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자연의 싱그러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6월이다. 계절마다 제철 과일이나 해산물을 맛보는 것이 좋은데, 이맘때면 푸른 생기로 가득한 채소를 먹는 것이 제격이겠다. 익히거나 양념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것이라면 더욱 좋다. 유기농 쌈 채소와 구수한 보리밥, 숯불장작구이까지 즐길 수 있는 ‘산촌보리밥’을 소개한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
공가는 함께 공(共)과 집 가(家)로 ‘비어있던 집에서 함께하는 집으로’ 라는 슬로건을 걸고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공유주택을 말한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어린 시절 동무들과 놀이터에서 모래밭에 한 손을 묻고 다른 손으로 토닥이다가 살짝 손을 빼면 작은 동굴 같은 공간이 만들어지는 놀이를 했다. 그 놀이를 하면서 우리는 두꺼비에게 헌 집
몇 년 전부터 휴가철이 되면 아내는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매년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때마다 거의 일방적으로 필자에게 통보하곤 했다. ‘가도 되느냐?’가 아니라 ‘간다!’라고 했다. ‘가지 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예약을 다 마쳐 놓은 상태에서 그냥 참고로 알고 있으라는 식이었다.
은근히 부화가 나 필자도 아내처럼 결행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으나 불가
은퇴한 시니어들이 집을 줄인 것을 후회할 때는 명절이다. 아이들이 많은 딸네에게 안방을 내어주고, 아들 식구는 건너방, 그리고 부부는 서재에서 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며칠 간의 명절을 위해 예전의 집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없다. 그래도 장난감들이 가득한 손자들만의 방을 꾸며 자식들의 방문을 살짝 유혹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오늘날 3대가 같이 자
가뭄이 들어 세상이 모두 타들어 가더라도 마르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계곡이다. 계곡은 세상의 모든 것이 말라도 마르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계곡의 정신’은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다. 이 같은 계곡 정신을 그려 노자는 ‘도덕경’에서 곡신불사(谷神不死)라고 했다. 진정한 승자는 세월이 지나봐야 드러
강원 평창군 대화면 백석산 중턱에 ‘화이트 하우스 온 더 힐(White house on the hill’이란 곳이 있다. 인생의 2막을 코앞에 두고 인천과 서울에 살고 있는 필자를 비롯한 일곱 명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특별한 계기에 합심해 언덕 위에 화이트칼라로 아기자기하게 지어놓은 팬션이다. 쉬고 싶을 때는 누구든, 언제든 올 수 있는 곳이다.
어느 해인
어느덧 강물을 배경으로 저녁노을의 붉은빛이 장막처럼 내려오더니 해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의 강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강물에 어린 석양의 은빛 너울은 700리 낙동강의 전설 속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그 멋진 풍경을 가슴에 품고 어느새 어둠이 점령해 버린 길을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꾸역꾸역 달리고 있었다.
어느덧 피로가 덕지덕지 몰려와 몸과 마음이 지쳐갈
정열과 환희가 넘치는 섬 필리핀 보라카이 섬을 다녀왔다. 눈부신 햇살, 블루레몬에이드 같은 바다, 먹어도 먹어 도 물리지 않는 망고쥬스. 우리가 꿈꾸는 홀리데이 그 이상을 채워줄 보라카이를 소개해 본다.
필리핀은 총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진정한 다도해 국가로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섬을 자랑한다. 그 중에 800여 개의 섬에 사
몇 시간을 달려왔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부모님을 따라 청량리역에 내린 시각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다. 청량리역을 나서면서 필자 입에서 나온 일성은 ‘아부지! 하늘에 호롱불이 좍 걸려 삣네요’였다. 그때가 필자 나이 9세이던 1966년 가을이었다.
필자는 경주 인근 작은 산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었다. 초등
필자에게 외할머니에 대한 아련한 기억은 안방 한편 하얀 창호지를 바른 창살 한 부분에 한 뼘 정도의 작은 유리 조각을 덧대어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 앞에 앉아 계셨던 모습이다. 할머니의 쇠약한 손에는 항상 갈색의 묵주가 들려 있었고 시선은 우물이 있는 마당과 함께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을 향해 있었다. 한옥이라 대문이 열릴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라도 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