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49코스를 걸으며

기사입력 2017-02-19 14:29 기사수정 2017-02-19 14:29

▲‘해파랑길’ 49코스를 걸으며 (김종억 동년기자)
▲‘해파랑길’ 49코스를 걸으며 (김종억 동년기자)
겨울도 어느새 그 정점을 찍고 하나, 둘 봄을 헤아리는 마음이 가슴속을 살며시 물들여갈 무렵인 2월 중순에 산과 바다, 그리고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코스로 산행을 나섰다.

사실은 주6일 근무하느라 주말쯤이며 심신이 피로함에 젖어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저 시간에 쫒기지 않고 하루를 늘어지게 쉬고 싶다는 생각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동해안 최북단 ‘해파랑길’은 나에게 아련한 추억이 서려있어 선뜻 승낙하고야 말았다.

다소 이른 시간에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겨울산의 스산함을 파노라마처럼 스치면서 어둠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 몇 시간을 달렸는지 드디어 진부령 고개가 눈앞에 나타났다.

‘낯익은 山河’ 굽이굽이 고갯길을 넘으니 흘리~장신리를 지나 드디어 뻥뚫린 듯 바다가 눈에 들어오더니 버스는 대대리 검문소를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대대리~거진 구간은 내 젊은 시절 푸른 제복에 땀 마를 날이 없이 동분서주하며 훈련하던 곳이라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의 모습을 차창으로 내어다 보니 애틋함이 샘솟아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가 떠올랐다.

포병병과의 위관장교시절 이곳 대대리 하천 일대와 반암리 솔밭진지에 진지편성을 해놓고 포탄사격 훈련을 하던 그 시절은 내 인생의 황금기요 젊은 혈기로 똘똘 뭉쳤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하루의 고단한 훈련을 마치고 병사들은 온종일 훈련의 고단함에 젖어 모두들 텐트에서 코를 골며 깊은 단잠에 빠져있던 시간에 난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진지 순찰을 하던 중이었다. 다음 날, 실시될 포탄사격훈련에서 어떻게 해야 표적 안에 많은 량의 포탄을 명중시킬 것인가? 에 대한 염려와 고된 훈련 뒤의 병사들의 취침상태를 확인하고자 진지 주변을 돌고 있었다.

우연히 때는 보름달이 중천에 덩그러니 떠있었고 쏟아지는 별무리가 아름답던 그 밤에 파도소리는 유난히도 철썩이고 있었다.

▲‘해파랑길’ 49코스를 걸으며 (김종억 동년기자)
▲‘해파랑길’ 49코스를 걸으며 (김종억 동년기자)

출렁이는 물결에 비추인 달빛은 마치 황금 고기비늘처럼 일렁거렸고 수평선 너머에서 너울파도가 간간이 밀려오고 있었으니 환상적인 야경에 그만 넋을 놓고 한동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곳이 바로 지금 차창너머로 지나치고 있는 반암진지였다. 그 시절의 솔밭은 숱한 세월을 견디어 내고 노송(老松)이 되어 동해의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드디어 해파랑 길이 시작되는 거진항에 도착하여 기념사진을 찌고 본격적으로 산행에 들어갔다. 초입의 가파른 계단에서 숨을 몰아쉬며 오르다 보니 다리는 뻐근하다 못해 쥐가 오를 지경이었다. 능선에 올라서고 나니 그다지 높지 않은 숲길이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이어지는 능선 따라 숲길을 걸으니 마음속에 어느새 봄기운이 가득 밀려들어왔다. 더구나 동해의 푸른 바다를 조망하며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마음껏 들이키니 한층 상쾌함이 더해져 갔다.

▲‘해파랑길’ 49코스를 걸으며 (김종억 동년기자)
▲‘해파랑길’ 49코스를 걸으며 (김종억 동년기자)

어느새 몇 굽이를 돌아 ‘화진포 성(城)으로 가는 표지판이 나타나자 좌측으로는 멀리 건봉산 산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그 산에는 겨우내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있어 설산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파도가 하얗게 밀려오는 동해바다가 눈에 들어오니 최상의 멋진 코스임이 분명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한국의 산하이던가!” 어찌하여 이 평화로운 곳에 살벌한 철조망을 치고 남북이 서로 차가운 총부리를 맞대고 있단 말인가?

▲‘해파랑길’ 49코스를 걸으며 (김종억 동년기자)
▲‘해파랑길’ 49코스를 걸으며 (김종억 동년기자)

산행이 막바지에 이르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겨울에 푹 빠져 있는 화진포 호수가 한 눈에 들어왔다. 산 위에서 내려다 본 호수위에는 백색의 고요만이 물들어 있어 마치 한 폭의 동화나라를 보는 듯 한 느낌이었다.

그 산을 내려오는 끝자락이 ‘화진포성’이라 불리는 김일성 별장이 있었으니 아픈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산행이었다. 전망 좋은 별장의 옥상에 올라보니 멋진 설산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동해바다의 쪽빛 물결은 오늘따라 파고가 높아 하얗게 밀려와 부서지는 모습이 환상적이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모래사장을 걸었다. 모래에 새겨진 발자국 마다 세월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대진항 바로 옆 양지바른 곳에서 고단했던 발걸음을 멈추고 소박한 점심으로 허기를 달랬다. 이 멋진 산행 끝에 먹는 점심식사는 그 어떤 산해진미와 비교할 수 없이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소주와 막걸리를 곁들인 채, 산행담(山行談)에 열을 올리며 모두들 행복해 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슬그머니 내면으로부터 솟아오르는 행복바이러스가 멀리 퍼져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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