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기 선생님, 뵙고 싶습니다”

기사입력 2018-02-06 11:14 기사수정 2018-02-06 11:14

[동년기자 페이지] 영원한 내 편!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선생님이 한 분쯤은 있다. 필자에게도 그런 선생님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던 이인기 선생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필자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충남 태안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그 시절의 또래가 모두 겪었듯 필자도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지 못했다. 필자는 소위 보릿고개를 체험한 마지막 세대다. 먹고사느라 바빠 부모의 교육열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대표로 한 명만 중학교 이상의 상급학교에 다니는 ‘특권’을 누렸다. 우리 집에서는 둘째 형님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너는 초등학교 졸업하면 산에서 나무도 하고 농사일도 좀 도와라.”

아버지의 말씀 한마디에 공부와는 더 담을 쌓게 되었다. 진학을 위한 공부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이었다.

“재산이는 학교의 명예가 있어서 꼭 중학교 입시를 봐야 합니다. 입학은 안 해도 좋으니 시험만이라도 보게 해주세요!”

담임선생님이 중학교 입시원서를 직접 들고 집으로 찾아오신 것이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후다닥 달려가 보니 선생님께서 염화시중의 미소로 필자를 바라보셨다. 중학교 입시만 보는 조건으로 마침내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낸 것이다.

그때부터 필자는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변변한 참고서도 문제집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 입시를 치르고 드디어 합격자 발표날이 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합격을 해도 중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애써 발표장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지역신문인 태안일보 기자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필자가 수석을 차지해 중학교 3년간 수업료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필자 밑으로 여동생은 물론 조카들이 다섯 명이나 있었고, 타지로 학교를 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하숙비 문제가 또 앞을 가로막았다. 입학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입학 마감 하루 전날 중학교에 입학해도 좋다는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졌다.

담임선생님의 제자 사랑이 지금의 필자를 만들어준 것이다. 이인기 선생님은 그 시절 유일하게 필자 편에 서서 끝까지 응원을 해주신 은인이었다.

입학식을 마치고 주말에 선생님을 뵈러 갔다. 펄쩍 뛰시며 애들처럼 좋아해주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선생님은 평생 꼿꼿한 성품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고 사셨다. 평교사로 정년을 맞이한 것도 성품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인생을 후회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선생님은 재작년에 작고하셨다. 몇 년 전 스승의 날에 찾아뵈었을 때의 일이다. 대전 시내 아파트에서 사모님과 단둘이 사셨는데 필자가 방문한다고 하니 한참 떨어진 버스정류장까지 나와 필자를 기다리고 계셨다. 사모님 말씀에 의하면, 자식들이 온다 해도 한 번도 그러질 않았는데 필자가 도착하기 서너 시간 전부터 버스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쳐다보며 계속 서성거리셨다고 한다.

“난 선생질 40년 동안 재산이가 가장 기억에 남아. 인생 더 멋지게 살아야 돼!”

그날 헤어지는 게 섭섭하셨는지 필자 손을 꼭 잡으신 선생님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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