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를 그린 화가, 샤넬을 그린 여자’. 얼마나 대단하기에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그려냈을까? 한국 최초로 선보이는 프랑스 여성 작가의 전시회는 이렇듯 가벼운 궁금증으로 문을 두드리게 한다. 전시장에서 첫 인사를 나누듯 초기작을 접하고 생애 마지막 작품까지 감상하니 점점 그 이름이 각인된다.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
100세 시대라고 한다. 과연 100세를 산다는 것은 모든 이에게 축복일까. 저출산과 맞물린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여러 면에서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주거 문제도 마찬가지다. 라이프사이클이 바뀌면서 시니어들에게 집은 더 크고 빈 공간이 된다. ‘노후에 어디서 살고 싶은가?’라는 설문에 많은 시니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답을
블로그 글을 쓰는데 글이 자꾸 길어진다는 사람이 많다. 한 문장의 길이가 너무 길어지는 것이다. 간결한 글을 쓰고 싶은데 그게 어렵다 한다. 해답은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하세요”다. 그러나 말이 쉽지 실행하기에는 좋은 답이 아니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필사’ 방법이 있다. 간결하게 잘 쓴 작가의 글을 그대로 써 보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느닷없이 옛날 일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 기억의 편린들을 더듬어가다 보면 즐겁고 행복했던 날보다 아팠던 상처들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딸들을 향한 시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며느리인 필자가 극심한 차별을 당했을 때, 또 그때마다 단 한 번도 아내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남편. 눈앞의 억울한 현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선생님이 한 분쯤은 있다. 필자에게도 그런 선생님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던 이인기 선생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필자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충남 태안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그 시절의 또래가 모두 겪었듯 필자도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지 못했다. 필자는 소위 보릿고개를 체험한 마지막 세
자연을 마주하는 일은 거울을 보는 일과 같다. 자연이 거대하고 단순할수록 내 안의 껍데기는 사라지고 알맹이만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곳에서 느끼는 나는 아주 작고 또한 아주 크며 힘없고 미약한 존재다. 동시에 우주를 포함한 자연이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의 강렬함을 잊을 수 없다. 여행이란 교실에서 배운 지식들을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시간이 아닐까.
어르신의 전철무임이 시행되면서 어르신교통카드가 발급되었다. 십여 년 전부터는 전철·버스 환승할인제를 실시하였다. 일반인은 전철 1250원, 버스 1200원 합계 2450원이던 교통요금이 할인되어 전철 638원, 버스 612원 식으로 거리비례계산하여 합계 1250원만 부담한다. 하지만 어르신의 교통요금은 지금도 환승할인 되지 않는, 일반인보다 1200원 더
문형!
독하게 추운 겨울입니다. 한파가 그야말로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수도가 얼고 비닐하우스의 농작물도 성장을 멈추어 서민들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이은 화재 참사도 한파 이상으로 춥게 합니다. 기후 온난화를 꽤 걱정했으나 올겨울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입춘 절기가 코 앞인데 추위는 물러갈 줄 모릅니다. 예전부터 입춘
필자는 어릴 때 한옥에서 오래 살았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대문 앞에 있던 한 그루 대추나무 때문에 대추나무집이라 불렸던 아현동 집과 반듯한 서까래가 아름다웠던 돈암동 집 등 한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은 늘 넘친다.
오늘은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북촌 탐방을 하기로 한 날이다. 하늘이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차분한 날씨. 이런 날은 여행이나 산책하기에
"너무 예쁘셔요."
"그렇다고 빠지지는 마세요. 책임 못 져요."
며칠 전 남자 파트너와 홀딩을 하고 왈츠를 추는 중에 나눈 대화다. 물색 모르는 사람들은 필자가 춤을 꽤 잘 추는 것으로 오해할 것이다.
왈츠나 탱고는 가까운 거리에서 몸을 밀착시키고 춤을 춰야 하니 뭔가 ‘썸’을 타지 않을까?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분들에게 춤을 한번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