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역·필수의료 공백을 메우고 초고령 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으로 ‘4대 개혁 패키지’를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을 주제로 열린 여덟 번째 민생 토론회에서 4대 개혁 패키지를 발표했다. 4대 개혁 패키지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다.
윤석열 대통령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프런’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없고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선진국이라고 말하기 부끄럽다”면서 “지금이 의료 개혁을 추진할 골든타임이다. 오직 국민과 미래를 바라보며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4대 개혁 패키지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정책 과제는 의료 인력 확충이며, 핵심은 의대 정원 확대이다. 정부는 2006년 이후 동결된 의과대학 정원(현재 3058명)을 올해 입시(2025학년도)부터 확대한다. 윤 대통령은 “고령 인구가 급증하고 보건산업 수요도 크게 늘고 있는 데다 지역 의료와 필수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의료 인력 확충이 필수적”이라면서 “양질의 의학 교육과 수련 환경을 마련해서 의료 인력 확충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토론회 발표를 통해 “전문가 전망에 따르면 10년 후인 2035년에는 1만 5000명 이상의 의사 부족이 전망된다”면서 “정부는 수급을 고려해 현장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의대 정원을 충분히 확대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증원 확대 규모에 대해서는 의료현안협의체 논의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조만간 확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년간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 확대 규모를 놓고 논의를 거쳤다. 지난달 31일에도 양동호 의협 협상단장은 정부의 정책이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하며 “의대 정원 확대의 장단점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 정식으로 TV 토론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한 정원 증원과 함께 의대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충분한 임상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수련·면허 체계도 개선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기초·임상 교수를 확충하고 필수·지역 의료 교육을 강화해 필수 의료 실습 과목 비중을 50% 이상으로 확대한다. 수련 체계 개선을 위해 인턴제는 합리적 진로 선택과 기본적 임상 역량 확보가 가능하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의대 증원 후 의사 배출까지는 6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의사 부족 문제 해소를 위해 정부는 의료기관 간 의료진 협진, 파견 등을 토대로 한 ‘공유형 진료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지역 의료 혁신 시범사업을 도입, 선정된 권역에는 3년간 최대 500억 원을 지원한다.
또한 윤 대통령은 의료사고 관련 제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의료인에 대한 공정한 보상 체계 구축도 약속했다. 그는 “고위험 진료를 하는 의료진, 상시 대기해야 하는 필수 의료진이 노력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면서 “건강보험 적립금을 활용해서 필수 의료에 10조 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이와 함께 비급여와 실손보험 제도도 확실하게 개혁하겠다는 입장이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는 정신의학적 질환으로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를 말한다. 소아·청소년기에 발병하는 질환으로 알려진 과거와 달리 현재는 성인 ADHD 환자도 많은 상황이다. 성인 환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 특히 중장년층에서 발병률이 급증하고 있다.
ADHD는 주의산만, 과잉행동, 충동성의 3대 증상을 특징으로 한다. 성인 ADHD는 소아·청소년기와는 다른 증상 패턴을 보인다. 과잉행동은 감소하며, 집중의 어려움과 충동성이 주 문제가 된다.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2~3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지 못하는 등의 증상을 겪는 경우가 많다.
국내 성인 ADHD 유병률은 4.4%로 추정된다. 아동기 때 ADHD 진단을 받는 경우 3분의 2가량이 성인기까지 증상이 지속된다. 그리고 남들보다 조금 부주의하거나 실수가 잦긴 해도 ADHD인지 모르고 살다가 늦은 나이에 진단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후자의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올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ADHD 진단 현황’에 따르면, ADHD 진단을 받은 성인(20~80대)은 2017년 7748명에서 2022년 9월까지 3만 9913명으로 늘었다. 매년 증가세를 보였으며, 6년간 5.1배가량 늘었다. 그중 중장년이 가장 가파른 증가폭을 보였다. 50대는 2017년 170명에서 지난해 954명으로 5.6배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40대는 686명에서 3816명으로 5.5배 늘었다.
나도 성인 ADHD 환자일까?
50대 방송인 박소현은 지난해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 평소 겪고 있는 건망증의 고충을 토로했다. 더욱이 그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얼굴과 생일, 사소한 정보는 너무나도 잘 기억했다.
오은영 박사는 박소현에게 ‘조용한 ADHD’라는 진단을 내렸다. 오 박사는 “행동에 문제가 없는 주의력 저하를 의심할 수 있다. 집중할 때와 아닐 때 정보 저장의 차이가 크다”라면서 “머리가 나쁜 것도, 기억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박소현은 자신을 평생 괴롭혀온 건망증이 ADHD 증상이라는 사실에 충격받은 모습이었다.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자기 행동에 대한 답을 알게 되어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그의 모습은 사실 어떠한 이유로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은 성인들이 ADHD 진단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반응과 유사하다.
성인기의 ADHD 증상은 공존질환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공존질환의 종류로는 우울증, 불안장애, 알코올 사용 장애, 조울병, 인격장애, 충동조절장애, 비만, 섭식장애, 수면장애, 편두통,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 등이 있다. 80% 이상의 환자가 1개 이상, 40% 이상의 환자가 3개 이상의 동반 장애를 가진다. 성인 ADHD를 ‘양파’에 비유한 반건호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인 환자는 성장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이 양파 껍질처럼 켜켜이 쌓여 본질을 알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반건호 교수는 저서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가다가 40~50대가 되어 병원을 찾는 이들도 많다”면서 “보통 연차가 쌓이면서 높은 직급에 오르는 경우 인력 관리와 업무 총괄 같은 조직화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많은데, 이 부분에 취약점이 있는 ADHD 환자는 회사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로 인해 승진 누락, 업무 배제 등으로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처럼 ADHD 증상은 나이가 들면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반건호 교수는 노인이 되어서도 ADHD 증상이 성인기와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짚었다. 자존감이 낮고 욱하는 성질을 보이는 노인 ADHD 환자들이 가장 호소하는 문제는 사회관계 부족 또는 단절이었다. 이에 따라 반 교수는 ADHD 노인을 위한 기반 시설이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인 ADHD, 부끄러워 말아야
ADHD 환자 치료로 약물요법이 권장된다. 나이가 많을수록 약물치료에 반감을 드러내지만, ADHD는 약물치료에 대한 반응률이 80%에 이를 정도로 효과가 좋다. 대표적으로 메틸페니데이트, 아토목세틴 성분의 약이 처방된다. 뇌에서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을 증가시키는 약물이다.
그러나 약물치료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며, 이에 따라 인지행동 치료가 필요하다. 성인 환자가 가정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수용·마음 챙김에 기반을 둔 인지행동 치료가 적용된다. 자신의 문제를 통제하면서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
ADHD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하다. ADHD를 가진 사람은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창의성은 높은 경향을 보인다. 역사적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인슈타인 등이 ADHD였을 거라고 추측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또한 ADHD를 갖고 있는 사람은 활동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이들이 나이를 먹으면, 은퇴 후 노년기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기면서 보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성인이 되어 늦은 나이에 ADHD를 진단받았다고 해서 부끄러워하거나 감출 필요가 없다. 다만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개선하고 싶다면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
이필모(49)는 결혼과 함께 배우 인생의 변곡점을 맞았다. 5년 전 아내를 만나 두 아들을 슬하에 둔 그는 작품 속에서도 아버지 역할을 연이어 연기했다. 그 과정을 통해 어느덧 ‘중년 배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체감된다. 이필모는 이 변화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배우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이필모는 하반기 방송 예정인 JTBC 드라마 ‘이 연애는 불가항력’에 출연한다. 인터뷰 당시 막바지 촬영에 한창이었던 그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이번에 새롭게 보여줄 모습을 묻자 “아버지 역할을 맡은 점이 아닐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극 중 주인공 로운의 아버지 역할을 연기하는 이필모. 재벌 캐릭터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친구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는 2021년 방송된 KBS 2TV 드라마 ‘연모’ 이후 두 번째로 아버지 연기를 펼친다. ‘연모’에서는 이휘(박은빈 역)의 아버지 혜종 역을 연기한 바 있다.
“이게 세월의 흐름인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한 감정이 들어요. 이제 주인공이 아니고 아버지가 되어 조력자 역을 맡게 된 것이니까요. 물론 모든 역할이 중요하고, 이전과 다름없이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지만 말이죠. 그리고 중년 배우가 됐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전과는 다른 제 나이에 맞는 새로운 연기를 하게 되겠죠. 중년의 로맨스 연기를 할 수도 있겠고요. 앞으로 새롭게 펼쳐질 배우 인생이 기대됩니다.”
데뷔 25주년 필모그래피
1998년 영화 ‘쉬리’로 데뷔한 이필모는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그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저는 타고난 끼가 많은 사람이 아니고 노력형 배우다”라고 자평했다. 중학생 때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현재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저는 매우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나마 중학생 때 키가 178cm였으니, 키가 크다는 게 특징인 정도였죠. 별다른 꿈도 없이 살다가 어느 날 홍콩 누아르 영화를 봤는데, 갑자기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이는 거예요. 전문 용어로 카타르시스라고 하는 것을 그때 느낀 거죠. 그리고 그날부터 제 꿈은 배우가 됐습니다.”
이필모는 데뷔 후 연극에 주로 출연했던 터라 인지도가 낮았다. 대중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전까지를 무명 시절로 여겼다. 노력해도 빛이 나지 않는 무명 시절. 많이 힘들었지만 그의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 이필모는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었다”면서 빛을 볼 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는 2006년 KBS 2TV ‘아줌마가 간다’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아침드라마였지만 시청률이 20%(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어 그는 2009년 KBS 2TV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 출연하게 된다.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44.2%를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렸고, 이필모는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극 중 솔약국집 둘째 아들이자 소아과 의사 송대풍 역을 연기했다. 이필모의 능청스럽고 유쾌한 연기가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딱 그 시절 나올 수 있는 청춘의 모습이었다.
“배우를 하면서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제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한창 방영 중일 때예요. ‘솔약국집 아들들’은 54부작인데, 30~40회가 방영 중일 때 가장 행복했어요. 가장 바쁠 시기이기도 한데, 대중의 반응이 느껴지니까 힘이 나는 거죠. 그런데 40회가 넘어가면 그 행복한 순간도 끝나요. 마지막이 다가오니까 아쉬워지는 거죠.”
‘솔약국집 아들들’ 외에도 이필모의 가슴에 오래 남은 작품들이 있다. 가장 먼저 그는 MBC ‘빛과 그림자’를 언급했다. 극 중 악역 차수혁을 연기한 이필모는 캐릭터의 사연에 깊이 공감하며 아직까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MBC ‘가화만사성’에서 뇌종양 환자 연기를 펼친 것, tvN ‘응급남녀’에서 냉철한 의사 연기를 한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셋째 계획 가진 필연 커플
이필모에게 작품 선정 기준을 묻자 “불러주시면 감사하고 가리지 않는다”는 겸손한 답을 했다. 특히 가장이 된 현재 그는 가족을 위해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려고 한다. 이필모는 2019년 인테리어 전문가 서수연 씨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첫째 담호는 2019년, 둘째 도호는 2022년에 각각 태어났다.
“아침에 까치가 입에다 뭔가를 물어서 둥지의 새끼들한테 갖다주는 모습을 보고, 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새끼 새들을 위해 알아서 돌아다니는 거잖아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인 것 같아요. 저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과정을 통해 많이 성숙해지거든요.”
이필모와 서수연 씨는 ‘필연 커플’로 유명하다. 두 사람은 2018년 TV조선 ‘연애의 맛’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 부부로 발전했다. 첫 만남부터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던 그들을 향해 대중의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부부의 근황에 대해 이필모는 “아내의 장점은 털털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다”라고 전했다.
“아내한테 늘 고마워요. 담호, 도호를 예쁘게 낳아주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엄마로서 역할을 잘 해주고 있죠. 저희 부부도 여느 부부와 똑같아요. 가끔 싸울 때도 있죠. 저는 오히려 부부가 안 싸우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남녀가 같이 사는 것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을 수는 없죠. 한두 가지만 맞아도 잘 맞는 것이고, 나머지 여덟 가지는 맞추면서 사는 거예요.”
필연 커플의 2세인 담호와 도호 역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필모는 두 아들의 장래에 대해 “연예인은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묻자 “세상에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힘든 연예인을 할 필요가 있을까. 연예인은 아버지가 이미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또한 이필모는 셋째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아내와 어느 정도 얘기가 된 부분이라고. 그는 “옛날부터 아이가 셋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삼 남매로 자라서 그런지 둘은 외로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근 딸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 특별한 이유를 전했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애들이 방에서 뛰어나와 아빠를 반겨주는 것이 저의 로망이에요. 사실 예전에 여자아이 옷을 사놓은 게 있습니다. 최근 딸을 갖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는데요. 부모님이 아프셔서 병원을 정말 밥 먹듯이 다녔어요. 병원에서 제일 많이 본 장면이 무엇이냐면, 중년 여성이 아버지를 케어하는 모습이에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늙고 병들었을 때 딸아이가 챙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담호, 도호를 못 믿는다는 게 아니에요. 어쩌면 딸아이를 갖고 싶은 욕심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죠.”
모친상, 건강의 중요성 깨달아
부모가 되면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닮아간다고 하지 않나. 이필모의 아버지는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그는 “현재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 요양병원에 계신다”라고 말했다. 삼 남매 중 막내인 이필모는 부모님의 케어를 담당했다.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다닌 것도,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의 주치의·간병인과 소통하는 것도 모두 그다. 지난 3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차마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전할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 23일에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4일 후 아버지가 골절상을 입으셨어요. 아버지는 현재 거동을 못 하시고, 귀가 거의 안 들리는 정도예요. 치매 증상도 있으시고요. 아버지께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말하지 못했죠.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아뵈었는데, 간병인분이 ‘혹시 3월 초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아버지가 그날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하시는 거예요. 순간 소름이 확 돋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아버지를 뵈러 가니까 이제 엄마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이필모의 어머니는 쓰러진 후 3개월간 병상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힐링이 필요할 때 찾는 제주도에서 어머니를 보내는 시간도 가졌지만, 아직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터뷰 당시 이필모는 영정 사진으로 쓰인 어머니 사진을 기자에게 공개하며 결국 눈물을 보였다. 지난해 서울장미축제에서 그가 직접 찍은 것으로, 사진 속 어머니는 유난히도 밝게 웃고 계신다.
“장미축제에 같이 갔을 때 어머니께서 정말 좋아하셨는데…. 그렇게 좋은 곳에 많이 못 모시고 다니고, 못 해드린 게 너무 많아서 가슴이 아파요. 어머니는 자식만을 위해 살았는데 말이죠. 어머니는 우리나라 격동기를 이끈 분이라고 생각해요. 나라를 위해 뭘 했다는 게 아니라 모든 힘듦을 묵묵히 견뎌내고, 자식을 잘 키워내셨으니까요. 어머니 덕분에 배우 이필모도 있는 것 같아요.”
이필모는 어머니를 보내고 ‘건강’의 중요성을 또 한 번 느꼈다. “가족이 무탈하고 건강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는 깨달음을 전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운동한다. 건강을 유지해 오래 일하며, 아버지로서 역할도 다하고 싶다. 중년을 넘어 노년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이필모는 “색다른 향기를 내뿜는 배우가 되고 싶다”면서 “시간이 흐른 뒤에는 연기 참 잘했던 배우로 기억해줬으면”이라고 말했다.
“누구라도 행복하기만 한 인생은 없어요. 어려움과 힘듦의 정도 차이가 있는 거겠죠.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에게 ‘이겨내면 행복한 시간이 올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저도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우리 가족을 위해 이겨낼 거예요. ‘아버지’라는 거룩한 이름을 갖고 있으니까요. 아버지의 이름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야 할 때, 우리는 지인의 정보에 기댄다. 이런 의료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고 합리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고자 하는 헬스 케어 플랫폼이 있다. 국민 ‘상비 앱’을 꿈꾸는 굿닥(goodoc)이다.
굿닥의 주 서비스는 비대면 진료, 병원·약국 검색, 전국 병원 예약이다. 굿닥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다운로드 이용자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임팩트피플스 조사에 따르면 4060 응답자는 활발하게 이용하는 비대면 진료 앱 1위로 굿닥(35.1%)을 꼽았다.
의사와 환자 연결하는 국민 ‘상비 앱’
굿닥은 정보 누적을 통해 의사와 환자를 더 많이 연결하고자 한다. 5500여 개 병원이 굿닥이 자체 개발한 태블릿을 사용하고 있다. 이 태블릿을 통해 매달 120만~150만 명의 이용자가 병원 접수를 하고, 굿닥에 리뷰를 남긴다. 더 많은 병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자체 태블릿을 사용하는 병원을 2만 개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다.
굿닥은 비급여 진료 정보쪾예약을 제공하는 ‘클리닉 마켓’과 헬스케어 상품을 판매하는 ‘굿닥스토어’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앱 사용이 많은 3040세대가 자녀나 부모님의 건강까지 돌본다는 점에 착안해 ‘가족관리’ 서비스도 제공한다.
플랫폼의 순기능을 활용해 질 좋은 의료 정보를 제공하려는 고민에서 시작한 굿닥은 이제 언제든 의료가 필요한 순간에 사람들이 찾는 국민 ‘상비 앱’을 꿈꾼다. 사람들이 자주 앱을 사용하고 싶도록 만들고자 정보 입력 방법을 최대한 단순하게 개발하고 있다. 임진석 굿닥 대표는 앞으로 앱이나 TV 같은 매개체 없이 인터페이스만 남는 형태가 되리라 전망한다. 태블릿이 하는 기능을 로봇이 대체하는 세상이 올 테니 말이다.
비급여 비대칭 정보 해소해야
임 대표는 특히 비급여 분야 정보의 비대칭 해소를 강조한다. 흔히 비급여 하면 성형 관련 분야만 떠올리지만 치과의 임플란트 치료, 정형외과 도수 치료, 소아과의 언어·성장 클리닉, 매년 받는 건강검진도 모두 비급여 분야다. 임 대표는 특히 어르신이 많은 지역에서 비급여 분야의 정보가 더 많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정보가 제공된다면 지역에 사는 분들도 질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굿닥은 한발 한발 의료 접근성을 높여가고 있다. 최근에는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를 활용한 헬스케어 서비스 ‘건강AI챗봇’ 서비스도 시작했다. 어떤 정보를 찾아야 할지 막막한 이용자에게 AI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함이다. 질문에 따라서 비대면 진료 서비스나 병원 예약을 연결하는 점은 굿닥만의 특징이다. 임 대표는 이용자가 AI에게 어떤 질문을 하든 결국 의사와 상담해야 하기 때문에 진단까지 AI가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환자와 의사의 연결점을 빠르게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필요한 질문을 터치하는 방식이나 키워드 조합 및 자동완성 기능 등을 활용해 AI가 일종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TV로도 의사를 만날 수 있다. 삼성전자에서 새로 출시하는 신제품에 굿닥이 탑재되기 때문이다. 임진석 대표는 “나이 들수록 큰 화면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때문에 TV라는 플랫폼을 이용한 의료 접근성도 더 높아질 것”이라며 “의료 커뮤니케이션이 더 잘 이뤄질 수 있고, 디지털 문해력(디지털 플랫폼에서 명확한 정보를 찾고 조합하는 개인의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자의 문제점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몸이 불편해 거동이 어렵거나, 의료 시설과 거리가 멀어 병원을 찾기 힘든 고령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임진석 굿닥 대표 인터뷰
건강관리의 일상화 “염증이 암 되지 않도록”
“2012년 처음 굿닥을 시작한 이후, 많은 분들이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졌는데요. 배달도 택시도 기차도 모두 모바일화되었는데, 병원은 여전히 오프라인으로 방문해야만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병원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지만, 다른 산업에 비해 느린 편입니다. 의료는 연령대가 높은 분들의 수요가 훨씬 많기 때문에, 어떻게 단순화해서 더 쉽게 연결할지 고민하면서 UX라이팅에 굉장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 요즘 택시 타면 기사님들이 스마트폰에 목적지를 말해달라고 하는 방식으로 음성 인식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처럼, 바이오 인증, 음성 인식 등 입력이 생략된 방식이 더 보편화될 겁니다. 앞으로는 굿닥을 통해 상담·진료·예약에 이르는 시간을 줄이고, 복약에 관한 예후 관리, 질병을 막는 예방 관리(PHR)로 확장하고자 합니다. 생애 전반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으로 건강관리의 일상화까지 연결하고 싶어요. 굿닥의 모토는 ‘염증이 암이 되지 않도록 하자’입니다. 어떻게 건강을 관리하느냐에 따라 더 젊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아플 때만이 아니라 일상을 함께하는 국민 상비 앱으로 함께하고자 합니다.”
2030년 노인의료비가 9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노인의학회(이하 노인의학회)는 노인질환에 대해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대비책을 제시했다.
노인의학회는 지난 6일 앰배서더 서울 풀만호텔에서 ‘제37회 춘계학술대회’를 열었다. △건강한 노인 △아프지만 행복한 노인 △자립적인 노인의 삶을 영위하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했다.
김용범 회장은 “오는 2025년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에 접어든다”라며 “올해 노인 의료비가 40조 정도 들었는데, 7~8년 후엔 90조가 될 거라는 예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소요되는 건강보험 비용을 국민에게 건강보험료로 받아낼 수 있을지가 문제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앞으로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방향이 치료보단 예방이나 노인 케어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라며 “이런 현실을 미리 예측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노인의학회에서 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인의료 관련 정부 사업이 돌봄과 관리에만 초점을 둔 점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현상 유지를 위한 정책은 노인환자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은아 부회장은 “현재 노인정책은 의사 대신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노인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다”라면서 “의사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치료가 병행돼야 환자 건강상태가 개선되고, 자립적인 생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노인의학회는 오랜 숙원인 노인환자 진료 시 수가 가산 필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노인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진료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김용범 회장은 “소아의 경우 보호자를 대동해야 하고 진료 때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된다고 여겨 가산 수가를 적용하고 있다”며 “노인환자도 마찬가지다. 병원에 온 노인환자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진료할 때도 에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지금의 보험 재정 내에서 진찰료를 올리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대신 진료 시간에 따라 비용을 정산해주는 진료비 시간 정산제 도입을 진지하게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인환자들이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전문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제도적 지원도 요구했다. 성상규 부회장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노인환자가 아프면 정형외과나 내과 등 타과 의사들에 진료를 의뢰할 수 없다”며 “촉탁의가 2번 정도 오지만, 이들은 진료를 보는 게 아니라 약 처방 등 건강상태 확인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성 부회장은 “진료를 보려면 비용 부담을 직접 해야 한다. 요양원 노인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라며 “이 문제를 인권 보호 혹은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관심을 갖고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학회는 은퇴한 의사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퇴직한 시니어 의사들의 진로 및 인력 활용 방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이은아 부회장은 “노인의학회는 먼저 건강한 노인을 지향한다. 노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질병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하겠다. 두 번째는 어쩔 수 없이 아픈 경우에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겠다. 의사들이 그분들의 삶 자체를 치유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시하겠다. 세 번째로는 자립적인 삶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조심스레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연 긴장했다. 간호사가 진료 기록부를 가져다놓을 때까지도 설마 했다. 차트에 쓰인 이름을 보고 동명이인이려니 하면서도 흠칫했고, 생년월일을 흘끗 보는 순간 노크 소리가 들린 것이다.
“네, 들어오세요.” 목청을 가다듬으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겠지, 설마. 그때가 언젠데….’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내심 피어오르는 일말의 기대감은 또 뭔가.
내 음성을 듣고도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문밖 환자의 기척. 주춤주춤 문고리를 돌리는 손길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그러지 않으려고 할수록 긴장감은 더했다. 빼꼼 문이 열리며 고개를 반쯤 숙이고 들어서는 50대 초반의 여성, 어깨 길이 생머리에 무릎 길이 파스텔 톤의 민트색 원피스 아래 드러난 매끈한 종아리와 잘 정돈된 맑은 피부, 이지적인 분위기의 이목구비로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데다 우아하기까지 하다. 그 짧은 순간 환자의 외모와 표정이며 옷차림까지 스캔할 정도면 환자에 대해, 특별히 호감 가는 여성 환자에 대해 습관적으로 호기심을 갖는 불순한 의사라는 오해를 받을 법하다.
7년 만에 나타난 그녀
오해를 받든 이해를 받든 아, 어찌 잊으랴 그녀를! 진료 기록부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녀가 실체를 드러냈다.
“앉으시지요. 오랜만입니다.”
“네, 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지요?”
무덤덤함을 가장하려고 애쓸수록 이미 일기 시작한 가슴속의 잔물결은 파고를 높여가고 있었다. 긴장을 감추려다 보니 머리가 다 어찔어찔했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사정으로 오늘 또 이렇게 진료실을 찾아왔단 말인가. 정신과 의사로서 위협을 가하지 않는 한 환자 자격으로 나를 만나러 오는 그 누구에게든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지금 그녀는 그런 상황을 충분히 이용하는 것일 테고.
“어떤 불편함 때문에 오셨는지요?”
평정심을 찾으며 평소의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어쨌거나 환자로서 날 만나러 온 것이니.
“선생님, 저 이혼했어요.”
미리 연습한 듯 나직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그 한마디에 가슴속 파문이 동심원을 그리며 온몸으로 번져가려는데, 이어지는 그녀의 눈물 앞에 나의 방어벽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책상 한편에 놓여 있던 사각 티슈 상자를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지만, 그녀는 티슈를 뽑는 대신 쥐고 있던 손수건으로 찍어내듯이 눈가를 조심스레 눌러 닦았다.
7년 전 내 진료실을 떠나갔던 그녀가 지금 내 앞에 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3년을 나와 함께하는 동안 남편의 유흥업소 출입을 막을 뾰족한 방안도, 그녀의 뻥 뚫린 가슴에 적절한 치유도 해주지 못했던 무능한 내 앞에.
의사와 환자, 사랑에 빠지다
10년 전 나는 환자와 사랑에 빠졌다. 나와는 여섯 살 차이가 나는 지금 눈앞의 그녀와. 남편과의 불화에서 비롯된 불면증과 불안 증세로 내원했던 당시 마흔 살의 그녀. 첫 대면부터 한 마리 작은 새처럼 애처롭고 가련해 보였다. 의사 대 환자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보호해주고 싶었다. 의사로서 환자를 보호해주고 싶었다면 무슨 문제일까만, 한 남자로서 한 여자를 품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거미줄을 거두듯 힘닿는 데까지 그녀의 불행을 거둬주고 싶었다.
사랑스러웠다. 20년 내 결혼생활의 권태와 무덤덤함을 일시에 씻어줄 것 같은 청량감마저 느껴졌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성적 매력은 있었지만 남녀 관계로 발전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내면에 장착된 직업윤리라는 엄격한 경계경보가 늘 깜빡이고 있었기에.
결혼한 지 10년 이상 된 중년 부부 갈등이야 특별할 것도 없지 않나. 당사자들이야 그보다 더한 위기가 없을 것같이 굴지만, 들어보면 다 거기서 거기란 건 경험상 이골나게 겪었기에 그녀라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단아한 외모에 끌렸다면 의사로서 자격 미달이니 딱 거기까지인 걸로 마음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다잡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우리 함께 살까요?
의사 이전에 나도 남자니 여성 환자에게 호감 간 일이 실상 처음도 아닌 데다, 첫인상에 가슴이 다소 설렌다고 해도 상담이 오가다 보면 결국 인간적 호의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정신과 의사 생활 20년 짬밥이 말해주지 않았던가. 다른 과와 달리 정신과는 내밀한 사생활과 내면적 속살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에 환자와의 라포 형성 과정에서 묘한 기류가 흐르기도 하지만 곧 정상 궤도로 진입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녀와는 그러지 못했냐고? 선을 지키지 못했다는 뜻이냐고? 고백하자면 그렇다. 둘이 어디까지 갔냐면, 각자 배우자와 이혼하고 함께 살자고 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러자고 했고 그녀는 마다했다. 가정을 깨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더 안달이 나서 함께 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즈음 우린 면담을 빌미로 진료실에서 데이트를 했다. 하지만 맹세코 밖에서 따로 만나지는 않았다. 3년 동안 진료실에서 마주한 것이 전부였고, 따로 만나 밥은 물론 차 한잔 나눈 적도 없었다. 그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직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면담 시간 50분 동안만 우리는 서로를 정신적으로 탐했다.
나와 동갑인 그녀의 남편은 금융업계 종사자로 업무적으로는 유능했지만 결혼 초부터 끊임없이 유흥업소를 드나들면서 아내의 신경을 긁었다. 처음 몇 번은 셔츠 깃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변명하고 건성으로 미안해하거나 시늉으로 용서를 빌곤 하더니, 나중에는 그조차 무감각해져서 아내가 추궁할 때면 남자가 바깥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되레 짜증을 내거나 언성을 높이며 적반하장으로 굴었다.
“이혼을 하셨다고요…?”
그때의 생각이 떠올라 의외의 감정이 담긴 내 말꼬리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는 그녀. 손에 쥔 손수건 끝단을 하릴없이 돌돌 말면서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다.
“이혼은 안 하겠다고 하더니 그간 심경이 변하셨나 봅니다. 그래, 언제?”
“1년 전에요. 우울증을 앓던 아들이 3년 전 자살을 했어요. 그래서 이혼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어요. 결혼 관계를 유지해보려고 애썼지만 원래도 금이 가 있던 부부 관계가 아이를 잃고 좋아질 리가 없잖아요. 좁히려고 애쓸수록 사이가 더 벌어지면서 결국 파경을 맞았어요. 남편은 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 그간 가정을 등한시했던 자신의 잘못을 탓하며 늦게라도 부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 점을 인정하기 때문에 비록 헤어졌어도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 따위는 없어요. 하지만 더 이상 제가 의미를 못 찾겠더라고요. 아들을 잃은 마당에 가뜩이나 정 없던 부부가 새삼 노력해서 같이 살 가치가 있을까 싶었어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후 소식 한 자 없더니 지난 7년간 아들을 잃고, 남편과 헤어지고, 지금 이렇게 내 앞에 앉은 그녀.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죽을 것 같은 방황 다시 시작되고
성적으로 문란한 남편 때문에 시작된 치료였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쪽에서 곪아 불거졌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불화를 보고 자라온 외아들이 아동기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실상 그녀의 정신과 내원 동기도 아들로 인해서였다. 물론 처음부터 아들 이야기를 꺼냈던 건 아니다. 이유는 내가 아들을 보자고 할까봐 겁이 나서였다고 했다. 점차 내게 연애 감정을 느끼면서 모종의 수치심으로 아들 상태를 털어놓고 싶지 않았던 심정은 이해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일은 그녀의 오판이자 어리석음이다. 왜냐하면 아들은 소아정신과로 보내졌을 테니 내게 치부가 드러날 염려 따위는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랬는데 지금 그 아들이 죽었다지 않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치료를 받게 했더라면 그렇게 어이없이 아들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닥쳐올 크나큰 불행을 미리 내다보지 못한 채 별 가망도 없는 남편 바람기 잡기에 대해서만 계속 떠들어대고 있었으니, 이 무슨 낭패인가 말이다.
“그랬군요.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그럼 요즘 혼자 지내나요?”
“이혼 후 친정에 들어가 지냈는데 친정어머니가 최근에 돌아가셨어요. 교통사고로 갑자기.”
점입가경이라더니, 불행이 불행을 낳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말로 위로가 되랴. 내 기억으로 그녀는 외동딸이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셨으니 이제 그녀가 의지할 피붙이는 없다는 뜻이다.
“제가 뭘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오늘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뭐죠?”
“그냥요, 그냥 선생님이 보고 싶었어요.”
얼마나 듣고 싶고 기다렸던 말인가. 7년 전 일방적으로 그녀 쪽에서 발길을 끊은 후 나는 적잖이 방황했다. 그녀가 떠난 빈자리로 인해 아내와는 더 권태롭고 더 지루해져서 그 참에 아내와 헤어져버릴 생각까지 했다. 그랬던 나를 가까스로 추스른 게 불과 2, 3년 전. 그런데 그녀가 내 앞에 거짓말처럼 다시 나타났으니. 아, 나의 죽을 것 같은 방황이 다시 시작되는 것일까.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올해부터 환자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의료 활동에 정규 수가가 적용된다. 이에 요양병원을 포함한 중소병원의 연명의료결정제도가 확대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를 개최해 ‘제1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19~2023)’의 올해 시행계획을 심의·확정했다.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은 연명의료결정법 제7조에 근거해 호스피스와 연명의료결정제도 확립을 위해 5년 단위로 수립되는 중장기 종합계획이다.
지난해 11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무의미하게 임종 과정 기간만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의료인 활동에 대해 임시로 운영해 온 시범사업 수가가 아니라 개선된 정규 수가를 산정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시범 수가가 정규 수가로 편성되면서 전반적인 수가 적용 기준이 완화됐다. 기존에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의료기관이 직접 운영해야만 수가 적용이 가능했으나, 올해부터는 위탁 운영도 허용한다. 외부 전문가 섭외가 어려워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했던 중소병원을 위해 여러 의료기관이 ‘맞춤형 공용윤리위원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될 예정이다.
또 시범 수가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시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기관에만 적용됐으나, 정규 수가는 이 4가지 시술 중 1개 이상 수행 가능한 기관이면 적용된다. 별도의 연명의료지원팀을 구성하고, 제도 관련 교육을 수료하도록 했던 인력 기준도 해당 업무 담당자만 교육을 이수하면 되도록 완화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건수는 제도 시행 3년 6개월만인 지난해 8월, 100만 명을 돌파했다. 복지부는 올해 150만 명을 목표로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기관을 지속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인복지관, 보건소를 더불어 비영리법인이나 단체를 통한 ‘찾아가는 상담소’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또한 호스피스 서비스의 대상 질환이 확대된다. 기존의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2종 외에 만성 호흡부전 13종의 질병코드(만성기관지염, 천식, 기관지확장증, 진폐증, 호흡곤란증후군, 간질성폐질환, 기타호흡장애 등)를 추가한다. 현재 시범사업으로 수행 중인 소아·청소년 완화의료 시범사업에 대해서도 그 성과를 평가해 본 사업으로 전환을 추진할 예정이다.
팍스로비드 이어 두 번째, 26일부터 중증 진행 위험 높은 환자에게 투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미국 제약사 머크앤드컴퍼니(MSD)가 만든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라게브리오캡슐’의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식약처는 안전성·효과성 검토 결과 등을 토대로 전문가 자문회의와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료제품 안전·공급 위원회’를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긴급사용승인은 감염병 대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제조·수입자가 국내에 허가되지 않은 의료제품을 공급하는 제도다.
라게브리오캡슐은 리보핵산(RNA) 유사체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복제 과정에서 RNA 대신 삽입돼 바이러스 사멸을 유도하는 ‘먹는 치료제’다. 국내에서는 화이자사의 ‘팍스로비드’에 이어 두 번째로 긴급사용이 승인됐다. 임상 시험에서 30%의 중증 예방 효과를 보였는데, 88%의 효과를 보인 팍스로비드보다 낮은 수치다.
투여 대상은 중증으로 진행될 위험이 높은 경증 및 중등증 성인 환자다. ‘팍스로비드’ 복용이 어려운 환자에게만 처방할 수 있다. 팍스로비드와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약품을 복용 중이거나, 주사제를 사용할 수 없는 환자들이 해당한다. 임부와 만 18세 미만 소아·청소년 환자는 복용이 금지된다. 가임기 여성은 복용 후 나흘동안, 가임기 남성은 3개월동안 피임이 필요하다.
라게브리오는 하루에 800㎎(200㎎ 4캡슐)씩 12시간마다 2회, 총 5일간 먹는다. 코로나19 양성 진단을 받고 증상이 발현된 후 5일 이내, 가능한 한 빨리 먹는 것이 좋다.
식약처는 “국내외 안전성 정보를 지속적으로 분석·평가하여 신속하게 주의사항 안내, 사용 중단, 회수 등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고 만약 중대한 부작용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인과성을 평가해 보상할 것”이라며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라게브리오 2만 명분을 우선 도입해 오는 26일부터 현장에 공급할 계획이다. 선구매 24만 명분 중 10만 명분을 이달 말까지 도입할 예정이며, 종합병원·요양병원 등 팍스로비드와 동일한 기관에서 처방된다. 캡슐 복용 후 부작용이 발생하면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신고하고 피해보상 신청서와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이달 말부터 5세부터 11세 사이의 소아를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진다.
전희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2차장은 오늘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대본 회의에서 “백신 접종의 중요성이 여전히 큰 가운데, 정부는 그간 접종 대상에서 제외됐던 5세부터 11세 소아에 대한 백신 접종을 전국 1200여 개소 지정 위탁의료기관을 통해 3월 말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전 예약은 이달 24일부터, 접종은 31일부터 시작된다. 전 2차장은 “우리보다 앞서 접종을 시행한 해외국가에서 그 안전성과 효과가 충분히 검증됐고 전체 확진자 중 11세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이 15%를 넘어서는 상황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4일 기준 코로나19 전체 확진자 가운데 11세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은 15.4%이다.
이들은 한국화이자제약의 ‘코미나티주’를 백신으로 맞는다. 청소년용 백신과 유효성분이 같지만 용량이 1/3으로 줄어들었으며, 청소년용과 구분하기 쉽게 뚜껑과 테두리 색을 달리했다.
코미나티주 백신을 맞은 5~11세 소아는 1차 백신 접종 3주 뒤 2차 접종이 가능하다. 중증 면역 저하 어린이는 4주 뒤 3차 백신을 접종받을 수 있다. 해당 연령대 어린이들은 코미니타주 백신 2차 접종 일주일 뒤 90.7%의 예방효과를 보였다.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중증으로 번질 확률이 74% 줄었다”고도 분석했다. 이미 백신을 맞은 청소년과 비슷한 수준의 면역반응을 보인 것.
심근염 등 부작용 보고가 존재하나 현재까지는 경미한 수준에 그친다. 두통이나 피부가 붉게 변하는 경미한 이상 반응이 대부분이며, 아나필락시스 반응이나 사망은 없었다.
정부는 우선 면역력이 낮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고위험군 소아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기초접종 완료 후 3개월이 경과한 12~17세 청소년에 대한 3차 접종도 오 늘부터 시작된다.
한편 지난달부터 18세 이상 고위험군 180만 명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4차 접종이 시행되고 있다. 3차 접종을 완료한 면역저하자 130만 명과 요양병원·시설에 있는 입원·입소자와 종사자 50만 명이 대상이다. 3차 접종 이후 4개월이 지난 이후부터 접종할 수 있지만, 해당 병원이나 시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거나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 3개월 이후부터라도 접종 가능하다.
정부는 고위험군인 60세 이상 고령층을 4차 접종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 역시 4차 접종 위험 대비 이득을 입증할 데이터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달 14일 4차 접종 시행 계획에 대해 “오미크론 변이는 일반적으로 델타 변이에 비해 중증과 사망위험이 높지 않다”며 “면역저하자와 요양병원·시설은 3차 접종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면역이 감소돼 최근 누적 위중증 위험비, 사망 위험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추가접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위험군 이외의 대상에 대한 4차 접종은 아직까지 추가로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며 “다만 유행상황에 대한 부분과 위험, 이득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판단하겠다”고 언급했다.
병원을 자주 들락거린 사람이라면 소아과 간판 앞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의문이 있다. ‘왜 노인과는 없는 거지?’ 실제로 병을 달고 사는 것은 노인인데 말이다. 정답부터 이야기하자면 노인과는 존재한다. 몇몇 병원을 중심으로 소소하게 운영되고 있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곱씹어보니 고령화라면 세계 최고로 꼽히는 우리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일임을 금방 알게 된다. 이에 대해 정희원(39)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노인의학’ 도입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한다.
“선진국에서는 고령화사회를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노년내과가 생겨요. 최근에는 정부가 주도해서 만드는 경우도 있죠. 나이가 들면 만성질환이 늘고, 노화를 부르는 요소들이 축적되죠. 신체 기능도 떨어지고요. 한꺼번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죠. 이럴 때 건강한 성인을 기준으로 판단해서 치료하면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생길 수 있어요. 섬망, 욕창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안고 있는 다양한 질환에 대해 전문 치료과에서 각각 치료받으면 약이 많아지고 몸에서 섞이죠. 그러다 부작용이 생기면 또 그에 대한 약을 처방해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면서 비효율적이죠.”
노인의학은 생물학적 노화의 결과인 노쇠와 여러 가지 질병, 신체적·정신적 기능의 변화가 혼재된 상태에서 환자에게 맞춤 의료를 제공하는 전문 분야다. 특정 나이를 기준으로 몇 살부터 노년내과에서 담당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생리학적으로 노쇠의 특성을 가지는 인구 집단을 전문적으로 볼 수 있는 분야다.
정 교수는 설명 과정에서 ‘약을 정리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말 그대로 현재 복용 중인 약 중 꼭 필요한 약물만 복용할 수 있도록 수를 줄이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과정을 말한다. 각기 다른 전문의가 처방한 약은 나름의 목적이 존재하지만 이것들이 충돌을 빚어 부작용이 생길 경우 이에 대한 또 다른 약을 처방하기보다는, 복용 중인 약물에 변화를 주어 불필요한 약을 줄이고 부작용도 없앤다는 뜻이다. 얼핏 보면 간단하고 단순한 일이지만, 모든 질환에 대한 경험과 약물 부작용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하지만 만나기 힘든 ‘노인의학’
물론 기존의 의료기관이나 진료과가 이런 부분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 건강보험제도 구조상 환자가 처방전을 직접 가져다주지 않는 이상 다른 병원에서 내 환자에게 어떤 약을 처방했는지 의사는 알 길이 없다. 노년내과에서 현재 복용 중인 모든 약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인에게 맞는 맞춤 진료와 치료가 필요하니까요. 같은 80대라도 사람마다 상태가 너무 달라요. 기대여명이 짧은 상태라면 무리하게 10년 이상을 바라보고 처방하는 약을 유지할 필요는 없어요. 부작용만 생기죠. 노인의학은 일종의 정밀의료로, 생물학적 상태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까지 고려해서 치료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합니다. 치료와 함께 돌봄 계획도 수립하고, 연명의료도 논의하죠. 어디에 사는지, 환자분의 의향은 어떤지, 보행 속도나 악력은 어떤지도 고려해요. 물론 이 과정에서 약도 정리합니다. 이렇게 환자의 이런저런 일들을 챙기다 보면 환자 1명당 진찰 시간이 30분을 훌쩍 넘어가죠. 상업적인 병원에서 노인의학을 외면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물론 환자 입장에선 ‘속 시원한’ 경험이다. 하루에 먹던 수십 개의 약이 정리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약값 부담도 줄어든다. 또 환자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혹은 부모를 어떻게 모셔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도 찾을 수 있으니 걱정이 줄 수밖에 없다.
정 교수는 앓고 있는 질환이 여러 개여서 다니는 병원이 많고, 신체 기능이 떨어진 것 같다면 한 번쯤 노인의학 진료과를 찾아 전체적인 신체 건강 상태나 치료 방향을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고 추천했다. 노쇠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점검하는 기회를 가지라는 것이다.
국내에 노인의학 진료과가 등장한 것은 2007년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이 ‘노인병센터’를 설립했다. 이어 2009년에 서울아산병원에 노년내과가 생겼고, 2010년에는 신촌세브란스에 노년내과가 들어섰다. 짧은 기간에 연이어 노인의학 진료과가 신설되면서 대중화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의료계 내에서 진료 영역에 대한 갈등으로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노인의학의 필요성 때문인지 관련 진료과 설립은 계속 이어졌다. 삼성서울병원과 전남대학교병원, 건양대학교병원, 울산대학교병원, 은평성모병원 등 국내 10여 개 진료과에서 노인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김대중 정부 때 처음으로 시도됐다가 잘 안 됐죠. 공공의료가 잘 되어 있는 영국에선 내과 의사의 10%가 노인내과 간판을 달고 진료하고 있어요. 영국 정부는 각 과별로 따로 진료하고 처방하는 것보다 노인병을 전담하는 사람이 맡아보는 것이 효율적이고 보험 재정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개인과 사회 모두 중요한 지속가능한 나이 듦
정희원 교수는 최근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지속가능한 나이 듦 : 노년의 질병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라는 다소 긴 제목의 책이다. 노인의학 의사이자 생명과학 박사까지 취득한 정 교수는 나이 드는 것을 노화 메커니즘이나 나이라는 숫자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노화의 생물학적 정의와 메커니즘을 다룬 ‘시간 : 노년을 맞이한다는 것’과 노인의료의 문제점과 사례를 다룬 ‘질병 : 노년의 질병,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지속가능한 사회 고령화에 대한 이야기 ‘사회 : 초고령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가 그것이다.
‘지속가능한’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 이 단어는 지난 몇 년간 경제 분야의 화두였다. 의료와는 다소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정 교수는 “나이 듦이라는 것을 극복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에 대한 반감에서 이 표현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안티에이징이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마치 나이 듦을 재앙처럼 여기려 하지만, 실제로 노화는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과정이에요. 노화를 받아들이고, 본인이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그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요. 질병이나 노화의 축적을 예방함으로써 덜 고통받고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죠. 만약 젊어서 만성질환을 관리하지 않고 운동 부족으로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면 노쇠는 남보다 빨리 오기 마련입니다. 살아가면서 장애가 생기는 것을 지연시키고, 노화를 맞이하더라도 삶의 질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나이 듦이라고 봤어요.”
정 교수는 이러한 관점이 단순히 개인의 삶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복지사회 정책이나 고령화를 맞이한 한국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현재 언론에선 마치 고령화가 사회의 종말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회에서 고령의 구성원이 늘어나는 것이 파멸적인 것은 아니에요. 우리 사회는 지금 복지정책을 디자인할 때 과거의 기준과 잣대를 들이미는 실수를 하고 있어요. 65세가 도움이 필요한 약자였던 것은 수십 년 전의 이야기고, 지금의 65세는 그 기준이 세워졌던 시절 50대 수준의 신체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 교수는 우리 사회가 의료나 복지정책을 수립할 때 기준으로 삼는 ‘노인’에 대한 정의를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노인의 기준을 무조건 나이로 가르려는 연령주의적 발상은 문제가 있어요. 65세가 되었다고 그 순간부터 갑자기 다른 종족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나는 적어도 늙지 않았다는 분리 욕구를 가진 사람들의 부적절한 기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관료적인 생각은 변화될 필요가 있어요. 이제 나이는 많지만 건강 상태가 좋고 독립적으로 오래 살 수 있는 분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정 교수는 그 이유를 삶의 폭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갖는 시점도 과거에 비해 10년 가까이 늦춰졌고, 지금의 86세대나 X세대가 65세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 10년 전의 65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적응 역량이 높을 것이라고. 나이라는 숫자는 같지만 생애 주기의 위치와 능력, 역할이 달라지는 변화를 정 교수는 ‘스냅샷의 오류’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 것이 좋을까. 정 교수는 노화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상황에 처한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획일화된 노화 예방 상식으로 접근하다가는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신이 처한 노화 스펙트럼에서의 위치에 따라 그에 맞는 건강 증진 활동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50대는 만성질환 관리를 잘하면 뇌졸중 등 질환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혈압이나 혈당 등을 철저하게 관리시키지만, 이미 노쇠한 어르신들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낙상이나 섬망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요. 단백질 섭취도 마찬가지예요. 젊은 성인은 단백질을 과다 섭취하면 노화 시계가 빨라져요. 그러나 운동이 어려운 어르신들은 근감소를 막기 위해 단백질 섭취를 권해야 하죠. 이렇게 생애 주기에 따라 예방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다른 목표를 설정할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보호자 ‘효자’ 되지만, 병원에선 ‘불효자’
앞서 설명한 것처럼 노인의학을 다루는 의료기관도 많지 않고, 병원 내에서도 입김이 셀 수 없는 진료 과목이다. ‘돈 잘 버는 효자’ 노릇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운 분야다. 그런데 왜 정 교수는 ‘노년내과’를 선택했을까.
“본과 4학년 때였어요. 섬망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온 노인 환자가 있었죠. 일반적으로 내과 의사는 환자를 드라마틱하게 바꿔놓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선배 의사가 환자가 복용하던 약들을 종이에 끄적이더니 정리해주었어요. 그러고는 며칠 만에 멀쩡해져서 걸어 나가시는 걸 보았죠. 노인의학의 매력을 느꼈어요. 알아야 하는 분야의 폭도 넓고 깊은 데다, 복지정책이나 보험제도 등 사회의 기능적인 내용까지 알아야 하니까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런 것이 진짜 내과 의사가 아닐까 생각했죠.(웃음)”
정 교수는 내과 전문의이자 생명과학 박사이기도 하다. 그가 생명과학에 관심을 가진 것 역시 노인의학과 관련한 목마름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공의 과정을 통해 노화와 노쇠, 근감소증에 대해 공부했는데, 아직까지 노쇠와 근감소증을 개선할 수 있는 효과적인 약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나이 듦에 따른 이런 변화가 생물학적으로 어떤 과정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궁금했죠. 또 영양 섭취나 운동 등으로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지만, 모델 동물을 통한 생물학 연구에선 노인의학적 접근이 활발하지 않아 임상 의사로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람의 노쇠는 복합적 요인이 오랜 기간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에 단순화된 실험으로는 쉽게 답을 낼 수가 없더라고요.”
정 교수는 마지막으로 노인의학 의사로서 노인의학 클리닉의 장점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혼잡한 종합병원에서 휠체어를 끌고 5~6개 진료과의 외래진료를 다니시던 분들이 통합된 한 곳에서 진료받으면 드시던 약을 정리할 수 있고 병원에서 고생하시던 시간과 진료비도 줄어듭니다. 몇몇 분들은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는 것이 직업처럼 되어버리거든요. 이런 분들은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줄면 무척 기뻐하세요. 많은 분들이 이런 혜택을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제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