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타이틀을 넣어 만든 명함이 많다. 이런 분들은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면서 남들에게 작은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로 대부분 뾰족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다. ‘행복 전도사’, ‘행복 바이러스’, ‘행복 코치’, ‘행복 아카데미’, ‘당신의 행복을 지켜드립니다’ 대략 이런 종류다. 방문 요양보호원을 운영하는 분인데 이분의 상호는 ‘00 행복 나눔
가뭄에 농민의 가슴이 타들어가는 초여름이다. 친구 몇 명과 성곽길을 따라서 남산에 올랐다. 하늘은 맑고 서울타워가 더 높게 보인다. 남산광장 북쪽에는 도심 쪽으로 평소 별 관심 없이 지나쳤던 남산봉수대가 있다. 때마침 근무교대식을 볼 수 있었다.
봉수대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옛날의 통신수단이다. 높은 산봉우리에서 봉화나 연기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 일어나
단체사진을 찍으면 그 사진 속에서 제일 주름이 많고 나이든 사람을 고르면 그게 바로 필자다. 나이가 제일 많아 그러려니 하면서도 왠지 모를 억울함이 있다. 거울에 비췬 모습보다 사진에서만 더 늙게 나오는 것 같아 속상한다. 예전에 나이든 사람들을 사진 찍으려하면 ‘늙은이 뭘 자꾸 찍으려 해’ 하고 손사래 치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한번은 동료들에게 ‘진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은 점심 먹고 칫솔질을 안 하고, 6명 중 1명만 스케일링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 기사는 치아 건강이 오복 중 하나인데 상당히 무신경한 수준이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자들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점심 먹고 바로 칫솔질하는 남자들은 흔치 않다. 직장생활을 할 때라면 몰라도 점심 먹고 나면 또 다른 볼일을 위해 바쁜 시간을 보
아내는 집을 7일씩 비운 적이 거의 없다. 장남인 필자에게 시집와서 아이 둘을 키우고 시어머니를 모시는 와중에도 필자의 네 동생들 학업을 지원하느라 적잖은 고생을 했다. 그뿐인가? 명절 때는 처가가 멀리 있는데다 시집간 동생들이 시차를 두고 인사를 와서 친정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누가 처갓집이 멀수록 좋다고 했는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요즘에는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주변에서 모두 부러워한다. 시니어들의 버킷리스트에 예외 없이 들어 있는 항목도 여행이다. 여행은 무조건 좋은 것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여행 가방을 꾸리면서 과연 여행은 무조건 좋은 것인지 생각해봤다. 물론 마주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 등은 좋다.
필자는 여행 가방이 간단하다. 늘 메고 다니던 배낭 속에 세면도구만 더
돈으로 어떤 물건을 사면 ‘물질재(財)’가 되고 경험을 사면 ‘경험재(財)’가 된다고 한다. 세금이나 공과금처럼 강제로 내야 하는 돈도 있지만, 사고 싶은 물건을 샀을 때나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은 쓰는 재미가 확실히 있다.
신혼 때는 숟가락과 젓가락 등 살림도구를 하나하나 장만하는 재미가 있었다. 중동 건설현장에 나가 있을 때도 귀국할 때면 전기다리미,
이른 아침 갈매기 울음소리에 눈이 떠진다. 찬거리가 부족하다 싶으면 낚싯대를 들고 방파제로 나서면 그만이고, 수평선을 장식하는 저녁놀은 훌륭한 안줏거리가 된다.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만큼이나 누구나 꿈꾸는 노후생활 중 하나는 어촌에서의 삶이다. TV 속 예능 프로그램이 간간이 보여주는 바닷가 마을에서의 유유자적한 생활은 어촌생활에 대한 동경을 더욱
지난해에는 나라가 온통 뒤숭숭하고 시끄럽더니 급기야 ‘장미대선’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달라는 온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국민이 정치권을 걱정하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의 삶마저도 피폐해져버렸다.
그리고 장미대선에서 한 번의 패배를 경험했던 진보 성향의 후보가 오뚝이처럼 일어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화보다 전쟁의 연속이었다. 지금의 평화는 극히 이례적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인간 사이도 마찬가지다. 화합보다 갈등을 빚는 시간이 더 많게 느껴진다. 사소한 대화를 하다가도 작은 말의 가시에 상처를 입었던 경우는 얼마나 많았던가. 그럴 때마다 끝까지 다가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생각에 좌절감이 밀려오곤 했다.
그러나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