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인치. 넉넉한 허리둘레를 가진 수학 교사였다. 운동과 담쌓고 살던 어느 날. 아이들이 짓궂은 장난을 쳤다. 책상과 교탁 사이 간격을 좁혀놓은 것이다. 그날이 계기였다. 퇴근 후 매일같이 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마흔일곱에 보디빌딩에 입문했다. 지금처럼 유튜브가 있지 않은 시절이라 운동방법을 인쇄해서 파일철에 들고 다니며 몸을 만들었다. 대회도 꾸준히 출전했다. 마그마치 8번. 그러던 2014년, 서울시장배 마스터즈(50~59세)급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퇴직 후 생활스포츠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때가 예순셋이었다. 평소 다니던 피트니스센터에 취업도 했다. 첫 고객은 중년 여성분이었는데 다이어트에 성공한 뒤 지인들을 데리고 왔다. 입소문 덕에 바쁘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지만 무언가 아쉬웠다. 내 경험과 노하우를 무료로, 또 지속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사표를 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50+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유튜버 양성 프로그램을 알게 돼 지원했다. 결과는 합격. 그곳에서 다양한 수업을 들은 후 바로 유튜브 채널 ‘강철헬스전략’을 개설했다. 예순일곱에 유튜버가 된 것이다.
‘강철헬스전략’을 통해 시니어를 위한 기초 운동 상식부터 장소에 따른 운동 방법, 보디빌딩 대회 전 일상 등 폭넓은 콘텐츠를 전하고 있다. 아무래도 중장년은 어깨너머로 배운 운동을 무심코 따라 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운동하다 다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 전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느덧 일흔이 넘었다. 퇴직하면 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바쁘게 살고 있다. 늦은 때라는 건 없는 것 같다. 무엇을 시작해 볼지 고민하고, 새로운 분야를 탐구하는 과정이 즐겁다. 내 생에 오늘이 가능 젊은 날이다.
“건강전도사 강철진입니다. 늦은 때란 없습니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날입니다.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운동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에디터 조형애 취재 문혜진 디자인 이은숙
번뇌와 피로가 쌓였을 땐 하루쯤 쉬어가도 좋다. 특별히 고요한 쉼터를 찾는다면 ‘템플스테이’ 만 한 것이 없다. 사찰로 가는 첫 번째 문인 일주문(一柱門)에 들어서는 찰나, 속세를 뒤로하고 불계와 만나게 된다. 굴레와 속박의 시계는 잠시 멈추고, 오롯이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흐른다. 비움을 실천하는 불계의 하루를 지나 다시 일주문을 나서면 어제와는 또 다른 속세가 펼쳐질 것이다.
2002년 시작된 템플스테이는 2022년 기준 누적 참여자 수가 600만 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그 인기가 높아졌다. 고즈넉한 자연 속에서 내면의 성찰을 꾀할 수 있어 정적인 휴식을 원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일상의 고민을 해소하고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찾아오는 중장년도 적지 않다. 불교 신자만 가능하다는 오해도 있는데, 템플스테이는 종교와 무관하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다만 스님들과 함께하는 만큼 몇 가지 유의사항이 따른다. 음주 및 흡연이 금지되고, 채식 공양을 하며, 식사 시간에 말을 하지 않는 것 등이다. 사찰 내에서는 손을 엇갈리게 잡는 차수(叉手) 자세로 다니거나, 대웅전 등 법당에 드나들기 전 잠시 서서 합장 반배를 하는 등 예의도 갖추면 좋다. 이렇듯 일상에서 행하던 것들을 삼가거나 낯선 것을 익히는 과정 등을 통해 잠시나마 자기 수련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이 또한 템플스테이에서만 누릴 수 있는 귀한 경험이다.
템플스테이, 어디로 가서 무얼 할까?
템플스테이에 참여하고 싶다면 먼저 방문할 사찰을 정해야 한다. 2024년 4월 기준 전국에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사찰은 158곳이다. 매년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엄격한 심사를 통해 템플스테이 공식 운영 사찰을 선정하고 있다. 평균 숙박 요금은 7만 원대로, 독방부터 2~4인방, 단체방 등 규모는 사찰별로 상이하다. 만약 오롯이 홀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방 구성도 사전에 점검해보면 좋다.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크게 3가지 유형(당일형·체험형·휴식형)으로 나뉜다.
템플스테이가 처음인 경우 108배 등을 경험하고 싶다면 체험형을 권한다. 그밖에 발우공양, 연등 만들기 등도 즐길 수 있다. 계절 또는 참가자 특성에 따라 사찰마다 다른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주변 자연환경을 이용한 숲 체험이나 갯벌 탐사, 야생 녹차 만들기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자율적으로 고요하게 쉬어가고 싶다면 휴식형이 알맞다. 말 그대로 휴식을 돕는 프로그램으로, 일과 중 예불과 공양, 사찰 안내 및 예절 교육 이외 시간은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 숙박이 여의치 않은 이들을 위한 당일형 프로그램도 맛보기로 해볼 만하다.
사찰마다 운영하는 템플스테이 유형과 세부 프로그램이 다르기 때문에 사전 정보 확인은 필수다. 이때 일일이 사찰별로 알아볼 것 없이,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서 지도 형태로 지역별 템플스테이 사찰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사찰별 운영 프로그램 확인 및 템플스테이 예약도 해당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면, 템플스테이를 간접 경험해볼 수 있는 VR 및 영상, 웹진 등 다양한 콘텐츠를 둘러보며 가볼 만한 사찰을 찾아봐도 좋다.
홀연히 떠나 ‘인연처’를 만나는 기쁨
온라인을 통한 템플스테이 정보 검색 및 예약이 어려운 중장년이라면 오프라인 ‘템플스테이 홍보관’을 찾아가 보자. 서울 종로구 조계사 건너편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전국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 소개 및 참가 예약 방법 등을 안내하고 있다. 아울러 템플스테이를 통해 즐길 수 있는 스님과의 차담, 합장주 만들기, 연꽃등 만들기 등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도 상시로 운영한다.(전화 문의 및 예약 가능)
템플스테이 홍보관 부관장으로 방문객들을 만나온 선주스님은 “템플스테이 참여자 대다수가 ‘절에 오니 마음이 편하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인의 삶은 빡빡하고 여유가 부족하다. 반면 속세를 벗어난 사찰이라는 공간은 여백이 많다. 그로부터 얻는 여유와 비움이 쉼을 주는 것 같다. 그런 오랜 고요함 속에서 삶을 관조하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보관 방문객 중에는 사찰 추천을 부탁하는 이가 종종 있다. 선주스님은 “유명하고 인기 있는 곳도 많지만, 우연히 발견했거나 나에게 어떤 끌림이 주는 곳을 찾아가도 좋다. 그러면 그게 곧 나의 ‘인연처’가 된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사람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곳만의 멋과 즐거움이 존재한다. 특별히 준비할 건 없다. 어떠한 상황도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한 마음만 가져가면 된다. 계획을 세우고 기대를 갖기보다는 홀연히 떠나보길 권한다. 그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해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템플스테이 홍보관
ㆍ위치 :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56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 1층
ㆍ운영 : 월~금요일 09:00~19:00 토·일요일 및 공휴일 09:00~18:00
도심에서 즐기는 템플스테이 ‘화계사’를 가다
‘가장 바쁜 곳(서울)에서의 진정한 휴식’, ‘도심 속 힐링’. ‘화계사 템플스테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이라는 질문에 참여자들이 남긴 글이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화계사는 도심 속에서 템플스테이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접근성이 용이한 서울시민뿐 아니라 지방 및 해외 방문객에게도 인기가 높아 매달 예약 인원이 금세 마감된다.
수유역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화계중학교 옆 언덕배기에 화계사 일주문이 나타난다. 일주문을 기준으로 속세와 법계가 나뉜다는데, 이곳은 실제 풍경도 그러하다. 문 바깥으로는 도심이, 안쪽으로는 자연이 펼쳐진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쪽에 ‘화계사 템플스테이’ 건물이 보인다. 참여자들은 이쪽에서 방 배정과 간단한 프로그램 안내를 받는다. 화계사에서는 체험형 프로그램 ‘나를 위한 행복여행’과 휴식형 프로그램 ‘오직 쉴 뿐!’을 운영한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휴식형이 진행됐다.
참여자들은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뒤 지도 법사인 혜량스님과 함께 도량을 산책한다. 이후 일정은 공양인데, 템플스테이에서의 저녁 식사는 다소 이른 오후 4시에 시작된다. 잘 차려진 사찰음식을 먹을 만큼 덜어 남김없이 먹는 것이 원칙이다. 묵언 수행도 이뤄진다. 식사 후에는 사용한 식기를 설거지하는 것으로 공양이 끝난다. 이른 저녁 식사로 출출할 참여자들을 위해 숙소 건물에는 주전부리가 놓여 있다. 마지막 일정인 저녁 예불을 마치면 오후 9시에 소등하고 취침하는 것으로 첫날이 마무리된다.
한 중년 남성 참여자(49)는 “직장에서 중견 역할을 하다 보니 고민도 많고 피로감도 크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홀로 휴식을 즐기고 싶어 템플스테이를 찾았다”며 “무조건 내달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한 번쯤 이렇게 쉬어가기도 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기도 해야 한다. 그런 기회를 템플스테이를 통해 얻었다. 동년배인 아내에게도 권하고 싶다. 체험형 프로그램은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와도 좋겠다”며 소감을 들려줬다.
이튿날에는 보통 새벽 예불과 아침 공양, 스님과의 차담 등이 이뤄진다. 특히 스님과의 차담은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 은은하게 우린 차 한잔 곁들이며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인생의 혜안을 얻기도 하고,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기도 한다.
혜량스님은 “차담을 해보면 연륜 있는 분일수록 불교의 철학과 교리에 대한 흡수가 빠르다. 그동안 산전수전 겪어왔을 중장년들은 인간관계의 고충,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생각 등을 털어놓는다”며 “이곳에서 도심을 바라보면, 조금 전까지도 내가 씨름하던 속세가 멀찍이 느껴지고 어떤 풍경처럼 다가온다. 이렇듯 나라는 존재 또한 분리하고 대상화해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 죽을 듯 괴로웠던 문제들도 무언가의 일부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거나 손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등 삶의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취재 협조 및 사진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화계사 템플스테이
국적, 나이, 성별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만날 수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하지만, 서로의 감정이나 반응을 깊게 이해하며 인연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오해가 쌓여 오히려 관계를 해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로운 환경에서 내 생각과 취향을 공유하며 유대감은 쌓되, 타인과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네이버 밴드,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처럼 다양한 SNS로 나를 표현하고 남들과 교류하는 이들이 늘었다. 소통 방식은 각자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공유하고 싶어 하는 반면, 누군가는 이런 행동을 질색하며 경조사나 업무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소통하려 한다. 개성 있고 자유로운 SNS 활동도 중요하지만 타인을 배려하며 예의를 지킨다면 더 돈독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한 번 더 짚어야 할 예절
누군가를 만날 때는 늘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한다. 온라인 환경도 다르지 않다. 말이나 행동은 우리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게시물이나 댓글이 타인에게 나의 가치관과 성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못된 행동이나 무례한 말투로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SNS는 글 형태의 메시지가 주된 소통 수단이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표현이나 과도한 외래어, 전문 용어 대신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는 편이 좋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개인적인 소식을 무분별하게 공유하는 행위도 지양해야 한다. 급한 용건이 아니라면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직접 혹은 단체 공간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더욱 피하자. 개인 채널에 게재하는 사진이나 글이 상대방에게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가 고민해봐야 한다. 폭력성·음란성을 띠거나 차별적인 콘텐츠는 타인에게 상처로 남기 십상이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이야기의 수위와 완급을 조절하듯 SNS에서도 마찬가지다.
관계 맺은 친구와 내가 무조건 같은 이용 행태를 보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룹이나 페이지에 동의 없이 초대하거나, 좋아요 버튼을 누르라고 강요하거나, 바로 댓글 달기를 바라면 안 된다. 가장 가까운 가족도 포함이다. 관계의 확장이나 활동 주기는 스스로 정하도록 하는 존중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직장에 출근한 시간대에만 SNS나 모바일 메신저를 활발하게 주고받는 ‘출근 친구’ 사이도 등장했다. 퇴근 시간이나 주말에는 최대한 인간관계의 피로감을 줄이고 개인 시간을 지켜주는 셈이다.
저작권 침해 및 개인정보 노출 주의
만남과 소통, 정보 교류, 문화 창조가 이루어지는 무궁무진한 공간이지만 사생활을 침해받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높아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생년월일, 주소, 휴대폰 번호 등 필요 이상의 개인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프로필 공개 범위를 신중하게 설정하자. 모르는 사람이 친구를 신청한다고 해서 함부로 수락하면 보이스 피싱이나 로맨스 스캠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의심스러운 링크나 첨부파일을 클릭하지 말고,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이종구 SNS소통연구소 대표는 안티바이러스, 방화벽, 경찰청 사이버캅, 시티즌코난 등 보안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할 것을 권했다.
SNS 활동에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면서 오히려 소외감, 뒤처짐, 외로움에 직면하기도 한다. SNS 사용으로 직접 만남을 통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다. ‘중년 여성의 스마트폰을 통한 SNS 사용 경험’ 보고서에 따르면, 42~52세 여성 10명을 심층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을 통한 타인의 사생활 엿보기는 면대면 상호작용 없이도 생활을 공유한다고 오해해 직접적인 연락 횟수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일과 가정의 경계가 불분명해져 나만의 시간 확보가 어려워졌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 대표는 “트렌드 파악뿐 아니라 인맥 관리, 비즈니스 관계 맺기, 멘토링 받기 등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지만 과도한 이용은 금물”이라며 “개인적인 공격이나 비방을 삼가고 최대한 침착하고 예의 바르게 소통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전주에서 진안으로 이어지는 소태정 고개 국도변에 아담한 카페가 있다. 외벽에 진분홍색을 입혀 로맨틱한 멋을 풍기는 가게다. 과하지 않게 잔잔한 인테리어로 개성을 돋운 내부는 봄 햇살 내려앉은 듯 상쾌하다. 통유리창 너머에선 연둣빛 숲이 서성거린다. 이 카페는 귀촌인 임진이(48, 카페 ‘비꽃’ 대표)가 폐허처럼 방치됐던 건물을 임대받아 재생했다. 셀프 리모델링으로 되살렸다. 미술을 전공한 그에겐 결혼 전 미술학원을 운영한 이력이 있다. 카페 한쪽 벽면에 흑백 모노톤으로 그린 벽화가 있는데 그의 작품이다. 카페를 차린 건 4년 전이었다.
전주시에서 살았던 임진이는 2014년 이곳 산 많은 고원지구 진안군으로 귀촌했다. 그에겐 세 자녀가 있는데 초등학생이던 딸 둘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시골 생활에 입문했다. 아토피는 겪어본 사람만이 그 고통과 불편의 강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난치성 질환이다. 그러니 엄마로서 심정이 오죽했으랴. 해볼 건 다 해본 것 같다. 그러다가 시골의 자연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기르는 게 유력한 대안이라고 여겨 시골에 들어왔다. 남편은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내세워 귀촌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임진이는 밀어붙여 뜻을 이루었다. 남편은 전주에 머물러 하던 사업을 차질 없이 계속하고, 나머지 가족은 귀촌하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은 것.
이렇게 주말부부가 됐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로 서슴없이 뛰어들었다. 익숙한 도시를 떠나 낯설고 고즈넉한 시골로 삶을 이동한다는 게, 시간이라는 유한한 자원을 시골살이에 쏟아붓는다는 게 쉬운 일인가. 그만큼 딸들의 아토피 치유에 대한 바람이 간절했다. 그래서인가, 지성이면 감천인가, 마침내 아이들이 피부 건강을 회복했다.
“시골의 좋은 자연환경과 깨끗한 먹거리가 가져다준 성과였다. 정서적인 면에서도 아이들은 바람직하게 성장했다. 매우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자랐으니까. 아이들이 시골 생활에 대해 자주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오히려 의젓하게 성숙한 셈이다. 과외를 받지 않고도 학교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했으나 그마저 기우에 불과했다. 딸들이 자랑스럽다.”
아이들의 건강 회복을 계기로 다시 도시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나?
“우리는 시골 생활에 적응하며 잘 정착했다. 초기 한때 힘에 부쳐 돌아갈 궁리도 했지만 아이들을 고려해 마음을 다잡았다. 어려운 상황을 겪을 때마다 오히려 나 자신이 한결 단단해지는 걸 느끼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귀농·귀촌인 대상으로 멘토 역할도 한다지?
“그렇다. 서서히 일의 범주가 확장되면서 성과가 주어졌고, 자연스럽게 시골살이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처음엔 어려운 게 많았다. 전주 친구들이 이런 얘길 할 정도였다. ‘그것 봐라!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난 시골에 가지 않는 거야!’ 그랬던 친구들의 말이 언제부턴가 바뀌었다. ‘어! 나도 촌에서 살아볼까?’로.”(웃음)
어떤 일이 가장 힘들었나?
“귀촌 직후 집을 지으려다 실패한 경험을 꼽아야겠다. 주민과 진입로를 놓고 분쟁이 빚어져 결국 건축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곤 주택을 임대해 사는 것으로 귀촌 생활을 시작했다. 집의 상태가 허술해 여름엔 몹시 더웠고, 겨울엔 몹시 추웠다. 그렇게 초기 4년을 이모저모 불편하게 살다 마을과 좀 떨어진 산 아래에 비로소 집을 지어 이사했다.”
진입로를 둘러싼 외지인과 원주민 사이의 마찰은 하나의 풍속처럼 흔해졌다. 역귀농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해법은 무엇이라 보나?
“희한하게도 현재 살고 있는 두 번째 집 역시 진입로 문제가 있어 아직까지 고충을 겪고 있다. 사전에 법적인 문제를 충분히 점검했지만, 저 멀찍이 있는 진입로 일부의 소유권을 가진 주민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진입로가 폭우에 망가져도 아예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 귀농·귀촌을 하려는 분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시골의 토지를 살 때 법적인 문제를 점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마을에 믿을 만한 지인 하나쯤 미리 만들어 해당 토지의 현황을 상세히 파악함으로써 불운을 예방하라는 걸.”
원주민의 텃세가 두려워 귀농·귀촌을 주저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합리적인 판단일까?
“텃세로 곤욕을 치른 사례가 있을망정 그걸로 마을 인심 전체를 측정할 일은 아니다. 한두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불상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난 주민들의 따뜻한 인정을 실감하며 살았다. 서로 돕고 나누는 관계를 추구할 때 정착이 수월해진다.”
임진이는 아침 일찍 카페로 출근해 문을 연다. 카페 앞 국도를 통해 전주로 출근하는 직장인 중 카페에 들러 샌드위치 같은 아침 간편식이나 차를 주문하는 이들이 드물지 않아서다. 운영은 순조로울까?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팬데믹이 들이닥쳐 전반적으로 여의치 않았다. 주변 일대에 카페들이 급속히 늘어 경쟁도 심화됐다. 진안에서 생산되는 청정 농산물로 만든 음료와 간편식을 팔았지만 수요가 많지 않았다. 식재료의 원가 대비 마진도 기대치 이하였다.”
어떤 방법으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보나?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아 다시 뛰고 있다. 얼마 전 리모델링을 해 공간의 구색을 바꾸었다. 진안 홍삼이나 벨기에 와플이 들어가는 브런치 메뉴도 개발했다. 국도를 오가는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메뉴도 만들었다. 으쌰으쌰, 이제 새로 출발한다! 그렇게 속으로 외치고 있는 거다.(웃음) 좋은 반향이 있을 거라 예상한다.”
뜻밖에 얻은 벽화 그리기 직업
삶이 원래 그렇듯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질주를 했으나 돌아보면 우습게도 원래 자리 그대로다. 그렇다고 무슨 악마의 계략이 거기에 개입됐을 리 있으랴. 관점을 바꾸어 바라보면 시련도 강을 건너게 하는 징검다리다. 임진이는 부진했던 카페의 상황을 그렇게 긍정의 눈으로 읽어낸다. 사실 귀촌의 날들 속에서 그에게 닥쳐온 고통과 불편의 가짓수가 한둘에 그치지 않았단다. 그러나 그걸 위기가 아닌 충전의 기회로 간주해 허들을 넘어서길 거듭한 것 같다. 고생이 오히려 정신을 단련시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게 해준다는 걸 깨달으며 살아왔다는 게 아닌가. 그래 결과적으로 그의 귀촌 생활은 순항을 위주로 펼쳐졌다. 바야흐로 이젠 지역사회에서 알아주는 이가 많은 존재로 부상했다. 그럴 수 있게끔 부지런히 뛰었다.
“카페 일만 본업은 아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일감을 갖는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가장 보람차고 즐거운 일은 마을 벽화 그리기다. 이건 재능기부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일이 커졌다.”
마을 벽화를 그려 수익을 얻는가?
“그렇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단순히 봉사활동으로 그려준 마을 벽화가 맘에 든다며 행정 쪽에서 아예 사업을 위탁해주더라. 그래 주민들과 협업해 본격적으로 벽화 작업에 나섰다. 지금까지 진안군 관내 20여 개 마을에 100여 점의 벽화를 그렸다.”
원래 가지고 있던 재능을 발휘해 일자리를 창출한 셈이다. 신선한 얘기다.
“내가 미술을 전공했지만 누가 미술 공부를 하고 싶어 할 경우엔 뜯어말렸다. 그림으로 먹고살기 힘들기 때문에. 사실 시골에 살면서 미술 관련 작업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발상 자체를 해보지 않았다. 그랬는데 직업적으로 그릴 수 있는 기회가 우연히 주어졌다. 보수는 많지 않지만 돈보다 값진 보람이 크다. 마을 벽화 역시 일종의 창작 행위이기 때문에 작품성을 부여하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벽화를 완성한 뒤 밝고 깨끗하게 변한 마을의 모습에서 희열을 느낀다.”
지역주민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시골에서 잘 살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얘기가 있다. 주민들과 우호적으로 지내는 당신의 비결은 무엇인가?
“대접받기보다 먼저 대접하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 이웃에게 도움이 될 일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가령 고령층이 다수인 시골에선 꼭 필요한 민원조차 넣지 않는 걸 알고 내가 나섰다. 가로등이나 과속방지턱 설치에 관한 민원 신청을 해 해결하는 식으로.”
실로 치열하게 살았다
임진이에겐 동네 주민들이 붙여준 별명이 하나 있다. ‘민다리’라 불리는데 ‘민원의 다리’라는 의미라고 한다. 관심 갖고 찾아보면 나에겐 물론 남에게도 좋은 일은 시골에서도 얼마든지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진안군 정책자문위원을 맡아 주민 편익에 관련한 의견 제시도 한다. 이렇게 생활상의 활동 반경을 넓혀나갔다. 그러자 도시에 살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열리지 않던 안목이 열리더란다. 아울러 소극적이었던 성격이 능동적으로 변했고.
“내가 참여하는 공공활동은 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돈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다. 소소한 일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공익에 관심 갖고 움직이다 보면 얻는 게 많다. 우선 인적 자산이 형성된다. 나 자신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선한 사람이 아니건만 남들이 선한 사람이라고 할 때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럴 땐 정말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다지곤 한다. 이런 감정은 도시에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시골도 자본주의의 흐름을 타고 돌아간다. 경제적인 면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나?
“귀촌 이후 남편의 사업 부도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부를 누린 적도 있지만 졸지에 정반대 상황과 직면한 셈이다. 하지만 돈이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거 아닌가? 낙심하진 않았다. 다만 귀촌 10년 중 절반 이상은 실로 치열하게 살았다. 시골이라는 한정된 조건 안에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덕분에 상황이 많이 개선됐다. 경제적인 면의 성공? 글쎄, 돈보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선한 삶에 더 큰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귀촌을 통해 비로소 삶의 진정성 있는 방향을 잡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산다는 건 복잡한 퍼즐 맞추기와 닮았지만 희로애락을 거쳐 마침내 완성으로 가는 드라마인가? 솔깃한 이야기에 즐거웠다.
임진이가 주는 귀촌·귀농 Tip
•땅을 사거나 집을 짓는 일을 서두르지 말자. 적어도 2년 정도 집을 임대해 살면서 마을의 물정을 익히고 풍토를 파악, 과연 나의 성향과 어울리는 동네인지 판단하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땅을 구입할 때는 진입로에 따른 원주민과의 분쟁 소지가 없는지 사전에 철저하게 확인하자.
•시골에 가면 관의 많은 지원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이 있지만 오산이다. 자립 의지를 가지고 뛰어들어야 한다.
•시골의 제도권 교육 환경은 오히려 도시보다 나은 측면이 있다. 승마, 골프, 사격까지 거의 무료로 배울 수 있다. 자녀 교육에 차질이 생길까봐 우려해 시골 생활을 꺼려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들은 시골의 자연환경 속에서 한결 듬직하게 성숙한다.
•재력에 의지한 과시적 처신은 금물이다. 원주민과 갈등을 빚고 외로운 처지에 몰리기 십상이니까.
“1984년생 이하만 가입 부탁드립니다.”
취미 모임 플랫폼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가입 나이 제한 안내 문구다. ‘소모임’, ‘문토’, ‘프립’ 등 대표 플랫폼 설치 비중은 실제 2030세대가 절대다수다. 그럼 중장년은 어디에서 취향을 공유할 수 있을까…? 고민을 덜어 줄 플랫폼이 여기 있다.
1. 오뉴
5060세대와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취미 문화 커뮤니티.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원데이, 정규, 무료 체험 등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오프라인에서 열린다. 온라인으로는 다양한 여가 정보를 추천받을 수도 있다.
2. 위드플
5670세대 전용 여행 플랫폼. 소비시장의 한 축으로 떠오른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맞춤형 여행상품을 만날 수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로컬 체험까지 인생 2막에 새로운 활력과 가치를 전한다.
3. 큐리어스
중장년 커뮤니티 기반 지식공유·교육 플랫폼. 자기계발과 취미생활을 즐기며 돈까지 버는 ‘성장 놀이터’다. 온·오프라인 교제는 모임 서비스 ‘어울림’에서 이뤄진다. 중장년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를 바탕으로 모임을 개설하고 참가자를 모집할 수 있다.
4. 에이풀
5060세대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조사 플랫폼. 퇴직 후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이들이 자신이 속한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한눈에 파악하고 일과 취미, 건강 등 솔루션을 찾아가도록 지원한다. 미션을 수행하고 포인트를 얻어 쇼핑을 즐길 수도 있다.
5. 시놀
5070세대의 액티브라이프를 위한 소셜 커뮤니티. 이성 친구도 찾고, 취미 활동을 함께할 모임에 가입할 수도 있는 시니어 데이팅 플랫폼이다. 건전한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악성유저 및 피싱, 허위정보 등에 대처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는 노인 인식을 개선하고 세대 갈등을 해소할 여러분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에디터 조형애 도움말 이연지 디자인 이은숙
지난달 25일 형제자매에게 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정 비율 이상의 유산 상속을 강제하는 유류분 제도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민법 1112조 4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으로 결정했다. 현행 민법은 자녀·배우자·부모·형제자매가 상속받을 수 있는 지분(법정상속분)을 정하고 있다. 피상속인이 사망하면서 유언을 남기지 않으면 이에 따라 배분한다.
헌재는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나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등이 거의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류분권을 부여하는 것은 그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에 대해 법무법인 원 유선영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유류분 제도가 시행된 것은 1979년부터. 배경에는 여성의 권리신장이 있었다. 여성이 상속을 받을 수 있는 권리와 유족의 상속재산에 공헌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과 피상속인의 유족에 대한 사회정책적 혜택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취지가 바탕이 됐다. 즉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유산을 통해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약 4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사회는 경제적 발전과 함께 많은 변화를 겪게 됐다. 상속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고, 유류분 제도 자체가 이러한 사회 발전에 뒤떨어져 있다는 지속도 계속 제기됐다.
유 변호사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법조인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그간 유류분 관련한 소송경험에 비춰보면 유언자의 재산처분에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되고 있는 측면이 있어요. 유류분 제도가 반환범위를 지나칠 정도로 넓게 인정하고, 비율도 과도해요. 이미 오래전에 증여가 이뤄진 재산에 대해 ‘상속개시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하다 보니까 반환의무자 입장에선 큰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다양한 재판을 겪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불합리한 점들을 관찰했고,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을 계기삼아, 공론화 해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그는 유언자의 재산처분의 자유를 침해하고, 상속개시 이전에 적법하게 이루어진 증여행위 조차 효력이 부인돼 거래의 안전을 위협하는 점, 상속재산 형성에 기여하지 않은 가족에 대한 유류분의 인정되는 부분 등의 문제점들이 이번 판결로 해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의 핵심은 무얼까? 유 변호사는 “유류분 제도가 사라진다고 오해하면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기존 유류분 제도 중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제112조 제4호를 위헌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하고, 유류분상실사유를 규정하지 않은 민법 제1112조 제1항 내지 3항과 기여분에 관한 민법 제1008조의 2를 준용하지 않은 1118조를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취지와 무관한 유류분 소송의 경우에는 종전과 동일하게 소송을 진행하게 되며 별다른 영향은 없습니다.”
유 변호사는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은 아주 제한된 예외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 관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증여나 유증의 경우에는 전체 상속재산에 따른 유류분을 감안하여 사후에 공동상속인간에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변호사 등의 전문가와 오랜 검토를 거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보통 ‘우리 애들은 착하니까’‘내 유언을 따라줄 것’이란 안이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당수가 사후 분쟁을 초래합니다.”
그는 이번 판결로 인한 영향에 대해 “특별한 패륜적 행위가 없는 일반적인 자녀에 대해서는 별 영향이 없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서운하거나 섭섭하다고 곧바로 유류분청구가 제한되진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상속관련 분쟁은 유류분제도 이외에도 상속재산분할심판 절차에서 ‘특별수익’제도에 의해서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유류분 반환청구도 이 번 결정 취지에 부합하는 사유에 해당하는 지 여부를 두고 다툴 것으로 보여, 관련 소송이 발생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족에 가치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일어나거나 가족 내부의 화목에 기여할지도 미지수인 것 같습니다.”
“인생이 곧 관계 맺음이에요. 그러니 관계가 틀어지면 내 삶이 행복하지 않겠죠? 사는 것만큼 관계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임정민 임파워에듀케이션 대표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인간관계는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평생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나이 먹어도 어려운 게 바로 ‘관계 맺음’이다.
한국리서치 ‘2023 인간관계 인식조사’에 따르면 현재 인간관계에 만족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 82%는 ‘지금의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답했다. 동시에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 노력’(51%)했거나 ‘인간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노력’(48%)했다고도 했다. 이처럼 인간관계는 유지하고 늘리고 줄이는 상황을 동시에 반복하는 복합적인 영역이다.
전문가들은 관계 맺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에 대한 인식’이라고 강조한다. 윤서진 코칭경영원 파트너 코치는 관계가 어려운 이유로 ‘나를 잘 모른다는 점’을 꼽았다. “나를 알아야 누구와 잘 맞고 안 맞고를 알 수 있는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요. 그 상태에서 타인에 대한 기대심리가 커지면 ‘우리 관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데?’라며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임정민 대표도 공감했다. “나와 상대는 기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상대를 잘 알지 못하는 게 당연한데, 알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알려면 우선 자기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죠.”
이처럼 관계 맺음에 앞서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하기에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점검하고, 나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준비했다.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관계를 더할지 뺄지 혹은 어떻게 유지하면 좋을지 파악해보자.
◆STEP 1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임정민 대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 ‘에고그램 진단’을 추천했다. 미국 정신의학자 에릭 번이 창시한 교류 분석 이론 중 자아 상태의 기능 분석에 속하는 것인데, 미국 심리학자 존 M. 듀세이가 발전시켜 성격을 시각화한 진단법이다. 임 대표는 이 진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을 화끈이, 포용이, 침착이, 솔직이, 끄덕이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건강을 위해 탄수화물,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 지방이라는 다섯 가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하는 것처럼, 성격 유형에도 밸런스가 무척 중요하다. 너무 점수가 높은 유형은 줄이고, 점수가 낮은 유형은 높여 균형을 잡아야 한다.
◇에고그램 진단하기
나는 어떤 성격 유형을 높이고 어떤 성격 유형을 낮춰야 할지, 다음 에고그램 간이 진단 테스트로 알아보자. 아래 체크리스트는 간소화한 버전으로, 정확한 진단을 해보고 싶다면 QR코드를 활용하면 된다.
ㆍ문장을 읽고 빠르게 응답한다. 이상적으로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평소 모습을 떠올려 비슷하면 O, 다르면 X를 하얀색 칸에 표시한다.
ㆍO는 2점, X는 0점으로 계산해 세로 총합을 합계란에 적는다. 각 유형별 최고점은 8점, 최하점은 0점으로 점수가 높은 것일수록 내가 관계 맺음에서 주로 취하는 성격 유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성격 유형별 특징
“권위적이고 비판적인 화끈이” 지시를 내리고, 통제하려는 모습을 주로 보인다. 도덕과 윤리를 중요하게 여기며 목표 지향적인 타입.
“부드럽고 다정한 포용이” 누군가를 보호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공감하고 배려하는 말과 행동이 먼저 나가는 타입.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침착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말과 행동을 주로 한다. 통계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타입.
“감정 표현에 충실한 솔직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행동이나 감정 표현이 자유분방한 타입.
“순응하며 소극적인 끄덕이” 주위 눈치를 보며 행동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억압, 드러내지 않는다. 순응하며 참는 타입.
◆STEP 2 관계, 늘릴까 줄일까?
STEP 1에서 나의 관계 맺음 유형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관계의 필요성을 점검해보자. 내가 인간관계를 늘리고 싶어 하는 게 맞는지, 관계 정리를 어려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관계 맺음을 어려워하는 마음 이면에는 기대심리가 있다. 귀찮아서, 충분해서, 바빠서 새로운 관계를 늘리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상대에게 거절당하거나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윤서진 코치는 “자신의 틀을 깨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나도 몰랐던 나를 알아갈 수 있다”면서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는 두려움을 용기 내 이겨보자”고 조언했다.
새로운 관계 맺음에 대한 욕구가 있다면, 반대로 관계를 정리하고 싶은 욕구도 있다. 많은 사람이 ‘내가 이 사람에게 얼마나 잘했는데’를 생각하면서 손해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죄책감을 가지기도 한다. 이럴 때 자신의 기준이 없으면 상대를 이해해보려다 끌려다니거나 이용당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윤 코치는 현명한 관계 정리를 위해서 첫째 서두르지 않기, 둘째 상황에 맞는 방법 선택하기, 셋째 후유증 관리하기를 제안했다. 먼저 관계를 정리해야 할지 말지 고민된다면 스리아웃 제도를 적용해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 상대가 같은 실수를 세 번 반복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준다면 과감히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다만 상대에게 힘들고 불편한 지점을 미리 알려준 뒤 속으로 숫자를 세어보자. 또한 관계를 정리할 때는 말없이 잠수 타거나, 상대를 차단하는 방식을 택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서서히 만남·연락 횟수를 줄이는 편이 좋고 혹은 상대에게 관계를 종료하겠다고 명확하게 선언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상대와 보낸 지난 시간을 후회하거나 상처 줬다는 자책을 하거나 제3자에게 험담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STEP 3 관계의 핵심은 인정하기!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소통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기대를 내려놓는 일이다. 나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누구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대치가 너무 높으면, 압박을 느끼게 돼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급함이 생기기도 하고, 상대에게도 내가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기대하게 된다. 나에게도 한계가 있고, 모든 사람과 잘 맞을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하자.
상대를 인정해주는 말을 표현함으로써 신뢰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윤서진 코치는 “대부분의 사람이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은 생략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은 자신의 의도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신뢰를 쌓는 가장 빠른 방법은 상대를 충분히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인정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다. 흔히 “너 이거 참 잘한다”라는 칭찬의 말을 인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평가에 해당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고서를 작성해온 부하 직원에게 상사가 “잘 썼다”고 말하는 건 평가다. 하지만 잘했는지 못했는지와 상관없이 “기한 맞춰 보고서 작성하느라 정말 애썼어”라고 말하는 건 인정이다. 상대의 가치를 알아주고 인정하는 것이 신뢰 형성의 시작임을 잊지 말자.
이처럼 나를 인정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관계에 있어 핵심이긴 하지만,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의 사이에서는 인정이 무척 어렵다. 싫어하는 상대를 인정한다는 게 마치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윤 코치는 이럴 때 공감과 동감을 구별해보자고 말했다. 상대가 어떤 말을 했을 때 “맞아, 나도 완전 그렇게 생각해”라고 말하는 건 동감이다. 공감은 생각이 다르더라도 “네 마음이 그랬구나”라고 알아주는 것이다. 누군가 불만을 이야기하면 “너는 이런 부분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구나”라고만 말해도 공감하는 것이다. 이도저도 어렵다면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잘 맞지 않는 상대가 가족이라면 관계의 끝을 생각해보자. 가족은 끊을 수 없고 회피할 수 없는 친밀한 사적 관계여서 선을 넘거나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가 많다. 관계의 끝이 남남처럼 지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소통을 개선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조율할 것인지 생각하고 표현하는 게 좋다.
임정민 대표는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던 말 습관을 바꿔볼 것을 권유했다. 좋은 말은 더 좋은 표현으로, 부정적인 표현은 긍정적인 말로 바꿔보는 것이다. ‘좋아, 멋지다’는 긍정적인 표현이지만 다른 상황에서 매번 같은 표현을 반복하면 상대에게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좋은 선택이야, 근사하다, 생기있다’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면 상대와 더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는 불편한 마음이 있는 게 당연한데, 이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더 나은 표현으로 순환하는 것이 좋다. 임 대표는 긍정 회로를 만드는 방법으로 “자주 만나는 사람과 했던 대화나 상황을 돌이켜보고 내가 했던 말을 더 좋은 표현으로 바꿔보는 연습을 해볼 것”을 제안했다.
인간관계는 곧 우리의 삶이며, 관계 맺음에서는 소통이 중요하다. 둘 중 한 사람의 생각이 맞다는 관점을 고수하면 인정은 더 어려워진다. 맞고 틀리는 문제 풀이가 아닌, 서로 다른 동등한 존재임을 알아가는 것이 관계 맺음임을 잊지 말자.
도움말 윤서진 코칭경영원 파트너 코치, 임정민 임파워에듀케이션 대표
●Exhibition
◇누구의 숲, 누구의 세계
일정 6월 2일까지 장소 대구미술관
전시는 전 지구적으로 중요한 주제인 환경과 생태계 위기에 대해 살펴본다. 작가 13명의 작품 70여 점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구는 누구의 숲이며, 누구의 세계인지 질문한다. 첫 번째 섹션 ‘봄이 왔는데도 꽃이 피지 않고 새가 울지 않는…’에서는 미래 환경의 위험성을 이야기한다. 정주영 작가의 변화하는 기후·구름·우주, 김옥선 작가의 외래종 나무, 장한나 작가의 새로운 형태의 돌(New Rock 프로젝트) 작품을 소개한다. 두 번째 섹션 주제는 ‘잊혀진 얼굴, 봉합된 세계’로 문명의 발전 이면에 발생한 인간의 욕망과 자연에 관한 태도에 주목했다. 강홍구, 김유정, 백정기, 송상희, 이샛별, 이해민선의 작품이 소개된다. 마지막 섹션 ‘세계에 속해 있으며, 세계에 함께 존재하는’에서는 권혜원, 정혜정, 아니카 이, 토마스 사라세노의 작품을 통해 자연에 대한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시선을 엿본다. 박보람 학예연구사는 “도시 문명, 환경, 생태계 문제에 대해 다채로운 관점을 담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반성적 감각을 회복하고 인류세 시대, 그 이후에 관한 공생, 생태적 감각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화첩으로 보는 나의 프로필
일정 5월 31일까지 장소 영인문학관
영인문학관에서 10년 만에 열리는 서화첩(글씨와 그림을 모아 만든 책)전이다. 문인, 화가, 서예가, 섬유예술가, 패션디자이너 등 60여 명의 정상급 예술가들이 서화첩 한 권에 프로필을 채웠다. 자화상, 좌우명, 애송시, 자전적 글 등 담긴 내용은 다양하다. 소설가 김채원은 언니 김지원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시기에 그린 우는 자화상을 서화첩에 넣었고, 부친을 여읜 서예가 김병기는 ‘아버지가 애송하던 한시를 통해 슬픔을 달랜다’는 발문과 함께 58쪽의 글을 썼다. 한편 작가의 방은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김상옥의 방을 재현했다. 특별 전시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서재를 재공개한다. 예약을 통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에 관람 가능하다.
●Book
◇느리게 나이 드는 기억력의 비밀(김희진·앵글북스)
동년배보다 보통 20~30년 젊은 뇌를 가진 사람을 슈퍼에이저(Super-ager)라고 부른다. 그들은 젊은 사람만큼 뛰어난 기억력과 인지 능력을 가졌다. 저명한 치매 전문의 김희진 한양대학교 신경과 교수는 인간의 노화란 예정된 것이 아니라 소모에 의해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신체를 어떻게, 얼마나 잘 관리하면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뇌가 나이 드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습관이 기억력과 뇌 건강을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책의 1부는 ‘이해하기’ 파트로 뇌의 구성과 각 부분의 기능을 설명한다. 여러 실험과 사례를 통해 풀어내고 있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따라 하기’ 파트인 2부에서는 일상 점검을 비롯해 식단과 운동, 감정과 스트레스 관리, 수면과 약 복용법 등 올바른 생활 습관을 총 7가지로 나누어 소개한다. 부록에는 많은 이들이 실제로 효과를 본 다양한 방법과 저자도 실천하고 있는 작은 습관들을 상세히 담았다.
그러나 슈퍼에이저의 습관을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뇌에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건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희진 교수는 “실제로 자신에게 맞고 큰 효과를 가져오는 행동 지침들을 선별해 30일 두뇌 관리 루틴을 세워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문재인의 독서노트(문재인·평산책방)
문재인 전 대통령이 쓴 102권의 독후감을 ‘취임 이전’, ‘재임 시기’, ‘퇴임 이후’로 나누어 담았다. 일상을 포착한 40여 장의 사진도 함께 수록됐다.
◇밥묵자(꼰대희·21세기북스)
개그맨 김대희의 부캐인 ‘꼰대희’는 50대 후반 꼰대 아저씨를 콘셉트로 한다. 책은 인·의·예·지 네 파트로 나뉘어 있고, 세대 간 화합을 이끈다.
◇하이 애나, 나는 한국 할머니란다!(류관순·미다스북스)
워킹맘으로 살던 저자는 외동딸과 미국인 사위 사이에서 태어난 손녀 덕분에 초보 할머니가 됐다. 손녀와 함께 성장하며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
●Stage
◇영웅
일정 5월 29일 ~ 8월 1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김민영
출연 정성화, 양준모, 민우혁, 김도형, 서영주, 최민철 등
‘영웅’은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뮤지컬이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재현하며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극은 애국심과 감동을 자아낸다. 2009년 초연 이래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국내 창작 뮤지컬 중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을 세웠다. 이번 시즌은 15주년 기념 공연으로 안중근 역에 정성화, 양준모, 민우혁이 캐스팅됐다. 특히 정성화는 초연부터 이번 시즌까지 출연하며 ‘영웅’과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간다. 제작사 에이콤의 윤홍선 대표는 “관객 여러분 덕분에 어느덧 15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시즌을 맞이할 수 있었다”라며 “한층 더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봄
일정 5월 8일 ~ 6월 7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연출 이기쁨
출연 왕은숙, 문희경, 오성림, 예지원, 황석정, 유보영 등
중년 여성들의 인생 2막을 그린 뮤지컬 ‘다시, 봄’이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꿈, 갱년기, 폐경, 은퇴 등에 대해 왁자지껄한 수다를 펼친다. 31회 공연이 더블 캐스트로 운영된다. 서울시뮤지컬단 단원들이 주축인 ‘다시 팀’과 내로라하는 여배우들로 구성된 ‘봄 팀’이다. 황석정은 ‘다시 팀’에, 뮤지컬에 첫 도전한 예지원은 ‘봄 팀’에 각각 합류했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장은 “‘다시, 봄’을 통해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50대 여배우들을 비추고, 객석은 중장년층 관객들이 차지했다. 뮤지컬 관객 저변이 더욱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벤자민 버튼
일정 5월 11일 ~ 6월 30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조광화
출연 김재범, 심창민, 김성식, 김소향, 박은미, 이아름솔 등
뮤지컬 제작사 EMK가 새롭게 선보이는 창작 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의 원작으로도 유명한 단편 소설을 원안으로 한다. 극 중 타이틀 롤인 벤자민 버튼은 김재범, 심창민, 김성식이 연기한다.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인물로 재즈 가수 블루와의 사랑을 쫓는다. 특히 2003년 그룹 동방신기로 데뷔한 심창민은 21년 만에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다. 그는 “뮤지컬을 연습하며 가수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중년이 되면 초조함에 휩싸일 때가 있다. 어영부영하다가 인생이 허무하게 지나가 버리면 어떡하나 싶다. 세상은 그 나이 먹도록 해놓은 게 얼마나 있냐고 다그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괴감에 빠져든다. 그래서일까? 딸이 당연히 알아서 잘살고 있으리라 여기면서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한성희 원장의 신간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는 그 걱정에서부터 시작됐다.
한성희 원장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한 살 아기부터 85세 노인까지 마음이 아픈 사람이면 누구든 만났다. 그 과정에서 평생에 걸쳐 맞닥뜨릴 수 있는 여러 정신적 문제를 지켜보고 치료해왔다. 43년간 다양한 사례를 접한 그지만 자식에게는 서툰 엄마였다. 10여 년 전, 딸이 공부를 위해 떠난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한다 했을 때 깨달았다. 더 이상 품 안의 어린아이가 아님을, 이제는 독립할 만큼 자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에겐 했지만 정작 딸에게는 하지 못한 말이 많았다. 그 마음을 담은 글은 2013년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로 세상에 나왔고, 독자들의 공감을 받으며 21만 부가 판매됐다.
“살면서 작가라고 불리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죽기 전에 책을 한번 내보면 좋겠다는 어렴풋한 생각은 있었지만요.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가 이렇게까지 좋은 반응을 얻으리라 상상도 못 했어요. 이제 아이가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고, 서로 떨어져 산 지 15년이 됐네요. 작년에 직접 마흔 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 미국에 갔는데, 늘 앳돼 보였던 딸이 나름의 고민도 생긴 것 같고 지쳐 보였어요.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었던 거죠.”
중간 지점, 또 한 번의 파도
한 원장도 서른일곱에 떠난 미국 연수 당시 이른 ‘중년의 위기’를 겪었다. 진로 문제로 고민하며 초조한 와중에 일은 홍수처럼 쏟아졌다.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혀도 경력이 쌓이는 만큼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야 했다. 자유로운 시기는 끝났다고 여기며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로 살았다.
딸의 얼굴에서 과거의 자신이 겹쳐 보였다. 만약 마흔 살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면 엄마로서, 정신분석가로서 너무 늦기 전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신간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는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바람 잘 날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든 이에게 전하는 응원을 담았다.
“두 돌이 지나면 말이 시작돼야 하듯, 인생 단계별 발달 과업이 있어요. 40대는 생산성을 다뤄야 할 단계입니다. 삶의 스펙트럼이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회사와 가정의 일을 모두 신경 써야 하는 시기거든요. 매일매일 전쟁일 거예요. 요즘 40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다고 느껴요.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고요. SNS가 지배하는 세상에는 이미 부와 명예를 이룬 사람투성이죠. 그러다 보니 보통의 삶은 부족한 것이 돼버리고, 박탈감이 들 수 있어요. 게다가 오늘 열심히 한 그 일을 내일도 똑같이 반복해야 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온전한 ‘나’는 없다며 우울해질 때도 있을 겁니다.”
더불어 바쁜 일상에 지치면 뭐든 새롭지 않다. 벌써 해봤거나, 했던 것의 변주 정도다. 무엇을 먹어도 비슷한 맛이고, 누구를 만나도 비슷한 얘기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 지루하다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고, 옛날에 재미있었던 순간만 기억난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과 습관에 갇히게 된다. 다 해봐서 새로울 게 없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현재를 과거의 방식대로 살려고 하니 매사 심드렁해진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까닭이다.
딛고 나아가며 성장하기
마흔 이후 혼란을 겪더라도 한 원장은 “겁먹지 말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간은 유한하고 힘든 시절은 영원하지 않으며, 지나고 보면 가장 풍성한 때였구나 알게 된단다. 지금이야말로 세상의 기준에 맞춰오느라, 세상이 부여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느라 억눌러온 내면의 욕구를 돌아봐야 한다.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었던 모습을 찾다 보면 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되고, 어떤 시련이 오든 무너지지 않을 힘이 생길 테다. 남들이 뜯어말려도 강하게 끌리고 포기가 안 되는 길이 있다면 가보는 것도 방법이다. 나이가 몇이든 무슨 상관이랴. 처음엔 의아한 선택처럼 보여도 선택이 쌓이고 쌓여 고유한 스토리가 된다. 대신 방향을 완전히 틀어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다, 인생의 여정에서 좀 더 집중할 만한 거리를 찾는 게 먼저다.
“그저 더 나아지고 싶은 건강한 본능을 들여다보면 됩니다. 저는 환자 한명 한명을 심도 있게 치료하고 싶어 오십에 뒤늦은 개원을 준비했고, 지금까지 해왔던 정신분석 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해보고자 예순에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주변의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았고 고민이 깊었지만, 시작도 해보지 않고 그만두기는 싫었어요. 의사로서 걸어온 길이 흔히 말하는 성공 공식과는 거리가 멀었죠. 그래도 자신의 느낌을 믿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게 행복한 인생이지 않을까요. 스스로 완전한 어른이 됐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제야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구나 짐작해요.”
외국계 제약회사 영업부에서 24시간 발로 뛰는 영업사원이었던 다카하시 노부노리 (高橋伸典, 67) 씨. 아이 둘을 키우는 싱글 대디로 매일 아침 아이들의 도시락을 만들고, 왕복 5시간을 출퇴근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런 그가 조기 퇴직을 선언한 뒤 보육교사와 어린이집을 연결하는 헤드헌터를 시작하더니 시니어 컨설턴트, 작가라는 세 가지 업을 가지게 됐다. 정년 후 평생 현역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그의 스리 잡(Three Job) 이야기를 소개한다.
열정 넘치는 싱글 대디
다카하시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계 제약회사에 입사해 57세까지 근무했다. 그가 회사 다니던 시절은 회사원들이 온 마음을 바쳐 일하던 때였다. 그런 그의 회사 생활에서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입사 후 영업을 맡게 됐고, 적성에 맞아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해외연수 제도로 영국에 2년 동안 가기도 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본사가 다른 회사와 합병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돌아와 보니 저는 인사부로 발령을 받았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하게 된 거예요.”
두 회사가 기업 합병을 하면 다른 기업 문화로 여러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라지만, 좋아하던 영업 직무를 포기하고 갑자기 인사부로 이동해야 했으니 그도 당황했을 테다. 그런 데다 가사와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지며 묵묵히 인내하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저는 일 중독자였어요. 온종일 회사에 있었고, 일을 마치면 동료나 거래처 사람과 술을 마시러 갔죠. 열심히 일해서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가정은 전혀 돌보지 않는 남편이었죠. 돌이켜보면 제가 오만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던 부엌에서 다음 날부터 두 아이를 위한 도시락을 싸야 했죠.”
TV의 건강음료 광고에서조차 ‘당신은 24시간 싸울 수 있습니까?’라는 곡이 흘러나오던 시대였다. 밤새워 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게 당연하던 시기, 어떻게 아이 둘을 키우며 일을 양립할 수 있었을까? 다카하시 씨는 먼저 서점으로 가서 요리책을 샀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도시락 싸는 것이 일과가 됐다.
“아이 친구 엄마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거래처와 중요한 회의를 하다가도 아이가 열이 나면 어린이집으로 달려가야 했죠. 나중에는 회사에서 집과 가까운 영업소에서 다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습니다. 환경이 변하면 사람의 성격도 변한다는 걸 느꼈어요. 주변 사람들이 제가 아이들을 혼자 키우게 되면서 상냥한 사람으로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전에는 제가 좀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나 봐요. 집에서 육아를 전담하던 아내의 기분도 알 수 있었죠. 그동안 너무 가정을 돌보지 않았구나 싶어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오랜 세월 아이들 도시락을 싸다 보니 노하우가 생겨, 싱글 대디를 위한 요리 교실을 열어볼까 고민했다는 다카하시 씨는 본인 스스로도 그 변화에 놀랐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도와준 덕분인지,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상황을 헤쳐나간 덕분인지 아이들은 훌륭하게 성장해 사회인이 됐다.
조기 은퇴 후 쌓은 세컨드 커리어
다카하시 씨는 열정을 다해 다니던 제약회사를 57세에 조기 퇴직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회사로 전직했다. 보통 은퇴 후 재취업을 한다면 경력을 살려서 가기 마련인데, 영업과 어린이집 운영이라니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다.
“어린이집 보육교사 채용 업무를 담당하는 직무로 재취업하게 됐습니다. 제약회사 인사부에 있었을 때 채용과 연구 관련 업무를 맡았는데요. 인사부에서 쌓은 채용 스킬과 지식을 바로 적용할 수 있었어요. 물론 영업을 했던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유아교육학과를 방문해 대학 교수나 학생들에게 어린이집을 홍보하기 위한 영업도 필요했거든요. 제약회사 다닐 때 병원을 방문해 어떤 의사에게 영업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과 같은 맥락의 마케팅 업무였어요. 가장 도움이 된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에요. 사람을 만나는 업무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죠.”
그간 힘닿는 데까지 일한 결과 전직한 회사에서도 도움이 됐다는 의미다. 다카하시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점과 점의 연결, 즉 현재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하고 있는 노력(점)이 미래에 어떤 형식으로든 연결된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그는 어린이집 운영 회사를 8년 정도 다니다 독립해 개인사업자로 등록했다. 여전히 어린이집 보육교사 채용을 위해 대학교를 방문해 영업 활동을 한다. 보육교사와 어린이집을 연결하는 헤드헌터로 거듭난 것이다.
시니어 N잡러를 위한 지침서
거기에 세컨드 시니어 컨설턴트라는 또 다른 직업을 선택해 투잡을 시작했다. 그는 시니어의 두 번째 커리어 지원을 위한 전문 컨설턴트로서 세미나를 열고 있다. 두 번째 커리어를 찾는 시니어 5000여 명을 강사로서 만났다. 세미나에 참여하는 수강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물었다.
“정년을 앞둔 사람이 많죠. 100세 시대라면 향후에도 20~30년 동안 일해야 하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분들이 오세요. 가본 적 없는 길을 처음 가는 거라 당황스러울 거라 생각합니다.”
은퇴 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던 다카하시 씨는 이들을 위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여겨 ‘정년 1년째를 위한 교과서’라는 책을 출간했다. 퇴직 후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는 방법, 고독을 해소하는 방법, 정년 후 평생 현역을 실천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를 책에 담았다. 다카하시 씨는 ‘강점 시트’를 만들어 특기를 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점이 중요한 이유가 뭘까?
“정년을 앞두면 정년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을 가지게 돼요. 하지만 시니어들은 젊은 사람에 비해 많은 경험을 쌓았고, 실패 경험도 있어요. 이 안에 자신의 강점이 반드시 숨어 있기 마련입니다. 남들이 봤을 때 굉장한 것도 자신은 당연하게 여겨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나의 강점, 오리지널리티에 맞는 일을 찾는 건 시니어에게 더욱 유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N잡러’라는 단어가 몇 년 전부터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고령자의 일자리는 대부분 단순 노무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정년 전·후를 불문하고 부업·겸업을 장려한다. 사원이 다양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기업이 실시하는 부업·겸업 장려책을 자사 홈페이지에 공표하라고 추천할 정도다.
다카하시 씨는 보육교사를 어린이집 운영 회사에 소개하는 헤드헌터, 정년 후 커리어를 제안하는 세컨드 시니어 컨설턴트 강사, 출판을 통해 작가라는 스리 잡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정년 1년째를 위한 교과서’ 출간 이후에는 실제로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는 의견을 많이 받고 있다. 일본도 한국도 젊은이들처럼 정년 후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N잡러가 된다면, 시니어가 행복해질 가능성도 커지지 않을까. 시니어가 행복해지면 잔잔한 호수에 던진 조약돌로 물결무늬가 번지듯 사회의 행복 지수도 더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