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인문학에서다. 자주 인용되고 너무 잘 알려진 작품에서 더 그렇다.
한국 뿐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정치인들의 필독서라고 알려진 삼국지다. 삼국지는 광활한 중국대륙이 무대고 무대 위에 오른 국가의 수가 많다. 복잡미묘함이 아마도 현대 국제사회의 모델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외교
지피지기, 즉 적을 알면 백전백승. 하지만 손주는 적이 아니다. 쌍둥이에게도 세대 차가 있다는 유머처럼 아무리 인생의 대선배이지만 손주를 접하는 방법에 자식인 부모와 차이가 있고, 또 그 아이인 손주와도 세대와 문화의 차이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모든 걸 뛰어넘어 손주랑 멋있게 그리고 알차게 지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태문 동경
얼굴은 마음의 창이다. 나이를 먹고 세월이 지날수록 사람의 얼굴 표정에서 흐르는 느낌은 어쩌면 그 사람 인격을 말해준다. ‘불혹의 나이 40이 지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옛말도 그런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어버린 얼굴 표정은 상대방을 당혹하게도 한다.
거의 20년 세월이 지나 한국에 와보니 변한 것이 참으로 많았다. 그
언젠가 필자의 아내가 막 싹을 틔운 가는 잎줄기 하나를 물컵에 담아 식탁 위에 두고 애지중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특별한 것도 아닌데 식탁위에 까지 올려놓을 필요가 뭐 있느냐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는 특별하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탁기 속에는 옷에 묻은 먼지 등을 거르는 거름망이 있는데 그게
표도로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1821~81)는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 빈민구제병원 관사에서 7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3세 때 기숙학교에 다녔고 이후 상트 페테르부르크 공병사관학교를 다녔고, 16세 때 어머니가 사망하였으며, 18세 때 폭군이나 다름없었던 아버지는 농노들에 의해서 살해당했다.
1847년 28세 때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페트라셰프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라고 가르친다. 환경변화에 대하여 적절하게 대응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아가려는 지혜다.
사람은 자주 과거에 얽매인 성향을 보인다. 어떤 변화를 싫어한다. 현재의 모습대로, 하던 대로 이어가려고 한다. 주어진 환경이 바뀌어 변화가 필요함을 인식하면서도 그 변화의 대열에 합류하기를 꺼린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
젊은 필자의 머리속에서 미국은 선망의 대상 국가였고 영화와 잡지 속에서 가장 친숙한 외국이었고 꿈이 실현되l는 머나먼 곳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1978년도에 유학생의 아내가 되어 머나먼 그곳에 가게 된다. 밤에 도착해서 꿈의 아침을 맞이하여 막상 거리를 내다보니 자동차의 왕래만 보였고 나름데로 친숙하다고 느꼈던 미국 사람들은 평일 아침 시간 다들 어떻게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말이 있다, 친구가 중요하다는 말로, 노력을 해야 친구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과연 어디까지를 친구라고 해야 하나. 50대가 되어 만나야 진짜 친구다. 필저와 그는 50대에 만났다. 그래서 친구로 잘 지내고 싶었다.
서로 도움이 되어야 친구가 된다. 말이 통해야 친구다. 그러러면 친구와 내가 열심히 노력만큼 얻어진다. 술집에
보육과 다닐 때 ‘왜 그랬을까’를 부른 쿨시스터즈 막내 은교가 과 친구였다. 그런데 은교가 하루는 친구를 데리고와서 만났다. 그친구은 이름은 옥이다.
은교는 좀 화려한 마인드였던 데 비해 그 옥이는 어린 나이부터 가장 역할을 해온 처지라 더더욱 마음이 갔다.
이 친구도 노래하는 가수였지만 가장 역할을 하고 있고 차도 없이 서울 명동에서 천호동으로, 다시
나무야 나무야 큰 나무야
사과나무야
힘에 겨워 업에 겨워
모진 삶을 살았느뇨
허리가 휘어지게
서글픈 구절로 시작하는 이 시의 제목은 ‘척추측만증’이다. 이 시인의 다른 작품들의 제목을 살펴보면 ‘인술(仁術)’, ‘골다공증’, ‘약이되는 사람’ 등 다소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연아나 박지성 등의 허리를 책임졌던 자생한방병원의 신준식(申俊湜·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