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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렌 굴드의 끝나지 않는 변주곡
-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 음악 속 숨겨진 사연이나 명사의 말을 통해서 클래식에 쉽게 접근해보자. 아래의 인터뷰는 가상으로 진행했다. 그곳은 여름이었다. 따사로움을 넘어 뜨거운 날씨였다. 이런 날씨와 달리 앞에 펼쳐진 호수는 잔잔했다. 잔잔함은 고드름이 손끝에 닿는 것처럼 차가운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호수는 바다처럼 넓었고, 호수를 배경 삼아서 한 사내가 피아노 앞 낡은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의자에는 회색빛이 감도는 두꺼운 외투가 걸쳐져 있었다. 가까이서 본 사내는 갸름한 턱선과 헝클어진 머리가 잘 어울리는 미소년이었다.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그는 악보로 보이는 종이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쓰고 있었다.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장갑을 손에 낀 채로. Q. 안녕하세요, 혹시 좀 전까지 무엇을 적고 계셨나요? 낙서 중이야. 내면에 흩어져 있던 언어들을 옮기고 있어. Q. 음악을 쓰고 있나요? 아니. 굳이 장르를 말하라고 한다면 시에 가까워. Q. 어떤 작가를 좋아하세요? 난 음을 외우는 건 자신 있지만, 시구를 외우는 데 도통 재능이 없어. 하지만 그 시구들은 내게 영감을 많이 줬어. 고전문학이나 철학서도 그렇고. 하지만 뉴스 따위에는 관심 없어. 온갖 소식을 접하면 괜히 근심만 늘거든.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토마스 만과 니체. “음악이 없다는 인생은 하나의 오류다.” 니체가 남긴 저 말을 늘 마음에 새겼지. 토마스 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를 추모하기 위해서 베토벤 곡을 연주했어. Q. 초면에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이곳의 분들과 다르게 굉장히 젊어 보이세요. 알아. 내가 의도한 거야. 원래는 마지막 모습의 상태로 이곳에 들어와. 하지만 난 원치 않았어. 난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육체로 이곳에서 살고 싶었어. 주는 밥도 안 먹고 관리자를 괴롭혔어. 젊을 때의 모습으로 바꿔 달라고. 내 고집을 못 이긴 관리자가 건의한 덕택에 이런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 Q. 브람스 선생님이 인터뷰이로 당신을 추천하셨어요. 브람스 선생님과는 어떤 사이예요? 생전에는 뵐 수 없었지. 다만 그의 노래를 좋아했어. 특히 인터메조를 즐겨 들었거든. 내가 온전히 듣고 싶은 마음이 강했어. 레코딩을 한 것도 그런 이유야. 레코딩이 아닌 채로 하는 건 늘 힘들지만, 선생님은 내가 치는 연주를 좋아하셔. 꼭 그런 이유로 연주하는 건 아니야. 그냥 가끔 그 곡을 듣고 싶을 때가 있어. 선생님 댁에 가서 곡을 치면, 선생님은 조용히 곁에 앉아 계셔. 선생님 집은 외진 곳이라 조용해서 좋아. Q.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셨나요? 세 살 때부터 악보를 읽고, 다섯 살쯤부터 작곡했어. 부모님 둘 다 아마추어였지만, 한 분은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다른 분은 피아노를 치셨어. 어머니는 피아니스트가 꿈이었지만 이루지 못하셨지. 내게 기대가 많으셨지. 외할머니도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분이셨어. 첩첩산중 시골에 사셨는데, 파데레프스키 곡을 듣기 위해서 장거리 여행도 마다하지 않으셨어. Q. 누구에게 음악을 배우셨나요? 칠레 출신 피아니스트 게레로에게 정식으로 배웠는데, 그와 나는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지. 그는 곡을 가슴으로 느꼈지만, 난 머리로 이해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관점을 일부러 꺾지 않았어. 그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제자도 있었겠지만, 별로 따르고 싶지 않았지. 연습은 늘 토론의 현장이었어. 그는 내게 자신의 방식을 주입하지 않았고, 난 토론을 통해 좋은 음악에 대한 나름의 철학과 관점이 생겼어. Q. 첫 리사이틀을 본 건 언제인가요? 여섯 살 때 본 요제프 호프만의 리사이틀. 그가 토론토에 온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지. 확실히 기억나는 건 매우 졸렸어. 반은 잠들고, 반은 깨어있는 상태라고 할까? 그때 리사이틀에서 들었던 온갖 음이 막 생각나는 거야. 막 호프만처럼 신나게 연주했어. 소위 말하는 절대음감이었지. 끝도 시작도 없는 변주곡 Q.32세 이후 콘서트 연주를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23살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유명해졌어. 호불호가 심했지. 미친놈의 연주라는 소리도 들었고, 하지만 닥치는 대로 콘서트 연주에 나섰지. 애초에 10년만 하고 그만두고 싶었어. 솔직히 먹고 살려고 했거든. 그것만큼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없잖아. 사실 콘서트 연주를 안 좋아해. 음악은 청중이나 연주자를 명상으로 인도하는 거야. 하지만 2999명에게 둘러싸인 상태로 그것이 가능할까? 불가능에 가까워. 콘서트 연주는 고통에 찬 속임수야. 기본적으로 청중을 신뢰하지 않아. 특히 연주자의 불협화음을 찾아다니는 사냥꾼 같은 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야. 차라리 고요한 상태에서 녹음하는 것이 훨씬 낫지. Q. 당신에게 바흐란? 개인적으로 그의 곡을 좋아하고 많이 연주했어. 한마디로 말하자면 영원한 동반자라고 할까?(웃음) Q. 음악가로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어떤 의미였나요? 시작과 끝. 세간에 나의 이름을 알린 첫 곡이자, 나와 마지막을 함께한 곡이지. 덧붙여 답습하는 곡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나만의 독창성을 곡에 불어 넣고 싶었지. Q. 원래 재녹음을 안 하잖아요. 하지만 이 곡은 두 번이나 녹음했어요. 어떤 이유인가요? 처음 말하는 건데, 딱 두 가지야. 하나는 일종의 메타포야. 그 곡은 첫 부분의 아리아가 30개의 변주를 통과한 뒤 또다시 반복돼. 끝도 시작도 없는 음악이라고 할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지. 진정한 해결도, 진정한 긴장도 없는 그런 음악이야. 시작을 알린 곡과 함께 내 끝을 마무리하는 장면을 줄곧 생각했어. 내가 사라져도, 나의 곡은 영원히 세상에 남기를 바랐어. 그 곡처럼 끝이 또 다른 시작이기를 바랐어. 하나의 시처럼 말이지. 다른 하나는 실험이었어. 26년 전보다 발달한 녹음 기술을 활용하고 싶었어. 한편으론 기술을 넘어, 나란 인간의 발전도 보고 싶었어. 청중이 반응도 궁금했고. 첫 번째 녹음과 다르게 마지막 부분에서 변주를 시도하고, 장식음도 빼버렸지. 삶이란 늘 변하고, 영원한 삶은 없잖아. 그걸 마지막에 말하고 싶었어. Q. 음악가로서의 장점은? 피아노에 밀착한 내 자세가 꼽추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테크닉적으로 음을 분명히 연주할 수 있어. 리스트의 포르티시모처럼 강렬한 음은 치기 어렵지만 말이지. 이외에도 고도의 집중력, 음악적 기억력, 절대음감, 이 세 가지 덕분에 음악을 할 수 있었어. 피아노 칠 때 악보 보는 걸 안 좋아해서, 늘 통째로 머릿속에 외우고 다녔어. 어디에 있든 늘 손으로 지휘를 하거나 허밍을 입 밖으로 내면서 연주를 했지. 온 세상이 콘서트장이야. Q. 당신에게 장갑과 의자란? 생명이야. 장갑을 끼고 콘서트에 의자를 들고 다니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해. 하지만 장갑을 끼는 건 혈액순환이 안돼 손발이 늘 차가워서 그래. 뜨거운 물에 오래 손을 담그고 연주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야. 의자는 공연장마다 의자의 높이가 달라서, 매번 조정하는 게 불편했어. 앉기 편하고 피아노를 치기에 좋은 높이의 의자를 구한 거야.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다 이유가 있어. 이런 변명도 귀찮아. 어떤 곳은 실내 스튜디오가 추워서 딱 한 번 머플러와 두꺼운 외투를 입고 갔는데, 내가 정신이 나가서 그렇게 입고 다닌다는 거야. 물론 밖에서는 위생상 그렇게 입고 다녀. 하지만 나도 실내에서는 그렇게 입지 않아. 어이가 없더라. 뉴스는 정말 믿지 못하겠어. Q. ‘기인’ ‘천재’ ‘고독한 예술가’, 이 셋 중에 맘에 드는 별명이 있다면? 난 정말 뉴스가 싫어. 가십거리는 온통 과장이야. 천재나 기인, 그런 단어 너무 우스워. 차라리 고독한 예술가가 낫겠어. 하지만 그렇게 단정 짓지는 마. 모두 내가 사교성과는 거리가 먼 아웃사이더인 줄 알아. 일정 부분 그런 점도 있지. 내가 집 근처의 브라스 밴드 참여 소식을 지인에게 말했더니 놀라는 사람이 적지 않았어. 하지만 예술가라면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해.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 시간 속에서 자기 수련이 필요해. 상상을 마음껏 펼쳐보기도 하고. 고독은 창조를 위한 수단이야.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건 기계에 불과해. Q.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까? 글 쓰는 작가. 지금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곳에서 틈틈이 써. 그는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생전에 여러 가지 기행을 보여줬다. 손 관리를 위해서 악수를 거부하거나, 격려 차원에서 그의 어깨를 두드린 사람에게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서 007 가방에 영양제, 비타민, 수면제와 같은 알약을 가득 채워서 들고 다녔다. 그의 삶은 변주곡처럼 어디로 튈지 몰랐다. 능력이 뛰어난 예술가는 맞지만, 성실한 예술가는 아니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독특함은 독창적인 곡을 남기는 데 기여했다. 그의 삶은 끝났지만, 그의 곡은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회자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고독한 피아니스트의 예술은 아직도 끝없이 멈추지 않고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그의 변주곡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2020-11-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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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인을 위한 노래
-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 음악 속 숨겨진 사연이나 명사의 말을 통해서 클래식에 쉽게 접근해보자. 아래의 인터뷰는 가상으로 진행했다. 우수에 젖은 눈빛과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휘날리는 턱수염. 사진으로 봤을 때 그의 인상은 날카로웠다.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거리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맥주를 앞에 놓고 집 앞 풍경을 바라보던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눈을 찡긋하며 물 대신 맥주잔을 건네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수더분한 동네 아저씨와 같은 모습에 다소 놀라웠지만, 곡이나 자신의 철학을 말할 때는 몹시 진지한 눈망울을 보였고, 사랑했던 그녀를 말할 때는 아련한 눈빛을 드러냈다. 인터뷰를 통해 그의 '삶'과 '사랑' 그리고 '음악'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Q. 최근에 선생님의 삶을 모티프로 한 드라마가 한국에서 방영됐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새는 이곳도 5G가 들어오면서 원활하게 소식을 듣고 있어요. 후대에 나를 모티프로 한 영화나 소설이 많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후에 일이라서 내가 막을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영광인 동시에 부끄럽습니다. 곡이 널리 쓰이는 것은 좋지만, 제 얘기를 회자하는 것은 지금도 부담스러워요. Q. 여기서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요? 슈만 선생님과 그녀도 여기서 함께 지내고 있어요. 이곳 관리자가 배려해준 덕분이에요. 그가 생전에 내 팬이었다고 해요. 그의 도움으로 여기서도 틈틈이 연주도 하고 작곡도 해요. 가끔 집에 놀러 오는 후배들과 함께 연주도 합니다. 어제는 굴드가 다녀갔어요. 까칠하고 괴짜 같은 구석이 있지만, 그가 연주하는 곡은 정말 좋아요. 어제는 인터메조를 들려주고 갔는데, 한참 멍하게 듣고 있었어요. 가끔은 나보다 그 곡을 잘 해석하는 것 같아서 밉지만, 한편으로는 그 곡을 잘 연주해줘서 고마워요. 그는 미워할 수 없는 악동 같은 친구예요. Q. 언급하신 ‘그녀’는 100 마르크화 지폐에 나온 그분을 말하는 걸까요? 웬만하면 그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으면 합니다. 그녀를 존경하는 동시에 존중하고, 나로 인해서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Q. 그렇다면 슈만 선생님은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 스무 살 때 친구랑 함께 연주 여행을 떠났어요. 말이 연주 여행이지, 떠돌이처럼 독일의 곳곳을 유랑했어요. 우연히 하노버에서 요하임이라는 친구를 알게 됐어요. 그 친구가 소개해준 분이 슈만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에게는 참 고마워요. 당시 선생님은 ‘음악신보’라는 잡지를 만들고 계셨는데, 저의 재능을 높이 사시고 극찬하는 평론을 써주셨어요. 아마도 그런 일이 없었다면 이렇게 인터뷰를 못 했을지도 몰라요. 운이 참 좋았어요. Q. 스무 살 이전의 브람스는 어땠나요? 제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문학 소년이었어요. 어머니가 주신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특히 시에 심취했어요. 독일의 시인들이 쓴 시집을 많이 읽었어요. 이런 것이 곡을 쓰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기도 했어요. Q.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음악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음악은 진입 장벽이 높은 예술이잖아요. 하지만 제게는 일종의 놀이처럼 다가왔어요. 아버지께서 시립극장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시는 분이었어요. 덕분에 악기를 접할 기회가 남들보다 많았어요. 아버지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기도 했고요. 악기를 연주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아서 즐거웠어요. 코셀이나 마르크젠 선생님처럼 훌륭한 분들에게 음악도 배웠어요. 그 시기에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의 곡을 배우면서 음악적 소양을 쌓았어요. Q. 그 시절에 음악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어려움이 있었죠. 예술가들은 돈 얘기를 하고, 반대로 은행원들은 예술 얘기를 한다는 말이 있죠? 그만큼 예술가의 삶이 곤궁해요. 저도 뼈저리게 느꼈어요.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어요. 가정 형편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그때부터 안 했던 일이 없어요. 학교도 그만두고 시립극장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인형극의 반주를 했어요. 교회에 나가서 오르간도 연주하고, 밤에는 술집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했어요. 정말 바빠서 밤낮없이 살았어요.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선생님들에게 배웠던 이론을 실전에 적용하면서 음악적 감각을 많이 키웠던 것 같아요. Q. 곡을 쓸 때는 어디서 주로 영감을 얻으시나요? 독일 민요와 독일 시를 곡에 담으려고 노력해요. 민요는 예로부터 입으로 전해오는 선율이라 독립적이고 명확한 선율을 갖고 있어요. 스스로 여기서 음악적 가치를 발견했고, 민요를 저만의 방식으로 곡에서 해석했어요. 제가 시를 좋아해서, 곡에도 시가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쳤어요. 괴테가 쓴 유명한 시부터 무명의 시인이 쓴 시까지 다양한 시를 곡에 썼어요. '시가 얼마나 음악을 풍성하게 해줄 것인가?' 곡을 쓸 때 그런 것을 고민했어요. 시를 고를 때 시에 담긴 정서적 분위기도 많이 살펴봐요. 개인적인 취향을 말하면 감정적으로 절제된 시를 좋아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장인정신이에요. 장인정신이 없다면 영감은 바람 속에 부는 갈대에 불과해요. Q. 말년에 작곡한 ‘네 개의 엄숙한 노래’는 어떤 마음으로 쓰셨나요?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 이 세 가지는 제 인생을 따라다니는 화두였어요. 시와 성경에 심취했던 것도, 이 주제를 깊게 다루는 영역이라서 끌렸던 것 같아요. 그 이전에도 죽음을 목격했지만, 가장 큰 충격이었던 건 슈만 선생님의 죽음이에요. 제자로서 죄책감과 동시에 미안함이 컸어요. '선생님을 그렇게 몰아넣었던 것이 무엇일까?' '삶은 괴로운 걸까?'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스스로 이런 질문을 많이 했어요. 한편 선생님 곁을 지키던 그녀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무척 괴로웠어요. 동시에 존경했던 그녀에 대한 애정은 날이 갈수록 더 커졌어요. 물론 좋아지는 만큼 각자가 처한 상황 때문에 심적인 거리는 더 멀어졌어요. 후에 아내와 누이를 먼저 보내면서 삶이 허무해졌어요. 외로운 날들이 많았어요. 죽음은 허무하고 비참한데, 깊어지는 사랑은 더 달콤했어요.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말이죠. 죽음의 허무함과 삶을 다시금 일으키는 사랑. 그 곡은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썼던 것이에요. Q. 동시대 작곡가 보다 작품이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빨리 먹는 것과 천천히 먹는 것의 차이예요. 어느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없죠. 습성의 차이일 뿐. 속도가 느려도 감당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다른 분이 무책임하다는 것은 아니에요. 나름의 호흡과 스텝에 따라서 움직였을 뿐이에요. 곡을 개수로 평가하고 싶지 않아요.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이듯 작업을 할 뿐이에요. Q. 혹시 다음 생이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나요? 글쎄요,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음... 저는 민망하지만 브람스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Q. 이유는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동물로 태어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만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면 억울할 것 같아요. 이왕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제 안에서는 늘 음표가 꿈틀거리는 것 같아요. 물론 다시 음악을 한다면 슈만 선생님과 그녀 곁에서 하고 싶어요. 그녀의 사랑을 얻지 못해 또다시 괴로워하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삶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프로이트가 그랬죠. ‘사랑하고 일하고, 일하고 사랑하라.’ 제게 사랑의 시련, 죽음의 허무함이 없었다면 곡을 못 썼을 거예요. 앞서 그가 몇 차례 언급한 그녀와 이성적인 교제는 없었지만, 그녀를 늘 존경했고 슈만이 떠난 후에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류를 이어갔다. 말년에 쓴 ‘네 개의 엄숙한 노래’는 죽음이 임박한 그녀를 생각하며 쓴 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브람스는 그녀와의 관계가 세간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며 화가인 막스 클링거에게 이 곡을 헌정했다.그가 그녀의 이름을 끝내 인터뷰 내내 밝히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다. 세상은 불륜이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른지만, 그가 보여준 마음은 진실했고, 행동은 신사답게 했다. 스승에 대한 신의와 각자의 가정이 있는 상황 속에서 브람스는 선을 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는 그녀였고, 그녀를 지키고자 했던 마음은 곡에 남아서 지금 이 시각에도 흐르고 있다. 브람스의 말대로 장인정신이 없는 영감이 한낱 바람 속 갈대에 불과한 것처럼, 그의 애절한 사랑을 빼고 그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여인을 위한 한 남자의 노래는 시간이 지나도 유효하다.
- 2020-10-2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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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즐길 만한 전시ㆍ공연ㆍ영화ㆍ도서
- ◇ Exhibition #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 일정 5월 31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비디오 아트의 30여 년을 재조명한다. ‘시간 이미지 장치’를 부제로 하는 이번 기획전은 국내 비디오 작가 60여 명의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인다. 시간성, 행위, 과정의 개념을 실험한 1970년대 작품에서 시작해, 1980~90년대의 장치적인 비디오 조각과 싱글채널 비디오까지 아우르며 한국 비디오 아트의 전개 양상을 입체적으로 해석했다. ‘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 미술’, ‘탈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 등 크게 7개의 주제로 나뉜다. 기술과 영상 문화, 과학과 예술, 장치와 서사 등 이미지와 개념의 문맥을 오가며 진화해온 한국 비디오 아트의 역사를 다각도로 살펴볼 기회다. # 매그넘 인 파리 일정 2월 9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프랑스 파리를 주제로 한 사진전으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등 20세기 사진의 신화로 불리는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소속 작가 40명의 작품 400여 점이 공개됐다. 2014년 오텔 드 빌(파리 시청)에서 처음 개최됐던 이번 전시는 2017년 일본 교토문화박물관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앞서 열린 파리와 교토 전시에서는 선보이지 않았던 엘리어트 어윗의 사진 40여 점으로 구성된 특별 섹션 ‘Paris’와, 파리의 패션 세계를 담은 작품 41점을 추가로 만날 수 있다. 파리의 풍경이 담긴 옛 지도와 희귀도서, 앤틱가구 등으로 꾸며진 ‘파리 살롱’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풍성하다. #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일정 3월 1일까지 장소 마이아트뮤지엄 체코를 대표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의 판화, 유화, 드로잉 등 오리지널 작품 230여 점을 작가의 삶과 여정에 따라 총 5부로 나눠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는 체코 출신의 테니스 선수 이반 렌들의 개인 소장품을 주축으로 기획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일명 ‘무하 스타일’이라 알려진 넝쿨 같은 여인의 머리카락, 독특한 서체 등 매혹적인 아르누보 스타일의 포스터에서 작가가 고국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작품까지 총망라한다. 도슨트 운영과 더불어 체코문화원과 함께하는 미술사 강연 및 시즌 이벤트, 키즈 아틀리에 등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도 제공할 예정이다. # 고향 gohyang: home 일정 3월 8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서울시립미술관 비서구권 전시 시리즈의 세 번째 프로젝트로, 복잡한 사회·역사적 배경을 가진 중동 지역의 현대 미술을 살펴본다. 중동에서 발생한 다양한 미술적 활동을 통해 고향을 잃거나 빼앗긴, 또는 고향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민족’이라는 관념적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기억의 구조’, ‘감각으로서의 우리’ 등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며 이미지, 사운드 설치, 드로잉, 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아우른다. 전시기간에는 할리드 쇼만 컬렉션의 영상 작품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시네마테크 컬렉션으로 구성된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 Stage # 뮤지컬 '레베카' 일정 3월 15일까지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엄기준, 신성록, 옥주현 등 ‘엘리자벳’, ‘마리 앙투아네트’ 등으로 잘 알려진 뮤지컬계 콤비 미하엘 쿤체(대본·작사)와 실베스터 르베이(작곡)의 대표작. 영국 대표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 소설 ‘레베카’와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 ‘레베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 원작 소설과 영화를 뛰어넘는 감동적인 로맨스, 반전을 거듭하는 서스펜스, 강렬한 음악으로 전 세계 1900만 관객을 마음을 사로잡으며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의 상징이 된 회전하는 발코니 신은 관객이 꼽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전 포인트다. # 마당놀이그 '춘풍이 온다' 일정 1월 26일까지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 연출 손진책 출연 김준수, 서정금, 김미진 등 판소리계 소설 ‘이춘풍전’을 바탕으로 한 마당놀이극이다. 34명의 배우와 20명의 연주자가 풍성한 무대를 꾸민다. 기생의 유혹에 넘어가 가산을 탕진한 한량 춘풍을 그의 어머니와 몸종이 혼쭐내고 가정을 되살린다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다. 마당놀이 특유의 세태를 꼬집는 풍자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 2020 신년음악회 일정 1월 4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 정명훈 출연 서울시립교향악단, 클라라 주미 강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은 경자년을 맞아 새해 첫 주 토요일 신년음악회를 개최한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끈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4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며 의미를 더한다. 실력파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협연으로, ‘브람스 교향곡 제1번’을 비롯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고 사랑받아온 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 Movie # 피아니스트의 전설 개봉 1월 1일 장르 드라마·판타지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팀 로스, 프루이트 테일러 빈스 등 ‘시네마 천국’, ‘베스트 오퍼’에 이은 주세페 토르나토레와 감독과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 감독이 함께한 ‘예술과 사랑’ 3부작 마지막 편이다. 2002년 12월 개봉 이후, 22년 만에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국내 첫 정식 개봉을 확정했다. 이탈리아 작가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소설 ‘노베첸토’가 원작. 평생 바다 위에서 살며 한 번도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라는 설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여기에 아름다운 영상과 황홀한 선율이 조화를 이루며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개봉 1월 16일 장르 드라마 감독 셀린 시아마 출연 아델 하에넬, 노에미 메를랑 등 제72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2관왕에 이어 토론토, 뉴욕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여인과 그녀의 결혼식 초상화 의뢰를 받은 화가 마리안느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다. # 몽마르트 파파 개봉 1월 9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민병우 출연 민형식, 이운숙, 민병우 아버지의 인생 2막을 담은 아들의 다큐멘터리. 미술교사로 평생을 산 아버지는 은퇴 후 ‘몽마르트 거리 화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파리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도전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 Book #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 (키만소리 저·책들의정원) 엄마는 해외로 떠난 딸을 그리워하며 자신도 영어공부를 해서 혼자 해외여행을 가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거부한 그녀는 ‘현자 씨’라 불러 달라며 가족들에게 선포한다. 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나다운 나’로 살고 있는 현자 씨의 홀로서기 에피소드를 웹툰과 에세이로 담았다. 자신의 이름 석 자로 인생 2막을 살며 못다 한 꿈을 이뤄가는 당당한 꽃중년의 모습을 그린다. #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신정근 저ㆍ21세기북스) 베스트셀러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에 이은 신정근 교수의 신작. ‘중용’의 원문 중 신중년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60개의 명문장을 엄선해 인생의 무게 중심을 잡는 법을 일러준다. #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수지 홉킨스 저ㆍ에프) 자신이 죽은 뒤 남겨질 딸에게 전하는 엄마의 사랑과 조언을 담은 그림 에세이다. 엄마가 떠나고 딸이 홀로 할 일들을 날짜별, 단계별로 보여주고, 행복한 삶을 위한 처방전도 제시한다. # 굿모닝 미드나이트 (릴리 브룩스돌턴 저ㆍ시공사) 북극에 고립된 78세 천문학자와 지구로 귀환 중인 우주비행사가 생의 마지막 순간 느낀 지난날의 사랑과 회한을 그린 소설. 극한 상황 속 인간의 고독과 복잡한 내면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 어반 우즈맨 (맥스 베인브리지 저ㆍ목요일) 우드 카빙으로 숟가락, 주걱, 도마 등 일상에서 쓰이는 물건을 손수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목재 구하기부터 도구 사용법, 관리법 등 초보자를 위한 목공 매뉴얼이 자세히 실려 있다.
- 2020-01-0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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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문화캘린더
- 설 명절 연휴가 이어지는 2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뮤지컬) 파가니니 일시 2월 15일~3월 31일 장소 세종M씨어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비운의 대가로 남게 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와 ‘바이올린 협주곡 2번-라 캄파넬라’ 등을 재편곡해 매력적인 ‘록클래식’으로 선보인다. (오페라) 테너 마르첼로 알바레즈 내한공연 일시 2월 19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전설적인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발굴한 천재 아티스트 ‘마르첼로 알바레즈’.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인정받으며 전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 무대를 석권한 그의 첫 내한공연이다. ‘카르멘’, ‘팔리아치’, ‘투란도트’ 등 총 13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100분간 오페라 세계에 흠뻑 빠져보자. (클래식) 알리나 이브라기모바&세드릭 티베르기엥 듀오 일시 2월 21일 장소 LG아트센터 영국의 대표 신문 ‘타임스’가 ‘음악계를 평정할 듀오’라며 극찬한 바이올리니스트 알리나 이브라기모바와 피아니스트 세드릭 티베르기엥. 이들의 합주로 낭만주의 실내악 명곡인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3번)’을 들을 수 있다. (연극) 자기 앞의 생 일시 2월 22일~3월 23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출연 양희경, 이수미, 김한, 오정택, 정원조 등 세계 3대 문학상인 ‘프랑스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자기 앞의 생’이 원작이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랍계 소년 ‘모모’와 돈을 받고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유대인 보모 ‘로자 아줌마’의 대화를 통해 사회적 차별과 약자의 현실을 고발하는 수작이다. (콘서트) 미스터션샤인 OST 오케스트라 콘서트 일시 2월 24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출연 안두현, 이현진, 송민제, 이신규 20세기 초 조선 의병들의 의와 사랑 이야기로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던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각종 차트를 휩쓴 미스터션샤인 OST가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뮤직비디오 영상과 함께 음악을 감상하며 드라마의 감동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개봉 2월 27일 장르 다큐멘터리 출연 강금연, 곽두조, 박금분 등 인생 팔십 줄에 한글과 사랑에 빠진 할머니들의 욜로(YOLO) 라이프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경북 칠곡에 사는 ‘평균 86세’ 꽃다운 청춘들이 배움의 즐거움에 빠져 인생을 재밌게 사는 비법을 전수한다.
- 2019-01-3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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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던 ‘디 코다 챔버 앙상블’ 연주회
- 셋째 주 월요일, 코엑스에서 공연하는 클래식 티켓이 생겼다. 클래식에 무식한 필자는 실은 그동안 몇 번 참석해 보았던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이 연상되어 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지루할지 모른다는 전제로 공연 좋아하는 후배에게 연락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해서 동행해 같이 가게 되었다. 공연을 좋아하는 후배가 즐거워하니 필자도 따라서 마음이 즐거워졌고 팸플릿의 프로그램을 보니 다 필자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선곡되어 있어 오늘 밤 공연은 매우 멋질 것이라는 기대로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음악적 언어를 마음껏 구사하는 크리에이티브한 재능을 가진 앙상블 팀 ‘DE CODA 디코다’가 첫 내한공연으로 우리 곁에 왔다. 우아함과 열정, 세련됨과 섬세함으로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미국, 영국, 독일, 아이슬란드, 일본, 홍콩에서 매혹적인 무대를 선보였던 디코다 챔버 앙상블이 드디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코엑스의 오디토리움에서 피아노, 비올라,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클라리넷, 바순, 트럼펫, 프렌치 혼의 악기를 10명의 연주자가 아름답게 들려주었다. 한 명씩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자신의 악기로 들려줄 곡을 설명했고 리더인 듯한 클라리넷의 조원진 씨가 통역했다. 연주자 10명 중 한국인이 세 명 있는데 남자 바이올린 김시우는 5살 때 이민을 갔다는 데도 모국어를 아주 유창하게 했다. 또 다른 여자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레이스 박은 외국에서 태어나서 간단한 인사말 외는 영어로 설명했다. 음악이 흐르면서 필자는 하마터면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놓칠 뻔했다는 데 가슴이 철렁했다. 첫 번째 음악으로 비제의 카르멘 중 아주 야성적이고 열정적인 투우사의 노래가 울렸다. 행진곡으로도 많이 쓰이는 귀에 매우 익은 음악이다. 다음은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 1악장’이 연주되었고, 젊은 날 가슴 조이며 좋아했던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가 필자의 가슴을 다시 물결치게 만들었다. 슈베르트의 ‘송어’도 좋았고 브람스의 ‘헝가리언 무곡’과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은 앉은 채로 어깨를 흔들게 했다. 그리그의 ‘아침 정경’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른 후 쇼스타코비치의 재즈모음곡이 울렸다. 재즈는 언제 들어도 끈끈하게 필자를 사로잡는데 다음 곡인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왔던 ‘포르 우나 카베사’에서는 영화 속에서 탱고를 추던 앞을 못 보는 노신사와 아름다운 여인이 떠올라 감동이 밀려와 눈물이 나기도 했다. 타이스의 명상곡으로 마음을 달래준 후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연주되었고 생상스의 백조가 울려 퍼졌다. 언제인가 어린 날 피아노를 배우면서 열심히 익혀 건반을 두드렸던 노래들이어서 자꾸만 그때가 생각나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인터미션이 지나고 2부에선 시네마 천국을 들려주었고 관객들이 앵콜! 을 외치자 미리 준비했던 듯 자기들은 뉴욕에서 온 팀이라며 ‘뉴욕뉴욕’ 그리고 빌리 조엘의 ‘뉴욕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를 선사했다. 연주자와 관객 모두 흥이 나서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환호했고 필자와 후배도 ‘앵콜’을 외치며 아름다운 곡들을 즐겼다. 마지막 앵콜곡 ‘시월의 멋진 어느 날’은 자막의 노랫말이 너무나 아름다워 가슴이 저려왔다.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같이 있어 줄 친구가 있는 이런 날이 있어 정말 살아볼 만한 아름다운 세상이다.
- 2017-11-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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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음 우리는 누구의 가슴에 따뜻한 별빛으로 남을 수 있으랴
-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젊은 시절부터 문학적 사유를 함께했던 오랜 벗을 그리워하며 서종택 고려대 명예교수이자 소설가께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서종택 소설가ㆍ고려대 명예교수 한형, ‘부치지 못한 편지’를 써보려니 자네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줄을 서누만. 나의 기억력은 참으로 한심한 편인데도 신기하게도 나에게는 60여 년 전의 자네 주소가 그대로 떠올랐네. 경기도 평택군 팽성면 본정리 산 12번지. 내가 자네에게 처음 쓴 편지의 지번이지. 우린 그때 중2였고 당시의 학생잡지 지에 다투어가며 소설(콩트)들을 발표했지. 그때 나는 자네의 인가 하는 작품을 읽고 긴 편지를 보냈고. 자네는 그보다 더 긴 장문의 답장을 보내왔고. 우리는 그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거나 무엇을 그리거나 끄적거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외롭고 허기에 찬 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었지. 한형, 나는 지금도 자네가 나에게 처음 소개해주었던 모차르트를 잊을 수 없네. 우리가 처음 만난 겨울이었지 아마. 나는 천안에서 내려오는 자네를 마중하기 위해 옆구리에 이보 안드리치의 (아마 그즈음 노벨상 수상작이었을 거야)를 끼고 광주역 플랫폼에 서 있었지. 최인훈의 에 흥분하고 방 한 칸을 찾아 밤길 헤매는 마렉 플라스코의 의 젊은 애인들을 가슴 아파하고, 그러나 이제는 이 아닌 이나 을 옆구리에 낀 채 담배를 넣고 다니던 오만방자한 고2의 겨울이었지. 진눈깨비 어지럽게 흩날리던 그해 겨울 역 광장에서 우리는 처음 수줍게 악수했고 악수가 끝나자마자 자네는 굵은 안경테를 밀어 올리며 광주엔 클래식 감상실이 있느냐고 물었어. 그리고 충장로의 그 지하다방에서 자네가 리퀘스트 곡으로 써낸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5번’을 그때 처음 알았지. 대학생이 되어 종로의 ‘르네상스’를 들락거리면서부터 나도 덩달아 고전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문득 모차르트와 하이든이 대책 없이 감미롭고 경쾌해지기 시작했고 베토벤이나 브람스가 대책 없이 무겁고 둔중하게 가슴을 울리기 시작했다네. 평생 이어폰을 끼고 지낸 나의 음악 사부인 한형의 후광이었지. 한형, 그리고 그즈음 나와 함께 아파준 한형께 감사하네. 청파동의 어느 대학에 우리들의 ‘그녀’들이 있기도 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도 다른 누구와도 함께 기숙하기를 꺼렸기 때문에 하숙집을 함께 옮겨 다녔지. 한쪽이 각혈을 시작하자 의사의 휴학과 별거 권유를 무시한 채 우리는 국 따로 반찬 따로 먹기를 맹세했지만 이내 3개월 간격으로 결핵 감염을 확인했고 주사와 투약으로 병원을 함께 들락거렸지. 떨어져 지내는 것보다는 함께 지내는 게 편했노라고 자네는 훗날 그때를 회고했고, 문단 데뷔도 못한 주제에 식민지 시대 작가의 폐결핵 동기들 흉내만 냈노라고 우리는 함께 웃었지. 우리가 앓았던 결핵은 그대로 60년대의 절망과 우울의 상징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어. 억압과 감시, 수배와 투옥, 휴교와 계엄령으로 이어진 이 시기의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혼란의 시기를 지나는 동안 문과대학의 실속 없는 문학청년의 꿈은 서서히 마모되고 스러지기 시작했지. 문청 시절의 자존심이 대학에서 구겨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비로소 문학은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고 문학은 더 이상 우리에게 약속의 땅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차리고 말았지. 한형, 창작을 접어두고 대학의 연구실이나 강단에서 우리가 보낸 세월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1970년을 전후해서 문단에 함께 데뷔했고 1980년을 전후해 함께 대학의 교수 자리는 얻을 수 있었지만, 그리고 논문에 각주를 달고 이론서를 꾸려내고 학생들에게 문학론을 강의했지만, 막을 수 없는 허허로움을 어떻게 삭이고 있었는지는 서로가 다 짐작하는 비밀이었지. 화려한 문청 시절은 추억으로 끝나고 동년배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들이 서점가의 중심 코너를 차지하고 있을 때 우리는 다만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고 그 안타까움은 엉뚱하게도 강의실에서의 폭언으로 표출되기도 했어. 사실 어느 해 자네가 대학원 강의실에서 퍼부었다는 당시의 어떤 대하소설에 대한 폄하는 좀 심했었네. 자네는 그때 그 소설을 김승옥의 에 빗대면서 그 작품의 반만큼의 감동도 없는 지루한 다큐멘터리에 불과하다고 당시의 소설을 비난했다지.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열등감을 학생들에게 들키고 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네. 가령 어느 소설에 대한 평가를 질문받고는 나는 짐짓 ‘너무 길어서’ 읽지 못했노라고, 한 권으로 마칠 이야기를 열 권으로 써내는 일은 창작가들이 저주를 퍼부어야 마땅하다고, 언어의 감각이나 경제성이야말로 서사미학의 종점이라고 갈파(!)했지. 창작보다는 비평에 몰두해버린 우리들의 파행(?)은 그러나 상실감이나 공허감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네. 자네가 펴낸 은 서사학계의 쾌거이자 성과였어. 이 책은 서사에 관련한 용어를 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개념이 형성된 배경과 이론의 전개 과정을 소논문 형식으로 서술함으로써 서사의 개념들과 그 쟁점들을 아울러 익히게 한 획기적인 책이었지. 이혼하지 못한 부부처럼 창작과 비평의 어색한 동거를 계속하면서 우리는 정년을 맞았고, 문학은 써내는 즐거움 못지않게 향유하는 즐거움도 있다고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었지. 한형, 자네가 보여준 그동안의 편식과 편애와 편파를 나는 존중하네. 그리고 자네의 폭력마저도. 그것은 자네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자 이념이었어. 도선불여악(徒善不如惡), 어쭙잖은 선은 차라리 악함만도 못하다 했던가. 자네는 기름기 있는 음식을 기피했고 과시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했으며 위선을 경멸했었지. 호불호가 분명했고 어떤 제자에 대한 편파적인 애정은 징그러웠고 그 반대 또한 무서울 정도였다니. 그래서 사람들은 자네를 성질 더러운 인간이라 했고 60년 지기인 또 하나의 우리의 친구 오탁번은 그러한 자네를 대책 없는 놈이라 말하곤 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단연코 ‘개성’으로 결론지었다네. 이 편파적인 판정을 비난할 사람은 없을 거네. 왜냐면 우리보다 자네를 더 잘 아는 친구들은 없다고 자부하기 때문이지. 자네는 편식했지만 그 음식은 순정했고 편견은 심했지만 결백했으며 사람을 편애했지만 그들을 감식하지는 않았지. 폭력 교수로 몰아세우는 학생 대표를 폭력으로 제압했던 자네의 80년대식 무용담은 지금 들으면 자네는 운도 많이 따랐었지. 한형, 자네가 중환자실로 옮겨가기 하루 전, 자네는 나에게 “당분간은 죽을 기미가 안 보인다”고 껄껄 웃었고 나는 “그래, 우린 아직 갚아야 할 것이 있다” 어쩌고 지껄였지. 그것이 자네와 주고받은 마지막 대화였네. 자네는 그날 담당 간호사에게 생뚱맞게도 멘델스존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지. 잠깐 당황하던 간호사가 이내 그의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봄노래를 좋아하노라고 대답해 자네를 감동시켰고, 자네는 이런 병원이라면 편하게 입원할 수 있겠노라고 기뻐했다지. 한형, 아버지께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의 후유증만을 허락해달라는 아들 근이 녀석의 기도도 헛되이 자네는 의식을 잃은 지 2주일 만에 먼 길 떠나고 말았지. 삼우제를 준비하면서 근이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어. 짧은 묘비명이 필요하다고 했네. 나는 주저 없이 자네의 짧은 소설의 긴 제목을 그대로 옮겨 보냈네. “이다음 우리는 누구의 가슴에 따뜻한 별빛으로 남을 수 있으랴.” >>서종택 1944년 전남 강진 출생, 광주 사레지오고를 거쳐 고려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 졸업,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1969년 , 에 첫 소설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 , , , , 등의 창작집과 , , 등의 논저가 있다.
- 2017-04-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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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싱글 PART3] 영화 속 싱글은 '싱글은 더블이 되고 싶어하고 더블은 싱글을 그리워하는'
- 영화가 중년 독신 남녀를 그려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추릴 수 있다. 지나치게 낭만적이거나 또는 지나치게 뒤틀려 있거나. 김유준 영화 전문 프리랜서 나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은 중년 독신들의 있을 법하지 않은 사랑을 있을 법하게 그려낸 대표적인 영화들. 현실에서는 남성이 멜 깁슨이나 조지 클루니처럼 ‘멋지고 튼튼하게’ 늙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중년 독신 여성이 헬렌 헌트나 미셸 파이퍼처럼 아름답고 매력적이기도 불가능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두 영화는 그 힘든 것들을 가볍게 해낸다. 중년들의 세상에서는 ‘노티’가 으레 공기처럼 떠다니지만 그들에게서는 그 비슷한 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외로운 신세를 한탄할 때마저 위트 있고 경쾌하다. 그런 그들은 영화 내내 활기찬 모습으로 중년의 사랑을 흥미롭고 유머러스하게 이끌어나간다. 미국의 낸시 마이어스는 이 카테고리(중년 독신들의 사랑)를 대표할 만한 감독. 2000년의 에서 시작해 2003년의 과 2009년의 를 거쳐 최근의 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중년들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그득 차 있다. 때로는 설정들이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사랑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매혹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반면 스티브 매퀸 감독이 거머쥔 (2011)의 카메라는 혹독하다. 영화 속에서 브랜든(마이클 패스벤더)은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전문직 중년 독신 남성.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의 마음은 결핍으로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낸시 마이어스는 영화 에서 “내 삶에 뚫린 구멍을 메우고 싶다”는 주인공 벤(로버트 드니로)에게 인터넷 쇼핑몰 회사 인턴으로 지원하게 만들지만, 스티브 매퀸 감독은 그와 같은 낭만적 상상 따위는 애초부터 관심에 없다. 브랜든이 빈 곳을 채우려 집착하는 것은 동물적 성이다. 광적인 포르노 영상 수집에 음란채팅에 성 매매에 이르기까지… 섹스를 갈구하는 그의 발걸음, 섹스와 마주하는 그의 몸부림은 쾌락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기학대에 가깝다. 브랜든의 여동생 씨씨(캐리 멀리건) 또한 다르지 않다. 다만, 스스로는 결코 채우지 못하는 마음속 어딘가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씨씨는 그러면서 말한다.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영상을 지켜보는 우리 또한 그녀가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님을 안다.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도 안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녀의 삶을 녹록하게 풀어줄 생각이 없다. 스티븐 매퀸의 차가운 영상을 좇다 보면 브랜든과 씨씨가 평생 구원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리고 남매의 삶이 곧 우리 것처럼 느껴져 흠칫 뒤를 돌아다보게 된다. 영국 국영방송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 중 한 편. 노파심에서 덧붙이면 감독 스티브 매퀸은 올드 팬들이 로 기억하는 그 불세출의 명배우가 아니다(이미 세상을 떴으니 그럴 리 없다). 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품에 안은, 최근 미국 영화계가 가장 주목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한 가지만 더. 독일 출신으로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는 시리즈에서 매그니토 역을 연기한 바로 그 배우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브랜든을 연기해 베스니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최근(9월 29일)에 개봉된 프랑스 영화 은 좀 독특하다. ‘지나치게 낭만적이거나 지나치게 뒤틀려 있다’는 두 가지 시선의 가운데쯤 위치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중년 독신을 다룬 영화들 가운데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철학 교사 나탈리(이자벨 위페르)가 맞닥뜨리는 불행은 우리 또한 종종 겪는 그런 종류.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어머니를 여의며, 아이들과의 사이가 점점 더 멀어진다. 경력 쪽에서도 마찬가지. 예전 같으면 가볍게 해치웠을 일들이 점점 더 힘겨워지다가, 끝내 오랫동안 자부심을 갖고 집필해온 철학 총서를 유행에 맞게 바꾸는 작업에서도 밀리고 만다. 나탈리가 우리와 다른 점이라면 그녀가 이 별별 종류의 불행을 거의 동시에 맞닥뜨린다는 점.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바람이 들통난 뒤의 남편 태도. “그냥 좀 모른 척하면 안 돼?” 숫제 적반하장 수준이다. 이제 나탈리의 신세는 늙고 뚱뚱해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어머니의 고양이 ‘판도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탄할 만한 것은 그런 불행을 받아들이는 나탈리의 자세. 그녀는 통곡하지 않는다. 몸부림치지도 않는다. 억울할 법도 하건만,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모든 것들을 껴안는다. 우리가 불행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그녀는 변화라고 여긴다. 남편과 함께 들었던 브람스와 슈만이 지겨워지고, 어린 제자의 차에서 들려오는 포크송이 좋게 느껴지는 것. 중년의 시점에서 찾아온 불행들이 그런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인식이다. 그러면서 말한다. “변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영상은 달빛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면서도 단단한 통찰력을 더불어 지니고 있다. 주연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프랑스에서는 ‘국민 여배우’로 통하는 베테랑 여배우.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좋은 연기를 펼쳐 보인다. 프랑스 영화의 깊이를 기억하는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다. 우리나라 영화 가운데에서는 2014년 발표된 를 꼽을 만하다. 나이든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유독 야멸찬 것이 우리 영화(또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 특징 중 하나이지만, 강제규 감독의 이 영화만은 경우가 다르다. 성칠(박근형)이 금님(윤여정)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약속… 우리 둘 중에 누가 먼저 죽든, 울지 맙시다. 어차피 잠깐 떨어져 있는 거니까” 할 때는 가슴이 뭉클해져온다. 물론 그조차 미국 영화 이 원작이라는 점이 함정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 2016-11-0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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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사연] 92세 이기섭의 오스트리아 기행-①
- ※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 이기섭(92)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딸과 사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입니다. 이기섭씨 처럼 독자 여러분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항상 기다립니다.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 기행- 이기섭 오스트리아에 다녀왔다. 내 인생에 있어서 먼 해외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90세가 넘으면서 모든 것이 약간씩 귀찮아지는 경향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나 열심히 다녔던 등산도 잘 안 가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두 아들이 오스트리아 여행에 아버지를 모시고 싶다고 했다. 오스트리아에는 딸이 살고 있다. 사위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 본부가 있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에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내년에 귀국예정이다. 사위는 전부터 계속 나를 초청했었으나, 나이 탓인지 좀 귀찮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계속 거절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 2명이 사위와 같이 여행경비를 부담하면서 정성껏 모시겠다고 하니 용기를 내어 다녀오게 되었다. 2014년 5월 1일 출국해, 5월 10일 귀국했다. 나의 건강을 염려해 기간을 좀 짧게 잡은 것 같았다. 오랜만에 비행기 실컷 타 보았다. 갈 때는 인천공항 출발, 이스탄불 경유, 비엔나까지 약 14시간, 돌아 올 때도 같은 노선인데 약 13시간 걸린 것 같다. 갈 때 비행기에서 제공된 비빔밥이 참 맛있었다. 성수기라 그런지 갈 때 올 때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었는데, 나처럼 백발노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역시 여행은 젊어서 다니는 거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옆자리에 앉은 아들은 비행 내내 영화나 음악 감상으로 바쁜 모습인데, 난 기기 조작도 귀찮고 해서 그냥 무료하게 앉아 있었다. 비엔나 도착 후엔 딸집에 편안히 머물면서 이곳저곳 다녀보았다. 이번 오스트리아 여행은 한마디로 음악과 함께 낭만을 마음속에 가득 품었던 여행이었다. 5월은 역시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아닌가 싶다. 아주 딱 맞는 온난한 기후라 쾌적하게 지내다 왔다. ◇ 오스트리아 개관 오스트리아하면 수많은 음악가와 클래식 음악의 선율이 떠오른다.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브람스와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를 배출해 낸 국가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약 8백 만명 정도로, 절대 다수가 카톨릭 교도라고 한다. 모든 면에서 넉넉하고 느긋하다는 인상과 함께 검소한 느낌을 주었다. 위 말에 의하면, 오스트리아의 법은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버스가 2시간 이상 운행하는 경우는 운전자가 2명 탑승, 교대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고 한다. 안전 운전을 위한 조치라 하겠다. 오랜 세월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 사는 우리와 달리 ‘안전 안전 문화’가 확실히 자리 잡고 있다고 하겠다. 동쪽 비엔나에서 서쪽 찰츠부르크행 고속도로로 사위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오스트리아의 자연경관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알프스산맥의 눈덮힌 산악지대도 많이 보였다. 동북쪽으로 평지와 완만한 경사 지대인데, 농지의 잘 정리 정돈된 모습과 곳곳에 펼쳐지는 노란 유채꽃 단지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대부분의 인구는 동쪽에 모여 살고 있다고 한다. 서쪽 지역은 골짜기가 깊고 높은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어 여기저기 스키장도 많이 보였다. 서쪽으로 가면서 머물렀던 스키산장에서의 추억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 2014-06-1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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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년 전통 체코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 2014년 '체코 음악의 해'를 맞아 체코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체코필)가 13년 만에 한국 관객과의 만남을 가진다. 체코필은 지난 1991년, 2001년에 한국을 찾아 체코 음악의 진수를 알린바 있다. 이어 5월 27일 오후 8시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무대에서 공연을 펼친다. 1896년 1월 4일 체코 프라하 루돌피눔에서 드보르자크의 지휘로 연주회를 시작한 118년 전통의 체코필은 2008년 '그라모폰'지 선정 세계 20대 최고 오케스트라에 오르기도 했다. 올해 체코필은 수석지휘자 이르지 벨로흘라베크와 데카 레이블을 통해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전곡과 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페터 짐머만·피아니스트 게릭 올슨·첼리스트 앨리사 웨일러스틴의 협연으로 협주곡 전곡을 음반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2014년은 1924년 이래 10년마다 체코에서 열리는 '체코 음악의 해'로 스메타나 탄생 190주년을 비롯해 레오시 야나체크 탄생 160주년, 드보르자크 서거 110주년 등 음악사적으로도 체코에 뜻깊은 한 해다. 이에 맞춰 체코필은 이번 무대에서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몰다우'와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을 들려줄 예정이다. 피아노의 거장 알프레드 브렌델의 애제자이자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로 잘 알려진 영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는 협연자로 이번 무대에 올라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 2014-04-2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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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계의 얼굴, ‘최고연주가’와 만나세요
- 국내 대표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거듭나고 있는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상반기 패키지 공연 예매가 시작됐다. 특히 내달 11일까지 조기 예매할 경우 티켓값의 50%가 특별 할인된다. 오는 4월 16일부터 7월 8일까지 네 차례 공연되는 이번 수원시향 상반기 패키지는 ‘최고연주가 시리즈’라는 테마로 각 분야를 대표하는 클래식계의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첫 공연으로 내달 16일 진행되는 정기연주회에는 수원시향 김대진 음악감독의 지휘로 ‘2013년 퀸엘리자베스콩쿨’ 1위인 피아니스트 보리스 길트버그를 초청하여 라흐마니노프 대표곡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 연주되고, 유럽무대에서 찬사 받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이 감동을 전한다. 5월 16일은 정주영 부지휘자와 수원시립교향악단의 관악수석연주자들이 함께 하며 수원시향의 저력을 확인 할 수 있다. 6월 3일 정기연주회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25년 역사를 함께 한 후 코리안 심포니로 자리를 옮긴 지휘자 임헌정이 그의 대표 레퍼토리인 브람스를, 미국 등 해외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첼리스트 문태국과 함께 슈만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며 낭만의 진수를 선보인다. 마지막으로 7월 8일 정기연주회는 다양한 오케스트라와 활발한 활동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지휘자 성기선과 국내 정상급 현악 앙상블인 ‘조이 오브 스트링스’의 음악감독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로 재직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함께 한다. 예매는 수원시립예술단 홈페이지(www.artsuwon.or.kr)와 전화(031-250-5362~5)를 통해 선착순 판매된다. 경기일보 박광수기자 ksthink@kyeonggi.com
- 2014-03-18 0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