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집 작은방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의 아지트이다.
필자는 결혼 후 시댁에서 살다가 아이가 4세 되던 해 분가했다. 서울 장충동 시댁이 저택 같은 큰 집이었지만 독립해서 남편과 아들과 셋이서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서울 변두리 방 2개짜리 작은 아파트에 망설임 없이 너무나 행복한 마음으로 이사했었다.
시어른 참견 없이 필자가 주체가 되어 가정
꼭 필요하지만 혐오시설이나 인식이 좋지 않은 단체가 우리 이웃에 생기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지역 이기주의로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 시설이나 쓰레기 소각장, 하수 처리장, 핵 폐기물처리장, 화장장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있어야 하지만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 (not in my backyard)' 를 뜻하는 님비현상을 다들 아실 것이다.
언젠가 필자는
펜션 문화가 넘쳐흐른다. 구석구석 경치가 좋다는 곳에는 멋들어진 유럽풍의 집들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다.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로 예약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사람들의 바캉스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물론 한강변에 텐트를 치는 캠핑 족들을 비롯하여 산과 들로 캠핑 문화도 변화를 거듭한다. 젊은 사람들의 앞서가는 생각들이 선진국 문화를
등대는 배가 가야 할 길을 잡아주는 길잡이다. 사람들의 삶에도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곳, 사는 동안 길을 잃지 않고 안전한 길로 갈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는 특별한 공동체가 있었다.
사람을 잇다. 마을과 마을을 잇다. 그리고 아름다운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곳, 이것이 학습등대의 스토리이다. 시민과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학습의 장으로 특별한 곳에는 수많은
글 한만수 소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충북 영동은 워낙 산골이라서 전국적으로 소문난 난시청 지역이다. 1시간 거리에 있는 대전이며 김천만 가도 몇 개의 라디오 프로가 나오지만 영동은 FM 주파수 하나만 간신히 잡힌다.
그 시절 라든지 라는 심야 방송이 유행했었다. 별도 새도 잠든 한밤중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듣는 프로그램은 내게 신세계였다. DJ의 감미
우리 이웃에는 일흔이 지난 할머니 한 분이 아들과 함께 산다. 주변에 밭을 가지고 있다. 김장배추며 무, 파, 고추, 들깨, 상추, 시금치 등을 가꾸어 먹고 이웃에 나눠준다. 요즘엔 들깨가 초등학생 키만치 자랐고 김장할 무씨를 파종하여 꽤 긴 이랑에 싹이 터서 귀엽기조차 하다. 이른 아침 산책길을 나서면 밭에서 아침 먹거리를 위해 파를 뽑거나 오이를 따기도
한국은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 나라였지만 생활에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동안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 흥분을 하기도 했다
남편이 처음으로 혼자서 외출을 했다. 버스와 전철을 타고 혼자 볼일을 보고 와야만 하는 일이었다. 필자는 남편 혼자 보내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지만, 철저하게 채비를 갖추고 나가도록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에서 조망권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긴 것은 1970년대 후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서고부터이다. 하지만 당시엔 한강 조망권은 아파트 값을 좌우하는 요인은 되지 못했다. 살아보니 한강이 보여 좋다는 정도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서울과 신도시를 중심으로 조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후 새롭게 등장한 것이 경기도 용인시 인근 택지
50대 이상이 되어 자식들도 분가하여 빈 둥지가 되면 새로운 집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큰 아파트나 집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3대 욕구는 의식주인데 이중 집은 인간의 행복의 질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노인들의 가장 큰 바람이 자기가 사는 집에서 가족과 같이 생활하다가 죽는 것이라고 한다. 집에는 각종 추억이
시니어 어르신 한분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도서관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라는 말씀이 있었다.
키워드가 되는 단어 시니어, 도서관을 포털사이트 검색 창에 넣어보고 깜짝 놀래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겪은 내용을 올린 글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데 선풍기와 좋은 자리는 무조건 막무가내로 시니어 어른(어린학생들은 이런 단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