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성장에 힘이 될 수 있을까?”

입력 2026-01-23 07:00

의사가 전하는 작은 나눔의 큰 힘

초록우산 그린리더클럽

초록우산 그린리더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아이들의 내일을 밝히는 따뜻한 실천가들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장년 독자가 일상에서 실현 가능한 작은 나눔의 방법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웃음과 걱정이 교차하는 곳이다. 이혜경 신도시이진병원 원장은 그 변화의 순간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일해왔다. 그는 “아이 하나가 자라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며 그 가능성을 지켜주는 건 어른들의 몫이라는 철학을 밝혔다.


그는 30년 넘게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자연스레 ‘아이들을 위한 나눔’에 마음이 쏠렸다. 처음부터 거창한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오던 결핵 퇴치 ‘씰’, 크리스마스 성금함에 동전을 넣던 순간이 서서히 마음속에 스며들었을 뿐이다.

“그땐 몰랐죠. 그게 나눔의 시작이었다는 걸.”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때’ 건네는 선물

2025년 병원 개원 10주년을 맞아 그는 뜻깊은 일을 시작했다. 바로 ‘핑크박스 성장 프로젝트’로, 사춘기를 앞둔 취약계층 여아 100명에게 6개월~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위생용품을 담은 박스를 선물하는 활동이다.

“만 열 살이면 사춘기가 시작되는 나이인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은 생리대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많더라고요. 그때 받는 작은 도움은 아이에게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메시지가 돼요.”

박스 디자인보다 ‘실속’을 챙기자는 것도 그의 제안이었다. 예쁘게 포장하는 대신, 아이들이 충분히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구성으로 채웠다. ‘어른의 시선’이 아니라, ‘그 나이 아이의 마음’에서 출발한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피드백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감사 인사를 강요하면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어요. 그저 조용히 필요한 곳에 닿기만 하면 됩니다.”


좋은 마음은 번진다

나눔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확산됐다. 그의 진료실을 찾던 학부모가 학교 축제에서 모금 행사를 제안했고, 학생들은 최종 800만 원 상당의 금액을 모아 초록우산에 기부했다. 그 후 또 다른 축제에서도 난방비 지원을 위한 모금으로 이어졌다.

“사실 학생들이 봉사 점수 때문에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아이들이 진심으로 참여했고, 그 경험이 또 다음 학년으로 이어졌어요.”

병원 직원 한 명은 자신의 인센티브 전액을 기부했다. 주변의 이런 행동을 보면서 이혜경 그린리더는 “이런 것이 나눔의 전염”이고, “누군가의 진심이 옆 사람을 바꾸는 순간은 늘 짜릿하다”면서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기부는 누군가의 가능성을 지켜주는 일

이혜경 그린리더는 나눔을 ‘내 것을 덜어내는 희생’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의 가능성을 살리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또 금세 자라요. 그런데 그 성장의 흐름을 이어가려면 어른들의 작은 응원이 꼭 필요하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게 결국 우리 모두의 미래니까요.”

그는 ‘좋은 어른’에 대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조금 더 따뜻한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했다.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일상 속 작은 선택에서 시작되는 역할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그는 기부를 망설이는 이들에게 “일단 해봐. 딱 한 번만 실천해보면 생각보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져”라고 조언한다.

그 ‘행복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누군가를 도왔다는 사실이 주는 뿌듯함, 아이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만든 감정이다.


당신도 누군가의 ‘조용한 응원자’가 될 수 있다

기부는 누구나 알고 있는 단어지만, 막상 손을 내밀기까지는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용기는 마음 한켠에 오래 자리했던 따뜻함을 살짝 꺼내기만 하면 발휘된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병원에서 벌어들인 건 결국 지역사회가 준 것이니 당연히 조금은 돌려드려야죠. 세금을 내듯이요.”

그의 말은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순환의 자연스러움을 이야기한다. 내가 받은 만큼 다시 건네는 흐름, 그 단순한 움직임이 한 아이의 삶에 큰 울림으로 남는다.

나눔이란 누군가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겠다는 부담스런 포부가 아니다. 오히려 “당신을 조용히 응원하는 어른이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작은 징표에 가깝다. 이런 응원의 씨앗은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싹을 틔운다.

당신의 아주 작은 선택도 누군가에게는 ‘가능성의 시작’이 될지 모른다. 기부가 그렇듯, 따뜻함은 늘 그렇게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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