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강사 김창옥 교수가 최근 알츠하이머병 의심 진단을 받았다. 50대 젊은 나이에 강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터라 더욱 대중을 놀라게 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알츠하이머병은 치매가 아니다. 치매를 유발하는 가장 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궁금증을 박기형 가천대학교 길병원 신경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치매란 기억, 언어, 판단력 등의 인지 기능이 감소해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전체 치매 환자의 60~70% 정도가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 즉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이상 단백질(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타우 단백질)이 뇌 속에 쌓이면서 뇌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퇴행성 뇌 질환을 말한다. 병이 진행되면 경도인지장애(치매 전 단계), 치매로 발전한다.
알츠하이머병은 대부분 65세 이후에 발병한다. 이 경우 만발성(노년기)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부른다. 65세 미만에서 발병할 경우 조발성(초로기)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한다. 초기부터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은 기억력 감퇴다. 병이 진행되면서 추상적 사고, 문제 해결, 적절한 결정 및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 저하된다. 그 외에 성격 변화, 초조 행동, 우울증, 망상, 환각, 공격성 증가, 수면 장애 등의 정신 행동 증상이 흔히 동반된다.
알츠하이머병은 한국인 10대 사망 원인 중 7위에 올랐으며, 2021년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15.6명으로 조사됐다. 치료가 어려운 질환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만큼, 예방과 조기 발견이 매우 중요하다.
Q. 알츠하이머병은 왜 어르신한테 특히 많이 나타나는 건가요?
A. 일반적으로 50세가 넘어가면서 뇌 안에 병리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우리 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끈적끈적해지면서 엉켜 쌓이게 됩니다. 이것이 세포 독성을 만들고, 세포 내에 있는 구조물을 망가뜨립니다. 그 대표적인 구조물이 타우 단백질인데, 그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뇌가 쭈그러들고 위축됩니다. 그러면서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변화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알츠하이머병은 인지 기능 가운데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Q. 건망증은 알츠하이머병의 전조 증상인가요?
A.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물건을 어디에 놓고 까먹는다든지, 약속을 깜빡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건망증은 몸이 피곤하다든지 혹은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건망증은 알츠하이머병의 전조 증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누군가 옆에서 ‘이런 약속 있었잖아’라고 알려줘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억하고자 하는 일이 우리의 뇌 안에 ‘등록’되고 ‘저장’되는 과정을 통해서 필요할 때 ‘인출’하는 능력이 잘 보존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기억이 ‘등록’되는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본인이 새롭게 경험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Q. 어떤 상황일 때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의심하는 것이 좋을까요?
A.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초기 치매 증상이 보이는 분들은 그 사실을 피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망증 또는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분들은 본인의 기억력이나 인지가 예전과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 병원에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인 반면, 알츠하이머병으로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이는 분들은 ‘병식’이 없으므로 본인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병원에 오시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병원으로 오시는 편입니다. 진짜 중요한 약속을 본인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할 때 경도인지장애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경도인지장애라고 해서 다 치매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경도인지장애의 30% 이상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원인을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Q. 알츠하이머병의 신약 개발 소식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검증된 의약품이 있나요?
A. 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신약 ‘레카네맙’을 승인했습니다.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아밀로이드라는 뇌 단백질을 제거하는 치료제입니다. 병을 완전히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진행을 늦출 수는 있습니다. 초기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가 약물 치료 대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5년 정도면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아밀로이드 병리를 가지고 있지만 증상은 전혀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약제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약제가 개발되면 미리 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Q. 알츠하이머병의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사실 알츠하이머병 자체로 사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인지 기능이 없어지는 것부터 시작해 결국에는 뇌 조직이 파괴돼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힘들어집니다. 또 증상이 심해지면 이상행동을 보이고 시설로 많이 가게 됩니다. 그러면 많이 누워 있게 되고 외부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질환에 쉽게 노출됩니다. 결국에는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까지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알츠하이머병 예방에 좋은 음식과 생활 습관에 대해 알려주세요.
A. ‘MIND’(마인드)라고 불리는 식단을 추천합니다. 지중해 식단과 심장병 환자를 위한 DASH 다이어트법을 통합한 것으로 견과류, 채소, 베리 종류를 많이 먹으라는 식이요법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음식이 짜고 맵기 때문에 염분 섭취를 줄이는 식사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염분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을 유발하며,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입니다. 운동은 당연히 해야 하고, 술과 담배는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 뇌를 활성화해줘 예방에 효과적입니다. 인지 기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 D가 부족해지지 않도록 바깥 활동을 늘려 햇볕을 쬐는 것도 좋겠습니다.
[도움말 박기형 가천대학교 길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치매학회 기획이사)]
"그러니까 내 말은 그거 말이야. 그거 있잖아, 그거! 그게 뭐더라… 아참 그렇지! 그래서 내 말은…. (근데 내가 이 얘기를 왜 꺼냈더라?)” 좀처럼 알던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행선지를 잃어 삼천포로 빠지는 대화. 흰머리나 주름이 신체 노화를 상징하듯, 우리 뇌와 언어의 노화를 나타내는 모습이다. 언어도 늙는다니! 그러나 낙담하지 않아도 된다. 체력을 키우듯 언어력을 키우면 노화를 늦출 수도, 더 젊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연령보다 신체 나이가 훨씬 젊게 나오는 이들이 있다. 그런 사례를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실감 난다. 이렇듯 ‘언어 나이’도 실제보다 더 젊게 유지할 수 있다. 흔히 몸이 예전 같지 않을 때 노화를 체감하듯, 언어도 마찬가지다. 이미숙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청각언어치료학과 교수는 “언어력이 떨어지는 것은 인지력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때문에 경도인지장애나 치매 진단 전 언어의 변화로 주관적 호소 단계를 경험하기도 한다”며 다음 5가지 상황을 예시로 들었다.
언어(인지) 노화의 시그널
1)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 몰라 자주 헤매고, 그런 자신을 한심하게 느낄 때
2) 당연히 알고 있는, 너무나 쉽고 익숙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답답할 때
3) 할 일이나 약속을 깜빡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이로 인해 자책감이 들 때
4) 대화 시 다음 할 말을 잊거나 너무 장황해져서 상대방 눈치가 보일 때
5) 상대가 말 한 뒤 바로 받아치기 어렵거나, 말이나 글의 이해가 더딜 때
언어력의 핵심 ‘작업기억 용량’ 늘리기
이러한 시그널은 나이 듦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뇌가 노화되면 언어와 인지 기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전전두엽과 두정엽이 위축되면 ‘작업기억 용량’이 줄어드는데, 이는 언어력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대화할 때 상대의 말을 듣고 뇌 속에 잠시 그 내용을 저장했다가 무슨 의미인지 재빨리 이해한 뒤 이에 알맞게 대꾸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탁구공 주고받듯 ‘핑퐁’이 오고가는 원활한 대화 능력은 작업기억 용량에 달렸다. 이미숙 교수는 “컴퓨터 하드웨어 용량이 모자라면 ‘디스크 공간이 부족해 더 이상 문서를 저장할 수 없음’이라는 경고가 뜬다. 이처럼 우리 뇌도 작업기억 용량의 한계로 ‘더 이상 언어 정보를 저장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 그러면 질문이나 대화 주제를 파악하기 힘들고, 순서와 문법이 적절한 맥락에 맞는 말을 이어가기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꾸준히 노력한다면 작업기억 용량은 향상 또는 유지 가능하다. 간단한 테스트와 게임으로 단련하는 방법도 있다. 먼저 숫자나 단어 목록을 만들어 이를 순서대로 몇 개나 말할 수 있는가를 통해 자신의 현재 작업기억 용량을 측정해본다. 가령 임의의 숫자 ‘59812’, 즉 다섯 자리 숫자까지 틀리지 않고 말할 수 있다면 여기에 기준을 두고 자릿수를 늘려가거나 거꾸로 말해보는 식으로 연습해나가면 된다. 특정 주제의 그림이나 사진을 이용해도 좋다. 여러 나라 국기를 늘어놓고 하나를 뺀 뒤 무엇이 빠졌는지 맞혀보는 식이다.
이 교수는 “책이나 드라마를 보고 그 줄거리를 쭉 다시 말해보는 방법도 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작업기억 용량을 늘리면, 무언가를 실행하고 집행하는 능력이나 문제해결력, 표현력, 추론 및 학습 능력 등이 더불어 향상된다. 이러한 힘은 곧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노후의 원동력이 된다”고 덧붙였다.
노화된 언어력 ‘인지 보존 능력’을 보험처럼
이미숙 교수는 노화로 인한 신경학적 손실을 보상해주는 보험 같은 기능이 있다고 귀띔했다. 바로 ‘인지 보존 능력’이다. 변화나 손상에 대비해 인지력을 보존하거나 비축해두는 기능이다. 늙은 뇌의 느슨해진 연결망을 보완해 언어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준다. 이러한 인지 보존 능력은 일상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가령 교육과 훈련을 얼마나 받았는가, 사회 활동을 얼마나 하는가, 타인과 얼마나 소통하고 교감하는가, 뇌를 자극하는 활동을 얼마나 하는가 등이다. 특히 뇌를 자극하는 활동을 위해서는 익숙하고 반복적인 일상보다 새롭고 낯선 경험이 도움이 된다.
이 교수는 “최근 연구에 참여하는 노인들과 새해에 ‘22프로젝트’라는 걸 해보기로 했다. 한 달에 2권씩 책 읽고 요약하기, 일주일에 2번 일기 쓰기, 마음에 드는 외국어 문장 일주일에 2개씩 필사하기 등 어렵지 않은 목표를 세워 성취감을 얻도록 한 것”이라며 “한 달에 2가지씩 내 생애 최초로 해보는 일 도전하기도 있다.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낯선 장르의 소설 읽어보기, 색다른 레시피로 요리해보기, 악기 배워 연주하기 등이다. 결국 이러한 활동 전반에는 언어력이 필수다. 목표를 써놓거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고, 레시피나 악보를 읽는 등의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언어력을 키울 수 있다. 사소하더라도 평생 안 해본 일이 뭐가 있을지 써보고, 하나하나 실행하는 2024년을 보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이미숙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청각언어치료학과 교수(언어병리학 박사)
참고도서 ‘당신의 언어 나이는 몇 살입니까?’(이미숙·남해의봄날)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이모코그의 인지치료 소프트웨어 ‘코그테라(Cogthera)’가 유럽 의료기기 CEMDR 마크를 획득했다.
CEMDR(Medical Device Regulation)은 유럽 시장으로 제품을 수출하려면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국제 규정이다.
이번 마크 획득은 이모코그의 독일 지사인 ‘Cogthera GmbH’를 통해 글로벌 버전을 고도화한 끝에, 독자적인 한국의 기술력을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은 성과다. 앞으로 이모코그는 유럽 연합 및 유럽 국가에 코그테라를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이모코그는 2022년 코그테라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독일 지사를 설립했다. 독일어, 영어 등 언어를 지원하는 글로벌 솔루션을 개발해왔다.
2022년 국내 경도인지장애 디지털 치료제 중 최초로 식약처로부터 확증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은데 이어 유럽 CE 마크를 획득한 이모코그의 ‘코그테라’는 경도인지장애를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기기다.
다년 간 치매 전문의들의 공동 연구 성과를 디지털화 했으며, 시간이나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집에서 맞춤형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도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음성 대화 기반의 솔루션을 구현했다.
향후 이모코그는 독일 디지털 치료기기 급여체계(DiGA)로 진입하기 위해 대규모 독일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DiGA는 디지털 치료기기 분야에서 선진적인 급여체계로 손꼽히며, 이모코그는 한국 기업 중 처음으로 이 급여체계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이준영 이모코그 대표는 “그간 독일 지사를 유럽 진출의 전진 기지로 삼아, 현지 의료기기 승인과 급여체계 진입을 위한 많은 노하우를 축적했다”며 “이번 인증을 토대로, 현지 임상 및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서울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인생의 재도약을 꿈꾸는 4050 세대를 응원하기 위해, ‘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을 펼칩니다. 본지는 서울시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공공에 기여하고 있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권종하 씨는 신체 상태나 경제 상황 탓에 밥을 잘 챙겨 먹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매일 도시락을 배달한다. 그 도시락에는 애정 어린 말 한마디와 배려 깊은 관찰 등 따끈한 밥 그 이상의 무언가가 들어 있다.
권종하 씨는 서울시에서 공직 생활을 하다 정년퇴직한 뒤 경도인지장애 어르신을 돕는 건강 코디네이터, 정보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주민을 위해 다양한 복지 정보를 전달하는 시니어 지역상담가, 어르신 지역 돌봄 등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에 참여해왔다. 2023년 보람일자리 저소득어르신급식지원단 사업을 통해 유종의 미를 거뒀다.
“현역 시절에 사회복지와 관련한 업무를 도맡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은퇴 후 보람일자리를 포함한 여러 활동을 통해 수혜자들을 마주할 때면 구체적으로 필요한 제도가 무엇인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자연스레 머릿속을 스치더라고요.”
몸 상태에 맞춘 균형 잡힌 식사
저소득어르신급식지원단 사업에 참여하며 권종하 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이나 신체 조건 등으로 인해 식사를 거르는 어르신들을 위해 맞춤형 도시락을 지원했다. 도시락은 당뇨식, 신장식, 저염식, 일반식으로 나누어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수혜자들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3월까지는 도시락 업체에서 납품받아 음식을 전달했지만 4월부터는 복지관에서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 매일 배달했다. 대부분 2인 1조로 팀을 이뤄 활동한다. 수첩에는 들러야 할 어르신의 이름과 특이사항, 상태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낯선 이를 반기는지, 조심스러워하는지까지 말이다.
“우선 수혜자들에게 건강형 식사지원사업 참여 동의를 받고 질환, 키, 몸무게, 혈압 등 건강 상태를 측정합니다. 어떤 음식을 언제, 몇 끼에 나눠 먹는지 살핀 뒤 애로사항을 확인해요. 가끔 냉장고•전자레인지 등 기본적인 전자제품조차 없이 지내는 분도 있어요. 최대한 지원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죠. 한 가구당 충분한 시간을 보내면서 힘든 부분을 꼼꼼히 체크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게끔 노력해요. 음식량은 1인분보다 넉넉히 드리는데 보통 두 번 혹은 세 번에 나눠 드시는 분이 많아요.”
수혜자마다 사연이 각기 다르다 보니 마음의 문을 여는 것도 쉽지 않단다. 어느 날 권 씨는 지원 대상에 선정된 65세 남성의 가정을 방문해 건강형 식사지원사업 취지를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아 신체 정보와 건강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수혜자는 20년 전 이혼 후 노모와 함께 생활하다 4년 전쯤 노모를 여의고 혼자 남게 되면서 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린 터라, 갑작스러운 외부 접촉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결국 지원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권 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덥수룩한 머리에 긴 수염, 지저분한 방 안 풍경이 눈에 아른거렸다. 성실히 살피고 애쓴 끝에 수혜자는 이발과 면도를 하고 집 안 청소도 부지런히 하며 무난히 지내고 있다.
한 끼에 담은 관심
지난 9월 7일, 그날도 권 씨는 도시락을 챙겨 동료와 함께 수혜자의 집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20분 남짓 가는 길에도 쓰레기를 줍거나,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 아이를 따뜻한 눈으로 마주하고, 유모차를 끈 엄마의 짐을 대신 들어주기도 했다. 꼬불꼬불 언덕을 올라 도착한 구옥 지하실 단칸방에서도 그 눈빛은 여전했다. 문을 열자마자 “어르신, 밥 왔어요. 요즘 어떠셔? 기운이 좀 없으신가? 얼굴이 푸석해진 것 같네. 요즘 주민센터나 시에서 연락 얼마나 자주 와요?”라며 다정하고 힘찬 목소리로 건넸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80대나 90대예요. 도시락 들고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지기도 하고, 우연히 예전에 도와드렸던 어르신을 길에서 만나기도 해요. 언제 또 오냐고, 우연이라도 만나서 참 반갑다는 진심 어린 말을 들을 때면 하루 종일 걸은 2만 보가 더욱 가치 있게 느껴져요. 중간에 힘들면 단골 마트에 들러 캔 커피 하나 사 들고, 빌라 건물 사이 그늘에서 마시며 숨을 골라요. 나름의 여유를 만끽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캔 커피를 비우자마자 그는 다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늦더위가 기승이었지만 수혜자들의 집은 대부분 언덕 위나 등산로 근처에 위치해 있다. 힘든 기색을 비칠 새도 없이, 어르신들의 끼니가 늦어질세라 분주한 모습이다.
“함께 활동하는 동료는 제게 하루라도 봉사를 하지 않으면 다리에 쥐가 나는 것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전 그저 쌓아온 경력을 활용해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쁩니다. 공직 생활도 정년을 채우고, 67세까지 지원 대상인 보람일자리도 정년을 꽉 채워 마무리하게 됐네요. 대상자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고 교감하면서 아주 뿌듯했습니다.”
“가치 있는 일에 대한 열정입니다.” 로봇 만드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믿음과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모였다. 로보케어는 그렇게 시작했다.
로보케어는 201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1호 기술출자회사로 설립됐다. 세계 최초로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그룹형 치매 예방 인지훈련 로봇 ‘실벗’을 개발했다. 또한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가치’를 위해 경도인지장애 어르신과 독거노인 돌봄이 가능한 가정용 로봇 ‘보미1’, ‘보미2’를 만들었다. 현재 로보케어의 로봇들은 2023년 8월 기준으로 전국에 324대가 보급되어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로봇으로 사회에 가치를 남기다
“AI 스피커가 어느 순간 급물살을 타고 가정 곳곳에 스며든 것처럼, 로봇도 우리 일상으로 들어올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이부형 로보케어 로봇사업부 부장이 말했다. 로보케어가 개발한 로봇은 10여 가지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고령화 시대에 필요한 치매 인지훈련 교육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판단된 실벗, 보미1·2, 도리 등의 기술을 강화하고 있다. 치매 인구는 세계적으로 3초에 1명씩 늘고 있으며, 2020년 기준 약 18조 원이던 치매 관리 비용은 2050년이면 약 103조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로보케어는 고령화 시대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치매를 로봇으로 예방하고,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 부장은 “헬스케어뿐 아니라 로봇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부터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듯 로봇 만드는 행위가 사회에 어떤 가치를 남길지 고민하고, 그 의미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보케어는 단순히 로봇의 기술적 측면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어디까지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하이 보미’라는 웹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로봇을 중심으로 이용자, 보호자, 관계기관을 통합 연결한 이유다. 스마트홈에 필수인 IoT(사물인터넷) 기기와도 연동 가능하고, 헬스케어 기기도 연결할 수 있다. 삶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하나로 엮는 셈이다. 현재 다양한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며 유의미한 결과도 얻었다. 치매안심센터, 치매거점병원, 요양원, 노인종합복지관, 경로당, 지역주민센터, 실버타운, 개인 가정 등 로보케어를 활용할 수 있는 곳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로보케어는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는 한편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로보케어의 로봇이 더 많은 어르신을 만나려면 상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로봇, 콘텐츠, 시스템 개발에 진심인 로보케어는 사람과 로봇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이모코그가 디지털 치료기기 기업 최초로 보건복지부의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 인증을 받았다.
이번 인증으로 이모코그는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 인증 표지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의료기기 연구·개발, 해외시장 진출 지원 등 혁신 기업에 대한 다양한 정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 인증’은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에 따라 연구개발 역량과 실적이 우수한 기업을 인증하고 지원해 국내 의료기기 산업 육성 및 활성화를 위한 제도다.
이모코그는 ‘혁신 도약형 기업’으로 인증 받았으며 인증 효력은 지정일로부터 3년 간 유지된다.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으로 선정된 업체는 인증 표지를 사용할 수 있으며 정부 지원 사업 우대와 함께 정부 정책 금융 활용 우대, 우수 기업 포상, 첨단 복합단지 기술 서비스 이용 시 수수료 감면, 해외 의료기관·기업과의 공동 연구 및 해외 임상 시험 지원 등의 지원 혜택을 받게 된다.
노유헌 이모코그 대표는 “이번 인증과 정책 지원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가속화할 예정”이라며 “한국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혁신적 기술력을 인정받고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모코그는 2021년 설립된 바이오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기업이다. 치매 예방부터 진단·치료까지 전주기에 걸친 치매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2022년 9월에는 국내 경도인지장애 분야 확증 임상 계획을 승인 받았으며, 2022년 독일에 자사를 설립해 해외 임상 및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 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으로 진출하기 위해 시리즈B투자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7년 10월 고령사회로 진입하였다. 고령사회란 UN 기준에 따라 총인구에서 65세 이상인 사람들(이하, 시니어)이 차지하는 비율이 14%를 넘는 국가나 사회를 의미한다. 2022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시니어 인구는 약 901만 명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시니어 중에서 치매가 발병한 사람은 약 94만 명(치매 발병률 10.4%)에 이른다.
현대 의학으로 치매를 완벽히 치유할 수는 없다고 한다. 다만, 유수의 의학 전문가들은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여 의사들의 조언과 처방에 따라 적절히 치료한다면 치매의 진행을 더디게 할 수 있고, 치매 증상을 개선 시킬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건강검진을 주기적으로 받는 것처럼 시니어 분들은 정기적으로 치매 진단을 받아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치매 진단은 통상 3단계를 거친다. ‘1단계는 선별검사(MMSE-DS, 인지선별검사(CIST))’라고 하는데 인지기능저하 여부를 간단하고 신속하게 측정하는 대표적인 검사이다. 우리나라 보건소(치매안심센터, 치매지원센터 등)에서는 만 60세 이상의 분들에게 해당 인지선별검사(CIST)를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만약, 1단계 선별검사에서 ‘MMSE-DS 총점 23점 이하 인지기능 장애 또는 인지저하’로 판정되는 경우 보건소와 협약된 병원(일정 소득 이하일 때 검사비가 지원됨)이나 신경과 등 병원에 가서 ‘2단계 진단검사(CDR, GDS 등)’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CDR(Clinical Dementia Rating) 검사는 치매 전문의가 실시하는 치매 척도검사로써 여러 평가 항목(기억, 오리엔테이션, 판단 및 문제 해결, 커뮤니티, 가정 및 취미)을 통해 치매의 단계 및 정도를 판단하는 검사다.
CDR 검사를 받으면 통상 CDR 0등급 ~ CDR 3등급 사이에서 평가된다. ‘CDR 0’은 정상을 의미하고, ‘CDR 0.5’는 경증인지장애(불확실, 가벼운 인지장애), ‘CDR 1’은 경도 치매, ‘CDR 2’는 중등도 치매, ‘CDR 3’은 고도(중증)치매라고 한다(CDR 4는 심각한 치매, CDR 5는 치매 말기).
2단계 진단검사에서도 치매가 의심되는 경우라면 ‘3단계 감별검사(혈액검사, 요검사, 뇌 영상 검사 등)’을 진행할 수 있다. 특히, 뇌 영상 검사(MRI, CT, SPECT, PET)는 뇌세포 부위의 이상 유무와 위축 상태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알츠하이머 치매 등 치매의 원인을 구별하는데 특히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고객의 질문
나는 80세 남성으로 3년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2년 넘게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현재는 집에서 요양하고 있다. 내 아내는 77세로 6년 전 뇌출혈 수술을 받았는데, 1년 전 치매 진단을 받았고 CDR 2(중등도 치매)이다. 두 명의 자식 중에서 첫째는 왕래가 뜸하고, 둘째가 우리 부부와 가깝게 살며 우리 부부를 3년 넘게 간병 및 봉양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먼저 죽게 되면 내 명의로 보유하고 있는 현재 아파트와 현금은 아내가 쓸 수 있게 하고, 아내가 사망한 뒤에는 해당 아파트와 잔여 현금을 우리 부부를 위해 고생한 둘째에게 주고 싶은데 가능할까?
▷수익자 연속신탁과 활용
수익자 연속신탁을 통해 고객의 의도를 반영할 수 있다. 수익자 연속신탁(신탁법 제60조)이란 위탁자인 고객이 사망하는 경우 아내와 둘째 자녀가 순차적으로 신탁재산의 수익권을 취득하거나 소유권을 이전받는 신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① 고객(남편)은 위탁자 겸 생전수익자로서 부동산인 아파트와 현금을 신탁재산으로 하여 수탁자(신탁회사 등)와 신탁을 설정하고, ② 위탁자(남편) 사망 시 1차 연속수익자를 아내로 지정하여 위탁자가 향후 사망하게 되면 아내가 해당 아파트에 계속 거주할 수 있게 하고, 이자 등을 받을 수 있게 하며, ③ 1차 연속수익자인 아내가 사망할 경우에는 2차 연속수익자인 둘째 자녀가 신탁재산의 소유권(아파트 소유권, 잔여 현금 등)을 이전받도록 설계한다면 고객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둘째 자녀가 본인 사망 시 본인의 법정상속인들에게 해당 재산이 이전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설계도 가능하다(단, 첫째 자녀가 유류분반환청구, 유류분반환청구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음).
신관식 세무사
•우리은행 신탁부가족신탁팀 차장
• 저서 :「장애인 금융 세금 가이드(2023년불멸의 가업승계 &미래를 여는 신탁(조세금융신문, 2023년)」, 「사례와 함께하는 자산승계신탁·서비스(삼일인포마인, 2022년)」, 「내 재산을 물려줄 때 자산승계신탁·서비스(삼일인포마인, 2022년)」
고령화 시대의 자산관리 방법으로 최근 신탁이 관심을 받고 있다.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는 다양한 영역에서 신탁이 활용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신탁은 고령자가 주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영역이지만, 배정식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센터 본부장은 곧 트러스트2.0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본다.
하나은행에 재직 중이던 배정식 본부장은 2010년 금융권 최초로 ‘리빙트러스트’를 론칭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유언대용신탁, 치매대비신탁, 유산정리신탁, 증여신탁, 기업승계신탁, 상조신탁, 봉안신탁 등을 선보이며 신탁 시장을 만들어왔다. 금융권에서는 그를 신탁 분야의 ‘선구자’라 부를 정도다. 배 본부장은 이제 국내 신탁 시장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협업하며 상속뿐 아니라 생애 전반을 신탁으로 관리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 왜 고령화 시대에 자산관리 방법으로 신탁이 주목받는지, 배 본부장을 만나 궁금증을 풀어봤다.
나의 자산관리 법인 ‘신탁’
신탁은 생전쪾사후에 필요한 다양한 영역을 관리한다. 50대가 넘어가면 각자의 삶에서 다양한 이벤트가 발생한다. 부모님 의료비, 자녀 교육비, 상속, 황혼이혼 등의 문제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완화하는 계약이 신탁이다. 배정식 본부장은 “가상의 자산관리 법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라며 “같은 금액을 상속받더라도 세금 문제가 형제마다 다르기도 하고 공통으로 마련해야 하는 비용도 있는데,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중립적인 시스템으로서 하나의 도구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은 2006년에 신탁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유언대용신탁이 먼저 도입됐고, 신탁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즈음 우리나라에서도 사후에 자녀를 위해 자산이 쓰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장애가 있거나 몸이 아픈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부모가 부재할 경우 사후에 자녀에게 정해진 목적으로 자산이 쓰이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고령화 시대가 오면서 노인성 질환이 증가했다. 대표적으로 치매와 같이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질환이 늘면서, 고령자의 자산을 두고 가족끼리 다툼이 벌어지거나 치매 환자의 자산을 가로채는 일 등이 생겼다. 이때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신탁이다.
“신탁의 본질은 계약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산운용을 맡기는 자산관리 시스템인데요. 스스로 자산관리를 하기 어려울 때를 대비해 여러 방법을 계약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생전에 나를 위해 자산이 쓰이다가, 사망하면 남은 재산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 상속을 명시할 수도 있고, 사망 후 자산이 어디에 쓰일지도 정해둘 수 있습니다. 고령자가 많아지면서 생전쪾사후 자산관리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고, 신탁이 활성화된 해외 사례를 보면서 신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생애주기 따른 맞춤형 서비스
미국에는 생명보험신탁, 연금양도신탁, 기부와 상속을 설정할 수 있는 신탁 CRT, CLT 등의 신탁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우리나라 신탁은 아직까지 유언대용신탁과 증여신탁이라는 큰 범위 안에서 서비스가 파생되고 있다. 우리나라 법 체계로는 증여신탁의 경우 실질적인 신탁 기능을 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증여신탁을 제외하면 대부분 유언대용신탁에서 가지처럼 뻗어나온 서비스들이다. 2010년 신탁법 개정 논의가 이뤄지면서 사후에 자산의 쓰임을 설정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었다. 배정식 본부장은 신탁법 개정이 시행되기 전 법무부의 유권해석을 받아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수탁업자(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에게 맡겨 관리하고 운영하다가 사후에 ‘누구에게 주라’고 하면 유언대용신탁입니다. 치매대비신탁은 자산관리 과정에서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이라는 조건으로 자산관리 목적을 정합니다. 이때 두 가지 수요가 있었어요. 첫째, 치매에 걸리더라도 자산이 나를 위해 쓰이면 좋겠고 둘째, 사후에 원하는 이에게 상속하고 싶다는 거예요.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더라도 자녀에게 자산을 뺏기지 않고 병원비나 생활비 등에 사용하는 거죠. 신탁에는 이렇게 자산을 사용할 때, 물려줄 때 발생할 수 있는 갈등 요소들을 계약을 통해 완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유언대용신탁과 치매대비신탁이 신탁 시장에 물꼬를 터줬다. 고객들의 신탁에 대한 요구는 더 다양해졌다. 상조신탁과 봉안신탁도 그런 맥락에서 출발했다. 과거에는 상조회사에 일정 금액을 적립하다가 사후에 장례를 맡겼는데, 갑자기 여러 상조회사가 문을 닫는 상황이 벌어졌다. 적립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지자 신탁으로 금융사에 자산을 맡겨두고 사망 시 상조회사에 자산이 쓰이도록 지정하기 시작한 게 상조신탁이다. 생전 자산관리부터 사후 자산관리까지 모두 맡기고 싶은 수요가 늘어난 셈이다. 사람마다 겪는 생애 이벤트가 다르지만, 개인 맞춤형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신탁의 가장 큰 장점이다.
“초기에는 요양원에 있는 분들의 수요가 많았다면, 이제는 경도인지장애가 왔거나 몸이 안 좋은 분들이 미리 계획을 세우고자 신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신탁은 한 사람의 삶 전반을 관리하는 것이더라고요.”
분야별 협업이 만든 ‘원스톱 서비스’
상조신탁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배정식 본부장은 생전 자산관리부터 마지막 장지까지 원스톱으로 신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봉안신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55만 평 규모로 신뢰성 높은 용인공원과 협업해 봉안신탁 고객에게 할인된 금액으로 봉안당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한 4자 협업 신탁 원스톱 서비스도 출시했다. 연세대학교 의료원, 법무법인 가온, 용인공원, 하나은행과 함께 의료원에 기부하는 고객의 생애주기에 맞춰 의료, 자산관리, 장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 것. 이를 통해 기부자의 건강한 생활, 자산관리, 상속, 증여, 후견, 상조, 장지 등의 절차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배정식 본부장은 이런 분야별 협업이야말로 트러스트2.0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더 많은 협업을 통해 신탁 시장이 확장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작이 모여 각 영역이 결합하면 하나의 원스톱 서비스 체계를 만들 수 있는 기초가 될 겁니다. 신탁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뢰성 높고 안전한 영역별 전문가들이 힘을 합치는 것이죠. 앞으로 전문가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될 수 있는 계기와 동력이 생길 거라고 기대합니다.”
2022년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신탁업 혁신 방안 중에는 전문기관과 금융기관이 위·수탁 계약을 맺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법무법인, 시니어타운, 요양법인 등이 신탁 업무를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분이 편하게 신탁 상담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신탁이 더욱 대중화될 수 있도록 길을 닦기 시작했다. 배 본부장은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신탁을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신탁은 어느 시점에 맡겨야 가장 좋을까? 사실 정해진 답은 없다. 어떤 목적으로 신탁을 활용하고자 하는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탁에 관심 있다면 ‘의사결정이 가능할 때’ 계약을 설정해두는 것이 유리하다.
“현재는 부모에게 상속받은 경험이 있는 40~50대가 신탁에 관심이 높습니다. 상속 과정이 쉽지 않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신탁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60대 중후반이 넘어서면 본인이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거든요. 건강이 염려되는 시기에 적극적으로 신탁을 고려해보시면 좋을 겁니다. 또 미국처럼 예비부부도 신탁에 관심 가져볼 만합니다. 결혼할 때 모아뒀던 각자의 자산을 자녀에게 쓰겠다, 혹은 부모님에게 쓰겠다는 목적을 설정해 신탁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추후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 갈등을 줄여줄 수 있겠죠.”
꼭 자산이 많아야만 신탁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만 원으로도 신탁을 시작할 수 있고, 1억 원이 모이면 자녀에게 증여하는 방식의 신탁을 설정할 수도 있다. 신탁의 핵심은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원하는 목적에 맞게 자산이 쓰이도록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자산관리 방법이기도 하다.
배 본부장은 마지막으로 “고령화 시대에 신탁은 원스톱 서비스로서 하나의 자산관리 도구로 활용될 것”이라면서 “각자의 생애 이벤트에 따라 누구나 신탁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 좋겠다”고 전했다.
100세 시대 시니어에게도 생애주기에 따른 예방, 인지교육,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10년 전부터 인지교육 콘텐츠를 만들어온 대교가 시니어 케어서비스 ‘대교 뉴이프’를 통해 어르신을 위한 세계에서 가장 큰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다.
시니어 뉴 라이프 솔루션 대교 뉴이프는 ‘눈높이’ 학습지로 잘 알려진 대교의 자회사다. 지난해 1월 대교의 사업부서에서 시작해 올해 7월 독립법인으로 출범했으며, 고령화 시대에 달라진 시니어의 생애주기에 맞춘 서비스들을 하나씩 선보이고 있다. 주요 서비스는 노인 장기요양사업, 시니어 전문인력 양성, 시니어 라이프 토털 케어서비스, 대교 뉴이프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크게 네 가지다.
대교 뉴이프의 시니어 라이프 토털 케어서비스의 강점은 ‘인지 케어’다. 태블릿 같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콘텐츠가 많아지는 시점에, 여전히 지류형 교재와 방문케어를 고집하는 것에도 대교의 철학이 녹아 있다. 한지훈 라이프솔루션사업부 부장은 “인지 관련 교육이 필요한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베이비붐 세대로 종이가 더 익숙하다. 지역에 따라 인터넷이 없는 가정도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디지털 콘텐츠도 개발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더 많은 어르신을 만나기에 지류가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전국에 대교의 인프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기존 학습지 교사와 서비스 인력의 시니어 전문성 강화를 위해 요양보호사 교육원과 민간자격증(시니어 인지놀이 지도사, 시니어 브레인 트레이닝 지도사, 신체활동 지도사) 과정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어르신의 학교, 데이케어센터
대교 뉴이프의 데이케어센터는 어르신의 학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선택권 존중 운영 체계’다. 데이케어센터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꿈의 호수촌’ 모델을 유심히 살폈다. 일본의 요양 시설은 대부분 ‘자립 지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교 뉴이프 데이케어센터는 인지케어에 더 중점을 두었다. 배정혁 장기요양사업부 부장은 “대부분의 요양시설에서는 획일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해 어르신들이 일방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면, 대교 뉴이프 데이케어센터는 대학교 수강 신청하듯이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선택한다. 같은 시간을 있더라도 어르신들이 더 즐겁게 보내실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데이케어센터는 서울시 공식 유니버설 디자인 가이드에 맞춰 설계됐다. 광명, 분당, 목동, 울산, 해운대점이 있으며, 최근 가맹점으로 분당에 1개소가 추가로 개원했다. 분당 1호점의 경우 오픈 4개월 만에 정원이 다 찼으며 대기자가 50명가량 된다.
방문요양센터도 대교 뉴이프의 인지케어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방문요양 서비스는 어르신의 건강을 확인하고 가사를 돕는 것에 집중되어 있는데, 대교 뉴이프는 직접 개발한 콘텐츠를 활용해 신체·인지 등을 강화해주는 데 집중한다.
인지 강화 콘텐츠로 신뢰성 높여
대교 뉴이프가 직접 개발한 ‘브레인 트레이닝 키트’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지 활동 교육 서비스다. 키트 하나가 한 달 과정으로 교구 1개와 교재 4권으로 이뤄져 있다. 1, 3호는 인지 위주, 2, 4호는 정서 위주로 되어 있다. 인지 콘텐츠는 김기웅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자기 주도형 기억증진학습법(MESL-E)’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설계했다. 정서 콘텐츠는 작업치료사협회의 감수를 받아 콘텐츠 신뢰성을 높였다. 교구의 경우 소근육 자극을 통해 인지 기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현재 개발된 키트는 경도인지장애가 있는 분들에게 효과적인 난이도다. 그 외에도 경증 치매 어르신에게 적합한 난이도의 ‘브레인 트레이닝 워크북’을 개발했으며, 경도인지장애 이전 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마이 시니어 다이어리’ 교재도 만들었다. 액티브 시니어가 두뇌 강화 활동을 할 수 있는 ‘30일 30종 두뇌트레이닝700’도 있다. 기업에서 실시하는 인·적성 검사와 비슷한 수준의 난이도 높은 교재로 기존에 보지 못했던 문제 유형들이 수록됐다. 이 책은 일본에서 ‘매일 뇌활’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것을 대교에서 독점으로 1권을 들여와 선보인 것이다.
콘텐츠는 30일을 기준으로 하루에 두 페이지씩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다연 라이프솔루션사업부 대리는 “30일이라는 숫자와 하루에 정해진 분량은 목표를 달성했다는 뿌듯함을 준다”면서 “오늘 하루 두 페이지를 완성했다거나 작품 하나를 만들었다는 데서 오는 정서적 성취감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오는 8월부터는 브레인 트레이닝 키트를 사용한 방문 인지케어 서비스를 론칭한다. 정식 서비스 출시 전 광명시와 MOU를 맺고 치매안심센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가정방문을 먼저 시작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전화보다 방문 서비스를 더 선호해 40~50명의 대기자가 서비스 오픈을 기다리고 있다. 방문 인지케어 서비스는 대교 뉴이프 홈페이지에서 월 8만 원으로 신청 가능하다.
한지훈 부장은 “아직 시니어 라이프 관련 시장은 시작 단계”라면서 “더 많은 기업이 뛰어들어 인지케어 시장이 더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고령화 시대의 자산 관리 방법으로 최근 신탁이 관심을 받고 있다. 유럽, 미국, 일본 등에서는 다양한 영역에서 신탁이 활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영역이다. 배정식 법무법인 가온 패밀리오피스센터 본부장은 은행 재직 당시, 2010년 금융권 최초로 ‘리빙트러스트’를 런칭하고, 국내에서 ‘최초’인 다양한 신탁 상품을 제시하면서 시장의 범위를 넓혀왔다. 금융권에서는 그를 신탁 분야의 ‘선구자’라 부를 정도다. 그는 곧 트러스트2.0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본다.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협업하며 상속뿐 아니라 생애 전반을 신탁으로 관리하는 시대다. 배 본부장을 만나 신탁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Q 신탁이라는 개념이 조금 생소합니다. 신탁이란 무엇인가요?
신탁은 생전, 사후에 필요한 다양한 영역을 관리합니다. 가상의 자산 관리 법인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50대가 되면 각자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벤트가 다양합니다. 부모님의 의료비나 자녀의 교육비를 고민해야 하거나, 나의 건강관리를 위해 자산이 필요하기도 하죠. 투자로 자산을 늘리고 싶기도 할 테고요. 또 상속 이슈도 있습니다. 같은 금액을 상속 받더라도 세금 문제가 형제마다 다르기도 하고 공통으로 마련해야 하는 비용도 있거든요. 이렇게 부모님, 자신, 형제, 자녀 등의 문제가 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갈등 구조를 완화하는 계약이 신탁입니다. 중립적인 시스템으로서 하나의 도구라고 보시면 됩니다.
Q 고령화 시대에 노후자산 관리의 한 방법으로 신탁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은 2006년에 신탁법 개정이 이뤄져서 유언대용 신탁이 도입됐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고객들이 사후에 자녀를 위해 자산이 쓰이도록 관리하는 방법이 없는지 문의하기 시작했어요. 장애가 있거나 몸이 아픈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부모가 부재할 경우, 사후에 아이들에게 정해진 목적으로 자산이 쓰이도록 관리하고 싶은 수요가 있었던 거죠.
신탁은 계약에 기반을 둔 자산 관리 시스템입니다. 본질은 계약이죠. 믿을만한 사람에게 나의 재산을 어떻게 관리할지 맡기는 것인데요. 스스로 온전하게 자산관리를 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운영과 관리 방법들을 계약 안에 녹일 수 있습니다. 생전에 나를 위해 자산이 쓰이도록 관리할 수도 있고, 혹시 내가 사망했을 경우 누구에게 남은 자산을 줄 것인지 상속까지 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고령 사회가 되어가면서 사전, 사후의 자산 관리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고, 우리나라와 사정이 좀 다르긴 하지만 해외의 사례들을 보면서 신탁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죠.
Q 하나은행 재직 당시 은행권 최초로 ‘리빙트러스트 센터’를 설립하셨어요. 유언 대용 신탁, 치매 대비 신탁, 증여 신탁, 기업 승계 신탁, 상조 신탁, 봉안 신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최초로 신탁 상품을 제안하시면서 국내 신탁 시장의 범위를 넓혀 오신 건데요. 구체적으로 이 신탁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증여 신탁을 제외하면 대부분 유언 대용 신탁에서 가지처럼 뻗어 나온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수탁업자(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에게 맡겨 관리하고 운영하다가 사후에 ‘누구에게 주라’고 하면 유언 대용 신탁입니다. 우리나라에 신탁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인가된 기관이 60개가 있는데요. 어떤 곳은 부동산만 취급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금전만 하기도 합니다. 각자의 영역이 다른데요, 대표적으로는 은행, 증권, 보험사가 신탁을 주도하고 있었죠. 2010년 우리나라에서 신탁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어요. 이 시기에 앞서 말한 것처럼 원하는 방식으로 사후에 자산이 쓰일 것을 설정하는 자산 관리 방법을 찾는 고객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신탁법 개정이 실제로 이뤄지기 전에 법무부의 유권 해석을 받아 유언 대용 신탁 상품을 출시할 수 있었어요.
치매 대비 신탁은 자산 관리 과정에서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이라는 조건으로 자산 관리 목적을 정하는 거죠. 제가 이 신탁을 만들었을 때는 두 가지 수요가 있었어요. 첫째, 내가 치매에 걸리더라도 자산이 나를 위해 쓰이면 좋겠고, 둘째, 사후에는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상속하고 싶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치매에 걸렸을 때 자녀들에게 자산을 뺏기지 않고 병원비나 생활비 등에 지출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더라도요. 처음 이런 내용의 신탁을 만들 때는 저에게도 상당한 도전이었습니다.
유언 대용과 치매 대비 신탁이라는 물꼬가 트이니 신탁의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꼭 상속이나 유언을 대신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관리하는 것이더라고요. 고객들의 요구도 점차 다양해지기 시작했고요. 상조 신탁과 봉안 신탁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생전 관리부터 사후 관리까지 모두 맡기고 싶은 것이죠. 초기에는 요양원에 있는 분들이 급하게 이런 방법을 고민했다면, 이후에는 경도 인지 장애가 왔거나, 현재 몸이 안 좋으신 분들이 미리 계획을 세우고 원하는 방식으로 상속하고 싶어 하는 식으로 확장된 거예요.
상조 신탁은 자산 관리를 맡긴 금액 중 일부를 사망했을 때 상조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지정하는 계약입니다. 과거에 여러 상조 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는 시기가 있었어요. 상조 회사에 적립식으로 돈을 넣어두었던 사람들은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산을 만약 신탁으로 맡긴다면, 상조 회사가 없어지더라도 나의 자산은 남게 되죠. 이후에 다른 상조회사와 계약을 다시 하면 되니까 신뢰성과 안정성이 확보되는 셈입니다.
또 자산 관리부터 마지막 장지까지 원스톱으로 신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제안했던 것이 봉안 신탁이에요. 용인 공원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55만 평 규모로 신뢰성이 높은 곳이어서, 고객에게 할인된 금액으로 봉안당을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본 것입니다.
Q 사람마다 생애 주기가 다르고 삶의 이벤트가 다른데, 이를 개인에 맞춰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 신탁의 장점이네요. 그렇다면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자가 다양한 영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셈인데요. 금융, 부동산, 법에 관한 지식뿐 아니라 가족과의 갈등 완화까지 할 수 있는 소통 능력도 있어야 하겠어요.
그래서 신탁이 무척 어려운 지점이기도 합니다. 신탁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업무 협약을 맺은 곳들도 신뢰성이 높고 안전한 곳으로 선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영역별 전문가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될 수 있는 계기와 동력이 생길 거예요.
이번에 논의 중인 신탁업 혁신 방안 중에서는 전문기관과 금융기관이 위·수탁 계약을 맺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시니어타운, 요양 법인 등이 신탁 업무를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분이 편하게 신탁 상담을 받을 수 있겠죠. 물론 신탁의 업무 범위는 구체적으로 논의 되어야 하지만요.
Q 우리나라와 해외의 신탁이 많이 다른가요?
우리나라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진 것은 아니어서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법체계로는 증여 신탁의 경우 실질적인 신탁의 기능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미국에는 생명 보험 신탁, 연금 양도 신탁과 같은 상품들이 있어요. 기부와 상속을 설정할 수 있는 신탁 CRT, CLT도 대표적인 신탁이죠. 이런 신탁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뤄지려면 세금과 관련해서 제도가 완전히 바뀌어야 가능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6월에 연세의료원, 용인공원, 하나은행, 법무법인 가온 네 곳이 업무 협약을 맺고 신탁을 출시했어요. 연세의료원에 위탁자가 기부하면, 연세의료원에서 기부자를 돌보다가 돌아가셨을 때 기부한 돈 일부를 상조·장례·봉안당 비용으로 사용하는 거예요. 기부도 하고 사후에 필요한 부분을 서비스로도 받아볼 수 있는 것인데요. 이런 시작이 모여 각 영역이 결합하면 하나의 원스톱 서비스 체계를 만들 수 있는 기초가 될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트러스트 2.0이 시작되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신탁을 맡기려면 자산이 얼마나 있어야 가능할까요?
꼭 자산이 많아야만 신탁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제가 49재 신탁을 만들었을 때 최소 가입비용을 1만 원으로 제안했어요. 적금과 다름없는 구조지만 굳이 신탁이라는 계약을 거치는 건 제3자의 개입 없이 내가 원하는 목적으로 명확하게 자산이 쓰이도록 하기 위해서죠.
매달 일정 금액을 적립해 1억 만들기 등의 목적을 달성하면 자녀에게 증여한다는 설정을 할 수도 있어요.
Q 신탁은 언제부터 맡기는 게 좋을까요?
60대보다 4~50대가 오히려 신탁에 관심이 높습니다. 부모님에게 상속을 받아본 경험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상속이 꽤 복잡하다는 걸 느끼고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건데요.
물리적으로 생각하자면 건강을 고려해야 합니다. 60대 중후반이 넘어서면 건강에 대비해 자산 관리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이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거든요. 건강이 염려되는 시기에 적극적으로 신탁을 고려해보시면 좋을 겁니다.
건강 이외에 시점을 생각해보자면 결혼을 막 하려고 하는 예비부부도 신탁에 관심을 가져볼 만 합니다. 미국에는 이런 신탁 문화가 잘 되어있어요. 결혼할 때 각자의 신탁으로 자산을 설정하고 관리하는 것인데요. 내 자산의 얼마를 결혼 후 자녀의 대학 자금으로 쓰고 싶다거나, 혼자 계신 부모님에게 사용하고 싶다는 자산 사용 목적을 설정해둘 수 있습니다.
Q 앞으로 신탁에 관심을 가질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고령화 시대에 신탁은 원스톱 서비스로서 하나의 자산 관리 도구로 활용될 텐데요. 꼭 고령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에 이벤트에 따라 이제는 다양한 신탁 서비스가 갖춰져 있다는, 누구나 신탁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