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깃든 밥상’ 시리즈, ‘문성희의 쉽게 만드는 자연식 밥상’ 등을 통해 다양한 자연요리 레시피를 선보여 왔던 문성희(文聖姬·68). 그의 첫 에세이 ‘문성희의 밥과 숨’, 얼핏 소박하면서도 거대한 물음을 줄 것만 같은 제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읽는 내내 삶의 행복과 자유를 좇아 끊임없는 질문과 마주했다. 그러다 답은 결국 제목에서 찾고 만다. 문
100년 만에 왔다는 최악의 폭서(爆暑)가 근 한 달간 우리 곁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뜨거운 불, 하나로도 모자라 두 개로 온 누리를 덥히고 있는 본격적인 염천지절(炎天之節)이다. 어릴 적 시골의 여름은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한낮 더위를 피하고 저녁에는 마당 위에 멍석을 깔고 환한 달빛을 양념으로 마당 밥을 먹곤 했다. 늦게까지 두런두런 서로의 이야
엄마는 요리솜씨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엄마의 요리가 최고인 줄 알았다. 주발에 담는 밥도 엄마만 세워서 담을 수 있고 세상의 맛이 엄마의 손끝에 다 있는 줄 알았다. 그 환상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친구 엄마의 요리가 더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엄마는 천성이 부지런해서 늘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셨다. 학구열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들 한다. 1990년대 후반 IMF를 악으로 깡으로 견뎌야 했던 부모 세대에게 묻는다면 ‘평범했노라’ 회상하는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넥타이를 매던 손놀림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된 어느 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살아야만 했던 수많은 아버지 중 변용도 동년기자도 있었다. 남들보다 이른 ‘용도폐기’ 인생을 딛고 잇따른 ‘용
대형마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요즘. 빠르고 편리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장을 보는 맛’은 좀 떨어진다. 덤도 주고, 떨이도 하고, 옥신각신 흥정도 하면서 정이 쌓이는 건 장터만의 매력일 테다. 사진만 봐도 따뜻한 인심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한국의 장터’를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한국의 장터’ 정영신 저 자료 제
가지 덮밥
여름 제철 채소인 가지는 가격도 저렴하고 영양소도 풍부해 부담 없이 요리 재료로 사용하기 좋다. 특히 보랏빛을 띠게 하는 안토시아닌 색소는 체내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노화를 억제한다. 살짝 구운 가지와 매콤한 양념장을 이용해 가지 덮밥을 만들어보자.
재료
밥 2공기, 가지 2개, 식용유, 다진 돼지고기 150g, 홍고추 1개, 적양파
다른 사람들은 멋 내기로 선글라스를 쓰는데, 필자는 건강을 위해서 쓴다. 안력이 약해서 눈이 아파 햇빛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안경이 익숙지를 않아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년 전, 눈에 백내장이 와서 안과에 간다는 지인을 따라나섰다가 우연히 눈 검사를 하게 되었다. 백내장인 지인은 수술하려면 아직 멀었으니 그동안
영화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등에서 브루스 리(Bruse Lee, 이소룡)가 선보인 절권도는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를 제압하는 절권도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김종학(50) 관장이다. 올해로 40여 년째, 인생의 반 이상을 무술과 함께했지만, 그는 아직 배우고 싶은 무술이 너무나도 많단다
시어머니는 처음 뵈었을 때부터 쪽진 머리였다. 동그스름하고 몽똑하게 붙은 뒷머리 가운데로 은빛 비녀가 반짝였다. 농사일로 두 손을 호미 삼아 거의 평생을 사신 어머니. 그 시절 부녀자들에게 달리 돈이 될 유일한 게 머리카락을 파는 거였다. 젊은 시절엔 당신의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내주고 항아리나 그릇 등을 장만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만든 바늘꽂이
충주 땅 변두리 후미진 동네에 사는 너를 찾아간 것은 들판에 황금빛 물결이 일기 시작하는 어느 해 가을이었지. 논에는 벼농사, 밭에는 주로 사과 농사를 짓는 마을. 사과 과수원에는 누런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나뭇가지마다 매달린 사과들은 태양의 후예들인 양 붉은 빛깔로 여물어가고 있었어. 모처럼 찾아온 나를 위해 너는 한 과수원으로 데려가 사과 한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