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즈 엄마의 미국 이민이야기] (22)소셜 넘버 따기
- 미국에도 우리나라 주민등록증 같은 것으로, 소셜 넘버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있어야만 운전면허증을 딸 수도 있고, 은행구좌 및 생활 모든 곳에 자기 신분을 증명할 수가 있다. 예전에는 비자가 없어도 그나마 쉽게 발행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로는 아주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였다. 첫 번째로 적법하게 비자를 만들었다면, 그다음으로 행하는 것이 소셜 국에서 자기만의 고유의 번호를 받아 평생 사용을 한다. 미국 내에서는 그 넘버 하나면 다 통할 수가 있었다. 다음으로는 운전면허증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 정도면 미국에서 생활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물론 코리아 타운이 아닌 외곽지역에서는 영어를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대체로 한인타운의 많은 한인들이 영어가 안되니, 겁이 나서 코리아타운을 벗어나지 못한다. 한인들은 코리아 타운 외곽 도로인 프리 웨이로 운전하는 것을 매우 꺼려한다. 생각해보면 아주 답답한 노릇이다. 더구나 비자가 없어 많은 한인들이 운전면허증을 딸 수가 없으니, 무면허 자들도 가끔은 있었다. 물론 불법체류자가 대다수인 멕시코인들은 거의가 무면허자 들이었다. 필자는 어렵사리 위대한 비자를 받았으니 바로 소셜 국으로 달려갔다. 지역마다 여기저기 있었으나, 그나마 영어가 부족한 것에 위안을 삼아 한인타운에서 가까운 곳으로 갔다. 아침 일찍부터 소셜 국에는 이미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다. 어찌나 많은 인간들이 들어오고 나가는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곳은 늘 그렇다고 했다. 밖에서 두어 시간을 지나서야 겨우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번호표를 빼어 들었다. 실내에도 온갖 인종들이 가득 차 있었다. 여기저기 갖가지 묘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유난히 많은 멕시코인과 흑인들, 그리고 간혹 털이 덥수룩한 무슬림 계열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독한 향수 냄새를 온몸에 품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나 야릇한 향수 냄새는 그 또한 미국의 문화였다. 오전 내내 기다려야 했다. 미국의 공무원들은 모두들 아주 천천히 일을 했다. 공무원들이 손톱은 기다랗게 붙여져 있고, 몸은 비대할 대로 뚱뚱해서 엉덩이를 씰룩 거리며 급할 것이 없었다. 한국이 빨리 빨 리가 대명사라면, 미국인들은 너무 느리고 근무가 태만한 것 같았다. 모든 것들은 세월 가는 줄 모르게, 인내심으로 기다려야만 미국의 일상적인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서 너 시가 지나서야 겨우 필자의 이름이 마이크를 통해 호명이 되었다. 두껍게 무장을 한 투명 유리 사이로 마이크가 달려있었다. 그곳에다 대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영어로 단답형 질문을 하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어딘가 모르는 어두운 분위기와 인상이 좋지 않은, 각양각색 인종들의 집합 소에서, 강하고 지독한 냄새의 분위기가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이것저것 간단한 질문과 함께, 드디어 모든 절차가 끝나고 접수증을 받았다. 소셜 번호가 담긴 카드는 약 보름 후에나 집으로 메일에 의해 온다고 했다. 온종일을 긴장감으로 기다리며 아주 힘들게 받아낸 소셜 번호 접수증, 그 종이 한 장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른다. 그것이 있어야만 미국에서 사람 구실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정식으로 운전면허증을 딸 수가 있고 비즈니스도 떳떳하게 할 수가 있게 되었다. 길게 안도의 한숨이 입안 가득 터져 나왔다. 남편에게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기 위해, 속도를 내며 프리웨이를 달려갔다. 낯선 땅의 선선한 가을바람이 창문 틈으로 불어와 축하를 해주었다. 지루한 하루에 몸은 지쳤으나 보람이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제아무리 힘든 일도 참고 인내하며, 하나하나 또 얻어 가는 것은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저녁에는 서둘러 일을 마치고 LA 코리아 타운으로 다시 나가, 조선 갈비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 2016-09-21 10:54
-
- [잠 잘 자기 위한 나만의 비법] 침대를 바꾸다
- 누구나 깊은 잠을 원한다. 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은 건강과도 연결되며 성격의 변화도 줄 수가 있다. 그 대처 방법으로 고심 끝에 침대를 바꾸었다. 결과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서로 달리 살아온 젊은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고, 한방 한 침대에서 영원토록 나란히 자는 일을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신혼의 시절에는 그렇다 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잠자는 습관이 다르면 짜증이 나고,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치가 않아 부부싸움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남편의 잠자리 습관* 필자는 한자리에서 옆으로 누워 얌전하게 잠을 자는 습관이 있다. 포근하고 아늑하게 하얀색으로 꾸민 잠자리에서 다소곳이 자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에 남편은 이불을 돌돌 말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험한 잠을 잔다. 처음에는 어려운 일이 아니니 이불을 따로 덮기로 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남의 이불까지 끌어가서 감기가 들 지경이니 다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몽륜병 환자처럼 잠자리를 옮겨 다닌다. 남편은 몸에 열이 나서 한군데 얌전하게 고이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건만 한참을 자다 보면 옆에 남편이 없다. 잠결에 깜짝 놀라 일어나 돌아보면 거실 소파에서 천연 덕스럽게 자고 있는 것이다. 또 어느 날은 다른 빈방에서 푹 퍼져 자고 있다. 하룻밤에도 온갖 군데 이불을 끌고 다니며 잔다. 거기까지는 참을 수가 있다. 새벽녘, 다시 돌아와 필자가 곤하니 자고 있는 침대로 들어 와 꽝하고 옆에 누워대면, 침대가 순식간에 꿀렁거려 필자의 몸은 위로 펑 튀기면서 그만 잠에서 깨고 만다. 조금만 움직이는 소리에도 예민한 필자에게는 눈이 휘 동그래질 일이다. 보통 화가 나는 일이 아니다. 그러면 잠결에도 온갖 인상을 찡그리며 말싸움이 시작된다. 더구나 얼굴까지 맞대고 드렁드렁 코까지 골아대면 하마 코끼리가 따로 없고, 그때부터 필자는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필자가 베개 들고 다른 방으로 가기도 그렇다. 가만히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다 얼굴 한대를 세게 때려본다. 제발, 얼굴 좀 돌리고 코 좀 골지 말라고 조용히 귀에 대고 말한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괴물소리가 멈춘다. 그나마 남은 미운 정이 각방을 쓰면 더 멀어질 것만 같아 아직은 각방을 안 쓴다. 서로가 노력을 해야 하건만 도통 반복만 거듭되니 밉기만 한데, 어떤 방법이 없었다. *침대를 바꾸던 날* 이런저런 생각 끝에 위대한 결론으로 침대를 바꾸기로 했다. 이것저것 고른 끝에 가장 큰 유럽형 킹사이즈에 가격이 만만치 않은 템퍼페딕 명품침구로 새 살림을 장만했다. 일단은 사이즈가 넓으니 거리감이 있어 아주 좋았다. 더구나 쿠션이 일반 침대와 다르니 옆자리의 움직임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잘 샀다는 생각으로 가운데를 남겨놓고 양쪽 사이드에서 선을 긋고 자기로 했다. 좋은 방법이었다. 운동장처럼 넓은 침대에서 그것도 적당히 단단해 꿀렁거리지 않으니 잠이 저절로 왔다. 역시 침대는 비싸고 좋은 것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 후로는 새로운 잠자리에 적응이 되어가며, 푹신하면서도 인체의 굴곡대로 쑥 들어가 편안하니 단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 물론 사방 팔방으로 옮겨 다니는 남편의 고질병은 고칠 수가 없는 체질적인 문제였다. 그나마 새로 산 넓고 좋은 침대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고, 부부싸움은 적당히 체념을 하면서 줄어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웬만하면 참는 습관도 적당히 늘어갔다. 세월 속에 잠버릇도 조금씩 양보를 하며 변해가고 있었다. 부부는 억지로 라도 참고 살다 보니, 모든 것이 닮아가는 것 같았다.
- 2016-08-09 14:12
-
- 화장을 처음 시작하도록 권유해 준 분
- 일본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타인을 의식하며 사는 거 같다. 필자가 40세 넘어서도 화장기 없이 용감하게 다녔더니 조금 위인 꽃꽂이선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장은 왜 안 하세요?’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자연스러운 게 좋고 편해서 그런다고 궁색한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의 얘기가 “그러면 안 된다”며 “화장을 곱게 해야 여자가 비로소 된다“고 했다. 이유는 “당신은 자신의 얼굴을 거의 안 보고도 살아갈 수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보게 된다. 그러므로 타인을 위한 배려로 언제나 밝고 고운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듣고 느끼는 게 많았다. 화가 난 얼굴, 수면 부족의 얼굴, 땀이 가득 흐르는 얼굴, 벌레 물린 얼굴 등 봐서 별로 좋은 인상이 아닌 얼굴을 보여 주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말에 동감을 했고 그다음 날부터 혼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꼭 그의 말대로 정성 들여서 화장하게 되었다. 혼자 화장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메이크업 학원’이라는 곳에 입학을 해서 초급과정을 이수했다. 화장을 두껍지 않게 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특히 이 말을 들은 후엔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표정관리까지 하고 있다. 팔자 얼굴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어느 방송이 ‘일본에서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엇일까’를 조사해서 발표한 적이 있다. 첫째가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말이었다. 일본인들은 그 말을 가장 중시하면서 그렇게 살도록 어려서부터 거의 강요당하고 살아오는 민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일본 백화점이나 길에서 어머니가 남자아이들에게 “폐 끼치지 말라”고 작지만 날카롭게 꾸중하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남에게 이유 없이 폐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가도록 교육하는 것이었다. 예쁘진 않아도 정갈한 모습으로 단장하게 남에게 얼굴 보이는 예법도 하나의 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 모두 혹시라도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폐를 끼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자주자주 생각해 가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아파트 복도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술 먹고 왕왕대는 사람들…. 우리도 조금만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사는 사람들이 될 수는 없을까?
- 2016-07-28 15:46
-
- [송유재의 미술품 수집 이야기] 검여(劍如)와 남전(南田), 그 아름다운 예맥(藝脈)
- 이재준(아호 송유재)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67년 늦가을부터 종로구 관철동의 고서점 ‘통문관’을 드나들었다. 한문 시간에 설악산인(雪嶽山人) 김종권(한학자1917~1987) 선생님의 강의가 너무 감명 깊어 교무실로 자주 찾아뵈었더니 “학교 도서관에는 관련 책들이 별로 없으니 가까운 ‘통문관’에 가서 나 등을 찾아 읽어보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주말에는 통문관 구석에 서서 역사책들을 읽으며 자연스레 서점 주인이며 서지학자인 산기(山氣) 이겸로(李謙魯·1909~2006) 선생과 가까워졌는데, 동그란 의자를 내어 주며 “맘 놓고 앉아서 책 보게”하여 여러 귀중한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 당시 그곳은 고명한 교수며 석학들의 사랑방이기도 해서 담배 심부름도 간혹 해드린 일이 있었는데, “이군, 이분이 검여(劍如) 선생이시네. 인사 여쭙게”하여 유명한 서예가 유희강(柳熙綱·1911~1976) 선생을 친견하였다. 두터운 뿔테 안경에 수염이 많은 온후한 인상이었다. 검여 선생은 통문관 3층에 서예실을 하고 계신고로 출타할 때는 작품을 통문관에 맡기고, 찾으러 오면 전달해 달라고 하셨다. 산기 선생은 가끔 당신이 부탁한 작품이라며 먹 냄새 싱싱한 화선지를 펴서 한문을 풀어 읽어 주셨다. 여러 작품을 보았으나 ‘文字香 書卷氣(문자향 서권기)’만 제대로 떠오른다. 검여 선생은 인천의 유학자 집안에서 출생하였으나 부친을 일찍 여의고 백부 밑에서 한학을 배웠다. 그러나 신학문에 뜻을 두고 성균관대학의 전신인 ‘명륜전문학교’에서 3년 과정 기초 학문을 익히고 중국으로 건너가 서화의 견문을 넓혔다. 서양미술 공부에 전념하기도 했으며 중국 위진(魏晉) 남북조(南北朝)시대(220~589)의 비학(碑學; 비석에 새긴 글씨 연구)을 비롯 서첩(書帖)을 두루두루 공부하였다. 광복과 함께 8년간의 중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그림(서양화)과 서예에 정진, 1953년 제2회 국전에는 서예와 서양화에 모두 입선하므로 서예가의 반열에 오른다. 검여(劍如)라는 아호는 “검(劍)처럼 날카롭고 돌처럼 단단하고 박처럼 둥근 글씨를 쓰고 싶어 검여(劍如), 석여(石如), 표여(瓢如)의 삼여(三如)라 하려 했지만 그 뜻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검여(劍如)라 했다”고 자호(自號)의 변을 하였다. 그의 글씨는 깊은 학문과 서법의 조예 있는 연구로 중국 위(魏)나라의 웅혼(雄渾)한 서체(書體)를 검여체로 혼융(混融) 발전시켰다. 추사 이후 제일의 서예가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68년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어 오른손을 쓸 수 없으니 서예가로서 치명상이었다. 이후 가족과 제자들의 희생적인 보살핌과 정신적인 재활의지를 불태워, 왼손에 붓을 잡고 소위 좌수서(左手書)의 시대를 열었다. 왼손 글씨만으로 세 번의 개인전을 열어 그 강인한 의지와 독특한 예술세계를 유감없이 펼쳐 보였다. 평소 그분의 작품을 소장하고자 열망하다가 1965년 작 ‘강락무극(康樂無極)’을 20여 년 전 어느 서예가로부터 입수하였다. 글의 뜻도 좋지만 그 힘차고 당당한 검여의 서체가 마음에 끌렸다. 더불어 하세(下世)하기 1년 전인 1975년에 쓴, 좌수서 현판과 행서(行書)의 대련(對聯)도 수집할 수 있었다. 옛 속담에 ‘왕대밭에서 왕대 난다’고 하였듯 검여 선생의 문하에는 남전(南田) 원중식(元仲植·1941~2013)이라는 우뚝한 수제자가 있다. 그가 제물포고등학교 2학년인 1958년부터 검여 선생과 인연을 맺어 서울대 농대를 진학한 1960년부터 검여 선생이 서거한 1976년까지 16년간 인격도야의 서예 교습을 받았을 뿐 아니라 검여 선생의 관철동 서예실에 상주, 그 서맥을 잇고자 정진하였다. 검여 선생의 뇌출혈 이후는 수족처럼 곁에서 스승을 모셔 좌수서의 그 빛나는 서예 업적을 이루는 데 수훈을 세웠다. 서울의 여러 구청 녹지과장과 서울대공원 식물과장 등의 공직에 종사하면서도 한학, 금석학, 서예의 깊은 연구로 개성 있는 글씨의 세계를 표출하였다. 검여풍의 강건한 북위(北魏)의 해서(楷書), 행서(行書), 예서(隸書), 초서(草書) 등을 두루 섭렵, 1990년에는 서예에 전념코자 공직을 내놓고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으로 이주하고 1999년에 ‘원중식 서법전’으로 남전체의 서예를 발표, 서예계를 긴장시켰다. 2003년에는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진포에 서원을 짓고 후학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서예를 지도하였다. 남전 선생이 서울에 주거할 때 수차례 찾아가 그 겸손하고 공손한 인품에 머리 숙인 적이 있었다, 이 작품 ‘피갈회옥(被褐懷玉’은 1979년 38세의 작품이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70장에 나오는 글귀로 ‘겉으로는 거친 삼베옷을 입고 있으나 마음속에는 귀한 옥을 품고 있다’는 뜻으로, 선비는 귀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은유의 의미도 있는 글이다. 힘차고 그러나 거친 갈필(渴筆)의 여백이 남전 선생의 젊은 날의 기개를 느끼게 한다. 검여 선생의 작품들과 ‘대상무형(大象無形)’, ‘만리무촌초(萬里無寸草)’, ‘일이관지(一以貫之)’, ‘수신독행(修身篤行)’, ‘도광양덕(韜光養德), ‘송암서실(松菴書室)’ 등 남전의 2000년대까지의 작품들을 펴놓고 향을 사르며 깊은 감회에 젖는다. 검여 선생이 평생 경모(敬慕)하던 소식(蘇軾, 東坡1036~1101)과 김정희(金正喜, 阮堂 1786~1856)에서 따온 소완재(蘇阮齋)라는 당호(堂號)를 말년까지 썼듯, 남전 선생도 완당(阮堂)과 검여(劍如)에서 한 글자씩 취해 완검재(阮劍齋)로 당호를 삼아 그 맥을 이었다. 이렇듯 사제(師弟)가 같은 길을 가면서도 각기 우뚝한 예술의 봉우리를 쌓고 새 길을 열어 놓으니 후학들의 홍복일 터이다. 한자 문화권의 한·중· 일 삼국에서만 모필(毛筆)로 된 붓으로 글씨를 쓰게 되면서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 우리나라는 서예(書藝)라 부르되 교육의 필수 요건으로 삼아 수천 년을 이어왔다. 붓은 부드럽기 그지없어서 마음먹은 대로 운필하기가 어려워 오랜 시간 숙련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글씨도 흉내[臨書] 낼 수 있고, 나아가 자신만의 서체도 이룰 수가 있다. 하물며 깊은 공부가 없으면 글에 마음을 실어 낼 수 없으니, 붓의 기교만 익혀 먹물로 칠한다고 다 서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말은 곧, 글씨로 쓴 사람의 인품과 심상이 배어 나온다는 말이다. 오랜 과정 꾸준히 붓을 잡고 연마해야 성과를 나타내므로, 빠른 결실만을 원하는 요즘 젊은 세대에 맞지 않아서 서예 인구가 급감하는 추세라니 통탄스럽다. 미술품 시장에서도 육칠십 한평생을 서예에 바쳐온 노대가의 작품이 고작 100만 원 미만으로 대접받고 있는 현실이 서글프다. 벼루 하나 가득 먹을 갈아 놓고 그 향에 취해도 보고, 붓을 잡고 붓장난이라도 하다 보면 들뜬 마음이 가라앉고 고요한 묵상에 잠기게 된다. 힐링은 먼 데만 있는 게 아니다.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 리뷰어.
- 2016-07-25 17:22
-
- 세탁소 창구에 비친 인간상
- 서비스업에서는 업주의 실수로 인한 손해배상은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세심하게 일하고 그 일에 대하여 철두철미한 기능을 연마하였더라도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그리고 다른 일에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일 과정에서 상호작용하여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경우가 있다. 특히 세탁업은 패브릭과 염료가 주제인 옷을 세탁하는 일이다. 세탁과정이 드리이클리닝이니까 화학용매에 의한 떼빼기다. 당연히 예민한 화학반응이 있다. 패션계가 해마다 다른 패션을 유행시킴으로 살아남는 사업이니 패션을 뒷받침하는 패브릭도 해마다 다른 제품이 나오고 옷감의 색상도 과학발달에 따르니 무척 다양하여 세탁과정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반응에 대하여 전부 대처할 수가 없다. 아무리 잘 알고 조심하더라도 옷을 손상하게 하는 경우는 발생한다. 뿐 아니라 옷은 많은 손님들이 가져 온 옷을 색깔별 옷감의 질별로 분리하여 세탁한다. 프레스과정에서는 하나하나 개별손질 한다. 마무리 된 옷들은 다시 손님이 가져 온 옷별로 포장하여야 하니 세탁물은 해쳐 집합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옷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해 전 버지니아 주의 한국인 세탁소에 흑인 판사가 옷을 맡겼다가 바지 잃어버렸다고 바지는 슈트의 일부이니 양복 한 벌 값으로 10만 불을 요구하였다는 뉴스가 CNN에 보도된 기억이 있다. 결국 그 판사는 부적절한 행동을 하였기에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는 보도까지 나왔었다. 세탁소를 할 때 내 실수로 배상을 한 경우가 여러 건인데 인상에 남는 것이 유대인 손님과의 거래다. 셔스가 세탁과정에서 찢어졌다 확실한 실수라 손님이 원하는 대로 배상하리라 하고 손님에게 얼마를 요구하느냐 물었다 손님대답이 “$40에 사서 2년 사용했으니 평균셔스 수명은 4년이다. 반은 사용하였고 반만 주면 되겠다 20불이면 충분하다” 내가 생각하여도 적절한 요구라 얼른 현금으로 지불하였다. 보통은 전액을 요구하는데 페어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여자 손님은 세탁물에 특별한 얼룩이 있고 그 얼룩이 세탁으로 빠지지 않았다. 한 번 더 세탁 할 기회를 준다. 다시 한 세탁에서도 얼룩이 빠지지않으면 다른 가게로 가져간다. 물론 세탁비는 지불하지 않는다. 얼룩이 빠졌으면 행복해 한다. 다른 가게에서도 그 얼룩이 빠지지않으면 다시 필자의 가게로 온다. “다른 가게에서도 빠지지 않았으니 이 얼룩은 세탁으로 빠질 수 없는 얼룩이 분명하다. 내가 저번에 지불하지 않은 세탁비를 주려고 왔다“고 세탁비를 지불한다. 좋은 동네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였지만 역시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 경우의 배상은 엄청나게 요구한다 증거물이 없으니 무조건 고급이고 생산 중단된 특별한 옷이라는데는 아연해진다. 손님이 얼토당토 않는 돈을 요구하면 필자도 거액의 배상이 부당하다 싶으니 비상수단을 동원하여 옷을 찾는다 찾아보면 하나같이 낡아빠진 옷이거나 싸구려 옷이다 너무 엉뚱한 돈을 요구한 게 약간의 양심을 자극하는지 무안스럽다는 표정으로 “ 이건 내 아내가 혹은 남편이 한 생일 선물이라 나에게는 정서적인 가치가 아주 높아.” 라는 변명을 한다. 무척 편리하고 좋은 변명이다. 개인의 정서적인 가치라는데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오래된 옷이라 나의 오랜 친구가 되었거든? 하는 말로 필자의 입을 막기도 한다. 손님과 업자와의 관계가 언제나 대립의 관계이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실수를 인정하고 배상하겠다고 하여도 “ 옷이란 영원히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이 아니다 언젠가는 수명이 끝나게 마련인데 지금이 그 때다” 라고 배상을 거부하는 손님도 있었다.
- 2016-07-19 14:39
-
- 글로벌 스탠더드는 없다.
- 오늘날 글로벌 스탠더드는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인 스탠더드(표준)라고 무조건 믿지 말아야 한다. 즉 병원에 가면 의사가 처방을 환자에 따라 달리 처방을 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그 나라의 경제상황을 알고 그에 맞는 처방을 내려 경제를 살려야지 세계적인 IMF의 표준이라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 현실에 꼭 어울리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항시 생각하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코드와 스탠더드(표준)의 차이점이다. 코드는 당위적이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스탠더드(표준)는 참조사항이지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ASME 코드에 나와 있는 사항은 반드시 지켜야하는 규정이다. 1997년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당시 IMF가 요구한 처방을 무조건 받아드린 적이 있고 모범 졸업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은 탄탄하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 처방전이 선진국의 표준이 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우리나라에 맞는 표준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철저한 검증 없이 무조건 받아들인 순간 국익을 지킬 힘도 유연성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불경기라 꼭 그렇게 탓할 수 없지만 IMF 사태 이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사태 이전과 달리 저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오늘날 공익이 아니라 사익 때문에 기술 표준을 놓고 사투가 벌어진다. 컴퓨터 운영체제만 하더라도 윈도우즈 애플, 선(Sun), 리눅스, 구글이 서로의 표준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 가장 맞는 스탠더드를 선택하고 이를 정책화하여 실행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표준처럼 되어 있는 기술표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만일 우리가 윈도우즈 시스템만 따라서 가게 되면 우리는 반드시 윈도우진영이 돈 벌기 쉬운 방향으로 따라가게 되어있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는 어떤 네트워크가 좋은지를 선택해야 만 한다. 나의 경우는 윈도우즈를 사용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구글의 크롬을 활용하고 있고 크롬에서 처리되지 않는 것만 윈도우즈를 활용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제운영 시스템도 스탠더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우리 실정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유연하고 상대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를 들면 IMF 사태를 맞아 우리가 무조건 받아들인 ' 자본자유화'는 논리도 실증도 명확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즉 선진국에 유리하게 적용되는 시스템을 중진국 정도의 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만일 IMF 처방이 글로벌 스탠더드고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면 이러한 사태가 발생된 후 다시 재발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수많은 나라들이 반복되는 사태가 발생되고 있음은 이론 자체에 문제가 있고 그 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개발 도상국가들이 처한 외환이나 경제위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들의 양털 깎기 작업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런 논리에서 본다면 미래학자들의 2017년~2018년 한국에 또 다른 형태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1994년 미국의 금리인상이 시작되었고 멕시코가 외환위기 들어갔다. 1997년 국제헤지펀드는 홍콩을 겨냥했다. 97년 1월 1일은 ‘홍콩반환일’이다. 이후 국제헤지펀드는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을 거쳐 한국으로 향했다. 2011~13년 유럽의 재정위기는 2008년 미국발 모기지(MBS, 주택저당증권) 사태에서 시작되었다. 국제헤지펀드는 유럽으로 향했다. 조지 소로스 등 국제헤지펀드는 유로 존 국가의 바스켓으로 형성되어 움직임이 둔한 유로화보다는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고수익이 가능한 국채를 투자했다. 물론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의 차익을 챙겼다. 2015년 미국의 금리인상이 시작되었다. 우크라이나가 이미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들어갔고, 세계 곳곳에서 분쟁 등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다. 2008년 국제금융 위기인 유로 존 재정위기는 아직 진행 중이며 중국 또한 GDP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으로 전환하고 중국의 둔화가 빨라지면 국제헤지펀드는 아세안 등 동남아시아를 겨냥하여 공략하게 될 것이다. 2010년대 동남아시아 금융 및 외환위기가 과거 역사를 보면 시작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의 긴축은 이미 시작되었고 US달러는 상승(강세)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신흥국 등 글로벌자금은 미국으로 향하고 글로벌경기는 침체로 빠져든다. 당연히 유가(금/은/동 등 원자재)는 하락하고 원자재에서 이탈한 자금도 미국으로 향하게 된다. 글로벌 모든 자금이 미국으로 ‘쏠림현상’이 나타나면서 US달러는 급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미국 셰일가스의 생산원가에 대해 많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미국 셰일가스의 생산원가는 엑슨 모빌 등 석유메이저 기준으로 3~5달러이다. 그리고 에탄과 셰일 오일은 덤이다. 2014년 상반기 천연가스 가격은 아시아는 13~14달러이고, 유럽은 8~10달러 선이다. 저장/물류비용 등 추가비용을 감안하더라도 큰 이익을 낼 수 있다. 미국의 셰일가스 수출이 본격화되면 무역수지 개선으로 US달러는 상승(강세)하게 된다. 더욱 많은 자금들이 US달러를 매수하기 위해 미국으로 쏠리게 된다. 2010년대 ‘슈퍼달러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다. 최근 이란의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세계경제는 다소 활기를 찾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유비무환의 진리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 국가적으로 국회, 사법, 행정 및 기업, 노동계가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경제를 우리 스스로 활성화시킨다면 세계경제가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일자리 확보, 복지, 안보는 성장에서 가능한 것이므로 규제혁파와 기술혁신 및 구조조정을 위해 국민모두가 힘을 모아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 국민모두가 일치단결하여 현재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면 대외적으로 브렉시트, 유럽문제, 중국의 경제난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가 있을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우리에게 좋은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따라 갈 것인가? 창의적으로 극복하여 일본을 추월해 나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아주 중차대한 시점에 와 있는 것 같다. 일본이 구조조정을 적기에 하지 못해 현재 L자형 경기침체 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시 우리는 위기이자 기회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제 표준을 개발하여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한 표준을 만들어 새로운 경제도약의 전기를 마련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 2016-06-29 11:02
-
- [강 교수의 유머코드] ‘금상첨화’에서 ‘설상가상’까지
- 오늘은 골프 유머 몇 가지로 시작해 본다. - 100 깰 때 필요한 3無 무욕(無慾), 무력(無力), 무념(無念) - 90 깰 때 무서워하지 말아야 할 3가지 벙커, 미들아이언, 마누라 - 80 깰 때 있어야 할 4가지 돈, 시간, 건강, 친구 - 70 깰 때 버려야 할 3가지 직장, 가정, 돈 - 골프 폼도 좋고 스코어도 좋으면 금상첨화 - 폼은 좋은데 스코어가 나쁘면 유명무실 - 폼은 안 좋은데 스코어가 좋으면 천만다행 - 폼도 안 좋고 스코어도 안 좋으면 설상가상 골프 사자성어 - 일취월장(一取越長) 잘 친 퍼터 샷이 길게 친 드라이버 샷보다 낫다 - 이구동성(二球同成) 세컨 샷을 잘 치면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 - 삼고초려(三高初慮) 골프 라운딩 때 세 명의 고수와 함께 치게 되면 초반부터 심려가 많다. - 사고무친(四高無親) 드라이버, 세컨 샷, 어프로치, 퍼터 네 가지를 모두 잘 치면 사장님 손님 떨어져요~친구가 없어요~ 같은 뜻의 말이라고 해도 생생하게 말할수록 설득력이 있고 기억도 오래 간다. 재미있게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의 귀에 쏙 들어온다. 재치 코드는 그래서 필요하다. 살아 있는 말은 사람의 마음 속에 쏙 들어온다. 구체적인 사례와 예증을 제시하면 더 흡인력이 있다. 다음의 예를 보자. “나이가 들어도 여러 가지 일을 성취할 수 있다.” 똑같은 내용이지만 이렇게 말하면 그저 그렇다. 다 아는 이야기요,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다.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흘려들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런 일반론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사례와 실제 인물의 경우에 연결해서 말하면 뜻이 더 살아난다. “러시아의 소설가인 파스테르나크는 68세에 노벨문학상을 탔다.” “프랑스의 소설가 콜레트는 그녀의 유명한 소설 ‘지지’를 71세에 썼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는 86세에 정열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 “피카소는 87세에 걸작을 여러 점 그렸다.” “두 살 때 시각과 청각을 잃은 헬렌 켈러는 88세에 사망할 때까지 글을 쓰고 강연을 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훨씬 생생하고 귓속에 쏙쏙 들어온다. 언젠가 받은 어느 회사의 카드에는 1세부터 100세에 이르기까지 나이에 따라서 한 살, 한 살 재미있게 설명해 놓았다. 1세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태어나고, 누구나 비슷하게 생긴 나이란다. 나이 3세에 정약용은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일세’라는 시를 지었단다. 그런데 보통 나이 3세는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는 나이다. 21세에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를 설립했고, 보통 나이 21세는 사과 같은 얼굴을 갖기 위해 변장을 시작한다. 35세에 퀴리 부인은 남편과 노벨상을 받았고, 보통 나이 35세는 이제 혼자 아니라는 사실을 엄청 느끼게 된다. 36세에 스티븐 스필버그는 ET를 만들었지만, 보통 나이 36세는 절대로 ET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44세에 원효대사는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도를 깨달았지만, 보통 나이 44세는 약수터의 약수물도 믿지 못하는 나이다. 47세에 이순신 장군은 옥포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보통 나이 47세에는 싸울 일이 있으면 피하고 본다. 54세에 디즈니는 디즈니 왕국을 만들었지만, 보통은 꿈의 왕국을 꿈속에서나 보게 된다. 59세에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했는데, 보통 나이 59세는 성골, 진골이 아니면 아무 일도 안 된다고 생각한단다. 68세에 갈릴레이는 천동설을 뒤집어서 지동설을 주장했지만, 보통 나이 68세에는 생각을 뒤집으면 민망해진다. 91세에 샤갈은 마지막 작품을 완성했지만, 보통 나이 91세는 나이 자체가 작품이 된다. 93세에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의 기둥을 세웠다지만, 보통은 한국말도 통역이 필요해지는 나이가 된다. 나이에 관한 유머는 청중에 맞춰서 부담 없이 쓸 수 있다. “언제 나이 드셨다는 걸 느끼십니까?”하고 묻는다. 여러 사람이 이런 저런 대답을 하고, 본인이 몇 가지를 덧붙인다. - 종로, 신촌, 명동 거리에서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몇 번씩 지나다녀도 아는 사람 한 명을 만나지 못할 때 - 크리스마스 이브의 귀가 시간이 매년 빨라질 때 - 나도 모르는 사이 택시기사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을 때 - 오랜만에 찾은 오락실에서 계속 두리번거리며 테트리스를 찾을 때 - 후배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제 본 TV 이야기를 하던 중 “그전에는 잘 몰랐는데 ‘가요무대’도 꽤 재미있더라고”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때 -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 이야기가 들리면 귀가 솔깃해질 때 - 대한민국 군인이 더 이상 아저씨가 아니라고 느껴질 때 -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온 여자가 무척이나 어리게 느껴질 때 유머는 인상적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초면의 어색함과 거리감을 없애는 데 유머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또한 유머는 팽팽한 긴장을 풀어 주는 돌파구가 된다. 협상의 마지막 고비를 남겨두고 팽팽하게 긴장감이 돌고 있을 때, 한마디 유머를 던지는 장면은 영화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 않은가? 긴장되고 숨 막히는 분위기,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유머로 반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대인관계에서 실패할 수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5분 정도라고 한다. 15분이 넘으면 잡념이 생기고 주의가 산만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유머 한마디는 집중력을 회복시켜 준다. 그런데 유머를 섞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유머 전에 “지금부터 농담 한마디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농담 하나 있습니다. 정말 우스운 이야기예요”라고 해서는 곤란하다. 이 말을 함으로써 뒤에 오는 농담의 김이 빠지고 만다. 유머의 매력은 놀라움에 있다. 미리 예고를 해서 김을 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미 들으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농담 하나 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듣는 사람들을 썰렁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유머를 섞더라도 이야기의 주제와 연결될 수 있는 유머가 좋다. 유머라고 해서 전혀 관계 없는 ‘무슨 무슨 시리즈’를 읊는 것은 컨텍스트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 강미은 교수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전 미국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미국 미시간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박사,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저널리즘 석사.
- 2016-06-29 09:52
-
- [박정희의 인상학] 성인에게서 배우는 지혜
- 한동안 TV 드라마 가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더니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그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몇 년 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2002년 방영된 드라마 의 인기가 여전히 높은 데 놀랐다. 드라마가 끝난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일본 여인들의 감성을 적시고 있다는 것이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상향은 무엇일까? 단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떠나 더 유명해지고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점점 다양화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구축해 주는 용도로 사용하던 온라인 서비스가 이제는 자신을 알리면서 스스로를 세상에 과감하게 노출시켜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의 장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얼굴을 알리는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로 시선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을 한다.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하면 그들은 ‘유명인’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아 어느 순간 자신의 얼굴이 천지허공을 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해 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들이 우리의 행복을 가늠하는 가치 기준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심각한 고민에 휩싸인 적이 있다. 우리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으로 잠을 설친 기억도 있다. 인상학자로 살면서 ‘사람 개개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근본은 무엇이며 변화하는 삶과는 어떤 연관 관계를 맺고 있나?’는 평생을 풀어야 할 숙제로 안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옛 성인들은 가장 높은 것이 하늘이고 모든 생명은 천지에 근원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인간의 몸은 형체(形體)와 기질(氣質)이 결합된 음양오행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형체는 몸을 이야기하며 몸 안에 기질이 흐르면서 우리는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천지가 없다면 우리의 생명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순자(荀子)는 “하늘이 사람에게 형체를 부여하면 그에 따라 정신이 생겨나니 이것이 하늘의 신기한 능력이다. 하늘은 사람을 낳음과 동시에 본성을 부여한다. 나면서부터 그러한 것이 본성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의 본성은 하늘이 부여해 준 생명과 함께 본래 갖추고 있는 우리 고유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과 욕구는 우리의 본연의 모습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요구하게 되어 있다. 눈을 뜨면서부터 느끼기 시작하는 배고픔은 먹고 싶은 욕구를 만들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본성을 충족하고 싶은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듣고 학습하였던 기억 하나를 끄집어 내어보자. 맹자(孟子)는 인간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순자는 인간은 본래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하였다고 시험지 답을 적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화두 역시 “인간의 근본은 과연 착한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것에 대해 필자는 “근본은 착하다 그러나 태어남과 동시에 이기심을 만나서 그 이기심과 타협하는 과정을 겪으며 변하는 것이다”라고 주장 한다. 그 이유인즉 탄생하는 순간의 아기의 얼굴을 보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고 이 세상에 나왔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순수하고 맑고 투명하여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순수의 세계로 몰아간다. 한순간 자신의 마음에 담겨 있는 순수한 본성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세상과 마주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 부단한 노력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탄생 순간의 얼굴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운명이라 할 수 있고. 지금의 모습은 시간이 만들어 준 후천적인 얼굴, 즉 운명을 만들고 다듬어서 가꾸어진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선설’을 신봉하고 따른 사람의 얼굴은 편안하고 여유로우며 행복할 것이라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바라는 삶을 저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욕구가 있다. 욕구하는 것을 얻으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가지려 하고 구함에 법도와 분수가 없으면 싸우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본성을 ‘예의’라는 것을 만들어 교육하고 익히게 하여 욕망을 누르고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순자의 생각이다. 옛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반영된 얼굴이 사람에게 호감을 주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며, 그의 언사가 상대를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게 한다고 하였다. 지금의 얼굴을 만든 것은 자신의 생각과 습관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잘생기고 호감 가는 얼굴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자신 있게 마주 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얼굴을 가져야 하고 그 얼굴이 사람과 소통하면서 상대와 여유롭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모습을 만드는 작업을 하여 보려고 한다. 삶이 여유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본다.
- 2016-06-29 08:41
-
- [유머코드] ‘재치 코드’의 힘
- 이 시대에는 ‘재치 코드’가 중요하다. 사람 사이에서건 비즈니스에서건, 공익 캠페인에서건, 댓글 하나에서건, 방송에서건, 재치 코드가 있어야 호감과 각광을 받는다. 비즈니스 마케팅에서나 방송에서나 공익 캠페인에서나 재치 코드의 파워는 점점 커지고 있다. 재치와 위트가 있다는 것, 이건 모든 능력에 플러스 알파로 작용한다. 기본 능력 플러스 재치 코드가 있으면 더 빛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재치 코드가 ‘억지로 유머를 외워서 말해주기’를 뜻하는 건 아니다. 억지로 웃는 유머도 아니다. 억지스러운 유머는 오히려 비호감이다. 재치 감각과 재치는 이제 경쟁력이다. 재치는 지금의 시대 코드가 되었다. 재치는 메시지의 마지막 2%를 채우는 힘이다. 핵심 메시지를 정통으로 날려주는 마지막 2%의 힘이다. 재치로 마지막 2%를 채운다면, 메시지의 설득력에 날개를 달게 된다. 다른 사람의 웃음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협력과 지지도 쉽게 끌어낸다. SNS에서 재치와 촌철살인은 이 시대의 키워드가 되었다. 지루한 설교는 이제 먹히지 않는다. 유머 감각을 갖춘 촌철살인이 없이 주목받을 수 없다.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도 재치를 섞은 메시지로 전달하면 부드럽고 친밀감 있게 전달된다. 그리고 재치가 섞인 메시지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밋밋한 메시지를 생생하게 만드는 것이 재치다. 주제와 관련된 촌철살인의 재치를 던질 때, 그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은 친밀감을 느끼고 속이 시원해진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하게 구사하는 재치는 전체 메시지를 기억에 오래 남게 만든다. 예전에 무상급식 서울시 주민투표 찬반 투표율이 25.7%여서 오세훈 시장이 사퇴했다. 이때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이를 두고 ‘사실상 승리’라고 언급하자 이후 ‘사실상 ~’ 패러디가 인터넷에서 봇물 터지듯 나왔다. “25.7% 세일이면 사실상 공짜” “에베레스트 25% 올라가면 사실상 정복” “25.7% 투표율이 사실상 승리라면 파리도 사실상 새라고 봐야 한다”. “앞으로 선거 2등도 ‘사실상 당선’으로, 고득점 대학 불합격자도 ‘사실상 합격’으로, 최종면접에 떨어지면 ‘사실상 취업’이라 부르며 살자” “등록금도 25%만 내면 사실상 완납한 걸로 합시다”등이었다. 사회 이슈에 대한 이런 촌철살인의 비유는 매일 수없이 나온다. ‘재치’의 반대 개념은 뭘까? ‘뻔함’, ‘구태의연함’이 되겠다. 으례하는 말씀, 흔히 듣는 이야기, 이런 것들이 구태의연한 메시지다. 길고 지루하게, 요점이 어디인지 알 수 없도록 써놓은 글이나 말을 접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인지, 당사자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유머의 힘은 크다. 연설을 하거나 강연,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일단 청중을 웃도록 만들면 반은 성공이다. 웃음으로 하나가 된 후에 사람들은 경계심이나 반감을 누그러뜨린다. 같이 ‘하하하’ 웃고 나면 친밀감은 급속도로 증가한다. 미국의 CEO나 정치인들의 강연이나 연설을 들어보면 늘 유머가 등장한다. 유머가 없는 연설은 지루하기 짝이 없고, 유머를 구사할 줄 모르는 CEO나 정치인들은 좋은 평을 듣지 못 한다. 연설에서 유머가 빠지면 김빠진 맥주같이 생각한다. ‘무슨 무슨 시리즈’를 읊으라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가벼운 조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들은 한 CEO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했다. “연설은 여성의 미니 스커트와 같아야 합니다. 적당히 길어서 중요한 주제를 커버해야 하고, 적당히 짧아서 주목을 끌어야지요. (Speeches are like women's mini skirts. It should be long enough to cover the important subject, but short enough to keep it interesting)” 이 말을 들은 청중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고, 그 CEO에 대한 호감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여성이 들어도 별로 성차별적인 언사라기보다는 ‘연설’에 대한 가벼운 조크로 받아들여지는 유머였다. 그는 적절하게 짧은 연설로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의 연설이 성공적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 정치가의 말. 한창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는 이슈에 대해서 기자가 의견을 물었다.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 어떻게든 대답은 해야 하는데, 입장을 밝히기가 곤란했던 이 정치인은 유머를 던졌다. “제 친구들 중 일부는 찬성합니다. 제 친구들 일부는 반대합니다. 저는 제 친구들 편입니다. (Some of my friends are for it. Some of my friends are against it. I'm for my friends.)” 난감한 순간을 유머로 슬쩍 피해 가는 것도 능력이다. 정치인의 권모술수라고 매도하기에는 너무나 귀여운 유머 아닌가. 메시지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힘있는 메시지’이고 다른 하나는 ‘힘없는 메시지’이다. 힘있는 메시지를 듣고 나면 “아, 그렇구나” 하면서 공감하게 된다. 힘없는 메시지는 듣고 나도 무엇을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들으나 마나 한 메시지다. 공허하고 추상적인 거대한 단어의 나열은 대부분 힘없는 메시지가 된다. 힘있는 메시지는 단숨에 와 닿는 메시지다. 구구절절 오랫동안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 문장으로 핵심이 전달된다. 이런 것이 파워 메시지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한 줄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짧은 메시지이지만 그 속에 긴 내용이 들어 있을 수 있다. 길고 복잡한 내용을 한 번에 정리해서 가슴에 쏙 와 닿게 전달하는 것이 파워 메시지의 힘이다. 촌철살인의 재치는 그래서 필요하다. 상품 마케팅이나 정치 캠페인은 다 불특정다수를 설득하는 작업이다.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핵심 메시지가 짧고 명확해야 한다. 상품이나 캠페인이 전달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재치 코드를 키우기 위해서 가장 쉽고 좋은 방법, 그것도 아주 쉽고 돈 안 드는 방법은 신문 기사의 제목을 유심히 보는 것이다. 매일 읽는 신문 기사로 훈련이 가능하다. 촌철살인의 재치 코드를 감으로 익히고 싶다면 신문 기사를 읽은 다음에 기사의 제목을 꼭 다시 한 번 보라. 가장 쉽게 재치 코드를 익히는 방법이다. >> 강미은 교수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전 미국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미국 미시간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박사,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저널리즘 석사.
- 2016-06-01 10:16
-
- [동년기자 칼럼] 노인 특화형 일자리가 필요하다
- 법으로 정년을 보장한 60세까지 근무한 뒤 박수받고 정년퇴직해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앞으로 10여 년은 너끈히 더 현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다들 생각한다. 그냥 해보는 큰소리가 아니고 건강관리를 원만히 한 사람은 실제도 그렇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다 알고 있는 진실이다. 그래서 막대한 국가 예산을 들여서 인생이모작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액티브 시니어가 되라고 권장하고 있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집안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활동하라는 말을 안 해도 ‘100세 시대’에 60세에 퇴직하고 남은 사십 년을 ‘구둘 장군’으로 지내기는 누구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도둑질 말고는 무슨 일이든 찾아보려고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갖다 부치지 않아도 집안 식구들 등쌀에 집안에만 있기는 어렵다. 퇴직자가 왜 계속 일을 하려고 하는가? 우선은 먹고 사는 경제력이다. 퇴직금 1억 원을 은행에 넣어봤자 월 20만 원을 손에 쥐기가 힘든 데 세금은 15.4%나 뗀다. 허드렛일로 월 100만 원을 번다면 은행에 6억~7억 원을 예금한 것과 맞먹는다. 퇴직했다고 해서 안 먹고 안 입고 살 수가 없다. 퇴직해서 근로수입은 없어져도 소비지출은 그만둘 수가 없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거나 극소수의 재테크에 성공한 재력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연히 퇴직하는 순간부터 돈 걱정하는 것이 일반 서민의 자화상이다. 부모님도 살아계시고 자녀들 결혼마저 늦어져 함께 살고 있다면 퇴직했다 해서 보따리 싸 시골로 내려가기도 어렵다. 자연히 이런저런 돈 벌 궁리를 하느라 불면의 밤은 깊어간다. 집안에서도 가장이 놀고 있으면 분위기가 저기압이다. 공원 벤치에서 만난 김철수(가명ㆍ67) 씨는 “갈 곳이 없어도 이렇게 집을 나와야 아내도 숨을 좀 쉰다”고 한다. 매일 출근하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거실에 턱 버티고 있으면 아내가 얼마나 답답해할 것이냐는 말이다. ‘아빠 내일부터 출근한다.’ 라는 말이 어떤 꽃 노래보다 하고 싶은 말이고 가족들은 듣고 싶은 속삭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반 토막의 급여를 주는 일자리도 마다치 않고 노인들이 줄을 선다, 문제는 적은 돈을 버는 일자리에 퇴직자들이 인생이모작으로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해서 모든 국민이 박수 보내고 축하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퇴직했으면 그만 집에서 쉬시지 새로운 일자리 찾기에 혈안이 돼 반 토막의 급여도 고맙다고 감지덕지 일하는 노인의 모습을 사시의 눈으로 째려보는 젊은이들도 있다. 자식의 일자리를 뺏는 비윤리적 아버지로 매도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고령자 취업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로 젊은이들이 해야 할 일자리를 시니어들이 뺏어간다는 시각이다.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누가 차지하는가에 대한 갈등구조다. 두 번째로 동남아, 중국 등 출신 외국근로자 때문에 몇 년간 인건비가 제자리걸음 하는 상황에서 시니어까지 저임금 경쟁에 가세해 인건비 인상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니어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도 젊은이들의 눈칫밥 먹는 신세로 전락해 길게 다니지 못한다. 뭔가 100세 시대에 걸맞은 정부 정책이 있어야 한다. 우선 노동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고 방치하지 말고 노년의 경험이 필요한 특화한 일자리를 특화해야 한다. 요일별 근무제나 바쁜 시간대의 파트타임 등 가변성 있는 노인 일자리가 필요하다. 어린이 놀이터의 안전점검, 불량식품 단속요원도 좋다. 공원이나 우범지대의 순찰이나 청소도 노인의 특화된 일자리로 손질해서 만들어야 한다. 9시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고정된 근무 개념을 깨뜨려야 노인의 일자리가 많아진다.
- 2016-05-16 1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