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백 저지방 생선 쏨뱅이는 소화가 잘되고 기력 보충에 좋은 재료다. 크기가 작아 잡어 취급받지만, 남도 사람들은 ‘죽어도 삼뱅이’라 말할 정도로 맛있다고. 뼈에서 우러나는 감칠맛은 매운탕의 깊이를 더한다. 지치기 쉬운 여름, 계곡 앞 평상에서 단맛 좋은 새우전과 함께 입맛을 돋워보면 어떨까.
◇쏨뱅이매운탕(4인 기준)
재료 쏨뱅이 1마리, 무 1조각, 미나리 5줄기, 청양고추 2개, 홍고추·북어 머리 1개씩, 대파 1줄, 다시멸치 50g, 소금 1꼬집, 고춧가루·다진 마늘 1큰술씩, 물 300ml
1. 무는 한입 크기, 미나리는 4cm 길이로 자른다. 청양고추·홍고추·대파는 큼직하게 어슷썰기 한다.
2. 쏨뱅이 머리는 반으로 자르고, 몸통은 양념이 잘 배도록 3등분해 어슷썰기 한다.
3. 물에 무·다시멸치·북어 머리를 넣고 5분 정도 끓이다가 육수가 우러나면 다시멸치와 북어 머리를 꺼낸다.
4. 쏨뱅이와 고춧가루를 넣고 끓이다가 소금·다진 마늘로 간을 한다. 미나리·대파·홍고추·청양고추를 넣어 마무리.
◇새우전(4인 기준)
재료 단새우 160g, 쪽파 4줄, 부추 6줄, 청양고추 2개, 홍고추·달걀노른자 1개씩, 소금·후추·설탕 1꼬집씩, 부침가루 2큰술, 식용유 적당량
1. 식감을 살리기 위해 단새우를 적당한 크기로 다진다. 쪽파·부추·청양고추· 홍고추는 잘게 다진다.
2. 모든 재료를 잘 섞어준 뒤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먹기 좋은 크기로 부친다.
3. 간장 대신 봄에 담가둔 머위장아찌를 곁들이면 향긋함까지 즐길 수 있다.
◇쏨뱅이매운탕과 새우전에 어울리는 반찬: 오이김치와 볶은 멸치
고단백 저지방 생선 쏨뱅이는 소화가 잘되고 기력 보충에 좋은 재료다. 크기가 작아 잡어 취급받지만, 남도 사람들은 ‘죽어도 삼뱅이’라 말할 정도로 맛있다고. 뼈에서 우러나는 감칠맛은 매운탕의 깊이를 더한다. 지치기 쉬운 여름, 계곡 앞 평상에서 단맛 좋은 새우전과 함께 입맛을 돋워보면 어떨까.
쏨뱅이매운탕(4인 기준)
재료 쏨뱅이 1마리, 무 1조각, 미나리 5줄기, 청양고추 2개, 홍고추·북어 머리 1개씩, 대파 1줄, 다시멸치 50g, 소금 1꼬집, 고춧가루·다진 마늘 1큰술씩, 물 300ml
1 무는 한입 크기, 미나리는 4cm 길이로 자른다. 청양고추·홍고추·대파는 큼직하게 어슷썰기 한다.
2 쏨뱅이 머리는 반으로 자르고, 몸통은 양념이 잘 배도록 3등분해 어슷썰기 한다.
3 물에 무·다시멸치·북어 머리를 넣고 5분 정도 끓이다가 육수가 우러나면 다시멸치와 북어 머리를 꺼낸다.
4 쏨뱅이와 고춧가루를 넣고 끓이다가 소금·다진 마늘로 간을 한다. 미나리·대파·홍고추·청양고추를 넣어 마무리.
새우전(4인 기준)
재료 단새우 160g, 쪽파 4줄, 부추 6줄, 청양고추 2개, 홍고추·달걀노른자 1개씩, 소금·후추·설탕 1꼬집씩, 부침가루 2큰술, 식용유 적당량
1 식감을 살리기 위해 단새우를 적당한 크기로 다진다. 쪽파·부추·청양고추· 홍고추는 잘게 다진다.
2 모든 재료를 잘 섞어준 뒤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먹기 좋은 크기로 부친다.
3 간장 대신 봄에 담가둔 머위장아찌를 곁들이면 향긋함까지 즐길 수 있다.
쏨뱅이매운탕과 새우전에 어울리는 반찬
오이김치와 볶은 멸치
남한강이 단양 읍내를 말발굽 모양으로 에워싸고 흐른다. 그 물줄기에 단양 제1경인 도담삼봉이 자리했다. 최근 도담삼봉과 멀지 않은 강변에 만천하스카이워크와 단양강 잔도가 조성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잔잔한 남한강 물길 따라 걸으며 터줏대감 명소와 신생 명소를 두루 둘러봤다.
벼랑 위 까치발 단양강 잔도
남한강변 만학천봉 절벽 아래에 잔도(棧道)가 놓였다. 잔도란 벼랑에 선반처럼 매단 길을 말한다. 남한강 수면 위 약 20m 높이에 철기둥을 촘촘히 박고, 폭 2m 정도 되는 나무데크를 깔아 산책로를 만든 것이다. 잔도 맞은편에 위치한 단양역에서 바라보면 절벽 아래에 가늘고 긴 띠가 둘려 있는 듯하다.
단양강 잔도는 상진철교 아래에서 시작해 절벽 구간이 끝나는 만천하스카이워크 입구까지 이어진다. 길이가 1.2km 남짓 된다. 왕복으로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벼랑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잔도가 벼랑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까치발을 들고 선 것 같다.
잔도길은 편안하다. 경사가 없는 데다 낙석 위험 구간에는 지붕을 덮어 안전에 신경 썼다. 감미롭게 흐르는 클래식 음악에 콧노래로 응답하며 느긋한 산책을 즐긴다. 잔도 바닥에 설치된 구멍 난 철판을 지날 때는 심장이 쫄깃해진다. 척박한 벼랑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붉나무, 고욤나무, 물푸레나무, 부처손, 생강나무 등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낮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면 야간 산책을 즐겨도 좋다. 일몰 이후부터 밤 11시까지 잔도에 야간 조명이 켜진다.
100m 높이 하늘길 만천하스카이워크
잔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만천하스카이워크 주차장과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앞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만천하스카이워크 입구까지 올라간다. 3대의 버스가 수시로 오가므로 대기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5분 정도 달리면 만천하스카이워크 아래에 도착한다.
만천하스카이워크는 해발 80~90m의 만학천봉 위에 세워졌다. 공룡알을 비스듬히 세워놓은 듯한 모양인데, 높이가 25m나 된다. 예상보다 규모가 커서 입이 떡 벌어진다. 회전 경사로를 빙글빙글 돌면서 스카이워크와 만학천봉 전망대가 있는 곳까지 걷는다. 경사로가 완만해 힘들지 않다.
꼭대기 전망대층에 오르면 단양 읍내와 상진철교, 소백산 비로봉, 양방산, 말발굽 모양을 한 남한강 물줄기가 발아래 펼쳐진다. 전망대 둘레에는 3개의 스카이워크가 공중을 향해 뻗어 있다. 길이는 각각 다르며 폭 2m의 고강도 삼중유리로 제작됐다. 관광객들은 높이가 100여 m에 달하는 스카이워크 앞에서 “네가 먼저 가라”며 서로 등을 떠민다. 나도 호기롭게 스카이워크 위에 서보지만,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하고 오금이 저려온다. 지금 서 있는 곳이 하늘 아래인지, 강물 위인지 아득하기만 하다.
스카이워크에서 내려올 때는 다시 셔틀버스를 타거나 짚와이어(zipwire)를 이용한다. 짚와이어를 타면 몸이 로켓처럼 발사되는 것 같다. “덜컹” 소리와 함께 몸이 “쓩” 공중을 가로지른다. “악” 소리 한 번 길게 지르면 스카이워크 매표소 2층에 도착한다.
단양 제1경 도담삼봉
단양팔경 중 제1경(명승 제44호)인 도담삼봉은 남한강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다. 도담리에 있는 세 봉우리라 하여 도담삼봉이라 불린다. 고요한 수면에 세 봉우리가 데칼코마니처럼 비친 모습이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아침 안개가 피어오를 때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도담삼봉 중에 덩치가 가장 큰 바위가 장군봉이다. 장군봉 허리춤에는 삼도정이 걸터앉았다. 조선시대 개국 공신인 정도전이 이따금 삼도정에 올라 풍월을 읊었다고 한다.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지을 만큼 도담삼봉을 아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설화에 따르면,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에 있었다고 한다. 홍수 때 단양으로 떠내려와 지금의 자리에 멈췄다는 것이다. 그 뒤로 단양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매년 정선에 절경 값을 냈다. 소년 정도전이 이 사정을 듣고 강원도 관리에게 “우리가 삼봉을 떠내려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삼봉이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벼랑에 뚫린 무지개 돌문
도담삼봉 주차장 끝 절벽에는 단양 제2경(명승 제45호) 석문이 있다. 제법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고, 조붓한 숲길을 걸어야 볼 수 있다. 계단 아래에서 석문까지의 거리가 200m 정도인 게 다행이다.
석문은 남한강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구름다리 혹은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다. 오래전 석회동굴이 무너진 뒤에 동굴 천장의 일부가 남아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석문의 왼쪽 아래에 작은 동굴이 하나 있다. 옛날 하늘에 살던 마고할미가 물 길러 왔다가 이곳의 경치에 반해 평생 농사지으며 살았던 곳이라는 전설이 남아 있다.
석문 너머로 보이는 옥빛 남한강과 도담리 풍경에 눈길이 머문다. 석문이 천연 액자가 되어준 덕에 강마을이 돋보인다. 석문 전망대에 앉아 석문 밖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을 맞는다. 마고할미가 부는 입김이라 상상해본다. 잃어버린 비녀를 찾으려고 맨손으로 땅을 팠는데 그게 99마지기 논이 되었다는 마고할미의 위력이라면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국내 최대 민물고기 전시관
2013년 단양 읍내 중심에 들어선 다누리아쿠아리움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민물고기 생태관이다. 입구에 단양을 대표하는 물고기 쏘가리의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관람 후 생각이 바뀌었다. 다누리아쿠아리움은 아이들만 좋아하는 곳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가장 최근에 생긴 전시관인 만큼 평창 동강민물고기생태관, 울진 민물고기생태관, 양평 민물고기생태관보다 시설이 좋다. 세계의 바다 생물을 총집합해놓은 듯한 아쿠아플라넷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민물고기 생태관으로선 국내 최고 수준이다. 수족관 속 조형물을 도담삼봉, 석문 등 단양팔경 명소를 본떠 만든 것이 인상적이다.
전시실에 마련된 130여 개의 수족관에는 국내외 민물고기와 세계 각지에서 모은 희귀 어종이 살고 있다. 남한강의 귀족 황쏘가리, 행운을 불러온다는 중국의 최고 보호종 홍룡, 아마존 거대어 피라루크 등이 볼 만하다. 민물고기 외 양서류, 파충류, 수서곤충류, 포유류 등도 만날 수 있다.
◇주변 명소 & 맛집◇
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 1980년대 남한강변 수양개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걸친 유적지(사적 제398호)가 발굴됐다. 수양개유적지 뒤편 언덕에 전시관을 짓고, 출토된 유물을 전시했다.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인 돌날몸돌과 슴베찌르개 등은 중국, 시베리아, 일본의 석기들과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전시관 옆에는 야간 조명 포토존인 수양개빛터널이 있다. 단양군 적성면 수양개유적로 395, 09:00~22:00(월요일 휴관), 어른 2000원.
구경시장 다누리아쿠아리움과 단양시외버스터미널 인근의 구경시장이 뜨고 있다. ‘구경’은 단양팔경에 하나를 더해 9경이라는 의미다. 관광객이 몰리는 곳은 먹거리 골목. 그중에서도 단양 특산품인 마늘과 통닭을 함께 굽는 마늘통닭 골목이 가장 붐빈다. 통닭, 닭강정 박스를 들고 다니는 관광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마늘순댓국, 마늘만두, 흑마늘빵, 마늘메밀전병, 마늘석불고기 등도 인기 먹거리다. 오일장은 매월 1일과 6일에 열린다. 단양군 단양읍 도전5길 31.
마늘정식과 쏘가리매운탕 단양 마늘은 작고 단단하며 맛과 향이 독특하다. 장다리식당에서 마늘 정식을 주문하면 마늘비빔육회, 마늘수육, 마늘통튀김, 마늘만두 등 단양 마늘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진다. 민물고기 매운탕을 좋아한다면 남한강쏘가리특화거리에 들러보길 권한다. 어부명가를 비롯해 소문난 맛집들이 모여 있다. 장다리식당, 단양군 단양읍 삼봉로 370, 10:00~21:00(첫째·셋째 월요일 휴무). 어부명가, 단양군 단양읍 수변로 87, 10:00~21:00.
여수엑스포역은 관광지 철도역으로는 만점짜리 자리에 있다. 열차에서 내려 역 구내를 빠져나오자마자 엑스포 전시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 왼쪽에서는 쪽빛 바닷물이 넘실댄다. 일정이 바쁜 사람들은 열차 도착 시각에 맞춰 역 앞에 긴 줄로 늘어서 있는 택시를 바로 잡아탄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끌리듯 엑스포 전시장으로 직진한다. 높낮이 없이 평평하게 설계된 전시장 길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걸어도 걸리는 곳이 없다. 시니어들에겐 맞춤 산책길이다. 자기도 모르게 왼쪽에 있는 바다 쪽으로 접근해 걷게 된다.
조금 걷다 보면 왼편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조그만 섬 하나가 눈에 잡힌다. 소문 난 오동도다. 전시장 끝자락에서 이어지는 다리가 있으니 그 섬에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만만한 섬! 천천히 걸어도 30분가량이면 다 돌 수 있다. 이 섬이 소문난 건 동백꽃 덕분이다. 동백꽃은 한창 피어나는 겨울보다는 지기 시작하는 초봄에 장관을 이룬다. 바닥에 무리를 이뤄 떨어져 있는 빨간 꽃송이와 꽃잎들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우리 인간들에게도 질 때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라고 충고하는 듯하다! 그 교훈을 실감
나게 체득하려면 동백꽃이 떨어지는 3~4월께 오동도를 다시 찾아야 한다.
실비로 먹는 ‘시골밥상...’ 식당
오동도 구경을 마치고 나올 때쯤이면 뱃속에서 신호가 오게 마련이다. 더욱이 이곳이 맛의 고장 여수임에랴! 오동도 앞에서 돌산으로 가는 해상 케이블카 탑승장 바로 밑에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다.
8000원짜리 여수 가정식 백반을 파는 ‘뚱땡이 할머니의 밥상 시골밥상’ 집은 언제나 손님이 차고 넘쳐 끼니때는 이용이 쉽지 않다. 칠순을 넘긴 뚱땡이 할머니와 마흔도 채 안 돼 아이를 넷이나 출산한 ‘애국자’ 따님이 운영한다. 맞은편 엠블 호텔 투숙객들도 이 식당을 많이 찾는단다.
특별한 반찬은 없지만, 하나하나 간을 잘 맞춘 맛깔스러운 반찬들과 매일 바뀌는 국 종류 때문에 밥 한 그릇을 더 시키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식사를 끝낸 자리엔 종업원이 큰 통을 들고 가서 남은 ‘아까운’ 반찬들을 모두 담는다. 음식 재활용을 않는다는 걸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좁은 자리가 꽉 차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 사진도 못 찍고 문전에서 아쉬운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아쉽기는 뚱땡이 할머니와 따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문 앞에 서서 손님을 그냥 보내는 눈빛에 미안함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진남관 앞 ‘서울해장국’ 식당
그렇다고 애써 맛집을 다시 찾아야 한다면 여수가 아니지.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진남관. 그 오른쪽 앞과 길 건너편 거리에 여수의 오래된 먹자골목이 있다. 모두 다 소개하고 싶은 맛집들이다. 그중에서도 시민들이 많이 찾는 ‘서울해장국’이 있다.
아니, 맛집 고장 여수에서 엉뚱하게 옥호를 ‘서울~~’로 쓰다니! 그러나 사실 이상할 게 없다. 수십 년 전 여수가 관광지로 채 발돋움하기 전에 개업했으며 그 당시만 해도 서울은 대단한 동경의 대상이었기에. 마치 50, 60년대 서울의 빵집과 양복점 등의 이름으로 뉴욕, 파리, 런던 등을 많이 썼던 것처럼.
이 식당은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한다. 바싹 말린 우거지를 장어로 국물 맛 낸 된장국에 넣어 푹 끓여낸 우거지국, 바삭바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는 콩나물국, 두툼한 선지국은 모두 한 그릇에 6500원, 돼지고기를 아낌없이 넣은 김치찌개(8천 원) 등이 하나같이 별미다. 이 식당은 특히 밑반찬에 들이는 정성이 남다르다. 그 때 그 때 구워주는 생김을 찍어 먹게 집간장과 양념간장을 함께 내주고 갓 만들어 내오는 숙주나물, 고추멸치볶음, 계란부침 등도 모두 싱싱하고 맛깔스럽다.
주인 할머니와 따님이 조그만 식당을 무려 종업원 10명가량을 쓰며 운영한다. 김 굽는 직원, 식재료 다듬는 직원, 우거짓국 끓이는 직원, 김치찌개 끓이는 직원 등이 제각각이다. 맛집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불친절은 찾아볼 수 없고 직원들이 손님상을 수시로 체크하며 모자란 반찬은 알아서 채워주는 친절함까지 보인다. 손님들이 저마다 이 식당 칭찬하기에 바쁘다. 팔순이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선짓국을 들고 계신다. 궁금해서 말을 붙여보았다. “40년 단골이지. 맛도 맛이지만 정성이 들어간 건강식이고 배고프던 시절 추억을 떠올려 더 좋지.” 여러모로 완벽한 맛집인 셈이다.
그 밖에도 복춘식당, 조롱박 등 여수의 별미를 즐길 수 있는 맛집들이 이 일대에 많다. 서대회, 아귀찜, 아귀탕, 생선 내장탕, 돌게장, 삼치회 등이 주메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일대의 많은 아귀찜 식당과는 비교도 안 되게 풍부한 아귀를 넣은 아귀탕이 1만 원. 둘이서 다 먹기 부담스러운 양의 아귀찜도 2만 원 미만이다. 마산 일대가 주산지로 알려진 아귀는 여수에서 더 풍족하게 요리된다. 여수 앞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삼치의 선어회는 여수의 특징적인 음식 중 하나다. 처음 접하면 물컹한 식감에 다소 거부감을 느끼지만 익숙해지면 삼치회만 찾을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구이로 먹는 삼치 머리는 클수록 맛이 좋다.
진남관. 이순신광장. 장군섬
식사를 마치고 여수의 상징인 진남관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는 이순신 광장을 ‘참배’ 할 차례다. 여수를 하루만 둘러봐도 곳곳에 있는 이순신의 흔적을 발견하곤 새삼 놀라게 된다. 심지어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거처했던 곳까지 여수에 있고, 거북선을 건조하고 수리하던 ‘선소’도 세 곳이나 있다. 어머니 처소는 보존작업이 마쳐져 관광객들의 발길이 띄엄띄엄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는 그 앞에 새로 이순신 공원 조성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심지어 실재하지 않은 소설 속 인물까지 끄집어내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데 ‘점잖은’ 여수 시민들은 ‘이순신 자원’을 그리 요란하게 활용하지 않는다. 기자도 여수를 몇 번 찾기 전까지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전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해 곳곳에 이렇게 많은 흔적을 남긴 줄은 알지 못했다.
이순신 장군은 사후에도 여수민들을 여러모로 ‘살려주고 있는’ 중이다. 거북선 빵집, 이순신 햄버거 등 여수 상가의 옥호 중 이순신과 거북선이 가장 많이 활용된다. 여수민들의 충무공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 역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생전에도 사후에도 나라와 국민을 위한 충정이 한없는 불멸의 영웅은 여수에서 그 숨결이 가장 생생하게 느껴진다.
진남관은 2020년 봄까지 보수 일정이 잡혀있어 내부 관람이 금지돼 있다. 광장의 장군 동상 앞에 실물 크기로 지어졌다는 거북선도 기자 일행이 찾았을 때는 수리 중이어서 입장을 할 수 없었다. 관람객이 너무 많아 수시로 보수를 해야 한단다.
진남관 입구와 장군 동상 너머 장군섬에 이르는 곳까지 장군의 위세가 당당하게 뻗쳐져 있는 일대를 보는 것만으로 성웅 충무공에 대한 참배를 대신해야 했다. 참고로 해방 즈음까지는 장군 동상 앞에까지 바닷물이 들어차 있었단다.
종포공원 거쳐 오동도 가는 길
이순신 광장에서 오동도 방향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자산공원이 있는 방향으로 나지막한 언덕길을 거쳐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몇 해 전부터 여수의 포장마차 촌으로 유명해진 종포공원을 거쳐 바다를 끼고 가는 길이다. 우선 종포공원부터 걸어보기로 한다.
이 일대는 여수의 오래된 바닷가 놀이터 중 하나다. 지금은 공원으로 명칭이 붙여져 있지만, 낚시꾼이 모여들고 고기잡이배가 들락날락하던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바로 옆에 새벽마다 경매가 열리고 종일 생선 판매가 이뤄지는 선어 시장이 있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낚시꾼들도 간간이 모습을 보인다.
몇 년 동안 성시를 이루던 포장마차 촌은 인근 하멜기념관 옆으로 옮겨졌다. 정비 차원이었던 모양인데 아직은 포장마차 촌의 모습으로 보기엔 익숙하지 않다. 행정력도 자연스러움에 초점이 맞춰져야 바람직한데...
종포 공원 일대에 펜션 서너 곳이 있고 펜션 부근에 맛집이 꽤 늘어서 있다. 포장마차와는 구분되는 식당들이다. 여수 특산물 중의 하나인 돌문어 식당이 많다. 돌문어삼합, 돌문어라면 등등. 진화한 여수 음식 종류 중 하나는 해산물을 활용한 라면 요리다. 이 돌문어 식당엔 점심때부터 줄이 늘어서 있다. 젊은 층이 많다. 돌문어라면 뿐만 아니라 해물라면, 돌문어삼합 등 새로운 메뉴가 계속 개발되고 있다. 돌문어라면 1만 원, 네 사람이 먹어도 남을 정도의 푸짐한 돌문어삼합은 3만9000원.
기자도 몇 년 전 여수에 와서 라면 요리를 ‘개발’했었다. ‘꼴뚜기 라면’. 시장 아지매한테 1만 원만 주면 한 접시 가득 주는 꼬록(여수에선 꼴뚜기를 꼬록이라고 부른다)을 특별한 레시피 없이 라면과 함께 끓여주면 색다른 국물 맛을 내는 아주 맛깔스러운 라면이 완성된다. 강추!!!
몰포 나비와 나비 반도 여수
자산공원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공원이다.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걸어 올라가기에 좀 힘이 들기 때문이다. 관광버스들도 코스로 잘 잡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 체력으로도 천천히 걸어 올라갈 만 하다. 아침저녁으로 산이 아름다운 자색으로 물든다 하여 자산으로 이름 붙여진 그 산속 공원엔 여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또 생뚱맞은 이름의 전시관이 하나 있다.
곤충체험관인데 이름하여 ‘빠삐용(나비) 전시관’이란다. 여수에 빠삐용 전시관이라니.. 입구에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미국 배우 ‘스티브 맥퀸’의 사진이 걸려 있다. 여수에 빠삐용? 생각해보고 거듭 생각해 봐도 생뚱맞다!
전시관에 들어가 설명을 들어봤다. 여수시의 전직 공무원 한 분이 현직에 있을 때부터 집념으로 나비를 채집해 개인적으로 만든 전시관이다. 시에 기증해 지금은 시가 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나비 표본 중에서 대표적인 전시물이 저 멀리 중남미 원산의 몰포나비. 푸른 금속성 광택이 나는 아름다운 몰포나비와 그 나비 모양을 빼닮은 여수반도 그림이 나란히 전시돼있다.
아하! 그제야 조금 몰포나비 채집자의 의도가 이해될 듯했다. 그는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폈음 직하다.
“지구 저편에서 몰포나비가 너울너울 날아와 한반도 끝자락에 앉았다. 여수반도다!”
여수의 강남이라는 웅천에서
여수에서는 걷다가 가끔 시내버스도 타볼 만하다. 2층 관광버스도 좋지만 무작정 시내버스를 타고 한가롭게 시내를 돌다 보면 대충 여수 시내의 윤곽이 들어와 다음날 일정에 참고하기에도 좋다.
물어물어 버스 몇 번 갈아타고 여수의 강남이라는 웅천지역으로 갔다. 고급 아파트촌이 있고 인공 해변이 조성돼있으며 입구 상가엔 여수답지 않게 주차난이 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서울 사람들에겐 식상한 풍경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구원은 ‘예울마루’다. 전시회와 음악회를 수시로 여는 이 건물은 여수 산단에서 매출을 많이 올리는 어느 대기업이 외국인 건축가에 설계를 맡겨 지어서 시에 기부한 것이다. 건물 외벽 없이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 건축물 문외한이 보기에도 시원하다. 건물 바깥쪽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있는 것도 특이한 모습이다.
예울마루 관람을 마치고 15분가량 옆의 산길을 돌아 걸어가면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짓고 수리했다는 선소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의 또 다른 작품 ‘선소’
이 선소는 여수반도를 에워싼 바다의 ‘골목길’ 맨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적군에게 노출되지 않는 장소를 고른 것이다. 실제로 가까운 웅천 쪽에서도 선소는 보이지 않고 웅천의 바다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촌에서도 이곳이 보이지 않는다. 입지 선택이 탁월했던 셈이다. 그러니 여유롭게 안정적으로 거북선을 짓고 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북선과 수전의 각종 전략 외에도 이순신 장군의 지모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순신 장군은 영국의 넬슨 제독과 함께 세계 해전사에서 최고의 명장으로 기록된다. 러일전쟁을 일본의 승리로 이끈 일본의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 장군에게 존경을 표한 것도 거북선 뿐만 아니라 해전 전술, 주민 친화력, 그리고 선소 운영 능력 등을 보았기 때문이다. 충무공께 새삼스러운 존경의 묵례를 보내고 이번엔 선소 길 건너의 그 유명한 보리굴비 식당으로.
명사들이 찾는 여수의 보리굴비 식당 ‘석정’
굴비 하면 영광 굴비, 법성포 굴비다. 그런데 여수에 명사들도 즐겨 찾는 보리굴비 전문식당이 하나 있다. 옛 여천 지역, 여수 시청 부근에 있는 석정 식당이다.
이 식당도 덕장은 법성포에 두고 있다. 법성포에서 굴비를 말려 여수로 가져와 조리한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굴비 정식엔 굴비와 함께 해물 보쌈김치, 여수산 각종 나물 등 17가지의 반찬을 내놓고 직원이 각 테이블을 돌면서 먹기 좋은 크기로 굴비를 찢어 준다. 기름기 잘잘 흐르는 보리굴비 속살, 군침이 돈다. 보리굴비 정식 2만 원. 여수엑스포 준비위원장을 지낸 전 건설교통부 장관 강동석 씨, 지금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윤정희, 백건우 씨 부부 등 명사들이 오래된 단골이란다.
여수에서 11월에 열렸던 세계한상대회 때의 에피소드 한 토막. 대회기간 중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온 참가자들이 각자 이 식당을 찾았다가 우연히 만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단다. 각국 한인들에게까지 이 식당 소문이 났다는 식당 측의 자화자찬이다.
식당 판매보다는 전국에 보내는 택배 영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선물 포장된 다섯 마리에 택배비 포함하여 6만5,000원, 10마리 세트는 12만5,000원.
구여수와 신여수
여수시청이 있는 구 여천지역과 구 여수를 잇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내륙 쪽 버스들이 다니는 길과 바닷가로 이어지는 길이다. 웅천지역을 지나 구 여수로 가는 길목 왼쪽에 한국화약 소유 대지가, 있으며 그 건너편엔 여수반도에서 가장 탁 트인 넓은 바다가 있다. 트레킹 코스로 개발하든지 아니면 대단위 리조트로 개발할 만한데, 웬일인지 방치되고 있다. 띄엄띄엄 바닷가 길을 둘러 가면 구 여수의 전통 항인 국동항이 나온다. 옛 여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국동항엔 항상 낚싯배들이 수백 척 정박해있고 경매장에선 새벽마다 활발하게 경매가 이뤄진다. 바로 앞 경도엔 미래에셋이 경도 리조트 재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경도는 골프장과 함께 여름 한 철 먹거리인 하모(갯장어의 일본말)의 주산지이다. 경도와 고흥 일대의 하모를 최고의 갯장어로 꼽는다. 경도 안엔 하모를 회와 샤부샤부(일본말. 유비끼라고도 함)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있다. 혹자는 일본사람들처럼 갯장어에 기름이 끼는 7월 이후엔 맛이 별로라고도 하고 혹자는 그때의 하모 맛이 일품이라고도 한다. 정답은 없고 각자 취향에 따르면 될 일이다.
자매식당 등 국동항의 맛집들
그러나 여름철이건 겨울철이건 바닷장어 요리를 꾸준히 하는 식당들이 여수에 많다. 특히 국동항 주변엔 갯장어를 통째로 끓여 내놓는 통장어탕 식당이 몇 곳 있다. 그중에서 여수 시민들 사이에서도 소문 난 자매식당을 찾았다.
장어를 잘라서 국 끓이는 게 아니라 통째로 넣어 끓인 후 손님상에 내와서 종업원이 국자로 장어를 으깨서 먹기 좋은 크기로 나눠준다. 된장 국물에 우거지를 넣어 장어 맛과 함께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일반적으로는 토막 낸 장어를 숙주나물을 넣어 함께 끓여 내놓는다. 통장어탕 14000원, 장어 소금구이 2만 원을 받는다.
여수에 가장 많은 식당이 장어탕 식당과 돌게 간장게장 식당이다. 장어탕 식당은 수산시장 안, 시청 주변, 시내 곳곳에 있다. 그중 자매식당이 가장 생명력이 있다는 여수 지인들의 전언이다. 이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내놓는 멍게 젓갈이 또 일품이다. 자꾸 더 달라는 손님이 늘어나 포장 판매를 시작했단다. 한 통(3kg)에 3만 5000 원, 택배비 4000원이란다.
여수의 수산시장
여수에는 수산시장이 몇 곳 있다. 수산시장, 특화시장, 교동시장, 선어시장. 그중 수산시장이 중앙시장 격이다. 몇 년 전에 이 시장에 큰불이 나서 시장이 완전히 전소했었다. 주변의 지원과 상인들의 복구 노력에 힘입어 업그레이드된 새 시장 모습으로 태어났다.
시장 내 수십 곳 되는 활어 판매대에서 펄펄 뛰는 생선을 잡는 활발한 모습은 장관이다. 생선 잡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매우 좋다는 어느 보고서에 전폭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물새횟집 아지매. 수십 년간 온 가족이 이 업에 종사해왔단다. 종포공원 옆에 자그마한 건물도 소유하고 있다. 재빠르고 시원시원하게 생선을 잡고, 손님과 흥정도 시원시원하게 하며, 횟감은 그야말로 맛깔스럽게 썰어낸다. 전문가가 따로 없다. 일본 시장 상인들과 일 합을 겨루게 해봤으면 좋겠다. 여기서 회를 떠 가져갈 수도 있으나,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2층 식당으로 올라가 상차림 값으로 한 사람당 4,000원과 매운탕값 5,000원을 주고 식사를 한다. 서울의 가락시장, 노량진 시장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실비다. 생선 산지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세 명이 싱싱한 돔, 갑오징어, 농어, 삼치 등 각종 회를 남길 정도로 푸짐하게 먹고도 6만 원 미만을 냈다.
시내의 실비식당 ‘와사비’
게장 골목 소개는 생략한다. 여수의 전통적인 먹거리 중의 하나인 간장게장 식당들은 이제 시설과 메뉴에서 한 등급 더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신 시내의 횟집 한 군데를 더 소개하고 여수의 맛집 소개를 마친다. 여서동 네거리 근처의 ‘와사비’식당. 옥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름 때문에 최근 곤욕을 치렀단다. 얼마 전부터 보는 시선들이 좀 누그러지더란다.
옥호를 ‘고추냉이’로 바꿀 생각은? 이제 겨우 정착단계인데요... 이 식당은 문 연 지가 몇 해 되지 않았다. 6년 전께 문을 열자마자 여수에서 오래된 횟집들을 제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유는 초간단. 남자 사장이 새벽에 바다에 나가 직접 생선을 잡아 오고 여수 주변에서 구하기 어려운 건 통영 등지로 달려가 구해와서 오후부터 바쁘게 회를 만든다. 혼자서 몇 사람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게 몇 년을 일해 얼굴이 수척해졌을 정도다. 부인은 서비스 메뉴를 개발하고 상차림을 연구하는 한편 수시로 주방에 들어가 남편과 주방 보조 여인을 돕기도 한다. 이들의 노력은 상차림과 회접시에 그대로 반영된다. 이 식당도 갈치회, 삼치회가 일품이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회 한 접시에 4만 원에서 6만 원이면 세 사람이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맛집 몇 곳을 소개했지만, 여수의 장점은 어느 식당에 가든 다른 지방에 비해 만족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식당마다 자부심이 대단하고 음식에 들이는 정성이 손님들 눈에도 보일 정도다. 전통인지, 요즘의 트렌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특히 엑스포 이후 시설과 함께 식당들의 자세가 확 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먹방과 인터넷에서 칭찬은 많이 받고 악평은 덜 받는 곳, 여수가 됐다.
오동도 입구의 일출
여수에서 일출을 보는 장소로는 돌산섬 일대를 많이 꼽는다. 그중에서도 섬 끄트머리의 향일암(向日庵)은 일출로 유명해진 곳이다. 정동진과 함께 일출 사진이 워낙 많이 나돌아다녀 우리는 다른 곳에서 일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여수 현지의 정보로는 요즘 오동도 입구의 일출이 장관이란다.
새벽에 일어나 이틀을 기다렸다. 해는 우리의 애를 태우면서, 햇살만 내려보내 고기잡이배들을 비춰줄 뿐이었다. 붉게 솟아오르는 태양 대신에 빛줄기만 담았다. 일정상 일출 장면 촬영을 포기하고 서울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철수하면서 여수 지인에게 일출 촬영을 간곡히 당부했다. 간곡히 간곡히 거듭 부탁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일출 사진이 메일로 왔다.
쌩큐 오 선생!
쌩큐 여수!
트레킹과 맛집 순례가 대세다, 방송과 각종 매체들이 국내는 물론 산티아고 순례길 등 해외 코스까지 샅샅이 소개하고 있다. 과장되고 억지스런 스토리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경쟁적으로 취재에 나섰으니 뭔가 성과를 보여줘야겠고, 그러다 보니 무리한 소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시니어 세대를 위한 길과 맛 소개는 소홀하다. 시청률이나 구매력 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동년기자들을 통해 편하게 걸으면서 그 지역의 특별한 맛도 즐길 수 있는 ‘Road & Food’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탐라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오 솔레 미오’
제주의 풍광은 역시 항상 ‘정답’이다. 더욱이 지금은 가을철임에랴.
먹거리 취재만 아니라면 오늘은 햇빛을 받으며 해안길 따라 하염없이 걷고 싶다. ‘오 솔레 미오(O Sole Mio)’라도 멋들어지게 부르면서. 그러나 우선 먹거리 취재부터 해야 한다. 하긴 걸으려면 뱃속을 채우는 게 우선이기도 하겠다.
먹방 프로그램에 많이 소개됐다는 우진해장국(제주시 서사로 11)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진기자가 9시에 식당에 가서 대기번호표를 받았다. 대기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1만9000원의 고사리해장국이 별미다. 그러나 소중한 아침 시간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각자가 선택할 사항이겠다.
모슬포에 사는 친지의 권유로 사계리 해안을 돌기로 했다. 그의 제안에 따라 오늘은 숙소가 있는 곳에 차를 놔두고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를 타고 아주 멀리까지 갔다(꽤 빙빙 돈다). 같은 제주 섬인데도 북쪽 제주시 해안과 느낌이 확연히 다른 남서쪽 해안의 풍광이 보인다. 제주에 올 때마다 이런 느낌이 계속 드는 건 아마도 도시화 진척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교통량도, 바닷가 풍경도 차이가 난다. 실제로 가파도 선착장 근처에서는 몇 명의 해녀가 바닷속으로 들어가 소라, 전복 등을 캐고 있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자연산!
“이거 모두 3만 원에 사서 듭소!”
해녀 한 분이 권하는 대로 꽤 많은 양의 소라를 사서 먹기로 했다. 해녀가 근처 탈의실에 가서 초고추장을 가져오더니 그 자리에서 소라를 까서 바닷물에 씻어준다.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식감과 함께 상큼하게 올라오는 바다 맛이 별미다. 이번 제주 취재 여행의 먹거리 중 으뜸!
간식은 간식이고 점심은 또 해야겠기에 일대에서 밀면 맛있다고 소문난 산방식당(서귀포시 대정읍 하모이삼로 62)을 찾았다. 부산에서 많이 먹는 밀면은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냉면이 그리울 때 메밀 대신 밀로 만들어 먹은 음식이다. 이 식당은 밀면 맛도 좋지만 돼지 수육이 별미로 꼽힌단다. 특이하게도 제육을 찍어먹는 양념으로 고추장을 내온다. 새우젓과 된장을 찾으니 단호하게 없단다.
점심식사 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추사 김정호 유배지를 돌아보고 서귀포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이중섭 기념관도 찾았다.
9년간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한 조선의 대표적 문장가이자 서예가인 추사는 유배지에서도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구석구석 그의 흔적을 느껴본다. 유배 중에 그린 ‘세한도(歲寒圖)’의 발문에는 “날씨가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 수 있다”는 공자의 글이 들어 있다.
이중섭이 전쟁통에 헤어진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들도 감상했다. 제주여행 중 이들의 흔적을 살펴보며 한 번쯤 깊은 사색에 잠기는 것도 좋겠다.
수월봉 - 자구내 포구길은 걷기 좋은 올레길 코스로 많이 소개됐다. 이 길을 걸으며 전망 좋은 카페를 만났다. 1시간여 계속된 취재를 잠시 쉬면서 넋을 잃고 차귀도와 바다를 감상했다.
친지의 차를 얻어 타고 제주시 쪽으로 향했다. 신창-용수 해안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며 내려준 곳. 월령 선인장마을에는 바닷속에 일렬로 박혀 있는 수십 대의 풍력발전기가 있다.
일몰과 함께 찍은 사진이 대박!!! 해가 질 때 꼭 이곳을 찾아 석양과 ‘바람개비’를 감상해보기를 권한다.
“황 기자, 저쪽으로 좀 더 가서 찍어보지!”
“더 가면 바닷속인데요. 후훗!”
풍력발전기 풍광 사진이 너무 탐나서 동료기자를 바다에 밀어 넣을 뻔했다. 저녁에는 대정읍 하모항구로에 위치한 덕승식당을 찾았다. 우럭매운탕이 일품. 국물이 칼칼하면서도 특이한 맛이다.
몸국 한 사발에 담긴 제주의 맛
몸국은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해초인 모자반과 돼지고기를 넣어 끓인 국이다. 취재기자들은 몸국을 제주 이외 지역에선 먹어보지 못했다. 제주의 특별 음식 중 하나인 ‘김희선제주몸국’(제주시 어영길 19)이 소문이 자자하다기에 찾아갔다.
식당은 자그마했다. 6000원짜리 몸국, 1만 원짜리 성게미역국에 대한 평가점수를 모두 후하게 줬다. 김희선제주몸국은 다른 식당보다 몸(모자반의 제주도 사투리)을 풍성하게 쓰고 약간 매콤하게 맛을 냈으며 성게의 양도 풍부하고 싱싱했다. 한마디로 둘 다 진국이었다. 이 집 몸국은 전국으로 소문이 나서 서울에서도 택배 신청을 한단다.
맛있게 아침을 먹고 자동차로 5·16도로를 달려 서귀포로 넘어갔다. 5·16도로는 한라산을 관통하는 제주도의 남북 연결 도로 중 가장 경관이 좋다. 특히 서귀포에 거의 다다르면 도로 양쪽의 우거진 나무들이 만든 숲 터널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그재그로 굴곡이 심해 상업용 차량 이용률은 높지 않다고 한다.
올레길에서 가장 인기 높다는 7코스의 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가 있다. 바로 외돌개. 중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어 이 길을 걸으면 행인들 속에서 중국말이 자주 들려온다. 해안 중간에 위치한 널찍한 바위 좌우에서 스카프를 휘날리며 사진을 찍는 여인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외돌개 바위 좌측에는 호수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천연 바다수영장이 있다.
여름이 되면 이곳에서 스노클링을 한단다. 스노클링을? 다시 보니 최적의 장소다. 해변에 붙어 있고 앞으로는 큰 바위들이 막아주고 있어 안전할뿐더러 아늑하기까지 하다.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그물을 쳐놓고 하는 스노클링보다 규모 면에서는 작지만 안전성은 높다. 어린이 스노클링 장소로도 제격이겠다. 제주에 자주 오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장소란다.
점심식사 장소로 택한 식당은 시내 의 오분자기 뚝배기의 원조격 식당. 그러나 이번 제주 맛 취재를 위해 방문한 곳 중 가장 실망스러운 식당이었다. 죽은 미리 끓여놨는지 시키자마자 곧바로 나왔고 뚝배기 맛은 겉돌았다. 그런데도 가격은 높았다. 점심시간이 한창인데도 손님이 많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저녁때는 더 맛 좋은 흑돼지 구이 식당을 찾기 위해 기자들이 각자 흩어졌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의견을 취합해본 결과 흑돼지 구이 맛은 대동소이! 다시 한 번 제주의 흑돼지고기 맛은 대부분 괜찮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전날 흑돼지 안주로 과음들을 한 탓일까. 갈칫국으로 해장을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부둣가에 있는 물항식당(제주시 임항로 37-4)을 찾아갔다. 수산물은 역시 부둣가 식당이 최고다. 재료가 신선하고 양도 푸짐하다. 전복뚝배기 1만5000원, 갈칫국 1만3000원, 갈치구이백반 1만3000원, 성게국 1만3000원. 아침식사비로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맛이 훌륭했다.
내친김에 자리물회와 한치물회 맛까지 보려 했으나 제철이 아니란다. 돌이켜보니 이번에는 제주에 와서 회다운 회를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취재를 마치고 물항식당에서 저녁식사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도시에는 대표 빵집이 있게 마련이다. 전주의 풍년제과, 여수의 거북선빵집 등이 잘 알려진 빵집이다. 제주에는 보리빵을 파는 신촌덕인당(본점, 제주시 조천읍 신북로 36)이 있다. 매장에는 대기하는 손님을 위한 테이블이 딱 하나만 놓여 있다. 순수한 보리빵과 팥보리빵, 통팥보리빵 등을 판매한다. 건강한 빵이라는 느낌이 든다.
함덕해수욕장은 제주에서 보기 드문 고운 모래의 넓은 백사장이 조성돼 있다. 왼쪽은 해변에서 10여m 나갈 때까지 바닷물이 허리 정도의 깊이밖에 안 돼 가족 놀이터로 제격이다. 제주 시내에서 가까워 이용객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파도와 바람을 벗하여 가을을 걷는다. 영덕블루로드B코스
770km를 따라 부산에서 고성까지 동해안을 따라 해파랑길이 나있다. 속이 꽉 찬 가을 대게처럼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한 해파랑길 중 영덕블루로드 B코스를 걸으며 가을바다를 만난다.
영덕블루로드 B코스는 '푸른 대게의 길'이라 불린다. 영덕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서 경정리, 죽도산전망대, 축산항까지 12.5km의 구간, 3시간 정도 걷는 코스다. 보통은 해맞이공원에서 고성방향으로 위쪽으로 올라가지만 축산항에서 부산방향으로 해안을 왼편에 끼고 걸으려고 한다. 영덕 도착 시간을 고려하여 점심은 축산항의 물가자미 요리로, 저녁은 강구항의 대게로 먹는 즐거움까지 챙기기 위해서다.
영덕 축산항은 물가자미로 유명하다. 매년 5월이면 축산항에서 물가자미축제가 열린다. 물가자미는 흔히들 ‘미주구리, 미주가리’라고 부른다. 일본명이 Mushigarei니 거기서 이름이 왔으리라 짐작하겠지만 순수우리말이다. 경상북도 방언에서 6을 뜻하는 물과 가자미를 뜻하는 ‘가리’ 또는 ‘구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물가자미는 광어와 비슷한 생선으로 크기만 더 작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로 뼈채 회를 뜨는 세꼬시나 살짝 말린 것을 구워서 먹는다. 물가자미로 다양한 요리를 내놓는 전문식당을 추천한다. 물가자미축제가 열리는 축산항에 위치한 김가네식당이다. 조림, 회, 회무침, 매운탕, 식해까지 다양한 물가자미요리가 나온다. 식당 앞에서는 동해의 해풍에 꾸들꾸들 물가자미를 말리고 있다.
축산항 대표 맛을 즐긴 후 블루로드B코스 하행 시작점에 서면 계단 바로 위에서 죽도산전망대와 해안데크길 두 갈래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풍경과 함께하고 싶다면 해안길을, 시원한 전망을 원한다면 전망대 길을 택하면 된다. 2억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눈앞에 드러난 시간의 흔적들이 짧은 인간의 역사를 하나의 점으로 인식하게 한다. 파도와 바위에 침식된 바위 사이 늦둥이 해국이 소담스럽게 피어있다. 걷다가 잠시 멈추어 파도에 생겨난 포말이 부서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쉼의 시간을 갖는다. 블루로드 다리를 건너고 바람이 잦아든 짙푸른 솔숲 길을 걷는다. 해안절벽과 솔숲의 조화에 걷는 묘미를 한껏 즐기게 해주는 코스다.
걷느라 수고하였으니 저녁식사는 영덕하면 떠오르는 대게다. 강구항 수산물직판장에서 대게를 사는 것이 좋다. 크기가 무조건 큰 것보다는 들어봐서 묵직해야 속이 꽉 찬 대게다. 몇 번의 흥정 끝에 구입한 대게를 쪄주는 곳에서 쪄달라고 하여 숙소에 가져가서 먹거나 자릿세를 내면 상차림을 해주는 식당에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가장 저렴하게 푸짐하게 대게를 먹는 방법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만난 여행지, 영덕블루로드는 걷는 묘미와 푸짐한 맛이 있는 길이다. 나지막한 산과 지질공원, 파도치는 바다와 바람을 벗하여 걸은 길을 걸으며 동해의 거친 풍경과 바닷가 마을의 정취를 듬뿍 즐긴다. 시간 앞에, 바다 앞에 세상사 시름이 작아졌다가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춰버린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가벼워졌다.
겨울에는 왠지 속초에 가야 할 것 같다. 눈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갯배를 타고 건넜던 청초호, 눈에 파묻힌 아바이마을, 영금정에서 봤던 새해 일출, 이 딱딱 부딪혀가며 먹었던 물회의 추억이 겨울에 닿아 있어서일까. 이번에도 속초 바닷길과 마을길, 시장길을 구석구석 누비는 재미에 빠져 남쪽 외옹치항에서 북쪽 장사항까지 걷고 말았다.
걷기 코스
속초고속버스터미널▶외옹치 바다향기로(속초해수욕장~외옹치항 왕복)▶ 설악대교▶ 아바이마을▶갯배▶속초관광수산시장▶동명항▶영금정전망대▶해돋이전망대▶속초등대(택시)▶속초시외버스터미널
바다 위를 걷는 느낌 외옹치 바다향기로
속초 도보여행 첫 코스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외옹치 바다향기로’다. 속초해수욕장부터 외옹치해수욕장을 거쳐 외옹치항까지 이어진 바닷길을 걷는다. 길이가 약 1.74km이며, 속초해수욕장 850m 구간과 외옹치 해안데크산책로 890m 구간으로 나뉜다. 천천히 걸어도 편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서 속초해수욕장 정문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 금세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코끝이 찡한 날씨에도 겨울 바다를 찾은 이가 꽤 많다. 바닷가 포토존 너머로는 가마우지들이 모여 사는 조도(鳥島)가 보인다. 삿갓 모양의 조도와 철썩이는 파도를 감상하며 모래밭 옆 산책로를 거닌다. 속초해수욕장과 연결된 외옹치해수욕장에 다다르면 외옹치 해안데크산책로 입구가 나온다.
외옹치 해안은 1970년 무장공비가 침투한 이후부터 작년까지, 65년 동안 미개방 군사 작전 지역이었다. 작년 4월 외옹치 바다향기로를 개통하면서 개방됐다. 해안데크산책로는 암석관찰길, 안보체험길, 하늘데크길, 대나무명상길 등의 주제로 나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해안 철책과 초소가 있는 안보체험길을 지나면 ㄷ자형 전망대가 나온다. 송혜교, 박보검 주연의 tvN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두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 사랑을 싹틔운 장소다. 바다 풍광이 가장 멋진 구간은 하늘데크길이다. 지네바위, 굴바위 등 이야기가 있는 갯바위와 은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마주 보며 걸을 수 있다. 겨울철 09:00~17:00, 여름철 09:00~19:00 개방.
아날로그 감성 갯배 그리고 아바이마을
외옹치항에서 속초해수욕장으로 되돌아올 때는 바닷가 산책로 옆 해송숲길을 선택한다. 숲 분위기가 그윽해 사색하며 걷기 좋다. 해송숲을 지나 방파제와 나란히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청호동 아바이마을을 만난다. 실향민 정착촌인 아바이마을은 한국전쟁 때 함경도에서 피란 온 실향민 다섯 가구가 백사장에 터를 잡으며 생겨났다. 마을 동쪽은 바다, 서쪽은 청초호와 접해 있다. 청초호와 바다를 연결하는 신수로를 건설하면서 마을이 남북으로 나뉜 것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로 위로 붉은 아치형의 설악대교를 세웠다. 설악대교를 건너기 전에 교각 아래의, 실향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아트플랫폼 갯배’에 들른다. 전시장과 카페로 꾸민 공간이다. 2층 창가에 앉아 신수로를 오가는 어선들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설악대교 교각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리 위로 올라가면, 진한 바다 냄새가 풍기는 아바이마을과 속초항의 풍경이 펼쳐진다. 수로를 건넌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바로 북쪽 아바이마을에 도착한다. 주택가인 남쪽 아바이마을과 달리 이곳은 실향민들이 함경도 음식을 파는 식당가다. 좁은 골목에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 명태순대, 가자미회냉면, 막국수 등을 파는 식당이 빼곡하다. 단천식당과 신다신식당이 함경도 음식 원조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신다신식당에서는 함경도식 육개장인 가리국밥을 판다. 아바이순대와 소고기, 대파 등을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인 국인데, 소고기국밥과 맛이 비슷하다.
다음 코스인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가기 위해 아바이마을 갯배 선착장으로 향한다. 갯배는 주민들이 청초호를 건널 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무동력 운반선이므로 중앙동 선착장과 아바이마을 선착장 사이에 걸어놓은 쇠줄을 갈고리로 잡아당겨야 움직인다. 아바이마을 주민이 탑승해 줄을 끌어당기지만, 승객들도 눈치껏 힘을 보태야 한다. 갯배 요금은 편도 500원이며 운행시간은 3분이다.
시장 골목에서 발견한 헌책방
갯배에서 내려 생선구이 골목을 지나면 속초의 명동이라 불리는 로데오 거리에 자리한 속초관광수산시장이 코앞이다. 속초를 잘 아는 이에겐 중앙시장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시장 안에 수산물 골목, 청과물 골목, 순대 골목, 잡화 골목 등 취급 품목별로 골목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시장 지하에는 활어회 센터가 있다.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은 제철 생선을 볼 수 있는 수산물 코너다. 가게마다 몸통이 물풍선처럼 빵빵한 곰치가 좌판을 차지하고 있다. 옛날에는 어부들이 잡은 즉시 바다에 버려서 물텀벙이라 불렸던 생선인데, 지금은 금값이다. 곰치로 국을 끓이면, 곰치 살이 입안으로 호로록 들어갈 만큼 부드러운 데다가, 국물 맛이 시원해 겨울 별미로 손꼽힌다.
시장 골목을 요리조리 구경하다가 대경중고서점을 발견한다면, 보물을 캔 것과 마찬가지다. 속초에 하나뿐인 귀한 헌책방이니 말이다. 책방 안에는 천장 턱밑까지 책이 꽂혀 있다. 책 무게 때문에 등이 휜 나무 선반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헌책방 주인장은 소녀처럼 수줍음이 많은 전경화 씨. 속초 토박이인 전 씨는 “제가 헌책방을 인수해 장사한 지도 25년이나 됐네요. 이곳 역사가 50년은 됐을걸요. 영업 이익만 생각하면 문 닫아야죠. 많은 사람이 좋아해주셔서 그 보람으로 책방을 지켜요. 우리 책방은 A급 중고 책만 취급하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요”라고 말하며 속초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속초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식당과 좋아하는 음식들을 술술 풀어놓는다. 시장 안 작은 헌책방이 오래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속초등대에 올라 겨울 바다 마주하기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동명항에 닿는다. 동명항 활어센터는 자연산 활어회만 취급하며 횟값이 저렴한 곳으로 유명하다. 건물 안에 횟감을 팔고, 손질하고, 매운탕을 끓여주는 구역이 따로 있다. 2층 상차림 식당에는 대게 철을 맞아 손님이 바글바글하다.
동명항 근처에는 속초등대, 영금정, 영금정전망대, 해맞이정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 영금정은 속초등대와 동명항 사이 해안에 펼쳐져 있는 갯바위다. 갯바위 꼭대기에 올라앉은 영금정 전망대에 서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나간 해맞이정자가 발아래 굽어보인다. 겨울에는 해맞이정자 앞으로 해가 떠 일출 명소로 유명해졌다. 해맞이정자에서 빤히 보이는 속초등대 전망대에 오르면, 왼쪽으로 영금정과 동명항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속초 시가지와 설악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력이 있다면, 속초등대에서 등대해변 쪽으로 내려가도 좋다. 등대해변의 산홋빛 바다색이 아름다워, 입소문 난 횟집과 전망 좋은 카페가 바닷가에 속속 들어섰다. 호반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영랑호도 가까이 있다.
주변 명소 & 맛집
봉포머구리집
봉포머구리집은 잠수부였던 주인장이 작은 가게로 시작해 음식 맛 하나로 큰 빌딩을 세운 곳이다. 해삼, 비단멍게, 문어숙회, 광어회, 성게알, 백골뱅이 등을 소복하게 담아낸 해물 모둠물회를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진다. 여덟 가지 찬과 소면 두 덩이가 밥상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새콤한 육수와 꼬들꼬들한 해산물과 아삭한 채소가 조화를 이뤄 엄지가 절로 척 올라간다. 속초시 영랑해안길 223, 033-631-2021, 09:30~21:30
칠성조선소 살롱
조선업이 쇠퇴해, 칠성조선소에서 배를 만들지 않게 되자, 칠성조선소의 3대 대표가 조선소 건물을 카페와 전시공간으로 개조했다. 배를 만들고 수리했던 허름한 조선소 건물은 전시장이 됐고, 만든 배를 바다에 띄우기 위해 설치했던 마당의 철 구조물들은 벤치 역할을 한다. 복고풍 분위기 덕에 인기 명소가 됐다. 조선소의 너른 부지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속초시 중앙로46번길 45, 033-633-2309, 11:00~20:00(수요일 휴무)
문우당서림과 동아서점
문우당서림과 동아서림은 속초에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린 대표 서점이다. 책 파는 것을 넘어 작가와의 만남, 시 낭송회 등을 주최해 지역문화를 만들어가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1984년에 개점한 문우당서림은 부부와 귀향한 딸이 운영한다. 2층에 책 읽는 공간을 따로 두고, 독서 모임방을 무료 대관한다. 1956년에 개점한 동아서점은 3대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유명하다. 세련된 서가 배치와 북큐레이션이 돋보인다. 대형 서점에선 볼 수 없는 독립출판물도 취급한다. 동아서림은 문우당서림 뒤쪽에 있다. 속초시 중앙로 45, 033-635-8055, 09:00~22:00
여행 정보 걷기 Tip
➊ 자가용을 이용할 때는, 외옹치항에 주차한 뒤 바다향기로를 걸으면 된다.
➋ 고속버스터미널 하차 후, 외옹치항 바다향기로 입구까지 택시로 이동하면 왕복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 이동은 추천하지 않는다.
송홧가루 날리는 5월의 산천(山川)은 풍요롭기 그지없다. 새빨간 덩굴장미가 담장을 타고 굽이굽이 올라가는 모퉁이에서 단발머리 소녀가 손짓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5월 중순의 어느 날, 철원평야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창 모내기 철의 철원평야에는 싱그러움이 내려앉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묻어난다. 얼마쯤 달렸을까? 영북면을 지나 넓은 평야 지대와 개활지를 가로질러 달리다 보니 관인으로 접어들면서 한탄강 줄기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녹음이 짙은 금학산이 눈앞으로 불쑥 다가온다. 군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곳이 40여 년 전, 초산 부대에서 소대장 실습을 하던 곳이라는 것을 상기할 수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초록의 물결을 헤치며 도착한 곳은 한탄강 자락에 있는 민물매운탕집. 요 며칠째 전국적으로 쏟아부은 비로 인해 흙탕물이 된 강물은 강기슭 전체에 범람해 있었고 요란하게 흐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친구와 강가에 앉아 장어구이와 민물매운탕으로 배를 불리면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맥주 한 잔을 반주 삼아 맛있는 점심을 먹은 우리는 “어디로 갈까?”, “여기까지 왔으니 노동 당사를 들러 백마고지로 가면 어떨까?” 하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노동당사가 나타났다. 노동당사는 철원이 북한 땅이었을 때 북한 조선노동당이 지은 러시아식 건물이다. 다 허물어진 콘크리트 건물은 뒤는 무너지고 앞부분만 겨우 구색을 갖춰놓은 위태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시멘트 건물과 대비되는 새파란 잔디밭이 싱그러웠다. 노동 당사에서는 공산당 사무도 보고, 사람들 고문도 했다고 한다. 건물 벽 여기저기에 총탄 흔적이 그때의 사건들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듯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준 노동당사 건물을 한 바퀴 돌면서 참혹했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공산당원들이 철수하면서 지역의 유지들을 붙잡아 건물 지하에 가두어 놓은 채 학살하고 매몰했는데 이후에 그 유골들이 발견되었다. 밤마다 슬픈 영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고 한다.
노동당사 앞에서는 넓은 개활지에 천막을 치고 지역특산품을 진열한 장이 들어서 있었다. 한쪽에서는 무대까지 설치한 채, 두 남녀가 구성지게 색소폰을 불고 있었고 사람들이 쭉 둘러서서 흥겨움에 몸을 흔드는 모습도 보였다.
강원도는 2018년 5월 1일부터 북한과 접경지역을 ‘평화지역’으로 바꾸기로 했다. 4·27 판문점 선언으로 하늘, 땅, 바다 교통망이 열리고 강원도는 남북경협 통일시대 준비에 돌입하면서 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서 접경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경기 북부인 연천군에 이어 강원도 지역도 활발하게 거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민통선 인근 지역의 땅값도 덩달아 들썩이며 지금은 많이 오른 상태라고도 한다.
노동 당사를 견학하고 바로 백마고지 쪽으로 차를 몰았다. 멀리서 보이던 높은 백마고지 기념비가 가까워져 오자 하늘 높이 승천이라도 할 듯이 발을 번쩍 치켜든 백마의 동상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백마고지전투위령비를 지나 한참을 올라가니 드디어 역사의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기 벼가 바람에 간들거리는 광활한 평야 건너에 백마고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군 GP 초소가 보이고 그 너머에 북녘땅도 보였다. 말 없는 백마산 기슭, 백마고지는 해발 395m의 고지로 6·25전쟁 때 국군과 중공군이 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백마고지 전투는 정전협정을 앞둔 1952년 10월6일부터 열흘 동안 무려 7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등 아군과 중공군 간의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던 피의 고지전이었다. 28만 발의 포탄으로 15,000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10일간의 싸움 끝에 24번 만에야 우리 손에 들어온 격전의 고지 백마산은 깊은 침묵 속에 잠겨있다. 한국군과 중공군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전략 고지 백마를 탈취하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전개하였다.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백마가 쓰러져 누운듯한 형상을 하였으므로 백마고지라 부르게 되었다. 1951년 7월 정전회담이 시작되어 정전협정이 체결되는 시점의 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삼기로 정한 뒤 한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지역을 차지하기 위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백마고지는 중부 전선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철원, 김화, 평강 즉 철의 삼각지대의 하나인 철원평야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당시 김종오 소장이 지휘하는 국군 제9사단이 방어하고 있었다.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은 백마고지 일대에 2000여 발의 포탄을 투하하며 공격을 개시하였는데 열흘간 24차례나 주인이 바뀔 정도로 혈전을 치른 끝에 제9사단이 중공군을 격퇴하고 승리하였다.
어김없이 6월이 오면 이 땅에서 벌어졌던 동족상잔의 전쟁인 6·25 전쟁이 기억난다. 이제는 명분 없는 전쟁의 역사에서 우리 모두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핀 철원평야를 지나면서 이토록 평화로운 이 강산을 고스란히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귀갓길을 서둘렀다.
2018년 4월, 아들의 결혼식을 잘 마쳤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 내외는 각종의 선물을 꺼냈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다 아는 상식이겠지만 세상에 그 어떤 것도 공짜는 없다. 자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나왔다. 자녀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친 것 역시 부모님의 은공이다. 따라서 자녀는 반드시 효도를 기본으로 견지해야 마땅하다. 아무튼, 결혼식을 잘 치름에 따라 그 연장 선상의 당연한 보답 행보에 들어섰다. 그건 하객으로 참여해 주신 분은 물론이거니와 부득이 불참하셨지만, 축의금을 보내주신 분들에 대한 예의였다.
지난주의 저녁 식사 대접이 이의 방증이다. 횟집에서 만난 지인들과 상의 끝에 수족관에서 도다리와 노래미를 골랐다. 대표적 흰살생선인 도다리는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도 있듯 제철인 지금이 가장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전어 굽는 냄새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지만 도다리 회를 펼쳐 놓으면 술을 싫어하는 이도 냉큼 소주잔을 든다. 소주와 매운탕까지 잔뜩 먹고 마시며 환담을 하노라니 지인이 걱정스러운 듯 한 마디 했다.
“우린 잘 얻어먹어서 고맙긴 하지만 오늘 너무 과용하는 것 아닙니까? 적자 나면 안 되잖아요.”
그날 모인 사람은 모두 네 명. 세 사람이 낸 축의금만을 따지자면 15만 원이다. 따라서 그 금액에 육박하는 지출이 발생했기에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엄연히 고마움을 표시하는 자리이거늘 금액을 저울질하면서 먹는 술과 밥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각박한 세상일까!
“걱정 마십시오! 저 안 망합니다.”
나의 호언장담에 그들도 함박웃음을 보였다.
아내는 오늘 저녁 지인들에게 저녁을 산다고 했다.
“기왕이면 비싸고 맛난 거 사 드려. 그래야 욕 안 먹어.”
자녀를 결혼시키자면 여기저기서 축의금이 들어온다. 한데 그건 다 ‘빚’이다. 고로 반드시 갚아야 한다.
조의금도 마찬가지다. 동창 중에 얌체가 눈 밖에 났다. 자신의 자녀 결혼과 부모님 상을 당했을 때도 사방팔방에 죄다 알렸다. 축의금과 조의금을 그렇게 ‘챙겼지만’ 정작 이후론 친구들의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처럼 속이 죄 들여다보이는 ‘고바우’는 상대방이 먼저 간파한다. 반면 비록 애옥살이일망정 손겪이(손님을 대접하는 일)가 정당하다면 역시도 사람됨이 됐다며 인정을 받기 마련이다.
싹은 돋았어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이 있으며, 막상 꽃을 피웠으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꼭 그렇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안 봤는데 이제 보니 윤똑똑이일세~”라는 표현은 최악의 폄훼다.
평소 예의와 의리를 잃으면 사람도 아니란 게 어떤 교조(敎條)이다. 오늘도 나의 손겪이는 계속될 것이다.
소수의 점유물이었던 수제 맥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내손으로 만드는 수제 맥주 체험을 위해 송파구 삼전동에 위치하고 있는 아이홉맥주공방을 찾았다.
시니어 공감 매거진 ‘브라보마이라이프’ 동년기자인 필자는 브라보 정지은 기자와 톡을 통해서 석촌역 7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막상 석촌역에 도착해보니 지하철 공사관계로 7번 출구가 폐쇄되는 바람에 6번출구를 통해 올라 갔다. 조금 늦은 시간에 정 기자와 만나서 공방까지 걷기로 했다. 사실, 이 곳은 필자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다. 많이 지나쳐 다녔지만 이곳에 이런 공방이 있을줄은 까마득히 몰랐다. 말이 10분이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20여분은 충분히 걸릴 것 같았지만, 두런두런 얘기를 하면서 걷다보니 은근히 땀이 났다.
공방이 있는 건물근처에 도착했다. 간판이 눈에 띄는 건 아니지만 네비게이션이 잘 안내를 해주어 한번에 찾았다.
의외로 공방은 지하에 있었다. 지하에 들어가니 각종 맥주들이 종류별로 매대에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맥주 만드는 기구들도 보였다. 실내는 비교적 넓은 편이었고 싱크대도 4개나 있는걸로 보아 맥주체험자들이 꽤나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떤 맥주를 좋아할까? 생각해 보니 내가 아는 맥주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하이트와 라거, 그리고 치킨집이나 호프집에서 판매하는 생맥주 정도이다. 그리고 흑맥주가 있다는 얘기도 들어보았지만 솔직히 흑맥주를 시원하게 마셔본 적도 없다.
체험에 들어가기 전에 빔 프로젝트를 이용해서 사장님의 이론교육이 있었다.
맥주의 종류는 크게 에일(Ale)과 라거(lager)로 나뉜다. 국내에서 유통되어 우리가 흔히 접하는 국산맥주는 대부분 라거인데, 에일 은 이에 비해 조금 생소한 부분이 있다. 에일(Ale)과 라거(lager)의 차이는 균주와 발효시키는 온도로 구분하여 생산되는 것이다. 따라서 에일은 상면발효맥주이고, 라거는 하면발효맥주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술은 발효를 통해 만들어지는데 맥주는 그 중에서도 보통 '곡물'을 발효시켜서 만든다. 여기에 쓴 맛이 나는 ‘홉’이라는 향신료를 넣는다. 이러한 발효 과정에는 ‘효모’가 필요한데 이 효모가 ‘위에 떠서’ 발효되냐 ‘아래 가라앉아서’ 발효되냐에 따라 에일과 라거로 구분된다. 즉, ‘상면발효’된 것을 에일 ‘하면발효’된 것을 라거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만들 맥주는 에일(Ale)이다. 맥주를 진짜 전통방식으로 만들려면 직접 보리나 밀 등 곡물을 몇 번씩 갈고 오랫동안 끓이고 걸러서 또 끓이고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3시간의 수업시간을 고려하여 앞에 과정을 요약한 엑기스를 쓴다. 엑기스 통을 열어 보니 그 과정을 다 거친 진득한 조청같은게 들어있었다. 맛을 보니 쓴맛이 덜 한 홍삼진액 같다는 느낌이다.
일단 커다란 양동이에 물 20리터를 끓이면서 공방사장님으로부터 맥주에 대한 이러저러한 얘기를 들었다. 어느 정도 물이 끓으니 엑기스를 물에 붓고 잘 섞이도록 저어준다. 끓이는 시간은 맥주마다 다른데, 짧게 끓이면 아로마틱한 맥주가 되고 오래 끓이면 향이 날아가 씁쓸하고 풍미가 깊은 맥주가 된다고 한다. 어느 정도 끓이다가 홉을 넣어준다. 홉은 쓴맛을 내는 역할을 하는데 오래 끓일수록 향이 날아가기 때문에 적당하게 나누어서 중간중간에 넣어준다. 은은한 불에 계속 끓이다보면 수면위로 진득한 거품이 나는데, 이를 걷어 내준다. 마지막으로 효모를 넣어서 맥주를 만들어내는데, 효모는 마치 라면스프처럼 생겼다. 효모를 넣으면 효모가 당을 먹으면서 맥주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리고 맥주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신장투석기처럼 생긴 브론즈 관을 이용하여 물을 식혀준다. 빈 브론즈 관을 끓인 맥주 통에 넣고 한쪽 인입관을 수도에 연결하여 찬물을 공급하면 찬물이 브론즈 관을 통해 맥주를 식혀주고 다른 쪽 관으로 물은 배출되는 개념이다. 이렇게 브론즈 관에 찬물을 연결하고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식혀준다. 이렇듯 25도 안팍의 온도로 식혀준 다음 숙성통에 부어준다. 이 맥주는 2주간의 숙성과정을 통해서 시음할 수 있는 맥주로 변신한다.
체험 중간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맥주와 비교해서 시원한 맛은 덜했지만 보다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특히 흑맥주의 맛과 향은 진했다. 쓴맛이 더하고 맛도 좀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와 함께 체험을 한 젊은이들은 어떤 회사의 사원들이었는데, 맥주 체험에 대비하여 각종 안주를 준비해왔다. 도란도란 둘러앉아 스넥종류의 안주를 곁들인 맥주를 시음하면서 하하호호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애초에 그런 생각조차 못한 것이 아쉽긴 했다.
어쨌거나 오늘 3시간에 걸친 맥주체험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필자가 평생 마시던 맥주 말고 여러 가지 맥주의 종류가 있다는 것도 알았고 제조과정도 배웠다. 집에서도 수제맥주 제조를 위한 기본 장비를 갖추어 놓고 좋아하는 맥주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기본장비를 갖추는데는 약 50여만 원정도가 들어간다고 하니 맥주애호가들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소중한 체험을 마치고 우리는 방이동 먹자골목으로 가서 뒷풀이겸, 맛깔스러운 회와 매운탕으로 저녁을 먹으면서 풍요로운 대화로 하루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