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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한 뇌, 섹시한 뇌-PART1] 신중년의 뇌도 섹시할 수 있다
- 무언가를 인지하고 판단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뇌가 원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뇌는 인간의 모든 행동과 사고 감정을 관장하는 기관일 뿐만 아니라 신체 각 부위의 장기를 조절 통제하고 있는 중앙 컨트롤 타워이다. 따라서 뇌가 활발히 움직이면 생각과 감정이 밝고 긍정적이 될 뿐만 아니라 신체 각 부위도 활력을 갖고 활발히 움직인다. 반면, 뇌가 주위의 여러 원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활력이 떨어지게 되면 뇌가 빠르게 늙어가 정신과 감정기능이 떨어져 정신병이나 우울병 등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중앙 조절 통제 기능의 약화를 초래하게 되어 우리 신체가 늙어가게 된다. 글 서유헌(徐維憲) 한국뇌연구원 원장/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즉 뇌력이 체력이다. 따라서 뇌를 활력 있게 건강하게 유지하고 잘 사용해야 오랫동안 젊음의 활력을 가지고 장수할 수 있으며, 잘못 쓰거나 잘 사용하지 않으면 치매를 비롯한 여러 가지 신경정신질환과 신체적 질병에 걸리게 된다.뇌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한다. 중년의 생활습관병에서 비롯된 비만을 다스릴 때도 ‘위’가 아닌 ‘뇌’를 다스려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이런 맥락과 같다. 뇌가 활력이 올라가고 건강하면 신체도 활력을 띠고, 삶의 질도 함께 올라가서 장수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뇌가 활력을 잃은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삶을 앗아가 버릴 수 있다. 우리가 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절대적 이유이다. 뇌에 있는 불로초를 잘 사용하면 누구든 100세까지 살 수 있으나 불로초를 잘 사용하지 못하면 단명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신체나이와 뇌의 나이는 비례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배우려고 해도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예전 같지 않고 반응 속도가 느려 민첩하지 못하다는 것은 변명이다.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과 열정을 잃어버릴 때 뇌는 늙어간다. 신체적 활력이나 힘은 뇌활력에 비해 더 빠르게 약해진다. 젊었을 때는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어 올렸으나 80대가 되면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기가 더 힘들다. 그러나 노력하면 80대가 되어도 젊었을 때 못지 않은 기억력을 유지할 수 있다. 뇌의 신경세포는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데 자극이 가해지지 않으면 자신이 필요 없다고 인식해 그 순간부터 정보 전달을 위한 시냅스 회로를 없애고 죽어버린다. 반대로 자극이 가해지면 시냅스 회로를 새로 만들어 정보 전달을 위해 뇌를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러므로 설사, 치매에 의해 뇌신경세포가 상당 부분 죽는다 해도 남아 있는 신경세포의 회로가 발달하면 망가진 뇌 기능의 일부를 대신하여 기억 기능, 인지 기능 등의 소실이 잘 나타나지 않아 상당기간 치매 발병이 지연될 수 있다. 뇌도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신경세포가 죽고 그 결과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 그러나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잘만 관리하면 젊음을 유지할 수 있고 기능 저하를 최대한 늦출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인 미켈란젤로는 89세로 사망할 때까지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76세에 사망하기 전까지 병석에 누워서도 생애 최고의 이론을 세우는 연구를 했다. 세기의 지휘자로 불리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역시 81세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열정적으로 연주 활동을 했다. 우리 주변에서 젊은 사람 못지않은 인지 기능을 보이는 노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나이에 구속받지 않고 활력을 유지하는 사람과 치매에 걸려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사람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뇌가 건강한 사람은 특별히 유전적으로 뛰어난 조건을 갖추었거나 좋은 약, 좋은 음식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끊임없이 뇌를 적절히 자극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낙관적 생활관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다. 뇌를 단련하고 사용하는 동안 뇌는 점차 활력을 되찾고, 필요한 에너지는 재충전될 것이다. ‘나이가 든다 = 뇌도 늙는다’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공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뇌활력을 깨우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뇌의 피로는 건망증의 최대 원인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력 감퇴, 무력감, 긴장성 두통, 근육의 긴장, 고혈압, 우울증 등의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 뇌세포를 혹사할 때 일어나는 증상과 아주 비슷하다. 뇌세포는 일정 이상 지속적인 자극을 받으면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는 ‘불응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충분히 쉬거나 수면을 취한 다음에는 다시 반응성이 회복된다. 밤을 새우고 난 다음 날이나 큰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기진맥진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험을 해 본 적이 많이 있을 것이다. 뇌는 무한대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중년기 뇌활력의 가장 큰 적은 뇌세포의 피로다. 기억 연구로 유명한 도널드 헵 박사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열심히 연구하던 47세 때 심각한 기억력 장애를 경험했다. 그는 논문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노트를 펼쳐 보니 이미 그 부분이 자신의 글씨로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 논문을 읽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당장 일을 중단하고 충분히 휴식하면서 영양을 보충했고, 그 결과 기억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노령인 지금도 헵 박사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중년에 생기기 쉬운 건망증을 노화 현상으로 당연시해서는 곤란하다. 건망증 자체가 치매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적인 피로가 오게 되면 치매가 일찍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초로 치매가 최근 증가하는 것도 누적된 스트레스에 의한 피로가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피로에 지쳐 있거나 혹사 당한 뇌가 언제 어떻게 시스템 이상을 일으킬지 알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뇌의 건강이야말로 신체의 건강은 물론 삶의 행복과 직결되어 있다. 습관적 음주와 흡연이 뇌를 깎아먹는다 피곤한 중년의 뇌를 더욱 피곤하게 하는 것은 습관적인 음주이다. 중년은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술로 풀려고 하지만, 습관적인 음주는 뇌를 전체적으로 마비시키고 위축시키며 표면에 있는 골을 넓고 깊게 만든다. 또 뇌세포가 많이 손상되고 위축되어 뇌척수액이 순환하고 있는 뇌실이 넓어지고 무게도 가벼워진다. 특히 전두엽이 위축되고 얇아져 일을 하고자 하는 동기와 자제심이 부족해지고, 끈기와 집중력이 떨어지며 쉽게 화를 내기도 한다. 알코올은 도덕심과 창의력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술이야말로 중년들에게 가장 큰 위협인 것이다. 술과 함께 담배도 뇌를 피곤하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다. 미국 예일대 정신과가 실시한 연구에서 흡연자의 뇌는 비흡연자의 뇌보다 왼쪽 대뇌피질이 얇을 뿐 아니라, 흡연량이 많고 흡연기간이 길수록 더 얇아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뇌피질은 언어와 청각 능력, 정보 전달력, 기억력과 관련된 부위로 나이가 들면서 점점 두께가 얇아져 청각과 언어능력, 기억력이 떨어지게 되는데, 담배가 이를 더 부추기는 것이다. 또한 중년의 나이에 담배를 피우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보다 심장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이 최대 4배 정도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술을 마실 때 담배를 같이 피우면 술만 마실 때보다 뇌장애, 특히 청각 기능에 더 큰 장애가 올 수 있다는 것이 최근 보고되고 있다.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뇌의 활력이 많이 떨어진다 아침밥을 먹지 않는 것은 기름이 바닥난 자동차를 끌고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까지 기다리는 것은 꽤 긴 시간이다. 장시간의 공복은 뇌에 부담이 된다. 이런 식습관이 오래간다면 뇌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또 하나 아침 식사가 중요한 이유는 체온이다. 사람은 수면 중 체온이 1℃ 정도 내려간다. 겨울 산속에서 재난을 당해 잠들면 체온이 떨어져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 있다. 체온이 떨어지면 뇌 활동도 둔해진다. 오전 중에 뇌 활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수면 중에 떨어진 체온을 올려줘야 한다. 이러한 신체 활동을 위한 준비가 바로 아침밥이다. 하루 종일 뇌가 원활하게 정보전달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40~50종에 이르는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원료 공급이 부족해 신경전달물질이 적게 만들어져 뇌 기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오전 내내 호르몬 중추인 뇌하수체 바로 위에 있는 시상하부 속의 식욕 중추가 흥분을 하게 돼 집중력이 떨어진다. 즉, 아침밥을 먹어야 탄수화물이 혈당량을 높여 정상적으로 뇌활동을 펼칠 수 있다. 아침밥을 먹지 않는 것은 기름이 바닥난 자동차를 끌고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시간의 공복은 뇌에 부담이 된다. 이런 식습관이 오래간다면 뇌뿐만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치명적일 수 있다.
- 2015-04-0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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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맞이 기획]부부가 함께해서 좋은 것들 -여행-
- 은퇴 후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평균 40년. 진짜 부부생활은 은퇴 이후에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혼이혼이 처음으로 신혼이혼을 앞질렀다고 한다. 진정한 노후 대비는 재테크가 아니라 부부간의 ‘평화로운 공존’과 ‘갈등 관리’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병이다. 하루 24시간을 함께 있어도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입을 닫는다. 많은 경우 남자는 여자가 하는 말을 잔소리로 듣는다. 공통의 대화 주제를 갖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부부가 함께 영화나 공연을 본다든지, 여행, 악기를 배우는 등 같은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것도 좋다. 어느 봄날 부부가 폼나게 차려입고 호텔에서 우아한 디너를 하는 것은 어떨까.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1.배낭여행 부부 2.패셔니스타 부부 3.만돌린 부부 4.공연에 빠진 부부 5.손잡고 학교 가는 부부 CHAPTER 1 배낭여행 부부 “우리 부부 제2의 인생은‘여행연출가’랍니다” 165개국을 누빈 국내 부부배낭 여행가 1호 김현·조동현 부부 함께 산 지 47년이 넘은 70대 부부가 여행지 멋진 곳에서도 알콩달콩 ‘뽀뽀’를 일삼는다. 남편 김현(77)씨는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운동 40분, 매일 일간지 5개를 정독하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부인 조동현(74)씨는 여행 가방을 챙기고 같이 가는 여행자들에게 연락을 하고 준비물을 체크하는 일을 맡는다. 4박 5일 삿포로 눈 축제 여행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부부를 서울 가양동 그레이스힐(실버타운)에서 만났다. “일주일 여행을 위해 70일을 준비하는 우리 부부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함께 대화하고, 여행을 하면서 함께 얘기하고, 돌아와 여행을 정리하면서 다시 대화한다. 비록 배낭여행이라도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돈은 조금씩 부족해지겠지만, 풍성한 추억과 대화가 그 자리를 메우니 가난해지기는커녕 더욱 부자가 되는 느낌이죠. 서로를 존중해주니 존경심이 느는 것 같아요. 부부가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런 좋은 시간들, 기회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며 살고 있죠.” 70대를 신나고 재미있게 보내는 비결 문화산책 ‘청류회(淸流會)’는 김현·조동현 부부의 주도 아래 월 1회 연극, 영화, 음악, 오페라, 그리고 각종 전시회와 박물관 참관은 물론이고, ‘포도주 시음회’, ‘테이블 매너 실습을 겸한 만찬’ 등의 행사를 갖는 일종의 문화단체이다. ‘2Hyun’s Travel Club’은‘대한민국 부부 배낭여행가 제1호’라는 별칭에 걸맞게 부부가 1999년부터 공동 대표가 돼 이끌어오고 있고 부부와 함께 여행 가기를 원하는 이들의 신청을 받아 해마다 3~4차례 해외여행에도 나선다. 이들 부부는 일흔을 넘긴 현재까지도 이 두 가지 일에 역점을 두고 즐긴다. 또한 “70대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자신이 좋아하면서도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에 매진하면 얼마든지 노후를 신나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방송국 PD 출신의 남편 김현 씨와 영어교사 출신의 아내 조동현 씨는 국내 최초의 부부배낭여행가로 알려져 있다. 1989년 1월 1일 처음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부부는 한 해에 2~5회씩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경험한 여행지가 지금까지 165개국에 이른다. 개중에는 여러 번 방문한 곳도 부지기수. 일본은 무려 70번이나 여행했다고 한다. 현지인도 가기 힘든 곳을 샅샅이 찾아 여행하는 데 고수다. 26년 배낭여행의 노하우일 것이다. “여행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직장 다닐 땐 시간이 없어서 벼르기만 했던 세계여행, 은퇴하고 나자마자 배낭을 둘러멨어요.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겪는 일들이 인생을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해줘요. 혼자 하면 외로울지 모르는데, 부부가 함께 하면 몇 배로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쌓이지요. 대신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관심사에 따라서 주제를 정해 여행하는 것을 권합니다.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따라서 가보거나, 반고흐의 흔적과 작품들을 보러 가는 것이지요.”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먼 곳으로의 여행이 부담스럽진 않을까. 여행이란 게 습관이 돼서 괜찮다고 김씨는 말했다.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은 부부의 대화 만약 부부에게 여행이 없었다면? “지루했겠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있어 혼자보다는 동반자와 협력해서 하는 게 신나고 효과적이지 않겠소. 서로 역할을 나눠 돕기도 하면서 말이오. 그런데 요즘은 기억이 나질 않아 아내한테 늘 확인해야 해”라며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이 부부는 여행이 부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을 ‘대화’라고 말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을 가서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서… 공통의 화제를 두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매우 뜻 깊은 일이죠.” 부부 사이에서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이 부부는 굳이 말로 다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끝으로 덧붙인 아내 조동현 씨의 말. “간혹 힘들거나 괴로운 일이 있으면 남편과 함께했던 여행의 기억 중 달콤한 추억들을 꺼내 스스로를 위로하곤 해요. 인생의 반려자와 함께 여행하는 기쁨은 말로 다 못할 만큼 큰 힘이 되죠.” 이제는 김씨의 풍부한 여행 경험과 식견을 인정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지의 역사와 다양한 정보도 함께 전해주는 ‘여행연출가’로 제인생을 산다. 최근 열 번째 책을 펴냈다. ‘요셉과 피나부부 70대 인생을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이야기’다. ‘요셉’은 남편 김씨 세례명이고, ‘피나’는 아내 조씨 세례명의 애칭이다. 에는 책 제목처럼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 부부 이야기가 담겼다. 이 부부는 이미 여행 관련 책을 다수 펴냈고, 1995년부터는 12년 동안 KBS TV 여행 프로그램 ‘세상은 넓다’에 출연한 바 있다. 신부님(장남 김환수)의 부모라서기보다는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모습은 황혼이혼이 급증하는 요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오늘도 부부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결혼생활 중 항상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늘 겸손과 배려로 상대를 존중하며, 자녀에게도 자존감을 바탕으로 사회에서의 제 역할을 강조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뤘으니 이 부부는 부러움과 공경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들 부부의 모습은 어쩌면 많은 이들이 꿈꾸는 ‘인생의 로망’일지도 모른다. #부부 배낭여행 10계명 1. 배우자를 최대한 편안하고 기쁘게 해주도록 노력하라. 2. 여행 기간의 10배에 해당하는 준비 기간을 가져라. 3. 여행 준비는 부부가 나눠서 해라. 4.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치밀한 일정을 짜라. 5. 경제적 여행을 계획하라. 6. 숙식은 가능하면 친구나 친지의 집에서 해결하라. (단, 잠자리만 부탁하고 다른 부담은 주지 마라. 그리고 그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꼭 보답하라.) 7. 가장 싼 비행기 표를 구하라. (최소 3개 회사 이상을 비교하라.) 8. 다양한 교통편을 이용하라. 9. 맛있고 멋있는 음식점에서 꼭 한 번은 식사하라. 10. 여행의 멋을 연출하라.
- 2015-03-1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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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다녀와서
- ◇‘청바지’를 즐겨라 얼마 전 친구들 모임에 갔더니 건배사로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부터)'를 외친다. 연배가 비슷한 또래다 보니 자영업 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일에 매달려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보상 욕구 심리로 ‘청바지’를 부르짖는 것 같다. 사실 그동안은 모두들 일에 매몰돼 요즈음처럼 자유 시간을 만끽하며 지내오지 못한 것 같다. 내 경우도 1975년 직장 생활을 시작해 잠시 공직, 삼성그룹 간부 임원, (주)신라밀레니엄 CEO, 일요시사 회장 등으로 일에 파묻혀 지내다 2013년부터 자유인이 되어 최근에는 매주 2회 문화 강좌 수강, 1~2회 등산 등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2013년 8월에는 백두산 서파-북파 트레킹을 계획했는데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서파, 북파 등정 및 지하삼림 트레킹으로 만족하고 아쉬운 마음에 대신 2014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를 트레킹하기로 하고 건기에 트레킹이 가능하기 때문에 10월 24일~11월 3일 사이에 친구 3명 등 일행 13명이 H여행사를 통해 카트만두-포카라-푼힐 전망대-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하게 되었다. ◇체력, 고산병, 식사 걱정할 필요 없어 안나푸르나 트레킹 계획을 세운 뒤로 히말라야에서 매일 6~9시간씩 총 80km를 팔일 동안 트레킹해야 하고 4000m 이상 고지를 오르는 데 따른 체력과 고산병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체력은 나름대로 일년 넘게 매주 1~2회 4시간 내외 등산을 했기 때문에 별다른 걱정을 안 했으나 4000m 이상 고산 경험은 처음이라 고민이 돼 출발 전 병원에서 다이막스(이뇨제)와 비아그라를 처방받았다. 고산은 산소가 상대적으로 희박해 뇌에 적정한 산소 공급을 위해 혈류량을 늘려주는 비아그라와 이뇨제 이외 별다른 처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트레킹 과정에서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어떤 때는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걷고 끼니마다 제공되는 보리차를 물통에 채워 수시로 마신 결과 처방해 갔던 약은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천천히 걷고 물 많이 마시는 것이 고산병의 약인 셈이다. 또한 20여kg의 짐, 식사 등도 걱정되었으나 여행사의 편의 제공으로 걱정 없이 트레킹만 하면 되었다. 식사는 매 끼니 한식이 제공돼 잘 먹고 영양 섭취에 충분했다. 우리 일행 13명을 위해 트레커 개인 짐과 식자재 등에 포터 15명이 동원되고 식사 준비에 조리팀 5명, 전문 안내인을 비롯한 가이드 3명 등 그야말로 ‘황제 트레킹’(그러나 경비는 300만원 미만)이었다. 일행 중 50대 중반 여성이 있었는데 등산 경험도 적어 항상 맨 꼴찌에 처졌으나 마지막 가이드가 따라붙어 전속 가이드 역할을 해 트레킹을 무사히 마쳤다. 아마도 각자 등산 장구를 메고 침식을 하며 안나푸르나를 트레킹하라면 전문 산악인 이외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봉(高峯) 무리, 일출 황금설경(黃金雪景)은 장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푼힐 전망대를 경유할 경우 닷새 동안 올라가고 사흘 동안 내려오는 긴 여정이다. 카트만두에서 국내선으로 포카라(40여분 탑승)를 거쳐 버스, 지프로 두 시간 이동 후 맛보기 트레킹을 한 뒤 힐레에 도착하면서 롯지 생활과 트레킹이 시작된다. 둘쨋날 일곱 시간 트레킹 끝에 고라파니에 다다른다. 푼힐 전망대 (3210m)를 들르기 위해서다. 이튿날 새벽 네시반 기상해 한 시간에 걸쳐 등산 후 푼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 준봉에 비치는 일출 광경은 장관이었다. 동쪽에서 뜨는 해가 서쪽에 위치한 다울라기리(8172m), 투크체(6920m), 안나푸르나(8091m) 등 고봉들의 꼭대기 만년설을 비출 때 시시각각 눈이 반사돼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다. 이곳은 모든 사람들이 고봉들의 일출 황금설경 장관을 보러 온다. 하산할 때 보니 입장료를 받던 관리인들이 없어졌다. 새벽 등정객 외에는 전망대에 오르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란다. 아침 식사 후 트레킹을 시작해 때로는 3000개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숲속 길도 지나고 만년설이 녹은 장엄한 물소리의 계곡, 수백 미터 높이의 폭포 등을 지나 츄일레 롯지, 시누와 롯지, 데우랄리 롯지 등에서 머문 후 마침내 트레킹 닷새째 저녁 때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를 지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 입구에 이르렀다. 불과 몇km 앞에 펼쳐지는 고봉들이 우리를 반기듯 그동안 끼었던 안개가 걷히고 속살을 드러낼 때 일행은 탄성을 질렀다. 전기 사정으로 일찍 잠자리에 든 후 이튿날 새벽 다섯시에 기상해 몇 백 미터 올라가 일출이 비추는 고봉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장관이었다. 푼힐 전망대는 일출시 멀리서 히말라야 황금 고봉을 감상하는 데 비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바로 지척에서 안나푸르나(8091m), 안나푸르나 사우스 피크(7219m), 강가푸르나(7454m), 안나푸르나III(7555m), 네팔 성산(聖山,등정 불허)인 마차푸차레(6997m) 등의 고봉들이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고개를 들고 지켜보는 게 또 다른 매력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분지로 돼 있어 가장 가까이 한 곳에서 여러 고봉을 감상할 수 있는 히말라야 가운데 유일한 곳이라서 많은 트레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하산하는 길은 발길이 한결 가볍다. 하산이라 해도 사흘 내내 오르락 내리락 해야 돼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가뿐하다. 등정할 때 하산하는 트레커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부러워 보였는데 지금 등정하는 사람들의 우리를 바라보는 심정이 비슷해 보였다. 밤부 롯지, 지누단다 롯지 등에서 머문 뒤 사흘 하산 트레킹을 마치게 되었다. 지누단다에서 노천 온천과 저녁 식사 때의 염소 수육 맛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포카라에서 국내선을 타고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창으로 옆을 보니 히말라야의 만년설에 뒤덮여 줄지어선 고봉들이 정겹게 느껴졌다. ◇궁(窮)하면 통(通)한다 카트만두 도착 첫날과 귀국 전날 밤은 카트만두 최고급 오성 호텔로 과거 궁전이었던 소알티 크라운 플라자 호텔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둘쨋 날부터는 고산지대여서 숙소가 롯지로 열악해 2~4인실에 투숙하고 공동 변소와 샤워장을 사용해야 했다. 공동 샤워장은 일 달러 지불하면 더운 물을 이용할 수 있으나 고산에서는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해 자칫 열을 빼앗기면 감기나 고산병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사전 준비했던 물티슈를 활용해 얼굴, 손발 등 온몸을 씻고 심지어 친구에게 물티슈로 등도 닦아달라고 해 매일 '물티슈 사워'를 했다. 그리고 첫날은 면도를 했으나 둘쨋 날부터는 도저히 면도하기 힘들어 수염을 기르기로 하였다. 일주일 기르니 제법 멋있게 자라 주변에서 ‘만화가 이모(某) 씨 같다’면서 계속 기르라고 권유하기도 하였다. 또한 옷도 등산복, 평상복, 속옷 등을 갈아입을 요량으로 많이 준비했으나 초반 하루 이틀 이외 별로 갈아입지 않게 되었다. 귀찮기도 했지만 땀을 흘려도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고 멋내기도 필요 없었다. 준비해간 체육복은 만사형통이었다. 롯지에 도착해 간편복인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잠잘 때도 보온을 위해 체육복을 입고 침낭에 드는 것이 매일 연속이었다. 그야말로 ‘노숙자’같은 생활이었다. 한 번은 등산 스틱 한 개가 고장나 ‘장애 스틱’이 되어 다소 불편했는데 친구가 맥가이버칼로 등산로 주변에 널려 있는 대나무로 지팡이를 만들어줘 트레킹이 끝날 때까지 ‘대나무 스틱’을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 행복의 근원 네팔은 1인당 국민소득이 750달러로 가난한 나라이다. 카트만두 이외 거주 국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해 트레킹하다 보면 수십 계단의 다랑이 논(주로 벼, 조 농사)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밖에 일부 국민이 트레킹 가이드, 포터, 셰르파(전문 산악인 가이드) 등 관광 관련업에 종사하고 있다. 일반 트레킹 포터들이 일주일 동안 짐을 져나르고 몇 십 달러를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이 핑돌았다. 이마저도 고루 나누기 위해 마을별로 할당하고 순번을 정해 고용한다고 한다. 2014년 10월18일 에베레스트 남동루트 쿰부 얼음폭포(5800m) 눈사태로 사망 14명, 실종 3명 사고 당시 셰르파 사망 보상금이 1인당 415달러에 불과해 셰르파 300여명이 파업을 벌인 일도 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네팔인들은 대체로 낙천적이다. 40여 kg의 무거운 짐을 이마에 메고 3000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힘들겠지만 ‘나마스테(Welcome)’인사하면 웃으면서 ‘나마스테’한다. 저녁 식사 때 포터, 가이드, 조리팀 등 일행은 별도로 식사를 하는데 식사 전, 식사 중, 식사 후 그들 나름의 노래를 부르며 즐긴다. 트레킹하면서 마을을 지날 때 어른, 어린 아이들을 보면 항상 밝게 웃는 낯이고 얼굴이 평화롭다. 카트만두만 해도 거리가 무질서하게 복잡하고 매연이 심해 몇 분만 걸어가도 목구멍이 따가울 정도인데 그래도 네팔인들은 잘도 참고 견디며 산다. 그동안 보도 등에 따르면 가난한 부탄, 네팔 같은 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큰 욕심 없이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처지에서 하루 하루 만족스럽게 사는 것이 비결 아닐까? 노자(老子)는 소우주(小宇宙)와 대우주(大宇宙)를 설파하였다. 대우주는 우주의 생성, 존재, 법칙 등 진리로 인간이 인식하든 안 하든 존재하는 것이고 소우주는 인간 각자 거울 속에 비친 인식으로 소우주는 각자의 지식, 경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네팔인들은 주변 환경이 열악하고 생활 수준 및 문명 정도가 낮은 데다 전기 및 통신 제약으로 받아들이는 정보에 한계가 있을 뿐더러 개별 수준 차이도 별로 없어 그 정도 생활에서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잠시나마 번뇌에서 벗어나 어떻든 그네들의 참삶의 지혜를 맛보면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현실에 감사하며 욕심을 줄이고 남과 더불어 매일 매일 충실하고 즐겁게 살아갈 것을 기약해본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날인가? 19세기 미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철학자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 말한 ‘당신이 쓸모없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던 내일이다(Today that you wasted always is tomorrow that the one who died yesterday wanted to have so desperately.)’라는 경구가 새삼 귓전을 때린다. △ 변종경(65) 일요시사 전 회장은 서울대학교를 졸업(1973)한 뒤 잠시 공직을 거쳐 미국 유학, UCLA 대학원에서 석사 취득(1985) 후 1987년 삼성물산(주) 조사부장, 경영기획부장, 1994년 삼성그룹 비서실 기획 담당 임원(이사,상무,전무), 2004년 삼성 사회공헌위원회 부사장 등 기획 분야에 주로 종사해 '기획통'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삼부그룹 계열 ㈜신라밀레니엄 대표이사에 취임해 경영 혁신을 통해 2011년 지식경제부, 중앙일보 주관 '한국을 빛낸 창조 경영인' 대상(혁신 경영 부문)을 수상하였고 2012년 일요시사 회장으로서 언론사 경영에 참여하는 등 경영자로서 경륜을 쌓기도 하였으며 2013년 자유인이 된 뒤 등산, 사진 등 다양한 취미 활동으로 그동안 못 다한 여가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 2015-03-0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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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앱] 유용한 해외여행 앱 4선
- 해외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설레기도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도 많기 마련이다. 자유 여행을 가야 할지, 여행사 패키지를 이용할지도 고민스럽고, 서툰 외국어 실력에 걱정도 앞선다. 하지만 스마트폰 앱을 잘만 활용한다면 외국어 번역은 물론, 자신만의 스타일로 직접 해외여행 일정을 꾸며볼 수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계획을 세우고, 여행지에서 활동을 기록하며, 여행 후에도 그 추억을 간직하는 데 유용한 앱 4선을 소개한다. 글 SNS 소통연구소 이종구 소장 # 위시빈 (여행일정 공유 서비스)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경험을 저장하며, 그 추억을 공유하고 싶을 때 유용한 앱이다. 글과 사진 위주의 블로그 정보와는 달리 지도, 동선, 비용, 교통, 스팟, 메모 등 통합적 정보를 연동할 수 있어 더욱 구체적이고 완성도 높은 정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스마트폰과 PC가 연동될 뿐만 아니라, 온라인 사이트(www.wishbeen.co.kr)를 이용하면 손쉽고 정확한 나만의 여행일정표 제작이 가능하다. 위시빈 주요 기능 5가지 1. 드래그&드랍 가고 싶은 여행명소를 방문 예정시간에 맞춰 일정표에 끌어다 놓기만 하면 된다. 2. 전 세계 길 찾기 기능 여행 명소 간 교통 정보를 원클릭으로 조회하고 일정에 추가할 수 있다. 3. 커스터마이즈 다른 여행자가 공개한 자유여행 일정을 커스터마이즈하여 내 여행 일정에 맞춰 원하는 대로 수정할 수 있다. 4. 위시보드 가고 싶은 장소는 Wish! 가본 장소는 Been! 여행일정을 더 편하게 만들 수 있고, 내가 가본 장소를 지도에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5. 위시빈지도 나의 여행일정을 모든 웹사이트(블로그 등)에 삽입하여 인터랙티브하게 일정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 아이쉐어링 (위치공유서비스) 해외여행 시 함께 간 가족이나 지인들과 떨어져 있게 되는 경우 상대방의 위치를 바로 확인할 수 있고, 휴대전화 분실 시에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앱이다. 위치추적 외에도 아이쉐어링의 ‘워키토키’ 기능은 전 세계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무전기를 사용하듯 무제한 무료 음성채팅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위치 숨기기/거리만 보여주기/거리와 위치 보여주기’ 등 단계별 설정이 가능해 무조건 자신의 위치가 추적되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다. # 투어자키 (해외여행 가격 비교) ‘투어자키’는 실시간 항공권 가격비교, 땡처리 항공권 조회, 해외호텔, 자유여행, 패키지여행 등 다양한 해외여행 관련 상품에 대한 가격비교가 가능하다. 이뿐만 아니라 앱을 통해 바로 예약과 결제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단체 맞춤여행 컨설팅, 해외여행 쿠폰, 해외여행 후기, 여행사·항공사·관광청 정보 등을 제공한다. PC에서 ‘투어자키’(www.tourjockey.com)에 접속하면 더 많은 정보와 행운을 찾아볼 수 있다. # 지니톡 (외국어 번역 앱) ‘지니톡’은 영어,중국어, 일본어 등 3개 국어로 이용할 수 있다. 텍스트와 직접 말하기를 통해 통역이 가능하고, 통역과 동시에?문장을 외국어로 읽어주거나 텍스트로도 보여준다. 순수 국내 음성 인식 기술이 적용돼 자연스러운 대화체 음성을 인식하고, 음성 인식 결과와 유사하거나 미리 번역된?표현을 자동 검색하는 기능을 통해 더욱 다양한 의사소통을 돕는다. 또한, 음성 인식된 결과를 수정할 수 있어 더욱 정확한 통역이 가능하다.
- 2015-02-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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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세대 이야기②] 58년 서라벌고 6人의 비정상회담
- ‘58년 개띠’에 대해 논하기 위해 대표 개띠들이 모였다. 이 여섯 명은 모두 서라벌고등학교 동창들로 같은 시대, 같은 공기를 숨쉬며 살아온 사람들. 그러나 그들 각자가 가진 다른 사고와 다른 판단들은 58년 개띠의 다양하고도 넓은 범주를 다시금 확인하게 만들었다. 58년 개띠의 목소리로 듣는 58년 개띠들의 솔직한 정서와 말랑말랑한 상상.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이창복 사장이 운영하는 분당 ‘대로 식당’에서 세상을 향해 짖는 58년들의 꿈을 이야기했다. (행여 이들이 나눈 대화가 다소 위화감이나 잘난척이 될까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 겨울철 재밌었다 싶은 어릴적 기억은? 노 원장: 개천이 얼면 그 위에서 놀았던 것. 이 사장: 대나무 스키 만들었던 거. 삼청공원 쪽에서 타고서 쭉 내려오곤 했었지. 최 사장: 그때는 꼬맹이들도 패가 나뉘었어. 산동네 애들, 아랫동네 애들. 김 고문: 산동네라고 해서 산 높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골목길 접어드는 곳만 지나면 산동네로 쳤었어. 아이들다운 텃세였지. 58년 생이라서 좋았던 건? 이 대표: 고등학교 입시를 없애는 고교평준화를 시행한 것. 노 원장: 그런데 그때 우리가 전부 다 평준화는 아녔거든. 서울과 부산만 빼면 평준화가 아녔으니까…. 우리 세대는 위아래 세대에게 치여서 무난해진 거 같아. 그래서 응집력이 별로 없는 거 같아. 손 사장: 악착같이 추구하진 않았던 듯싶어. 최 사장: 우리 58년생이 많은 혜택을 받은 세대처럼 느껴져. 쉽게 학교를 갔고, 회사를 골라서 갈 수 있었고, 사회에 나오니 조직이 확장 중이어서 그 성과도 받을 수 있었지. 이 사장: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게 좀 조심스러운 게 있어. 58년생이 80만명인데 대학교에 입학한 사람이 5만 명이 안 됐어. 우리는 그 5만 명에 들었던 사람들이고, 지금 차도 있고 집도 있는 사람들이란 말야. 그래서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는 거지. 이 대표: 우리 외의 나머지 58년생들은 우리 경험보다 훨씬 스펙트럼이 넓을 거라고 생각해. 김 고문: 우리 때도 직장 구하는 게 쉬웠다곤 할 수 없지만, 일단 직장에 들어가면 빠르게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같아. 요즘 세대들은 그에 비하면 불쌍하지. 인생후반전에 대해선 언제부터 고민했는지? 최 사장: 급작스런 친구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손 사장: IMF가 이렇게 빨리 극복될 줄은 몰랐지만 그때 회사에 있었던 사람은 살벌했거든. 매출이 30%, 40%가 빠지니까. 김 고문: 나는 한 4년 됐다. 난 건설회사만 다녔는데 그때부터 건설회사들이 무너졌으니까. 미리 나가신 분들과 대화하면서 생각이 많아졌지. 대기업 건설사에만 있다가 막상 회사 밖으로 나오니 그런 태도로는 살 수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됐고. 이 사장: 건설이나 토목 쪽은 스케일이 커서 씀씀이가 커. 그들은 목숨 걸고 일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니까. 나는 화학 쪽인데 조금 달라. 나는 우리가 뭔가 앞뒤로 낀 세대라서 아쉽다는 기분이 계속 들어. 이 대표: IMF 터지고 한 2년을 놀았어. 기술이 없는 인문계 출신이니 할 게 없더라고. 친구를 잘 만나서 프랜차이즈를 하게 됐고 운이 좋아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일찍 접하게 됐지. 행복한 노후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최 사장: 돈이냐 건강이냐 그것이 문제지. 노 원장: 이거 건강으로 할지 마누라로 할지(웃음). 김 고문: 살 때까지는 건강하자. 이 사장: 건강만 있으면 안 되고. 여러 가지가 다 있어야지. 일, 취미, 여가, 돈…. 이 대표: 그리고 더해서 배려심이 있어야지. 그게 없으면 독불장군이 되니까.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은? 최 사장: 뭐니 뭐니 해도 결혼 반지. 이 사장: 주말 되면 지쳐서 뻗어 있는 내 모습만 보던 딸들에게 뭔가 선물하고 싶었어. 아들이라면 소주라도 한 잔 하면 되는데 딸이니 어렵더라구. 그런데 상공인의 날에 제가 금탑훈장을 탔어. 그걸 탄 다음부터는 딸이 나를 아빠처럼 보더라구. 노 원장: 어머니, 아버지 유품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 이 대표: 소중한 걸 준비해놓은 건 없지만 이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나중에 날 잊어버리지 않게끔. 최 사장: 아들 둘에 막둥이 딸에 대한 사랑 같아. 김 고문: 퇴직할 때 직원들이 만들어준 감사패. 자신은 어떤 아버지였는가? 노 원장: 우리 세대가 대화에 좀 익숙치가 않아. 혼자서 결정하고 치고 나가는 거엔 강하지만 자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라. 아이들이 다만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것만이라도 기억했으면 좋겠어. 이 사장: 오늘 다들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을 껴안아. 그리고 뽀뽀라도 하라고(웃음). 애들이 감수성이 가장 예민했을 때가 우리는 가장 바쁠 때였으니…. 그게 안타깝긴 해. 최 사장: 난 아이들과 카톡을 해도 세 문자가 안 넘어. 알았어, 응, 고맙다(웃음). 손 사장: 난 카톡방을 만들어서 가족 네 명이 다 들어와 있어. 딸은 서울 살고 아들은 몬트리올에 사는데 그래도 대화가 가능해. 그런데 아들은 좀 귀찮아 해(웃음). 반대로 딸하고 아내는 굉장히 장문의 대화를 하더라고. 난 2, 3년 전부터 SNS를 하면서 가족끼리 친해지는 데 굉장히 좋았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손 사장: 난 캐나다로 이민 간 것. 한국에 있었으면 굉장히 아등바등하며 살았을 거 같아. 최 사장: 나도 여수로 내려 간 게 좋았어. 여수에는 아무 연고도 없었는데 열심히 사니 날 받아주더라고. 노 원장: 난 둘째 낳기로 한 거. 하나만 있었으면 외로웠을 거 같아요. 그리고 7천 달러 정도 생겼을 때가 있었는데 그 돈으로 보름 동안 가족여행을 떠났었던 거. 아직도 얘기할 수 있는 소재가 생긴 거지. 이 사장: 첫째는 마누라이고 둘째는 직업인데 요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전문가로서 거듭날 수 있도록 직업 선택을 잘한 것. 이 대표: 난 회사를 나왔다는 것, 도전을 해봤다는 게 잘한 거 같아. 5년 정도 고생했지만 다행히 안착됐다는 것도 그렇고. 김 고문: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고 자란 거 같아. 시키는 대로 했던 아이였지. 아직도 내 꿈이 뭔지 궁금하거든(웃음).
- 2015-02-0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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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2] 아산나눔재단 정진홍 이사장
- 정진홍(鄭鎭弘·78)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중·고교에 다닐 때 어른이 되기 전에 죽어야겠다는 생각만 했고, 죽기 전에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읽고 싶어서 대학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죽음을 살아온 사람이 어느덧 78세.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늙음의 의미, 삶과 죽음의 철학을 듣기 위해 아산나눔재단(서울 종로구 계동)을 찾았다. 편의상 대답은 평어체로 기술한다. 글 임철순 미래설계연구원장 fusedtree@etoday.co.kr 녹취·정리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사진 노진환 기자 myfixer@etoday.co.kr 언제 처음 늙었다고 느끼셨나요? 정년을 맞았을 때였다. 어느 날 문득 ‘관악산(서울대)에서 나보다 나이 먹은 사람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이라는 게 없었다면 나이를 의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003년에 은퇴를 하기 전부터 조금씩 달라지긴 했다. 예전 제자들을 만나면 내가 대부분 C D F학점을 줬다고 한다. 강의 내용을 그대로 쓴 답안지는 게을러 보여서, 좀 튀면 건방져 보여서 F학점을 주곤 했다. 지금은 이런 저런 이유로 A학점을 주려고 한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른 면, 장점이 보이기 시작하고부터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달라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변화의 계기가 정년이더라. 지금 행복하십니까? 행복하다는 표현보다는 굉장히 고맙다는 게 더 맞겠다. 참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다. 살다보니 싫은 사람, 안 만났더라면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과 안 만날 수 없어 힘든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모든 게 다 고맙다. ‘내가 참 좋은 사람들 속에서 살았구나’ 하고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 동기, 선·후배, 가족 다 고맙게만 느껴진다. 나를 도와준 사람도 많았고. 그런 이들에게 고마운 감정을 갖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면 행복 아닐까. 모든 게 다 고맙다니 그러면 죽음도 고맙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가요? 어느 때는 죽음이 기다려질 때가 있다. 굉장히 편하게, 아주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다. 죽음이 두렵다는 생각은 거의 없다. 그보다는 ‘남아 있는 이들에게 괴로움은 주고 가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염려 정도는 든다. 죽음은 굉장히 그윽한 휴식, 쉼이다. 그래서 기다려진다. 사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나는 그런 의견과는 조금 다르다. 남겨주고 싶은 것도 없을 뿐더러, 무언가가 남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까지 끼적거린 글이나 남긴 것들도 함께 가면 좋겠다. 내가 살다 간 자리가 텅 비었으면 좋겠고 쉽게 잊히면 좋겠다. 아버지의 부자연스러운 죽음(판사였던 그의 선친은 6·25 와중에 숨졌다.), 자식이 시신도 못 찾은 일, 그런 경험 때문인지 아무것도 안 남기고 가야 자식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편하지 않을까 싶다. 바람대로 잘 될 것 같다. 나이 먹으니 친구들이 자꾸 간다. 죽음은 친구만 데려가는 게 아니라 내 삶의 일부도 함께 떼어간다. 사람이라는 게 기억에서 잊히면 없어지기 마련인데 뭔가 남기려 하거나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를 생각하는 건 욕심인 듯하다. 그런 생각이 지금의 삶을 더 추스르고 아름답게 할 수 있는 힘이 되긴 할 것이다. 근데 난 그런 생각이 별로 없다. 정말 텅 비었으면 좋겠다. 의식이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한 두루 고맙다는 말을 남기는 게 전부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더욱더 노년의 삶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언가를 어떻게 해야겠다, 뭐가 되겠다는 것도 늙기 전의 생각이다. 나는 한강 근처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처음엔 한강대교에서 잠수교까지 뛰어 갔다 오곤 했다. 몇 년 지나니 나도 모르게 뛰는 게 안 되더라. 그 뒤로는 건강을 위해 속보를 했는데 언젠가부터 속보도 안 되더라. 지금은 그저 어슬렁거린다. 뛸 적에는 잠수교만 보이고 돌아서면 한강대교만 보이더니 걷기 시작하자 가로수도 보이고 가로등도 보이고 빌딩도 보였다. 이제는 어슬렁거리니 바람소리도 들리고 풀잎소리도 들린다. ‘늙음’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내게 다른 세계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뛰는 것을 잃은 게 아니라 속보를 얻었고, 속보를 잃은 게 아니라 어슬렁거림을 얻었다. 젊었을 적에 분별과 판단으로 얻은 결실을 늙어서는 베풀고 살았으면 좋겠다. 죽음이 있다는 걸 알고 살되 죽음 자리에서 삶을 바라봐야지 삶의 자리에서 죽음을 바라보면 절망스럽다. 죽음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면 어떻게 내 삶을 완성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섭섭하거나 기분이 상하거나 그러지 않나요? 고까운 일이 왜 없겠나. 그러나 억지로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안 좋은 것만 보면 자꾸 그런 것만 보인다. 좋은 것만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요즘 젊은이들이 참 괜찮다고 생각한다. 정말 우리보다는 100배 낫다. 한 방송사가 그동안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부모에게 보내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말을 듣고, 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잘 자라줘서 참 고맙다”고 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시대가 그래서 돼지같이 먹고 사는 데만 급급했는데 너희들은 음악도 하고 미술도 하고 배낭 메고 세계여행도 다니며 참 잘 자라줬다고. 서울대에는 자하연이라는 연못이 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교수가 지나가면 붙어 앉아 있던 남녀가 떨어지거나 일어섰는데 요즘은 허리를 감싸고 딱 붙어 앉은 채 인사를 한다. 나는 그 모습이 예쁘다. ‘녀석들아 오래오래 행복하거라’ 하고 속으로 기도를 하게 된다. 근데 누군가는 버르장머리 없다고 험한 말을 한다. 젊은이들이 그렇게 행복한 걸 축복을 못해줄 망정 왜 욕을 하는가. 우리 때는 뭐 잘했나? 지금 시대의 노인들은 지혜가 부족해 보이고, 있다 해도 발휘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노년의 지혜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시대마다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있다. 우리의 트라우마는 다음세대의 트라우마와 다르고 그다음 세대와도 다르다. 우리 선배들은 징병, 일제시대 이야기를 주로 하고 우린 6·25 이야기를 한다. 한 제자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5·18 광주 민주화항쟁을 기억하지 않는 이들은 한국인이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이기에 너의 트라우마를 왜 남에게 강요하느냐고 혼낸 적이 있다. 그러한 한계가 지혜를 막는 벽이 된다. 사람들은 자기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현 시대는 과거의 시간대보다 변화가 빠르고 시간차도 점점 짧아진다. 기존 세대가 변화를 체감하기 전에 이미 시대는 변해 버린다. 기존 세대가 지혜라고 알고 발언하면 그 다음세대가 적합성을 못 느낀다. 적합성이 없으면 진리가 아니다. 젊은 세대에게 노인을 배우라고 하기 전에 노인들이 그들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 경험과 지혜를 그들의 언어로 표현해야 젊은이들도 이해할 수 있다. 내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지혜 있는 어른이 없어졌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젊은이들과는 어떻게 교류하고 있습니까? 울산대에서 주 1회 ‘종교문화의 이해’ 강의를 하는데, 아이들에게 “행복하니?”라는 질문은 어색해했다. 대신 “재미 있니?”라고 하면 이해한다. 요즘 아이들은 못 먹어서가 아니라 더 맛있는 것을 못 먹어서 불행하다. 사랑을 못해서가 아니라 더 진하게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이 아이들에겐 그런 게 절박한 문제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예전엔 굶어죽고 했는데 지금 그게 문제야?”라고 말하면 안 된다. 통계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젊은이 수보다 직장이 더 많다. 실업률이 높다지만 취직할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직장을 가려 해서 문제인 거다. 그런 것도 우리가 젊은이들의 수준에서 함께 고민해야 하는데, 그런 어른은 거의 없다. 그러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지혜로운 어른이 없다고 하는 거다. 강의방식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군요. 나는 강의보다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려 한다. 수강생이 75명이나 돼 대화하기가 참 어렵다. 질문을 던지고 원하는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처음엔 눈치를 보던 학생들이 지금은 내가 뭘 물어 볼지도 모르는데 이야기하겠다고 나선다. 어른들이 3분을 못 기다려서 그렇지 그것만 기다리면 아이들은 대화를 한다. 나는 한 학기에 한 번씩 학생들에게 5천원 안팎의 비용을 들여 점심을 준비해 오도록 한다. 조교가 그 음식에 번호를 매긴 다음 제비뽑기를 해서 먹게 한다. ‘점심 바꿔 먹기’는 남을 위해 점심을 마련하는 경험을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대충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사 오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집에서 정성껏 준비해 오는 아이들도 있다. 어떤 아이들은 편지도 쓴다. 나는 이렇게 했는데 누구는 정성을 다했구나, 누구는 성의가 없구나,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게 된다. 중간고사 답안지도 임의로 나눠주어 논평을 하게 한다. 그런 다음 이름을 불러 답안지를 주고받고 얼굴을 보게 한다. 다른 학생들의 답안지를 보면 ‘이렇게 잘 하는 아이가 있구나. 그럼 나는?’하고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철학교수는 소크라테스의 말이라며 “너 자신을 알라”고 강조했다. 그거 참 마땅찮은 거다. 내가 나 자신을 몰라 죽겠는 아이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니. 그보다는 함께 고민해보자 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컴퓨터도 좀 하고, 걸 그룹 춤추는 것도 즐길 줄 알고, 랩도 들어야 한다.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젊은이들에게 욕은 하지 말아야 한다. 조언을 할 때에도 ‘이래라 저래라’가 아니라 난 이렇게 살아왔노라는 고백의 언어에서 끝나야 한다. 결국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다. “난 이렇게 살았으니 넌 이렇게 살아라” 이건 아니다. 장차 내가 꿈도 꾸지 못할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내가 무슨 당위를 논할 수 있겠는가. 교육이란, 가르침이란 자신의 삶과 경험을 고백하는 정도이지 그것을 정답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폭력’과 마찬가지다. 어려웠던 성장기를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신지. 어머니는 많이 배우신 분이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이 어려워졌을 때 친지들이 많이 도와주셨는데, 어머니는 “남의 도움을 받으면 갚아야 한다. 그러나 집안의 도움을 받으면 갚지 못한다. 니들은 그렇게 자라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집안의 도움을 의도적으로 거부하셨다. 그래서 7남매의 맏이인 나는 고아원에서 지내게 됐다. 만 17세 이상은 고아원에서 지원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까지는 고아원에서, 그 이후에는 모자원에서 지냈다. 대학 때는 서울에 계신 당숙의 도움을 받았다. 난 6·25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홈(Home)이 없었다. 해가 지면 집에 가야 할 것 같은데 갈 집이 없었다. 지금도 석양이 지고 어두워지면 괜히 초조해진다. 집에 가 드러누워 있으면서도 집에 가야 할 것만 같다. 그게 치료받아야 할 트라우마인데, 죽으면 집에 가는 것처럼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다. 정진홍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1937년 충남 공주 출생. 공주중 대전고 서울대 종교학과 졸. 서울대 대학원 석사, 미 유나이티드 신학대학원 석사,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 박사. 서울대 한림대 이화여대 교수 역임. 현재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울산대 철학과 석좌교수,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 2015-01-2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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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라이프] 천 억 자산가가 부러워하는 사나이
- ※ “아직 꿈에서 깨지 못했어요.” 인터뷰 1주일 전 유라시아 자전거 횡단을 마치고 돌아 온 그가 꺼낸 한마디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마취통증의학 교수, 삼성서울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임상교수. 지난해 8월까지 이병달 씨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화려했다. 엘리트 중 엘리트. 갑(甲) 중에서도 상갑(甲)이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를 내려놓는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훌쩍 여행을 가버리거나, 달리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것이 좋다. 거기에 젊은이들과 보드카라도 한잔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꼭 해봐야 하는 이 괴짜 의사는 지난해 8월부터 석 달간 다녀온 유라시아 횡단의 꿈에서 아직 깨지 못했다. 철인 3종 경기, 마라톤, 클라리넷 연주에서 유라시아 횡단까지 했으면서 아직까지도 “새로운 프로젝트가 하고 싶다”며 멈춰있는 것이 죽어도 싫은 이 사람. 노후에 놀 거리가 무궁무진해서 천 억원 자산가도 부러워하는 이씨를 만났다. ◇14시간 57분 철푸덩. 철인이 되기 위한 여정은 바다에서 시작된다. 겁 없이 바다에 뛰어든 사나이는 호흡은커녕 바닷물 마시기에 여념이 없다. 바다와의 사투가 끝나고 뭍으로 올라와 소금기 가득한 몸으로 사이클에 앉는다. 시간이 지나자 호흡이 안정세로 돌아오나 싶더니 이내 오르막길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하나 둘 하나 둘. 그는 다시 안장에서 박차고 일어나 페달에 온몸을 싣는다. 그러나 허벅지는 이미 폭발 직전 더블 다이너마이트. 이쯤 되니 ‘철인’이라는 수식어가 이씨에게 조소를 퍼붓는다. ‘넌 안 돼! 그러니 이쯤 되면 돌아가’. 이씨의 귓가에 맴돌며 포기를 종용한다. 한 발 두 발 세 발…. 무거운 발걸음이 더해지자, 천 발, 구백구십구 발, 구백구십팔 발…. 목적지와의 발걸음이 줄어든다. 이씨의 몸놀림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성실하게 뛰다보니 어느새 깜깜한 밤이다. 어둡고 고요한 적막을 그의 거친 숨소리가 깨운다. 그 숨소리의 끝은 철인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이다. 10미터, 9미터…그리고 피니시 라인. 이곳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리며, 바닥에 널브러진다. ‘철인’이다. 바다에 뛰어든 지 장장 14시간 57분 만에 얻은 쾌거다. 사실 이씨는 자신이 처음 도전한 철인 3종 대회를 완주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몇 달을 철저히 준비했고, 틈만 나면 체력 훈련을 했어도 말이다. “대회 전 날은 두려움 반, 기대 반이었어요. 엄밀히 말하면 두려움이 더 컸지. 나 자신도 80% 이상은 중도 포기할 줄 알았으니까요. 근데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보니 피니시 라인이더라고요. 17시간 안에 완주를 해야 철인 등록증이 나오는데, 14시간 57분이라는 기록으로 완주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했어요.” 생각보다 쉽게 결과를 얻어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이후에도 4번이나 더 완주에 성공했던 그였지만, 첫 완주 후에는 허무함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것은 클라리넷. 그러나 타고난 괴짜 철인 기질이 어디 가겠나. 결국 돌아온 곳은 트랙 위였다. “뛰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그 순간의 희열은 말로 표현 못하죠. 거기에 남들 하지 않는 것을 먼저 시작하니 성취감도 2배였습니다. 조물주가 움직이라고 사람 만들었지 가만히 있으라고 만들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 모두 저처럼 살아야 될 것 같아요. 땀 흘렸을 때 이렇게 행복한데 왜 움직이지 않는 걸까요?” ◇달리는 의사들과 팀 닥터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씨가 막 마라톤에 눈을 떴을 때 즈음. 의사들에게도 때아닌 마라톤 열풍이 불었다. 그때 이씨와 함께 춘천마라톤에 출전했던 이들이 뜻을 모아 의사 마라톤 클럽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 때만해도 단순 친목과 운동을 위한 모임이었지 이 후 뜻 깊은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하나 둘 대회에 참여하면서 ‘달리는 의사들’의 마음속엔 이미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는 것이 스멀스멀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이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마라톤 마니아이기 전에 어쩔 수 없는 의사였다. 그 당시에 일반인 마라톤 붐이 일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주최측은 외형꾸미기에만 바빴지, 참가자들의 안전은 뒷전이었다. 땅에 떨어진 동전이 녹을듯한 여름 아스팔트를 달리는 레이스에서는 참가자들이 쓰러지기도 했고, 레이스 중간에 넘어져 다치는 사람도 비일비재 했지만 결승선을 밟을 때까지는 사실상 주자 자신의 책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였다. 그래서 이씨와 달리는 의사들이 생각해 낸 것이 ‘레이스 패트롤’이었다. 2001년 동아마라톤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달리며 응급 상황을 대처하는 봉사를 시행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달리는 팀 닥터를 자처한 것이다. 레이스 패트롤에서 시작한 달리는 의사들의 활동은 ‘소아암 환우돕기 서울시민마라톤’으로 이어졌다. 행사에서 8년 동안 3억 원을 모아 소아암 환우들을 위해 기부를 하기도 했다. 이 씨의 팀 닥터 생활은 이 시기부터 시작 됐다. 레이스 패트롤 이 후 원정단, 청소년 극한 체험, 그리고 최근의 유라시아 횡단을 포함해 총 6번의 크고 작은 팀 닥터를 하며 여러 팀의 건강을 책임져왔다. 이 또한 생기 넘치는 활동을 좋아하는 그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팀 닥터만 6번이면 의사 중에도 많이 없을 거예요. 뭐 이젠 팀 닥터에 특화된 의사라고 보면 되죠. 그 동안 노하우도 많이 쌓였고요. 팀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개인의 컨디션을 극대화시키는 일. 이게 팀 닥터의 매력이자 달리는 의사의 매력이죠.” ◇모두가 부러워하는 노후의 먹잇감 “친구 중에 천 억 넘게 재산을 가진 친구가 있어요. 나는 그 친구 보면 참 답답해. 40대부터 쳐온 골프를 아직까지 치고 있다니까? 나이가 먹으니까 타수도 줄지 않아서 스트레스만 늘어난다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재미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그 친구는 저를 매우 부러워해요. 난 즐길 수 있는 먹잇감들이 아주 많거든.” 자신이 괴짜인지 모르고 친구들이 답답하다는 이씨다. 아무리 취미라도 결과가 재미있게 나와야 할 맛이 난다고 생각하는 그는 오랜 시간 골프만 쳐 온 친구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보통의 50대, 60대라면 즐기는 스포츠인데도 말이다. 노후 즐길 거리를 ‘먹잇감’이라고 표현하는 그는 노후 생활에 걱정이 없다. 활기찬 노후를 위한 먹잇감들이 다채롭게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에 재직할 당시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마라톤·자전거·수영 등 3개의 동호회와 철인 3종 경기를 하면서 끌고 온 철인클럽은 웃음으로 가득 찬 노후를 위한 포석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마라톤 대회를 열어 기부를 실천하는 ‘달리는 의사회’를 합쳐도 일주일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렇게 이씨가 동호회에 쏟은 열정은 고스란히 자산으로 되돌아왔다. 삼성서울병원에서 테니스 동호회 창립회장으로 12년, 자전거 동호회 창립멤버와 수영 동호회의 멤버로서 빠짐없이 참여하자 후배 의사들은 그에게 “종신회원이니 퇴직한다고 안 나오면 섭섭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후배 의사들도 이씨의 먹잇감을 챙겨주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한 셈이다. 놀거리, 즐길 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음에도 이씨는 새로운 먹잇감을 찾기에 분주하다. 이렇게 기발한 놀거리는 어디서 생각을 해냈는지 기자는 얘기를 듣는 내내 감탄하기 바빴다. 아마도 이 사람. 남들보다 먼저, 남들과는 다른 취미를 가지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한 사람인 게 분명하다. “에이~. 마라톤, 자전거, 수영을 합친 철인 3종은 50대 초반에 한 것이고, 이제는 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처음 할 때는 50대는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50대 이상이 반이에요. 그래서 이제는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어요. 몸도 예전만큼 말을 듣지 않는 게 느껴지고 말이죠. 그래서 가족과 즐기는 것을 찾고 있어요. 앞으로의 먹잇감은 아마 트라이 사이클(Tricycle:삼륜 오토바이)가 아닐까 싶어요. 아내와도 즐길 수 있고 말이죠. 매의 눈으로 1~2년 정도 더 지켜볼 것입니다.”
- 2015-01-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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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홀로 서서 함께 가자”
- 서울 강남구 동부금융센터빌딩,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100세 시대’를 말하는 전 부총리이자 현 SA(Senior Achievement) 대표인 강경식 대표의 눈빛은 노련함과 친절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대화 내 상식을 파괴하고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는 자유로운 사고가 그의 넉넉한 아우라가 되어 빛났다. 그가 제창한 SA는 시니어들의 성공적 노후를 위해 마련된 사회운동으로,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자유롭고도 다양한 커뮤니티를 지향하고 있다. 100세시대 참여마당, SA를 창립하게 된 배경과 시니어들의 등대로 자리하는 그의 존재감을 확인해본다. 사진 장세영 기자 photothink@etoday.co.kr Q. 100세시대를 맞이하는 현재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사실 100세시대 이야기들은 많이 하는데 우리나라의 모든 시스템이나 정책에 대한 발상 자체는 옛날 ‘환갑시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틀에서 100세시대를 생각한다는 점이 문제다. 소위 과거의 환갑시대 시스템은 인생을 초년, 중년, 노년의 삼분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공부할 때가 따로 있고, 일할 때가 따로 있다는 게 아니다. 그런 구별이 없이 일생이 하나로 쭉 연결이 되면서 이 두 가지가 함께 융합된 생활을 해야 한다. 과거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94~95년도에 21세기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해서 부문별로 모아 공론사업을 벌였다. 연구하고, 추진해봤지만 그런 것들이 지나고 나니 대개 일회성으로 끝나고 지속성이 없더라. Q. SA의 시작은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1960년대 초반에는 평균수명이 50대 초반이었다. 지금은 80대 초반 정도다. 따지고 보면 30년 정도가 길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 실제로 과거보다 늘어난 수명 연장의 혜택을 받아 현실을 살아가는 노인들이 있는데 그들에 맞춘 시스템이 필요하다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을 한번 모아봐야 겠다 해서 1년 반 전부터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한 만 명 정도 모아서 대대적으로 하려 했으나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일단 시작했다. 차차 1주년, 2주년 행사를 하며 늘려갈 계획이다. 나는 2002년부터 아이들에게 경제교육을 하고 있다. 386들이 집권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시장경제교육 을시켜야겠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뉴욕에서 JA(Junior Achievement)를 알게 됐다. 아이들에게 경제 교육을 하는 매뉴얼이 굉장히 좋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JA 코리아를 만들었다. 당시 그렇게 ‘청소년의 성공이 우리 모두의 성공이다’라고 외쳤던 ‘주니어 어치브먼트(Junior Achievement)’를 응용하여 ‘시니어의 성공이 우리 모두의 성공이다’라는 ‘시니어 어치브먼트(Senior Achievement)’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Q. SA를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슬로건이라면? ‘얼론 투게더’(Alone Together)다. “홀로서기, 그리고 함께 가자.” 각자가 자기 인생을 홀로 선다. 이제는 예전 대가족제 시대처럼 자식들한테 효도 받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얼마 안 있으면 은퇴 노인 한 명당 일하는 인구는 둘도 안 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결국은 ‘Alone!’ 각자 자기 인생을 홀로서기 해야 한다. 투게더는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사는 사회를 말한다. 오근재 전 홍익대교수가 쓴 이라는 책은 우리나라의 퇴직한 사람들이 마치 효용을 다한 쓰레기처럼 퇴적된 공간에 머문다는 내용을 담았다. 정년퇴직한 시니어는 지식과 경험을 고루 갖춘 우리 사회의 엄청난 리소스다. 그런 리소스를 활용하지 못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손해다. 이러한 인적자원을 활용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도움 되고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 자원을 어디에 투입해야 생산성을 발휘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Q. 구체적으로 실행하고자 하는 활동이라면 무엇이 있는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여러 가지 활동 중 하나가 있다. 같은 아파트 사는 시니어하고 같은 아파트 사는 아이하고 함께 베란다에 상자 등을 놓고 농작물을 심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본인과 아이에게 정서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농작물을 심고 관리하는 것은 시간도 할애해야 하고 손이 많이 간다. 이런 일을 시간이 비는 시니어들이 함께 하면 좋지 않겠나 하는 거다. 지역사회 발전에도 도움 되고, 자원으로서 은퇴 시니어들도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하게 되고, 이런 것이 ‘투게더’다. 이 활동을 실행한 날 참여한 사람이 250명 정도 있었는데, 다들 취지는 좋다고 한다. 그리고 이걸 앞으로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이냐 하는 이야기들이 처음부터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우리는 이익 단체가 아니다. 나는 SA에 대해서 보통 생각하는 단체의 콘셉트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있다. 사실 SA에 모인 사람들 중 상당수도 무언가를 내걸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런생각을 바꾸는 데도 오래 걸렸다. 1968년에 만들어진 해외의 어떤 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4살부터 19살까지 학년 구분이 없이 다닌다. 교과서, 커리큘럼, 교실도 없다. 전부 앉아서 논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친구에게서도 배울 수 있고 선배나 후배에게서도 배울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을 게시판에 적어내면 아이들이 사인을 해서 함께 클래스를 만들고, 아이들 한 표, 선생님도 한 표, 교장도 한 표 이런 식으로 규율도 만들고 한다. 짜여진 틀 대신 자기 하고 싶은 것에 대해 파고들 수 있어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에도 잘 간다. 그야말로 행복한 생을 사는 아이들이다. 우리 아이들은 살아갈 때 문제가 생기면 엄마부터 찾는데, 그 아이들은 문제해결능력을 스스로 키웠다. 교육이라는 것은 지식을 전수 받는 것인데, 요즘은 지식을 얻기 위해선 웹서핑만 하면 가능한 시대다. 그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발적으로 찾아 몰입하는 것을 더 중요시 해야 한다. SA도 똑같은 것이다. 회원들 각자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함께 여행도 가고, 국내 탐방도 가고,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 하면 그것도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하고. 나는 성과가 천천히 나오더라도 계속 갈 생각이다. ‘Slow but Steady’. Q. SA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스마트폰 번호와 자기 이름만 있으면 가입이 된다. 이메일 주소는 옵션이다. 전화번호는 있어야 그래도 소통이 되니까. 그 정도의 최소한의 소통 창구만 있으면 된다. 다른 무엇도 필요치 않다. 우리는 주로 문자로 소통한다. NSI(국가경영전략연구원) 사이트를 빌려 쓰는데, 홈페이지는 따로 만들어 갈 예정이다. 나중에 독자적으로 운영될 정도가 되면 사단법인 같은 구조는 복잡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로 운영하고자 하는데 현재 고민 중이다. NPO와 같은 형태의 단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할수 있겠다. Q. SA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미국에는 연령제한금지법이 있다. 우리나라도 연령제한금지법을 만들고자 한다. 활동하고 싶은 사람에게 제도적으로 장애가 되는 것은 없어야 한다. 소위 평생 경력으로 사는 데 방해되는 요소를 차단하자는 의미다. ‘돈 달라고 안 한다. 취직시켜달라고 안 한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텐데 못하게 막지는 말아라’는 것이다. 그게 민주주의 사회이고 시장경제 사회다. 이런 데에 관심이 있고 참여 가능한 사람만 모아서가고자 한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다 설득하고 이끌어 갈 수는 없다. 그러니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 다. 단, 무언가를 숨기거나 패거리를 만들진 않는다. 열려 있다. 전화번호만 있으면. 그래서 ‘참여마당’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강압적으로, 동기 없이 참여만을 강요하는 단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우리는 오는 사람 안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 방식이다. 기존과는 다른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기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우선은 익숙해지게 하는 것 자체가 목표다. 그런 방침이 받아들여지는 것 자체가 내가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다 흥미를 보이고 인연이 되면 이야기를 해서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언론에 공개된 오비들도 일부 소식지에 알리는 정도다. 입소문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SA를 통해서 여러 가지 활동이 있을 수 있다. 함께 북카페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떠한 부조리에 대해 사진을 찍어 신고하는 활동을할 수도 있는 것이고, 동네에 독거노인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이들을 돌보고 약간의 돈을 줄 수도 있고. 이렇게 하면 공무원을 채용하는 것보다 큰 부담 없이 사회에 필요한 일들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도움이 될 만한 걸 모아서 SA뉴스 이런 식으로 해서 몇 번 발행했다. 아직까지는 정보 위주였지만 앞으로는 활동 위주의 뉴스가 될 것이다. 그들의 활동을 알리고 그걸 보고 관심 있는 분들이 신청을 하는 것이다. 웹진도 활용할 계획이다. 운영 시스템은 준비돼 있으나 무엇이 올라 오느냐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마트폰을 통해 보고, 전달하고 쌍방향식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 Q. 삶의 성공 기준은 무엇인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내년이면 고등학교 졸업한 지도 환갑이다. 동창들끼리 고졸 환갑잔치를 하려 한다. 내가 문집을 내면 어떠냐고 제안했는데 ‘고등학교 때의 강경식’에게 ‘지금의 강경식’이 편지를 쓰자는 콘셉트였다. 그걸 나중에 아이들에게 주면 좋지 않겠나 했는데, 반대가 심해 채택은 되지 않았다. 이런 것이 어찌 보면 과거로의 복귀다. 인생이라는 것은 한 번 살지 두 번 못 사니까 그렇게라도 복귀해보자 하는 것인데, 다들 복귀하기 싫단다.(웃음) 그 친구들이 봤을 땐 내가 인생을 다 이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있다. 우리 살 때는 가난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생각을 못 했다. 선택의 기준이 좁았다. 요새 아이들도 그런 좁은 선택의 기준을 강요받는 게 안타깝다. Q. 후배 시니어들에게 던지는 화두라면? 내가 골프를 가끔 치는데, 스코어를 안 본다. 잘 치고 기분 좋은 것만 기억한다. 애써 나쁜 것을 뭐 하러 알려고 하나.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을 되풀이하지 않는 선에서 끝내고 그 기억은 털어버린다. 그리고 사람마다 취향도, 롤모델도 다르다. 그러니 자신의 고정관념을 덮어씌우는 것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 나도 누군가 조언을 구할 때 그 사람이 아주 잘못된 길로 갔을 때만 지적하는 정도다. 그 사람의 선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떻게 하라는 말을 해줄 수도 없고, 그 사람 자신도 어떠한 선택을 했다고 후회할 수도 없는 법이다.
- 2015-01-0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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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UR STORY] 도대체 제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 제주는 2009년까지 취업, 대학진학 등의 이유로 인구유출 현상이 심각했었다고. 그런데 2010년부터 인구 증가세로 전환되었다. 2010년에는 순유입자 수가 437명, 2011년 2342명, 2012년 4873명, 2013년 7824명 등 가파른 속도로 늘고 있다. 2014년에도 역시 제주 유입 인구는 고공행진 중이다. 일례로 서귀포시에서 주최하는 귀농 귀촌 교육의 경우 단 2시간 만에 마감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서귀포시에서는 이례적으로 주말반까지 만들었지만 수요에 비하면 부족한 반 편성이었다. 도대체 제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제주의 매력과 신비가 갑자기 커진 이유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벼락을 맞은 듯이 제주에 끌렸을까?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사연을 갖고 있다. 이미 여러 권의 책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아직도 그들의 사연은 우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제주도 안에서도 이런 현상에 대해 기대와 우려의 시선 두 가지를 갖고 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인생 2모작’을 꿈꾸는 이들이 제주로 몰려들면서 제주도에 귀농 귀촌 바람이 부는 것은 제주도의 1차 산업 부흥을 의미한다. 농어촌 사회에서는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고 도시 이주자들이 몰고 오는 문화 이민의 바람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들이 제주도에 뿌리를 못 내리면서 일어나는 갈등도 있고 은퇴자금을 앞세워서 부동산을 사는 바람에 제주도 땅 값이 들썩이는 역효과도 일으키고 있다. #올레길 벤치에서 터져 나온 아내의 소원, “여보, 부탁이 있어.” ‘달파란’(게스트하우스 & 카페)은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에 있다. '파란달’보다 ‘달파란’이 느낌이 있지 않은가? 달파란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김태환(52)씨는 전직 국어 교사다. 지금은 교사직을 명예퇴직하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으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달파란 게스트하우스는 2012년 12월에 오픈한 곳으로, 3층짜리 게스트하우스 과 별채 카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에게 게스트하우스 이름이 특이한 이유를 물었더니, “처음 위미리에 위치한 세천포구 바다를 봤을 때 그 느낌이 파란 달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고 설명한다. 게스트하우스 이름도 시적이고 제주 정착기 역시 운명처럼 시적으로 시작된다. “올레길 10코스를 걸으면서 송악산 중턱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을 때였어요. 참 좋다는 느낌을 갖고 한참 앉아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이렇게 말했어요.” -여보, 내가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 줄래? -뭔데? -우리, 여기서 살면 안 될까? 제주에 살고 싶어 “그 순간 제 입에서 너무 쉽게 그래. 라는 대답이 나왔어요. 제가 살면서 몇 가지 잘한 일들이 있는데, 이 순간이 바로 그 잘한 일이에요.” 정말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지 궁금했다. 물론 경제적인 여건도 궁금했고. “처음엔 그저 먹고 사는 정도만 수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시작했는데, 다행히 먹고 살면서 대학교 다니는 애들 등록금 댈 정도는 버는 것 같습니다. 제주에서 앞으로의 꿈이요? 시간이 지나면 규모를 줄여서 제 개성에 맞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싶어요. 저만의 시간적 여유를 갖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하면서 사는 게 제 꿈입니다.” 선량하게 웃는 주인 부부의 얼굴을 보면 ‘제주의 마법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걸 내려놓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장사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 제주에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심지어는 대학생 자녀들을 서울에 두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그 것. 우리는 이것을 ‘제주홀릭’이라 부른다. “지금도 저처럼 중년 분들이 많이 여행하러 내려와요. 우리 숙소에서 머물다 가는 분들 중에 진지하게 제주살이를 고민하는 분들도 많구요. 그분들에게 농담처럼 말해요. 올레길 자꾸 걷다 보면 저처럼 제주에 주저앉게 됩니다. 하구요.” #가수 장필순이 추천한 그 곳의 그 남자, “대기업에 다닐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 ‘요리하는 남자’는 애월읍 하귀리에 위치한 작은 요리 주점이다. 멋진 미소의 이영태(52) 씨는 ‘요리하는 남자’의 주인공이다. 생전 요리할 것처럼 생기지 않은 외모지만 의외로 요리하는 모습이 편안하게 잘 어울린다. 평소에도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그는 현재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고 했다. 평촌에 살다가 제주에 온 것은 2011년 2월.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부장 직까지 하고 나면 그 이후엔 설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숨막히는 일상생활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귀농을 꿈 꿨고 그렇게 귀농을 준비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말했단다. “꼭 그렇게 깡촌으로 가야 해? 촌도 있고 도시 같은 분위기도 있는 제주는 어때?” 친구가 그냥 툭 던진 말이었는데 정말로 제주에 집을 구해서 내려오게 되었다. 늦둥이 딸이 중학교 입학할 때, 서둘러 떠나왔고 시내권 중학교보다는 시골지역에 위치한 학교로 보냈다. 딸은 제주 생활에 잘 적응했고 순박한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행복한 중학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 딸은 올해 제주외고에 수석으로 입학했단다. 온 가족이 제주에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고 있었다. 원래는 농사일을 해보려고 땅을 알아봤지만 희한하게도 지금의 가게 자리가 나왔을 때, 끌리듯이 그 날 계약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50년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피 속에 요리에 대한 애정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보시다시피 작은 가게잖아요? 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규모죠. 만약에 돈 벌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장사를 했다면 지금처럼 즐겁게 살지는 못했을 거예요. 딱 지금이 좋아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요.” 그러면서 그는 어떤 요리를 파는지 상기된 표정으로 설명했다. “초임 직장 시절에 일본에 파견근무를 나가서 5년 정도 있었는데, 그때 먹었었던 일본요리들을 제 손으로 만들어서 판매하곤 해요. 제가 맛있게 먹은 음식들은 흉내 내려고 노력하면 비슷한 맛이 나오더라구요.” 메뉴판에 있는 ‘간장새우’도 얼마 전 강남에 갔다가 맛있게 먹은 메뉴인데 제주에 내려오자마자 바 로 만들어 봤단다. 반응이 썩 괜찮다며 씩 웃는 모습이 참 해맑게 느껴졌다. 얼마 전, 모 잡지에서 가수 장필순씨가 자신이 자주 다니는 명소들을 하나씩 나열하면서 소개했는데 그곳에 요리하는 남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물었더니 장필순씨가 처음 가게에 왔을 때는 장필순씨인지 몰랐다고 한다. 여러 명이 와서 음악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고 갔는데 얼마 뒤에 한사람이 찾아와서 -장필순씨, 안 왔어요? 하고 물었단다. -장필순씨가 여길 왜 와요? 하자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지난번에 같이 왔잖아요. 했다는 거다. 그때부터 장필순씨는 후배들과 자주 이곳을 찾았고 4,5개월 전부터는 이효리씨 부부도 데리고 왔단다. 아마도 행복한 주인장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술이 잘 들어가게 되는 것 아닐까? ‘달파란’의 주인장 김태환씨, ‘요리하는 남자’의 주인장 이영태씨 모두 공통점은 예전 직장보다 지금 제주에서 하는 일이 훨씬 만족스럽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충고 또한 같다. 여행지에서 봤던 제주는 잊으라고. 바다를 감상하고 잔디를 다듬고 하는 로망은 일상생활이 되는 순간 또 하나의 삶이 된다고. 조선시대 윤선도의 는 실제 어부들의 삶과 비교하면 얼마나 황당한가? 실제 어부의 삶은 관념 속 어부의 삶과는 다르다. 한없이 한가롭고 유유자적할 수는 없다. 제주의 삶도 그렇다면 적절한 비유가 될까?
- 2014-11-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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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①] '해피 END'를 위한 '해피 AND' -인생후반전을 위한 6대 키워드
- 당신이 이제 막 인생 후반전에 도착했다고 상상해보자. 나름 모든 준비는 끝마쳤다. 은퇴를 대비해 자산은 확보했고 자식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으며 즐길 수 있는 취미와 친구들도 갖춰졌다. 이제 삶을 즐기기만 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잠깐, 도리어 당신이 착실하게 준비했다고 결론 내린 것들로 인해 당신의 나머지삶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는지? 그럴 리 없다고? 전문가들은 그럴수 있다고 말한다. 생애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계획을 세운 다음에는 실현시킬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인프라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재무, 승계, 관계, 일, 보람, 건강이다. 인생 후반전을 좌우하는 6대 키워드를 차근차근 파헤쳐본다. 도움말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대표,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가나다순) 10억대 이상 자산가라면 “부동산 팔아 금융자산 만들어라” 대한민국 1% 부자도 인생 후반전 재무 리스크를 벗어나기 어렵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자산가들은 돈 버는 데 온 힘을 쏟으면서 쓰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60세가 됐을 때 번 돈이 모자란다면 거기에 맞춰 사는 것을 배워야 하고 부자라면 아름답게 쓰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남들 눈을 신경 쓰다 무리한 길에 발을 들여놓는 이들의 불행한 사연은 볼 때마다 안타깝다. 목돈이 있는 사람들은 은퇴 연령이 점점 빨라지고 있는 데다 저금리 시대에 투자처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 질문들에 대해 강창희 트러스톤 연금포럼 대표는 부동산 자산을 서서히 줄이고 금융 자산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2014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 부자의 총자산 구성비를 살펴보면 △부동산 자산 54.1% △금융 자산 39.6% △기타 자산(예술품·회원권 등) 6.3% 등인 것으로 나타나 부동산 비중이 높았다. 이러한 자산의 부동산 쏠림현상은 고도 경제성장기와는 달리 ‘부동산 불패 신화’가 끝난 지금은 잠재적인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노후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소득의 기회가 줄어들 뿐더러 노후자금 및 의료비용 지출이 늘어나게 돼 결국 부동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매물화 되는 부동산은 부동산 가격시장에 악순환을 몰고 올 수 있다. 이상건 미래에셋 상무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금융자산 비중이 줄어드는 현실과는 반대로 노후 생활에 적합한 금융자산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적절한 가계자산 정책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식이 가업 승계할 자질이 되는지 냉정히 판단해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로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였으며 의 저자로 역사에 남게 된 성군이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황제이자 친아들이었던 콤모두스는 잔인한 폭정, 무능함으로 문제만 일으키다가 결국 암살당한다.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업적만을 남긴 아들은 이후 전개되기 시작한 로마의 멸망을 열어젖힌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내가 세운 집안의 미래를 자녀가 완전히 보장해주진 않는다는 건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입증된 얘기다. 이상건 상무는 노후에 도달하면 가업을 자식에게 승계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으로 매각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식에게 승계할 경우에는 가업에 대한 보람이나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 그러나 자식의 자질이 부족하면 전문경영인을 두거나 매각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수십 년을 일군 사업을 자식이 한순간에 망쳐 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가업 승계의 경우 아들 가운데 물려줄 인재가 없다고 판단되면 딸을 매개로 데릴사위를 들여 가업을 물려주기도 한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면 장기적으로 매각 계획을 세워 정리 작업에 서서히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부부와 자녀 관계 모두 새롭게 바라보라 한국영화의 거장 박찬욱 감독이 “좋아 죽겠다”고 극찬한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는 바로 2002년에 나온 박진표 감독의 . 70대 노인들의 사랑을 직설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나이와 노골적인 묘사로 인해 화제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영화에 비난을 퍼부었던 이들은 ‘다 늙어서 노인들이 추잡하게 논다’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그러니까 그런 비난을 하던 이들도 나이가 들면서) 영화의 가치는 재평가 받았다. 이러한 재평가는 시대가 노후 행복을 보다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건강한 부부관계는 노후 행복의 지름길이다.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 자녀 양육 이후 부부만 남게 되는 시기도 길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친밀감과 화목함을 키워주는 부부간 성생활이 더욱 중요해지기도 한다. 은퇴 후 자식들을 출가시키고도 부부가 최소 30년 이상 함께 붙어 살아가야 하는 까닭이다. 특히 남자가 은퇴하면 집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 다툴 여지가 많아질 수 있다. 남자들은 그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아내와 외식도 하고 여행도 하며 오순도순 느긋한 노후를 보낼 거라 기대하지만 그것도 딱 한 달이다. 나이가 든 아내들은 이러저런 취미활동을 하느라 예전처럼 남편을 돌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는 친구를 찾고 남편은 아내랑 함께 하길 원한다. 이런 경우 아내는 남편이 재취업이나 창업으로 새로운 제2의 인생을 걸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내조해야 한다. 지금껏 가장으로서 경제를 책임지기 위해 평생을 바친 만큼 남편 인생 이모작을 위한 좋은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남자도 집에서 아내에게 기대려고 하기 보다 평생 현역으로 산다는 마음으로 온전한 자신을 위해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녀 관계도 만만치 않다. 요즘 같은 저성장시대에는 그만큼 청년층의 성공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식들이 성공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결핍의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부부가 소신을 갖고 자식 교육에 나서야 한다. 예컨대 경제적으로 무리해서 외국 MBA코스에 무작정 보낸다거나 억대에 이르는 결혼 자금을 무턱대고 지원해줘서는 안 된다. 자칫 젊은이들이 냉혹한 이 사회에서 물러터진 자세로 경쟁력을 잃어 도태될 수도 있다.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은 신중년들은 미혼자녀와 대화 시간이 짧고, 성인자녀와의 교류빈도도 낮을 뿐만 아니라 자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자녀와의 관계가 취약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퇴 후 일은 필수 과제 똑같은 노후자금을 갖고 있더라도 일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크다. 소일거리라도 하는 사람은 마음이 덜 불안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은 괜한 욕심을 내거나 겁을 내기 십상이다. 강창희 대표는 3번의 정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 번째가 고용의 정년, 두 번째가 일의 정년, 세 번째가 인생의 정년이다. 젊은 시절부터 일하던 자신의 주 업종에서 은퇴(고용의 정년)한 이들은 ‘일의 정년’에 적응해야 한다. 대략 60~70세로 은퇴했지만 재취업이나 창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펼쳐야 한다. 이에 덧붙여 강 대표는 100세 시대에는 공부-취업-공부-재취업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재취업 전의 공부란 단순히 학문과 기술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을 포함한 모든 활동이다. 강 대표는 “수입을 위한 일을 하든, 자기실현을 위한 일을 하든, 아니면 사회환원적인 일을 하든 준비가 필요하다. 재테크가 아니라 평생현역이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기출 소장은 단순히 생활 유지가 아닌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 즐거운 일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에서의 그러한 추구가 재무적인 면에서나 관계적인 면에서는 물론, 건강까지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소장은 “당장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정신건강부터가 튼튼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현명하게 수입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생현역이야말로 최고의 노후대비책이다. 박기출 소장은 은퇴자들이 여가생활을 하는 주된 목적은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재미와 즐거움,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찾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성기 시절 시장 독과점을 통해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실리콘밸리의 악마라고도 불렸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리더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자선사업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아프리카 같은 저개발국가에 쏟아붓는 애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기부액은 2007년 이후 28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또한 엄청난 고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와 그자신이 보고 감명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강의 영상 저작권을 사서 일반인에게 무료로 공개한 것은 그의 기부행위가 단순히 돈만 많이 내놓는 게 아니라 인류를 위한 봉사정신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일화들이다. 건강관리는 곧 돈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죽음의 춤’이라고 불리는 그림들이 유행했었다. 부자, 수도사, 농부, 귀족 등 각계각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과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을 그린 이 기이한 그림들은 실은 전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때를 은유하고 있다. 해석하자면 ‘죽음의 춤’은 흑사병-죽음은 부자와 서민, 왕과 하층민 등 계층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건강관리는 재무나 자산 관리와 연결된다. 건강관리를 하느라 생활비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아픈 데가 많아지지만 보험 등을 제대로 들지 않았다면 과도한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또한 건강관리를 잘못해 큰병이라도 걸리면 모든 ‘은퇴 준비’가 허탕으로 돌아간다. 건강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장기화되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이상건 상무는 40대부터 건강을 위한 금연이나 절주를 비롯해 꾸준한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제적 어려움이야 수입에 맞춰 지출을줄 여가며 노후를 보내며 지낼 수 있다지만 건강을 잃는다면 평생을 질병과 싸워야 하는 고독한 현실이기에 예상보다 훨씬 힘든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 2014-11-17 1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