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에 누가 생일을 물어보면 양력 생일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고 둘러서 음력 생일을 말하곤 했다. 생일잔치도 제대로 한 기억도 없다. 조용히 생일이 아닌 것처럼 지냈다. 6월 25일이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날이 생일이었으면 떳떳하게 보낼텐데’ 하고 바라기도 했다. 태어난 연도가 1950년은 아닌 몇 년 지난 해이지만 날짜가 같아서 민족의 슬픈
예부터 서민들이 원하던 5복 중의 하나는 치아가 좋은 것을 들었다 합니다. 그만큼 사람에게 있어 치아는 생활하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본 기자는 잇몸에 통증을 느껴서 치과에 갔습니다. 통증 해당 부위의 X-Ray를 찍으면서 진료한 결과 스캘링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간호사가 진료카드 기록을 보더니, 지난 해 12월에 보험 적
봄이 되면 왜 그래야 하는지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꽃밭을 일구곤 했다. 꽃밭 가꾸기가 우리 집 연례 행사였기 때문이다. 받아 놓았던 꽃씨를 전부 꺼내서 뿌리고 물뿌리개로 물을 줘가며 내 동생들과 정성을 다해 열심히 만들었던 일들이 그립다. 또 꽃모종들을 동네를 다니며 얻어 와서 심기도 했다. 그 해에는 금낭화를 처음으로 담임선생님 집에서
6월의 중순, 아직 태양열이 그렇게 극성을 부리기에는 이른 초여름이다. 잎들이 겨우 연록에서 초록으로 바뀌려는 시간인데 그 하루 내가 김포공항을 통하여 한국을 떠나는 날에는 이미 그 전날의 극성스런 열기로 대지도 덥혀져있었고 당일의 새 기운으로 기습작전이라도 하는 양 쏟아 내리는 햇빛으로 모든 고형의 물질들은 졸아들고 녹여날 것 같은 무더위였다. 굳이 그래
6월이면 으레 옷장을 정리한다. 겨울옷과 여름옷을 바꿔 넣고 내친김에 잡동사니들도 버리느라 대청소로 접어들곤 한다.
올해도 손쉬운 서랍장부터 열어 본다. 재킷 속에 받쳐 입었던 목 긴 스웨터와 짧은 소매 스웨터가 엉켜 있다. 원래 계절이 바뀔 즈음엔 서랍 속 내용물이 엉키기 마련이다. 가끔은 계절을 거스르는 날씨 탓이다.
중년을 넘어서면 점점 어울리는
학창시절 학교가 끝나면 몇 명이 몰려 마포나루로 달려가 주위를 둘러보고 보는 이가 없으면 옷을 벗어 알몸으로 책가방과 함께 머리에 이고 얕은 모래톱 찾아 여의도까지 걸어가 놀던 생각이 난다. 밖은 땀이 줄줄 흘렀지만 한강물이 어찌나 추웠던지 덜덜 떨어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끔 그때 함께한 친구들과 술안주 삼는 걸 보면 몇 안 되는
집 밖으로 나서면 초록빛 싱그러움을 흠뻑 느낄 수 있는 6월. 그래서 이 계절에 숲길을 걷는 건 언제, 어디서나 즐겁다.
어딜 걷는다 해도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겠지만 6월에 걸으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길이 있다. 나라를 위해 충의를 다했던 사람들을 추모하면서 깊은 산 속 정취까지 느낄 수 있는 곳, 국립현충원과 서달산을 잇는
“야! 여긴 아무렇지도 않다. 거리엔 젊은 연인들 넘쳐나는데 맥주 마시고 난리가 아니다! 비상은 거기만 걸린 거지, 여긴 관심도 없다! 잘 있다 와라!”
늦은 퇴근길 전철 안. 얼마 전 전역한 듯한 젊은이와 아직 복무 중인 현역병의 통화인 듯했다. TV 뉴스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이 뉴스 앵커의 낭랑한 음성으로 들리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한참 소
11년전 여름, 그러니까 미국 시애틀에 살던 2005년 7월 중순경의 일이다.
당시 필자는 부산소재 모 수산회사의 1인 지사장으로 시애틀에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말이 지사장이지 고정수입이 없는 프리랜서형 지사여서 힘겹고 배고프던 때였다.
23세부터 23년간 당연시 여긴, 중독중의 최고라고 여겨지는, '월급'이 없어 마음이 황량한 때였다.
당시 알래
순국순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국민의 호국‧보훈의식 및 애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하고 현충일, 6.25, 제2연평해전의 정부기념식을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개최하고 있다.
인류와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 되었고, 전쟁은 시대와 장소 교리와 전투방법에 따라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따라서 승패의 요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