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히 부화가 나 필자도 아내처럼 결행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으나 불가능했다.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 중에 같이 휴가를 떠날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찾아낸 방법이 혼자 휴가를 떠나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진정한 휴가는 ‘아내와 같이 가지 않는 나만의 휴가’라고 으스대기도 한다. 이런 필자에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 아니냐고 하면서도 은근히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내의 일방적 여행 통보를 걸고 넘어져서 몇 년 전부터 ‘나 홀로 휴가여행’을 즐기고 있다.
작년 휴가는 늦가을에 제주로 갔다. 서귀포시 어느 수도원에서 주관하는 명상과 걷기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매일 주는 대로 먹고 데려다 주는 곳에 내려서 하루 종일 걷고 다시 숙소에 오면 아무생각 없이 자면 되는 일정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서울에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아주 수동적이며 생각이 필요 없는, 그래서 일상을 보내면서 머리를 텅 비울 수 있는 며칠 동안의 시간이 기다려졌다.
필자와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이 40여 명 정도 됐다. 부부가 같이 온 팀도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온 나이 지긋한 여성 시니어가 많았다. 혼자 온 사람은 필자가 유일한 것 같았다. 자녀와 엄마가 같이 온 세 팀이 있었는데 그 중에 두 팀은 초등학교 6학년 딸과 엄마 커플이었고, 한 팀은 10대 후반의 심신 장애가 있는 아들과 엄마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자아이들은 같은 학교 친구라고 했다. 아주 활발하고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대체로 어른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얘기했는데도 오고 싶다고 해서 양쪽 집 엄마들이 따라나선 여행이라고 했다. 어른들도 힘든 걷기코스를 날아다니듯이 뛰기도 하면서 잘 걸었다. 문제는 그 중 한 엄마였다. 사사건건 딸아이의 행동을 참견하고 잔소리를 했다. 심지어 밥 먹을 때 반찬 가리는 것까지 나무라곤 했다. 같은 상에서 밥을 먹던 필자가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다. 몇 번은 외진 곳에 데려가서 심하게 야단을 치기도 했다.
반면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는 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용눈이 오름을 오르는 내내 아들 뒤를 따라가면서 멋진 경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곶자왈 원시림의 어둡고 미끄러운 돌길을 걸을 때는 아들이 위태위태하게 걷는 모습을 뒤에서 가슴 졸이며 조용히 따랐다. 김대건순례길에서는 뜨거운 가을 햇살에 땀 벅벅이 된 아들과 제주의 쪽빛 바다를 함께 바라보며 웃음꽃을 피웠다. 떨리는 손으로 밥과 반찬을 식판에 떠서 엄마가 기다리는 식탁으로 불안하게 걸어오는 아들을 그는 미소 띤 얼굴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날 수도원 마당에선 모두 기념사진을 찍기 바빴다. 며칠 간 사이가 좋지 않던 그 모녀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딸에게 사진을 부탁한 엄마가 뒷걸음치다가 그만 벽돌에 걸려서 쿵 소리를 내면서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얼굴이 벌겋게 돼서 일어선 엄마는 관객도 아랑곳하지 않고 벽돌이 뒤에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은 딸을 심하게 나무랐다. 그때 딸아이의 말이 걸작이었다. “엄마는 내가 뒤로 넘어졌을 때 너는 눈도 없냐고 그랬잖아!”
아주 수동적이고 게으른 일상을 즐기려고 혼자 떠난 늦가을 휴가는 필자에게 자연과 타인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선물로 주었다. 몇 개월이 흘렀지만 대나무 지팡이를 들고 곶자왈 어두운 원시림 미끄러운 돌길을 위태롭게 걷는 아들 뒤에서 조용히 따르던 그 어머니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비우려고 떠난 필자에게 진정 비우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아름다운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