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모습. 허송세월의 정의다. 새해를 허송세월로 지내고 싶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보다는 매 순간 의미 있는 일들로 꽉 찬 한 해를 바랄 테다. 윤정구(64)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이를 위해선 체험하는 시간의 개념인 ‘카이로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카이로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기회의 신’으로도 불린다. 인생의 기회는 경험의 시간을 사는 가운데 맞이하는 선물과도 같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일정한 속도와 방향을 갖고 기계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크로노스(Kronos)라 한다. 윤정구 교수가 언급한 카이로스(Kairos)는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특별한 시간이다. 가령 똑같은 10년이라도 허송세월로 보내는 이에게는 마치 100년처럼 길게 느껴지겠지만,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바삐 사는 이에게는 1년처럼 짧게 여겨질 수 있다. 절대적인 시간(크로노스)은 10년이더라도, 상대적 시간(카이로스)이 저마다 다른 것이다. 즉 크로노스는 양적인 시간,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인사조직 전략, 조직경영 개발 등을 연구해온 윤 교수는 이런 차원에서 접근할 때, 현재 노동 현장에서 적용하는 시간의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이 바뀌는데, 여전히 시간 개념은 산업화 시대 생산 노동자에게 적용했던 방식에 머물러 있어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를 벗어나지 못한 거죠. 아직은 주 5일 근무가 일반적인데요. 가령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활용해 회사에 약속한 일을 끝내는 데 4일이 걸렸다고 쳐요. 주 5일이라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채우지 않았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으로는 목표를 달성한 거잖아요. 그런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혁신은 일어날 수 없어요. 시간으로 산정한 임금이 책정되는데, 근로자가 애써 생산성을 늘리는 혁신을 감행할 이유가 있나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재택근무 등 일터에서의 논쟁 대부분이 본질을 벗어났다는 걸 알 수 있죠.”
기술의 민주화 시대,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현재, 일자리 이슈 중 하나는 ‘정년 연장’이다. 윤 교수는 카이로스의 개념에서 볼 때 은퇴 기준점을 ‘나이’로 책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 지적했다.
“양적인 시간으로 책정된 나이만 고려한 거예요. 개인의 경험이나 노력 등 질적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카이로스 개념에서의 나이는 다를 수 있죠. 결국 회사가 고객에게 약속한 가치를 자신의 인적 자원을 통해 누가 더 많이 창출하느냐가 관건이잖아요. 한때는 젊은 직원들이 기술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 인정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생성형 AI나 로봇 등이 보편적으로 보급되면서 누구나 기술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죠. 코딩, 알고리즘 등에 대한 지식이나 전문 자격증이 없어도 챗GPT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처럼요. 이러한 기술의 민주화, 전문성의 민주화로 나이와 같은 태생적 요인이 인적 자본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줄었어요.”
최근 인공지능의 발달로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거나 대체되리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고령자 일자리가 더욱 위협을 받으리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윤 교수는 이러한 시대 변화가 고령자에겐 기회라고 역설했다. 카이로스의 또 다른 이름(기회)처럼 말이다.
“그동안 기술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수단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왔다면, 이제는 조직의 공유된 목적을 위해 기술과 인간이 협업하는 관계로 설정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이와 무관하게 생산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는 대안적 방법들이 마련될 수 있죠. 이때의 기술은 고령자에게 오히려 득이 됩니다. 고령 인력이 지닌 체력이나 모빌리티(기동성·유동성)의 한계를 상당 부분 해결해주니까요. 즉 정년을 따질 것 없이 기술과 잘 협력하면 장기간 안정적인 직장생활도 가능하리라 예상해요.”
대한민국의 미래는 고령 인력에 달렸다
지난해 말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부양비(20~64세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는 날로 증가하며, 2075년에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한편 고령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주요국을 웃도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급증하는 노인 부양비를 감당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해 윤 교수는 고령 인력 활용이 단초 역할을 해낼 수 있으리라 진단했다.
“당장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그 아이들이 경제활동 인구로 성장하려면 20년을 기다려야 해요.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 고령자 중 아직 활용되지 않은 인력을 동원하는 겁니다. 최근 매킨지 보고서를 보면 정년퇴임을 했는데 일을 안 하거나, 정년퇴임을 준비하는 이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면 GDP가 얼마나 올라갈지를 예측했어요. 그 결과 우리나라의 경우 GDP의 14.7%가 성장한다고 나와요. 비교된 20여 개 국가 중 1위를 차지했을 만큼(일본 8.6%, 미국 7.2%, 영국 4.8% 등) 월등히 높은 수치죠. 우리가 매년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경제성장률이 2% 미만이잖아요. 고령 인력의 활용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렇게 당분간 대한민국의 미래는 고령 인력에서 찾아야 합니다.”
고령 인력은 조직원으로 일하기도 하지만 리더의 위치에 놓인 이가 상당수다. 저서 ‘진성 리더십’을 펴내고 대한리더십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리더십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윤 교수는 중장년·고령 리더들이 거버넌스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 세계적으로 거버넌스가 역피라미드 구조로 바뀌고 있어요. 가령 글로벌 기업 리더들은 조직원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요. 회사는 일종의 플랫폼이고, 리더는 그런 플랫폼을 디자인하는 사람이고, 이것들을 이용해서 네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증명해보라는 식이죠. 즉 회사보다는 개인의 성장을 위한다는 취지인데, 이렇게 말해도 직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분들도 있어요. 솔직히 말해 그건 진정성이 없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속으로는 회사의 성장과 이익을 우선하면서 겉으로만 그 직원을 위하는 것처럼 포장했기 때문이죠. 말뿐인 독려라는 걸 직원들도 느낄 텐데,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 수밖에요.”
리더 입장에서 진정성을 갖기 힘든 건 직원에 대한 신뢰가 영글지 않은 탓도 있겠다. 신뢰라는 건 상호의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윤 교수는 서로 간의 ‘신뢰 자본’을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A라는 사람이 내게 100만 원을 빌려달라 했을 때 그 돈을 못 받을 걸 전제로 손해를 감수하고 빌려준다면, 신뢰 자본 100만 원이 생긴 셈이에요. 반대로 A도 나에게 그렇게 해준다면 둘 사이의 신뢰 자본은 200만 원이 되죠. 그렇게 신뢰라는 건 서로가 상처받을 개연성에 대해 인정하는 거예요. 그러니 손해를 전혀 안 보겠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서는 신뢰가 생길 방법이 없어요. 그런 신뢰의 결여 때문에 요즘 젊은 조직원 중에는 공정성 같은 덕목을 따지는 이들이 많은 편입니다. 서로가 손익 계산기를 두드리는 거죠. 결국 그런 상황에서는 건강한 조직을 기대하기 어려워요. 이럴 때 리더가 할 수 있는 일은 긍휼감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긍휼감은 공감이나 연민을 넘어서는 행동 지향의 도덕적 정서인데요. 긍휼감을 가진 리더는 조직원의 고통도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해 함께 풀어가려 하죠. 이런 태도를 보였을 때 조직원들도 리더에게 진정성과 신뢰를 느낄 수 있다고 봐요.”
우리 사회 빙산의 밑동을 복원하는 시간
현실적으로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 앞에 윤 교수의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건강한 조직과 리더십, 지속 가능한 기업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특히 기업의 근간이 되는 조직원들의 고통을 눈여겨보고자 한다.
“조직에서 직면한 거의 모든 문제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고통을 해결하지 않고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결과예요. 돌봄을 받지 못한 고통이 문제로 터져 나왔을 때, 많은 리더가 원인인 ‘고통’을 해결하지 않고 밖으로 드러난 ‘결과’만 봉합하려 하죠. 일단 그렇게 문제를 덮고 시작하기 때문에 근원적 해결이 불가능하고, 반복되는 거예요. 조직과 경영을 연구한 학자로서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빙산의 형상에 비유해 설명을 이어갔다. 기업의 경우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 즉 핵심 사업이나 수익을 키우는 데 주목한다. 그러나 이러한 빙산의 윗동이 잘 성장하려면 이를 잘 지탱하는 수면 아래 밑동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밑동에 비유할 수 있는 게 바로 조직원이다.
“눈에 보이는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밑동을 이루는 조직원들의 고충이나 아픔에 대해 인정하고 치유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이러한 현상은 기업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정치•종교 등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이런 밑동을 간과한다고 생각해요. 정년퇴임 후에는 잃어버린 밑동을 어떻게 복원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며 카이로스의 시간을 채워가려 합니다.”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1989)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시인은 자신이 지나온 모든 시간이 머뭇거림과 탄식과 질투로 가득했다고 고백합니다. 끝없이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했지만 끝내 한순간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음을 참회합니다. 혹시 질투의 불길 속에서 자신을 태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질투로 아파하는 모든 분과 마음 미장공 아홉 번째 이야기 함께하겠습니다.
아직도 질투에 사로잡힌 당신에게
살림하는 전업주부로 산 세월이 많던 시절, 무릎 나온 바지에 애들 안 입는 낡은 티셔츠 입고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든 날 아침, 승강기에 같이 탄 이웃을 나도 모르게 훔쳐보게 됩니다. 옷차림부터 머리 매무새며, 들고 있는 서류가방, 풍기는 향수 냄새까지. 저는 물론 세수도 하지 않은 채입니다. 머리부터 발끝, 아니 구두 끝까지 제대로 갖춰 입은 또래로 보이는 여인. 역한 냄새 나는 쓰레기봉투를 든 나와 예쁜 백을 단정하게 든 그녀.
‘아 저 여자는 무슨 일을 할까? 얼마나 전문적이고 근사한 직종에 있는 걸까? 출근해서는 얼마나 재미 있고 또 의미 있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올까?’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보던 때도 많았습니다. 시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아이들 챙기느라 자신을 가꿀 수 없었던 제 모습이 창피스럽기도 했습니다. 발코니에서 내려다보이는 사람들 모습, TV에 나오는 유명인이나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다가 당신은 시기와 질투, 시샘하는 마음이 올라온 적이 있습니까? 이 감정이 도대체 뭐길래 나를 초라하게 하고 내 신세를 형편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할까요.
질투의 대상과 거리 : 최소한 사촌은 돼야 배가 아프다
친구가 성공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는다.
-고어 비달, 미국 소설가
영성이 높은 한 수도사가 금식 기도하며 수련 중에 있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유혹하고 훼방하려 해도 안 통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오늘 교구 인사에서 당신 동생이 주교가 되었다고 하는데….” 말을 맺기도 전에 “진짜? 말도 안 돼” 하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질투의 대상은 질투의 거리와도 밀접합니다. 부부나 연인, 형제자매, 친구 사이처럼 그 사람이 나와 얼마나 가까운지가 관건입니다. 거론한 대상이 자신과 너무 동떨어지고 격이 차이가 나면 질투가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또래일 경우 질투의 불길은 활활 타오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사돈의 팔촌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혈연 관계인 사촌이 땅을 샀기 때문에 내 배가 아픈 법입니다. 평생 일면식도 없던 먼 친척이라면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기 마련이니까요.
만만할수록 불붙는 질투심
수십조 혹은 수백억 달러를 상속받았다거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일론 머스크한테 질투를 느끼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것입니다. 막연히 부러워하거나 경탄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그러나 매일 같이 운동하는 이웃이 경매로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샀다거나, 내 옆자리 동료가 주식으로 3000만 원을 벌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상대가 성취한 부와 행복의 크기가 내가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할 때 질투가 솟구칩니다. 또 이미 세상을 떠난 과거의 예술가나 과학자에게 질투가 일어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고인(古人)과 경쟁을 하지는 않으니까요. 동시대를 사는,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질투가 한결 커집니다. 질투는 시간적이나 공간적으로 나와 가깝고, 내용이나 크기로도 만만할 때 더 폭발해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질투는 죄가 없다?
질투(嫉妬)라는 글자에서 질(嫉)의 핵심은 계집 녀(女)에 있는 게 아니라 병 질(疾)에 있습니다. 괴로워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하고 성급한 마음 때문에 근심하다 결국 나한테 독이 되고 남에게도 독이 되는 것. 이러한 괴로움이 질투에 들어 있는 병이라는 것입니다. 투(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에 돌을 던졌으니 병이 들 수밖에요. 말이나 행동, 관계 따위로 손해나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병든 상태가 질투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질투의 신은 누구일까요? 바로 젤로스(Zelos)입니다. 한자 문화권인 동아시아에서는 질투를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로 꼽을 만큼 여자한테만 덮어씌웠는데, 서양에서 질투를 맡은 젤로스가 남신이라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젤로스는 폭력의 신 비아와 권력과 힘의 신 크라토스를 형제로, 승리의 신 니케를 누이로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서양 문화권에서 젤로스는 질투의 개념보다는 경쟁, 열의, 전념 같은 긍정적인 뜻을 더 많이 함축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질투의 이중주 : 스타 탄생과 몰락 이야기
1937년 ‘스타 탄생’이란 이름으로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고, 2018년 세 번째 리메이크된 ‘스타 이즈 본’(A Star Is Born)은 사랑 영화이자 음악 영화로 알려져 있지만 질투가 주인공 못지않은 역할을 하는 작품입니다.
애리조나 하늘같이 타오르는
그대 눈동자
날 보는 그대 눈길에 불타고 싶어
내 영혼 깊숙이 캘리포니아
황금처럼 묻힌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빛을
찾아낸 그대
목이 메고 할 말을 찾지 못해
헤어질 때마다 가슴이 아파
해가 지고 밴드가 연주를 멈출 때
우리 모습 영원히 이대로
기억할 거야
(중략)
그대가 날 바라보면
온 세상이 사라지고
우리 모습 영원히 기억할 거야,
이대로
-OST ‘Always Remember Us This Way’(우리 모습 영원히 이대로 기억해)
중에서
나를 발견해주는 사람을 조심하라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외모가 걸림돌이 되어 낮에는 웨이트리스로, 밤에는 무명 가수로 무대에 오르던 앨리(레이디 가가 분). 천재 기타리스트이자 컨트리 뮤지션으로 명성을 날리는 슈퍼스타 잭 메인(브래들리 쿠퍼 분). 순회공연 중 우연히 찾은 바에서 노래하는 앨리를 보고 잭은 첫눈에 ‘캘리포니아 황금처럼 영혼 깊숙이 묻힌’, 그녀도 몰랐던 내면의 빛을 발견합니다. 나를 찾아내고, 무대에 세우고, 나를 키워주고 응원하는 사람과 결혼한 그녀. 내 진가를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무대에서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를 기회를 주었으니, 두 사람은 이제 사랑밖에 할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내가 당신을 망쳤어. 당신이 부끄러워. 안쓰럽고 그래. 당신 더럽게 못생겼어. 얼굴에 자신이 없어서 남한테 잘 보이는 게 더럽게 중요하지.”
전성기에서 갈수록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잭과 달리 앨리는 스타 시스템에 힘입어 대형 토크쇼에 초대되는가 하면, 그래미상 3개 부문 후보로 선정될 정도로 승승장구합니다. 기쁜 소식을 들은 바로 그날, 잭은 술과 마약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독설과 폭언을 퍼붓습니다. 심지어 신인상을 받게 되어 시상식에 초대된 날, 앨리가 수상 소감을 말하는 옆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소변을 보고 맙니다. 그 뒤 마음을 다잡고 알코올 중독 치료도 하는가 싶더니, 아내 앨리의 대형 해외 투어를 앞두고 목을 매달아 세상을 등집니다. 한 여자를 살렸지만 자신은 살리지 못했던,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남자. 앞선 기형도 시인의 독백과 겹쳐집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죄
질투는 오로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부정적인 감정 상태로 자신을 방치해 병이 되게 해서는 곤란합니다. 열의, 열정, 전념을 담당하는 젤로스 신을 불러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제가 처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게 된 것은 남편의 공이 큽니다. 그 옛날 원고지에 글 쓰던 시절, 시외삼촌의 권유로 타자를 배운 남편을 보면서 마음에 질투의 불씨가 당겨졌습니다. 하지만 질투에 굴복하지 않고 선의의 경쟁과 열정이란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꾸어 저도 당시 ‘한메타자교사’로 컴퓨터와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물리적으로 매우 가까이에 있는 친밀한 관계에서 생기는 질투를 내 삶의 좋은 에너지로 바꿀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뭔가를 해내는 것을 지켜보는 건 자신에게 굉장한 자극을 주기 때문입니다.
질투를 놓아주고 나부터 행복해집시다! : 마음의 주인 노릇
질투에 함몰되어 자기 비하와 자학으로 자신을 파괴할 것인지, 그 감정이 나를 옭아매지 않도록 방향을 선회해 자기 발전, 자존, 자족, 건강한 자극으로 동기를 부여할 것인지 그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주인이 나일 때만 가능합니다.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그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지 질문해보세요. 질투는 남보다 나를 망칩니다. 내 화살로 나를 쏘는 것과 같습니다. 남을 질투할 시간에 나를 더욱 사랑해보면 어떨까요. 남과 견주며 끝없는 고통과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지 말고 나부터 행복해집시다.
일연 스님(1206~1289)은 몽골의 침입이라는 국난에 맞서 한민족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스님은 입적하기 전 5년 동안 5권 2책의 ‘삼국유사’를 완성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며 나름의 답을 했다. 정사에서는 볼 수 없는 한민족 역사의 대기록이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밝힌 고조선과 단군신화, 14수의 신라 향가는 고대 문학사를 실증하고 있으며, 이 땅의 사람들이 남긴 기억을 모아 통일된 서사를 완성했다.
이처럼 한민족 정신사에 족적을 남긴 일연 선사의 자취는 군위의 인각사(麟角寺, 사적 제374호)에 남아 있다. 그의 생애를 기록해두었다는 보각국사비(普覺國師碑)를 보러 가자. 인각사로 가는 여행은 일연 스님의 정신과 그 비문에 얽힌 간곡한 마음 하나 알아보려고 떠난다.
인각사의 비문에 존재한다는 문장을 마음속에서 떠올려본다. 그 비문의 이름은 보각국사비다. 당시 이름난 민지(閔漬)라는 문장가가 글을 지었고, 왕희지의 서체로 4000여 자를 집자했다고 한다. 인각사라 자리한 군위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가는 김에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왔다는 혜원(김태리 분)의 근사한 집도 들러보고 추억의 기차역 화본역도 다녀왔다. 카메라와 번역본 ‘삼국유사’ 한 권을 배낭에 짊어지고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를 거쳤다. 과연 온전히 이 글의 주인공의 드높은 정신세계를 느끼고 비문을 찾아볼 수 있을까? 비에 새겨졌다는 일연 스님을 찬하는 민지의 문장이다.
“말할 때 우스개가 없고(語無戱謔), 꾸며대지 않는 성품이며(性無緣飾), 참된 마음으로 사물을 대했다(以眞情遇物). 여럿이 함께 있어도 홀로인 것 같았으며(處衆若獨), 높은 위치에서도 낮게 처신했다(居尊若卑). 스승에게서 배워 공부하지 않고(於學不由於師), 저절로 환하게 알았다(自然通曉).”
인각사를 빛내주는 것은 바로 학소대에 노니는 학처럼 고고한 선사의 정신세계다.
참된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는 힘은 일연 스님의 끝없는 수행의 결과가 아닐까?
경북 군위는 세간의 시선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고장이다. 대구에서 가수 김광석 거리와 달성공원을 둘러보고 하루의 일정을 보낸 후 다음 날 아침 군위로 향했다. 간밤에 눈이 내려 앞산 정상이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시내는 금세 녹았지만 대구를 분지로 만들며 빙 둘러 병풍처럼 서 있는 산들은 만년설을 두른 듯 하얗다. 군위 방면에 있는 팔공산의 설경은 겨울답게 눈이 부시다. 대구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힘이 눈으로 더욱 영험해진 듯하다.
일연 스님이 말하고 싶은것은?
팔공산의 품은 넓고도 높아 군위로 향하는 내내 시선을 머물게 한다. 군위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추위 탓인가, 코로나19 때문인가? 텅 빈 들판과 낙엽이 떨어져 벌거벗은 겨울나무 숲은 조용히 추위를 견디고 있다. 응달에는 아직도 하얀 눈이 쌓여 있다. 인각사로 향하는 지방도로는 산길로 접어들어 굽이진 길을 간다.
영천 방향으로 산길을 위태롭게 오르내리며 가는데 영락없는 산촌 풍경이다. 이런 궁벽한 산골에서 고려의 국사였던 일연 선사가 하안소(下安所)로 인각사를 선택하고 ‘삼국유사’의 저술을 마무리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는 얼마나 멀고 먼 땅이던가? 어렵게 산길을 거쳐 왔어도 막상 사찰은 평지에 있었다. 화산의 봉우리 끝에 상상의 동물인 기린의 뿔과 닮은 곳에 세웠다 하여 인각사라 명명했다 한다. 절의 맞은편 위천(渭川)이 흘러가는 강변에는 학이 깃들어 산다는 학소대(鶴巢臺)가 우뚝하다. 일반 여행객이라면 절에 눈길을 주기 전에 틀림없이 이 절벽에 주목할 만큼 절은 평범하다.
고려의 명승 일연 스님이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천년 고찰 인각사도 온통 추위 속에 서 있다.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에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 이곳에서 구산문도회를 두 번이나 개최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전국 불교의 본산임을 알 수 있다. 인각사 경내에는 보물 제428호인 보각국사탑과 비가 있다.
도로변 평지에 위치한 인각사에는 엄청난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마침 주지 스님은 본찰인 은해사에 가서 부재중이었다. 직원에게 딸기 공양을 맡기러 컨테이너로 된 종무소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순간 발이 얼어붙는 듯했다. 계곡 바람이 차가웠다. 문을 닫고 종무소 안으로 들어가니 시골집 아랫목처럼 따뜻했고 뜨거운 차는 반가웠다. 부처님 품속에라도 들어온 느낌이었다.
다시 밖으로 나와 보각국사탑과 비를 본다. 비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몇 동강 나 있고 글자는 알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30여 개의 탁본이 남았고 금석학자들의 노력으로 대부분 해독이 가능하다고 한다. 글자가 명필 왕희지체여서 인기가 많아 수많은 탁본을 떴으며, 과거를 보는 선비들이 효험을 보려고 비를 갈아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에게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연 스님이 남긴 민족 역사의 대기록 ‘삼국유사’
민지의 비문으로 일연 스님을 기억한다면 우리 가슴에 새겨진 영원한 비문은 ‘삼국유사’다. 40년간의 몽골항쟁 후 ‘삼국유사’가 쓰였다. 외세 침략을 극복하고 민족 자존감을 고취하기 위해 한민족의 자존 용기와 기백을 그렸다. 스님이 활약하던 시기는 무신정권이 들어서고 몽골과의 길고 긴 항쟁을 하던 시기였다. 결국 장년기에 들어서는 원의 간섭을 받던 시절이었다. 스님은 대장경 간행에도 관여했으며, 출가 시절부터 전국의 사찰을 다니면서 민초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았고 누구보다 그들의 힘을 믿었다. 국사라는 안락한 자리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효도의 예를 다했으며, 당시 시대의 과제를 피하지 않고 민족혼을 일깨웠다.
700여 년 전 일연 스님이 남긴 민족 역사의 대기록 ‘삼국유사’, 마지막 생을 불태운 그의 기록은 민족의 뿌리를 기억하게 하는 보물이다.
지금 이 시대에 왜 ‘삼국유사’이고 보각국사비인가? 인간이 되려고 인고의 21일을 견딘 웅녀의 끈기와 태백산 신단수 아래 나라를 세우며 내세운 홍익인간 같은 사상이 필요한 때다. ‘삼국유사’에는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한민족 최초의 스트리퍼라 불리는 정수 스님의 이야기는 상징적이다. 한겨울 길거리에서 만난 산모에게 옷을 다 벗어주고 간 스님의 이야기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일연 스님의 생애를 새긴 보각국사비 양기(陽記)의 마지막 문장은 ‘온 산하가 다 불타 없어지더라도, 이 비만은 홀로 남아 전해주소서’라는 뜻이다. 비록 비는 부서졌어도 일연 스님이 말하고자 했던 뜻과 문장은 향기롭게 남아 시대의 등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군위 여행의 맛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많은 저작을 남긴 이윤기 작가의 고향이다. 그도 자신의 고향이 ‘삼국유사’의 고향인지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이 고을의 대표 브랜드는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다. 군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김수환 추기경의 자서전을 읽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 지역의 사계와 먹거리를 요리로 표현한 김태리 주연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가면 더욱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다. 영화는 경쟁적 도회의 삶에 지치고 허기져서 귀향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추억 속의 시루떡은 달지 않은데 단맛이 나고 지금 먹는 떡은 짜지 않은데 짠맛이 난다.” 영화는 엄마가 딸에게 주는 인생 레시피다. 군위에서 듣는 일연 스님의 이야기는 시대와 역사가 주는 가르침이다. 군위 여행은 ‘삼국유사’라는 거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뜻밖의 깊은 맛이 난다. 우울함을 단번에 행복감으로 바꿔주는 영화 속 음식 크렘 브륄레처럼, 코로나19 시대 위기를 극복하는 ‘삼국유사’의 비기를 찾아가 보자.
1년 중 가장 아름답고 활동하기 좋은 시기는 이맘때 봄이다. 4년 전 파주시와 고양시의 경계에 오픈한 66,115㎡(2만 평) 규모의 퍼스트 가든은 경기도에서 가볼 만한 곳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장소다. 사계절 다양한 꽃이 피고 지는 이곳에서 낮에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고, 밤에는 환상적인 야경을 볼 수 있다.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하루를 보내기에 좋다.
서울에서 인접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한적하다. 드라마와 뮤직비디오 등 수많은 영상물을 촬영한 장소이기도 하다. 가구제조업체 ㈜대주의 김창희 회장이 40여 년간의 제조와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지금처럼 빼어난 공간으로 만들었다. 최근 봄꽃들과 초록 식물들이 그야말로 물이 올랐다.
유럽식으로 단장한 야외에서 여유롭게 산책을 하다 보면 화려한 꽃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야트막한 언덕 위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구조는 아기자기하다. 초입에서 생태 정원을 거쳐 자작나무 숲까지 한 바퀴를 둘러보려면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곳곳에 평상과 나무 그늘 쉼터가 있어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잠깐씩 쉬어갈 수 있다.
복합 문화시설을 표방하는 이곳은 16㎡(5평)에서 99㎡(30평) 크기의 정원을 30여 가지 테마로 다채롭게 꾸며져 있다. 식당, 카페, 웨딩홀 등 편의시설도 갖췄다. 입구에는 그리스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 눈에 띈다. 유럽 고대 건축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코린트 양식의 구조물이다. 조금 더 들어가면 만나는 토스카나 광장. 꽃과 풍요의 여신 플로라로 장식한 분수대에서 물이 시원스레 흘러내린다.
정원 한쪽에는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의 조형물이 있다. 아프로디테가 사랑했던 미소년 아도니스는 사냥을 하다 멧돼지에 물려 목숨을 잃는다. 아도니스가 죽으면서 흘린 피에서는 아네모네가 피어났고, 아프로디테의 눈물에서는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는 지하세계와 지상세계를 오가면서, 겨울에는 땅속에서 지내다가 봄이 오면 새싹을 틔우는 식물의 신이 됐다. 지금도 서양에서는 농사의 풍요와 사랑의 결실을 축복하는 아도니스 축제가 펼쳐진다.
이 신화에는 사랑과 이별, 사계절의 변화, 축제의 기쁨 등 수많은 이미지와 상징이 녹아 있다. 퍼스트 가든은 이 스토리에 맞춰 4가지 테마의 정원을 만들어 시즌별로 다양한 축제를 연다. 봄에는 ‘꽃의 정원’, 여름에는 ‘물의 정원’, 가을에는 ‘축제의 정원’, 겨울에는 ‘빛의 정원’이라는 콘셉트 아래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달 초에는 튤립이 압권이었고, 이즈음엔 장미꽃이 만발했다. 매일 밤 ‘별빛축제’도 열리는데, 특히 요즘은 화려한 조명과 함께 운치 있는 봄밤 산책을 하기에 좋다.
왼쪽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대형 화단이 발길을 사로잡는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 분수를 중심으로 곳곳에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석상과 푸른 상록수가 조화를 이뤘다. 경사지에 이탈리아식 건물을 짓고 계곡 형태의 공간에 단을 쌓아 만든 구조도 독특하다. 거대한 벽화를 뒤에 두고 시원스레 쏟아지는 분수는 청량감을 준다.
신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장밋빛 향연으로 펼쳐지는 로즈 가든도 멋스럽다. 중앙을 따라 길게 펼쳐지는 길은 측백나무가 줄지어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작은 식물원과 동물원에서는 새와 동물 먹이 주기와 승마 체험도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다.
작년 12월에 오픈한 자동차극장에는 젊은층뿐만 아니라, 옛날 향수를 그리워하는 40~50대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매주 수요일 오후 8시와 10시에 최신작 영화 2편을 바꿔 상영한다. 규모는 차량 70대 정도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다.
퍼스트 가든의 로고에는 ‘Happiness, Together’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나무, 사람, 지구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이곳에서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곳을 찾은 어르신들은 자연 속 힐링을 체험하며 “여기가 천국”이라며 행복해한다.
“이곳에 있으면 무엇이 화려하고 과장되고 오만한 것인지, 무엇이 즐거우면서 신선하며, 창조적인지 분명하게 알게 된다.” - 헤르만 헤세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중에서
경기도 파주시 탑삭골길 260(상지석동 1021-3)
유럽의 마을이나 도시를 방문하면 그곳 중심에 광장과 함께 고풍스러운 건물이 우뚝 자리하고 있다. 지금으로 치면 대부분 ‘시청 청사’다. 그리고 그 청사 건물 중앙 높은 곳에 있는 한 여인의 조각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劒]을 거머쥐고 있는 모습의 조각상이다. 바로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다. 라틴어 Justitia는 영어 ‘Justice’의 어원이기도 하다.
문헌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 die Göttin der Gerechtigkeit)’는 손에 칼만 쥐고 있다. 그런데 로마시대에 들어와 ‘정의의 여신(Justitia)’상에 ‘칼과 저울’이 등장했고, 이런 형상의 조형물이 유럽 관공서 건축의 외장 조형물로 크게 자리매김했다.
요컨대 정의를 구현하는 데 엄한 힘[權勢]인 칼만 갖고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정성과 공평성을 상징하는 ‘저울’을 여신에게 준 것이다. 아울러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조금이라도 오해를 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듯 ‘눈가리개[眼帶]’도 등장한다(사진 1).
얼마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청 광장인 ‘뢰머 플라츠(Römer Platz)’는 1년여의 보수작업을 마치고 새롭게 ‘정의의 여신상’을 세웠다. 일견 다른 ‘여신상’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조각상이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눈가리개’가 없는 ‘정의의 여신’임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여신’이 시 의회 건물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은 시 의회가 공정하면서도 공평하게 의무를 다하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도했다(사진 2).
사실 유럽 고도(古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의의 여신’ 중에는 ‘눈가리개’를 하지 않은 여신상이 더러 있다. 국내 법원이나 법조계 관련 건물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도 대부분 ‘눈가리개’가 없는, 눈을 뜬 여신상이 주종을 이룬다.
대표적인 예가 대법원 건물에 있는 한국적 ‘정의의 여신’이다. 여기서 ‘한국적’이라 함은 여신이 무엇보다 우리 한복 차림에 강한 집행력을 상징하는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또한 그 ‘여신’은 ‘눈가리개’ 없이 눈을 멀쩡히 뜨고 있다. “법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조형물이 갖는 상징성을 생각할 때, 국내의 높고 낮은 법정의 판례와 관련해 종종 회자되는 ‘무전유죄 유전무죄’, ‘전관예우’ 같은 표현은 민망하기 그지없다.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공평성이라는 잣대가 ‘눈 뜨고 내리는 판단’과 ‘눈 감고 내리는 판단’에 따라 다를 수는 없는 법이기에 우리 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갖고 있는 상징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나의 운명을 누군가가 알려준다면 인생이 편할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 신전의 무녀 ‘피티아’에게 자신의 운명을 점지 받았다. 무녀가 아폴론 신을 대신한다고 철저하게 믿었던 것은 그 시대의 역대 왕들은 물론 소크라테스 등 철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2500여 년이 지난 지금, 델포이 마을에 유적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파르나소스 바위산과 올리브 나무가 지천인 첩첩 산골마을 델포이. 아름다운 풍경과 정겨운 주민들은 떠나는 여행객의 옷깃을 자꾸만 부여잡는다.
2500여 년 동안 델포이를 지킨 유적지
델포이(오늘날은 델피로 불린다)는 BC 8~6세기 무렵만 해도 아테네보다 훨씬 번성한 도시였지만 현재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길을 묻지 않아도 “뭘 도와줄까?” 하고 말 걸어오는 정겨운 사람들이 있다. 델포이 여행은 서두를 이유가 없다. 느릿느릿 천천히 돌아다니면 된다. 델포이 마을 주변에는 2500여 년 전의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유적지는 크게 두 군데로 나뉜다. 산허리를 가르는 도로를 기준으로 위쪽은 신성 지역이고 아래쪽은 김나지움과 마르마리아 유적이 자리한다. 마을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신성 지역이다.
우선 입구에서 박물관도 함께 볼 수 있는 통합 티켓을 구입한 뒤 고대의 시간이 멈춰버린, 유적지 안으로 들어선다. 아폴론 신전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종교 용품과 생활 용품을 거래했던 아고라(시장), ‘블레우테리온’이라 불리던 델포이 의사당, 여러 도시 국가에서 보내온 보물을 보관해놓았던 보물창고 등 흥미로운 유적들이 부서진 채로 흩어져 있다.
옴파로스에 앉은 여 사제
아폴론 신전 앞에는 ‘대지의 배꼽(옴파로스)’이라는 돌이 있다. 이 돌 밑에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이는 그리스신화 속 제우스가 ‘델포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표시한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어느 날 제우스는 자신이 지배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지 알아보기 위해 독수리 두 마리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하늘을 날던 독수리들이 다시 만난 곳이 델포이의 파르나소스 산(Parnassos, 2457m) 정상이었다. 제우스는 아들 아폴론을 이곳에 머물게 했다. 아폴론은 파르나소스 산의 코리시안 동굴에 살던 거대한 구렁이 피톤을 죽이고 신탁소(神託所, oracle, 신이 여 사제를 통해 뜻을 나타내거나 인간의 물음에 답하는 일)를 열었다.
아폴론 신이 사는 곳이라 알려지면서 델포이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당시 델포이 신탁소는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했다. 아폴론은 신이었기 때문에 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여 사제 피티아(Pythia)를 통해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몸을 정갈하게 한 뒤 듣고 싶은 내용을 남자 사제에게 말하면 남자 사제가 피티아에게 질문을 전달했다. 피티아는 그 내용을 아폴론 신에게 전달해 답을 받아 다시 전달했다. 신탁비로 펠리노스라 불리는 세금을 받았고, 제단에 동물을 바치도록 했다. 델포이 신탁소에는 왕은 물론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철학자들도 찾아와 무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중 리디아의 크리소스 왕이 페르시아를 침공해서 진 이야기와 소크라테스가 무녀의 말을 듣고 탐구의 길을 떠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렇게 번성하던 신탁소도 서서히 쇠퇴했다. 392년, 로마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교숭배 금지령을 내리면서 델포이는 역사의 페이지를 마감했다. 문득 생각해본다. 현실에서 신이 미래를 점지해준다면 삶의 갈등이 줄어들까?
델포이 원형극장과 스타디움
아폴론 신전을 지나 보물창고를 거쳐 더 위로 오르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델포이 극장을 만난다. BC 4세기에 건설된 델포이 극장은 35단의 관람석이 있어 5000명이 동시에 음악이나 연극 등을 관람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넓은 원형 극장과 부서진 유적들 밑으로 시야가 확 트여 눈이 시원하다. 뒤로는 파르나소스 암산이 턱 버티고 있고,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밑으로는 울울창창 올리브 나무가 경사진 터를 장악한 풍경이다. 골이 깊어 마치 강이 흐르는 듯한 전경도 장관이다.
극장에서 언덕을 따라 조금 이동하면 온통 침엽수로 둘러싸인 곳에 경기장이 있다. 델포이 제전이 개최되던 경기장이다. 바위를 깎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경기장은 길이가 200m, 폭은 50m에 달한다. 델포이 제전은 아폴론이 구렁이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BC 8세기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시와 음악에 관한 행사를 중심으로 8년마다 개최되던 제전은 AD 582년부터 육상과 말타기 기술, 마차경주 등이 더해지면서 4년마다 열렸다. 델포이 제전의 흔적은 김나지움과 마르마리아 유적지로 남아 있다. 김나지움은 그리스어로 ‘운동하는 곳’이고 마르마리아는 아테나 여신의 신전과 성역이다. 델포이 신탁소를 찾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들렀던 곳으로, 부서진 아테네 신전과 BC 4세기경에 지어진 원형 건축물인 ‘톨로스’ 등의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특히 톨로스는 현재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 건축물 가운데 가장 독특한 유적으로, 그리스를 소개하는 포스터와 책자에 자주 등장한다.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
노천 유적지를 다 보고 나면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을 찾으면 된다. 1902년에 개관한 이 박물관에는 델포이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내부 전시관은 기원전으로 시대가 돌아가 있다. 1896년에 발굴된 청동상과 작은 도상들, 아르카이크 시대에서 로마 시대까지 시대별로 그리스의 발전사를 볼 수 있다. 눈여겨볼 것으로는 아르카이크 시대에 만들어진 은판으로 된 황금머리 황소, 낙소스 인의 작품인 스핑크스, 대지의 배꼽이라는 옴파로스, 전차를 모는 청동 마부상,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 무희의 기둥 등이다. 또 마을 안쪽 끝으로 올라가면 앙겔로스 시켈리아노스(1884~1951)와 에바 팔머(1874~1952)의 축제 박물관이 있다. 이들은 1927년, 델포이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 공연을 기획했다. 세계 각국의 유명한 극단이 모여 벌인 연극 축제였다. 현재도 7~8월의 휴가철이 되면 음악과 고대 드라마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Travel Data
항공편 그리스 직항편은 없다. 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이스탄불, 두바이 등을 경유해 아테네로 가면 된다.
현지 교통 아테네 리오시온(Liossion) 버스터미널에서 델포이로 가는 버스가 1일 2~3회 운행된다.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맛집 정보 고급 식당보다는 일반 식당인 타베르나(Taverna)가 인기다. 카페에서도 피자는 물론 전통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숙박 정보 대부분의 숙소는 가정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조식이 제공된다. 카스탈리아 부티크 호텔, 레토 호텔, 이니오호스 호텔이 상위 순위에 있다. 대부분 4~5만 원 정도면 이용 가능하다.
날씨 정보 그리스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지닌 나라다. 6월부터 여름이 시작된다. 평균기온은 25℃ 이상. 7월은 30℃를 웃돈다. 델포이는 첩첩산중이지만 부서진 유적지는 나무가 없는 노천이라서 뜨겁다. 여름옷은 물론 파라솔, 모자는 필수다. 고온이긴 해도 습도가 낮아 불쾌지수는 거의 없는 편.
물가와 화폐 정보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다. 유로 사용.
인터넷 정보 대부분의 식당이나 숙소에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시니어 여행 포인트 델포이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번잡스럽게 움직일 필요 없이 천천히 즐기면 된다.
아이, 어른 누구나 읽어도 흥미로운 그리스 로마 신화.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더불어 그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까지 담아낸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 필립 마티작 저
자료 제공 뮤진트리
신화가 영향을 준 예술 작품들
흔히 그리스 로마 신화 도서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대부분. 반면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가 오늘날 문화 속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대해 다양한 예술 작품과 더불어 정리한 것이 특징이다. ‘후대 예술과 문명에 비친 OOO’이라는 콘셉트로 신화 속 인물이나 사건이 후대 예술 작품에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지 설명한다. 예를 들어 ‘후대의 예술과 문명에 비친 아프로디테의 탄생’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후대의 예술과 문명에 비친 레다’에서는 다빈치의 ‘레다’ 등에 대해 그림과 함께 이야기한다.
프로필로 보는 신화 속 인물들
신화 속 인물을 각각 상세하게 설명하기에 앞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프로필을 보여준다. 신이나 영웅들은 가족이나 연인 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는데 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부모, 배우자, 연인, 자녀를 비롯해 인물의 특징과 능력, 상징(물), 소재지 등을 정리했다. 특히, 트로이 전쟁에 관여한 인물들을 서열에 따라 보여준 점이 흥미롭다. 크게 그리스인과 트로이인으로 나누고 신, 왕, 영웅, 여인으로 분류해 서열 순서대로 인물들을 설명한다. 트로이 출신이지만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던 제우스를 비롯해 포세이돈, 아테나, 아프로디테 등 30명을 언급했다.
펜화와 명화를 함께 보는 재미
글로만 읽는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에 90여 장에 이르는 삽화와 관련 명화, 조각 이미지 등을 넣어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책에 실린 모든 펜화는 19세기에 제작된 작품들이라 한다. 펜화를 포함한 모든 이미지는 흑백으로 실려 있지만, 신화 특유의 클래식한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책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
#plus1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망각의 여신 레테. 그녀의 강한 이미지는 현대 시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책에는 ‘레테 칵테일’ 레시피가 나오는데 그 과정이 독특하다.
#plus2
책에서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인물 소개를 읽고 난 뒤 영화 ‘트로이’(2004)를 본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물론 반대로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도 유익하겠다. 이 영화의 미술감독인 나이젤 펠프스는 작품 배경의 철저한 고증을 위해 제작 전부터 각종 서적과 사료를 탐독했다고 한다. BC 1200년경 미케네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조합한 배경과 당대 예술의 아름다움, 서사적 장대함을 동시에 표현해냈다. 특히 4만 496㎡의 트로이 성과 실제 건물 4층 높이로 제작된 약 12m의 트로이 목마의 웅대한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plus3
벨기에 플랑드르의 화가이며 바로크 시대 미술의 권위자로 불린 페테르 루벤스(Peter Rubens, 1577~1640). 강렬한 색감과 관능미를 추구했던 그는 신화를 바탕으로 한 초상화, 역사화, 풍경화 등을 그렸다. ‘아레스로부터 에이레네를 보호하는 아테나’, ‘에우로페의 납치’, ‘메두사의 머리’, ‘바쿠스’, ‘비너스와 큐피드’ 등이 대표작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가 보면 안다. 많은 한국인이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 머물고 있는 이유를 말이다. 매력이 넘치는 바르셀로나는 영화 로케이션 장소로도 큰 인기다. ‘내 남자의 여자도 좋아’, ‘비우티풀’,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등은 모두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다. 또 몬주익 언덕에는 마라톤 선수 황영조 기념탑이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우승을 안겨줬던 도시. 낯선 나라에서 한글을 보면 가슴이 짜르르해지고 눈시울이 젖는다.
100년 넘게 공사 중인 대성당
스페인 북동부의 카탈루냐 자치주의 주도인 바르셀로나는 17세기에 건설된 항구도시다. 바르셀로나는 최근 카탈루냐가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시도하고 있어 국제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은 관광도시로 유명한데 특히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의 건축물은 탁월한 명소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는 건축 문외한의 눈길도 저절로 이끈다. 특히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뜻은 ‘성 가족’이라는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 마리아, 요셉을 뜻한다.
이 성당의 원 설계자는 가우디의 스승인 비야르. 성 요셉 축일(1882년 3월 19일)에 착공을 했으나 건축 의뢰인과 의견 충돌로 중도 하차했고 이듬해부터 가우디(당시 31세)가 맡게 된다. 가우디는 1926년까지, 총 12년간을 오로지 이 성당에만 매달린다. 그러나 성당을 완공도 하기 전, 그는 전차에 치여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다. 그가 사망할 당시 이 성당은 ‘예수 탄생’ 파사드, 종탑 한 개, 네 개의 탑, 지하 납골당만 완성된 상태였다. 그날 이후 공사는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가우디 사후 100년(2026년)이 되는 해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성당은 천천히 자라나지만, 오랫동안 살아남을 운명을 지녔다”는 생전 가우디의 말이 이뤄질 것 같다. 입장료가 비싸지만 매표소는 늘 장사진을 친다. 매표 요금은 완공을 위한 기부금 형태로 쓰인다.
바르셀로나를 빛내는 건축가 가우디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400여 개의 회오리계단을 따라 내려오면서 구경하면 된다. 가우디의 유해는 지하 박물관에 있다. 1869년(17세), 가우디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형이 이미 가 있는 바르셀로나로 터전을 옮겨 건축학교에 입학한다. 고향과는 달리 큰 도회지인 바르셀로나에서 처음은 적응이 어려웠지만 그 시절, 많은 자극과 동기를 받는다. 1874년(22세),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건축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의 특이한 창조성은 호평보다는 혹평을 많이 받는다. 그는 늘 말이 없고 허름한 차림새에 이상한 실험들을 일삼았기에 평생 괴짜라는 꼬리표를 안고 살아야 했다. ‘귀족적이면서 천박한, 댄디(dandy)이자 방랑자, 박식하지만 오락가락하는, 기지가 넘치지만 재미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가 있었다. 그는 가우디를 천재라고 칭찬했다. 사후 30년 뒤인, 1960년대부터 그는 인정받기 시작했고 바르셀로나를 영원히 빛내고 있다.
카사 밀라에서 구엘 공원까지
바르셀로나에는 성 가족성당 말고도 가우디의 모더니즘 건축의 최고로 꼽히는 카사 밀라가 있다. 산을 주제로 디자인하고 석회암과 철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독특한 건축물로 파도가 치는 것 같은 곡선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또 바다를 주제로 디자인한 카사 바트요(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는 도자기 타일과 유리 모자이크가 아름답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구엘 공원(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다. 가우디와 구엘 백작의 합작품.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은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만들 목적으로 바르셀로나의 펠라다 지역 땅을 매입한다. 구엘은 가우디에게 영국의 전원도시를 모델로 해서 그리스의 팔라소스 산과 같은 신전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공원 부지가 돌이 많은 데다 경사진 비탈이어서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가우디는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해 땅 고르는 것도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이 단지를 위해 무려 14년(1900~1914)이나 매진했지만 결국 자금난 등으로 미완성으로 끝났다.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는 구엘 백작 소유의 이 땅을 사들여 이듬해 시영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자연 친화적 건축물, 구엘 공원
구엘 공원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독특한 공원 중 하나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사람은 꼭 방문해봐야 하는 곳으로 손꼽힌다. 멀리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바지에 구엘 공원이 있다. 초콜릿을 닮은 듯한 돌기둥, 과자의 집처럼 생긴 건물, 반쯤 기울어져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인공 석굴, 계단 위에 타일로 만들어진 도롱뇽, 기념품 파는 건물 등 가우디만의 색깔이 분명한 건축물이 오롯이 모여 있다. 또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구엘 백작의 요청으로 만든 도리아식 기둥도 눈길을 끈다. 녹색 식물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들어앉은 독창적인 건축물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채 만들어졌고 사방팔방으로 시내가 조망되어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까지 가세하면 두말할 필요 없이 행복한 공간이다. 단 과거 가우디가 살았던 집은 박물관으로 공개해 유료다. 가우디가 사용했던 침대, 책상 등 유품과 데드 마스크가 전시되어 있다.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가구들이 감상 포인트다.
Travel Data
찾아가는 방법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직항이 운행된다. 소요시간은 13~14시간.
현지 교통 바르셀로나는 규모가 커서 대중교통을 필히 이용해야 한다. 지하철이 제일 편리하다. 도심이 복잡하므로 1일권을 사서 무제한으로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음식정보 보케리아 시장에서는 해산물을 구입해 즉석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 때는 근처의 레스토랑을 이용하자. 흥정으로 절반짜리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숙박정보 바르셀로나는 관광도시라 물가가 비싼 편이다. 고급 호텔 가격은 1박당 50만 원 이상. 아파트, 한인 민박, 호스텔 등을 이용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아파트 숙박은 1박당 10만 원 정도.
화폐 유로화 통용.
날씨 바르셀로나의 4월 평균 최저기온은 8.5℃, 평균 최고기온은 17.6℃로 서울의 4월 중순 기온과 비슷하다. 예측 없이 비가 내릴 수 있으니 비옷과 우산은 꼭 챙겨서 외출하자.
시니어 여행 포인트 바르셀로나는 서둘러 여행하는 곳이 아니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둘러봐야 할 도시다. 몬주익 언덕은 꼭 올라가 봐야 한다. 도시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경기장 근처로 내려오면 차도 옆으로 황영조 동상이 있다. 차도를 따라 내려가면 미로 미술관을 만난다. 바르셀로나를 기점으로 근처 소도시 여행은 꼭 해야 한다. 몬세라트 성지와 타라고나를 적극 권한다. 누드 비치에 관심이 있다면 바르셀로나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시체스(Sitges) 해변을 찾으면 된다.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서 올해 말까지 영국 테이트미술관 소장품인 누드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다녀왔다. 누드 전시회라 하니 조각같이 아름답고 풍만한 여인의 몸이 상상됐다. 즐거운 기대를 하며 삼총사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했다. 일교차가 심해 아침저녁으론 서늘하지만 한낮에는 아직 햇볕이 강렬했다.
테이트 명작전 ‘누드’는 영국을 대표하는 국립미술관인 테이트 미술관 소장품 중, 18세기 후반부터 현대까지 인간의 몸(누드)을 주제로 한 거장들의 회화, 조각, 드로잉, 사진 등 120여 점을 엄선해서 보여주는 전시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카소와 마티스, 르누아르, 드가 등 유명 거장들을 비롯해 초현실주의 및 현대미술 대표 작가인 만 레이, 막스 에른스트, 프랜시스 베이컨, 루시안 프로이드, 루이스 부르주아, 데이비드 호크니 등 영국이 자랑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특히 한 번도 유럽 대륙을 떠나 전시한 적이 없었다는 오귀스트 로댕의 대표작 ‘키스’는 대리석 원본 조각작품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전시되었다는데 무게가 3톤이나 되어 1층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우리 삼총사는 입구부터 찬찬히 감상하기 시작했다. 작품 중엔 너무 사실적인 모습들도 있어 눈 두기가 부끄러운 그림도 있었지만 대부분 아름답고 탄탄한 몸을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같이 간 친구들은 풍만한 여성의 누드를 보며 동질성이 느껴진다며 웃기도 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모두 탄력적인 몸의 곡선을 자랑했으며 한 번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중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작품을 모범으로 한 고전주의 작품 ‘프시케의 목욕’이 특히 필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자연미를 강조한 작품도 있었으며 물질주의와 합리주의에 대항하는 인간 내면의 세계, 상상력과 감각의 세계를 탐구한 신화와 전설, 불안과 공포, 꿈과 무의식 같은 주제를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상징주의의 작품인 ‘이카루스를 위한 애도’는 한동안 필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탄력적인 근육을 가진 아름다운 청년이 활짝 펼쳐진 날개 위에 누워 있고 천사인 듯한 아가씨들이 슬픈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다. 날개를 달고 태양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듣지 않은 채 하늘로 높이 비상하는 이카루스를 떠올려봤다. 그리고 태양의 뜨거운 열에 밀랍이 녹아 추락하는 이카루스의 모습도 상상해봤다. 작가가 날고 싶은 인간의 욕구를 꿈과 욕심, 떠오름과 추락이라는 매혹적인 소재로 만들어 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사실주의, 표현주의의 작품이 나뉘어 우리 삼총사의 발걸음을 끌어당겼다. 뱀의 유혹에 빠져 아담에게 사과를 권하는 이브를 그린 작품 ‘유혹’도 멋졌다. 이 작품의 한쪽 편에는 이브의 자리를 남겨두고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자리에 서면 누구든 아담을 유혹하는 이브가 된다. 매우 재미있는 팬서비스였다. 필자도 엉거주춤 앉아 아담을 유혹하는 이브가 되어봤다. 12월까지 전시하며 흥미로운 작품이 많으니 우리 시니어들도 햇볕 좋은 날 좋은 친구와 함께 아름다운 누드를 감상하러 가보시라 권하고 싶다.
‘에게 해의 진주’와 ‘바람의 섬’이라는 별명을 지닌 미코노스는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손꼽힌다. 영화 등 촬영지로도 인기를 누리는 섬. 특히 동양인에게 많이 알려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 섬에 머물며 소설 를 쓰기 시작했고 에세이 에는 이곳의 ‘한 달 반’ 생활이 낱낱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섬은 예술가나 특정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화로운 곳은 절대 아니다.
이신화 여행작가 ('On the Camino' 저자, www.sinhwada.com)
아폴론의 손자 미콘스의 이름을 딴 섬
그리스는 섬들의 나라다. 6000개가 넘는 섬 중에서 유인도는 227개. 에게 해의 섬들 중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 미코노스다. 미코노스 선착장에서 ‘워터 택시’를 타면 코라(구항구)에 금세 다다른다. 이 섬의 첫 느낌은 ‘눈부신 흰색’이다. 그리스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미코노스는 그리스령 키클라데스 제도 가운데 하나다. 북서쪽에 티노스 섬, 남쪽에 낙소스 섬과 파로스 섬이 있고, 델로스 섬과는 2㎞ 떨어져 있다. 면적은 86㎢로 작으며 최대 고도는 364m로 산토리니 섬의 깎아지른 듯한 벼랑과는 달리 평지다. 지질은 주로 울퉁불퉁한 화강암이고 신선한 자연수가 적어 염분을 제거한 해수도 이용한다.
미코노스에 사람이 정착한 것은 BC 11세기경으로 이오니아인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프텔리아 해변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의 카레스(Kares)족의 유물은 BC 3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코노스 섬 이름은 그리스신화에서 유래됐다. 제우스를 우두머리로 하는 올림포스 신들과 거인족 기간테스가 신들의 지배자 자리를 놓고 10년간이나 필사적인 전투를 벌였다. 제우스를 도운 헤라클레스가 거인족을 섬멸하기 위해 던진 바위 조각이 바로 이 섬이라고 전해진다. 이후 태양신 아폴론의 손자인 미콘스(Mykons)의 이름을 딴 섬이 됐다고 한다.
만토 광장, 좁은 골목길 걷다 만난 보니스 풍차
바닷가 옆, 마토이아니 거리에서 만토 광장으로 들어서면 만토 마브로게누스(1796~1848)의 동상이 있다. 그녀는 그리스 독립운동(1821~1832)을 위해 헌신한 애국자다. 그리스 동전(1988~2001)에도 얼굴이 새겨져 있는 그녀의 삶은 영화로도 제작됐다. 만토 광장을 비켜나면 아기자기한 부티크숍, 레스토랑, 호텔, 작은 박물관 등이 있는 좁은 골목이 나온다. 여름철, 화사한 부겐빌레아꽃이 피어나면 ‘흰 빛’의 가옥들은 차라리 눈이 부시다. 화분으로 치장한 발코니가 있는 앙증맞은 집들을 지나 언덕 위로 올라가면 보니스(Boni´s) 풍차가 보인다. 더 이상 돌지 않은 풍차이지만 미코노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자리다. 구항구에 떠 있는 큰 배와 부산하게 움직이는 작은 배들, 그리고 교회, 하얀 집들이 어우러진 섬의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미코노스가 산토리니와 다른 점은 건물 색이다. 획일화를 싫어하는 그리스인들의 성격을 보여주듯 흰색에 밤색, 청색을 덧칠했다. 보니스 풍차를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선사유적지가 있고 동쪽 끝으로는 다섯 개의 풍차(Kato Milli, Lena´s House)가 있다. 원래 16대였던 풍차는 이제 5대만 남아 미코노스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 풍차들은 육지에서 가져오는 곡식을 빻는 방앗간 역할을 했다. 현재는 바람을 거절하는, 돌지 않은 풍차이지만 농업박물관으로 개조되어 관광객에게 무료 공개되고 있다. 풍차를 등지면 에게 해가 에둘러 섬을 감싸 안고 알록달록한 ‘리틀 베니스’ 건물들이 휘어진 해안선을 만난다.
그리스 정교회가 400개를 웃도는 섬
미코노스에는 그리스 정교회의 작은 교회가 유난히 많다. 무려 400여 개나 있어 미코노스 작은 시가지에서는 엄청난 교회와 맞닥뜨린다. 가장 유명한 곳이 파라포르티아니(Paraportiani) 교회다. ‘중세 성채의 뒷문’이 있던 곳이어서 뒷문을 뜻하는 ‘파라포르티’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지인들은 ‘성모 마리아 파라포르티아니’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이 교회는 독특하게도 5개의 예배당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 지상에서 보면 한 개의 건축물(1425년)이지만 지하에 4개의 예배당이 더 있다. 지상 건물이 가장 오래됐고 지하는 16~17세기에 걸쳐 만들어졌다. 비잔틴 스타일에 미코노스 섬과 서구 교회 양식이 조합돼 오묘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키클라데스 군도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건축 양식이다. 교회 앞쪽으로는 ‘리틀 베니스’로 불리는 골목이 이어진다. 때때로 펠리컨이 친구가 되기도 한다. 특히 이 섬은 낮보다는 밤 문화가 발달된 도시로 고요함보다는 생동감이 넘친다. 활동적인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섬이다.
◇ Travel Data
항공편 한국에서 그리스까지 가는 직항 노선은 없다. 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이스탄불, 두바이 등을 경유해 아테네로 들어가야 한다. 많은 이들이 터키 여행과 함께 그리스를 선택한다. 한국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는 직항 노선이 있다. 터키 항공사를 이용하면 가격이 저렴하다. 11시간 40~50분 소요.
현지 교통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서 페리나 그리스 국내 항공을 이용하면 된다. 항공편으로는 약 35분 정도 소요. 초고속 페리는 3시간, 완행은 6시간 정도 소요된다. 파로스, 산토리니, 크레타, 테살로니키 등에서도 페리가 연결된다(배편 인터넷 예약 사이트는 hellenicseaways.gr). 주말, 연휴 때는 가격이 두 배로 오른다. 표를 직접 구하기 어려울 때 항구 주변의 여행사를 통하면 알아서 척척 저렴한 가격의 표를 만들어준다.
현지 정보 올드 타운은 걸어 다니고, 그 외 델로스 섬은 투어 상품을 이용하면 된다. 파라다이스 해변 등은 올드 타운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피크 시즌에는 숙박 가격이 매우 비싸다. 시즌을 피해서 가는 것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호텔보다는 가정집을 빌려주는 아파트를 이용하면 저렴하다. 그리스의 일반 식당으로 알려진 타베르나(taverna)가 많고 문어, 새우 등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다. 화덕에 굽는 숨은 빵집(Gioras Wood Medieval Mykonian Bakery)이나 피아노 바인 몽파르나스도 기억해두자.
기타 정보 그리스 경기가 불안하다고 대대적인 보도가 나왔지만 실제로 여행을 할 때는 체감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매우 밝고 친절하다. 통화는 ‘유로’이고 물가는 싼 편이다.
시니어 여행 포인트 미코노스를 기점으로 델로스, 시로스, 파로스, 낙소스, 산토리니 등 주변 섬 여행을 해봄직하다. 섬 여행이 지루하다면 아테네로 나와 그리스 내륙 여행을 즐기면 된다. 메테오라, 테살로니키, 델피, 칼라마타 등 그리스는 한 달 이상 머물러도 충분히 즐길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