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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운동의 역사, 스토리텔링으로 다크 투어리즘 변신
- 자타공인 한국 문화 지킴이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울림을 주는 홍보 영상, 잘 정리된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을 어언 30년 가까이 해보니 깨달은 점이다. 기존의 방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더 효과적인 방식을 찾았기 때문에, 그는 2019년부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홍보학자입니다.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해왔어요. 누군가 제게 가장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현장’이라고 답할 겁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자타공인 한국 문화 지킴이다. 주변국의 역사 왜곡 시도에 항의하고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홍보 영상을 만들거나 독립운동 유적지에 비치할 안내서를 발간하고 한국어 간판을 제작해 기부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다. 서 교수는 일 년 중 여섯 달은 해외에 있을 정도로 출장이 잦다. 그는 아무리 일정이 빡빡해도 여유 시간으로 반나절 정도는 꼭 마련해둔다고 한다. 관리를 전혀 받지 못해 방치돼 있거나, 이름은 알려져 있으나 안내 시설 등이 노화돼 찾기 힘든 유적지가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서 교수는 다니면 다닐수록 관리가 부족한 지역이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유적지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려면 지속적인 관심과 방문이 필요하다.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면 현지에서도 해당 장소를 관리하기 위해 신경을 쓰게 되고, 관리가 잘 된 유적지를 방문해 좋은 인상을 받은 관광객들은 입소문을 내며, 그로 인해 점차 방문객이 늘어나는 흐름이 만들어지기 때문. 이러한 선순환이 많은 유적지에서 동시에 일어난다면, 시민들의 전반적인 역사 인식도 향상되는 결과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 그가 다크 투어 분야에 뛰어든 것은 2019년. 여태 해오던 일을 확장시켜 ‘이제는 내가 직접 나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각지를 돌며 직접 보고 느낀 점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뜻이 맞는 여행사를 찾은 그는 직접 다녔던 루트 그대로 여행 코스를 짰고, 다달이 진행되는 모든 프로그램에 재능기부 차원에서 참여하며 정성을 들였다. 지금까지 서 교수와 함께하는 여행사 ‘자유여행기술연구소 투리스타’ 역시 실비만 받고 다크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홍보학자, 현장에 직접 나서다 첫해의 성공으로 시즌2를 계획하던 2020년 2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쉬움을 삼키며 온라인으로만 활동해야 했던 서 교수는 지난 2월 말, 3년 만에 오프라인 다크 투어 프로그램 ‘항일운동 역사투어’를 진행했다. 삼일절을 기념하고자 기획한 프로그램이라 목적지는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도로 결정했다.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주민만 스무 명이 넘고, 그 후손들은 일 년 내내 태극기를 걸어둔 채 생활해 ‘항일의 섬’, ‘태극기의 섬’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곳이다. 함경도 북청군, 부산시 동래군과 더불어 국내 3대 항일운동 성지로 불리지만 인지도는 훨씬 낮다는 점이 아쉽던 차, 이번 기회에 소안도를 제대로 소개해보리라 마음먹은 것. “이번에는 45인승 차 한 대를 빌렸어요. 이 차만 다 채워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죠.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일본 하시마 섬(군함도)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고, 배우 송혜교 씨의 후원으로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소개하는 안내서를 온·오프라인으로 발간하는 등의 활동이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되면서 다크 투어에 관심 갖는 분위기가 고조되던 2019년과는 상황이 다르니까요. 그런데 웬걸, 막상 신청을 받아보니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함께할 분들을 ‘선정’해야 했어요. 놀랄 수밖에 없었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안도의 항일운동 유적지를 찾아온 것은 처음입니다.” 소안도에서 만난 지역 해설사의 한마디는 서 교수를 포함한 모두의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다. 그는 40여 명과 함께 소안도 외에도 국내 최대 강제노동 지역인 ‘옥매광산’, 안중근 의사 위패가 있는 ‘해동사’를 찾았다. 사람들은 설명을 들으며 함께 분노하고 슬퍼했다. 성공적인 다크 투어의 필요조건으로는 좋은 스토리텔링이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를 방문해 그곳에 대한 단편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어땠는지, 우리 조상들은 하필 이 지역에서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짜인 하나의 이야기처럼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 교수는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 발발 당시의 현장 사진을 큰 종이에 출력해오기도 하고, 지역 해설가를 섭외하기도 한다. 좋은 스토리텔링을 위한 사전 준비가 탄탄해야 관광객들이 현장에서 더욱 감명받고, 그렇게 느낀 교훈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재적소에 더해지는 서경덕 교수의 너스레는 분위기가 과열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또 일정이 끝난 뒤 지역 대표 맛집에서 여행의 고단함을 해소하는 시간을 꼭 가졌다. 아무리 의미와 교훈이 중요한 여행이라도, 여행만의 잔재미를 느낄 구간 또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여행 전문가도 아니에요. 역사적 지식을 어떻게 해야 잘 홍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이죠. 다크 투어를 통해서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깨닫고 교훈을 얻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핵심은 입소문이죠. 그래야 좋은 후기들이 퍼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유적지를 찾고, 그렇게 우리의 소중한 유적지를 지켜 후대에 물려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소안도를 함께 방문했던 분들도 ‘SNS 홍보단’이라고 부르면서 많이 공유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앞으로 3년이 적기인 이유 서경덕 교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내 유적지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명소를 돌아보는 여행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홍보 방식으로 다크 투어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떠올린 갈래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오히려 K-콘텐츠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제 해외여행도 자유로워졌으니 그 어느 때보다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예상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2025년까지의 행보가 중요해요. 그들이 관심 있어 하는 먹거리, 화려한 경복궁, 대도시 서울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당신들이 관심을 가지는 우리나라에는 사실 이런 아픈 역사도 있습니다’ 하고 유적지도 방문하게끔 하는 거죠. 당장 올해는 정전 70주년이자 한인 이민 120주년이에요. 그러니 한국전쟁과 연관 있는 배우들을 초청해 기념행사를 진행하거나, 유해 발굴 현장을 외국인이 직접 방문하는 식의 프로그램을 기획해도 괜찮겠죠.” 공식적인 행사나 프로그램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아쉽겠지만, 그렇다고 귀중한 시기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이 진행한 다크 투어 코스를 SNS에 모두 공개하고 있다. 한국 문화 알림이로 유명세를 탄 서 교수의 개인 SNS 계정을 구경하던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한 번이라도 더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크 투어는 굉장히 효과적인 홍보 방식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참여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3040 부부가 아이와 함께 가족 여행으로 다른 지역을 방문할 때 그 지역의 유적지를 짧게나마 다녀오는 일이 일상화됐으면 해요. 이런 문화가 자리 잡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저도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 2023-05-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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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상회'로 기나긴 연휴 나기
- 애초 부모님이 북쪽에 고향을 두고 계셨던 까닭으로 명절이 되어도 어디 갈 곳이 없다. 그저 관성처럼 TV를 통해 남들 귀성행렬을 바라보며 설이나 추석이 되었거니 느끼며 살았다.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지만 올 추석은 유달리 썰렁했다. 유난했던 세계적 자연재해와 경제 침체로 흥이 날 리 없기도 하다. 게다가 명절 연휴만 되면 고향보다 해외로 나가는 유행이 거리를 더욱 한산하게 만들었다. 늘 그래왔듯이 긴 시간 집에만 있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일단 신문에서 추석 연휴 TV채널 일정표부터 챙긴다. 형광펜으로 볼만한 프로그램에 색을 입힌다. 추석이면 늘 나오는 외국인 노래자랑은 식상하기에 주로 영화를 챙겨본다. 예전에 비해 나아진 것이 있다면 홍콩 배우 성룡이 주연한 영화가 자취를 감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잔잔한 예술영화보다는 액션 대작이 추석 안방극장을 차지했다. 취향은 잘 안 맞지만, 공짜인데 어쩌랴. 우선 외국영화에 눈길이 가서 ‘셜록 홈스 시리즈’ 등 몇 편을 골라 본다. 류승완 감독의 2017년 작품 ‘군함도’ 등 소위 블록버스터 몇 편도 관람 대상이었다. 영화 개봉 당시 큰 관심이 없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영화를 보다보니 연휴 절반이 휙 지나갔다. 연휴 3일 째 되던 날 모처럼 소박한 작품을 보게 됐다. 바로 다. 생각해 보니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보려다 놓쳐 아깝다 싶던 작품이다. 노인 중심 영화는 흥행되기 어려워 영화로 만나는 일이 흔치 않은데 ‘쉬리’의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흥미를 끌었던 작품이다. 게다가 tvN의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에 등장했던 두 배우가 나와서 관심 또한 높았다. 그리고 바로 이 영화가 올 연휴 하이라이트가 됐다. 영화는 홀로 사는 성격 괴팍한 노인 김성칠(박근형)과 이웃에 이사 온 예쁜 꽃가게 주인 할머니 임금님(윤여정)의 알콩달콩 로맨스로 진행된다. 온 동네 사람들이 이들의 연애를 응원한다. 거칠고 한 성질 하는 영감은 장수상회 점원으로 일하는데 아무리 사고를 쳐도 해고되지 않는다. 또한 이 동네를 재개발하려 하는데 이 영감의 반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다. 어느 날 이들의 연애는 노인의 기억력 장애로 어려움에 처한다. 이쯤 되면 그렇고 그런 노년의 로맨스에 얽힌 이야기로 치부될 법하다. 그러나 서서히 지루해지려는 그 순간 놀라운 반전이 있다. 알고 보니 이 둘은 원래 부부 사이이고 노인은 장수상회의 주인이었다. 다만 노인의 치매 증상으로 아내와 가족을 알아보지 못 하고 아내가 췌장암 말기에 다다르자 따로 살게 된 것이다. 노인이 비밀 일기장을 통해 자신의 치매증상에 대해 인지하고 다가올 위험에 고뇌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결국 시간이 흘러 어느덧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에 처하고 만다. 아내의 병이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들어갈 때 젊은 시절 불러주었던 노래를 기억해낸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갖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소.” 문득 인간의 존재 양식이 단지 기억력이라는 허약한 기반 위에 세워졌음에 놀란다. 이 영화는 치매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기보다 그것이 악화한 후로부터 출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병으로서의 치매가 아닌 기억이 지닌 존재가치를 부각했다. 올 추석의 기억도 추억의 책갈피에 소중히 간직해본다.
- 2018-10-0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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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함도>를 보고
- 서울시가 광복 72주년 보신각 타종 행사에 ‘군함도’로 강제징용 갔다 돌아온 생환자를 포함시켰다.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72주년 광복절을 맞아 아내와 영화 군함도를 관람했다. 영화에서 본 강제징용도 역사적 사실만큼 끔찍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일제는 한 명의 조선인이라도 더 끌고 가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강제징용에 끌려간 조선인은 사람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군수품이고 소모품이었다. 군함도의 조선인들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굴속에 들어가 삽질을 시작했고 날이 저물어 삽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맞아가며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흙탕물로 갈증을 달래며 삽질을 했고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쓰러지거나 죽어야만 실려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유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거기까지였다. 영화는 조선인을 학대한 조선인에게 포커스가 맞춰졌고, 조선인을 배반하고 우롱하는 독립투사에게 맞춰졌다. 일제에 의한 핍박과 역사적 사실의 조명보다 조선인과 조선인이 싸우는 허리우드식 블록버스터가 되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에도 조선인에게 유독 악질적으로 대한 조선인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피해자 입장에서 역사적 사실을 서술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아무리 재미를 추구해야 하는 영화라 해도 악질적 조선인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어떻게 이런 자학적 시나리오가 가능했을까. 젊은이들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덩케르크’에 더 높은 점수를 준 것도, 영화의 기저에 친일적 사고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세간의 의혹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전쟁을 위해 강제징용으로 희생된 조선인은 부지기수였다. 한 철도 공사장에서는 철도 교각에 조선인 시체를 넣고 시멘트로 봉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숨이 붙어 있는 산사람까지 생매장을 했다니 공사장은 글자 그대로 조선인의 무덤이었다. 강제징용의 피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발생했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1938년 4월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일제는 국내에서 6956곳의 작업장을 운영했으며, 그 기간 중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648만 8000명이나 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조선인구가 삼천만 명이 되지 못했으니 그 숫자만으로 강제징용의 피해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다시 군함도로 가보자. 1890년 하시마(군함도)섬을 인수한 미쓰비시는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부터 패할 때까지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에게 석탄을 채굴토록 했다. 전범기업 미쓰비시는 강제노역으로 캔 석탄을 이용해 전쟁 물자를 생산했고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군함도는 잊혀졌다.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은 군함도를 떠났고, 1974년 지옥 같았던 탄광이 석탄산업의 쇠락과 함께 마침내 폐쇄됐기 때문이다. 조선인의 강제징용 사실을 숨긴 일본은 2015년 7월 군함도 전체를 관광자원화 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그동안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은커녕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다. 일본의 인접 피해국에 대한 역사인식의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위안부 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마치 위안부 문제가 그랬던 것처럼 군함도에서 조선인 징용자들이 겪은 고통도 뒤늦게 생존자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일제의 강제징용을 고발하고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인을 위로하기 위한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서울 용산역 광장에 건립됐다. 그 건립 과정이나 목적이 위안부 소녀상을 빼닮았다. 그러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군함도에서 희생된 조선인 강제징용 희생자들에 대한 일본의 사과는 없다. 아직 위안부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으로 희생된 조선인에 대해서 쉽게 사과할 것 같지도 않다. 영화 군함도를 관람한 후 일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역사의식이 부족한 우리에게 일본이 과연 제대로 된 사과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왜곡된 역사인식으로 인하여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보도가 씁쓸하다.
- 2017-08-1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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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쉬움을 남긴 영화 <군함도>
- 일본의 군함도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섬이 군함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사진으로 볼 때는 거대한 군함처럼 삼엄한 느낌을 준다. 2015년 일본이 군함도를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의 역사 현장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고 했을 때 이곳 군함도가 하시마 탄광과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군함도에 조선인 800여 명이 끌려가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가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조건으로 우리 정부 측은 조선인의 강제 노역 사실을 명시하라고 했고 유네스코도 이를 권고했으나 일본은 아직도 이 약속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 참으로 뻔뻔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이 영화는 을 만든 류승완 감독의 작품이다. 주연으로 소지섭(칠성 역), 황정민(강옥 역), 송중기(무영 역), 이정현(말년 역), 이경영(학철 역) 등 호화 배역을 자랑한다. 그러나 강옥의 딸이 나오는 비중이 너무 높고 스토리가 잡다하게 얽혀 다소 피곤한 느낌이다. 일본은 군함도에서 석탄을 캐내기 위해 조선인들을 꾀어서 데리고 갔다. 각자 나름대로의 꿈을 꾸며 군함도에 간 사람들은 군함도가 일본의 강제 노역 현장이라는 것을 가보고 나서야 알게 된다. 깊이가 1000m가 넘는 탄광의 열악한 환경에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죽어 나갔다. 영화에서는 독립지사 학철이 조선 노동자의 정신적 지주로 있고 이들을 구출하라는 임시정부의 명령을 받은 무영이 들어가 군함도의 내막을 파헤친다. 칠성은 조선에서 주먹을 쓰던 경력을 활용해 자리를 굳힌다. 강옥은 유곽으로 전락하려던 어린 딸을 구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말년은 나라 잃은 젊은 여자 입장이라 자포자기한 인생이다. 수용소의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감추기 위해 조선인들을 갱도에 몰아넣어 몰살시킬 계획을 감행한다. 결국 조선인들은 폭동을 일으키고 탈출선을 탄다. 나가사키 현 남서쪽으로 불과 18km 떨어진 군함도에서 탈출선을 타고 부산을 향해 떠나는 조선인들은 미군이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이 폭발하는 장면을 본다. 일본의 패망을 결정짓는 한방이었고 역시 죄 없는 우리 조선의 징용자들이 함께 희생당했다. 영화 는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필자가 기대했던 것은 영화적 재미보다 역사적 사실이었다. 비슷한 시절 일본 해군의 군수물자 수송선 우키시마호(浮島丸)에 탔다가 의문의 폭발로 수천 명의 조선 징용 노무자들이 수장된 사건을 이 영화가 다루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희생된 인원도 많았고, 조선인들을 강제로 몰아붙이던 일본 군부의 수상한 행위를 이 기회에 재조명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환경에 있었던 징용 노무자들 얘기로 이 사건을 버무려넣었다면 역사적인 의미도 더했을 것이다. 영화 에서 못 다룬 우키시마호 사건은 다른 영화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재조명해야 할 사건이다. 영화는 잘 만들었다. 당시 의상이나 화장 등이 그럴듯하다. 촬영은 일본 군함도에서 한 줄 알았는데 춘천에 비슷한 세트를 만들어 찍었단다. 거대한 건물과 폭발, 수많은 엑스트라를 동원한 실감나는 장면들은 볼 만하다.
- 2017-08-07 0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