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법제도가 바라보는 ‘가족의 탄생’… 친생추정과 유전자 검사
- 가족관계는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구성된다. 부부관계는 법률적으로 혼인신고로 성립하고, 이혼으로 종료한다. 반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이러한 인위적인 법률 관계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혈연관계에 근거한다. 즉 친자관계는 원래 자연적인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률상의 친자관계를 진실한 혈연관계에 부합시키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제도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모자관계는 분만이라는 자연현상에 의해 당연히 성립한다. 그러나 부자관계와는 달리, 자녀의 출산이라는 자연현상에 의해 당연히 성립되는 것은 아니고 인지, 입양 등의 법률 요건이 구비됨으로써 비로소 성립한다. 민법 제844조(남편의 친생자의 추정) ①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 ② 혼인이 성립한 날부터 200일 후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한다. ③ 혼인관계가 종료된 날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 민법 제884조는 일정한 요건 아래 남편의 친생자 추정 규정을 두고 있다. 제1항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는 규정을 두고, 혼인 중의 임신 사실을 일률적인 기준에 의해 정할 수 있도록 제2항, 제3항에서 일정한 기간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정한 기간 중에 태어난 자녀는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것으로 추정되고,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 ‘친생추정’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친생추정에 의해 혼인 중 출생자의 법적 부자관계가 성립하고, 친생자의 추정을 받는 혼인 중 출생자의 지위는 매우 확고하다. 이를 끊어내려면 요건이 엄격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 민법 제847조(친생부인의 소) ① 친생부인의 소는 부(夫) 또는 처(妻)가 다른 일방 또는 자(子)를 상대로 하여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이를 제기하여야 한다. ② 제1항의 경우에 상대방이 될 자가 모두 사망한 때에는 그 사망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검사를 상대로 하여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우리 민법은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기한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나마 현재는 완화된 것이다. 과거에는 민법 제847조 제1항의 기산점이 ‘출생을 안 날로부터 1년 내’였다. 즉 자녀가 자신의 친생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태어난 지 1년이 지났다면 원칙적으로 부자관계를 해소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친자관계를 부인하고자 하는 부로부터 이를 부인할 수 있는 기회를 극단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친자관계를 부인하고자 하는 부의 가정생활과 신분 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행복추구권 및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보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현행 민법은 제847조 제1항의 기산점을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로 조정했다. 기본적으로 이는 부자관계를 신속하게 확정하여 자녀의 복리를 보호하는 데 있다. 원래 친생추정제도는 모자관계와 달리 부자관계의 정확한 증명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친자관계 증명이 가능해진 현 상황에서 부자관계 입증 곤란은 더 이상 친생추정의 근거가 되기 어렵고, 자녀의 법적 지위를 신속히 안정시킬 필요성만 남게 되었다. 친생추정의 예외 이러한 친생추정에도 예외는 있다. 과거 대법원은 아내가 남편의 자를 임신할 수 없는 객관적으로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친생추정을 받는다는 입장이기도 했지만, 현재는 그러한 명백한 사정이 있다면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이 경우 소 제기 기간 제한이 거의 없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남편이 행방불명 또는 생사불명인 경우, 남편이 장기간 수감・입원・외국 체재 등으로 부재중인 경우, 혼인관계가 파탄되어 사실상 이혼 상태로 별거 중인 경우 친생추정이 배제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동거의 결여, 별거 상태가 아닌 경우, 예를 들어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는다든지, 남편이 생식 불능이라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는 어떠할까? 현재의 대법원과 다수의 견해는 이러한 경우 친생추정이 여전히 미친다고 보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이상해 보일 수 있는 결론인데, 실제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사례[대법원 2019. 10. 23. 선고 2016므2510 전원합의체 판결 사안] • 남편과 아내는 1985년경 혼인신고 • 남편은 결혼 후인 1992년경 무정자증 진단 • 아내는 남편의 동의를 얻어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시험관 시술을 통한 인공수정 방법으로 임신하여 A를 출산 • 남편은 A를 자신의 자녀로 출생신고 • 아내는 혼외 관계를 통해 B를 임신·출산 • 남편은 B를 자신의 자녀로 출생신고 • 남편은 늦어도 2008년경 병원 검사를 통해 B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 • 남편은 2013년경 A, B를 상대로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을 구하는 소송 제기 유전자 검사와 친생추정 유전자 검사 기술의 발달로 손쉽게 친자 감정이 가능해졌다. 혼인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바뀌었고, 혼인관계가 파탄된 상태에서 아내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자녀를 임신하여 출산할 가능성도 커졌다. 전국의 가정법원 근처에 유전자 검사 기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친생부인의 소,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 등 친생자관계에 관한 여러 소송에 활용할 용도로 당사자들은 유전자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증거로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 친생부인의 소는 진실한 혈연관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법률적인 친자관계를 진실에 부합시키고자 하는 남편에게 친생추정을 부인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를 부여한다. 결국 혈연관계가 없음을 알게 되면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제소 기간(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진행하고, 실제로 생물학적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은 친생부인의 소로써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다. 그런데 제소 기간을 넘기면 어떻게 될까? 생물학적으로 부자관계가 아님이 명확한데도, 이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이에 관해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라도 친생추정이 미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친생추정 규정의 문언과 체계, 민법이 혼인 중 출생한 자녀의 법적 지위에 관해 친생추정 규정을 두고 있는 기본적인 입법 취지와 연혁,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혼인과 가족제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부부와 자녀의 법적 지위와 관련된 이익의 구체적인 비교 형량 등을 종합하면,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하여 출산한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본다. 즉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는 것은 민법 규정의 문언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친생추정 규정을 사실상 사문화하는 것으로, 친생추정 규정을 친자관계의 설정과 관련된 기본 규정으로 삼고 있는 민법의 취지와 체계에 반한다고 본 것이다. 또한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면 필연적으로 가족관계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부부관계나 가족관계 등 가정 내부의 내밀한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고, 결국 혼인과 가족관계가 다른 사람의 기본권이나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국가기관의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혈액형 검사, 유전자 검사 등 과학적 방법에 따른 검사 결과 역시 ‘동거의 결여’와 같은 예외 사유로 인정해야 한다는 반대 견해도 있다. 물론 이 견해 역시 이러한 검사 결과뿐만 아니라 별거 유무와 그 기간, 부부 중 일방이 별도의 주거지를 가졌거나 외국 등 먼 장소로의 왕래가 잦았는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부부의 혼인관계가 종료 또는 파탄되어 자녀를 둘러싼 종래의 공동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는지 여부와 경위, 친생자관계의 부존재를 주장하는 사람이 부모, 자녀와 같이 친생자관계의 직접 이해당사자인지 여부 등 여러 사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공수정과 친생추정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이 아닌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도, 인공수정으로 출생한 자녀가 남편의 자녀로 추정될까?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에도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고 보았다. 친생추정 규정은 혼인 중 출생한 자녀에 대해 적용되는데, 친생추정 규정의 문언과 입법 취지,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헌법적 보장 등에 비추어 혼인 중 출생한 인공수정 자녀도 혼인 중 출생한 자녀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부자관계를 신속하게 확정하여 자녀의 복리를 보호하려는 친생추정 규정의 입법 목적을 고려한다면, 인공수정 자녀의 출생 과정과 이를 둘러싼 가족관계의 실제 모습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러한 결론은 타당하다. 대법원은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 친생자관계가 생기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인공수정 자녀를 양육해왔던 혼인 부부에게 커다란 충격일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가족관계를 형성해온 자녀에게도 회복하기 어려운 위험일 수 있다는 점도 논거로 들었다. 기본적으로 정상적으로 혼인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 사이에서 인공수정 자녀가 출생하는 경우 남편은 동의의 방법으로 자녀의 임신과 출산에 참여하게 되는데, 남편이 인공수정에 동의했다가 나중에 이를 번복하는 것은 법 감정에 비추어 보더라도 허용되기 어렵다. 참고로 독일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경우 부모는 친생부인권을 행사할 수 없는 반면, 자녀는 친생부인권 행사가 허용된다. 혈연관계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뿐만 아니라, 혈연관계의 태동부터 많은 변화가 있는 만큼 향후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고 기대되는 영역이다.
- 2024-09-23 08:08
-
- 송일국, 무대 위 슈퍼맨 도약… 대선배들과의 공연 ‘영광’
- 어느 순간부터 TV에서 배우 송일국을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2016년 방영된 KBS 드라마 ‘장영실’이 마지막이었으니. 그러나 알고 보면 그의 연기 활동에는 공백기가 없었다. 묵묵히 무대 위에 오르며 공연계에서 입지를 다져갔다. 2011년 연극 ‘나는 너다’를 통해 무대에 진출한 그는 이후 연극 ‘대학살의 신’,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맘마미아’에 출연했다. 올해는 연극 ‘맥베스’로 무대에 올랐으며, 오는 10월에는 뮤지컬 ‘애니’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스스로 중고신인, 끼 없는 배우라고 말하지만, 무대 위 배우 송일국은 누구보다 빛난다. 혹독한 관리와 성장 연극 ‘맥베스’로 뜨거운 여름을 보내셨는데요. 어떤 의미가 남은 작품인가요? 제가 극 중 맡은 뱅코우는 극 초반 죽음을 맞이하는 캐릭터로 분량이 매우 적어요. 그런데 존재감도 뛰어나고, 중요한 역할이죠. 저는 역할의 비중이나 분량을 생각하지 않아요. 작품이 좋으면 출연하죠. ‘맥베스’는 제가 워낙 좋아하는 셰익스피어 작품이어서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공연하면서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연습할 때부터 황정민 씨(맥배스 역)를 보면서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제 거 하기 급급한데 정민 씨는 전체를 아우르는 힘을 보여주더라고요. 양정웅 연출가님을 통해서도 많이 배웠어요. 작품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트렌드를 녹인 멋진 극을 만드셨죠. 그러고 보니 제작발표회 때보다 살이 많이 빠지신 것 같아요. 그때가 5월이었는데, 현재 7~8kg 정도 빠졌어요. 고백하자면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정장이 안 맞을 정도로 살이 쪘어요. 애가 셋이다 보니 집에 맛있는 음식도 많고, 나이도 들면서 살이 잘 안 빠지더라고요. 보다 못한 아내가 ‘날 사랑하는 만큼 살을 빼달라’고 미션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혹독하게 다이어트했고, 체중을 감량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멀었어요. 총 15kg은 빼야 할 것 같아요. 다이어트 방법이 궁금해지네요. 다이어트에는 왕도가 없는 것 같아요. 많이 안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밖에 방법이 없죠. 요즘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한강에서 러닝을 해요. 오늘도 5km를 뛰고 촬영장에 왔고요. 요즘 저의 유일한 낙은 저녁에 아내와 술 한잔 기울이면서 소소하게 얘기 나누는 거예요. 관리를 하고 있어 양심상 안주는 안 먹고, 제로 칼로리 맥주만 마시고 있습니다. 그 행복한 시간을 생각하면서 낮에는 또 열심히 달리는 거죠. 하하. 10월부터 뮤지컬 ‘애니’ 공연을 하는데, 어떤 작품인가요? ‘애니’는 대공황 시기 미국의 한 보육원에 사는 소녀 애니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에요. 저는 ‘키다리 아저씨’ 올리버 워벅스 역을 맡았죠. 성인 연기자 중에 비중이 가장 높고 극을 이끌어가는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공연하면서 노력했던 것들이 쌓여서 일종의 보상처럼 이 작품이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뮤지컬 1세대’ 남경주 배우와 더블 캐스팅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남경주 선배님과 더블 캐스팅 소식을 전하자, 아내의 첫 마디가 ‘당신 성공했네’였어요. 정말 딱 맞는 말이에요. 제가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남경주 선배님께서 오래 연기한 줄리안 마쉬 역을 맡아 연기했죠. 초연할 때 선배님 공연 영상을 교재 삼아 보고 또 보고, 손동작 하나하나 다 따라 했어요. 그런 선배님과 나란히 이름을 올린다니 얼마나 영광이겠어요. 10년 만의 안착 첫 공연 작품은 연극 ‘나는 너다’인데요. 그 작품이 있어서 지금이 있겠죠? ‘나는 너다’는 처음 공연하는 사람이 소화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작품이었어요. 안중근과 안중근 아들 1인 2역을 소화하고, 무대도 사면이 보이는 원형극장이거든요. 연출을 맡은 윤석화 선배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죠. 이 작품을 하고 나서 내 이름 앞에 ‘배우’를 붙여도 더 이상 쑥스럽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어요. 더불어 개인적으로도 저한테 큰 선물을 준 작품입니다. 당시 결혼 4년 차였는데, 거짓말처럼 아내가 삼둥이(대한·민국·만세)를 임신한 거죠. 정말 신기하고 감격적이었습니다. 무대에 선 지 10여 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어느 날 아내가 ‘당신은 하늘에서 누가 커리큘럼 짜주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대로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나는 너다’를 통해 연극에 대해 알게 된 후, 소극장 공연 ‘대학살의 신’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죠. 그리고 뮤지컬은 제게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부를 줄 아는 노래가 애국가와 독립군가밖에 없는 사람이었는데,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맘마미아’를 하면서 많이 성장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아직 뮤지컬계에서 신인이라고 생각하고, 오디션도 계속해서 보고 있죠. 공연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계속하게 되는 걸까요? 공연이야말로 진정한 배우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연출의 디렉션 안에서 움직이는 게 맞지만, 막상 무대에 서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너무나도 많이 생기거든요. 순간순간 대처는 배우가 해야 합니다. 관객이 어떤 부분을 집중해 볼지 시선을 정하는 것은 온전히 배우의 몫이라는 거죠. 그 부분에서 희열을 많이 느껴요. 그 감정을 잊지 못해서 계속 공연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NG라는 개념이 없으니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웠을 것 같아요. 맞아요. 처음에는 무대 위에서 실수하면 많이 당황했어요. 시간이 쌓이면서 방법을 터득했죠. 첫 연극 작품을 할 때, 한 선배가 ‘무대에서 두 발로 디디고 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10년이 지나니 무대 위에 두 발을 디디고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전에는 손과 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정말 무대 위에서 손이 막 날아다녔다니까요.(웃음) 겸손함과 책임감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예능 프로라 출연 고민이 있으셨나요. 모든 배우가 고민하는 지점일 거예요. 배우가 예능 출연을 하면 시청자나 관객의 작품 몰입이 떨어질 수 있거든요. 그럼에도 출연한 이유는 저는 일보다 가족이 우선인 사람이고, 삼둥이 육아 기록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결국 출연하길 너무 잘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종종 삼둥이의 가장 예쁘고 아름다웠을 때의 모습을 찾아봐요. 그리고 제가 ‘육아의 신’으로 칭송받을지는 전혀 몰랐어요. 그렇게 훌륭하고 좋은 아빠가 아닌데 부끄러워요. 매일매일 시행착오를 겪는 아빠랍니다. 대한이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우리 때문에 아버지가 작품을 더 많이 못 했다’고 했는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저런 생각을 하다니 기특하고 고마웠어요. 짠하기도 했죠. 대한이가 아무래도 장남이라는 책임감이 있는 것 같아요. 삼둥이 셋이 얼굴도, 성격도 다 다른 게 신기해요. 저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을 후회하지 않아요.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출연할 것 같아요. 해야죠! ‘육아의 신’으로 불리기 전에는 ‘주몽’ 이미지가 강했죠. 배우가 주인공을 맡는다는 것은 굉장한 영광이에요. 더군다나 그 작품이 대박 난다면 매우 큰 축복이죠. 저는 ‘주몽’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2001년부터 10년 넘게 중국 동북 3성 지역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탐방하는 ‘청산리 역사대장정’ 프로그램을 대학생들과 함께 진행했어요. 그 사이 제가 출연한 MBC 드라마 ‘주몽’이 인기를 끌면서 고구려 역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죠. 이러한 부분이 운명 같다고 느껴져요.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서는 아빠도 육아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육아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해요. 타이밍과 운이 잘 맞아 너무도 큰 사랑을 받았어요. 연기대상도 받은 배우인데, 너무 겸손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배우로서 장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장점을 꼽자면 건강한 체격, 그리고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 끼와 관심은 미술 쪽에 있었어요. 벌써 데뷔한 지 26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연기력은 100점 만점에 15점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남들과 비슷해지려면 열심히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는 거죠. 부단한 노력으로 삶을 가꾸셨네요. 앞으로의 삶이 궁금해집니다. 아내한테 좋은 남편, 자식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 저의 변함없는 목표입니다. 국가의 가장 기본은 가정이라잖아요. 가정을 행복하게 꾸리고 사는 게 내가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느덧 50대에 진입했는데, 앞으로도 지금처럼 후회 없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 Bravo Question - 나에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식탐인 것 같아요. 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내 삶을 통틀어 변하지 않는 한 가지 같아요. 원래 배우는 뼈에 살가죽만 붙어 있어야 한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늘 딜레마에 빠져요. 배우로서 ‘관리’는 기본이죠. 기본을 갖춘 배우가 되고 싶기에 나와의 싸움을 지속해야 할 것 같습니다.
- 2024-09-06 09:03
-
- 중년에 홀로 된 나, 유연하게 나이 드는 방법은?
-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해당 작가가 추천하는 책들도 함께 즐겨보세요. 둘이 살다가도 혼자가 되고, 해로해도 두 사람이 같은 날 죽지 않는다. 배우자 중 한 사람이 병으로 먼저 죽으면 나머지 한 사람은 혼자 남겨지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나탈리 말대로 삶이 끝난 게 아니다. 결혼 생활이 끝났을 뿐이고,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뿐이다. 즉 혼자 살 시간이 다시 주어졌다. - ‘혼자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 30p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국민 세 명 중 한 명은 혼자 산다. 비혼, 이혼, 사별, 자녀의 독립, 경제활동 등 이유는 제각각이다. 1인 가구가 늘고 있으나 몇몇은 여전히 하나보다 둘이 안정적이고 행복하다 믿는다. 혼자 사는 노인은 ‘빈곤하고 외로운 상태’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김남금 작가는 혼자 나이 드는 삶이 불완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와 더 면밀히 만날 소중한 기회라 말한다. ‘혼자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은 서른 편의 영화를 통해 혼자 사는 삶을 깊이 있게 탐구한 책이다. 여러 사정으로 홀로 서게 된 이들이 맞닥뜨리는 풍경과 극복 과정을 영화 속 사건과 인물로 보여준다. 외로움, 생계와 주거 문제, 관계의 어려움, 불확실한 노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밀려올 때 영화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비슷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정서적 지원을 어디서 찾을지, 사회 변화와 과제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나이 듦과 죽음에 어떻게 대비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에서 주인공 나탈리는 어느 날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남편의 고백 이후 아무런 준비 없이 ‘혼자 살기’에 내던져진다. 그저럭 보람찬 시간을 보냈고, 잘 굴러가는 인생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두 발 동동거리며 기름칠하고 조였던 일상의 톱니바퀴 하나를 남편이 빼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갑자기 엎어지고, 잘 따르던 제자마저 그의 사상이 죽은 것이라 비판한다. 한밤중 전화로 귀찮게 하던 엄마는 요양원에 들어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나탈리에게는 온전한 자유만 남아 마음을 들쑤신다. 하지만 그는 “현실 부정은 어디에도 도움이 안 돼. 고정관념에 동조하는 결과를 낳을 뿐. 별일 아니야. 삶이 끝난 것도 아니야. 지적으로 충만하게 살잖아”라며 털어내려 한다. 이런 일은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래도 나탈리의 말처럼 가구 형태가 어떠하든 일상을 지탱하는 요소는 없어지지 않는다. 가족, 일, 사회 활동에서 맺은 인연은 여전히 우리의 위성이다. 은퇴해도 고유한 경험은 사라지지 않고, 자녀가 품을 떠나도 가족이다. 혼자라는 사실이 매 순간 무섭고 아프기만 하진 않을 테다. 궁극적 문제는 ‘혼자 산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다. 두려움의 포로가 될지, 두 팔 벌려 자유를 품에 안을지는 나의 선택이다. 환영하기로 마음먹으면 다른 세계가 기다릴지 모른다. 슬기로운 홀로 라이프 “제 정체성이 아무래도 ‘혼자’이다 보니 이 단어를 둘러싼 사회적인 구조나 시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비혼이라서 그래’, ‘이혼해서 그래’, ‘혼자 살아서 그래’라는 말이 익숙한 세상이라고 느껴요. 1인 가구라고 꼭 외롭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건 아니거든요. 고민의 주제나 행복을 느끼는 지점이 다를 뿐이죠. 다름을 규정하고 분류하기보다 서로를 그저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같은 50대여도 가사 노동에 힘쓰는 사람, 은퇴 후 다시 자신을 탐구하는 사람, 1인분의 몫을 오래 살아서 이미 본인을 파악한 사람이 있는 거니까요.” ‘혼자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은 ‘혼자 살면 정말 외로울까?’라는 김 작가의 사소한 의심에서부터 시작됐다. 삶을 누구보다 열심히, 즐겁게 꾸려왔다고 믿었지만 여전히 가족을 기준으로 재단하는 말을 종종 들었다. 평생 네 편은 한 명쯤 있어야 한다든가, 가족과 함께여야 일상이 심심하지 않고 다채롭다든가. 혼자는 외롭다는 선입견과 둘은 완전하다는 환상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김 작가는 ‘혼자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 속 영화들을 통해 그 가치관을 깰 만한 다양한 혼삶 방식을 제안하고, 같은 상황을 겪고 있거나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나이 듦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한다. 혼자 늙어가는 것에 왜 부정적 이미지가 따라다닐까? 혼자 독립적으로 나이 들어가는 다양한 노인을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본 적이 없으니 상상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혼인과 혈연 바깥에서 이루어진 가족 모델이 턱없이 부족하다. -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197p 지속 가능한 혼삶에 필요한 요소 1인 가구로서 잘 나이 들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나를 잘 부양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 ‘일’은 삶의 습관과 방식을 만들어가는 채널이자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는 통로다. 이 채널을 통해 내 모습을 찾아내고 다듬을 수 있다. 생계 해결만큼 정서적 돌봄 역시 중요하다. 경제활동에 쏟은 노력은 공식적으로 응원과 보상을 받아도, 감정을 이해하고 보살피는 행위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지고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진짜 위기는 감정을 잘 몰라서 자신을 돌보지 못할 때 겪는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의 오베는 주거도 생계도 안정된 노년에 접어든 남성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를 잃은 듯 혼자 살아갈 방법을 찾지 못한다. 바깥세상과 통로 역할을 하던 배우자가 없어지니 스스로가 쓸모없어진 녹슨 고철 덩어리라 여긴다. 성격은 변해버려 깐깐함을 넘어 까칠하기 이를 데 없다. 옆집 남자가 자기 차보다 좋은 차를 새로 살 때마다 자랑해서 말을 안 섞은 지 수년째다. 다정하기는커녕 냉소적이고, 이웃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오베라는 인물은 오랫동안 일과 관련한 언어를 사용하는 데만 익숙해서 사적인 관계 맺기와 소통에 서툴다. 주변에서 흔히 있는 경우다. 사이좋은 부부였더라도 어느 날 혼자 남겨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을 가꾸는 기술을 갈고닦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 오베처럼 외로움에 사무치고, 무쓸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일부러 다른 사람과 섞일 기회를 찾아 나서지 않으면 관계 맺을 기회가 적어요. 온라인으로 편하게 쇼핑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눈인사나 느슨한 치댐이 사라졌죠. 나이 들수록 낯선 자리를 꺼리고 친구를 찾는 데 수고로운 기분이 들겠지만, 혼삶을 지속하려면 오히려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끈끈했던 단 한 사람이나 가족을 잃을 경우 생의 의미를 함께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더불어 살기 1인분의 일상에서는 다른 사람 의견을 구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되는 상황이 많아진다. 하지만 내 마음의 소리에만 지나치게 귀를 기울이면 타인의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지 못할 수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다. 영화 ‘멋진 하루’의 희수는 자기가 그린 일상 그림이 있다. 그 선 밖으로 물감이 번지지 않게 하려고 미간을 잔뜩 찡그린다. 만들어둔 원칙을 고수하며 다른 사람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다.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피해라고 여기는 편이다. 김 작가는 희수처럼 폐쇄적인 생활이 길어지면 ‘정신적 노화’를 막기 힘들다고 말한다. “저는 신체적 노화보다 정신적 노화가 더 두려워요. 자칫하면 꼰대로 가는 특급 열차를 타게 되겠죠. 본인의 가치관과 신념이 곧 법이 되면 말 안 통하는 고집 센 노인이 되는 거예요. 내 몫을 살뜰하게 챙기되 필요하다면 상대방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해요. 더불어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유연함,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호기심, 배움에 대한 욕구, 남을 배려하는 태도를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요. 다림질한 것처럼 주름 하나 없는 피부에 최신 유행하는 코트를 걸쳤다고 무조건 젊은 건 아니니까요. 새로운 가치와 악수할 줄 아는 사람이 젊음을 유지하면서 혼자 잘 나이 들 거라 생각해요.”
- 2024-08-23 08:51
-
- 일본의 시행착오로 보는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 전망
- “행복한 은퇴는 환상이다.” 2019년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보도다. 일본의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 규모는 100조 엔을 넘어섰다. 한국의 10배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 30년을 ‘시행착오의 시간’이었다 평하며 이제야 시장이 ‘본격화’되었다 말한다. 1988년 일본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대학 연구원, 언론사 특파원, 국제부장을 거쳐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을 집필하며 30년 넘게 일본의 고령자 시장을 분석해온 김웅철 지방자치TV 대표를 만나 우리나라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시니어 비즈니스 모색 끝에 보인 답-지난 30년 고령화 선진국’이라는 기사에서 기업들의 시도가 ‘헛스윙’이었다고 자평했다. 김웅철 대표는 “당시 언론에서는 고령자를 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소비자로서의 고령자 심리를 읽지 못했다는 점을 ‘시행착오’의 원인으로 꼽았다”고 설명했다. 고령 소비자를 재정의하다 “약 680만 명에 달하는 단카이 세대(일본의 베이비부머)가 60세에 들어서는 시기를 ‘2007년 문제’라고 하며 일본에서도 관심이 뜨거웠어요. 은퇴하면 여행도 많이 가고 관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계속 일을 해 수입이 있거나 연금이 뒷받침되는 고령자가 아니면 자산이 많아도 그들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았죠.” 고령자의 현금흐름이 시장의 성장과 이어진다는 말이다. 자산이 많고 연금도 우리나라보다 먼저 도입된 일본의 고령자조차 은퇴 후 약 5년간은 시장을 관망하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연금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부동산 자산이 압도적으로 많은 우리나라 고령자는 더욱 지갑을 여밀 거라 추측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고령자들이 반드시 소비하는 것이 있다. 고령자는 나의 불편함을 해결해주고, 사는 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곳에 먼저 지갑을 연다. 김웅철 대표는 “시니어 시장에서 견고하게 성장세를 유지한 것이 의료・요양・돌봄 시장”이라면서 “다만 일본의 100조 엔에 달하는 시니어 시장의 절반은 대부분 공적 자금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봐야 한다”고 짚었다. “고령 소비자를 덩어리로 묶어 ‘매스 마켓’으로 본 것이 패착의 원인이었다고도 해요. 고령자 개개인의 니즈가 다르기 때문에 시니어 시장의 소비자를 ‘미크로(micro)’ 집단의 집합체로 보고 맞춤형 서비스를 내놔야 한다고 반성 했죠.” 그래서 일본은 고령 소비자를 75세 기준으로 전기 고령자, 후기 고령자로 나눈다. 나이를 기준으로 했지만 ‘건강’이 키워드다. 건강한 75세와 건강하지 않은 75세는 관심사도, 필요한 것도 다르다. 우리나라 장기요양보험의 모델이었던 개호보험도 후기 고령자 의료보험제도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경제・건강・고독 문제에 답 있어 김 대표는 “결국 노후 3대 자본으로 꼽히는 돈, 건강,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분야에서 수요가 발생한다”면서 “평생 현역으로 살기 위한 배움 욕구,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욕구에서 우선 소비가 일어날 것”이라 봤다. 또한 자녀가 아니라 고령자 스스로 지갑을 열 수 있는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서비스’에 기회가 있을 거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노인 복지시설인 ‘유료 노인홈’은 대부분 고령자가 가지고 있던 자산을 보증금으로 내고, 연금으로 월세를 충당하는 방식으로 굴러가요. 일본의 유료 노인홈 시장이 성장한 것은 정부의 지원 정책도 있었지만, 개인이 그만큼 지불할 능력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고령자에게는 생활을 돕는 서비스가 인기죠. 보안 서비스 업체 세콤은 전문 스태프가 24시간 상주하며 고령자의 가사 대행, 건강 상담, 쇼핑 지원 등 일상에 관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콤 마이 홈 콘세르주’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해 주목받았어요.” 고령자의 현금흐름 확보가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소비를 일으키는 재원이 되기 때문. 따라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하고자 하는 고령자의 욕구는 지속될 것이다. 일본의 릿쿄대학교는 이런 수요를 파악해 50세 이상을 위한 1년제 ‘릿쿄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 과정을 만들었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관계 비즈니스’ 영역도 필요하다. 김 대표는 “일본의 고령자들은 ‘혼활’에 관심이 많아요. 결혼 활동을 뜻하는 말이죠. 고령자들이 연금 수령하는 날이 러브호텔 대목이라고 해요. 노년기에 마지막 이벤트가 될 ‘죽음’에 관한 시장도 활발하죠. 일본에서도 죽음을 언급하는 건 터부시했지만, 이제는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종활’도 문화가 됐죠. 우리나라도 그런 흐름을 따라가리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고령화를 대하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니어들은 시니어들끼리 분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일본에서 대학생이 고령자의 불편을 해소해주는 ‘못토메이트’라는 서비스가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죠. 고령화에 따르는 불편함을 전 세대가 공유하는 문화가 생겨야 시장도 더 커지리라 생각합니다.”
- 2024-08-14 08:36
-
- “핫한 여름, 더 뜨겁게”…8월 문화소식
- ●Exhibition ◇인쇄, 시대의 기억을 품다 일정 8월 31일까지 장소 송파 책박물관 한국 인쇄의 발전상을 고려, 조선, 근대, 한국전쟁기, 현대까지 보여주는 전시다. 1부 ‘세상을 뒤흔든 인쇄’에서는 목판과 금속활자 인쇄를 소개한다. 특히 1377년 제작된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복원본을 만날 수 있다. 원본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 2부 ‘인쇄, 지식의 보급’에서는 유교 전파를 목표로 조선 태종 때부터 금속활자로 간행한 유교 경전과 의례서, 인쇄 도구 등을 얘기한다.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다룬 3부 ‘새로운 세상을 향한 목소리’에서는 1883년 한국 최초 근대적 신문 ‘한성순보’ 첫 발간, 1980년대까지 100여 년간 주요 인쇄술이었던 ‘납 활자’ 등을 소개한다. 4부 ‘위기를 딛고 나아가다’에서는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 1954년 공장을 건립하고 국정 교과서를 인쇄한 민족의 의지를, 5부 ‘인쇄 문화를 꽃피우다’에서는 20세기 기계식 인쇄 ‘오프셋 인쇄’와 가제본 방법 등 최신 인쇄술을 다룬다.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찬란한 한국사의 배경에는 언제나 책이라는 좋은 스승이 있었다. 인쇄술 발달과 함께 번영한 한민족의 삶을 반추하고, 책 문화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뜻깊은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 일정 9월 18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20세기 후반 등장한 포스트휴머니즘의 흐름을 좇아 비인간 중에서도 특히 사물에 주목했다. 인간의 도구가 아니라 함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존재로 사물을 바라보고, 공생의 시나리오를 제안한다. ‘사물의 세계’, ‘보이지 않는 관계’, ‘어떤 미래’ 등 3개의 소주제 아래 국내외 작가 및 디자이너 15명(팀)의 설치, 조각, 영상, 사진 등 작품 60여 점을 소개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팬데믹 이후 미술관이 지향해야 할 태도와 방향성을 반영해 이제껏 주목하지 않았던 사물이라는 존재를 조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며 “사회철학 및 디자인 담론을 미술과 교차하는 다학제적 접근을 통해 예술의 외연을 넓히는 기회로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Book ◇오십이 된 너에게(박혜란·토트) 저자 박혜란은 40년 동안 여성과 가족, 육아, 나이 듦에 관한 말하기와 글쓰기 작업을 해온 여성학자다. 가수 이적을 포함한 세 아들 모두 서울대에 진학해 ‘자유롭게 키우며 믿고 기다리는 자녀교육법’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어 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이에 저자는 3000회 이상 강연을 하기도 했다. ‘오십이 된 너에게’는 5년 만의 신작이다. 어느덧 세 아들이 오십 줄에 들어서면서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저자는 이제 갓 오십이 되었거나 오십을 바라보는 세상의 모든 아들딸에게 전하는 말을 책으로 묶었다. 총 4파트로 ‘인생에는 공짜도 없고 헛수고도 없다’, ‘이 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갈 테니’, ‘도대체 왜, 내가 저 사람이랑 결혼한 거지?’, ‘지나간 나이는 항상 젊다’로 구성됐다. 그간의 저작 중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나이 들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들을 담았다. 쓰린 마음에 공감과 위로를, 불안한 마음에 안도감과 자신감을 주는 글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나도 그랬어. 그냥 비틀대면서 용케 여기까지 걸어왔어” 하고 말해주는 어른의 힘은 크다. 책은 에세이와 필사,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됐다. 에세이 버전에는 저자의 진솔한 메시지가 풍성하게 담겼으며, 필사 버전은 손으로 옮겨 쓰며 마음에 새기고 싶은 글을 선별해 구성했다. ◇침묵을 배우는 시간(코르넬리아 토프·서교책방) 독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저자는 말과 침묵의 균형을 강조한다. 그가 제시한 51가지 침묵 도구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말의 무게를 더할 수 있다. ◇돈 밝히는 세계사(차현진·문학동네) 한국은행 37년 경력의 뱅커인 저자를 따라 돈의 생사고락을 함께한 인간의 역사를 파헤치다 보면, 경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외로움을 끊고 끼어들기(카로우 셰지아크 외·턱괴는여자들) 사회 구조적 외로움을 어떻게 끊어내야 하는지, 양로시설 노인을 찍은 브라질 사진작가 카로우 셰지아크의 연작 시리즈 ‘아마도, 여기’를 통해 살펴본다. ●Stage ◇시카고 일정 9월 29일까지 장소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연출 밥 포시 출연 최정원, 윤공주, 정선아, 아이비, 티파니 영, 민경아, 박건형, 최재림 등 뜨거운 열기 속에 뮤지컬 ‘시카고’ 17번째 시즌이 공연 중이다. 2000년 한국 초연 이후 누적 공연 1500회, 누적 관객 154만 명에 이르는 기록을 세운 메가히트 뮤지컬이다. 살인·탐욕·부패 등이 난무하는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쇼 뮤지컬로 화려한 볼거리가 관객을 압도한다. 이번 시즌에는 ‘시카고’ 역사상 최고 성적을 낸 2021년 주·조연 멤버들이 대거 출연한다. 최정원, 윤공주, 정선아는 남편과 여동생을 살인한 벨마 켈리 역에 캐스팅됐다. 최정원은 2000년 초연부터 출연하고 있으며, 정선아는 오디션을 거쳐 합류했다. 또한 아이비, 티파니 영, 민경아는 정부를 살해한 코러스 걸 록시 하트 역, 박건형, 최재림은 실력파 변호사 빌리 플린 역을 맡아 연기한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 일정 8월 6일 ~ 9월 28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연출 신유청 출연 유승호, 손호준, 고준희, 정혜인, 이태빈, 정경훈, 이유진, 양지원, 이효정 등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인종, 정치, 종교, 성향 등을 이유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1993년 브로드웨이 공연으로 퓰리처상, 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 등을 휩쓴 바 있다. 유승호와 손호준은 게이 남성이자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프라이어 월터 역을 맡았다. 연극에 처음 도전하는 유승호는 “무대 위에서 관객 여러분께 새로운 에너지를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또한 약물에 중독돼 환상을 보는 여인 하퍼 피트 역은 고준희와 정혜인이 연기하며,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혼란스러워하는 루이스 아이언슨 역은 이태빈과 정경훈이 맡았다. ◇은의 혀 일정 8월 15일~9월 8일 장소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연출 윤혜숙 출연 강혜련, 이경민, 이지현, 이후징, 정다연 선 긋기,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개입하지 않는 삶의 형태를 이상향으로 추구하는 무해의 시대에 사회적 연대와 돌봄의 가치를 말하는 작품이 나왔다. ‘견고딕-걸’, ‘누에’ 등 뛰어난 연극적 상상력으로 주목받은 박지선 작가의 신작이다. 작가는 중장년 여성들의 ‘서로 폐 끼치는 삶’을 따뜻하게 조명하며 메시지를 전한다. 윤혜숙 연출가는 “돌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예외 없이 주고받게 되는 것”이라며 “모든 관객과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 2024-08-02 08:26
-
- [카드뉴스] 따라 입고 싶은 노부부 시밀러룩
-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mylifemag)님의 공유 게시물 남부 캘리포니아의 70대 커플, 아키&코이치입니다. 개성 강한 할머니와 미니멀한 할아버지의 데일리 룩. 너무 사랑스럽지 않나요? • 38년 전 무술을 배우기 위해 LA로 향한 코이치 할아버지. 사범님을 통해 아키 할머니 만남 • 1974년 첫 인연을 맺은 두 사람. 결혼 전 12년 동안 친구로 지냄 • 계정(@akiandkoichi)을 만든 사람은 딸 유리 씨. 촬영, 편집, 캡션까지 유리 씨 작품 • 아키 할머니는 자신을 트렌드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함. 코이치 할아버지는 소재를 중요시하신다고! “노년 세대가 저희 영상을 보고 인생은 아름답고,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격려 받길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세대, 모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격려하고 싶어요." (피플지 인터뷰 중) 에디터 조형애 출처 akiandkoichi 디자인 유영현
- 2024-07-31 08:46
-
- “나 돌아갈래” 혼인은 무효가 가능할까?
- 남녀가 만나 호감이나 사랑을 느끼고 가정을 이루기로 결심한 후, 혼인신고를 하면 법률적으로 부부가 된다. 결혼식 같은 행사는 혼인 성립의 법률적 요건이 아니다. [민법] 제812조(혼인의 성립) ①혼인은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정한 바에 의하여 신고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②전항의 신고는 당사자 쌍방과 성년자인 증인 2인의 연서한 서면으로 하여야 한다. 혼인 당사자가 시청, 군청, 구청 등 관할 관청에 가서 신고하고 수리되면 혼인의 효력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개입하지 않는다. 혼인의 해소 절차와 크게 다른 점이다. 혼인의 해소 혼인관계는 이혼, 혼인의 무효, 취소로 해소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녹녹지 않다. 가장 간단한 해소 형태는 미성년자 자녀가 없는 혼인 당사자가 협의로 이혼하는 경우다. 이 경우만 하더라도 부부는 가정법원 협의이혼의사확인 신청을 하고, 기일 지정을 기다려 법원의 사법보좌관(예전에는 판사가 담당했다) 앞에서 그 협의이혼 의사를 확인받아야 한다. 이혼 의사가 합치되지 않으면 재판상 이혼 청구, 즉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혼인의 무효, 취소도 법원의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처럼 혼인의 해소 과정에는 법원이 개입해서 그 요건이 성립되는지 살핀다. 혼인신고는 상대적으로 쉽지만, 해소는 어렵다. 혼인으로 형성된 가정의 현 상황, 법적 상태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일 것이다. 이혼하는 당사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대방 배우자는 밉지만, 그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너무도 소중해서 건강한 이혼을 하고 자녀가 자라는 데 아무 탈 없기만을 바라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러한 당사자조차 가능하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속아서 결혼했다. 이 사람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한탄은 이혼을 고려 중인 사람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현재 없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혼인이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 민법은 마련해두고 있다. 혼인의 무효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민법] 제815조(혼인의 무효) 혼인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1.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 2. 혼인이 제809조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한 때 3. 당사자 간에 직계인척관계(直系姻戚關係)가 있거나 있었던 때 4. 당사자 간에 양부모계의 직계혈족관계가 있었던 때 혼인의 무효 혼인의 무효는 혼인 성립 이전 단계에서 성립 요건의 흠결로 인해 혼인이 유효하게 성립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혼인의 취소는 혼인의 성립 과정에 어떠한 흠결이 있을 때 그 혼인의 효력을 장래를 향하여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처음부터 효력이 없는 혼인의 무효와 구별된다. 혼인이 무효가 되는 경우는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민법 제815조 제1호)와 당사자 간이 근친인 때(민법 제815조 제2 내지 4호)로 나눌 수 있다.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란 어떤 경우일까. 혼인의 합의란 당사자 사이에 부부관계로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할 의사 및 법률상 유효한 혼인을 성립케 할 의사의 합치를 말한다. 혼인신고에 관한 형식적인 의사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질적인 혼인 의사가 없었다면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실무상 이 문제는 주로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혼인에서 피고가 처음부터 혼인할 의사 없이 단지 한국에 입국할 목적으로 형식적으로 혼인신고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원고가 혼인 무효를 구하는 사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혼인 의사는 혼인신고서가 수리될 때까지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혼인신고서 작성 후 제출 전에 한쪽이 혼인 의사를 철회했다면 혼인은 무효다.대법원 1983. 12. 27. 선고 83므28 판결) 또한 혼인식을 거행하고 사실혼관계에 있었으나 일방이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사이에 혼인신고가 이루어졌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혼인은 무효다.(대법원 1996. 6. 28. 선고 94므1089 판결) 혼인의 무효는 꼭 소송을 제기해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상 혼인 무효의 소를 제기함으써 이를 확인받는 절차를 거친다. 당사자, 법정대리인 또는 4촌 이내의 친족은 언제든지 혼인 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은 별도의 소명이 없더라도 혼인 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그 외의 사람도 법률상 이익이 있다면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소를 제기할 때는 배우자가 상대방이 된다. 제3자가 제기할 때는 부부를 상대방으로 하고, 부부 중 일방이 사망한 때는 생존자를 상대방으로 한다. 상대방이 될 자가 사망한 때는 검사를 상대방으로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가사소송 하면 흔히 조정을 떠올린다. 그러나 혼인 무효의 소는 조정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부부가 합심하여 이 결혼은 무효라고 외쳐도, 법원은 직권으로 사실조사 및 필요한 증거조사를 하여 무효 사유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편 혼인신고는 당사자 쌍방과 성년자인 증인이 연서한 서면으로 해야 하지만, 신고 자체는 당사자 일방이 하더라도 가능하기 때문에 혼인 무효 소송에서는 상대방이 원고의 동의 없이 임의로 원고 명의의 혼인신고서를 작성한 다음 일방적으로 신고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신고자가 사문서위조죄나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이 있으면 원고의 주장을 인정할 유력한 증거자료가 될 것이다. ‘이혼’과 ‘혼인 무효’의 관계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해소되었다면 그 전의 혼인관계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된다.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기도 바쁠 텐데, 이미 지나간 혼인관계가 무효인지 확인할 실익이 있을까. 과거 대법원은 ‘단순히 여자인 청구인이 혼인하였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되어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는 청구인의 현재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이혼신고로써 해소된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은 과거의 법률관계에 대한 확인이어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결하기도 했다.(대법원 1984. 2. 28. 선고 82므67 판결 등) 이와 관련해 최근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위 과거 판결을 변경했다. 사례 - 혼인신고를 하여 법률상 부부였던 원·피고는 이혼조정이 성립함에 따라 이혼신고를 마쳤음. 원고는 혼인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 강박 상태에서 혼인에 관한 실질적 합의 없이 이 사건 혼인신고를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혼인 무효 확인을 구함. - 원심은 혼인 무효 확인을 구하는 주위적 청구에 대하여는 ‘혼인관계가 이미 이혼신고로 해소되었다면 위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은 과거의 법률관계 확인으로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1984. 2. 28. 선고 82므67 판결을 인용하면서 원고와 피고 사이에 이미 이혼신고가 이루어졌고, 이 사건에서 원고의 현재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어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 → 원고, 대법원에 상고 [대법원 2024. 5. 23. 선고 2020므15896 판결] 위 사안에서 대법원은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되었더라도, 과거의 법률관계인 혼인관계 자체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편이 관련된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일 수 있으므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고 하더라도 혼인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며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원고의 손을 들어 주었다. 대법원이 이와 같이 판결한 이유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효인 혼인과 이혼은 법적 효과가 다르다.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척이거나 인척이었던 사람과의 혼인금지 규정(민법 제809조 제2항)이나 친족 사이에 발생한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 규정(형법 제328조 제1항 등)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반면 혼인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되었더라도 그 효력은 장래에 대해서만 발생하므로 이혼 전에 혼인을 전제로 발생한 법률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예를 들어 이혼 전에 부부의 일방이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제3자와 법률행위를 한 경우 다른 일방은 이혼한 이후에도 그 채무에 대하여 연대책임을 부담할 수 있지만(민법 제832조), 혼인 무효 판결이 확정되면 제3자는 다른 배우자를 상대로 일상 가사 채무에 대한 연대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혼 이후에도 혼인관계가 무효임을 확인할 이익은 엄연히 존재한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회한에 대한 심리적 보상도 무시할 수 없다. 당사자의 실질적인 권리 구제에 한 걸음 다가간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다만 혼인 무효 소송을 함부로 제기할 것은 아니다. 실무상 혼인 무효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당사자 사이에 명시적인 혼인의 합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당사자가 사실혼관계에 있는 등 일정한 경우 그 혼인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비록 사실혼관계에 있는 당사자 일방이 혼인신고를 한 경우에도 상대방에게 혼인 의사가 결여되었다면 그 혼인은 무효다. 그러나 상대방의 혼인 의사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혼인의 관행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사실혼관계를 형성시킨 상대방의 행위에 기초하여 그 혼인 의사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으므로 이와 반대되는 사정, 즉 혼인 의사를 명백히 철회하였다거나 당사자 사이에 사실혼관계를 해소하기로 합의하였다는 등의 사정이 인정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혼인을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대법원은 판결하기도 하였다.(대법원 2000. 4. 11. 선고 99므1329 판결 등). 가족관계에 대한 시각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1980년대 대법원 판결이 바뀌는 데 40년 넘게 걸렸다는 것만 보더라도, 삶에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 역시 진리다.
- 2024-07-31 08:46
-
- [카드뉴스] ‘빠지면 큰일’ 노후 4대 리스크
- 빙하가 갈라져 생긴 좁고 깊은 틈을 크레바스(Crevasse)라고 부른다. 한번 빠지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한 지형으로, 은퇴 후에 빠지면 큰일 나는 위험 요소를 노후 4대 크레바스 또는 노후 파산 4대 리스크라고 한다. 1. 배우자 리스크 은퇴한 남성에게 특히 위험하다. 집에서 배우자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 자칫하다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노후가 암담해지는 것은 물론, 살아온 인생 자체가 허망해지기 쉽다. 2. 자식 리스크 자식 리스크는 자녀의 유학, 결혼, 사업 자금을 대다 노후가 불행해지는 경우를 의미한다. 어느 부모나 자식에게 잘해주고 싶겠지만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지원해야 한다. 과도하게 하다 노후 자금이 축나서 훗날 부양 부담을 지우는 것보다 낫다. 3. 사업 리스크 은퇴하는 사람 중 다수가 재취업이나 창업을 꿈꾼다. 퇴직금이라는 목돈을 갖고 있는 이들은 창업의 유혹에 곧잘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창업 역시 큰 리스크 중 하나. 생각보다 손실이 나기 쉽고, 은퇴 후에 그 손실을 메우기란 무척 어렵다. 4. 투자 리스크 은퇴 자금으로 주식, 부동산은 물론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지식 없이 공격적인 투자를 하다 큰 손실을 입고 그 충격에 건강까지 해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은퇴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건강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노후 자금 확보입니다.” 에디터 조형애 취재 이희원 도움말 이관석 신한은행 은퇴솔루션 컨설턴트 디자인 유영현
- 2024-07-30 08:41
-
- 상속세 개편, 최고세율 50%에서 40%로… 종부세는 유지
- 기획재정부는 25일 오후 서울 은행회관에서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하고 '2024년 세법개정안'을 확정했다.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은 25년 만에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행 50%에서 40%로 인하하고, 과표구간과 공제 금액을 물가와 자산 등 변화에 맞춰 대폭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법개정안에는 상속세 완화,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2025→2027년)안 등 전반적인 조세체계 합리화 방안을 비롯해 △경제 역동성 지원 △민생경제 회복 △납세자 친화적 환경 구축 등 4개 축을 통한 역동 성장·민생 안정 지원 구상이 담겼다. 상속세 최고세율이 50%에서 40%로 하향 조정된다. 10% 세율이 적용되는 하위 과표 구간은 1억 원 이하에서 2억 원 이하로 완화되고, 최고세율 40%는 10억 원 초과분부터 적용된다. 자녀공제는 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10배 증가한다.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가업승계에 따른 세 부담을 완화한다.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중소·중견기업 전체로 확대하고, 공제 한도는 600억 원에서 1200억 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최대주주 할증평가 제도는 폐지된다.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코스피·코스닥 상장기업의 주주환원 증가분에 대해 법인세 세액공제를 적용하고, 개인주주 배당소득에 대해 저율 분리과세를 추진한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결혼 시 최대 100만 원 세액공제, 자녀 세액공제 확대, 기업 출산지원금 비과세 등의 지원책이 포함됐다. 청년층 및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납입한도 증액, 노란우산공제 소득공제 한도 상향 등의 방안이 마련되었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으로 향후 5년간 약 4조3515억 원의 세수 감소를 예상하고 있으며, 특히 상속증여세에서 4조565억 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 2024-07-25 17:11
-
- 은행가기 어려운 부모님께 “우체국 집배원이 현금 배달 해드려요”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가 ‘국민공감 10대 우정서비스’중 하나로 용돈 현금 배달 서비스와 각종 경조사 경조금 전달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모님 용돈 배달서비스’는 예금주가 지정한 고객에게 현금을 배달해주는 것으로 전국 어디에서든 신청 가능하다. 주로 자녀가 부모님께 매월 드리는 용돈을 지정한 날짜에 집배원이 현금으로 인출해 원하는 곳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은행 창구를 직접 찾기 어려운 고령자나, 은행 점포가 없는 농촌 지역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라는 평가다. 서비스 이용을 원한다면, 신청인이 우체국에서 예금계좌 자동 인출과 현금 배달을 약정하고, 원하는 배달 날짜와 금액을 지정하면 된다. 배달 금액은 최소 10만 원부터 최대 50만 원까지 1만 원 단위로 설정할 수 있다. 만약 고객 부재 등으로 현금 배달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약정 계좌로 재입금 된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현금 배달 금액에 따라 2420원부터 5220원의 수수료가 발생한다. ‘경조금 배달 서비스’는 경조사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 고객이 요청한 주소지로 경조금과 경조 카드를 함께 배달하는 서비스다. 경조 카드는 결혼, 축하, 위로, 조의 등 4종이며, ‘온라인환(환증서)’ 또는 ‘현금’으로 배달할 수 있다. 현금 배달은 최대 50만 원까지 신청할 수 있으며, 5060원~6060원(비대면 서비스는 4060원~5560원)의 수수료가 붙는다. 조해근 우정사업본부장은 “전국 방방곡곡의 우체국 네트워크를 활용해 집배원이 고객 요청에 따라 현금을 안전하게 배달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국민이 공감하고 꼭 필요한 서비스를 계속해서 발굴해 좋은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한편 현금 및 경조금 배달 서비스와 관련한 내용은 전국 우체국, 혹은 우체국 홈페이지, 우체국 예금고객센터를 참고하면 된다.
- 2024-07-11 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