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9주년 기념 특집 기획] 우리 시대, 어른을 찾아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
불확실한 미래에 앞날을 의논하고 갈피를 잡아줄 어른은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우왕좌왕하던 청년기를 지나 어느덧 한 사회의 어른 위치에 놓인 5060세대. 나는 어떤 어른인지, 왜 어른이 돼야 하는지,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뒤따르는 시기다. 이에 본지는 월간지 창간 9주년을 맞아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전국 2030·5060세대 500명 △2024년 2월 29일~3월 4일 △표본 오차 ±4.4% △신뢰수준 95%)를 실시했다. 해당 결과와 2014년 진행된 동명의 조사 데이터를 비교·분석해 현대 사회 어른의 시대상과 세대 간 존경에 대한 인식을 조명해본다.
본지가 진행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5060세대의 인식 개선과 노력을 오늘날 2030세대는 잘 알지 못하는 눈치다. ‘존경받는 어른이 되기 위한 노력’을 살피는 항목에서 5060세대는 ‘소통을 위한 젊은 층 이해’(41.6%)를 비롯해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노력’(25.2%), 도덕적 양심적 생활(14%) 등을 한다고 응답했으나, 2030세대는 ‘잘 모르겠다’(31.6%)고 반응했다. 그밖에 항목들에 대해서도 5060세대의 답변 비율보다는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였다. 그러는 한편 자신들이 5060세대가 됐을 때 현재의 기성세대와는 다를 것이라 말하는 2030세대는 2014년에 이어 70%를 웃돌았다.
박민선 사회복지학 박사(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는 “결국 노력의 방식이 잘못됐다고 본다. 요즘 중장년들을 보면 나름 젊은 세대와의 소통이 중요함을 인지하고 그들과 가까워지려 애쓴다. 다만 사적인 이야기를 하려한다거나, 회식 자리를 만드는 등 요즘 2030세대가 부담스러워 하는 방법을 택해 오히려 벽을 쌓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세대갈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다보면, 직장 등에서 상당수 5060세대가 2030세대의 눈치를 보더라. 그런 분들은 역으로 청년들이 불편해하고 싫어할 까봐 아예 대화에 안 끼거나, 회식 자리에서 빠지는 식으로 거리를 둔다. 이렇게 아예 소통이 단절된 상태가 되다 보니 기성세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무슨 노력을 하는지, 2030세대 입장에서는 모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상단 도표에서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은 10년 사이 눈에 띄게 줄었다(43.3%→25.2%). 더불어 ‘존경스러운/존경스럽지 않은’ 5060세대의 모습을 묻는 질문에서도 경제력을 키워드로 한 항목의 비율은 현저히 줄어든 모습이다. 2014년만 해도 5060세대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보일 때 2030세대가 존경할 것’(24.9%), ‘경제적 능력을 갖지 못할 때 2030세대가 존경하지 않을 것’(31.4%)이라 여겼다. 10년이 흐른 현재, 각각의 항목 수치는 절반 이상 낮아졌다. 역으로 2030세대는 해당 수치가 상대적으로 미미하게 높아졌지만, 전체 중 최하위 항목인 만큼 절대적인 수치는 매우 낮은 상황이다. 2014년 결과에선 ‘경제력’ 관련 항목이 두 세대 간 의견 차가 가장 심했지만, 10년이 뒤 격차가 줄어든 점은 긍정적이다.
박민선 박사는 “과거에는 경제적인 능력도 하나의 권위와 존경의 덕목으로 인식되곤 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자식들에게 부담 안 지우면 어른 도리를 한 것이라 여기는 이도 많았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젊은 세대는 경제력만으론 존경심을 표하지는 않는다”며 “최근의 결과를 보면, 2030세대의 생각을 현재의 5060세대가 수용하고, 이해하려 노력해나가는 흐름으로 읽힌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10년 전과 비교한 조사 결과를 볼 때 양 세대 모두 소통의 필요성을 느끼고, 원한다는 측면에서 다행스럽고, 희망적이라고 본다. 다만 세대 간 존중과 소통을 위해서는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 자꾸 5060세대가 회피하는 방식을 취하다 보면 앞선 결과처럼 2030세대가 윗세대의 처지를 모르거나, 소통의 필요성을 못 느낄 수 있다. 너무 거리를 두기보다는 조금은 충돌하면서, 서로 부딪힐 기회를 만들어도 좋겠다. 세대를 나누지 않고 공통 관심사와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기반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속 배달! 짜장면 한 그릇도 정성스럽게 배달해드립니다.’ 한때 중국집 전단지에는 이런 홍보 글귀가 자주 쓰였다. 그러나 배달 앱과 대행업체 등이 성행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요즘은 ‘배달료를 추가 지불해야 한 집만 가는 신속 배달’이 가능하고, ‘최소 주문 금액을 채워야 짜장면 한 그릇’도 받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마저도 배달 앱을 문제없이 사용했을 때의 이야기다. 예전보다 수고와 값을 더 치르는 건 분명한 듯한데, 과연 우리 집 문 앞에는 ‘정성스러운 배달음식’이 놓여 있는 걸까?
배달 주문량이 급속도로 증가한 건 아무래도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식당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배달로나마 외식을 즐기게 된 것. 지난해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신한카드 이용 기준으로 주요 배달 앱 4개 업체의 이용 건수와 이용액은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보다 각각 206%와 240% 급증했다. 같은 리포트에서 배달 앱의 연령대별 이용 비중을 보면 40대와 50대는 2019년 전체의 15%와 4%에 그쳤지만, 2년 뒤 24%와 7%로 늘어났다. 이와 비슷한 결과를 두고 배달업계에 중장년이 큰손으로 떠올랐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전체 중장년 인구 대비 사용자 비중은 미지수다.
한편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2019 배달음식, 배달 앱(어플) 관련 U&A 조사’ 결과를 보면 20~30대의 경우 약 60%가 배달 앱 이용 횟수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반면, 40~50대는 약 44%로 절반을 밑돌았다. 아울러 ‘나에게 배달 앱은 꼭 필요하다’ 항목에서 20~30대는 2명 중 1명꼴로 ‘그렇다’고 반응했지만, 40~50대는 4명 중 1명만이 필요성을 느낀다고 답했다. ‘주변 사람에게 배달 앱 이용을 추천하는가’를 묻는 항목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종합해보면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장년의 비율은 이전보다 증가했더라도, 만족도 측면에서는 미지근한 반응이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편리성, 가격, 품질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눠봄 직하다. 흥미로운 건 이 세 가지 요소가 배달 서비스를 선호하는 이유와도 상충된다는 점이다.
메뉴 고르다 한 세월, 라면이나 먹고 말지!
“여기 OO빌라 △△호인데요, 짜장면 하나요.” 과거 배달 주문을 할 때면 이렇게 사는 곳 주소와 메뉴만 말하면 상황이 끝났다. 번지수 없이 건물명만으로도 소통되거나, 단골이라면 ‘누구네 집’ 정도로 알아채는 사장님도 있었다. 배달 앱 서비스 초반에만 하더라도 중장년들은 ‘직접 전화를 안 했는데 배달이 잘 올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확한 주소와 연락처, 미리 계산까지 해두기 때문에 주문 오류가 거의 없는 편이다. 오히려 과거 주소를 틀리거나 연락처가 없어서, 배달을 갔는데 현금이 부족해서 등의 이유로 종종 문제가 생기곤 했다.
그러나 문제는 배달 앱 접근이나 주문 상황에서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배달 앱 사용자 1위로 알려진 ‘배달의민족’의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0 모바일 앱 접근성 실태조사’에서 국내 다운로드 상위 300대 앱 중 점수 38.9점을 받아 꼴찌인 300위를 기록했다. 해당 연구는 고령자와 장애인의 앱 접근성을 파악하는 척도로 쓰인 만큼, 중장년 배달 앱 사용자의 불편함이 드러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요즘은 배달의민족이 아닌 다른 배달 앱에서도 주문이 만만찮다는 걸 느낀다. 기본적인 메뉴 고르기부터 난항이다. 메뉴가 적은 가게라면 수월하지만, 음식 종류가 많고 선택사항이 많은 곳일수록 손가락은 화면을 스크롤하기 바쁘다. 가령 강남에 있는 한 도시락 전문점의 경우 앱에 등록된 메뉴 가짓수만 90여 개에 이른다. 이 수많은 메뉴 중 겨우 하나 고르고 나면 다음 화면에 추가선택 항목이 나온다. 주로 토핑이나 맛, 사이드 메뉴 등을 고르게 하기 위함인데, 이 또한 기본 메뉴 못지않게 줄줄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세세하게 챙기기 위한 방편으로 보이나, 앱 주문이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에게는 불편함과 피로함만 더해질 뿐이다.
이에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간혹 젊은이들도 앱 주문을 번거롭게 여기거나 힘들어하더라. 중장년은 오죽할까. 밥하기 싫어 편하게 먹으려다 앱 설치부터 주문, 결제까지 고충을 겪다 보면 ‘그냥 라면이나 먹고 말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오프라인에서 사용하는 키오스크나 테이블 오더는 좀 더 접근성이 쉽고, 주변의 도움을 받기도 용이하다. 그에 반해 배달 앱은 혼자 해내려다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비싼 배달료 부담, 괜한 낭비라는 죄책감 들기도
과거엔 배달료를 지불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배달 대행업체가 등장하면서 음식값과 별개로 배달료가 책정되기 시작했다. 통상 배달 앱에 가게마다 게재된 배달료의 경우 대행업체가 제시하는 금액을 가게 사장님과 소비자가 나눠 내는 격이다. 가게 사정에 따라 사장님이 전액 배달료를 부담하기도 하고, 적당히 나누거나, 오롯이 소비자가 내야 하는경우도 있다.
사실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과거처럼 배달직원을 두려면 부담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일단 오토바이가 있어야 하고, 주차할 공간이 필요하다. 직원을 고용하면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고, 만에 하나 사고가 난다면 이에 대한 책임도 뒤따른다. 배달 대행업체를 이용하면 이러한 부담을 더는 동시에 물리적 한계도 덜해진다. 가령 점심시간 한 시간 동안 주문량이 폭주한다고 할 때, 배달직원 한 명이 처리할 수 있는 배달 건수는 많지 않다. 이에 반해 대행업체를 쓰면 제한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배달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업체들이 배달대행을 선호하고, 이에 따른 배달료가 부과되는 것은 일부분 이해하나 최근 도가 지나치다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높다. 심한 경우 배달료가 1만 원을 넘는 곳도 있어,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설문조사를 보면 ‘배달 앱 이용 가격이 합리적이냐’는 질문에 75.5%가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배달료에 할인 혜택을 두기도 하는데, 내용을 자세히 보면 주문 금액에 따라 달라진다. 많이 주문할수록 배달료를 인하해준다는 것인데, 이러나저러나 전체 금액이 부담스러운 건 매한가지다. 게다가 최소 주문 금액이라는 기준도 통과해야 한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1인 식사 메뉴 하나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렵다. 따라서 1인 가구거나 혼자 식사해야 할 때는 음료나 불필요한 메뉴를 추가해가며 금액을 채우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치솟는 배달료 문제에 대해 이은희 교수는 같은 경제적 부담이라도 젊은 세대와 중장년이 느끼는 바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이들은 편리함을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고 여기지만, 이러한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들은 자신이 게을러서, 낭비가 심해서 불필요한 돈을 낸다는 죄책감을 갖는 듯하다”며 “가령 10분이면 걸어갈 거리의 가게에 직접 가서 먹거나 포장해오면 몇 천 원은 아낀다는 절약 정신을 발휘하는 분들도 있다. 한편으론 이런 성향이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배달음식을 계속 선호하다 보면 바깥 활동이 덜해지면서 사회성이나 체력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굳이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며 이러한 서비스를 지향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요즘은 배달 앱에 ‘포장’ 기능도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활용하면서 운동 삼아 직접 오가는 것도 괜찮다”고 조언했다.
편리한 배달음식, 위생과 안전도 고려해봐야
배달음식의 특성상 매장에서 갓 나온 음식 만큼의 상태를 기대하긴 어렵다. 팅팅 불어버린 면, 눅눅해진 튀김, 식어버린 국물도 어느 정도 감수한다. 처음 주문하는 곳이라면 맛이 떨어져도 그러려니 한다. 문제는 배달음식의 품질이다. 실제 고객들이 작성하는 리뷰 페이지를 보면 적나라하게 이물질 사진을 올리거나, 불량한 식재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종종 보인다. 이는 식당의 이미지도 나빠질뿐더러, 배달음식에 대한 불신이 싹트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그러나 소비자의 이러한 염려는 기우가 아니다.
실제 배달음식점에 대한 식품위생 관련 적발 건수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배달음식점 대상 단속 결과 식품위생과 관련해 적발한 건수는 2019년 94건에서 2020년 1200건으로 무려 12.7배로 늘어났다. 아울러 식약처 ‘배달 앱 이물 통보 현황’ 자료에 따르면, 배달음식에서 이물이 검출돼 신고된 건수는 2019년 810건에서 2021년 6월 말 기준 2874건으로 255% 급증했다. 가장 많이 나온 이물은 머리카락, 벌레, 금속, 비닐, 플라스틱 순이다.
지난해 열린 국민생활 과학기술포럼 ‘코로나 시대, 배달음식과 국민건강’에서 함선옥 연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배달음식의 식품안전 이슈를 발표했다. 함 교수는 “배달 앱에서 소비자 만족도가 높은 배달음식 업체 10곳을 무작위로 조사했더니, 그중 6곳이 위생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들이 주방 내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고, 배달음식점 대상 맞춤 규제가 부재하다는 것”이라며 “배달원들이 사용하는 배달용 박스를 살펴보면 관리되지 않아 비위생적인 상태가 많다. 이런 부분에 대한 규정도 필요해 보인다”라고 언급했다.
전향숙 국민생활과학자문단 먹거리안전분과위원장(중앙대학교 교수)은 같은 포럼에서 “배달음식이 우리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다. 현재 우리 배달식품의 섭취는 맛, 가격, 편리성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이제는 배달식품이 영양학적으로 충분한가, 위생 상태는 양호한가, 포장 용기의 문제점은 없는가 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때”라며 배달음식의 영양 및 품질 등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지난 3년의 코로나19 팬데믹과 1인 가구 증가는 식문화의 변화를 가져왔다. 음식 배달 문화가 활성화됐으며, 밀키트를 포함한 가정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HMR) 시장이 확대됐다. 더 나아가 식품 구독경제까지 영향력을 확산하고 있다. 중장년에 초점을 맞춰 2023년 식품 외식산업 트렌드를 알아봤다.
요즘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워킹맘’ 김진희(52) 씨. 중학생 딸아이의 생일상을 차려줘야 하는데 요리할 시간이 도통 나지 않았다. 결국 김 씨는 딸의 생일 당일 새벽 배송이 가능한 플랫폼을 통해 미역국 레토르트, 잡채와 소불고기 밀키트를 구매했다. 그날 저녁 김 씨는 미역국, 잡채, 소불고기를 조리하고, 배달 앱에서 딸이 좋아하는 음식점의 족발을 주문해 상을 차렸다. 어쨌거나 엄마가 차려준 생일상을 맛있게 먹는 딸의 모습을 보고 김 씨는 안심하면서도 미안함을 느꼈다. 자신의 생일 때 엄마가 차려주던 손맛 가득한 미역국이 그리워지면서….
중장년 소비자는 집밥을 선호한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알고 보면 중장년은 외식산업을 주름잡는 큰손으로 통한다.
지난 5월 KB국민카드가 회원 2000만 명의 온·오프라인 주요 업종별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50세 이상은 온라인 쇼핑몰 및 배달 앱에서 높아진 소비 영향력을 보였다. 이들의 지난해 온라인 쇼핑몰 매출액 증가율은 38%였고, 배달 앱 매출액 증가율은 37%였다. 반면 20~49세의 온라인 쇼핑몰 매출액 증가율은 13%, 배달 앱 매출액 증가율은 7%에 그쳤다.
더불어 50·60 주부들의 밀키트, 즉석섭취식품 등 간편식 소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멤버스와 신한카드가 데이터 분석 교류 결과 발간한 ‘가정간편식 소비 트렌드 리포트’를 보면, 2022년 상반기 오프라인 마트와 슈퍼에서 50대와 60대 이상의 간편식 구매 비중은 각각 26.3%와 14.3%로 집계됐다. 이는 3년 전인 2019년 상반기보다 각각 5.0%p 4.3%p 증가한 수치다.
성별로 보면 여성(70.4%)의 구매 비중이 남성(29.6%)보다 높았다. 남성의 구매 비중 역시 매해 꾸준히 확대되는 추세다. 구매량 1위는 2022년 상반기 기준으로 집밥의 대표 메뉴인 즉석 국쪾찌개가 차지했다. 이어 냉동 만두, 냉동 튀김, 즉석 카레쪾짜장, 냉장면, 즉석 밥, 즉석 죽, 냉장 밀키트, 냉장 간편 떡볶이 등의 순으로 구매가 많았다.
간편식으로 건강도 챙기자
식품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간편식 시장 규모는 5조 원에 달한다. 코로나19가 잦아든 후에도 간편식은 여전히 인기지만, 올해 들어 이전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띤다. 가정식과 외식의 대체재가 아닌 새로운 식품 소비 형태로 성장했다. 즉 ‘한 끼를 때우는’ 간편식 개념에서 ‘식사’ 개념으로 변모한 것이다. 여기에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해지며 케어푸드(Care-Food)도 간편식 형태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케어푸드란 건강상의 이유로 맞춤형 식품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차세대 먹거리를 말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씹고 삼키기 편한 식품이 떠오른다. 그러나 점점 케어푸드의 개념이 넓어지고 있다. 당뇨, 신장 질환 등 환자식도 나오고, 건강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중년부터 젊은 20·30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
CJ프레시웨이, 풀무원, 현대그린푸드, 아워홈 등 주요 식품업체는 케어푸드에 대해 대용식이 아닌 맛있고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초점을 맞췄다. 현대그린푸드의 케어푸드 전문 브랜드 ‘그리팅’의 케어 식단은 식사 목적에 맞춰 영양이 설계된 반찬과 샐러드를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3대 영양소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을 고려하며, 암·당뇨 등 질환별 전문 환자식도 제공한다. 지난해 매출이 46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0% 증가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풀무원식품의 ‘디자인 밀’은 생애주기별 영양 기준과 생활 주기별 건강 정보를 기반으로 식사를 설계한다. 특히 중장년층에게는 칼로리를 조절한 ‘300 샐러드 및 라이스 meal’과 ‘500kcal 맞춤 식단’을, 소화력이 떨어지는 고령층에게는 ‘궁중섭산적’과 ‘7Days 영양진밥’ 등을 제공한다. 올 1분기를 기준으로 보면, 노령층을 위한 케어푸드(25%)보다 일반 성인을 위한 영양균형식(30%)의 매출이 더 높았다. 케어푸드 소비자가 전 연령대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고급 레스토랑 음식을 만들어 즐기는 ‘홈스토랑’이 인기를 끌며 외식 브랜드, 호텔, 가전업계까지 간편식 시장에 진입했다. 또한 전 세계적인 ESG, 기후 위기, 가축 전염병 등 공급망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국내 식품업계에서는 식물성 식품 전문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간편식을 출시하고 있다.
중장년에게도 이와 같은 식문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유통학회 회장을 맡은 바 있는 서용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개인적으로 55세부터 75세까지, 골드 제너레이션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에는 60세 전후로 은퇴했지만, 이제는 80대까지도 일하는 시대다. 이에 따라 현재의 중장년층은 소득이 높아졌고 취향이 고급스러워졌으며, 프리미엄 식품 서비스를 원한다”고 말했다.
배달 앱 이용 감소와 구독경제 활성화
간편식과 반대로 소비자의 배달 앱 이용률은 떨어지는 추세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 앱 3사의 지난 3월 월간 활성이용자 수(MAU)는 2898만 명으로 전년 동기(3532만 명) 대비 18% 줄었다. 지난 1월 이용자 수(3021만 명)에 비해서도 123만 명이나 감소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외출이 자유로워진 가운데, 물가 상승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배달비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 요기요는 최근 업계 최초로 월 9900원 배달 구독 서비스를 선보였다. 앱 내 ‘요기패스X’ 배지가 붙은 가게에서 최소 주문 금액 1만 7000원 이상 주문하면 배달비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도 요기요에 자극을 받아 구독 서비스를 시행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우리의 일상에 구독경제가 깊숙이 자리 잡았는데, 배달 앱까지 이 시장에 뛰어든 것은 눈여겨볼 일이다. 구독경제는 소비자가 정기적으로 일정 비용을 지급하고 원하는 상품 혹은 서비스를 소비하는 방식을 말한다. KT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구독경제 시장 규모는 2016년 25조 9000억 원에서 2020년 40조 1000억 원으로 4년 동안 무려 55%나 성장했다. 2025년에는 최대 100조 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국내 소비자 10명 중 5~6명은 식품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2020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식품 구독경제 이용실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7.2%가 해당 서비스를 이용 중이며, 66.2%가 ‘편리함’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비용 절약’(28.4%), ‘선택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어서’(21.9%)라는 답변도 뒤를 이었다.
식품 구독 서비스 하면 풀무원의 녹즙, 서울우유의 우유, 한국야쿠르트의 야쿠르트 배달 등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반찬, 샐러드부터 빵, 과자,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구독 서비스가 가능하다. 아워홈은 개인별 건강 맞춤 정기 구독 서비스 ‘캘리스랩’(Kalis lab)을 통해 개인별 맞춤 식단과 함께 다양한 건강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한다. 롯데·현대·신세계백화점 등에서는 반찬 구독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서용구 교수는 “이제 모든 시장은 구독 서비스로 갈 것”이라면서 “구독경제에서 중요한 포인트 두 가지는 구독자 수를 얼마나 많이 늘리느냐, 어떻게 재구독을 하게 만드느냐에 달렸다. 그래서 기업 입장에서는 마케팅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MZ세대가 환경·동물보호 등의 ‘가치소비’를 한다고 알려졌는데, 중장년 또한 가치소비를 하고 있다. 소비의 큰손인 중장년의 마음을 사로잡아 구독까지 이어지게 하려면 우리만의 차별화된 가치를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이숙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얼마나 바쁜가 하면, 동시에 네 작품의 촬영 스케줄을 소화해야 할 정도다. 많은 작품에서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인정받는 배우라는 뜻이다. 그러나 서이숙은 아직 목마르다고 말한다. 전성기 또한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언제, 어떤 작품을 통해 서이숙(56)이라는 배우를 알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는 JTBC ‘부부의 세계’ 속 최 회장의 아내로, 누군가는 tvN ‘호텔 델루나’의 마고신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서이숙이 드라마에 출연해 연기를 펼친 지는 1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가 아니다. 그가 드라마에 출연하기까지 무려 2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중에 무명 연극배우로 지내며 빛을 보지 못한 시간이 20년이다.
서이숙은 긴 어둠의 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믿는 시간의 공력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시간의 공력이란 시간을 들인 만큼 값진 결과가 언젠가는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이숙은 시간의 공력 끝에 행복의 경지가 있고, 언젠가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저는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럼 도대체 전성기는 뭘까 하는 질문이 생기죠. 제 연기에 대한 만족감이 10점 만점에 5점을 넘겨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아직 전성기가 안 왔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언젠가는 올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시간의 공력을 믿거든요.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초조함이 없답니다.”
갑상선암, TV 출연으로 전화위복
서이숙은 배우로서 행복을 연극 무대에 섰을 때 마지막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그때도 자신의 연기에 만족해서는 아니었다. 관객과의 호흡을 통해 짜릿함을 느꼈다. 그는 “정동환 선생님과 함께한 ‘고곤의 선물’과 ‘오이디푸스’ 무대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꼈다”면서 “내 연기에 관객들이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행복을 느끼기까지 서이숙은 지난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스무 살에 우연히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서이숙은 수원예술극장 단원에 지원해 합격했다. 궁핍한 배우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1989년에 극단 미추에 입단했지만, 15년간 코러스로 무대에 올라야 했다.
그러다가 2003년, 마침내 보상의 시간이 찾아왔다. ‘허삼관 매혈기’로 첫 주연을 맡은 서이숙은 동아연극상 연기상,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 등을 휩쓸었다. 동시에 연극계에 서이숙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까지 거의 2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허삼관 매혈기’ 때 연기가 정말 재밌었어요. 대본이 좋으면 연기가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20년 만에 주연을 맡은 것인데, 시간의 공력이 저를 그렇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허삼관 매혈기’로 상을 받기 시작했으니까 인생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드라마는 아직 인생작을 못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드디어 인생의 빛을 보려던 때인 2011년, 서이숙은 갑상선암을 선고받았다. 그는 “진짜 이건 뭐지 싶었다. 열심히 20년 넘게 연기한 것밖에 없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갑상선암 치료와 수술로 무대에 서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서이숙은 이때부터 방송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2010년 홍창욱 감독의 SBS 드라마 ‘제중원’을 통해 드라마에 발을 내딛은 상황이었다.
“제가 활동하는 산악회 모임에 홍창욱 감독님도 계셨죠. 감독님께서 ‘제중원’을 준비 중이셨어요. 명성황후 역할이 있는데 신선한 얼굴을 캐스팅하고 싶으셨나 봐요. 저한테 출연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중원’에 출연했고, 시청자분들이 ‘저 배우 누구야, 목소리 좋다’ 하면서 관심을 보이셨죠. 그 이후 계속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온 거죠. 그때를 생각하면 인생이 마냥 코너로 몰리지는 않는구나, 힘든 일도 결국은 지나가는구나 하고 느껴요.”
이후 서이숙은 MBC ‘짝패’, ‘기황후’, KBS2 ‘착하지 않은 여자들’, tvN ‘호텔 델루나’, JTBC ‘부부의 세계’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최근작은 tvN ‘슈룹’이다. 폐비 윤 씨 역을 맡은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열연을 펼쳤다. 서이숙을 향한 시청자의 연기 호평은 나날이 쌓여가는데, 그는 여전히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못한다.
“드라마를 처음 찍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연극배우로서는 베테랑일지 모르지만 방송국에서는 초보잖아요. 매일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가면 그때 그렇게 하지 말걸 하는 후회만 남는 거죠. 지금 10년이 지났는데도 똑같이 매일 후회해요. 제가 성향상 한번 연기한 것을 다시 반복하는 것을 힘들어하거든요. 드라마는 똑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어야 하는데, 저는 매번 100%의 감정이 나오지 않는 거죠. 드라마 위주로 활동한 배우들은 그 감정 배분을 잘하더라고요.”
촬영 때 100%의 감정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한 번에 100%의 감정을 쏟기 때문에 촬영이 지속되면 그 강도의 에너지가 계속 나오긴 어렵다는 뜻이다. 연극할 때의 연기가 몸에 밴 그는 상대방이 연기할 때도 100%의 감정을 실어 리액션을 해주기 때문이다. 서이숙은 이 부분을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만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은 장점으로 본다.
현재 ‘여배우가 찾는 여배우 1순위’로 통할 만큼 이러한 연기 방식은 방송가에 입소문이 났다. 호흡을 맞춰본 배우들은 그때의 감동을 기억하며 서이숙을 또 찾는다. 같이 연기를 해본 적 없는 배우들도 소문을 듣고 러브콜을 보낸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서이숙이 가장 호흡이 좋았다고 느낀 배우는 누구일까. 단번에 ‘부부의 세계’에서 만난 김희애라는 답이 돌아왔다. 서이숙과 김희애가 ‘부부의 세계’ 첫 신을 찍을 때 주고받은 에너지는 압도적이었다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표현했다. 서이숙과 김희애는 넷플릭스 드라마 ‘퀸 메이커’로 재회했다. 올 상반기 방영 예정으로 두 사람이 보여줄 시너지가 기대를 모은다.
건강하게 잘 늙어가기
서이숙은 좋은 연기를 펼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도 결국 사람이고, 그가 살아온 인생이 연기에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다. 그는 연극계의 거장으로 통하는 고(故) 장민호의 연기를 보고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장민호 선생님은 ‘3월의 눈’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명장면을 남기셨어요. 어떤 특별한 장면이 아니고, 그냥 선생님이 걸어가다가 의자에 앉는 장면이에요. 선생님이 걸어가는 모습에서 살아온 삶이 보이더라고요. 이게 연기구나, 살아온 삶이 연기구나라고 그때 깨우쳤죠. 그게 연기의 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아직 답이 안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저의 답은 죽을 때 나올 것 같아요.”
연기는 삶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달은 서이숙. 그래서 그의 목표는 ‘잘 늙어가기’다. 한해 한해 나이가 들수록 잘 늙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느낀다고. 서이숙은 최근 갱년기를 겪었다는 사실도 고백했다. “내 나이쯤 되면 흔히 겪는 병이겠거니 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보통 병이 아니더라”는 토로가 이어졌다.
갱년기는 어느 날 불쑥,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찾아왔다. 서이숙은 신체적인 변화보다 정신적인 변화가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세상에 재밌는 일도, 맛있는 것도 없어졌다. 젊었을 때는 사람들과 술 마시고 수다 떠는 것이 재밌었는데 이제는 뭘 해도 재미없다”면서 “그래서 시니어들이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다. 잘 늙어가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서이숙은 사람들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동료들이 많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는 “인간관계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면서 “나의 제일 친한 친구는 반려견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1년생인 반려견 ‘노을이’와 ‘준이’를 키우고 있다.
서이숙에게 반려견들은 가족 그 이상의 존재다. 이를 두고 “사람하고 살아야지 왜 개하고 사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이숙이 결혼하지 않고 미혼으로 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좋은 사람이 있으면 결혼하고 싶다”면서도 “사람 만나는 횟수를 줄이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안 될 것 같다”고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결혼할 때를 놓친 것 같아요. 20대 때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사회적으로 여자는 결혼하면 집에서 밥하고 애를 낳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죠.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어머니도 일찍 결혼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제가 연극을 할 때라 돈이 없기도 했죠. 딸이 결혼해서 고생만 할까 봐 어머니가 더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해요.”
서이숙은 하나뿐인 가족,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다.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고, 남동생은 중학생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모녀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열심히 살았다. 서이숙은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가 이제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어머니 생각을 하던 그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어머니는 1938년에 태어나셨어요. 전쟁을 겪은 보릿고개 세대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저를 홀로 키우시면서 정말 힘든 삶을 사셨죠. 돈이 없어서 집에 냉·난방기기가 하나도 없었어요. 한 여인으로서 어머니의 삶이 너무 안쓰러워요. 잘해드리고 싶어서 용돈을 드려도,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잘 안 쓰려고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이 또 안타까워서 저도 마음과 다른 말이 나오게 되고…. 참 속상합니다.”
서이숙은 어머니에게 잔소리하는 자신을 보면서 ‘말실수를 줄이자’는 새해 다짐을 했다. 또 다른 목표는 ‘후회 좀 하지 말자’, ‘내 건강에 신경 쓰자’다. 그중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건강’이다. 그래야 잘 늙어가고, 좋은 연기도 나오는 법이니까. 나이가 들수록 더 짙어질 서이숙의 연기가 기대된다.
“누군가에게 인사할 때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얼마나 소중한 말인지 몰랐는데, 이제 너무 잘 알죠. 잘 늙으려면 먼저 건강해야 하는 것 같아요.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고, 욕망과 미움도 사라지죠. 시니어 독자 여러분, 올 한 해 더 건강하시고 소망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 세대의 창업을 통한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을 펼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점프업5060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에 성공하고 새 인생을 펼치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도로 귀퉁이에 핀 꽃 한 송이, 빌딩 옥상 정원의 나무 한 그루. 삭막한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존재들입니다. 이렇듯 식물을 통한 초록빛 도시재생을 꿈꾸며 권수정 씨는 ‘점프업5060’에 지원했습니다.
권수정 씨는 결혼과 출산으로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의 삶을 살던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숲에서 열린 원예 강좌를 들은 뒤, 그녀에게 도전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숲 도시정원사 수업을 들었는데 내용이 정말 좋았어요. 흔히 ‘자연이 소중하다’고 하잖아요. 그 말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죠. 무엇보다 함께 참여했던 분들이 식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잘 이해하셔서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권수정 씨는 자신이 깨달은 자연의 소중함을 가까운 곳부터 알려나갔습니다. 거주지인 서울 응봉동에서 마을공동체 ‘중장년 리셋 타임’ 사업을 시작한 것이죠. 지역 학생, 주민을 대상으로 숲 체험, 가드닝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공동 정원 가꾸기 봉사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처럼 경단녀를 벗어나 원예 전문가로 거듭난 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차차 관련 분야 인연이 쌓이며 권수정 씨에겐 ‘원예사회적기업’이라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저 같은 경단녀 주부들이 그동안 공부해온 것들을 각자가 아닌 사회적 기업을 통해 함께 펼치면 좋겠더라고요. 마침 우연히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점프업5060’ 온라인 설명회를 접하게 됐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우리가 꿈꾸는 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막 50세가 됐던 권수정 씨는 그렇게 ‘점프업5060’의 막내세대로 합류했습니다. ‘싹을 틔우다’는 뜻을 담아 ‘티움’이라는 이름을 짓고, 원예사회적기업을 위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까’라는 말처럼, 처음부터 모든 목표를 이뤄내기엔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결국 아쉽게도 최종 목표였던 사업화 지원금까지 해내지는 못했지만 이번 프로젝트로 배운 점이 많았다는 권수정 씨입니다.
“원예사회적기업이라는 그럴싸한 꿈을 갖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던 것이죠. 사업적으로 무언가를 제안하고 시행하려면 문서작업이나 프레젠테이션 능력도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한편으론 추진력이 미흡했던 게 아닌가 생각도 해요. 크라우드펀딩으로 사업을 확장할 기회도 있었는데, 실상 놓쳐버렸거든요. 그래도 ‘점프업5060’을 통해 또래의 (예비)창업가들을 만나 소통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기부여도 됐고,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어요. 결과는 조금 아쉽지만, 모든 것을 귀한 경험으로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려 합니다.”
프로젝트 이후 권수정 씨는 ‘위치맘’이라는 작은 카페를 열었습니다. 단순히 수익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창업을 한 것은 아닙니다. 뭐든 돕는 일을 좋아하는 권수정 씨는 함께해온 원예 전문가들을 기관이나 강의 등에 연결해주는 메신저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이들을 위한 매개 공간으로써 카페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꿈도 열심히 키워가는 중입니다.
“지금처럼 꾸준히 봉사와 원예를 하며 언젠가는 실버타운을 짓고 싶습니다. 이런 꿈을 이야기하면 다들 사회복지사 따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저는 원예치유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 영국에서는 원예치유가 처방전에 쓰일 정도로 효능을 인정하는 분위기죠. 그렇게 원예가 어르신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점프업5060’에서의 시행착오를 밑거름 삼아 꿈을 위해 한발 한발 다가가겠습니다.”
창업을 꿈꾸는 5060에게
“코로나19 당시 다른 분야와 다르게 원예 쪽은 수요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거리두기로 인한 답답한 일상에 초록 식물이 활력을 준 덕분이죠.
또 ‘힐링’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 원예가 주는 치유 효과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원예는 창업 아이템으로도 전망 있다고 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먼저 지역 숲을 찾아 관련 프로그램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보육시설의 단위나 지원책은 나라마다 다르다. 공통점은 공보육만으로는 맞벌이 부부의 일·가정 양립을 온전히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독박육아를 하든, 어린이집을 보내든, 시터를 이용하든, 결국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대해서는 조부모의 도움을 받는다는 점 또한 일맥상통한다. 그렇게 하나의 육아 돌봄 퍼즐을 맞추기 위해, 저마다 빈 조각의 형태는 다르지만 그와 무관하게 조부모는 유연하게 빈틈을 메워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과 더불어 독일 및 영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유형의 유럽 조부모 육아 단편들을 살펴봤다.
현지 취재=독일 뮌헨·베를린, 영국 런던
런던 킹스칼리지 노인학 연구소(이하 노인학 연구소)가 발표한 ‘유럽 집중조부모 보육의 국가적 차이’에 대한 논문에 따르면, 유럽 11개국 할머니의 58%와 할아버지의 49%는 16세 미만 손주를 한 명 이상 돌본다. 논문 제목의 ‘집중조부모’(Intensive Grandparental Childcare)란 거의 매일 또는 일주일에 최소 15시간 이상 손주 한 명 이상을 돌본 조부모를 뜻한다. 평균적으로 주 3회 이상, 하루 평균 7시간 가까이 황혼육아에 가담하는 한국 조부모(본지 통계자료) 역시 집중조부모에 해당한다.
최근 독일경제연구소가 조부모를 대상으로 진행한 리포트에 따르면, 6세 미만의 독일 어린이 중 약 50%가 주당 8시간가량 조부모의 돌봄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의 경우 50세 이상 조부모 10명 중 9명(89%)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손주를 돌봤으며, 절반 이상이 일주일에 3일 이상 황혼육아에 참여하고 있었다(Age UK 통계자료). 한국과 비교할 때 육아의 양이나 빈도가 높지는 않지만, 영국 조부모 역시 ‘맞벌이 자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들 조부모는 본인의 독립된 삶을 유지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고, 자율적으로 시간을 운용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태도는 황혼육아에 대한 긍정적 효과에도 기여했다. 영국·독일 조부모들의 상황과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사례를 유형별로 담아봤다.
맞벌이 지원형
“맞벌이 딸 도우려 시작한 황혼육아, 이젠 내 일상의 활력소”
평일 오후 파트타이머로 일하는 헬레나 씨는 오전에는 손주를 보기 위해 딸의 집으로 향한다. 맞벌이 딸네 부부를 돕기 위함이다. 이들 부부는 유연근무를 통해 육아 공백을 최소화했지만, 결과적으로는 1시간가량 자녀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비싼 비용을 감당하며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려던 차, 할머니 헬레나 씨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녀는 무료한 일상을 손주와 함께 보내며 가족을 도울 수 있어, 황혼육아와 함께하는 노후에 만족을 표한다. - 60대 헬레나 씨(가명)
노인학 연구소 ELSA(English Longitudinal Study of Aging) 연구 데이터에 따르면, 영국 조부모의 64%가 자녀(손주의 부모)의 출퇴근을 돕기 위해 황혼육아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복수응답). 절반이 넘는 조부모가 자신의 젊음과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 응답하기도 했다. 아울러 4명 중 1명은 가족의 재정 상태를 돕기 위해, 5명 중 1명은 가족 돌봄을 선호(양육시설이나 시터 등 외부 조력자에 비해)하기 때문에 손주를 직접 돌보고 있었다. 한편 자녀가 손주 양육을 부탁했을 때 거절하기 어렵다는 반응은 20% 정도로, 대체로 자신의 삶과 의지에 따라 황혼육아를 결정하는 모습이다.
여가 지향형
“케어보다는 즐거움을 나누는 황혼육아”
세무사 출신인 캐롤라인 씨는 은퇴 후 수령하는 풍족한 연금으로 여행을 즐긴다. 그녀에겐 두 살, 다섯 살 손주들이 있는데 종종 자녀로부터 육아를 부탁받는다. 순전히 자신의 기쁨을 위해 황혼육아를 선택했다는 캐롤라인 씨는 손주와 함께하며 단순히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등의 보육에 그치기보다는 함께 여가를 즐기고 추억을 만들고자 한다. 그녀는 자녀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종종 자신의 여행 스케줄에 손주들을 참여시키며 긍정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 70세 캐롤라인 씨
노인학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 조부모의 경우 손주와의 시간을 대체로 여가로 즐겼다(80%). 조부모와의 여가 활동 경험은 손주의 인지력과 상상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아울러 조부모가 매일 보육 위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와 비교해, 간헐적으로 색다른 경험을 제공했을 때 손주들은 여가 지향적인 이미지로 조부모를 기억할 수 있다. 또한 손주들은 조부모를 친구 또는 관대한 존재로 여겨, 장차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면서 조언자나 롤모델로 조부모를 찾게 된다.
물질 지원형
“직접 보육 아닌 금전적 방식이라도 황혼육아에 동참하고 싶다”
바그너 씨는 손주들을 만날 때면 꼬박꼬박 용돈을 주고 생일이 아니더라도 장난감이나 교구 등을 선물로 사가는 편이다. 노후 자금에 대한 불안이 크지 않은 그는 손주들을 위한 지출을 통해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고 표현한다. - 70세 바그너 씨(가명)
바이에른주는 독일 전 지역에서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특히 많은 곳에 속한다. 이들은 주로 자녀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며 유급 노동 활동에 적극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때문에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반면, 손주와의 만남이 어렵다. 물질적 지원으로나마 손주 육아에 기여하고자 하는 조부모가 많은 이유다.
Dr.Says
“코로나로 중단된 황혼육아, 삶의 활력 잃은 英 조부모”
- UCL 역학 및 공중보건 연구소 조르지오 디 게사 박사
팬데믹 시기, 영국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력했다. 이로 인해 조부모의 손주 돌봄이 불가능해지면서 맞벌이 부부가 큰 타격을 입었다. 영국 여성 단체 ‘프레그넌트 덴 스크류드’의 조사 결과 46%의 여성이 코로나 시기에 직장을 잃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이유로 공보육시설의 폐쇄와 더불어 비공식 돌봄 조력자였던 조부모의 육아 부재를 꼽았다. 한편 고충을 겪은 건 맞벌이 부부만이 아니었다. UCL(Uiniversity College London)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동안 손주 돌보기를 중단한 조부모는 계속 황혼육아에 참여한 이들에 비해 우울 증상을 경험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손주를 돌보지 못한 조부모의 3분의 1 이상(34.3%)이 슬픔을 느끼거나 불면증을 호소하는 등 높은 수준의 우울 증상을 보고했다. 아울러 일상의 질 또한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이는 영국 조부모들이 그동안 손주 돌보는 과정을 통해 느꼈던 정서적 만족과 스스로에 대한 유용성, 유능함이 결여되며 일어난 현상으로 읽힌다. 이렇듯 조부모의 육아 참여는 그들의 삶에도 가치와 애착을 제공하며, 이로써 정신 건강 및 세대 관계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자율적 선택형
“선택적 도움은 가능하다. 그러나 늘 손주 돌봄을 위해 대기하진 않는다”
활동적인 삶을 사는 노이만 씨는 10대 손주 셋을 간헐적으로 돌본다. 노이만 씨 부인이 음식을 만들면 그는 차를 몰고 손주의 집으로 가 함께 식사를 하고, 아이들의 숙제를 돕거나 학원 등에 데려다준다. 물론 이러한 돌봄은 노이만 씨가 허락하는 날에만 선택적으로 가능하다. 그는 조부모로서의 삶이 행복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독립적인 삶 또한 중요하기에 무조건적인 희생은 거부하는 편이다. - 83세 노이만 씨
독일청소년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독일 황혼육아 당사자들은 조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한 자율성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수치상으로는 93.3%의 조부모가 자율적으로 손주 돌봄에 가담하고 있다고 답했다. 최근 본지 조사에서 한국 조부모의 72.2%가 비자발적으로 황혼육아를 시작했다고 반응한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독일청소년연구소 알렉산드라 랑마이어 박사는 “조사를 통해 살펴본 결과 독일 조부모들이 자신의 역할에서 경험하는 자율성과 이에 대한 기쁨은 높게 나타났다. 조부모의 82%는 자신의 역할을 즐기는 동시에 노후에 제약을 느끼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응답했다. 한편 조부모로서의 기쁨이 거의 없다고 말한 비율은 4%에 불과했다”며 “아이 돌봄을 둘러싼 가족 구성원들의 자기 결정권과 상호 존중은 가족관계 성공에 기여한다. 자신의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며 황혼육아에 가담했을 때 조부모와 손주 관계의 질 역시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독일 조부모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스스로 황혼육아 스케줄을 컨트롤할 수 있길 원한다. 이들은 비자발적인 의무나 책임보다는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스스로를 필요한 존재라 느끼며 자긍심을 채운다. 이러한 과정은 노후 정신 건강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일자리 우선형 & 장거리 케어형
“일 때문에 손주 못 봐 속상해. 장거리 황혼육아 하는 남편조차 부러워”
남편 슈나이더 씨는 은퇴 후 정해진 요일마다 딸의 자녀를 양육한다. 딸의 집까지는 100km 정도 거리로, 기차로 두 시간 걸린다. 그는 자녀 부부가 귀가할 때까지 유치원과 학교에서 돌아온 손주들을 보살피다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의 아내는 이러한 고된 스케줄마저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다고 말한다. 그녀는 현재 풀타임으로 근무 중이라 손주들을 자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60대 슈나이더 부부
최근 독일경제연구소 연구 조사에 따르면, 독일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조부모의 육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조부모의 고용 상태’와 ‘거주지 간 거리’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실제 현지 취재에서 만난 몇몇 조부모들은 “노후 자금을 위해 계속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손주를 볼 여력이 없다”, “자녀가 너무 멀리 살아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독일경제연구소 마라 바르슈케트 연구원은 “한 국가 안에서도 지역마다 황혼육아에 대한 빈도나 형태는 상이하다”며 “특히 독일은 동독과 서독의 차이도 극명하다. 동독은 서독에 비해 노인과 여성 등 모든 계층에서 전반적인 고용률이 높다. 때문에 맞벌이 부부 입장에서 조부모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조부모 역시 고용 상태인 경우가 많아 직접적인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같은 조사에서 손주의 집까지 거리가 10분 내외인 사람들 중 32%는 정기적인 육아에 참여하고 있었다. 거주지 간 거리가 황혼육아 빈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테다. 주목할 점은 3시간 이상 거리에 떨어져 사는 경우에도 약 8%의 조부모가 정기적으로 손주를 돌본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라도 조부모의 도움을 받는 경우라면 자녀 입장에서 다행스럽지만, 일반적인 사례로 볼 수는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뮌헨시 등 몇몇 지역에서는 마더센터 등을 매개로 독거노인과 맞벌이 가정의 아이를 연결하는 등 대안적 조부모 도움을 제공하는 방식을 독려하기도 한다.
Dr.Says
“황혼육아는 육아의 우선책도 차선책도 아니다”
- 독일경제연구소 마라 바르슈케트 연구원
보육시설의 효용성이 높은 국가의 경우 조부모 돌봄에 덜 의존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럼에도 현대사회에서 황혼육아는 필수 요소로 기능한다. 최근 독일 정부 산하 연방인구연구소와 2년여간 조부모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황혼육아는 육아의 보완재 역할로 바라봐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일반적으로 단일 공보육을 이용하는 경우에 비해 조부모 돌봄을 병행하는 경우 워킹맘의 업무 효율성이 크게 나타난다. 아울러 부모 세대는 조부모의 도움을 받을 때 자신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만족도가 올라간다고 보고했다. 다만 이러한 황혼육아의 장점을 누리기 위해 노후의 삶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몇몇 부모의 경우 조부모의 육아 참여를 당연시 여기거나, 당사자의 의견과는 별개로 도움을 강요한다. 그러나 아이 돌봄의 우선 책임은 어디까지나 (아이의) ‘부모’에게 있다. 그 다음 차선책은 국가와 사회가 마련한 보육시설과 서비스로 여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부모의 참여는 이러한 기본 토대가 마련된 뒤에 큰 부담 없이 더해지는 ‘보완책’으로 작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는 조부모의 웰빙을 고려한 자율성을 존중하고, 조부모 또한 주체적으로 황혼육아를 결정하고 자신의 노후를 슬기롭게 설계해야 할 것이다.
| 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4부작 |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황혼육아 문제 해법 제시를 위한 특별 기획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를 4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서베이로 본 황혼육아 현주소', 제2부 'K-황혼육아 정책 어디까지 왔나?', 제3부 '독일ㆍ영국 황혼육아 선진 사례', 제4부 '금빛 황혼육아로 가는 길'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국내 인플루엔자(계절독감) 무료 예방접종이 만 75세 이상을 대상으로 시작, 이달 중 만 65세 이상 고령층까지 확대된다. 접종 기한은 올해 연말까지다.
11일 질병관리청(이하 질병청)에 따르면, 만 75세 이상 고령층(1947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의 인플루엔자 국가 예방접종이 12일부터 이뤄진다. 이후 17일부터는 만 70~74세(1948년 1월 1일~1952년 12월 31일 출생자)의 접종이, 20일부터는 만 65~69세(1953년 1월 1일~1957년 12월 31일 출생자)의 접종이 가능해진다.
올해 독감 국가 예방접종 대상자는 생후 만 6개월~13세 이하 어린이(2009년~2022년 8월 1일 출생자), 임신부, 만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질병청은 “접종 초기 쏠림현상과 이로 인해 발생할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연령에 따라 접종 시작일을 구분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21일 생후 만 6개월~9세 미만 어린이 중 생애 처음 접종하는 2회 접종 대상자의 접종이 시작됐고, 지난 5일에는 생후 만 6개월~13세 이하 어린이와 임신부의 접종이 가능해졌다.
다만, 65세 이상 고령층은 어린이, 임신부와 달리 올해 12월 31일 접종 기간이 끝난다. 이에 대해 질병청은 “65세 이상 인플루엔자 접종은 어린이, 임신부와 달리 출생과 임신 등으로 대상자가 추가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12월 말까지 전체 접종 대상자의 99% 이상이 접종함에 따라 적기에 신속한 접종을 위해 접종 기간을 올 연말까지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질병청은 지난달 16일 3년 만에 독감 유행 주의보를 발령했다. 특히 질병청이 9월에 독감 유행 주의보를 발령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국내에서 독감은 통상 11월~4월에 유행한다. 코로나19 사태 속 최근 2년 간은 독감 유행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독감 유행이 일찍이 시작됐다. 특히 영유아들이 독감에 대한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아 독감 확산세가 더욱 빠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은 주소지에 관계없이 전국 지정 위탁의료기관이나 보건소에서 받을 수 있다. 가까운 기관은 예방접종 도우미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찾을 수 있다. 접종 기관에 방문할 때는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인플루엔자 백신은 코로나19 백신과 동시 접종도 가능하다.
올해 2분기 4050세대 중 우울위험군에 속하는 이들이 3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두려움이나 불안 등의 정신건강 지표는 개선됐으나, 소득 감소와 고립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인한 자살생각률은 증가했다.
보건복지부는 2022년 2분기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민 정신건강 실태 및 현황 파악을 통해 국민에게 필요한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조사로, 이번 조사는 지난 4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처음 실시한 조사다.
조사 결과 우리 사회에 위험 수준의 우울감을 겪는 ‘우울위험군’이 16.9%에 달했다. 이는 2019년(3.2%)의 5배가 넘는 수치로 여전히 높고 위험한 수준이다. 연령별로는 30대가 24.2%로 가장 높았으며, 40대(17.0%), 50대(16.0%), 20대(14.3%), 60대(13.0%)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남성(15.3%)보다는 여성(18.6%)이, 2인 이상으로 이뤄진 가구(15.6%)에 비해 1인 가구(23.3%)에서 우울위험군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소득이 감소한 경우 우울위험군이 22.1%로, 소득이 증가하거나 변화가 없는 집단(11.5%)에 비해 2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소득의 감소가 정신건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다른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VIII)’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중장년 8명 중 1명이 대출을 받은 적이 있고, 이들과 자영업자의 우울 정도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조사가 시작한 이래 꾸준히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 6월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낙인’ 점수는 총점 15점 중 6.2점으로, 지난해 3월(8.1점)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다른 정신건강 지표와 달리 자살생각률은 12.7%로, 3월(11.5%)에 비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3월(9.7%)에 비해 여전히 높고,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4.6%)에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연령별로는 30대(18.8%)로 가장 높았고, 20대(14.8%), 40대(13.1%), 50대(9.8%), 60대(7.3%) 순으로 자살생각률이 높았다. 1인 가구의 자살생각률(18.2%)이 2인 이상 가구(11.6%)보다 1.5배 높았고, 여성(11.9%)보다 남성(13.5%)이 더 높았다. 일반적으로 자살생각률은 여성이 높으나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는 꾸준히 남성의 자살생각률이 더 높게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 불안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적절히 감소하고 있지만 우울의 감소 정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국민들의 우울감 감소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누적된 소득 감소, 고립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정신건강이 악화되거나 자살이 증가할 우려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은영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처음 실시한 조사에서 우울, 불안 등 전반적인 정신건강 지표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난 점은 의미있지만, 자살생각률이 높아지고 있는 부분이 크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누적된 경제적 어려움이나 심신 건강 문제가 일상 회복 시기에 자살 시도로 분출될 가능성에 대비하고, 국민 누구나 도움이 필요할 때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무릎에 문제가 있었던 70대 환자가 오랜만에 병원을 찾았다. 2년 전 퇴행성 무릎 관절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뒤 호전된 상태로 퇴원하셨던 분이다. 내원 이유를 물어보니 최근 들어 무릎 통증이 다시 느껴진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지는 환자분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지난 2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출 횟수가 줄어들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단체 관광 모임에 자주 나가게 됐단다. 평소보다 무리해서 걷는 날이 많아지면서 갑작스러운 활동 증가로 통증이 재발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환자의 무릎을 살펴보니 노화로 인해 전보다 연골이 얇아졌고, 무엇보다 하체 근력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연골이 닳아 없어지면서 발생하는 염증이 일차적인 원인이었다. 또한 약해진 근력이 체중의 부하를 효과적으로 흡수하지 못해 통증이 재발한 결과였다.
이처럼 퇴행성 무릎 관절염은 일반적으로 연골이 마모되기 시작하면서 발생한다. 어떻게 보면 퇴행성 무릎 관절염은 노화에 따라 피할 수 없는 노인성 질환이다. 3~5mm 정도인 무릎 연골의 내구성이 60~70년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70세가 넘어도 건강한 무릎을 갖고 생활하는 액티브 시니어들이 주변에 많다. 이들의 비결은 뭘까.
체중 조절과 하체 근력 운동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 무릎 연골은 평생 체중의 3~4배에 달하는 하중을 견딘다. 체중 관리를 꾸준히 해놓지 않으면 무릎도 언젠가는 한계에 달하고 연골이 닳아 관절염이 생긴다. 이에 적정 체중을 유지해 하중을 줄이는 방식이 관절염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하중 및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에 필요한 것이 하체 근력이다. 허벅지 및 무릎 주변의 근육을 키우면 무릎 연골에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외에도 연골에 좋은 음식 및 영양제 등을 챙기면 더욱 좋다. 연골 보호를 위해 한방에서는 과일 모과가 한약재로 쓰인다. 모과를 주재료로 조제되는 ‘자생숙지양근탕’은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에게 처방되고 있다. 모과는 실제 임상 현장에서 무릎 연골 보호 및 뼈 건강, 근육통 완화에 효과를 보인다. 앞서 무릎 통증으로 필자를 찾은 환자도 자생숙지양근탕을 체질에 맞게 처방받아 효과를 봤다.
퇴행성 관절염에 대한 모과의 치료 효과는 최근 관련 연구 논문을 통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지난 4월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가 SCI(E)급 국제학술지 ‘International Journal of Molecular Sciences’에 게재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모과의 연골 보호 효과에 대한 작용 기전이 밝혀졌다. 연구에서 손상 처리된 연골 세포에 모과 추출물을 노출시킨 결과, 연골의 필수 성분인 ‘프로테오글리칸’(Proteoglycan)과 ‘제2형 콜라겐’(Col2a1)의 발현량이 늘어난 것이 확인됐다. 또한 모과는 연골 퇴행의 원인인 활성산소를 유의미하게 감소시켰다.
한약 처방과 함께 퇴행성 관절염 치료에 침치료와 약침도 병행하면 효과가 좋다. 침치료는 지속적인 부담에 뭉친 무릎 관절 주변 근육과 인대 등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데 효과적이다. 여기에 염증을 빠르게 제거하는 데 좋은 약침을 통증 부위에 직접 놓으면 통증 경감에 도움이 된다. 자생한방병원의 약침에는 2003년 미국에서 물질 특허를 받은 ‘신바로메틴’ 성분이 포함된다. 신바로메틴은 여러 연구 논문을 통해 염증 제거, 뼈·연골 재생 등의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함께 갑작스럽게 늘어난 야외 활동에 무릎이 놀라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필자가 만난 시니어 환자처럼 2년간 특별한 활동이 없었다면 무릎 근력이 약해진 상태일 수 있다. 외출이 잦아지는 요즘, 가벼운 스트레칭을 통해 무릎을 깨워주고 주변 근력을 키워 관절염 예방에 집중해야 할 때다.
전염병과 맞서던 지난한 시간도 배움을 향한 열정만큼은 꺾지 못했다.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시기, 팬데믹이 지나간 교육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초여름 햇볕이 따갑던 지난달 12일, ‘옛 지도로 읽는 한양과 서울’ 수업이 있는 동남권 캠퍼스 강의실을 찾았다.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현군 강사가 어린이날 휴무로 인해 2주 만에 만난 학생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날 강의 참석자는 정원 15명 중 11명. 50대부터 8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네 번째 답사인 한양도성 방문을 앞두고 이론 수업을 듣기 위해 모인 학생들은 한 줄에 한 명씩 거리를 띄워 앉았다.
“여기는 지금의 어디일까요?”
1교시의 주제는 옛 지도로 읽는 도성과 서성(탕춘대성), 북한산성. 수업의 진도는 한양도성을 시작으로 동서남북, 네 가지 방향으로 펼쳐졌다. 2주 만에 만난 탓인지 복습차 묻는 질문에 대답이 곧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다시 시작점인 한양도성부터 천천히 되짚으며 학생들의 이해를 도왔다. 학생들의 열정도 만만치 않았다. 직접 뽑아온 옛 지도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생소한 내용은 수첩에 필기하는 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학생은 빔프로젝터로 띄워둔 지도의 지명이 잘 보이지 않자 손을 들고 지도를 확대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옛 지도로 읽는 한양과 서울’은 서울시민대학 동남권 캠퍼스에서 제공하는 서울학 강좌 중 하나다. ‘다양한 수업을 양질로 제공하자’는 서울시민대학 운영 방침 아래, 전문가 자문과 학생들의 피드백을 받아 만들어진 과정인 만큼 전반적으로 높은 수강 만족도를 보이고 있는데, 서울학 강좌는 특히 인기가 높다. 이론 수업과 현장 답사를 병행하는 덕분인지 수강 신청이 열리자마자 마감될 정도다. 김정호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 시민참여팀 주임은 “수강 신청을 받던 시점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때문에 수강 인원이 줄어들어 더욱 경쟁이 치열했다”고 증언했다.
“강의실이 조금 덥죠?”
부쩍 더워진 날씨에 강의실이 조금 후덥지근하다 느껴질 참이었다. 이미지 학습 매니저가 학생들의 의사를 확인한 뒤 에어컨 작동을 위해 밖으로 나섰다. 강의실 구석에 앉아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듣기에 강의를 신청한 학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강의에 배정된 학습 매니저였다.
서울시민대학에서는 강의당 학습 매니저를 한 명씩 배정한다. 강의 환경을 항상 확인하고 수업 시작 전 출석 체크를 하는 등 강사와 학생들이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온라인 강의의 경우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을 조절하는 일을 맡는다. 옛 지도로 읽는 한양과 서울 수업의 학습 매니저는 조금 더 할 일이 많다. 답사가 있는 날이면 학생들을 인솔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체 기념촬영의 사진 기사 역시 그의 역할이다.
10분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학생들이 다시 자리를 채우자 2교시 수업이 시작됐다. 포천 이동막걸리의 ‘이동’이 어쩌다 붙었는지, 잠실새내는 왜 ‘새내’가 되었는지, 평창동과 창동의 공통점 등 지명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19세기에 제작된 전국 8도의 지도 ‘동국여도’의 연융대도, 도성연융북한합도 등을 띄워놓은 채였다.
54년 만에 개방된 북악산 남측면 ‘김신조 루트’에 대한 보너스 설명도 있었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의 무장대원 31명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했던 ‘1·21 사태’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자 강의에 대한 집중도가 올라갔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고 하던가. 서울학 강의의 하이라이트는 다음 시간 집합 장소에 대한 안내 후 이어지는 답사지 근처의 맛집 소개였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처럼 답사 후 학생들과 뒤풀이를 할 수 없자 이 강사가 고안해낸 방식이다.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호를 되묻자 직접 검색해 확실한 상호를 알려주는 등 가장 열정적인 시간이었다.
수업 시작 전 만난 이현군 강사는 “과거와 현재의 오버랩”이라고 자신의 수업을 평가했다. 고문헌, 지도, 그림 등 다양한 사료들이 교재가 된다. 살고 있는 지역에 얽힌 옛이야기와 지명의 유래에 대해 배우고, 직접 걸어보며 답사에 나서면 지식도 오래 남고, 학생들도 수업을 더욱 즐길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수업이 진행되는 2시간 동안 졸거나 딴짓을 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배움을 향한 열정 앞엔 그 무엇도 방해물이 될 수 없다. 코로나와 탈(脫)코로나의 경계에서 계속되는 배움의 열기가 초여름 들녘처럼 푸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