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이 있지만, 자꾸 불안해요."

은퇴 후 가장 많이 큰 걱정은 뭘까. 바로 경제적 고민이다. 매달 연금이 들어오고 큰 빚도 없는데, 이상하게 지출할 때마다 망설여진다. 병원비가 걱정되고, 자녀에게 혹시 부담이 될까 신경 쓰인다. 통장 잔고보다 미래가 먼저 떠오른다.
사실 이런 불안은 단순히 돈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보다 '고정 수입이 끊긴 삶'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심리적 변화로 볼 수 있다.
수입보다 '언제까지 쓸까'가 더 걱정된다
직장에 다닐 때는 월급이 있었지만 은퇴 후에는 돈을 버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돈을 얼마나 오래 써야 하는지가 더 큰 고민이 된다. 돈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필요할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불안을 키우는 것이다.
기대수명이 길어진 것도 영향을 준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4년 생명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3.7년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개인은 자신의 수명을 알 수 없다. 80세까지 살지, 95세까지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소비보다 저축을 선택하게 된다. "혹시 나중에 돈이 모자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에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한다.
의료비는 가장 큰 불안이다
돈 걱정은 대부분 건강 걱정과 연결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동 발간한 '2023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건강보험 적용 인구의 17.9%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쓴 진료비는 전체의 44.1%에 달했다. 인구 비중의 두 배가 넘는 진료비를 쓰고 있는 셈이다.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 지출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문제가 없어도 미래를 먼저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돈보다 '통제감'이 중요하다
흥미로운 점은 실제 자산 규모와 불안감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년학에서는 경제적 안정감이 소득보다 '내가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는 정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매달 얼마가 들어오고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같은 자산을 가지고도 불안이 적다.
돈 걱정이 자꾸 커진다면, 그것은 마음이 보내는 신호다. 막연한 불안을 안고 있기보다, 지금 상태를 숫자로 확인해보는 것이 먼저다.
불안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전국 지사에서 개인별 자산·부채·현금흐름을 함께 점검해주는 노후준비 상담 서비스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고,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서는 흩어진 연금 정보를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다. 매달 들어오고 나가는 돈을 한 장의 표로 정리해보는 것만으로도, 막연했던 불안은 구체적인 숫자로 바뀐다.
나이가 들수록 돈 걱정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다. 중요한 것은 걱정을 안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 걱정을 계획으로 바꿔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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