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기자로 활동한 지도 어느덧 만 1년이 돼가고 있다. 일상의 삶 속에서 나태(懶怠)에 빠져 글쓰기를 망각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내가 정말 글다운 글을 썼을까?” 하고 뒤돌아보며 반성을 하게 된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지난 1년 동안 한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기자생활 1년 동안 덤으로 얻은 행운도 많았다. 대학로에서 두 번씩이나 연극을 관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 그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를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보내주셨습니다.
글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누님. 이렇게 불러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이젠 누니~임 하고 소리 높여 불러도
인간에게 적당한 경쟁은 삶을 활기차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 그렇겠지만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 지나치다는 것은 이성을 잃고 감정에 휩싸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형제끼리 심한 갈등이 이어지면 어른들은 자주 이런 속담을 인용하시곤 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그리곤 실제로 더 주시곤 했다. 미워서 하나도 주기 싫은
단체 관광은 중간에 쇼핑 시간을 많이 준다. 여행사나 가이드 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요구하기도 한다. 쇼핑 재미도 여행의 큰 재미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잘 모르지만, 여성들은 입소문으로 들은 것이 많다. 주변에서 일본 간다고 하면 사다 달라고 부탁 받은 것도 있다. 그리고 가이드의 추천에 쉽게 따라간다.
일단 일본은 장수국가이다. 노벨상
해가 어스름해지기 시작하자 연신 동네 어귀를 쳐다보는 노부부. 이제나저제나 읍내에 나간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늦은 시간인데도 아들이 안 오면 부모는 슬슬 동구 밖으로 마중을 나간다. 멀리서 희끗희끗 보이는 물체가 아들인가 하고 좀 더 높은 곳이나 나무 등걸 위에 올라가 굽어보기도 한다. 수십 년 전 산골 혹은 시골에서 장이 서
“고등학교를 남보다 두 해 늦게, 고향 김천에 있는 농고(農高)로 들어갔지요. 그 무렵 구루병을 앓고 있는 사촌 누이동생과 문학을 교류하며 지냈는데, 그 누이가 이듬해 시름시름 앓다 사망했어요. 그 시절의 누이 모습이 잊히지 않아 ‘소녀’의 그림을 그려왔지요.”
창문이 열린 화실 밖, 밤나무에서 매미가 울었다. 박항률(朴沆律, 1950~ ) 화가는 창밖을
사람이 털북숭이가 아닌 다음에야 살갗을 다치지 않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나아가 추위와 더위를 견디기 위해 거기에 맞는 옷을 마련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원숭이가 아닌 다음에야 질기고 편하고 보기 좋은 옷을 입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도 마땅한 일입니다. 하물며 사람인데 자기에게, 그리고 경우에 따라, 잘 어울리는 아름
친정엄마가 필자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 오셨다. 엄마와 필자는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같은 취미를 가졌다.
엄마 집에 케이블방송을 설치한 후 요즘 우리는 좋은 영화 찾아보기에 열중하고 있다.
각각 다른 장르의 수많은 영화 중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내기란 그리 쉽지는 않다.
그래서 엄마랑 필자는 리모컨을 들고 계속 영화 제목을 돌리고 있다.
엄마는 한국영
KBS홀에서 이투데이 초대 신춘음악회 '따뜻한 콘서트'가 있다는 연락을 SNS로 받았다. 곧바로 댓글이 달리고 여러 사람들이 신청했다. 그러나 신청을 해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인지, 신청을 안해야 도와주는 것인지 헷갈렸다. 한정된 좌석일 경우 안 가는 게 도와주는 일이다.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면 다른 커뮤니티에도 소개해서 여러 사람이 가게 하는 것이 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