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남의 아름다움을 이뤄주고, 남의 추함을 이뤄주지 않으나, 소인은 이와 반대로 한다.(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
-‘논어’ 안연편
필자가 오늘 소개할 세 사람은 바로 군자(君子)가 추구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늘 자기를 살펴 고치고, 그동안 해온 업(業)을 배움과 덕으로 더욱 널리 펼치는 모습이 지극히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된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 어느결에 새 마음이 헌 마음이 되었습니다. 다져 먹었던 결심과 각오는 흔들리고, 마음에 새겼던 약속은 또 다른 변명과 구실을 찾느라 분주합니다. 영웅호걸 찾기 힘든 시절, 업을 이어 승화시킴으로써 세상에 나누는 여장부(女丈夫) 세 사람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대설 내리는 날, 구둣방에서
혹독한 한파가 몇 날 며칠 계속되더니 드디어 큰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한 날 이른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남편 등산화 수선을 맡기러 평소 눈여겨보던 답십리 사거리 구둣방을 찾은 것입니다. 하필이면 대설로 천지 분간도 안 되는 날을 잡았지 뭡니까. 교차로 신호등이 바뀌기 무섭게 잰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저만치 백열등 알전구가 노란 불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휴, 다행이다. 속으로 안심하며 드르륵 가게 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사장님?” 인사를 건넵니다.
이곳은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구두 수선집입니다. 40년 가까이 해온 이 일의 진짜 주인은 남자 사장님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여자분이 가게에 종종 보이더니 아예 사장님 자리를 꿰찼네요.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조심스레 여쭤보았습니다.
“사장님이 바뀌셨나요? 남자 어르신은 이제 안 보이시네요. 어디 편찮으신가요?”
대답을 듣지 못해 민망해진 필자는 더는 묻지 못하고 본론을 꺼냈습니다. 등산화 바닥이 많이 망가져서 고칠 수 있는지 물어보았지요.
세상 뜬 남편 대신 업을 이어 붙이며
“한 3년 됐어요.”
낡은 신발 바닥을 잘라내고, 덧대고, 기우고, 못질로 신발 몸체와 단단히 연결시키는 과정을 빨려들듯 지켜보느라 처음에는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아무 대꾸도 않는 제게 그녀는 다시, “칠십도 안 된 남편, 담낭암과 황달로 3년 전에 보냈어요. 그이 생전에 어깨너머 배운 것과 밖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걸로 닫았던 가게 문 다시 열었어요.”
왜 맨손으로 작업하시느냐 물으니 장갑을 끼면 감각이 무뎌져 정교함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손톱 밑이며 손바닥과 손등까지 시커멓게 변한 손이 마치 ‘뻬빠’(사포) 같습니다. 거친 자신의 몸을 문대어 운동화며 구두며 장화며 부드럽고 매끄럽게 하니까요.
신발 바닥 덧대는 여자
요즘엔 서방 알기를 개떡같이 아는 세상이 되어서인지 몰라도 남편 구두 반짝반짝 닦아 현관에 대령은커녕 벗어놓은 신발 걷어차거나 밟지 않으면 다행이라고들 합니다. (이 말은 제 뒤에 앵클부츠 한 짝을 들고 온 초로의 여자분이 필자에게 요즘 젊은 것들 흉보며 한 말입니다.) 필자 역시 별다르지 않아서 먼지투성이 남편 신발을 꺼내놓자니 갑자기 부끄러워지더라고요. 한데 구둣방 여주인은 험하고 더러운 데며 온갖 곳을 돌아다녔을 등산화를 소중히 안고 구석구석 매만지고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를 헤매고 다녔는지,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왜 관리는 제때 안 했는지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 자그맣고 여린 손으로 낡고 더러워진 신발을 귀한 물건인 양 정성스레 대하는 그녀 머리 뒤로 후광이 퍼지는 듯 마음이 짜르르해졌습니다. 아프고 상처 난 마음, 억울함과 분노로 막히고 뭉친 마음에 반창고 붙인다고 다니는 필자는 그날 비좁은 구둣방에서 숨고 싶어질 만큼 작아졌습니다.
숟가락 장단에 희로애락 담아
‘찐찐찐찐 찐이야 완전 찐이야 진짜가 나타났다 지금’
나무 숟가락 두 개를 한 손에 쥐고 유행가 따라 장단을 맞추며 춤추는 이복자 숟가락난타협회 대표. 실용음악 재즈피아노를 전공하고 음악치료 석사과정을 공부한 이 대표는 일평생 음악학원을 하며 생업을 이어오다, 환갑이 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했습니다. 이 대표는 평소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도 형편이 되지 않아 아예 시도하지 못하거나, 배우는 과정이 어려워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를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에 일상에서 흔히 쓰는 도구를 악기 삼아 연구하고 연습하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해 즐길 수 있도록 악보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단순명료하게 만들었습니다. 세모, 네모, 별, 화살표, 이렇게 딱 네 개 기호만으로 만든 그녀만의 악보는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별도 볼 수 있고, 세모, 네모 다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갈증을 쉬운 악보와 도구로 풀어준 이 대표는 숟가락 난타를 본격적으로 무대에 올린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위기가 가져온 인생 반전
이 대표는 숟가락난타협회를 만들어 울산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대면, 비대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강사 양성과 공연에 열중했습니다. 그 공로로 2021년 제40회 스승의 날 기념 ‘한국강사신문이 선정한 제1회 대한민국 명강사 12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숟가락 난타 강사이자 음악가로 활동하며 자신이 양성한 제자들이 전국 방방곡곡 숟가락 난타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힐링·음악치료 분야에서 수상한 만큼 그 정성과 열정을 인정받은 셈이지요.
어쩌면 코로나19는 이 대표에게 인생 2막을 열어준 전화위복의 불씨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면 수업 중심이던 음악학원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아 모든 활동이 멈췄을 때 비대면 온라인 교육을 접하며 활로를 모색할 수 있었으니까요. 30년이 훌쩍 넘도록 운영해온 음악학원을 딸에게 물려준 이 대표는 ‘내 삶의 주인공’으로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노후에 펼칠 로망으로 간직했던 꿈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음악 분야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악기와 음악을 쉽게 접하고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을 더 늦기 전에 펼치게 되었지요. 오랜 궁리 끝에 ‘세상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배워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바로 숟가락 난타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악기 가운데 관객 호응이 가장 좋은 점도 함께 즐기기 안성맞춤이고요.
마음 장단 맞추기는 참 어려워요
흥과 끼라면 지구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 민족은 악기가 있건 없건 가락과 장단에 맞춰 잘 놀 줄 압니다. 쿵짜락 쿵짝 삐약삐약. 왕년에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노래하고 춤춰보셨습니까. 지역마다 독특한 장단이 있습니다. 장단 맞추기 쉬울까요? 즐겁고 행복한 인생 2막을 위해 숟가락 난타를 개발해 전국을 다니며 장단 맞추기를 가르쳐온 이 대표에게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인간관계에서 부딪히는 갈등이라고 합니다. 어제 막역한 친구였다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적이 되어 자신을 공격해오는 경우는 정말 마음이 힘들었다고 하네요. 평생 음악학원에서 십대 안팎 어린 교육생들만 상대하다 숟가락 들고 만나는 어른들은 영판 달랐으니까요. 스스로 마음 단련하는 법을 익히느라 고생도 했지만, 숟가락 두드리며 가슴속 진심이 상대에게 전해져서 서로 위안이 되는 따뜻함을 나누었으면 하는 게 이 대표의 바람입니다. 밥 먹던 숟가락이 이제는 신명과 즐거움을 먹고 그 행복을 베풀게 되었습니다.
높이 말고 낮게, 예술을 나누는 천사
하프 소리는 사람이 듣기에 가장 좋은 음파를 낸다고 합니다. 서툰 연주도 신경을 긁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할까요. 초보자가 연주해도 아름답게 들린다는 게 하프가 지닌 강점이라네요.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그런 게 아닐까요. 하늘에서만 연주할 것 같은 고상하기 그지없는 하프를 지상으로 가져와 누구든지 어디에서나 배우고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이가 바로 안영숙 한국하프교육협회 회장입니다. 사실 회장보다 교수라는 호칭으로 오랜 세월 살아온 안 회장은 한국에서 하프 연주자, 일명 하피스트 1세대로 불리는 유학생 1호입니다.
악기 제작자로 변신한 하피스트
하프 대중화라는 목표에는 우리 국민의 마음이 정서적으로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안 회장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하프는 이동과 보관이 너무 불편할 뿐 아니라 실제 연주할 때도 불편을 넘어 고통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은, 정말 까다롭고 비싼 악기입니다. 이런데도 그동안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걸 이상하다고 느낀 안 회장은 자신이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용감하게 뛰어들었습니다. 주변의 무관심과 싸늘한 시선을 뒤로하고 결국 목공학교를 5년이나 다니면서 사서 고생을 한 끝에 미니 하프 ‘줄리’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정서적으로 풍부하게 만들겠다는 사명감이 아니었다면,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그녀의 노고는 속속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10일 제1회 줄리 하프 국제 콩쿠르 본선을 한국영상대학교에서 열어, 초등부에서 실버 부문까지 전 연령대에 걸쳐 수상자를 선정하며 하프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 12월 21일에는 ‘2022 한국 소비자 베스트 브랜드 대상’ 악기 개발 및 하프 교육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직접 만든 소형 하프로 하프 대중화와 악기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안영숙 회장. 줄리 하프는 해외 시장에도 진출해 악기 수출뿐 아니라 교육센터를 통해 누구나 쉽게 하프에 접근해 즐길 수 있도록 저변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충남 공주시 단골 철물점에서 직접 고른 철사줄을 매어 하프를 손보던 안 회장은 가게에서 즉석 연주를 합니다. 오드리 헵번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연주했던 ‘문 리버’(Moon River)가 그녀의 손을 타고 계룡산까지 울려 퍼지는 듯합니다.
오늘도 헌 구두 하나 꺼내며
옆 사람 표정과 눈빛에 상처 입고, 가족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폐부 깊이 찌르는 송곳이 되어 아플 때. 이런 날이면 필자는 신발장을 기웃거립니다. 뭐 고칠 것 없을까 공연히 이 신 저 신 꺼내놓습니다. 오늘은 아들 구두 손볼 차례입니다. 새 신 바닥 앞뒤로 미리 고무창을 덧대면 발바닥도 덜 아프고, 우툴두툴 고무 요철이 미끄럼도 막아주고, 신발 수명도 늘려준다고 하니 일석삼조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구둣방에 미리 오신 옆자리 손님은 자기 것과 딸내미 롱부츠까지 바닥 창을 덧대달라는 주문을 하네요. 구두처럼 우리 마음에도 다치기 전, 아프기 전 미리 반창고 하나씩 붙여보실까요.
부머 리무버(Boomer Remover). 베이비붐 세대를 없애겠다는 조롱과 혐오가 담긴 표현으로, 최근 미국 젊은이 사이에 유행어로 번지고 있다. 노년층 부양에 대한 부담과 정치 성향에 대한 반감 등이 표출된 단어다. 우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틀딱, 연금충, 앵그리실버 등 노인을 향한 혐오 표현은 날로 생겨난다. 혐오 어린 말과 눈초리를 피해 노인들은 저마다의 퇴적 공간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 곁에서 노인은 사라졌고, 혐오만이 남았다.
“노인을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편견과 선입견은?” 나문희 주연의 영화 ‘수상한 그녀’의 도입부, 노인복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묻는다. 주름, 검버섯, 쾨쾨한 냄새, 두꺼운 얼굴…. 다소 부정적인 단어가 쏟아지던 중 한 학생은 “탑골공원”이라 답한다. 그곳에 가면 노인이 많다는 게 이유다. ‘퇴적 공간’의 저자 故 오근재 전 홍익대 교수는 ‘탑골공원’을 일컬어 “사회에서 쓸모를 인정받지 못해 잉여적 존재가 되어가는 인간군이 하구의 삼각주처럼 퇴적된 공간”이라 했다. 언제부턴가 노인을 상징하는 마중물이 돼버린 그곳, 탑골공원을 찾았다.
파라다이스 or 디스토피아 ‘탑골공원’
비가 내린 탓인지 탑골공원 안팎은 조용했다. 평소라면 벤치에 누워 오수를 즐기거나 담벼락 주위에 모여 장기를 뒀을 테다. 몇몇 노인만이 팔각정에 앉아 시름을 달래고 있었다. 파고다공원 시절 노인들은 이곳에 모여 술을 마시며 시국 토론을 하고 만담을 펼쳤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쌓이며 그들의 행위는 규제 대상이 됐고, 그렇게 노인들은 표정을 잃어갔다.
공원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코로나19 영향도 있고, 이젠 노인끼리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근재 교수는 “얼핏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파라다이스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곳이 현실의 냉혹함에 밀려 퇴적된 노인들의 공간이라면 디스토피아일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공원을 찾은 한 70대 노인은 토로한다. “누가 우릴 환영하나. 깨끗이 입어도 냄새난다고 싫어하지. 여기도 재미없다. 말은 안 섞지만, 그냥 저 노인네도 그래서 왔겠구나, 동병상련을 느끼는 거다.”
세대 간 혐오의 순간
“여긴 키오스크가 없네? 할아버지들이 많아서인가?”, “비 때문인지, 저분들(노인) 때문인지 꿉꿉한 냄새나.”, “주문도 안 하고 자리만 죽치네.” 탑골공원 근처의 한 패스트푸드점. 점심시간이라 인근 학원 학생들이 주문을 위해 줄을 서 있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소나기 탓에 유독 노인들이 많았던 터다. 몇몇 학생은 노인들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을 내비쳤다. 매장 직원은 “비 오는 날 그나마 여기 안 오시면 또 어디를 가실까. 한편으론 다행스럽다. 딱히 그분들이 해를 끼치는 건 아닌데, 젊은 사람들은 피하고 불편해한다. 이해는 간다”라면서도 그 이유를 묻자 말을 아꼈다.
혐오의 은신처
지하철 종로3가역 1번 출구. 탑골공원으로 향하는 길, 건너편 출구 계단에 노인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짝! 짝!” 수신호처럼 이따금 박수도 친다. 기이한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물었다. “다들 뭘 기다리시나요?” 노인 왈. “그냥 노는 거야! 소꿉장난.(웃음)” IMF 당시 실직 후 줄곧 이곳을 찾았다는 그는 비가 오거나 너무 덥거나 추우면 이렇게 지하철역에 앉아 논다고 했다. 기왕 놀 거면 마주 보고 모여 앉지 그러느냐 물으니, 서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그것이 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 “다들 (노인) 싫어하잖아. 생쥐처럼 알아서들 숨은 거야.”
60대 이상 고령자에게 혐오 표현을 들은 후 반응을 물은 조사에서 ‘사람이나 장소를 피한다’라고 응답한 이는 80.7%로 나타났다. 혐오의 시선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노인들은 사람을 피하고, 자신들만의 공간을 찾아 나선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영화 ‘기생충’,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 등을 일컬으며 세계 시장 속 한국 문화의 인기와 성공에 대해 언급했다. 아울러 ‘어른들을 위한 TV’(TV for Grownups) 코너에 아래의 한국 작품 10선을 소개했다. 해당 작품들은 넥플리스 또는 애플TV 스트리밍 서비스로 시청 가능하다.
[1] 오징어 게임(Squid Game)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이들이 목숨을 걸고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한국 시니어들이 어린 시절 했을 법한 구슬치기, 설탕뽑기, 줄다리기 등을 게임의 소재로 삼아 해외에서도 패러디를 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2] 응답하라 1988(Reply 1988)
1988년 서울 쌍문동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친구와 가족들의 일화를 그린 가슴 따뜻한 코미디 물로, 한국 중장년들의 추억을 회상케 한다. 미국 드라마 ‘원더 이어스’, ‘골드버그’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선호한다면 추천한다.
[3] 스카이 캐슬(Sky Castle)
공개 당시 한국 케이블 TV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으로, 한국 상류층의 교육열과 물질주의 세계를 묘사한다. 자녀를 최고의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부당한 전략을 이용하는 등 물불 가리지 않는 부모들의 행태를 풍자한다.
[4] 파친코(Pachinko)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꼽힌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거대한 가족 서사를 그린다. 영화 ‘미나리’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출연해 기대를 모았다. 고국을 떠나 생존과 번영을 꿈꾸는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삶을 비춘다.
[5]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중장년에게 추천하는 드라마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2세 사업가 윤세리(손예진 분)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북한의 특급 장교 리정혁(현빈 분)의 로맨스를 다룬다.
[6] 킹덤(Kingdom)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한국 드라마로, 시즌 3까지 이어오며 양질의 한국산 좀비물로 손꼽히고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불가사의한 역병과 싸워야하는 세자 이창(주지훈 분)과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려는 잠재적 음모 등을 다룬 정치 좀비 스릴러다.
[7] 사이코지만 괜찮아(It’s Okay to Not Be Okay)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처럼 어두운 주제를 다룬 기발한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볼 만하다.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 문강태(김수현 분)와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가진 인기 동화 작가 고문영(서예지 분) 등 각자의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이 정서적 치유를 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8] 빈센조(Vincenzo)
드라마 ‘베터 콜 사울’과 같은 법률 장르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조직에서 배신당한 뒤 한국으로 오게 된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송중기 분)가 또 한국의 베테랑 변호사(전여빈 분)와 함께 악당들을 일망타진하는 이야기다.
[9] 슬기로운 의사생활(Hospital Playlist)
‘그레이 아나토미’나 ‘댓 씽 유 두’ 같은 장르를 좋아하는 이라면 재미있게 볼 만한 의학, 밴드 소재 결합 드라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가슴 뭉클한 감동 스토리와 더불어 1999년 의대 입학 동기인 주인공들이 직접 연주하는 밴드 음악까지 감상할 수 있다.
[10] 푸른 바다의 전설(The Legend of the Blue Sea)
한국 최초의 야담집인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전설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수백 년에 걸쳐 평행하게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멸종직전인 지구상 마지막 인어 심청(전지현 분)과 멘사 출신 천재 사기꾼 허준재(이민호 분)의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그린다.
봄이 오면 인기가 많아지는 ‘엄마’가 있다. “매화꽃아 니는 내 딸이제, 매실아 니는 내 아들이제”라고 말하는 홍쌍리(79) 명인이 그 주인공이다. 한 해 110만 명의 상춘객이 그녀가 있는 전남 광양의 매화마을을 찾는다. 1966년 홍쌍리 명인이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현재의 매화마을이 됐다. 그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수놓는 매화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손님들을 초대했다.
“스물네 살에 산에서 일하다 외로운 산비탈에 홀로 핀 흰 백합꽃같이 살기 싫어서, 사람이 보고 싶고 그리워서, 매화꽃을 심었어요. 5년이면 꽃이 피겠지, 10년이면 소득이 있겠지, 20년이면 세상 사람 내 품에 다 오겠지, 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홍쌍리 명인은 ‘음유시인’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단어, 문장 모두 시가 되고, 노래가 됐다. 홍쌍리 명인은 자신의 인생을 노래하듯 이야기하면서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늘 사람이 그리워서 자연과 얘기한다는 그녀. 지금 그녀가 제일 그리워하는 사람은 시아버지였다.
나의 아버지, 시아버지!
홍쌍리 명인은 1943년 밀양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를 어린 나이에 여의었고, ‘엄마 없는 가난’을 겪었다고 표현했다. 현재도 각종 방송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홍 명인.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 불렀고, 가수로 키우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딸을 광대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딸을 부산 삼촌 집으로 보내버렸다. ‘못 배운 가난’까지 품게 된 홍쌍리 명인은 “친정아버지를 내가 제일로 미워했다”고 말했다.
삼촌은 건어물 장사를 했는데, 밤을 팔러 왔던 시아버지 율산 김오천 선생이 홍쌍리 명인을 보고 첫눈에 마음에 들어 했다. 홍 명인을 며느리로 안 주면 밤을 안 주겠다고 했단다. 그렇게 경상도 여인은 전라도로 시집가게 됐다. 스물세 살이었는데, 홍쌍리 명인은 “1965년 당시에는 노처녀였다”고 말했다.
율산 김오천 선생도 유명인이다. 일제강점기에 그는 일본에서 밤나무는 식량 대용으로, 매화나무는 약용을 목적으로 들여왔다. 김오천 선생은 밤나무 사업에 주력했고, 그로 인해 광양의 특산물은 밤이 됐다. 그는 故박정희 대통령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집안에 시집갔으니 편하게 살았을 것 같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홍쌍리 명인은 시아버지와 밭일을 하면서 자식들을 키워야 했다. 무엇보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남편이 광산 개발 사업에 투자했다가 망해 화병으로 드러눕고 말았다. 홍쌍리 명인은 무려 33년의 긴 시간 동안 남편 수발을 들었다.
“남편은 빚쟁이가 올까봐 방바닥에 제대로 눕지를 못했어요. 숨을 못 쉬면 산소호흡기가 필요했는데, 당시에는 하동에 산소호흡기가 없으니 순천까지 가야 했죠. 병원 한 번 갔다 오면 반나절이 걸렸어요. 그때 저도 빚쟁이들한테 머리를 쥐어뜯기기 싫어서 머리를 다 잘라버렸어요. 그리고 수건을 벗지 못했죠. 밥 먹을 때 시아버지가 ‘아야, 밥 먹을 때는 수건 벗는 기다’ 하시는데, 그 소리에 눈물이 소낙비처럼 줄줄 흐르는 거예요. 시아버지가 수건을 벗겨보시고는 둘이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홍쌍리 명인은 시집온 이듬해부터 매실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아버지의 반대를 꺾기 힘들었다. 그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밤나무를 베고 매실나무를 심겠다고 했기 때문. 시아버지는 홍 명인이 씻겨주고, 안마해주고, 노래를 같이 흥얼거리다가도 ‘매화’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시아버지는 홍쌍리 명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더욱이 법정 스님이 찾아와 ‘꽃 천지를 만들라’는 말에 홍쌍리 명인은 더 많은 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매실 사업을 시작한 지 6년이 됐을 때, 부산 대선소주에서 홍실주를 만들었다. 홍쌍리 명인의 매실로 만든 매실주다. 그때 번 돈은 137만 원. 홍쌍리 명인은 그 숫자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더불어 이때 비로소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인정해줬다.
홍쌍리 명인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시아버지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자수성가했고, 명품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더불어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사람도 시아버지다. 홍 명인은 시아버지가 없었다면 현재의 자신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연의 선물, 건강 먹거리
현재 홍쌍리 명인은 6만 평의 청매실농원을 운영하고 있다. 1997년 전통식품명인 제14호에 지정되면서 ‘매실 명인’이 됐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 홍 명인은 매화와 매실이 진짜 아들이고 딸이라고 했다. “내 꽃딸하고 매실아들은 내가 뭘 입고 가든 맨발로 가든 언제든지 반겨줘요.”
광양에서는 1997년부터 매년 3월 매화축제가 열린다. 그 시작에는 그녀의 제안이 있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3년간 축제를 열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홍쌍리 명인은 1991년 국무총리상을, 1998년 대통령상(가공식품 부문)을 각각 수상했다. 그녀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대통령상을 수상한 유일한 집안이라고 자랑했다.
홍쌍리 명인은 시집오고 고된 일을 도맡아 하다 결국 탈이 나버렸다. 스물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생사를 오가는 큰 수술을 했다. 당시 의사는 ‘살면 천명이고, 죽으면 제 명’이라고 했다. 다행히 수술을 잘 마치고 퇴원할 때, 의사는 ‘맛없는 것을 연구해보라’고 조언했다. 입에는 맛없는 건강한 음식을 만들라는 뜻이었다.
이때부터 홍쌍리 명인은 ‘오미오색’(五味五色), 오장육부가 좋아하는 건강 음식 개발에 집중했다. 특히 홍 명인이 키우는 매실은 ‘동의보감’에도 ‘마음을 편하게 하며, 갈증과 설사를 멈추게 하고, 근육과 맥박이 활기를 찾게 한다’고 효능이 적혀 있다.
그녀는 3000개의 장독대를 활용해 매실을 숙성한 건강식품을 만들었다. 매실장아찌, 청매실 농축액, 청매실원, 청매실 고추장 등 30여 종에 달한다. 더불어 홍쌍리 명인은 2007년 광양매실 지리적표시 제36호 등록, 2008년 광양매실산업특구 지정, 2010년 광양매실 지리적표시 단체표장 등록 및 빛그린 상표 등록을 하면서 광양매실의 브랜드를 키웠다.
“매실 많이 먹어서 죽는다 하면 나는 10번도 더 죽었지”라고 말하는 홍 명인은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잘 때까지 매실을 먹고 마신다. 덕분에 뱃속 설거지가 잘돼 지금처럼 건강한 것이란다. “농사는 작품, 밥상은 약상. 뱃속 설거지를 해서 미움, 증오, 욕심을 버리면 안 건강할 수가 없다”고 외쳤다.
이렇게 자연이 준 건강밥상의 효과를 직접 느낀 홍쌍리 명인은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만약 여유가 있다면 집을 짓고 마음 아픈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요. 당신들이 먹고 싶은 것을 심게 하고, 밥 먹을 때마다 먹고 싶은 것을 빼먹게 하고 싶어요. 고기는 내가 시장에서 사다주고요. 내 몸은 내가 가꾸는 것이에요. 그러면 병이 없거들랑.”
밤에는 등단한 시인으로
홍쌍리 명인은 시인이기도 하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혼자 책을 보면서 글을 공부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 자연과 나눈 대화를 글로 썼고, 이는 시가 됐다. 2011년 종합문학지 ‘서울문학인’ 여름호에 ‘학처럼 날고 싶어라’ 등으로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인생은 파도가 쳐야 재밌제이’, ‘행복아 니는 누하고 살고 싶냐’ 시집도 냈다.
“사람하고 같이 일하면 좋지만, 내 혼자 일해도 하나도 안 심심해요. 이 꽃이 이 소리 하고 저 꽃이 저 소리 하는 게 다 들려요. 꽃이 ‘마스크 부대가 무서워서 엉엉 울었다, 마스크 부대가 입 한 번 안 맞춰주고 가네’라고 해요. 저는 ‘내 딸 장하다’고 안아주죠. 이렇게 농사꾼으로 사는 게 얼마나 재밌나요.”
홍쌍리 명인은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자연한테 매일매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어떤 교수가, 박사가 이런 것을 가르쳐주느냐”면서 웃음 지었다. 배우 최불암도 그녀에게 “어떤 작가가 그렇게 말이 술술 나올 수 있겠냐. 겪지 않고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오겠냐”고 말했다고.
“저는 글을 쓰든 말을 하든 사투리도 그대로 하고 욕도 그대로 해요. 제가 상사화를 보고 욕을 좀 많이 해요. 야 이 년아, 왕관같이 예뻐서 너를 심었는데 왜 니는 도도하게 서 있느냐. 사람이 꽃을 꺾어서 머리에 꽂든가 화병에 갖다 꽂아야 시집을 가야 예쁘단 소리를 듣는데, 너는 미인하고 똑같이 도도하게 서 있느냐. 이렇게 글을 써놓고 저는 그 소리를 해요. 예쁜 것도 좋지만 정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보고 싶은 사람이 되면 인간 승리자라고 생각해요. 내가 돈이 많으면 무서워서 못 살아요. 그런데 사람 울타리 백만장자가 돼보니깐 높은 담장이 없어도 대문이 없어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더랍니다. 내가 돈이 많으면 진짜 무서워서 못 삽니다.”
홍쌍리 명인은 자신의 이름 앞에 ‘아름다운 농사꾼’이라는 수식어를 늘 붙인다. 처음에는 농사꾼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 눈물 바람이었고, 섬진강의 강물에 보탬이 됐다고 했다. 이제 그녀는 꽃 한 송이와도 대화가 되는 삶을 살고 있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매일매일이 행복이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 행복을 어디다 표현하리. 이 은공을 내가 어떻게 다 갚으리. 참 재미 안 있습니까, 내 삶이? 그런데 인생의 파도를 50대 안에 안 넘으면 안 돼! 힘들어서 안 돼요.”
기댈 곳 없어
일에 기대고
흙에 의지하고
바삐 살아온 그대는
거울 앞에 고인 눈물이 막 해대네
타고난 팔자인걸
보호자도 없이
이 산 저 산 구멍 난 고무신에
발바닥이 아문 삶아
뭐가 그리 좋아
주름 사이 웃음꽃이 피더노
일이 있어 고맙고
흙에 의지할 수 있어
고마워서
웃음이 헤프네
-홍쌍리 -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외출을 나서기에도 망설여지는 요즘이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집에서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편안한 주말을 즐길 이들을 위해 넷플릭스에 갓 공개된 신작 세 편을 소개한다.
1. 무브 투 헤븐 (Move to Heaven, 2021)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그루(탕준상)는 아버지를 도와 고인의 유품이나 재산, 사망 현장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업체 ‘무브 투 헤븐’에서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매 순간 함께 해온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상구(이제훈)가 후견인이 되어 그루 앞에 나타난다. 자신과는 달리 거칠고 제멋대로인 상구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차마 거역할 수 없는 그루. 결국 상구와 유품 정리 일을 시작한 그루는 뜻하지 않은 사건을 통해 점차 상구와 가까워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가족이 되어간다. ‘무브 투 헤븐’은 유품정리사 그루와 그의 후견인 상구가 고인의 유품을 통해 떠난 생전 이들이 살았던 삶을 돌아보고, 머문 자리를 대신 정리해주며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드라마다. 김새별 유품정리사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으로, 고독사, 산업재해, 데이트 폭력, 입양아 등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의 가슴 아픈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한다.
2. 우먼 인 윈도 (The Woman in the Window, 2020)
심각한 광장 공포증으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아동심리학자 애나(에이미 아담스)는 앞집에 이사 온 제인 러셀과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비명 소리를 듣고 창밖을 내다본 애나는 제인이 누군가에게 칼에 찔리는 광경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애나의 말을 믿지 않고, 그녀가 복용하는 약에 의한 환영이라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친구라 믿었던 제인마저 애나가 알던 제인이 아닌 상황. 애나가 본 것은 무엇이고,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우먼 인 윈도’는 집에서만 생활하던 애나가 우연히 창문으로 잔혹한 범죄를 목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심리 스릴러다. 2018년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40주 연속 1위를 기록한 A.J.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해, 원작의 촘촘한 서사가 극의 서스펜스를 배가시킨다.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 ‘안나 카레니나’ 등 소설 원작 영화에 두각을 나타내는 조 라이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완성도 높은 연출로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3. 제미니 맨 (Gemini Man, 2019)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은퇴 후 평화롭게 살고 싶었던 헨리(윌 스미스)는 어느 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의문의 남자에게 쫓긴다. 수상한 낌새를 느낀 헨리는 그의 오랜 동료인 배런, 새로운 동료 대니와 함께 남자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헨리는 의문의 남자가 자신의 20대 모습과 완벽하게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가 자신의 DNA를 추출해 탄생한 ‘제미니 프로젝트’의 요원이라는 것을 발견해 충격에 휩싸인다. 영화 ‘제미니 맨’은 레전드 요원 헨리가 마지막 미션을 수행하던 중 의문의 요원을 마주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2차례 수상한 이안 감독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작품이다. 주인공의 20대 전성기 시절과 DNA가 99.9% 일치하는 미지의 존재와 50대의 주인공이 만나 대결을 펼친다는 설정이 흥미를 유발한다. 거침없는 20대와 관록의 50대까지, 1인 2역을 소화하며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을 선보인 윌 스미스의 믿고 보는 연기가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 Exhibition
◇구정아: 2020
일정 11월 28일까지 장소 PKM 갤러리
특유의 기민한 감각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구정아 작가의 개인전. 야외 설치작업을 비롯해 회화, 드로잉, 조각 등 미공개 최신작 30점을 선보인다. 밤이 되면 녹색 빛을 뿜어내는 야광 스케이트 파크 ‘레조넌스’부터 어두운 전시장에서도 밝게 빛나는 ‘세븐 스타즈’까지 인광 페인트를 활용한 작가만의 독특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갤러리는 낮과 밤의 분위기가 다른 작품을 보다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일몰 이후인 저녁 9시까지 개방한다.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
일정 11월 15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빛을 통해 우리 문화재를 탐구한다. 제1부에서는 현미경으로 문화재의 빛과 색을 관찰하며, 2부에서는 빛으로 촬영한 문화재의 모습을 살펴본다. 특히 희미해진 유적 속 글귀나 그림 등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을 판독하는 과정을 밝힌다. 3부는 빛을 통해 문화재의 보존 상태를 점검하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국가지정문화재 10점을 비롯해 전체 57건 67점이 공개된다.
◇여행갈까요
일정 12월 27일까지 장소 뚝섬미술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코로나19)으로 여행을 가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기획한 전시. 하와이, 베트남,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여행지를 연상케 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마치 세계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전시장 입구를 공항처럼 연출하고 비행기 객실 모습을 재현해 여행 전의 설렘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전시 후반부에는 세계 각국 여행지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단순히 여행에 대한 향수를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행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던진다.
● Book
◇비건 하이프로틴 쿡북 (쥘 노이만 저·든든)
고기 없이도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90여 가지의 비건 요리를 소개한다. 모든 요리에 1회분의 영양성분표가 적혀 있으며 30일 식단표가 함께 수록돼 있어 균형 잡힌 채식을 돕는다.
◇쓰레기 거절하기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저·양철북)
플라스틱 제로 운동으로 시작해 10년째 쓰레기 제로 운동을 실천 중인 한 가족의 이야기. 이웃과 차를 공유하고 냉장고를 반만 채우는 등 색다른 방식으로 쓰레기를 줄이며 깨달은 내용을 담았다.
◇착한 소비는 없다 (최원형 저·자연과 생태)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가 환경과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 일상 속 사례를 통해 차근히 짚어준다. 더불어 덜 쓰고, 다시 쓰는 소비를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어나갈 것을 제안한다.
● Movie
◇도굴
개봉 11월 예정 장르 범죄 감독 박정배 출연 이제훈, 조우진, 신혜선, 임원희 등
흙 맛만 봐도 보물을 찾아내는 타고난 천재 도굴꾼 ‘강동구’가 전국의 전문가들과 함께 땅속에 숨어 있는 유물을 파헤치며 짜릿한 판을 벌이는 범죄 오락영화다. 황영사 금동불상, 고구려 고분 벽화, 서울 강남 한복판의 선릉까지 거침없이 파내려가는 도굴꾼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껏 한국 영화에서 다룬 적 없는 기상천외한 도굴의 세계를 스릴 있게 조명한다.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지은 무덤과 화려한 유물 등 다양한 볼거리와 더불어 주연 배우 네 명의 환상적인 팀플레이가 작품의 재미를 높인다. ‘수상한 그녀’, ‘도가니’ 등 조감독을 거쳐 오랜 기간 노하우를 갈고 닦은 박정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내가 죽던 날
개봉 11월 12일 장르 드라마 감독 박지완 출연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등
오랜 공백 이후 복직을 앞둔 형사 ‘현수’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 ‘세진’의 실종사건을 추적하며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수는 세진의 사건을 담당했던 전직 형사와 연락 두절된 가족, 사건을 목격한 ‘순천댁’까지 차례로 만나며 감춰졌던 비밀에 가까워진다. 배우 김혜수의 2년 만의 스크린 컴백 작품이자, 여고생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포착한 단편영화 ‘여고생이다’로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지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워 위드 그랜파
개봉 11월 예정 장르 코미디 감독 팀 힐 출연 로버트 드 니로, 우마 서먼, 오크스 페글리 등
같은 방을 쓰게 된 막무가내 할아버지 ‘에드’와 사춘기 손자 ‘피터’가 하나뿐인 방을 사수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로를 골탕 먹이는 유쾌한 전쟁 이야기다. 아카데미상 2관왕, 골든글러브 2관왕에 빛나는 로버트 드 니로의 코믹한 연기와, 영화 ‘원더스트럭’으로 연기력을 입증한 아역배우 오크스 페글리의 호흡이 돋보인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각본을 쓴 팀 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웰메이드 코미디를 선보일 예정이다.
● Stage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일정 11월 3일부터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연출 박해림 출연 강필석, 정운선, 윤석현 등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백석 시인의 시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를 모티브로 삼은 동명의 창작 뮤지컬이다. 당대 최고의 모던보이이자 시인들의 시인이라 불렸던 ‘백석’과 그런 그를 못 잊어 평생을 그리움으로 살았던 기생 ‘자야’의 사랑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풀어낸다. 모든 뮤지컬 넘버의 가사에 백석이 쓴 시를 차용해 마치 한 권의 시집을 읽은 듯한 여운과 감동을 준다. 2015년 초연한 이 작품은 제1회 한국뮤지컬 어워즈에서 극본, 작사상, 연출상, 작품상 등을 받았고 차범석 희곡상에서도 뮤지컬 극본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초연 이후 세 번째로 관객 앞에 서는 이번 시즌에서는 극본을 쓴 박해림 작가가 연출까지 도맡아 작품의 서정성을 한층 더 높일 예정이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좌석 간 띄어 앉기를 실시한다.
◇블랙메리포핀스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대학로티오엠 1관 연출 서윤미 출연 김도빈, 임준혁, 임찬민 등
환상적인 동화 ‘메리 포핀스’를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 변주한 창작 뮤지컬. 1920년대 한 대저택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에 얽힌 유모 ‘메리’와 네 남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시즌에는 둘째 ‘헤르만’의 시점에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쳤다면, 이번 시즌에서는 막내 ‘요나스’로 중심 화자를 바꿔 같은 대본이지만 인물의 심리 변화를 색다르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퀄
일정 11월 22일까지 장소 예스24스테이지 2관 연출 이은영 출연 김지휘, 조성윤 등
어릴 적부터 폐병을 앓아온 ‘니콜라’와 그를 보살피는 친구이자 의사 ‘테오’를 통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극작가, 배우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스에미츠 켄이치 원작의 작품이다. 2015년 도쿄에서 초연 후 한국에서는 처음 선보인다. 연금술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이용해 단 두 명의 출연진만으로도 긴박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웰다잉을 위해 실버타운에 입주한 7명의 꽃중년이 펼치는 치어리딩 도전기를 그린 영화 ‘치어리딩 클럽’이 오늘 개봉한다.
BBC ‘100인의 여성’에 선정될 정도로 유명한 실버 치어리딩 클럽 ‘폼즈’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다이안 키튼을 중심으로, 연기 경력만 총 300년에 달하는 할리우드 대표 여성 배우가 총출동했다.
공개된 메인 예고편에는 실버 타운에 입주한 중년 여성들이 모여 치어리딩 대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겼다. 젊은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치어리딩 퍼포먼스를 연습하지만 몸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시니어들의 고충마저도 유쾌하게 그린다.
실제 치어리딩을 해본 적 없던 중년 배우들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 모든 장면을 직접 소화하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영화 속 메시지를 몸소 전했다.
중견 배우들의 연기력과 작품성은 물론, 실화의 감동까지 담아 수많은 중장년에게 응원과 희망을 선사할 예정이다.
‘호박 고구마’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이름, 나문희.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은 배우 나문희는 모두가 인정하는 자타공인 국민배우다. 1961년 MBC 라디오 공채 성우 1기로 이름을 알린 나문희는 60년간 영화 22편, 드라마 91편에 참여하며 살아온 세월의 절반 이상을 연기 활동으로 보냈다. 최근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영화 ‘오!문희’에 출연해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를 펼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시트콤에서의 유쾌한 모습부터 눈물샘을 자극하는 연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오랜 세월 관객을 웃고 울린 나문희.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시니어를 대표하는 배우 나문희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를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하모니 (Harmony, 2009)
임신 중 교도소에 수감된 '정혜'(김윤진)는 그곳에서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교정 시설에서 출산한 경우 생후 18개월이 지나면 입양을 보내야 한다는 법에 따라 품에 안은 아이와 이별을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아이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은 정혜는 합창단 결성을 떠올리고, 정혜의 제안으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수용자가 한데 모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개봉 당시 극장가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영화 ‘하모니’는 여성 수용자들이 합창을 통해 하나가 돼 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낸다. 영화에서 나문희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형수 ‘문옥’역을 완벽하게 연기해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특히 전직 음대 교수였던 문옥의 지휘 아래 도저히 어울릴 수 없을 것 같던 오합지졸 합창단이 화음을 맞춰가는 순간은 작품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2. 수상한 그녀 (Miss Granny, 2014)
아들 자랑이 유일한 낙인 ‘오말순’(나문희)은 어느 날 가족들이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려 한다는 사실을 듣고 상념에 빠진다. 싱숭생숭한 마음에 밤길을 거닐던 말순은 우연히 발견한 ‘청춘사진관’에 들어가 영정사진을 찍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말순은 창밖에 비친 낯선 얼굴에 경악한다. ‘할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앳된 얼굴로 변해버린 것. 스무 살의 모습으로 돌아간 말순은 당황하기도 잠시, 돌아온 청춘을 제대로 누려보기로 한다.
영화 ‘수상한 그녀’는 나문희와 심은경의 2인 1역 캐스팅으로 개봉 당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나문희는 70대 말순을, 심은경은 20대로 돌아간 말순을 연기하며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특히 심은경은 ‘욕쟁이 할매’를 연상케 하는 구수하고 찰진 사투리를 구사해 나문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완벽한 싱크로율을 선보인다.
3. 아이 캔 스피크 (I Can Speak, 2017)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옥분'(나문희)은 온 동네를 휘저으며 8000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은 '프로민원러'이자 뒤늦게 영어 공부에 푹 빠진 늦깎이 학생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구청에 간 옥분은 새로 전근 온 '민재'(이제훈)를 만나는데, 다른 직원과 달리 까다롭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민재는 옥분의 민원을 연신 거절한다. 하지만 이에 질 리 없는 옥분은 민재를 따라다니기 시작하고, 어느 날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민재의 모습을 본 옥분은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색다른 민원(?)을 제기한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공무원에게 영어를 배운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다룬 내용으로, 실화를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2007년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고 김군자 할머니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올라 증언한 것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나문희는 이 작품으로 대종상·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 등 3대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국민배우로서의 저력을 입증했다.
세월이 비켜간 듯한 목소리, 과거와 똑같은 외모. 30대 중반처럼 보이지만, 올해 그녀의 나이는 만56세. 믿기지 않는다. 절대 동안의 외모, 청아하면서도 파워풀한 목소리로 ‘난 너에게’, ‘내 사랑을 본 적이 있나요’, ‘환희’ 등을 히트시키며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군림했던 정수라가 바로 그녀다. 작년에 데뷔 35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치르고 올해 초 신곡 ‘업고! 업고!’를 발표한 후 활동 중인 그녀는 11월에 있을 공연을 준비하며 쉼 없이 바쁘게 살고 있었다. 여전한 카리스마와 놀라운 가창력으로 무대를 휘어잡으며 오늘 현재를 철저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인생관, 그리고 가수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업고! 업고!’는 ‘업고 신나게 놀면서 우리 기운을 상승시키자’는 의미예요. 원래는 제목을 영어 그대로 ‘Up Go’(유피 고)로 하려 했는데 작사가 이건우 씨가 ‘영어로 하면 너무 아이돌 노래 같아서 우리 세대는 낯설 수 있으니까 한글로 가자’고 해서 그렇게 됐죠.”
정수라의 신곡 ‘업고! 업고!’를 들어보니 EDM(전자음악을 통칭하는 용어)이 가미된 남진의 노래를 정수라가 부르는 듯한 신나는 곡이었다. 정수라의 대표곡들이 워낙 듣는 사람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노래가 많기에 그런 이미지와도 부합했다.
“‘업고! 업고!’가 나오기 전에는 발라드곡을 발표했어요. 그런데 발라드보다는 힘찬 노래가 어울린다는 피드백이 오더군요. 물론 그런 반응들만 따라가는 건 아니지만, ‘환희’ 이후에 사람들을 업시킬 수 있는 노래를 만들었죠.”
‘아! 대한민국’으로 최고 인기가수
사실 대중이 아는 정수라는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청아한 창법이 특징인 가수다. 이런 이미지를 만든 노래가 바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 이상 들어봤을 ‘아! 대한민국’이다. 원래는 타이틀곡도 아니었고 음반에 의무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전가요로 만들어진 노래였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공전의 히트를 치며 제2의 애국가라는 별명까지 갖게 됐다. 지금도 대학가와 운동 경기장을 가면 자주 듣는다. 젊은 사람들도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정수라인 걸 알면 놀라면서 신선하게 느끼지 않을까.
“‘아! 대한민국’은 그 시대에 만들어야 했고 불러야 했던 노래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빵 뜬 거예요.(웃음) 정말 의외였어요. 그래서 정수라는 강하고 씩씩하고, 건전가요에 어울리는 가수라는 인상을 갖게 됐죠. 개인적으론 마음에 안 들어요. 덕분에 쎄 보인다는 말도 듣는데, 저 엄청 여려요.(웃음)”
엄혹한 시대에 숙명처럼 얽혀 슈퍼스타가 된 정수라였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 대한민국’의 대성공 이후로도 꾸준하게 히트곡을 발표하며 1980년대를 상징하는 가수가 됐다. 또 ‘가요톱10’에서 총 21번 1위를 기록하며 역대 세 번째로 1위를 많이 수상한 가수가 되었다. 1980년대에 우리는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살았던 것이다.
다른 세대와의 소통도 필요해
정수라는 중학교 3학년 때 연예계 데뷔를 했다. 어렸을 때부터 독특한 목소리를 인정받은 그녀는 일찌감치 광고음악을 통해 대중과 만났다. 학교보다 스튜디오를 더 많이 다녔다는 그 시절, 그녀를 가수의 세계로 이끌어준 사람은 ‘바람이었나’, ‘풀잎 이슬’ 등의 노래를 만들어준 작사가 박건호였다. 그 후로 36년간 연예계에서 활동한 그녀이지만, 젊은이들 위주의 프로그램이 많은 요즘 방송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다. 혹시 그녀도 대중에게 잊힌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을까?
“무대 위에 올라가면 못 느껴요. 무대에서 내려와 일반 생활을 할 때, 내 연배들은 나를 알지만 그보다 연하인 사람들이 못 알아볼 때는 조금 느끼긴 하죠. 사실 저는 너무 숨어 있었어요. 예능도 안 하고 토크쇼도 안 하고. 카메라를 의식하는 방송울렁증이 있어서, 그리고 뻔한 게 싫어서 그랬죠. 그런데 요즘은 ‘내가 다른 세대와의 소통에 소홀히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차피 오래 노래하려면 나를 아는 세대하고만 만날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와 어울릴 수 있는 방법도 찾아봐야 하지 않나?’ 하며 되묻긴 하죠.”
얘기를 좀 하다 보니 그녀에게서 가수는 물론 방송인으로서의 욕심 또한 느껴졌다.
“‘불타는 청춘’에 나온 후에는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나를 만난다는 게 얘깃거리가 된 거죠.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나가고 싶어요. 요리 예능요? 내가 요리를 못해. 그것보다는 요리를 배워보는 게 좋겠어요.(웃음)”
노래 안 했으면 연기했을 것
예능 얘기를 하다 보니 천생 가수인 그녀가 만약 노래를 안 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했다. 그녀는 단숨에 ‘연기자’라고 대답했다.
“연기를 하면 다양한 인생을 살 수 있잖아요. 저는 너무 단순해요. 56세이지만 나를 다 못 보여준 거 같아서요. 사람들은 저에 대해 무대 위에서의 파워풀한 느낌만 기억하는 것 같아요. 원래 제 성격은 천방지축이거든요. 이젠 다양한 내면을 드러내고 싶어요”
정수라는 (매니저에게) “너 영화 쪽에 아는 사람 좀 없니?” 하며 웃었다. 요즘 아이돌은 데뷔 전 연기 교육도 기본으로 받는다. 아이돌 가수생활을 발판으로 삼아 향후 연기자로서의 미래까지 염두에 두고 하는 준비다.
“요즘 아이돌, 인정해야죠. 그런 가수들이 성공하는 시대가 된 거예요. 저도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시대를 만나게 된 거고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디제잉하는 친구와 조인해서 EDM을 하고 싶어요. 마돈나처럼, 그리고 인순이 선배가 조PD와 한 것처럼 말이죠. 일단 재밌잖아요.”
멀티플레이어 정수라의 욕심
대화를 나눌수록 그녀가 멀티플레이어 욕심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문득 가수 권인하가 최근 유튜브에 채널을 열어 독보적인 가창력을 뽐내며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요즘에는 노래가 성공하려면 유튜브를 반드시 해야 한다. 가창력 하면 정수라도 결코 뒤지지 않는 가수인데 유튜브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유튜브는 와 닿질 않아요. 내가 걸어가는 길이 있는데 굳이 거기에 맞추다가 자칫 잘못하면 마이너스가 될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일단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게 중요하죠.”
뜻밖의 보수적인 면모가 보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녀의 그런 반응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젊었을 때 근거 없는 악성 루머에 오래 시달렸고, 곧 가수 데뷔 40주년이 될 만큼 오래 연예계에서 일했지만 아직도 방송울렁증이 있다. 그런 경험이 있는 그녀에게 무턱대고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을 여과 없이 노출하는 유튜브는 당연히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수로서의 재능을 생각해봤을 때 유튜브야말로 그녀에게 최적화된 포맷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녀의 향후 행보가 궁금해진다.
하루를 충실하고 행복하게
“젊게 보인다는 것은 저에게는 플러스죠. 필라테스를 6년째 하는 중이에요. ‘내가 힘들 때 뭐하고 있었더라?’ 생각해보니 운동을 하고 있었더라고요.(웃음) 땀 흘리는 게 좋아요”
정수라는 기본적으로 승부근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녀의 노래들이 그렇듯이, 그녀는 지난 몇 년 동안 인생에서 벌어졌던 어려웠던 일들을 하나씩 극복해냈다.
“요즘 몇 년 동안 나 자신에게 ‘정말 대단한 정수라야’ 하며 스스로를 칭찬했어요. 저에게 내일은 없는 날짜이고, 어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에요. 그래서 오늘이 가장 중요해요. 최선을 다하는 게 행복한 하루죠.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내 노래를 듣고 행복해하는 사람들 얼굴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아요. 저는 살면서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게 문제였죠. 바쁘게 주어진 일만 했고 세상 물정을 몰랐고 꼭두각시처럼 일만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세상에 치이고 사람에 휘둘려서 힘들었어요. 나이가 드니 나를 잘 챙기면서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게 가장 행복한 일 같아요.”
아직 내려놓을 때가 아니더라
정수라의 롤 모델은 패티김, 남진, 조용필 등이다. 그들처럼 기억되는 게 그녀의 꿈이다.
“제가 음악적 자질은 그분들에 비해 많이 모자라요. 더 열심히 해야 했어요. 그래서 롱런하려면 공부를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선배님들이 롱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요. 나이를 받아들이고, 정말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멋진 가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스스로 ‘여기까지가 딱이다’ 할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때 내려놓으려고 해요. 그런데 아직은 아닌 거 같아.(웃음)”
훌훌 털어버리고 살자 하는 그녀에게 요즘은 큰 고민이 없다. 오로지 곧 있을 11월 공연에만 신경 쓰고 있다.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 공연 연출을 위한 팀을 선정했고 아이디어와 연출을 더해가며 준비 중이다. 그런 하루하루가 그녀에게는 앞서 말한 행복의 이유들이 된다. 89세 어머니, 언니, 오빠와 사는 그녀에게 힘들지 않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어, 참 철없이, 열심히 살고 있어요.(웃음)”
허공을 보며 꾹꾹 눌러 웃는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박건호 작사가 주제로 열린 ‘가요무대’ 대기실에서의 만남은 짧았지만 여운은 길었다.
새로운 다짐과 희망으로 가득한 1월 한 해를 시작하며 읽을 만한 신간을 소개한다.
◇ 딸기색 립스틱을 바른 에이코 할머니 (가도노 에이코 저ㆍ지식여행)
30년 넘게 전 세계인에게 회자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의 원작자인 아동작가 가도노 에이코의 에세이다. 2018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국제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그녀는 여든이 넘은 현재까지도 왕성한 집필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책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건강하고 생기 넘치는 인생을 살기 위한 에이코 할머니만의 비법들을 담았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빛나는 자신만의 멋과 철학, 나이가 들어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패션, 오랜 세월 즐겨온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그릇들, 딸기색 벽을 가득 채운 수많은 책 등 그녀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 마흔 이후 빨간색 옷이 잘 어울린다는 칭찬 한마디에 ‘딸기색’을 자신만의 색깔로 삼은 저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예쁘게 꾸미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 채 매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옷장 속을 살피고 싶다”며 아름다운 삶의 비결과 꾸미는 즐거움에 대해 말한다.
◇ 같이 읽고 함께 살다 (장은수 저ㆍ느티나무책방)
10대 여고생부터 80대 할머니까지, 함께 책을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30년 넘게 맥을 이어온 ‘할머니 독서모임’, 귀촌자가 모여 만든 ‘남원북클럽’ 등 저자는 전국 독서공동체 24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기록했다.
◇ 비가 와도 꽃은 피듯이 (노신화 저ㆍ포레스트북스)
말기 암과 치매를 앓는 시한부 아버지와 그 곁을 지키는 딸의 마지막 76일을 그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절망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며 가족의 질병이 갈등과 붕괴가 아닌 치유와 사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저ㆍ다산책방)
‘뉴욕타임스’, ‘가디언’이 추천하고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유럽 소설의 새로운 목소리’로 주목받는 톰 말름퀴스트의 소설.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으로 평범한 일상이 파괴된 한 남자의 비극을 담담하고 직설적으로 풀어냈다.
◇ 왕초보 책과 글쓰기 도전 (가재산 외 공저ㆍ노드미디어)
100세 시대를 맞아 시니어들이 쉽게 도전해볼 수 있는 책과 글쓰기 방법에 대해 정리했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자료를 수집하고, 문서를 정리하는 등 글쓰기에 효율적인 스마트폰 활용 노하우를 친절하게 소개한다.