥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분지에 알라자니(Alazani) 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다 보니 포도나무를 비롯해 과일나무들이 잘 자란다. 카헤티 주의 중심 도시 시그나기와 텔라비(Telavi)도 대표적인 와인 산지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는 지점 두물머리처럼 조지아에도 쿠라 강과 아라그비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세워진 도시가 있다. 조지아 초기 왕조인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조지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므츠헤타’(Mtskheta)다. 지금은 수도가 트빌리시이지만 아직도 조지아 정교회의 총본산인 스베티치호벨리(Svetitskhoveli) 성당이 이곳에 있어 조지아 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장소다. 이 마을은 199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즈바리(Jvari) 수도원 앞 언덕에 앉아 바라본 므츠헤타는 그리움이 안개처럼 차분하게 깔려 있는 도시였다. “조지아 와인은 이렇게 마시는 거야” 오래된 역사만큼 와인을 마시는 조지아만의 전통문화가 있다. 술자리에는 반드시 덕담과 건배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를 ‘타마다’(Tamada)라고 부른다. 타마다가 ‘가우마조스’(cheers)를 외치며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긴 덕담을 한다. 건배 제의 내용은 순서가 있다. 처음에는 신께 감사하고, 다음 잔에서는 평화를 기원하며, 그다음 잔에서는 성 조지를 위해, 그다음 잔에서는 가족의 안녕을 위해… 이런 식으로 계속한다. 이렇게 이어지다 보면 ‘옛날에 헤어졌던 애인을 위해’ 건배 제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술자리에서 나온 건배 내용에 대해 질투를 하면 안 된다. 보통 기쁜 날은 26잔, 슬픈 날은 18잔의 와인을 마시며 술자리와 건배가 이어진다. 또 한 가지, 취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술을 그만 마시고 싶으면 타마다에게 말해 벌주를 받으면 된다. 이때 사용하는 잔이 ‘깐지’(Kantsi)다. 염소나 소의 뿔로 만든 전통 와인 잔으로 조지아 어느 곳에 가도 기념품 판매점에서 볼 수 있다. 이 잔은 뿔로 만든 잔이라 세워지지 않는다. 벌주를 받는 사람은 반드시 원샷을 해야 한다. 사랑에 빠지는 도시 ‘시그나기’ 달콤한 포도 향이 바람에 실려 퍼지는 작은 도시 시그나기에 신의 물방울만 있는 건 아니다. 18세기에 지은 요새, 돌 성벽, 주황빛 마을은 해발 790m 높이의 자연과 함께 시그나기를 동화 같은 마을로 만들었다. 아무 목적 없이 마을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다. 이 마을에서는 누구라도 천사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고풍스러운 시청 건물에서는 365일, 24시간 내내 결혼식과 혼인신고가 가능하다고 한다. 흔히들 시그나기를 ‘사랑의 도시’라고 말한다. 마음 예쁜 사람들이 사는 그림 같은 마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그나기에는 사랑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이곳 출신인 조지아의 국민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의 사랑이다. 그는 프랑스 출신 여배우 마르가리타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가난했던 그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림과 집을 팔아 장미를 사서 그녀가 사는 집 앞을 꽃으로 장식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고, 그에게는 그녀를 그린 그림만 남게 되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그가 죽은 후 세상에 알려졌고, 1980년대 러시아 가수가 ‘Million Alykh Roz’라는 제목의 노래로 그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나라에서 가수 심수봉이 ‘백만 송이 장미’로 번안해 부른 곡이다. 시그나기에서 가까운 곳에 카헤티 주의 주도인 텔라비가 있다. 텔라비는 작지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다. 조지아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튜세티 국립공원’(Tusheti National Park)으로 가는 전초 기지 역할도 한다. 감동의 폴리포니 공연 도로 양옆으로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싱그러운 포도밭을 보며 달리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조지아의 아름다운 연녹색 매력에 빠져버릴 것 같았다. 길가에 서 있는 와이너리 안내 간판은 여행자를 향해 손짓을 했다. 카헤티 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오래된 마을 크바렐리(Kvareli)의 ‘카레바’(Khareba) 와이너리로 갔다. 단순한 와이너리가 아니었다. 조지아를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의 규모와 콘텐츠를 잘 갖추고 있었다. 휴식공간으로 보이는 건물 앞 정원은 크베브리 황토 항아리를 비롯해 각종 소품과 조형물이 꾸며져 있었다. 건물 안은 와인 저장고, 시음 및 판매시설, 와인 관련 도구 전시실, 와인 제조 설명 프로그램 진행장, 기념품 판매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와인 체험을 하고 나오니 로비에서 5명의 남성이 환상적인 다성 창법의 폴리포니 공연을 했다.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조지아의 노래는 현대 음악보다 훨씬 관념적이다”라고 극찬한 이유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매혹적인 보컬의 다성 창법이 들려주는 하모니가 장엄하게 가슴을 울렸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라기보다는 영혼의 울림 같았다. 환상적인 조지아 와인만큼이나 황홀한 폴리포니의 벅찬 감동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시그나기에서 가볼 만한 곳 보드베 수도원(Bodbe Monastery) 조지아 왕비의 병을 치료하면서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가 생을 마감한 수도원이다. 수도원 밑 돌담길을 따라 내려가면 ‘니노의 샘’이 나온다. 지금도 치유 효험을 믿고 많은 사람이 찾는다. 시그나기 성곽 길(Sighnaghi Wall) 마을 언덕 위에 있는 아치형 돌문을 지나면 성곽 위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아침과 저녁 시간에 성곽 길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환상적이다. 로라시빌 도로(Lolashvili St.) 시그나기 마을 정상부터 산을 타고 구불구불 내려가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카헤티 지방의 광활한 평원을 조망할 수 있다. 알아두면 좋은 Tip 텔라비에서 트빌리시 혹은 므츠헤타로 갈 경우, 혹은 반대의 경우 ‘38번’ 도로인 ‘곰보리 패스’(Gombori Pass)를 이용하길 권한다. 해발 2000m의 산을 넘으며 한없이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 야생화에 푹 빠질 수 있다.
- 2020-03-0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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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의 수묵(水墨) 향 그윽한 호숫가 미술관
- 먹고살 만한 일을, 그리고 한 잔의 커피와 낭만적인 음악을 즐길 여유만 있다면 여기에서 무엇을 더 바라랴. 마음이 지극히 평온할 땐 그런 가상한 생각이 찾아든다. 그러나 ‘평온’은 흔전만전하기는커녕 희귀종에 가깝다. 위태로운 곡예를 연상시키는 게 생활이지 않던가. 광장시장의 빈대떡처럼 수시로 뒤집어지는 게 일상이다. 이 난리법석을 피해 흔히 주점을 찾아 소주병을 쓰러뜨린다. 그게 용한 대책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미술관으로 피난을 간다. ‘피난’이라 썼지만 정확하게는 충전을 위한 행차, 또는 옹골찬 감성여행이다. 미술관은 창고에서 태동했다. 과거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들은 진귀한 물건들을 수집해 창고에 쟁이길 즐겼다. 이 저장공간은 개인전시실로 진화했으며 뮤지엄(museum)이라 불렀다. 그러니까 왕궁이나 귀족의 저택 자체가 뮤지엄이었다. 이후 절대왕정의 붕괴와 산업혁명으로 상층부가 몰락하면서 뮤지엄은 시민사회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근엄한 권위를 칭칭 두른 왕궁 루브르가 대중적인 뮤지엄으로 전환된 게 또렷한 사례다. 뮤지엄은 원래 박물관을 의미하는 단어였지만 미술관의 유전자도 뮤지엄에서 유래했다. 정신 일깨우는 감각의 제국 미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봤는가. 미술관이 없는 공공사회를 생각해봤는가. 그런 게 없더라도 지구는 돌고 인간의 삶은 무사히 흘러가겠지만, 미감을 누릴 성좌 하나가 사라진 허전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술관이란 우리의 둔한 정신을 일깨우는 ‘감각의 제국’이지 않던가. 삶은 일쑤 속되고 진부하지만, 미술관의 작품들은 사람의 감성을 슬쩍 흔들어 잠시나마 새로운 지평을 바라보게 한다. 그렇기에 카오스로 미만한 세상에서도 미술관을 찾는 발길은 더욱 늘고 있다. 미술작품이 봄날에 내리는 이슬비처럼 가슴을 촉촉이 적셔준다고 믿는 애호가들의 향유 욕구. 이에 부응한 미술관의 진화와 변신은 이미 하나의 추세가 됐다. 이제 미술관은 미술품을 소장하고서 그저 작품 감상의 기회만을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는 듯 바지런히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고 시스템을 보완하고 있으니 말이다. 야외공간을 확보하거나 다양한 부대시설을 만들어 복합문화공간의 기능은 물론, 자못 우아한 휴식공간의 역할까지 도맡고자 하는 것 같다. 듣자 하니 예전 미술관의 전시공간과 부대공간의 비율은 9대 1이었지만 요즘은 1대 2로 역전됐다는 게 아닌가. 도서관, 체험관, 교육장, 카페, 식당, 아트숍 등을 설치해 덩치를 키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미술관 건축 자체를 예술적으로 기발하게 디자인하고 있으며, 정원 조성에도 공을 들인다. 도시의 안통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미술관도 많다. 이른바 전원형 미술관이다. 자연이라는 모티브만큼 매력적인 호객 매체가 다시 있겠는가.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 나는 지금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시 엑스포공원 안에 있는 솔거미술관에 와 있다. 경주시에 열린 첫 공립미술관이다. 한국화의 거장 소산(小山) 박대성 화백(76)이 평생토록 그린 작품 830점을 기증하면서 건립에 착수, 2015년에 개관했다. 기부문화의 토양이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 소산의 화통한 쾌척은 의표를 찌른다. 어차피 작품들을 등에 짊어지고 내생으로 떠날 방법은 없는 법. 그간에 신세진 세상에게 돌려주는 게 순리라 여겼으리라. 솔거미술관은 전형적인 전원형 미술관이다. 야트막한 야산이 푸근하게 늘어뜨린 치맛자락을 거머쥔 미술관이다. 토함산 슬하의 막내둥이에 속할 야산의 이름은 대덕산. 1921년, 당시 남한 땅에 생존했던 마지막 호랑이가 이 산 갈피에서 사람들에게 잡혔다고 하니 애석하다. 그것이 생명이건 무생명이건, 세상에 존재했던 것들의 모든 ‘마지막’은 애잔한 기분을 일으킨다. 미술관 뒤편 산 아래엔 자그마한 자연호수 아평지(阿平池)가 있다. 옷을 훌훌 벗고 늘어선 호숫가의 겨울나무들이 물에 드리워진 제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역시 그림이라 눈길이 한참 거기에 머문다. 초록빛 수면을 노니는 물오리들은 오늘도 기쁜가. 생동하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쯤이면 미술관에 입장하기 전에, 또는 미술관 관람을 마친 뒤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라고 미술관을 산자락 호숫가에 들어앉힌 게 아니겠는가. ‘빈자의 미학’ 스민 건축 “어눌한 게 달변보다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나를 광야로 추방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비판자로 살겠다”고도 했다. 건축가 승효상이다. ‘빈자의 미학’으로 삶과 건축을 구현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그는 인간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존재로 봐 모두가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 같다. 집다운 집은 어떤 것인가. 그가 말하는 요점은 ‘가짐보다 쓰임을, 더함보다 나눔을, 채움보다 비움을 중시해 지은 집’을 짓고 사는 게 척박한 삶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데 있다. 승효상의 설계로 지어진 솔거미술관을 보면 그의 건축적 지향이 실감으로 다가온다. 산자락 초목들을 곁에 둔 미술관의 외관은 들썩이는 구석 없이 수굿하다. 건축과 자연이 서로 눈짓을 하며 말없는 말을 두런거리나? 숲은 묵연하고 미술관은 겸손해 불화 없이 조응한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세운 벽과 벽 사이엔 나무쪽을 켜켜이 채워 콘크리트의 투박한 본성을 자연스럽게 누그러뜨렸다. 나무도 콘크리트도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비와 바람과 햇볕에 마모되고, 색이 바래고, 티끌과 이끼가 틈서리마다 배어 세월이 흐를수록 음영이 짙어지겠지. 마침내 잘 늙은 집으로 변모할 게다. 깊은 운치를 풍기며 미술관의 역사를 웅변할 게다. 미술관 내부 역시 승효상의 철학을 느끼게 한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회랑엔 계단과 함께 슬그머니 휘어지는 경사로를 조성해 물 흐름처럼 자연스러운 리듬을 부여했다. 미로에 들어선 것 같은 흥미마저 자아낸다. 계단을 이용하기 어려운 노년층 관람객을 위한 섬세한 배려일 수도 있겠다. 전시공간마다 적절히 배분된 자연광과 인공광. 싱그럽게 자란 대나무와 열린 허공으로 흐르는 구름이 보이는 중정(中庭). 차경(借景, 외부 자연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이기)을 위해 제3전시관의 벽을 뚫어낸 통유리 프레임의 이채. 전시작품이라는 주체를 효과적으로 북돋우는 객체들의 조합과 질서가 정교하다. 전시관의 천장이 매우 높은 건 미술관의 방장에 해당할 소산 선생의 어마어마한 대작들을 고려한 방책이다. 관람 인원 해마다 급증 경주의 핫 플레이스로 이미 두둥실 떠올랐다. 인기 작렬! 솔거미술관 말이다. 개관 5년 차 신생 미술관이지만 관람 인원이 해마다 급증했다. 어느 하루는 자그마치 2000여 명이 관람했단다. 서울에 있는 유명 미술관들이 긴장하는 분위기라니 통쾌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솔거미술관의 매력은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자연 경관과 동거하는 미덕, 그리고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라는 강점에 있다. 그러나 진정한 매혹은 소산 선생의 작품이 뿜는 아우라. 전시관 벽에 걸린 선생의 수묵화 앞에 선 심취한 표정들을 보라. 거무튀튀한 건 먹빛이요, 허연 건 화선지 맨살이구나, 그저 그리 여겨 심드렁히 스쳐 지날 것만 같은 젊은 관람자들이 눈을 끔벅이며 골똘히 그림을 들여다본다. 와우! 그런 찬탄을 터뜨리며. 전시장에 가득한 소산의 수묵화들은 실로 압권이다. 자유자재한 작풍으로 먹의 향연을 펼쳤다. 바위를 후벼낼 듯 거침없는 운필로 산수를 그리고 화조(花鳥)를 찍어냈다. 10m 너비의 대작을 예사롭게 그려내는 괴력으로 예술혼을 불사르는 거장의 진면목을 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서양화에 밀려 푸대접을 받는 게 한국화다. 수묵화단의 체면이 이거 말이 아니다. 서양화의 진격에 맥을 놓고 있다. 이 와중에 소산이라는 거목이 떠억 버티어 현실을 일갈하고도 남을 수작들을 그려냈다. 미술관을 나서자 저녁 어스름이 내린다. 장쾌한 수묵 세례를 받아서겠지, 마음 기슭에 밝은 달덩이 하나 떠오르는 이 기분은. 솔거미술관 탄생시킨 소산 박대성 화백 “나에게 작업실은 유배지와 마찬가지요!” 소산 선생 말하길, 예닐곱 살 때부터 붓을 노리개 삼았더란다. 집안 제사 때면 펼쳐지는 사군자 병풍, 그걸 보고 그림이라는 걸 끼적이기 시작한 게 외골수 화업(畫業) 인생의 싹눈이었다. 마냥 붓질을 놀 만한 형편은 아니었다. 배를 곯지 않기 위해 들일을 해야 했으니까. 뒷산에 뛰어올라 땔감을 져 나르거나, 똥장군 짊어지는 일도 소싯적의 다반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그는 일찌감치 양친을 잃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직전 어머니는 병으로, 아버지는 끔찍한 변고로 타계했다. 산에서 내려온 빨치산들이 아버지를 반동 지주로 몰아 낫으로 살해했다니 참혹하다. 당시 겨우 네 살배기 어린애였던 그의 몸에도 낫날이 들어와 팔 하나를 앗아갔다. 현재 소산의 왼팔은 의수다. 어린아이 때부터 겪었을 시련과 캄캄한 고독을 짐작할 만하다. 그럼에도 붓을 내던지지 않았다. 외팔로 삶에 가담해 밥을 벌기엔 그나마 지필묵이 상책이라 본 친척 어른들의 독려 덕이기도 했다. “몸에 핸디캡이 있으니 어느 한 가지 쉬운 게 없었지. 그러나 불편한 조건들이 결과적으로 내겐 복이었어요. 부족함과 불편함이 오히려 행운이었던 거요. 나를 무쇠처럼 담금질할 수 있었으니까.” 그의 예전 작업실엔 ‘불편당’이라는 당호가 붙어 있었다. 불편이 차라리 길이라는 걸,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가치들은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는 걸, 불편을 통해야 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걸, 수묵으로 도달할 수 있는 정신의 높이도 불편과의 동행으로 얻을 수 있다는 걸 당호로 다짐했던 셈이다. 이 ‘불편의 사제’의 붓놀림은 성정처럼 쾌활해 일필휘지에 능란하다. 깊고 아득한 먹색이 내려앉으면 그윽한 산경이 화폭에 아롱진다. 분출하는 화산의 기세로 묵을 써 화선지를 한바탕 희롱하고 나면, 거기에 웅장한 대자연이 꿈틀거린다. 정밀한 필선의 운용에 물이 올라 극사실화로도 이미 극치에 이르렀다. 서예는 또 어떻고? 김생과 추사를 진즉에 섭렵한 소산의 서(書)는 빼어나, 듣느니 늘 명필 소리다. 이렇게 그의 예술 생태계는 다중변주로 비옥하다. “동양의 필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완벽한가. 소필, 중필, 대필로 구분되는 필(筆)을 좌우사방, 맘대로 돌려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서양화 붓은 이게 안 되거든. 우리의 필은 자유로워 걸림이 없지. 대 그림자가 물에 스치듯 평화롭단 말여.” 830점의 작품을 기증한 이후 소산은 고향의 외진 산속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이전보다 작품량은 더 늘어났고, 대작을 그리는 습(習)도 깊어졌다. “내게 작업실은 유배지와 마찬가지요. 산고(産苦)와 다르지 않은 창작 하나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외로움 속으로 나를 밀어 넣을 수밖에 없으니.” “전에 이런 얘기를 했지요. 추사를 때려잡겠다!” “하하핫! 선문(禪門)에 전해오길,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추사는 성인 반열에 오른 분인데 감히 넘볼 수 있을까. 그러나 추사는 했는데, 나는 못한다? 그럴 리가. 내가 필묵을 닦기를 추사 못지않을 만큼은 하고 있소.” 소산에게 추사는 서화의 이상적 아이콘을 상회하는 존재다. 그는 선지식으로서의 추사를 타넘고 싶은 것이다.
- 2020-03-0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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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독자를 위한 3월의 문화 소식
- ● Exhibition ◇ 레안드로 에를리치:그림자를 드리우고 일정 3월 31일까지 장소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개인전이다. 에를리치는 주로 거울을 이용한 착시 현상에 착안해 엘리베이터, 계단, 수영장 등 친숙한 공간을 소재로 한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리적 체험까지 가능한 그의 작품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몸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총 4개의 전시공간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활용해 제작한 영화 포스터 13점으로 꾸민 ‘커밍 순’으로 시작한다. 이어 ‘탑의 그림자’, ‘자동차 극장’ 등 대형 작품을 비롯해 남·북한 지도를 모티브로 한 ‘구름(남한, 북한)’까지 만날 수 있다. ◇ 뜻밖의 발견, 세렌디피티 일정 4월 25일까지 장소 사비나미술관 ‘예술가에게 창의적 아이디어가 떠오른 순간,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우연한 발견이 예술적 발상과 작품으로 연결되기 위해 필요한 환경적 조건은 무엇인가’ 등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시도로 기획된 전시다. 창작에 영감을 준 이미지를 발견한 당시의 순간과 그 특별한 발견을 작품으로 옮겨나가는 창의적 행위의 과정에 대해 그린다. 이세현, 손봉채, 베른트 할프헤르 등 세렌디피티(뜻밖의 발견)를 경험한 작가 21명의 예술작품 78점과 더불어 흥미로운 일화와 사례, 작가노트 등을 공개한다. 이를 통해 아름다움의 발견에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 환상의 에셔展: EXIT-에셔의 방 일정 4월 30일까지 장소 서울웨이브아트센터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네덜란드 작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특별전이다. 이번 전시는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에셔의 그래픽 디자인, 판화 에디션, 아카이브 영상과 더불어 VR 작품과 특별 제작된 대형 오브제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졌다. 미술에 수학과 과학을 접목한 작가 특유의 기하학적 구조가 돋보이는 작품들을 통해 예술가의 이성적인 논리와 날카로운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뫼비우스의 띠’, ‘펜로즈 삼각형’ 등을 직접 체험하며 작품 속 에셔가 표현했던 원리들을 마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듯 감상하도록 구성한 점이 흥미롭다.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 일정 4월 23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1967년부터 시작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전시로, 매년 세계 80여 개국에서 3000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9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자 76명의 작품 300여 점을 선보인다. 영향력 있는 심사위원단을 통해 선정된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품들을 만날 기회다. 2019년 수상작 전시 외에도 2018년 수상자 벤디 베르니치의 특별전이 함께 열린다. 더불어 어린이 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라가치상’ 수상 도서 16권이 전시되는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세계 일러스트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다. ● Movie ◇ 찬실이는 복도 많지 개봉 3월 5일 장르 드라마 감독 김초희 출연 윤여정, 강말금, 김영민, 윤승아 등 ‘우리 순이’, ‘산나물 처녀’ 등으로 주목받은 김초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수상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평생 일복에 시달리며(?) 살던 주인공 ‘찬실’에게 전에 없던 행운이 굴러들어오며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여성 서사의 작품에 따뜻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더했다. 배우 윤여정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속정 깊은 주인집 할머니 ‘복실’ 역을 맡아 극에 훈훈한 감동을 불어넣는다. ◇ 다크 워터스 개봉 3월 11일 장르 드라마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마크 러팔로, 앤 해서웨이, 팀 로빈스 등 독성 폐기물 유출로 인류의 99%를 위험에 빠뜨린 미국 최고 화학기업 듀폰. 그들의 만행을 고발하며 전 세계를 뒤흔든 일간지 ‘보스턴글로브’의 심층취재팀 ‘스포트라이트’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겼다. ◇ 리암 갤러거 개봉 3월 12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개빈 피츠 제럴드, 찰리 라이트닝 출연 리암 갤러거 등 세계적인 록밴드 ‘오아시스’의 멤버였던 리암 갤러거의 삶과 음악에 대해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화려한 시절을 지나 험난한 시간을 보낸 그가 자신의 진솔한 심정을 고백하며 관객과의 소통에 나선다. ● Book ◇ 오팔세대 정기룡, 오늘이 더 행복한 이유 (정기룡 저ㆍ나무생각) 경찰서장을 지내다 정년퇴임 후, 온몸으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한 오팔세대 가장의 파란만장 인생 후반전을 담았다. 진솔하게 풀어낸 저자의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통해 공감뿐만 아니라, 용기와 위로의 메시지도 얻는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터득한 은퇴설계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하며 오늘날 오팔세대의 활기찬 제2인생을 응원한다. ◇품위 있게 나이 드는 법 (버나드 오티스 저ㆍ검둥소) 노년기 마음가짐과 실질적 조언의 비율을 3대 7로 구성해 현명하게 나이 드는 방법을 제시한다. 가입할 보험 조건, 병에 걸렸을 때의 대처, 유언 준비 등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 ◇ 인간의 모든 죽음 (최현석 저ㆍ서해문집) 현대인의 생활 습관과 죽음의 관계, 죽음의 유형과 특징, 치매·간병·호스피스·사별 등 웰다잉을 위한 실용적 지식을 총망라했다. 죽음에 대한 117개의 키워드를 꼽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 정년 아저씨 개조계획 (가키야 미우 저ㆍ㈜소미미디어) 가부장적인 태도를 지녔던 ‘정년 아저씨’가 손주를 돌보기 시작하며 자신의 편견을 깨 나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주인공의 인식 전환을 통해 가족과 사회를 위한 긍정적 변화를 촉구한다. ◇ 양준일 MAYBE (양준일 외 공저ㆍ모비딕북스) 최근 JTBC ‘슈가맨’을 통해 19년 만에 돌아온 가수 양준일이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좌절과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던 그가 깨달은 삶의 본질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 2020-02-28 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